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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폭력. 욕망.잔인성에 환멸을 느끼고 나무가 되고자 하는 여자. | 나의리뷰 2016-06-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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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채식주의자

한강 저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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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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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살기 위해서 다른 어떤 생명체를 먹어야 하는 동물성.  그 동물들의 잔인함. 폭력. 거기에 환멸을 느낀 영혜는 스스로 식물이 되고자 한다. 나무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육식을 거부하고 급기야는" 먹기" 자체를 거부하고 물과 광합성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창가에서 가슴을 풀어헤치고, 또는 병원 뜰에서 나신으로  광합성을 한다.  또 병원 복도에서 물구나무를 선다. 그러면 손에서 뿌리가 내려지고 온몸에서는 푸른 잎이 돋아나고  사타구니를 벌리면 그곳에서 꽃이 활짝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물렸을 때 아버지는 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동네를 돈다. " 다섯 바퀴째 돌자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 줄에 걸린 목에서 피가 흘러. 목이 아파 낑낑대며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 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일곱 바퀴째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중략-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다 먹었어, 들깨 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53p)"  이런 기억 외에 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폭력,  남편의 가부장적인 무언의 폭력. 이러한 기억들은  유난히 연약한 심성을 가진  영혜에게   끝내 소화되지  못하고 자기 파괴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에  대항하지 못하는 유약한 심성들의 피난처는 결국 <자기 파괴>라는 극단적인 선택밖에 없었던가? 그런 영혜의 삶, 아니 유약한 심성들의 삶이  나를  끔찍하도록 슬프게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직무유기다.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자들. 그들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말하겠지. 자기들은 본질에 충실했다고 말할까?. 그럼 남은 사람들,  똑같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같이 보며 살아왔고 지독한 배신에 할 말을 잃고, 아픈 생활고와  싸우며 급기야는 하혈을 하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못하고 6살짜리 아들과 살아가는  영혜의 보호자인 언니, 인혜는?. 그는 자식과 주위 사람들을 돌보며 고독하게 삶과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런  언니는, 위선자란 말인가?. 그들(영혜와 인혜의 남편)이 강 건너편 꿈의 세계로 넘어가  자기 감정에 충실할 때에 이쪽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또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아이들을 지키며 현실을 살아온  그의 엄마는?


세상엔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아픈 상처들을 끌어안고도,  그래도 죽도록 힘든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삶이란 원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자기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유기적인 인간관계의 어쩔 수 없는  의무들이 있기에  죽는 것보다 더 아픈  세월들을 감내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  그런 세상에서 자기만 탈출하겠다고 자기만 아프다고 고함치는 것은 일종의 사치이며 직무유기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고 난 후  불편하다 못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리뷰를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고 다시 쓰고... 끙끙  마음을 앓았다. 아니 실제 몸살로 미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불륜을 합리화하려는 형부. 서로의  나신에 그려진 꽃과 초록의 잎들을 핑계로  자신이 식물이 되었다고  착각을  하는 형부와 영혜. 그들은  덩쿨이 엉키듯  교합하며 정욕을  불태운다.  그렇게 증오하던 <욕망>이라는 것을 그처럼 단순하게 합리화  시키면서 말이다.


육식 거부에 대해서도 그렇다. 식물도 엄연한 생물이다. 그들도 생명이 있고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날마다 전쟁을 한다. 더 많은 햇볕을 받기 위해,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필요한 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그들도 치열한 삶의 전투를 치른다. 다만 그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붉은 피를 흘리지 않을 뿐  그들도 희고 끈적끈적한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도 종족 보존을 위해  최대의 과학적인 방법들을 택하는 등. 심지어는 그들도 영양분을 얻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는 것들도 있다. 그들이  섭취해야 하는 유기물질들은 동물들의 분해물들일 수도 있고   그 분해작업을 하는 무수한 미생물들이다.  그 미생물 또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한 이 대 자연적인 진실 앞에  어찌 육식만이  폭력이라고,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광합성만으로 살아가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영혜는 말한다. 이건 식물에 대한 편견이다. 3살 먹은 아이( 아니 아이들이 오히려 인간이 아닌 자연물에 대한 생명 존중. 자연사랑은 더 풍부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보다도 못한 착각이다.  나무가 되고자  물구나무를 서는 영혜의 편견이 불편하다. 자기중심.  자기만이 세상의 폭력을 거부하는 고고한 존재인 양, 상대적으로 모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선적인, 스스로를 속이는 비겁자라고 비난하는듯한 태도에 화가 난다. 그래서 진정한 위선자. 진정한 폭력자. 진정한 잔인성이란, 유기적인 모든 세상의 자연을 나 몰라라 하고 자기감정에만 지극히 충실해서 스스를 죽여가는 영혜 같은 자가  더 큰 의미에서의 "폭력자"일 것이다..


<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을 보라.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흑인 아줌마 "로자". 그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츄수영소에  강제 수용되었던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는  또 다른  세상 폭력에 의한 산물인 고아들을 위해 자기의 생을 다 바침으로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켰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이란, 진정한 삶의 의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세상이 쓰다고 뱉어 버리고  나만  외면해 버리면 된다는 그런 영혜의 사유는 생에 대한 직무유기, 자기 회피, 삶의 사치, 이기주의다. 그래서 나는 역겹도록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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