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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터리어스 RBG | 독서일기 2020-01-0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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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터리어스 RBG

아이린 카먼,셔나 크니즈닉 공저/정태영 역
글항아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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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연말이 되면 우리는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해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합니다. 회고와 새해 계획은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할 수 있지만 특히 제게는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새해에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온갖 서점과 언론사가 앞다투어 '올해의 책'을 선정하기 때문에 내가 놓친 좋은 책이 없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고요. 아무튼 2019년에도 저는 좋은 책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9년에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 가장 의미가 있는 책을 골랐습니다. 바로 아이린 카먼과 셔나 크니즈닉의 『노터리어스 RBG』입니다. 저자도 제목도 생소하고, 표지도 영 끌리지 않죠? 심지어 2019년에 출간된 책도 아니고, 무려 2016년에 나온 책입니다. 대체 이 책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제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두 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와 <세상을 바꾼 변호인> 덕분입니다. 『노터리어스 RBG』와 이 두 편의 영화 모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죠. 그게 대체 누구냐고요? 그는 1933년에 태어난 미국인이며, 빌 클린턴에 의해 연방 대법관으로 지명된 1993년 8월 이래로 지금까지 연방 대법관으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두 번째로 임명된 여성 연방 대법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연방 대법관이 대체 뭐길래, 이 사람을 다룬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하고 책도 나왔을까요?


 우선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미국 연방 대법원은 미국 최고의 사법 기관으로 사법부를 총괄합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하네요. 대법원장과 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법관은 대통령에 의해서 지명되지요. 또한 대법관은 사망, 사직, 은퇴, 탄핵에 의해서만 물러나는 종신직이기도 합니다. 연방 대법원에서는 보통 1년에 100여 건 정도의 아주 적은 재판만이 이뤄지는 만큼, 미국 내에서 정말 중요하고 큰 재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미란다 원칙'도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서 나왔으며 인종 차별, 낙태, 총기 소유, 동성결혼 등 정말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는, 그야말로 미국의 역사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이제 미국 연방 대법원의 중요성은 알겠는데, 연방 대법관은 무려 9명이나 됩니다. 대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어떤 사람이길래 그중에서도 이렇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미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설적인 래퍼 노터리어스 BIG(Notorious BIG)의 이름을 딴 노터리어스 RBG로 불리며 SNS를 달구게 되었을까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50년에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여학생들은 의사나 판사와 결혼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만점 성적표를 받던 긴즈버그는 코넬대에 입학했고,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 엄마를 자궁경부암으로 잃습니다. 그 이후 긴즈버그는 엄마의 가르침, 언제나 독립적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갑니다. 엄마가 어렵게 모아 남겨주신 8,000달러 정도의 학자금과 함께요. 코넬대에 다니면서 그는 변호사를 꿈꾸게 되었고 결국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으며, 마틴 긴즈버그와 결혼했습니다. 마틴 긴즈버그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코넬대 및 하버드 로스쿨 1년 선배였으며 평생 그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존재가 됩니다.


 긴즈버그가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던 그해의 신입생 중 여학생은 총 9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하버드 로스쿨의 원장이던 어윈 그리스올드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성인 여러분들이 남성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이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판결문 확인을 위해 도서관에 들어가려던 긴즈버그를 경비원이 가로막았습니다. 여성은 출입할 수 없다면서요. 로스쿨 본관에는 여자 화장실이 아예 없었고, 몇몇 동기 여학생은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혼삿길이 막힐까봐 걱정해야 했습니다. 긴즈버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연구원이 될 수 없었고, 로펌에도 고용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어렵게 커리어를 시작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이후 컬럼비아대를 거쳐 럿거스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합니다. 물론 여자라는 이유로 형편없는 봉급을 받아야 했고요. 하지만 점차 변호사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특히 성차별적인 법에 관한 소송을 많이 맡았고, 성차별이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칸 대 셰핀, 와인버거 대 비젠펠트, 칼리파노 대 골드파브 사건은 모두 차별적인 연방법 및 주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남성을 대변한 경우입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서 다룬 모리츠 대 국세청 사건 역시 성차별적 제도로 피해를 입은 남성을 대변한 경우였고요.


 결국 1993년 긴즈버그는 빌 클린턴에 의해 지명되어 연방 대법관이 됩니다. 하지만 연방 대법관이 되었다고 해서 만사가 잘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다수결로 이뤄지기 때문에, 내부에서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언제나 차별받는 편에 섰고, 때로는 거침없이 소수의견을 낭독하며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살펴보자면, 바로 셸비 카운티 대 홀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꽤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판결의 핵심 쟁점은 투표권법 핵심 조항의 위헌 여부였는데요, 여기서 투표권법은 투표에서 인종이나 피부색을 근거로 차별을 둘 수 없도록 선거 제한을 엄격하게 금지한 법입니다. 그리고 이 판결에서 위헌 결정이 난 제4조는 주 정부가 선거법 개정 시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제 5조가 적용되는 지역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조항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너무 어렵죠.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 판결로 인해 인종차별이 심한 주의 정부가 연방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특정 인종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고) 실제로 이 판결 이후 여러 주에서 법을 고쳐 투표 참여를 어렵게 만들었고, 이로 인한 피해는 유색인종과 빈곤층에게 쏠리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암담한 일이지요. 이 판결에서 긴즈버그는 다음과 같은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수많은 증거가 퇴보를 예견한 의회의 전망이 사실임을 보여주었다. 차별적인 변화를 막는 데 효험을 보였고, 지금도 그러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 승인 제도를 폐기한다는 것은 폭풍우 속에서도 젖지 않을 것이라며 우산을 내동댕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p.191-192)


 이렇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자신의 일생 내내 차별과 맞서 싸웠고, 소수의견을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실제로 세상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힘이 많이 났고, 저 또한 제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금이라도 세상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제게 2019년 최고의 책은 바로 이 책입니다. 책의 내용도 참 좋지만 디자인이나 만듦새도 훌륭해서, 소장 가치도 정말 높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의 가치를 알아봐 주신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또한 밝은 눈으로 이 책을 알아보고 2016년에 출간한, 언제나 좋은 책을 내는 글항아리 출판사에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올해에도 저 역시 좋은 출판사들의 정성 가득한 책을 더 많이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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