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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액설 호퍼 | 나의리뷰 2018-05-3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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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액설 호퍼 등저/윤승희 역/윤희조 감수
생각의길 | 2018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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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소파)과 불교(방석)는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태제 아래 여섯 명의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아홉 편의 논문을 통해서 두 학문의 핵심적인 방법론을 비교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불교심리학을 정신분석과 연결하려고 시도하였고, 프로이트로부터 출발한 정신분석은 불교와의 친연성을 점점 더 해가고 있다. 결국 프로이트와 붓다는 정신분석적 사고와 불교심리학의 교차점과 갈림길을 통해서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두 가지 강력한 도구의 접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서구 심리학과 상담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활로를 보여주고, 불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불교의 현대적 모색을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17p)

 



먼저 이 두 학문의 공통분모는 <일상의 고난이라는 입구를 통해 고통의 소멸로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은 자유연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집중으로, 교심리학은 무아에 기반을 둔 알아차림의 주의 집중으로 치유를 시도한다.
 

그럼 이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정신 분석학
1. 무의식의 세계를 불러와 자기인식 증가를 통해서 현재를 치료, 또는 경감한다.
2.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3. 말을 사용해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정신분석의 핵심이다.
4. 강력한 자아정체감.(개인에 집중. 병리학적 자기애를 건전한 자기애로 전환한다.)
5. 잠재력의 활성화로 심리분석(분석가는 환자를 분석한다.)

불교심리학
1. 무아를 통해 자유한다 (해탈).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온과 복을 누린다.
2.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다.
3. 내적 성찰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본다(명상, 수행). 말이 필요 없다.
4. 무아의 지혜로 자기와 타자 간의 인위적 경계가 사라지면, 자아는 오르가슴의 희열을 얻는다.
   서로 연결된 존재
5. 실리적 탐색 없이 명상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6. 형체가 곧 공이고, 공이 곧 형체다.(반야심경)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특히 이 책을 통해서 불교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는 쉽지 않은 학문이다.
불교는  신이 나 신앙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고 심리학이다.
불교에서는 '자기'는 없다고 말한다. 해탈함으로써 모든 괴로움에서 해방되어서  행복해질 수가 있다고 말한다.
과연  '무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부처?
"형체가 곧 공이고, 공이 곧 형체다. "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다. 해탈을 한다는 것. 불교를 이해한다는 것. 
너무 어렵다.


불교의 근본 원리를 보여주는 시다. 형체와 공. 삼사라(윤회). 니르바(해탈). 상대적진리와 절대적 진리의 결합.

어쨌든.
정신 분석학이든, 불교 심리학이든, 그것을 통해서  과연 인간의  모든 고통이  소멸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샘물 같은 책이다.
아직도 미처 다 퍼올리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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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의역사 | 나의리뷰 2018-05-01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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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종교의 역사

리처드 할러웨이 저/이용주 역
소소의책 | 2018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신앙이 있는사람이나 없는사람이나 모두에게 인문학적 차원에서 추천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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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부터 인간은 종교를 만들어 왔다.   역사 이래 인간이 만든 종교는  무수히 많다. 우리의 두뇌는 늘 자기를 의식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동물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사는  인간의 역사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세계의 역사와  종교사를 모두 꿰뚫을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인간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속 시원하게 가슴 뻥- 뚫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저자는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와 주교를 지낸 평론가이자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종교에도 편향되지 않은 엄격하고도 냉철한 자세로  모든 종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파헤친다.
힌두교에서 불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과학교,  에큐메니컬 운동, 계몽주의까지.나는 전혀 들어보지도 않았던 종교들을  스무 개나 넘게 소개한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종교에 관한 풍부한 지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니라 정보를 꿰어서 인간 문화의 유장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는 관점의 혁신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과제요 목적이다."라고
그러나 나는 솔직히 궁금했던  종교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리고 그 종교들에 관한 세부적인 지식을 습득했던 점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다른 종교들에 대한 무지함에 늘  아쉬움이 있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엔  차마 시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벅찬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권에  담긴 세계종교 역사라고 해서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또 가독성마저 좋아서  책 속으로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정말로 나에게는 좋은 책과의 만남이었기에  종교를 떠나서 인문학 차원에서  이웃에게 권하고 싶다.

그 어떤 종교를 보드라도 그 핵심은 모두 훌륭하다.
비참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삶을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서 종교들이 생겨난다. 그들의 목표는 모두가 다 사랑이고 자비이고 구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  모두 폭력적이다.  아이러니다.
신은 사랑인데 종교는 왜 폭력일까?


"신이라는 괴물 같은 존재가 살인광적인 종교를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면 종교가 신을 오해하여 종교 자신의 잔인성을 신의 의지와 혼동한 것일까?"(378P)

그렇다면  신은 없는 걸까? 오로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까?  그러면 현대의 과학만을 믿어야 할까?  계몽주의자들의 세속적 인본주의 운동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렇지만 이 시간 나의 신앙관은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다. 
옮긴이(이용주)는 말한다.
"내가 잘났다는 고집과 편견을 버리는 것이 믿음이다.
나보다 더 위대한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승인하고, 내가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복하고, 나의 편협함을 내려놓고, 겸허하게 물러나 존재 그 자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복종이다."

그렇다. 전능자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역시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더 큰 위대한 궁극적인 실재를 인정할 때  겸손해지고,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할 때 비로소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영혼이 든든해 지기 때문이다

 

 

성서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성서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것이지
생명의 작동 원리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확신은 신앙이 아니다. 신앙의 반대이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확신한다면, 그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과학은 종교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또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바꾸도록 도와줌으로써 종교에 도움을 주었다.
(3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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