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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나를 파괴할 권리는 없으므로 | 일반서적 리뷰 2023-01-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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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파괴되지 않아

박하령 저
책폴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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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든 성폭력은 한 인간의 삶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긴다. 특히 친족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복잡한 이중관계로 더 괴로울 수밖에 없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다. 겨우 용기내어 피해 사실을 알린 뒤에도 다른 가족들에게 미치는 여파로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쉽고, 혹은 피해자가 난도질 당하듯 2차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높다.



“그건 네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어. 넌 망가지지 않았어. 순결을 잃었다고? 그런 표현은 맞지 않아. 넌 물건이나 기계가 아니잖아? 누가 손댔다고 훼손되거나 망가졌다거나 헌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거야. 네 몸의 주인은 너지 상대방이 아니잖아? 넌 불쌍한 사람이 아니야.” 주홍 샘의 말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망가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떠올리자 내 몸 어디론가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정말 잘못된 일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나를 방치하는 행위다. 그러니 잘못된 일을 하나하나 바로잡고자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나는 나를 지키는 파수꾼이니까( p. 222-223).



이 책은 친족 성폭력, 그루밍 성범죄를 당한 소녀 나연의 독백형 소설이다. 성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맞닥들이게 되는 현실들을 10대 피해자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그녀가 겪은 일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상을 전한다. 그럼에도 이는 부끄러운 피해가 아니며, 피해자의 잘못은 어디에도 없고, 그들은 또 강인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는 그 굳은 용기와 응원.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들과 나를 구분해내는 삼인칭의 힘이 그랬고, 자기기만의 쿠션이 그랬다. 특히, 사람들이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동네 후미진 빈터에 꽃을 심어놓았더니 누군가 관리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더라는. 방치된 나라는 공간에 그 꽃을 심는 게 꼭 남일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 해도 된다는 말이 오래토록 남았다. 담담한 독백들을 통해 과거의 상처받은 나를 만나게 될 누군가에게도, 현재 나연과 같은 시기를 지나는 누군가에게도 희망과 위로, 용기가 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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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자립, 보통의 청춘! | 동화/그림책 리뷰 2023-01-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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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안녕, 열여덟 어른

김성식 저
파지트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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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부모님은 아이가 매우 어릴 때 이혼을 했고 부모 중 한 분은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아이의 현재 거처는 보육원이었다. 남은 부모가 아이를 보육원에 보낸 것이었다. 생계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를 키우기 불편하고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여전히 궁금하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 잠깐, 이 아이에게 그 어느 쪽 부모님도 아예 계시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10대가 되어 부모님께 버림 받은 셈이었다. 고아가 아님에도, 보살펴 줄 여건이 되는 부모가 있음에도 보육원에서 생활할 수 있음을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다. 그 당시 아이는 보육원 퇴소를 1년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




만 18세가 되면 아동복지시설을 나와 자립을 해야 하는 아이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고 한다. 퇴소를 할 때 자립금을 지급하지만 글쎄, 단지 돈을 지급하는 것이 능사일까? 의문스러웠다. 외국의 다양한 지원제도들을 보고 있자니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실질적인 자립지원 프로세스를 갖추기 위해서는 여전히 바뀌어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부터 그들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 속이 녹아있을 편견과 미디어가 쌓아올린 그들에 대한 거짓 허물을, 비난을, 부정적 그림자를 벗겨야 한다. 아이에게 가정폭력을 행하는 한 성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흔히 우리는 이 성인이 과거에 가정폭력에 노출되었을 거라 쉽게 생각한다. 결론은 이렇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성인들 중 일부는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반대의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거에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다고 해서 그 모든 아이들이 자라 좋지 않은 행위를 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에는 ‘탄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과거에 그 어떤 부정적 상황에 노출이 되었든 우리 인간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실제로 어린시절 가정폭력에 노출되었어도 누구보다 건실하고 반듯하게 성장한 어른이 훨-씬 더 많다!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해, 그들의 과거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그들의 미래를 재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는 성공하거나 모범적으로 자랐기 때문이 아니다. 마침표를 찍지 못했더라도 그 시간을 견뎌내고 고통에 아파했던 모든 것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내가 자립준비청년들의 삶 안에서 감동을 느낀 이유는, 인간으로서 진실되게 살아난 이들의 삶 자체가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p. 167)]




자립준비청년들의 성공 모델을 지양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보통의 청춘’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그들이 보통의 다른 청년과 다를 게 무엇인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부터 그들에게 나름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우리다. 제각기 다른 형태의 가정이 있듯 그들도 보육원이라는 형태의 가정에서 양육 받았고,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과정을 겪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청년들은 그런 과정을 겪는다. 그렇게 바라보면, 자립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시각과 고민, 답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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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을 비추는 큰 호수같은 회고록 | 일반서적 리뷰 2023-01-2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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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길을 묻다

이길여,김충식 저
샘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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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네 쌍둥이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쌍둥이에 내용이 집중되어 있었던 터라, 병원비를 받지 않았던 은혜를 잊지 않고 성장하여 그 병원으로 다시 취직했다는 이야기가 주요 골자였다. 그런데 병원비를 받지 않고 퇴원시킨데다 아이들을 키워 자신에게 다시 보내달라고, 그리고 정말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은 물론 졸업 후 자신의 병원에 취직시켜준 그 의사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이길여 총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연달아 읽은 뒤라 이길여 총장님의 유년시절이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두 분이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 시대, ‘순수하게’ 공부를 했다던 그 열정들이 뜨거웠다. ‘환자에 미쳐’있었던 의사로서의 그녀는 누구보다 반짝였다. 품에 넣어다녔던 따뜻한 청진기, 보증금 없는 병원, 무료 경부암 진료 … 그 모든 새롭고 참신한 그녀만의 진료철학은 모두 환자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뿐이랴. 산부인과 개업의에서 그치지 않고 의료법인 및 문화재단 설립, 새생명찾아주기 운동 본부 발족, 개발도상국 어린이 심장병 무료 치료, 4개 대학을 통합한 가천대 출범, 인공지능암센터 개소 등 간단히 정리하기도 힘든 많은 업적들을 이루어냈다. 이 모든 발자취마다 ‘일단 하자’ ‘당장 내일’이라는 그녀의 불도저같은 추진력도 늘 함께였다. 여전히 활기찬 에너지와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녀는 진정 따라잡을 수 있는 저 세상의 사람인 것만 같다.



{그 때의 제 상태를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아무도 없는 8차선 고속 도로를 저 혼자 벤츠를 타고 최고 속도로 막 달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도로 한복판에 커다란 바윗덩이가 터억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나 자신이 보이는 겁니다. ‘어? 지금까지 내가 뭐 했지?’ ‘나는 지금 뭐지?’ ‘앞으로 나는 뭐가 되지?’ 이런 생각을요(234p).}
그런 그녀에게도 막연한 허무와 우울이 밀려오던 시기가 있었다. 나 역시 33살 가을, 덜컥 그런 우울의 늪에 빠진 적이 있었던지라 더욱 눈이 갔다. 그녀는 그 시절, 사흘 밤낮을 안 자고 안 먹고 골똘히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몰두하며 화두를 좇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는 법이라고. 1973년, 그녀는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이미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왔고, 개원한 산부인과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단지 성공한 한 여성의 단편적인 모습이나 성공 비결 같은 것들보다 ‘이길여’ 한 사람의, 여성의, 친구의, 딸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두께가 제법 나가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소설, 에세이, 긴 일기를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2년 간 이어진 대담을 구성하고 이끌어간 김충식님의 능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윤은기 박사가 실력, 담력, 매력을 골고루 갖추었다고 한 이길여 총장의 실력과 담력은 답을 보여준 것 같은데 매력에 관해서는 충분한 답을 내지 못했다는 김충식님의 말이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다. 글쎄,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이 책 한 권 전반에 이미 그녀의 매력이 짙게 깔려있지 않은가. 길고도 먼 여정, 한 사람의 생을 오롯이 담아낸 큰 호수같은 회고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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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 동화/그림책 리뷰 2023-01-1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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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티커 컬러링 : 랜드마크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과놀이콘텐츠랩 저
북센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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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면서 집에 걸어둔 모든 그림 액자는 diy 유화그리기로 대체했다. 칸 별로 지정된 색상을 하나하나 칠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멋진 작품이 된다. 유화컬러링에 가깝지만 완성품은 마치 내가 혼자 그린듯 멋스러워 애착이 크다.


그런데 스티커로도 컬러링을 할 수 있다니. 메리트가 엄청나다. 잘못 붙이면 떼어서 다시 붙일 수도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명소들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밤마다 스티커 아트를 했다. 작품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찾은 작은 팁이 있다면,


1. 아트용 집게는 필수. 끝이 꺾인 것이 더 편하다.
2. 바깥 테두리부터 먼저 붙이면 깔끔하다.
(번호순 정렬 아님. 테두리 기준으로 찾자)
3. 잘못 붙여도 괜찮다. 떼어내서 붙일 수 있다.
4. 쉽게 뜯어지는 구조. 한 장씩 뜯어 완성하자.


장 수가 적어 못내 아쉬웠다. 더 많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홀쭉해진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니 서운하기까지 했다. 손으로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늘, 내게 많은 에너지를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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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소설의 보석들 | 일반서적 리뷰 2023-0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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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2022 제16회

김세화,한새마,박상민,김유철,홍정기,정혁용,박소해 저
나비클럽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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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편이지만 20대 후반부터 임신 때까지 유독 소설을 읽을 때마다 먼저 손이 가는 책들이 있었다. 범죄, 스릴러, 추리, 트릭, 미스터리, 반전 같은 것들이 메인 테마였다. 임신 기간에도 스릴러물과 그레이 아나토미(이건 병원물이라고 해야할까?)로 태교를 했다. 평소 엄마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고 해서 진짜 좋아하는 책들을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쌓아두고 읽으며 막달을 지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외국의 추리물에 젖어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에도 분명 좋은 작가님들과 작품들이 있을텐데 왜?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는 1985년부터 국내 유일의 추리 소설상을 수여하고 있다. 대상, 신인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예상, 단편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황금펜상. 찾아보니 황금펜상 수상 작품들을 묶어둔 책도 있다. 2022년, 제 16회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 따끈따끈한 작품들과 함께 이 책이 내게 왔다.

 


수상작 <그날, 무대 위에서(김세화)>를 비롯, 6편의 우수작 <마더 머더 쇼크(한새마)>, <무고한 표적(박상민)>, <산(김유철)>, <무구한 살의(홍정기)>,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소녀(정혁용)>, <겨울이 없는 나라(박소해)>가 차례로 실려 있다. 그 중 내 최애 작품은 한새마 작가님의 마더 머더 쇼크였다. 마더 편에서는 주인공의 정신에 내가 지배당한 것 같은 기분에 현실 감각이 떨어졌고, 머더 편에서는 그럼 그렇지- 싶던 내 고개가 기웃? 돌아갔고, 쇼크 편에서 시원하지만 찝찝하게 드러나는 전말에 입 안이 썼다. 다른 모든 작품들도 짧지만 임팩트 있는 서사들로 추리물이란 이런 거야! 싶은 쾌감을 느끼게 했다. 외국 추리물은 아무래도 번역이나 문화 차이 등으로 읽는 동안 한 겹의 포장지가 씌여 있는 기분이었는데 한국 추리물은 날 것을 그대로 흡수하는 기분이라 신선했다. 모두 하나같이 보석같은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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