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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 독서일기 2018-05-1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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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저/황가한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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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살 소년 모미크에게 이상한 할아버지가 생깁니다. 할아버지는 헤엄치듯 팔을 허우적대고 멍한 눈동자로 혼잣말을 합니다. 귀가 멀어버린 듯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남의 말을 듣지 못하시고요. 게다가, 이 안셸 할아버지는 ‘역사에서 이름을 지워 버려야 마땅한’ 나치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모미크의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은 정상인 사람이 드물 정도입니다. 악몽을 꾸고, 이상한 행동과 이상한 말을 하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길거리에서 날뛰기도 합니다. 이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모미크가 아는 모든 어른처럼 그녀 역시 ‘저 멀리’에서 왔음을 잊지 말라. 너무 많이 언급하면 안 되는 곳,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면서 그들이 늘 그러듯 오이이이 하고 긴 크레흐츠(한숨)를 내뱉어야 하는 곳 말이다. 하지만 벨라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달랐으므로 모미크는 그녀에게서 그곳에 대한 정말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원래 어떤 비밀도 누설해선 안 됐지만 자신의 부모님이 ‘저 멀리’에서 살았던 곳에 대한 단서 몇 개를 흘렸고 모미크에게 ‘나치 짐승’에 대해 처음 말해 준 사람 역시 벨라였다.

 사실 처음엔 벨라가 상상의 동물이나 한때 실존했던 거대한 공룡처럼 요즘 사람들이 누구나 무서워하는 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아무한테도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새 할아버지가 나타나고, 엄마 아빠가 밤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고, 상황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모미크는 다시 한번 벨라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세상에는,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아홉 살짜리 꼬마가 아직 몰라도 되는 것들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p.26)


 모미크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저 멀리’에 대해, 그리고 ‘나치 짐승’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나치 짐승’이 공룡 같은 짐승인지, 어떤 종류의 동물인지요. 모미크는 공룡 같은 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거든요. 그나마 몇 마디라도 해주는 벨라는 모미크에게, 제대로 돌보고 보살피기만 한다면 어떤 동물도 나치 짐승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해줍니다. 모미크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안셸 할아버지를 공포와 침묵과 한숨과 저주에서 구하기 위해 암호를 풀기 시작합니다. 마을 어른들이 무신경하게 늘어놓는 암호와 같은 단어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기록합니다. 아빠와 벨라, 이드카 아주머니와 안셸 할아버지의 팔에 새겨져 있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이상한 숫자 암호를 푸는 것도 시도해봅니다.


 모미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공공 도서관에 회원으로 가입했고―부모님은 그가 도서관 두 개의 회원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오후에 18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서 도서관에 있는 관련 책을 전부 읽곤 했다. 도서관에 “홀로코스트와 용기”라는 푯말이 붙은 커다란 선반이 있어서 모미크는 그 선반에 있는 책을 차례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읽었고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자기가 이해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모미크는 『운명의 수수께끼』, 『안네의 일기』, 『오늘 밤만 머물게 해줘, 페이펠』, 『인형들의 집』, 『삼십자 광장의 담배 장수들』을 비롯한 많은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가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늘 예감했던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그와 비슷했다. 그들은 집에서 부모님과 얘기할 때 이디시어를 사용했고 그 사실을 감출 필요가 없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역시 ‘짐승’과 싸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p.112)


 몇몇 이상한 사진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무엇이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사진들이 모두가 그에게 감추려 했던 비밀의 첫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본 것은 두 아이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누굴 남기고 누굴 보낼지 선택하라고 강요당하는 부모의 사진이었다. 모미크는 그들이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선택할까 추측하려고 애썼다. 그 밖에도 군인이 어떤 노인에게 다른 노인을 말처럼 타라고 강요하는 사진, 그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여러 가지 방식의 처형 장면들, 수많은 시체가 이상한 자세로 누워 있는―서로 포개져 있거나 누군가의 발이 다른 사람 얼굴 위에 놓여 있거나 그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각도로 목이 돌아가 있는―무덤들의 사진을 보았다. 그렇게 모미크는 조금씩 새로운 것들을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p.113)


 어른들이 제대로 말해주지 않자, 모미크는 결국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그나마 몇 마디라도 해주는 벨라에게 물어보기도 하고요. 고작 아홉살짜리가 이렇게 끔찍한 것들을 알게 되다니, 충격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홉살이라는 나이는 역시 이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가봅니다.


 이제 모미크도 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됐고 ‘짐승’이 고슴도치나 어떤 불쌍한 고양이나 까마귀한테서 튀어나올 거라고 믿는, 아홉 살하고 4분의 1짜리 바보 꼬마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었다. 그는 ‘짐승’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녀석이 나타날 수 있었는지는 그로서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것만큼은 명백했다. ‘짐승’은 분명 존재했다. 그는 벨라가 비 올 때를 미리 아는 것처럼 그 사실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명백한 것은 어리석게도 녀석을 긴 잠에서 깨운 자, 어서 나타나라고 자극한 자가 모미크라는 사실이었다. (p.115)


 모미크가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녀석을 긴 잠에서 깨운 자”가 모미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니요. 결국 모미크는 이 ‘짐승’을 깨우기 위해 엄청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See Under : LOVE)』는 제목만 봐서는 아름다운 소설인 것 같은데요, 내용을 읽어보면 무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섭지요. 많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소설들과는 다르게, 피해자의 입장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가해자의 입장도 나옵니다. 700쪽이 넘는 엄청난 양, 여기저기 등장하는 이디시어 단어들, 많은 사람들, 사실과 환상의 뒤섞임, 독특한 구성 등에 의해 읽기 쉬운 소설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강렬하고 압도적인 소설이라, 완독에 성공한다면 아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작품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구의 신인 작가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하는 최고의 방법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도 하지요. 홀로코스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지금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이 순간에도 새로 등장하는 홀로코스트 문학들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1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데요, 가자지구 공습 등 굉장히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팔레스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등 논란이 될 만한 말과 행동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국내외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이 점점 심해지고 있고, 심지어 할리웃 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유대인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네시스상 수상을 거부합니다. "이스라엘은 정확히 70년 전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난민들의 피난처로서 세워졌다. 그러나 오늘날 잔혹 행위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학대는 나의 유대인 가치와 맞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고 하네요. (링크) 참고로 이 책의 작가 다비스 그로스만 역시 이스라엘 정부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쉼 없이 내고 있는 평화 운동가입니다.


 아픈 역사는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생각하면서 배워야 그 배움으로부터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등을 댑니다. 과연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홀로코스트 문학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걸까요? 자기복제에 머무르며 자신들만의 비극을 강조하고, 역사도 되지 못하는 다른 비극들에는 관심도 없고, 심지어는 새로운 비극을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나요? 과거를 계속 상기시키는 것을 넘어서, 다시는 자신들이 겪은 것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텐데 과연 세상은 그렇게 올바르게 가고 있는 걸까요? 소설을 읽으며 공감하고 분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이 세계의 이 상황에서는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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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이 되어줘 | 독서일기 2018-05-0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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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칼이 되어줘

다비드 그로스만 저/김진석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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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모릅니다. 지금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나 역시 나 자신을 잘 알진 못해요. 편지는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이틀 동안 애를 썼는데 이젠 결심이 꺾이고 말았군요. (p.11)


 이렇게 시작되는 이 소설은, 앞에서 알 수 있듯이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그런데, 첫 문장이 ‘당신은 나를 모릅니다’입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쓴 편지인 것이지요.


 이 편지를 쓴 야이르는 동창회에서 처음 보고 첫눈에 반한 미리엄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동창회에서 야이르는 미리엄과 함께 그 남편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도 함께 보았죠. 그런데도 편지를 씁니다. 뭐, 그럴 수야 있겠지요. 그런데 이 편지의 내용은, 틀림없이 사랑을 담은 편지입니다. 연애편지라 하면 저도 꽤 써보았는데요, 야이르의 편지는 단순한 연애편지의 수준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때로는 광기까지도 보이는 그런 편지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모든 단어에 철자가 너무 많고,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모든 걸 한꺼번에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치 누군가가 내 펜촉 위에 앉아 히브리어를 프랑스어로 옮겨 쓰는 느낌이에요. 설명을 한다는 것이, 감정을 억지로 말로 풀어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어요. (…) 나로선 구구절절한 설명 따위는 훌쩍 건너뛰고 나의 모든 걸 당신이 즉시 알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나를,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런 당신 속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가 눈을 떴을 때, 당신이 미소 지으며 “좋아요, 걱정 말고 시작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어요. (p.13)


 첫 편지를 보낸 후 미리엄에게 답장이 오자 기뻐서 쓴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동창회에서 첫눈에 반한 후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아 기뻐서 쓴 두번째 편지인데요, 아직은 알아간다고 할 수도 없는 단계인 것 같은데 편지의 밀도가 이렇습니다. 어마어마하지요. 편지들 위에는 모두 편지를 쓴 날짜가 쓰여 있는데요, 하루에 세 통씩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쓴 건 더 많다고 합니다.


또다시 나예요. 이제 곧 자정이고, 이게 오늘의 세 번째 편지로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오늘 보내지 않은 편지가 몇 통이나 되는지 당신은 짐작도 못 할 테니. (p.17)


 편지든 뭐든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보낸 것만 세 통이고 실제로 쓴 건 훨씬 많다니. 하루 종일 미리엄만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지요? 그리고 이 편지에서, 바로 책의 제목이 등장합니다. Be My Knife.


난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해요. “난 그녀와 함께 진실을 피처럼 흘렸다”라고. 그래요,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거예요. 나의 칼이 되어주세요. 그럼 맹세코 나도 당신의 칼이 되어줄게요. 예리하지만 연민이 깃든, 내 것이 아닌 당신의 단어들로요. 그토록 섬세하고 부드러운 어투와, 껍질마저 벗어버린 것 같은 말이 세상에 허락된 줄 난 미처 몰랐거든요. (p.19)


 그런데 몇 통의 편지를 더 주고받은 후, 야이르의 편지에서 “아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야이르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던 것입니다. 대체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일까요?


 야이르의 편지들을 쭉 읽어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밀도가 높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정말 많은 내용과 감정을 담고 있어서 보통 글을 읽는 속도로 읽으면 너무 많은 것들이 쏟아졌고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상과 현실이 완전히 뒤섞여 있어서 제대로 읽지 않으면 무엇이 야이르의 상상이고 무엇이 그의 현실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야이르와 미리엄은 이러한 편지를 4월 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주고받는데, 10월 13일의 편지로 야이르는 미리엄에게 보내는 편지를 스스로 끝냅니다.


 1부에서 독자들은 야이르의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편지만 볼 수 있을 뿐, 미리엄의 편지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이르의 답장과 그 답장에 언급된 몇몇의 문장만으로 미리엄에 대해서 파악할 수가 있죠. 하지만 2부에서는 드디어 미리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야이르가 미리엄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미리엄이 쓴 일기가 바로 2부입니다. 1부에서는 알 수 없었던 미리엄의 야이르에 대한 감정과, 미리엄의 상황이 드러납니다. 미리엄은 야이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마야와의 삶이 매우 안정되고 확고하다며, “너무 큰 새로운 요소(이를 테면, 나 자신 같은)를 더한다는 건 불가능해요”라고 당신이 (주방에서) 썼던 편지를 꺼내왔어요.

이 편지를 앞에 놓고 들여다보니 아주 명확해지네요. 야이르, 당신의 삶이 정말 그렇게 안정되고 그렇게 확고한 까닭에 당신은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을 거예요.

당신 인생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죠. 이 사실을 진작 받아들였어야 했어요. 당신이 나를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한들, 당신의 ‘현실’에 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았을 테죠. (p.366)


당신은 어떻게 내 삶에 들어왔죠? 난 어쩜 그리도 무방비 상태였을까요? 창을 통해 들어온 것도 아니잖아요. 갈라진 틈 정도의 작은 입구로 그렇게 들어와서 내 마음을 관통했죠. (p.372)


 미리엄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있죠. 그렇게 미리엄의 일상과 감정을 담은 일기인 듯 편지인 듯 뒤섞인 글들이 끝난 후, 3부에서는 드디어 둘이 통화를 합니다. 통화 내용과 각자의 감정이 또 뒤섞여서 서술되어 있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이 둘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야이르는 처음에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할 때, "우리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린 파멸하고 말 거예요"라고까지 했었는데 말이죠.


 야이르와 미리엄의 사랑, 야이르와 마야의 사랑, 미리엄과 아모스의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하나이지만, 실제로 사랑이란 것은 정말 다양한 형태이지요.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이란 뭔가 하는 질문과 함께,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이 관계가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소설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읽는 것이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으면서도 야이르의 다채로운 표현(!)들에 감탄할 수 있고 읽은 후에도 많은 생각을 남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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