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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종말]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만큼 죽는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5-3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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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의 종말

이용범 저
Nomad(노마드) | 2022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죽음'이란 단순 명쾌한 질문은 인간에게 단순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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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신의 종말』은 제목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끌 만큼 강렬하다. '신의 죽음'을 예언하거나, 심지어는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누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유사 이래 신의 죽음을 얘기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혹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어렸을 때 배우기로는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배운 적이 있다. 독자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 무심히 듣고 지나간 말이 엄청난 의미의 학문적 수사임을 안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이 책 『신의 종말』을 통해서다. 니체에 대한 다른 철학서도 조금 읽었지만 '신의 죽음'에 대한 것은 별로 다루지 않은 것 같다.(물론 니체의 저서나 니체를 다룬 책에서 언급되었겠지만 독자의 철학 지식은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신의 존재, 죽음, 부활 등을 모두 포함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부를 배제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종말'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은 죽었다(독어 : Gott ist tot, 영어 : God is dead, The Death of God)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로서,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말로 넓게 인용되는 말이다. 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일체의 절대적 가치가 그 본질적 의미를 잃고 허무해짐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최고 가치의 상실로 인한 허무주의의 도래를 뜻하는 말이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최고 가치의 상실로 이해하고 이로 인해 유럽에 허무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 즉, 비극적 상황 앞에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는 고귀한 정신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즐거운 지식』(Die frohlich Wissenschaft, 1882)의 108장, 125장, 343장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 안에서 가장 저명한 것은 125장의 기술인데, 해당 부분을 발췌하면,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안식을 얻을 것인가?

 

이라 한다. 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년)의 모든 부분은, 함축적 언어로 씌인 『즐거운 지식』(1882년)의 사상을 이은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니체의 말인 '신은 죽었다'는 1960년대가 되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 운동이 번성한 시대의 미국의 신학자들이 사용했다. 미국의 신학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신은 인간에게 리얼한 존재는 아니라는 의미로, 신은 죽었다는 의미로 이용한다. 1957년 미국의 신학자 게이브릴 바하니안은 '신은 죽었다'라고 제목을 붙인 저서를 저술했다. 바니한은 그 중에서 무신론을 미국의 대중의 삶의 방법이라 말하고 있다고 위키백과는 기술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비종교인인 독자가 신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신의 죽음'을 얘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또 어쩌면 기독교 등 종교인들에게 '악마'로 매도될 수 있기 때문에 '신'이라는 단어조차도 함부로 말하긴 어렵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신이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도 “삶도 알지 못하거늘 내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겸손해지기도 하고, “내가 존재할 때 나의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내게 왔을 때 나는 이미 없다”라는 야스퍼스의 말에 순간 묘하게 초연해진 듯 느끼기도 한다. 또한 “신은 스스로에게 죽음을 부여할 수 없다.

인간만이 자살할 수 있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상념이 스치기도 한다. 이처럼 신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는 우리 인간에게 지워진,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러나 한 번은 깊게 생각해봐야 할 철학적이고 영성적인 주제를 종교적 입장에서, 철학적 입장에서, 그리고 과학적 입장에서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폭넓은 지식에 놀랐고, 또한 죽음이나 신에 대한 깊은 사유에 고개를 숙인다. 아울러 저자의 신과 죽음에 대한 접근은 널리 사색한 통찰력마저 느껴지는 자세하고도 일관성 있는 이 책에 감사한다. 독자도 신과 죽음에 대해 많은 사유를 더해야겠다는 각오를 이끌어내고, 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굳건해진 데 대해 다시 감사를 드린다. 이에 따라 독자의 서평은 '평'이 아니라 '부분 감상문'에 그친다는 점을 독자들께 양해를 구한다.

 


 

저자도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기에 그랬을까? 「프롤로그」를 통해 두 개의 죽음에 대한 저자의 느낌만을 단순하게 정리한다. 하나는 어렸을 적 있을 법한 한 아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스스로 경험했던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대해 썼다. "죽음은 잊히는 법이다. 물에 빠져 죽은 그 아이가 불과 며칠 만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깨끗이 지워져 버렸듯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무뎌졌다. 가까운 사람을 땅에 묻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하관(下棺)이었다. 깊이 파인 흙구덩이 속으로 아버지의 시신이 내려질 때 나는 태어난 후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떠난다는 것, 떠나 보낸다는 것, 이 세상과의 단절이 그렇게 애절한 것인지 나는 그때까지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고 썼다. 저자는 이어 "돌이켜보면, 정작 내가 슬퍼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 또는 아버지의 단절이 아니라 당신이 살았던 삶이었다. 평생 아름다운 생을 맛보지 못하고, 지난한 세월 속에 흐린 고통의 흔적만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의 삶이 너무나 가여웠다. 당신이 살았을 인생에 대한 연민과 회한, 나는 그것이 못 견디도록 슬펐다. 어느 무덥던 여름날 기대수명을 모두 채우고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고 언급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만큼 죽는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이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곧 신은 있었지만, 의미를 상실하고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럼 니체가 말하는 그 신이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이란 인간의 무지와 공포심이 만들어낸 허구일까? 아니면 신은 정말 눈에 보이지는 않되 우주를 좌우하고 인간의 모든 삶을 좌우하는 것일까? 신의 존재 유무를 두고 유신론과 무신론 논쟁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시작해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신의 종말』은 “신은 과연 존재할까, 허구일까”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죽음'이란 단순 명쾌한 질문은 인간에게 단순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생각을 거듭해봐도 애매하고 모호하다. 사후세계는 있는가? “사후 세계는 없다!”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생성과 종말,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 신이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신의 종말』에서는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에게는 죽음의 예외란 없다고 단정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만큼 죽는다’는 단순 명쾌한 전제를 놓고 죽음에 이르는 길, 불멸을 꿈꾸는 사람들, 자살 등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들, 영혼의 존재에 대한 증명, 천국과 지옥, 신화와 몽상에 관한 끝없는 담론을 이어간다. 우리 역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결국 죽음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종교와 과학의 세계를 오가며 ‘신의 거처’를 알아본다. 근대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역사를 우위에 놓으려 했다. 그래서 천둥과 번개가 신의 노여움을 나타낸다는 초자연적 현상도 과학이 설명해냈고, 인류 역사의 기원도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현생인류에서 시작되었음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그러나 미래과학이, 우주과학이 그리고 생명과학이, 인류사회학이 인간의 탄생과 죽음, 우주의 생성과 종말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신과 종교를 부정하려던 과학이 알지 못하는 신비의 세계를 더 이상 해결하지 못하자, 인간의 욕망이 다시 종교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했다. 인류의 역사가 종교전쟁의 역사, 살육과 광기의 역사, 혼돈과 혼란의 역사를 만든 것도 과학의 영역에서도 증명하지 못하는 종교와 신의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서였다.

 


 

이 책은 또 과학자들의 대리전을 거쳐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어떻게 이뤄냈는지, 신의 존재 유무를 두고 과학자들은 어떻게 합리적인 도구를 쓰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최첨단 현대 사회에도 종교는 왜 번창하고 있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놀라울 만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다. 운전할 때도 미리 목적지, 통행량, 최단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을 탑재하여 분석해서 나가고, 인터넷 쇼핑을 해도 가격과 성능을 면밀하게 따진 후 구매를 결정하고, 여행을 떠날 때도 미리 교통편이며 숙소를 예약한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은 모두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한다.

지금처럼 똑똑한 인류는 과거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그런데 단 하나, ‘신과 종교’에 대해서만은 합리적이지 않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도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는다. 신과 종교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세계적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수천 개의 종교가 있으며 세계 인구 약 80%가 종교를 갖고 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 인간이 어쩌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신을 향한 갈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도 답을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그 물음을 찾아 신과 종교의 오리진(Origin)을 인용한다. 종교는 어떻게 탄생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믿음이라는 생물학적 유전자를 캐내며 인간의 종말과 신의 종말을 예견한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환상인 유토피아를 찾아내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인간을 보여준다.

 


 

이 책은 5개의 장(章)에 걸쳐 신과 죽음, 영혼과 불멸, 깨달음과 환상, 신화와 복음 등을 다룬다. 이에 종교·과학·생물학·인류학·심리학·유학·문학·의학 등 인류의 학문과 지식 모든 것이 동원된다. 1장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 2장 「영혼의 거처」, 3장 「고르디우스의 매듭」, 4장 「신들의 귀환」, 5장 「종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로 나뉜다. 장은 나뉘었지만 각 장은 서로 연결되며, 전혀 다른 주제가 아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신의 종말』이어서 신과 인간, 그들의 삶과 죽음, 각 학문에서 보는 삶과 죽음의 관계, 의학·심리학에서 보는 영혼과 정신, 또 문학에서 보는 영웅과 인간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죽음' '신' '인간'이라는 명확한 가제에 대한 해답의 문앞까지 다다른 후 저자의 말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만큼 죽는다."이다.

 

저자 : 이용범

 

대전고등학교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5년 제7회『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유형의 아침」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첫 직장이었던 '문예지리'를 2년여만에 그만둔 후 20여 년 동안 출판 및 홍보기획, 카피라이터, 저술활동 등 프리랜서의 길을 걸었다. 수년 전, 경제부처 정책보좌관으로 잠시 있었다. 최근에는 대학원에 다니며 글을 썼다. 현재 성공회대와 동국대에 출강하고 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586세대로서 오랫동안 ‘왜 모두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이러한 의문은 참여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정책보좌관으로 잠시 머무는 동안 ‘시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전작 『인간 딜레마』와 『시장의 신화』는 이러한 탐색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집 『그 겨울의 일지』, 『꿈 없는 날들의 긴 잠』, 장편소설『얼음꽃』, 『열한번째 사과나무』를 펴냈고, 그 외에 『1만년 동안의 화두』, 『사람』, 『인생의 참스승 선비』, 『무소유의 행복』,『불교우화』, 『인간딜레마』, 『시장의 신화: 시장의 탄생』 , 『시장의 신화: 자유주의 신화』,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 『나는 심리학으로 육아한다』, 『인간 딜레마의 모든 것』 등의 책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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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시선 과잉 사회 | 기본 카테고리 2022-05-3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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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조명 중독 사회는 개인의 시야를 절대적으로 확보해서 시선과 프레임의 취사선택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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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 사회]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 기본 카테고리 2022-05-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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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선 과잉 사회

정인규 저
시크릿하우스 | 2022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조명 중독 사회'란 조명이 눈을 대체함으로써 아이콘택트는 사라진 사회 현상을 일컫는다. 지금 우리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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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사람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신체 부위다. 눈은 영혼의 창, 눈이 진심과 교감의 상징을 의미한다. 진심은 내용이 아니라 태도다. 아이콘택트는 무관계로부터의 해방, 사물화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오늘날 진심을 열어주는 아이콘택트는 사라져가고 있다. 사실 아이 콘택트(Eye contact)는 마주한 두 사람이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시선을 일치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서, 서구권의 문화에서 유래하는 관습이다. 눈맞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대화 도중에 다른 사람의 눈을 직접 마주 보는 것은 전통적으로 무례한 행동으로 인식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서구화의 영향으로 그러한 경향이 비교적 완화되었다.

현대의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은 기본적인 규칙으로 간주되고 있다. 90년대 이전 한국이나 일본의 영화에서는 대화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통으로 묘사되곤 하며,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 지역에서 강한 눈맞춤은 상대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되어 긴장을 낳는 경우도 흔하다. 눈맞춤은 소리를 내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다. 주로 구기 종목 등 스포츠 경기시에 눈을 이용한 신호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최근 사회문화적 갈등의 성격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소통의 도구도 다양해지고 일상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간편해졌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단절은 물론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은 제각각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의 등장은 진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수많은 시선만 난무하는 사회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시선의 변화는 무궁무진해졌다. TV 화면 속의 정치인을 보는 시선,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훑는 시선, 유튜브의 댓글 창을 읽는 시선 모두 전에 없던 시선들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 관계망이 확산되고 생활의 면적이 비대하게 넓어짐에 따라 현대인의 시선에는 정리하고 파악하는 시선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환영하는 이 새로운 시선들 사이에서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보다’의 의미는 걷잡을 수 없이 돌변해버린 것이 아닐까?

 


 

이 책 『시선 과잉 사회』의 저자 정인규는 소셜 미디어, 즉 인터넷에 만연해진 디지털 관계가 오히려 관계의 단절은 물론 진실을 왜곡하고 조종하는 문제를 아이콘택트, 시선을 통해 진단한다. 특히 돌연변이 시선, 관음,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등 시선에 관련된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며 함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관계는 곧 아이콘택트를 통해 얻는 ‘우리’라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마주할 때 서로를 책임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해법으로 자신이 안에서부터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관계와 진실. 이 두 개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개념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시선’이다. 저자는 ‘시선’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며, 나 한 사람의 시선에 대한 성찰이 곧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관계와 진실이 시작된다. 저자는 이 책 「프롤로그」를 통해 우선 "TV 화면 속의 정치인을 보는 시선,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훑는 시건, 유튜브의 댓글창을 읽는 시선 모두 전에 없던 시선들"이라고 지적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관계망이 확산되고 생활의 면적이 비대하게 넓어짐에 따라 현대인의 시선에는 정리하고 파악하는 시선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p.6)

 


 

이어 저자는 7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아이콘택트」, 「돌연변이 시선」, 「관음의 보편화」,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눈이 닿지 않는 그곳」까지 시선이 가는 곳은 물론 시선이 가지 않는 곳까지 하나하나 보기를 들어가고 사례와 전문가(철학자, 사회학자 등)의 의견을 함께 분석하며 문제 해결을 제시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아이콘택트를 우리말 '눈맞춤'이나 '시선 맞춤' 정도로 옮겨 적지 않고 외래어 그대로 표기한 것에 대해 독자로서는 다소의 불만이 있다. 그러나 저자의 지식 수준으로 보아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책에 따르면 태초에 아이콘택트가 있었다. 눈과 눈의 만남으로써 인간관계의 광대한 태피스트리를 수놓은 세 가지 시선, 또는 보기가 탄생했다. 첫째는 알아보기다. 아이콘택트 이전의 눈은 세상의 시야를 독점한다. 주체로서의 상대방을 알아보고 객체로서의 자신을 돌아본 두 사람은 서로 마주함으로써 관계를 시작한다. 아이콘택트의 경우,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을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시선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이콘택트에서 오고 가는 시선은 ‘보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관계가 수립된다. 시선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인 본질이다. 그래서 시선과 시선의 접점은 공동체의 시작과 성장을 담고 있다. 아이콘택트에 대한 성찰은 곧 사회의 DNA에 대한 성찰이다. 아이콘택트는 인간과계의 본질이다. 우리의 심연으로부터 서로를 발견하고 발현한다.

 


 

아이콘택트의 부재에 기여하는 데이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데이터의 기억에는 관계성이 결여돼 있다. 데이터는 저장할 뿐이다. 데이터의 시대에는 시야의 한계는 무색해진다. 데이터는 시야의 범위만 확장시키는 게 아니라 시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스마트 폰의 얼굴 인식 기능이 얼굴이 아닌 얼굴의 수치를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수량화되는 오늘 우리의 눈은 데이터를 보도록 훈련받고 있다. 지금은 사람의 데이터를 보는 것이 곧 그 사람을 보는 것으로 간주된다. 데이터의 시대가 낳은 돌연변이 시선은 사람을 인정하기보다는 인식한다.

소셜 미디어, 웹상 프로필에 출신 학교, 직업, 취미, 사진 등이 데이터가 된다. 그는 언제나 인스타그램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그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 존재에 대한 책임, 불안도 느낄 필요가 없다. 우리는 타자를 볼 자유가 없다. 오로지 데이터로만 타자를 접하기 때문이다. 타자는 내 시선의 객체에 불과하다. 소셜 미디어는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관계의 수림이 아니라 정보의 소비다. 아이콘택트에서 존재했던 무궁무진한 관계 발전 가능성은 없고, 끝없는 소비만 남을 뿐이다.

 


 

나아가 아이콘택트의 소실까지 우려한다. 저자에 따르면 2인칭의 소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2인칭에서 시작했다. 아이콘택트가 깨진 이후 네가 나의 시선에서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람과 3인칭으로 먼저 접한 후 2인칭으로 대면하게 된다. 데이터로 그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를 앎의 과정에서 2인칭은 생략된다. 우리는 누구에 대해 이야기할 뿐,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2인칭이 3인칭으로 대체됨에 따라 깊이, 해석, 그리고 성찰은 사라지게 되었다.

2인칭 관계의 불안과 책임을 회피해 스크린 뒤에서 관음하고 관음당하는 것,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신종 사회계약이다. 시선 강간, 음흉한 시선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관음을 원한다. 관음의 성찰은 인간관계의 이해를 위해 중요한 시선, 즉 훔쳐보기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관음은 보는 즐거움이 아니다. 관음의 다른 이름은 훔쳐보기다. 보는 대상의 무언가를 훔치는 시선이다. 모든 훔쳐보기는 기본적으로 보는 대상의 프라이버시를 훔친다. 훔쳐보기를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밀을 지킬 권리, 타자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기회를 빼앗긴다. 훔쳐보기는 금지된 시선이다. 훔쳐보는 이에게 시선을 되돌려줄 수 없다.

디지털 시선에는 흔적이 남긴다. 좋아요, 유튜브 영상, 웹주소, 광고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에 저장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보고 있음이 아닌, 그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유저들은 서로 훔쳐봄으로써 서로를 쓰다듬는다. 이에 따라 저나는 "인간은 훔쳐보기를 실현하기 위해 탈(가면, 주 : 독자)을 발명했다. 탈의 기능은 착용한 사람을 향한 시선의 차단이다. 탈을 쓴 자의 시선은 일방통행을 보장받는다. 아이콘택트를 절단하는 셈이다. 사람 간의 관계 형성에는 상호인지라는 기본 조건, 즉 나를 향한 시선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알아보기의 약속이다. 탈은 그 약속을 거부하고, 인간을 캐릭터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급격히 속도를 낸다. "탈의 시대는 곧 관음의 시대를 뜻한다."며 "현대인의 탈을 쓴 자기 자신의 캐릭터로 전시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디지털 패션은 많이 입으면 입을수록 노출된다. 많은 패션을 걸치고 있을수록 다양한 무리에 소속될수록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타인의 액세서리화, 더 많은 친구와 팔로워를 축적할수록 나는 인맥 부자가 된다. 탈의 패션의 시대에는 왜 지인을 수집하는가. 네트워킹의 규모 자체가 내 자산이자 정체성이 된다. 내가 축적한 지인은 내 존재감의 성장을 과시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그에게 내가 익숙한 정보를 입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좋아요, 클릭, 조회 수로 흔적을 남긴 시선은 그 대상을 더욱 노출시킨다. 시선은 조명이 되어 대상을 밝히고 더 많은 시선, 더 강한 조명을 유도한다. 조명은 인간의 캐릭터화를 가속화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조명 아래의 사람은 정체성의 자유를 잃는다. 따라서 개인은 타인의 시선에 점점 중독된다. 시선이 조명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노출의 목적은 진심이 아니라 관심이다. 진실도 유행을 탄다. 더 많이 보여질수록 더 진실하고 더 존재하는 것이다. 노출은 진실과 존재를 구성하는데, 시선이 그 관계와 진실을 구성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이해에는 박하고 관용에는 관대하다. 2인칭의 부정성이 소실된 가운데 이해는 흡수의 의미로 전락했다. 이물질은 흡수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과는 애초에 교류하지 않는다. 다름은 이해할 필요 없이 무시하면 그만이다. 타자의 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동일자에게 조명을 비춰주고 흡수한다. 소수의 조명으로도 정당한 맥락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는 관용의 벽이 낮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사회는 모든 것을 관용하고자 한다. 조명이 눈을 대체함으로써 아이콘택트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를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과의 소통은 더 이상 그 필요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봐주는 사람의 존재를 압도한다."(p.121~123)는 주장을 덧붙인다.

 

저자 : 정인규

 

1996년생으로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일상언어 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이를 도덕 심리학과 정치철학에 접목하여 인터넷 문화, 프로파간다 등의 주제를 연구했다. 예일대 최고 권위 문예창작상인 월리스상(Wallace Prize)을 수상했다(2020년). 예일대 학부 철학 에세이 공모전 공동 1등(2019년)과 서양 인문학 심화 코스(Directed Studies Program) 철학 에세이 1등(2015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철학자보다는 철학도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나이이기에 젊은 학생의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쓸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가르치는 게 배운 사람의 역할이라면, 아직 배워가는 사람의 역할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의심해보는 게 아닌가? 생활의 편리함이 사유의 수고마저 덜어주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모두가 한 걸음 멈춰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철학의 변혁적 힘과 실천에 대한 열정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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