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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이유를 유럽에서 찾다 | 정치/사회 2009-10-2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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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러피언 드림

제러미 리프킨 저/이원기 역
민음사 | 200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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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살며 함께 꾸는 꿈, 유러피언 드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원초적인 질문에 대답할 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아마도 ‘꿈’이 아닐까 싶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옷가지와 집도 물론 삶에 필수적인 것들이지만 그것들로만 긴 삶을 견딘다면 그것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결코 짧지 않는 시간들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획이나 설계도가 있어야 할 것이고 또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종적인 가치나 목표, 즉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꿈’을 이야기 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꿈, 유럽인들의 꿈……. 한 개인이 가지는 꿈이 그 나라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꿈이 된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혹은 가졌던) 꿈, 유럽(EU)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추구하고 있는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주(註)를 빼더라도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감히 말하건대, 그 누구라도 유러피언 드림에 매료될 것이며 설렐 것이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책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이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 유러피언 드림을 저와 같이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나는 소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함께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물론 전자는 아메리칸 드림이고 후자는 유러피언 드림이다. 이 말보다 더 두 나라의 꿈, 이념, 가치관을 간단하고도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자유를 ‘자율(autonomy)’과 연관 지어 생각했다. 자율적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영역 밖의 상황에 영향 받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산을 가져야 하며,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더욱 독립적이 될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 재산이란 나의 것으로부터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다. 재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고 정복하는 것을 그들은 지극히 합법적이고 마땅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국가란 그저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며 국가의 권력이 시장의 힘보다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처럼 아메리칸 드림은 경제 성장, 개인의 부, 독립을 중시하지만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지속가능한 개발과 삶의 질, 상호 의존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유럽인들은 자유가 자율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음(embeddedness)’으로 인해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롭다는 것을 타인과의 수많은 상호 의존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다. 더 많은 공동체에 소속될수록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진다. 상호 관계에서 포괄성이 생겨나고 포괄성으로 안전성이 보장된다. 유러피언 드림의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성격은 지구 전체의 복리를 좀더 중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보편적 인권을 추구하며 살인, 절도, 거짓말 간통 등 직접적인 나쁜 행위(한 사람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가하는 행위로 그 책임이 비교적 명확한 것들)를 처벌하고 규제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간접적인 나쁜 행위(그 결과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엉뚱하게 나타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고 죄의식도 느낄 수 없으며, 집단적 책임감만으로도 그런 행동을 처벌할 수 없는 것들)에도 도덕적인 규범과 규제를 가한다. 가령, SUV로 인한 지구온난화 가속 현상이나 모 브랜드 운동화의 어린이 노동 착취, 지나친 육류 섭취가 야기하는 제3세계의 빈곤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유럽인은 서로 소통하고 소속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에 자연환경을 미국인들처럼 ‘자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REACH 시스템’(1년에 1톤 이상 제조, 수입되는 화학물질에 대하여 유통량, 유해성 등에 따라 등록, 평가,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정책)이나 과학과 기술 혁신, 시장 · 사회 · 환경에 신상품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규제수단으로 ‘예방원칙’을 도입한 것, 환경에 유해한 검은 수소가 아닌 환경 친화적인 ‘푸른’수소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체제 확립 계획이나 ‘자각적 존재’로서 동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 ‘초(超)국경 평화 공원’ 조성 운동 등이 그것이다. 미국인들에게 땅이란, 나무란, 바다란, 하늘이란 그저 개척하고 개간해 내 터전을 만들고 내 재산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유럽인들에게 자연이란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며 공유하는 것이다. ‘느낌과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동물을 처음 인정한 나라가 EU이며 ‘보편적 인권’을 추구할 가치로 내세운 첫 국가가 EU이다. 인간은 ‘소유’함으로써 존재할 수도 있고 ‘함께 함’으로써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옆에 선 사람을 경쟁자로 바라봐야 하는 것보다 함께 소통하고 나누며 같이 걷는 것이 더 기쁨과 만족을 주고 풍요롭게 해주는 삶이 아닐까? 그런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가슴 벅차 이 책을 읽는 내내 설레고 두근거렸다.


  이 책은 비단 유럽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유럽인들이 꿈꾸는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 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와 같은 것들은 미국인들에게는 과거 그들과 함께 해온 (또 그들이 굳게 믿은) 아메리칸 드림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해주며, 또 나를 비롯한 한국 독자들에게는 한국의 유러피언 드림을 상상하고 꿈꾸며 나아가 그 꿈을 실현가능한 계획과 설계도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준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감옥 속에서 우리나라 국민들 또한 자신이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물을 시간도 없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전투한다. 승자는 더 많은 부와 물질을 얻을 것이지만 패자는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버거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소유인가, 아니면 함께하는 것인가. 모두가 숨 가쁘고 바쁜 일상을 살지만 그래도 우리는 반드시 꼭, 자문(自問)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답에 따라 우리의 미래, 나아가 세계의 미래, 지구의 미래는 정반대의 그림일 수 있다.



서거 직전까지 이 책을 읽으셨고,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을 꼭 써보고 싶다 이야기하셨던 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당신께서 쓰시는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 그 위대하고 원대한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요. 저 또한 꿈을 꿉니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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