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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염세주의자 | 나의리뷰 2019-12-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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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당한 염세주의자

염세철학가 저/차혜정 역
나무의철학 | 201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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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염세주의자>라는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선택했다.

나 같은 염세주의자(명색이 기독교인이라는 내가 염세적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있던 터였다.)도 당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눈을 말똥거리며 책을 펼쳤다.

염세주의! 왜 염세주의인가? 자칭 ‘염세철학가’인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염세’는 하나의 출발점일 뿐, 이러한 정서를 계기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가치를 탐색할 수 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염세는 일시적인 기분 상태가 아니라 끝없는 지겨움과 권태, 그리고 무기력함이다. 그래서 염세대의 등장은 사회 전체가 매우 특수한 단계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이를태면 불계세대의 양육방식, ‘잘난 자식은 많지 않고, 굳이 고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굳이 다투거나 서두르지 않는 생활방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데 굳이 남들과 경쟁하며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佛’은 현재의 상황에서 탈피하는 것뿐 아니라 속세, 나아가 우주 전체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없어지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해서, ‘긍정의 힘’은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불합리한 지점이 있으며 자신에게는 그것을 개선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장자>를 통해 옛 철학자들이 우주, 사회, 인생을 대하는 사고를 짚어보고 장자가 ‘염세’에서 어떻게 출세出世로 돌아서서 철저한 불계인이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마지막 태도. ◆

‘가장 자유로웠던 철학자 장자에게서 배우는 인생내공 10가지’

폐물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지속할 수 있다

▶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자아를 찾지 않을 때야말로 진정한 자아를 찾은 상태이다

▶ 진리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진리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 나의 사지를 자르고 너의 사상을 없애고 형체와 심지를 모두 쫓아버린 후에야 너는 비로소 우주와 혼연일체가 될 것이다.

▶ 인생을 한바탕 꿈으로 보는 관점이야말로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을 멈추고, 순응하는 순간 모든 사물이 기꺼이 우리에게 접근해 우리의 가장 큰 아군이 되어준다

▶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는 바로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성숙한 사람이란, 바로 지금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들은 이 순간도 다음 순간도 우주의 이치 안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결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생각이 없으며, 우연히 명예를 얻더라도 그것이 뜬구름과 같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 우주의 관점으로 볼 때 생로병사는 인간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성장 여정을 떠나야 하며, 인간의 좁은 시야를 뛰어넘어 우주와 같은 속도로, 우주의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무위 (無位) !

진정한 염세주의자가 된다는것이 무위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는 거란다. 어렵다

자는 전국시대 인물이다.

BC 770년경. 그러니까 서양사로 볼 때 구약시대다. 중국에 기독교가 AD 7세기 중반 경에 전파되었다고 하니 장자가 생존했던 때로부터 1400-1500년 뒤의 일이다. 만약에 장자가 기독교를 접했다면 어떤 철학자가 되었을까?

그가 말하는 ‘자연관’이, ‘우주관’이, ‘하나님’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결국 진정한 염세주의적 자유는 신을 향한, 신에 의한 자유함으로, ‘천지의 사랑’은 신의 사랑으로 대체될수도 있겠다는 나의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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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로부터온 편지/이정서 | 나의리뷰 2019-12-0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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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저
새움 | 201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번역의 중요성을 알게되었습니다. 책 선정 때 번역자를 보는 것도 중요하군요.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어린왕자에게서 온 편지>라는 제목에서 나는 ‘어린왕자의 뒷이야기’, 혹은 ‘어린왕자 시리즈’쯤으로 알고 이 책을 선택했다.

내 짐작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이건 번역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 이정서의 번역이야기, 혹은 기 출판된 이정서의 번역물, 이를태면 <이방인>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등에 대한 해명 이었다.

또 키워드분류를 하자면 <카뮈로부처 온 편지>와 같은 메타소설이다. 이런류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지라 인터넷검색을 해 봤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메타소설이란, 기존의 소설 양식에 ‘반(反)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20세기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 즉, 소설 속에 소설 제작의 과정 자체를 노출시키는 것인데, 메타소설은 이처럼 소설 창작의 실제를 통하여 소설의 이론을 탐구하는 자의식적 경향의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는 소설의 낡은 관습을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출판사 대표인 작가 자신을 화자로 설정하고 ‘소담’이라는 편집자와의 네이트온을 통한 대화 방식으로 ‘어린왕자’를 번역하는 과정을 엮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기존 번역물들을 주제로 하면서 동시에 다른 번역물까지도 포함한 지적과 반론을 펼친 것이다.

이마주image와 데생dessin의 차이, picture와 drawing의 차이, vous와 tu의 차이, 특히 봉주흐Bonjour와 봉수와Bonsoir의 차이 등. 수 많은 예들이 언급되는데 그 미묘한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뜻으로 번역된다는 것이다.

그 모든 디테일한 설명이 나에게 약간은 지루하기도 하고 어려웠다.

불어와 영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에게 그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직역과 의역에 대한 논란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었는데 직역이 아닌 의역은 왜곡을 낳는다는 우려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의 서술 구조를 지켜 직역하려 애쓰지 않으면, 정말 작가가 고민해 만든 멋진 문장을 촌스럽고 유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 테다.

문학예술은 단지 스토리만을 옮긴다고 해서 원래의 감동이 전달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p.255

‘의역’이라는 이름으로 왜곡시키고 있는게 우리 번역의 현실이고, 또 그것을 옹호하고 있는 게 평론가이며 언론이기도 한 것입이다. -중략- 냉정히 살피면 우리의 고전 소설 번역은 이처럼 아주 조금씩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번역되어 있는 것이 많습니다. p.262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작가 이정서는 기존의 수많은 번역본들의 오류를 짚으며 <이방인>을 새롭게 번역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해서 나도 이정서번역의 <이방인>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어쨌든, 그 어려운 번역의 세계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고 출판계의 살벌한 현실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번역자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 운 것은 책 좀 읽는다고 자부했던 나에게 꼭 필요한 일 이었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옮긴이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 했었다. 오로지 저자만 중요하게 생각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의 말대로 번역이 결코 거기서 거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번역은 다 그게 그걸 거라는 오해도 많이 한다.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역자에 따라 작

품은 천차만별이 된다. 어떤 것은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p.214

지금 이 후로는 책을 선택 할 때 반드시 번역자를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책꽂이에 있던 소담 출판사의 <어린왕자>를 다시 꺼내서 대조 해 가면서 읽었다. 과연 이 책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오고 매끄럽게 읽혀졌다.

책을 읽기 전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만 기대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상식과 책을 고르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그 보다 더 큰 소득이고 유익한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나 같이 번역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책을 선택했던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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