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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투 마우스 | 독서일기 2020-02-2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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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핸드 투 마우스

린다 티라도 저/김민수 역
클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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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파괴적 행동을 하는 걸까요'

 일터에서 유독 피곤한 하루를 마친 어느 날, 자주 가던 온라인 게시판을 보며 휴식을 취하던 내 눈에 들어온 질문이었다. 내가 이제껏 보아온 것들, 그리고 가난이라는 것이 주는 무게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정도는 설명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17)


 이번에 읽은 책, 『핸드 투 마우스』는 바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저 질문,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파괴적 행동을 하는 걸까요' 덕분에요.


 저 질문이 암시하는 의견과 글을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 공부도 안 하고 저축도 안 하고…… 비싼 이자를 내면서 돈을 빌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비싼 식품을 사고 비싼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쩌다 돈이 들어와도 다 써버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 불평은 많으면서 투표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자를 위해 투표한다' 등등…….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할 만한 행동을 해서 가난한 걸까요?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가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는 요리할 줄 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가사 과목을 이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브로콜리는 위협적인 채소이다. 요리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가스레인지와 냄비와 양념이 있어야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설거지는 꼭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벌레가 끼니까.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것은 완전히 새롭고 대단한 기술이다. 서글프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혹 요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가족들이 배를 앓을 수도 있다. 중간계급이 되기 위해서 너무 열심히 애쓰는 짓 따위 안 하는 게 좋다는 걸 우리는 배웠다. 결과가 좋은 경우는 결코 없으며 노력했는데 또 실패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 나쁘니까. 그러니 노력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은 것이다. 입맛에 맞는, 저렴하고 보관이 쉬운 음식을 사는 게 더 타당하다. 정크푸드는 우리에게 허락된 쾌락이다. 왜 우리가 그 쾌락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즐거움이란 애초에 거의 없는 우리인데 말이다. (p.19-20)


 나는 흡연자다. 담배는 비싸다. 또한 내게 주어진 최상의 선택이다. 무슨 뜻이냐고? 알다시피 나는 언제나 ― 그렇다, 언제나 ― 기진맥진해 있다. 담배는 자극제다. 한 발짝도 더 딛지 못할 만큼 피곤할 때 담배를 피우면 한 시간은 더 버틸 수 있다. 분노가 치솟고 사람들에게 시달려 극도로 기분이 저조하고 더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때 담배를 피우면 아주 잠시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흡연은 내게 허용된 유일한 긴장해소법이다. 현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쓰러지거나 폭발하는 것을 막아주는 단 하나뿐인 대책이다. 다른 대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p.23)


 나는 재정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많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어차피 내가 가난하지 않을 일이 결코 없는데 이번 주에 내가 한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 반에 대한 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될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희생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훗날 비싼 것 하나를 사기 위해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져버린 황폐한 삶을 살아야 하는 그런 삶은 내게 가치 없다. 내게는 앞으로 기대하고 바랄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 따위는 결코 없다. 그래서 호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별것 아닌 인생이지만 조금이라도 즐기자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큼 책임감이 강하든 어차피 3일 후면 돈이 다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돈을 충분히 가질 일이 전혀 없다면 돈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돈이 많아도 마찬가지일 것 같기는 하지만. (p.23-24)


 책을 읽으면 바로 느낄 수 있지만, 저자는 처한 상황에 비해 똑똑하고 교육도 잘 받았으며 종종 운도 따르는 편이었습니다. 이 책을 내기 전까지도 말이에요. 그럼에도 저자의 삶은 늘 고단했고, 온갖 스트레스가 들러붙었고, 불합리한 일 투성이였습니다. 해고는 일상이었고, 부유한 고객들은 진상을 부려댔고, 투잡을 뛰면서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월세를 내고 들어간 집은 집주인이 굳이 비용을 들여 관리하지 않아 배수관이 막혀 침수되었고, 이에 대해 환경위생과와 언론에 연락해봤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한 해에 푸드스탬프로 몇천 달러를 받는 것이 기업 구제금으로 몇조 달러를 받는 것과 어째서 신기할 만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 2013년에 푸드스탬프에 764억 달러가 쓰인 반면, 은행에는 수조 달러가, 아마도 수백 번은 쓰였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 상류층에게 주는 공짜 혜택의 '한 가지' 예일 뿐이다. 연방 정부가 은행에는 현금을 건네고 다른 부자들한테는 야생지대에서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두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p.129)


 나는 단정하게 보관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갖고 있다. 언제나 그렇다. 돈 없이 살아본 사람은 나의 이 상황에 공감할 수 있다. 뭔가가 언젠가는 필요할지 모르는데 그때는 살 돈이 없을지 누가 아는가. 그래서 미래에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은 일단 보관해놓고 버린 적이 거의 없다. 얼룩진 셔츠는 내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 가구광택제와 청소 의욕이 동시에 생긴다면, 걸레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낡아빠져서 못 입는 티셔츠들은 쌓아놓았다가 우리 애들이 아기일 때 기저귀로 아주 잘 썼다. 망가진 커피메이커 두 대를 분해해서 작동하는 커피메이커 한 대를 만든 적도 있었다. 부속이 하나라도 작동하면 절대 버리지 않는다. 그 부속이 필요한 날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18)


 린다 티라도는 이 책 내내, 가난한 사람들이 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역설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시스템이 약자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수많은 책임들을 그들에게 전가하는지도요. 그래서 이 책을 읽는다고 뭐가 좀 바뀌냐고요? 글쎄요, 제가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회의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저도 여전히 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통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오만을 깨달을지 모르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이,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본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더 널리 읽혀 이 사회에 또 하나의 중요한 목소리로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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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의 삶 | 독서일기 2020-02-2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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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저/토레 D. 한젠 편/박종대 역
열린책들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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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나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3년간 일했던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읽기 전까지 괴벨스에 대해서 거의 몰랐고 이 책도 아주 우연히 접했는데요,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었고 흡인력이 있어 금세 다 읽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책이었고요.


 브룬힐데 폼젤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힘든 시기에도 비교적 잘사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동시에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공부도 비교적 잘했지만 중학교 1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관둬야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딸의 교육을 위해 돈을 더 쓰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내 눈에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부인들이 아주 멋져 보였어요. 비서나 사무원, 또는 보험회사 영업 직원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나도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우연히 구인 광고를 통해 후한 월급을 받는 직장에 취업한 폼젤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저녁에는 상업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속기를 좋아했고 아주 잘했던 폼젤은 훗날 이 속기 기술을 통해 방송국을 거쳐 선전부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좀 분열되었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난 사랑에 빠진 젊은 여성이었을 뿐이에요. 나한테 중요한 건 그거였어요. 게다가 벌써 오래 지난 일이에요. 지금은 더 이상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그때는 그냥 그랬어요. 그냥 휩쓸려 들어갔어요.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이후 폼젤은 방송국에서 일할 기회를 잡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기 위해 당원이 되었고, 꽤 괜찮은 월급을 받으며 몇 년 동안 즐겁게 일하죠. 그러다 점점 유대인 탄압이 심해지고, '강제 수용소'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유대인 친구와 그 가족은 하나둘 사라지고, 유대인에 대한 폭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합니다.


 그래도 우린 살아갔어요. 계속 불안과 공포에 떨고 눈물을 흘리고 도망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아요? 그래요, 우린 그래도 살아갔어요. 일상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요. 게다가 베를린 사람에게는 그나마 나름의 보상이 있었어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들을 받고, 커피 배급량이 늘고, 또 다른 특별한 물건들을 배급받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잠잠했어요. 얌전하게 순응했죠. 사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정권에 반기를 들겠어요? 조금이라도 힘이 남은 사람은 대부분 전쟁에 끌려갔어요. 남은 사람이라고는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 병자, 상이용사들뿐이었어요. 모래알처럼 날리고 힘없는 오합지졸이죠.


 어느 날 나치 선전부에서 여자 속기사 하나를 필요로 했고, 평소에도 원하는 대로 방송국 인원을 차출하곤 하던 선전부는 방송국에서 속기로 제일 유명했던 폼젤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통보합니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가서 바로 출근까지 통보받죠. 결국 폼젤은 쿠르트 프로바인이라는 괴벨스 수행 비서의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프로바인은 괴벨스의 그림자와 같은 사람이었고, 폼젤은 그 밑에서 여러 가지 문서를 정리하는 일을 맡습니다.


 정권에 저항한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백장미단 사건도 그랬어요. 최소한의 내용으로 제한되었죠. 당시 그 사건이 일어났던 뮌헨에서는 그게 어떤 식으로 보도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무척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이었거든요. 그것도 아직 대학생이었죠. 그런 젊은이들을 즉시 처형해 버린 건 너무 가혹했어요. 누구도 그걸 원치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 사람들도 어리석었죠. 어떻게 그런 일을 계획할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냥 입을 다물고 살았다면 지금도 살아 있지 않겠어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그랬어요.


 나는 유대인 수송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다만 들리는 말로는 유대인들을 잔뜩 태운 화물차들이 베를린 거리를 질주했다고 해요. 그건 사실일 거예요. 그건 나도 부인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차를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슈테클리츠 거리에는 그런 차가 지나가지 않았어요. 우리 동네는 한적한 교외였으니까요. 거긴 그런 차들이 없었어요. 1933년 이전에도 적색 전선 차량 하나 지나가지 않은 동네였어요. 베를린 시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죠. 우리 동네는 정치와 담을 쌓고 있었어요. 사람들도 그렇게 살았고요. 그냥 변두리였어요. 세상일에서 비켜난 변두리요.


 폼젤은 선전부에서 일하며 방송국에서 받았던 괜찮은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없었기에 돈 쓸데가 별로 없었다고 말합니다. 디자이너가 만든 좋은 옷을 입고, 불법으로 유통되는 비싼 버터와 코냑을 구하고,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향수 같은 선물을 받기도 했다고는 하지만 말이에요.


 아무튼 난 남들보다 지내는 형편이 괜찮았어요. 약간 선택받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웠어요. 모든 것이 편했고 마음에 들었죠. 쫙 빼입은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 그래요, 난 그 시절 껍데기로만 살았어요. 어리석게도요.


 하지만 이 행복한 삶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결국 몰락의 순간이 찾아오고 말죠. 폼젤은 선전부 내의 벙커에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결국 러시아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소련의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5년 뒤에 석방되었습니다.


 지금 입장에선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어요. 나치에 대항할 수는 없었느냐고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어요.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예도 충분했어요. 나치가 저지른 일들이 엄청난 범죄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 당시에는…… 우린 모두 나치 선전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고, 완전히 말려들어갔어요. 그건 당연히 어리석은 짓이었죠. 하지만 다른 정보나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어요. 당시에 외국의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어요?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죠.

 나치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소수 있었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누구한테 도움이 됐나요? 그 사람들만 목숨을 잃지 않았나요? 오히려 국가에 다른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어요. 그래서 추천을 받아 하루라도 더 일찍 당에 가입하려고 했어요. (...)

 나는 그런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갔지만, 그래도 항상 그런 것들과는 거리를 뒀어요. 그런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끌려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방법도 몰랐을 거예요. 잘못된 사람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에요. 물론 그로 인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요. 지금 생각하면 나는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나는 러시아인들이 나만 꼭 집어서 잡아간 것이 전적으로 부당하고 잘못된 일이라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나는 괴벨스 밑에서 타자를 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뭐라도 한 게 있다면 책임을 져야겠죠.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냥 러시아 군인들이 선전부 지하 벙커로 들이닥쳤을 때 불행하게도 집에 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버리고 거기에 가서 붙잡힌 것뿐이에요.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책임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로 답을 일찍 찾았어요. 그래요,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임도 없어요. 대체 뭣에 책임을 져야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나도 물론이고요.


 내 책임은 전혀 없다, 그 당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다, 몰랐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자기변명과 외면은 참 황당하고, 일견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몰랐으면 죄가 없는 건가요? 심지어 몰랐다는 말이 진짜이긴 한가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브룬힐데 폼젤의 위치가 된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가 말한 대로 거기서 무언가 행동을 한다는 건 곧 목숨을 거는 것과 같았을 것이 틀림없죠. 그런 상황에서 우린 목숨을 걸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 행동은 얼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굳이 그 시대, 그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우리가 지금 처한 시대와 상황 역시 그때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목숨을 건 행동까지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책임을 전가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건 여전하죠. 어쩌면 이건 인간의 본성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감히 그를 욕할 자격이 있나요? 언제나 질문만 잔뜩 던지지만, 그래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겠다는 다짐만큼은 매번 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저만의 답을 찾고 행동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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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말 | 독서일기 2020-02-2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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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긴즈버그의 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저/오현아 역
마음산책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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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 수차례 애정과 존경을 표했던 인물, 긴즈버그에 관한 새 책이 또 나왔습니다. 작년 말부터 마음산책 출판사의 SNS를 통해 긴즈버그를 다룬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심지어 '말에 지성이 실린 책' 시리즈로 나와서 더없이 기뻤지요. 출간되자마자 바로 주문했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읽었는데 정말 좋아서 지금도 애지중지하고 있는 책입니다.


만장일치 의견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위태로울 때에는 계속해서 반대 의견을 낼 것이다.

- 2009년 12월 17일, 워싱턴 D.C. 하버드클럽 (p.42)


지미 카터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연방법원에 여성 법관이 거의 없었다. … … 지미 카터 대통령은 연방법원 판사의 면면을 훑어보더니 "모두 나와 같군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대한 미국은 그렇게 구성되지 않았다.

- 2015년 6월 13일, 법률 및 정책을 위한 미국헌법학회 전국 대회 (p.53)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 지금은 젊고 건강한 세대가 사회에서 늙고 병약한 세대가 될 것이다. 생애를 통틀어 생각하면 비용과 혜택은 동등하다. 현재 합당한 몫보다 더 많이 지불하는 젊은 세대는 고령자가 되었을 때 합당한 몫보다 더 적게 지불하게 될 것이다.

- 2012년 6월 28일, 전국자영업자연합 대 시벨리어스 사건 보충 의견서

  부담적정보험법에 대해 (p.68)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이 훌륭한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내가 영감을 주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 2015년 2월 12일, <블룸버그> (p.136)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데도 거절당했다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마라. 계속 노력하면서 성공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준다면 종국에는 성공할 것이다.

- 1994년 6월 3일, 모교인 앤설리번공립학교 방문에서 (p.153)


 이렇게 많은 '긴즈버그의 말'을 아름다운 책으로 만나볼 수 있어 참 좋았고, 그 말과 목소리가 세상에 더 널리 퍼지는 것이 보여 기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책과 영화를 통해 이미 접했던 말들보다 이 책을 통해 접한 새로운 말들이 훨씬 많아 읽는 내내 즐거웠고요. 또한 책 뒤에 실린 '연보 및 주요 사건'에서는 긴즈버그의 삶과 그가 미친 영향을 아주 잘 정리해 보여줍니다. '긴즈버그 입문서'로 손색이 없는 책입니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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