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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검술선생. 13 (최종화/完) | 단편소설 2021-09-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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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5단 짚단 앞에서 대통령은 검집을 허리에서 풀어 앞에 세우더니 그대로 검을 집어넣는다. 나는 저런 식의 납도술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것은 무사의 납도가 아니라 전쟁을 끝낸 장군에게나 어울리는 동작이다. 


전쟁이 끝나면 장군은 연설을 한다. 승리했다면 마지막 함성을 위해, 패배했다면 실의에 빠진 패잔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대통령도 마이크를 든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서 짚단 다섯 개는 무립니다. 이십 년 전에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멋지게 성공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아직 젊습니다. 하지만, 늙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 나라도 저처럼, 할 수 있던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이 아니면 못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당면한 과제 앞에서 물러서지 않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대통령이 말한다. 관중이 함성을 지른다. 경기장을 돔 형태로 짓는 이유 중에는 함성을 증폭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다.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진동이 전해진다. 
 


나는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짚단 베기를 할 수 있도록 검술을 가르쳤는데, 대통령은 짚단을 베지 않으려고 검술을 배운 셈이었다. 


-선생. 기분이 상하셨나요? 


청와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대통령이 그렇게 물었다. 


-별로요. 다만, 그건 검술이라기보다는 정치 같던데요. 


내가 말했다. 


-저는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악수를 청했고,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악수는 서로 빈손을 내밀어 무기가 없음을 확인하는 행위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한 달 정도 더 근무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바로 짐을 챙겨서 청와대를 나왔다. 마지막 월급과 수당을 수령하면서 3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나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도장을 다시 열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 뒤를 이어 멸종을 지연시켜줄 제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 총을 겨눴던 경호원이 문 앞까지 나를 배웅했다. 뭔가를 지키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파괴하는 사람을 동경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내게 청첩장을 줬다. 


아내 없이 도장을 운영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나름 복안이 있었다. 청와대에 있으면서 나도 배운 것들이 많았다. 


전단지를 뿌렸다. 유럽 순방 때와 검도왕전 때,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전단지에 넣었다. 매일 수십 명의 입문희망자들이 도장을 방문했다. 몇 명은 검도왕전 때 관객으로 있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이었고, 중년의 남성과 여성들도 열에 한 둘씩 있었다. 나는 우선 연령별로 오전과 오후, 평일반과 주말 반으로 수업을 분류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협회장 영감에게 전화를 걸어 사범으로 일할 사람을 두 명만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검도왕전 때 마주쳐서 잠시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십 년 만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부탁을 하려니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협회장 영감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 않았다. 우리는 원래 그런 사이였다. 며칠 후에 대학교 검도부 졸업생 두 명이 찾아왔다. 둘 다 체격이 좋고 기초가 튼튼해서 바로 채용했다. 


몇 달 정도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도장은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도장 용품과 재무를 관리할 직원을 한 명 더 뽑았고, 주말 반을 맡을 사범도 따로 구했다. 내가 없어도 도장은 잘 운영되었다. 아직 제자로 키울만한 재목은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가끔씩만 직접 수업을 하고 남은 시간은 온전히 내 수련에 쓸 수 있었다.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카피가 아닌 진짜 명품 가방을 마음껏 사줄 수 있을 정도로 통장 잔고가 계속 늘어났다. 


-나쁘지 않아. 


협회장 영감은 내 ‘단칼에 베기’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사부도 그랬고, 옛날 어른들은 칭찬에 인색하다. 한 번 더 해보라고 해서 나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너와 같은 길을 가는 상대를 만나면 동귀어진하기 딱 좋은 기술이구나. 


협회장 영감이 말했다. 조언인지 질책인지 모를 말이었다. 대충 의미는 알아들었다. 상대를 죽이고 나도 죽으면, 그것은 무승부가 아니다. 둘 다 패배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결과가 동귀어진이라 해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을 만나면 기쁠 것 같다. 


대통령을 가르친 뒤로 조금 더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술의 차원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아내가 주선해 놓은 시합이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검선의 제자라는 백동수와 겨뤄보고 싶다. 


여보. 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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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검술선생] 12화 | 단편소설 2021-09-0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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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저소리와 함께 시합이 개시된다. 엔리코는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세운 펜싱 특유의 자세로 칼을 들고 앞뒤로 움직이며 다가온다.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다. 팔과 다리가 유난히 길다. 거리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엔리코가 앞으로 한 걸음을 크게 내딛으며 칼을 찔러온다. 내 목검과 달리 엔리코의 칼은 부드럽게 흔들린다. 연검처럼 심하게 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궤도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나는 조금 뒤로 물러서면서 목검을 위로 들어 엔리코의 칼을 쳐낸다. 충격에 놀랐는지 엔리코도 물러선다. 나는 시합을 오래 끌 생각이 없다. 


나는 목검을 휘두른다. 목표는 엔리코의 칼과 손잡이가 이어지는 부분이다. 목검이 금속과 부딪히며 맑은 종소리 같은 소리가 난다. 엔리코는 신음과 함께 칼을 떨어뜨린다. 아마 손가락이나 손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나는 바로 다음 동작으로 들어간다. 목검으로 엔리코의 목울대를 겨눈다. 보통은 이런 경우 목 바로 앞에서 검을 멈추지만, 나는 부러 울대에 목검을 직접 대고 누르면서 압박을 가한다. 엔리코는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검끝을 통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목을 부러뜨리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전달한다. 점수를 표시하는 전광판도 전자감응장치도 변화가 없다. 하지만 이 승부에서 누가 이겼는지는 모두가 알 수 있다. 


나는 보호구를 벗고 인사를 한 후에 시합이 진행된 플로어에서 내려온다. 이탈리아 측에서 통역관에게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한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표정을 보니 항의를 하는 것 같다. 


-재시합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한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또 하면 진짜로 죽는다고 경고했으니까요. 


내가 말한다. 내 위협이 통했는지, 부상 때문인지 엔리코는 재시합을 포기한다. 


내가 엔리코에게 이겼을 뿐, 한국의 검술이 이탈리아의 펜싱보다 강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강하고 약한 것은 사람이지, 유파나 기술의 우열은 없다. 죽고 죽이는 싸움을 위해 사브르를 휘두르는 사람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선생 덕분에 이번 순방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이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계속 잠만 잤다. 아내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꿈을 꿨다. 



 

검도왕전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원래 검도는 인기가 없다. 호면 때문에 선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선수들의 동작과 죽도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대부분의 관객은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한다. 관중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수들의 기합 소리를 들으러 경기장에 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보통은 선수들의 가족과 지인들만 드문드문 관중석에 앉아 있다. 하지만, 올해는 대통령이 개회사와 공개연무를 한다는 소식 덕분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관중석이 가득 찼다. 의례적으로 나와 있는 기자 몇 명이 아니라, 모든 신문과 방송이 취재를 하러 왔다. 얼핏 세어 봐도 카메라가 몇백 개는 넘게 있었다. 


대통령의 개회사 겸 축사는 ‘가슴이 뜁니다’로 시작해 ‘축하합니다’로 끝났다. 대통령은 1분밖에 말을 하지 않았지만,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을 완전히 집중하게 했고, 검도인이 아닌 일반 관중들조차 검도왕전이 대단히 의미 있는 대회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회에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나도 내가 이런 엄청난 곳에서 우승을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짧지만, 훌륭한 연설이었다. 형편없는 연설자만 깊이가 부족한 것을 길이로 대신한다. 


대기실로 돌아온 대통령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연설은 대통령의 전문분야지만, 공개연무는 완전히 초심자였다. 


-많은 사람 앞에서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대통령이 말했다. 


-연습한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사람이 많다고 베어질 것이 안 베이는 일은 없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공개연무는 8강전이 끝나고 하기로 되어 있었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자세를 점검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면서 대기실 벽의 TV로 시합을 지켜봤다. 아직도 검도대회에 출전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들의 움직임과 검로는 실망이었다. 검술의 멸종 징후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과연 얼마나 더 지연시킬 수 있을까. 나는 사부의 말이 떠올라 비월을 꽉 그러쥐었다. 무엇이든 단칼에 벨 수 있는 최강의 검술로도 벨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 방송과 함께 대통령의 순서가 왔다. 대통령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눈빛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습 때 대통령은 3단 짚단이라면 열에 아홉, 5단은 열에 여덟을 깨끗하게 잘랐다. 실패해도 완전히 잘리는 않는 것이 아니라, 단면이 약간 지저분하게 남을 뿐이었다. 


전광판에 대통령의 모습이 비추자 관중들이 함성을 지른다. 대통령은 짧게 손을 흔들고 다시 집중한다. 도복 탓인지 몰라도 온전히 한 명의 무도인의 모습 같다. 대통령은 천천히 검을 뽑아 짚단 앞에 선다. 우선은 세 개, 사선, 수평, 사선으로 1단 짚단을 벤다. 완벽하다. 관중의 함성이 커진다. 


3단 짚단 앞에서 대통령은 잠시 자세를 고쳐 잡는다. 기합과 함께 검을 치켜든다. 대통령의 기합은 크지도, 길지도 않다. 대통령이 검을 휘두른다. 깨끗하게 짚단이 잘려 나간다. 이번에는 관중의 박수가 늦다. 다들 감탄하기 전에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조금 놀란다. 연습 때보다도 훨씬 움직임이 좋다. 대통령은 역시 많은 사람이 보고 있을 때, 뭐든 더 잘하는 체질인 모양이다. 


마지막 5단 짚단 앞에서 대통령은 검집을 허리에서 풀어 앞에 세우더니 그대로 검을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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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검술선생] 11화 | 단편소설 2021-09-0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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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죠. 하지만, 상대에 따라 제가 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선생이 연습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청와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도장 안에도 설치되어 있는지는 몰랐다. 대통령은 내가 ‘단칼에 베기’를 수련하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도장에 가서 검을 휘둘렀다. 어떤 날은 들어간 지 1분 만에 휘두르고 나왔고, 어떤 날은 여덟 시간 동안 서 있다가 휘두르고 나왔다. 대통령은 처음에 내가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를 배우고 검을 수련하면 할수록 내가 휘두르는 그 한 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차츰 알게 됐다. 


-그건 누구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일격 아닙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그걸 목표로 하는 것은 맞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이제 막 초심자를 벗어난 그에게 그 정도 안목이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각 분야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을 하는 게 임명권자니까. 


-필요한 게 있습니까?
-목검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지팡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십 분 후에 경호원이 목검을 구해왔다. 내게 총을 겨눴던 그 경호원이었다. 


-조심하십시오. 선생님 상대인 엔리코는 올림픽을 3연패 하고 단체전까지 하면 금메달을 다섯 개나 딴 펜싱 쪽에서는 전설 같은 사람입니다. 


경호원이 말했다. 이탈리아 총리의 자신감은 그 엔리코라는 사람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전설 같은 사람인데 왜 이 시합을 말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저도 중학교 때 잠깐 펜싱을 했습니다. 엔리코가 출전한 올림픽 중계도 봤습니다. 저를 대입해 봤습니다. 제가 그 올림픽 결승전에 권총을 들고 엔리코 앞에 마주 서 있다면 어떨지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눈곱만큼도 제가 질 것 같지가 않더라구요. 선생님 앞에서는 두 명이 총을 뽑고서도 질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경호원이 대답했다. 


-올림픽은 아마추어들이 서로 기량을 겨루는 축제죠. 


내가 말했다. 올림픽은 인류의 화합과 번영을 목적으로 페어플레이, 연대, 상호 간의 이해를 기본 정신으로 한다. 어느 것 하나 서로 죽고 죽이는 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호원은 자신을 대입해봤다고 했는데, 제대로 하려면 이런 식으로 가정해 보면 된다. 사격 분야의 금메달리스트 일곱 명을 모아서 올스타팀을 만들어, 청와대 경호팀과 시가지나 산에서 전투를 시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아마도 올림픽 올스타팀의 몰살일 것이다. 안전한 상태에서 사격을 잘하는 것과 목숨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총을 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칼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든 것을 이탈리아 측에서 제안한 대로 하라고 했다. 보호구를 차라기에 찼고, 전자감응 시스템으로 점수를 매긴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내가 검도왕전을 비롯한 이런저런 검도대회 참가를 그만둔 것도 그런 식으로 점수로 환원되는 채점방식 때문이었다. 실전이라면 이마에 겨우 생채기를 낼 정도로 위력이 없어도 먼저 머리에 닿기만 하면 점수를 얻는다. 그러다 보니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검으로 상대를 툭툭 치는 것 같은 극단적인 쾌검이 주를 이룬다. 나는 그런 것은 검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문제는 경호실에서 구해온 목검이 최상급 흑단목검이라는 거였다. 장인이 수년간 공들여 만든 흑단목검을 일류 검객이 사용하면 강철도 자를 수 있다. 예전에 사부가 직접 보여준 적이 있다. 펜싱 보호구의 내구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제대로 맞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봐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나는 어디를 공격해야 상대가 덜 다칠지 고민했다. 이런 시합에서 누가 죽기라도 한다면 심각한 외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부저소리와 함께 시합이 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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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검술선생] 10화 | 단편소설 2021-08-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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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뿐이었다. 회담이 끝나면 바로 귀국이었다. 방문한 나라마다 그 나라의 대통령, 수상, 총리들과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그동안은 경호에 신경 쓰느라 회담 내용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대통령과 각료들의 표정을 보고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마지막 회담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자연스럽게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원래 정상회담은 실무자들 사이에 대부분의 내용이 합의된 후에 성사된다. 대통령은 약간의 세부적인 항목과 표현을 조율해서 서명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무자들 사이에 합의가 되지 않거나, 상대 정상이 갑자기 의제를 꺼내는 경우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중요한 협상과 결정을 해야 한다.


이탈리아 총리는 대한민국 인터넷 쇼핑몰에 떠도는 불법 카피 제품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과 규제를 요청했다. 총리는 태블릿 PC로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을 캡처한 이미지를 불법 카피의 예로 보여줬다. 옷, 가방, 신발, 벨트, 시계, 우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카피 제품은 정품보다 반값 이상 쌌고, 심한 경우 가격이 10분의 1인 것도 있었다. 익숙한 무늬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아내가 들고 다니던 가방과 같은 것도 있었다. 아내도 아마 정품이 아니라 카피 제품을 샀을 것이다. 


-여기 오기 전에 교황을 만나고 왔습니다. 구약성경에 이런 말이 있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가만히 듣고 있던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면서 총리가 보여준 이미지 중 하나를 확대했다. 총리가 정품이라고 보여준 사진이었는데, 무슨 패션쇼 사진인 것 같았다. 연분홍의 블라우스의 앞섬에 옷고름 같은 것이 달린 옷이었다. 대통령은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검색해 한복 사진을 몇 장 보여줬다. 


-이건 2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전통의상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쇼핑몰에서 디자이너의 옷을 카피한 게 아니라, 귀국의 디자이너가 한국의 전통의상을 참조한 것 같군요.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이탈리아 총리가 보여준 이미지 중 몇 개의 허점을 공격했다. 즉흥적으로 검색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한 번에 필요한 사진을 찾는 것을 보면 미리 연습을 한 것 같았다. 이탈리아 총리는 펄쩍 뛰었고, 반박과 재반박이 오갔다. 나도 한국 사람이니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의 말은 서로 절반씩 맞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카피한 제품들도 있었고, 카피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것들도 있었다. 


두 정상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급기야는 대화가 문화와 전통 역사까지 이어졌다. 로마와 고조선까지 언급되었다. 


-우리 집이 더 좋아.
-아냐. 우리 집이 더 좋아. 


아이들의 말싸움 같았다. 대통령이 자신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어린 이탈리아 총리와 그런 식의 대화를 한다는 게 이상했다. 숨은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은 하나의 작전이었다. 대통령은 잔뜩 흥분한 이탈리아 총리에게 문화 대결을 제안했다.
 
한국의 검술과 이탈리아의 펜싱 승부. 
 

총리는 반색을 하면서 받아들였다. 뭔가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통령은 곁눈질로 내게 신호를 줬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누구 머리에서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내게 아무 언급도 없이 일이 진행됐다는 것이 불쾌했다. 어쩌면 테러 위협이니 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고, 나를 동행시킨 이유가 처음부터 이 시합 때문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바로 한 시간 뒤가 시합이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안 하겠다고 하면 역적이 되는 상황이었다. 내 뒤틀린 심사를 읽었는지 대통령이 나를 따로 불렀다. 


-선생. 도와주세요. 


대통령이 말했다.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내가 말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확정이 안 된 일이었습니다. 조금 전 까지도 성사될지 자신이 없었구요. 


대통령이 말했다. 


-부탁인가요? 명령인가요? 


내가 물었다. 


-지금은 부탁이지만, 필요하다면 명령도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대답했다.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전쟁이 나면 누구나 군인입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소위 말하는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라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세상에 그런 평화로운 전쟁은 없습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이 달렸는데, 총성이 없을 수가 있나요. 선생은 정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까? 


대통령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오늘 하루 종일 수 없이 많은 총을 맞았고, 그 역시 쐈음을 알 것도 같았다. 피로에 지친 대통령한테서 화약 냄새가 났다. 


-하죠. 하지만, 상대에 따라 제가 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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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검술선생] 9화 | 단편소설 2021-08-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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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나한테 메타세라믹으로 만든 단검이 있고, 내가 대통령을 죽여야 한다면,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있는 상황은 환영 퍼레이드였다. 예정은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었지만,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영상을 보니,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교민과 악수를 하거나, 꽃다발을 받는 등의 돌발 상황이 꽤 여러 번 있었다. 돌발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는 순간은 존재했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차가 멈췄을 때, 보통 50에서 100미터 정도를 인파 사이를 걸어서 지나간다. 그 순간 내 손에 칼이 있다면 나는 대통령을 죽일 수 있었다. 

나는 차 실장에게 내 판단을 이야기했다. 차 실장은 자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경호 예정에 변동도 없었다. 청와대 경호팀은 대통령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대통령을 움직일 수는 없다. 검이 검객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다섯 번의 환영 퍼레이드에서 나는 대통령 주변에 무형의 검막을 친다. 그리고 걸으면서 사방으로 살기를 쏘아댄다. 내가 계속 살기를 보내는 탓에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근접 경호를 맡은 경호원들은 와이셔츠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 

의심의 눈으로 보니 모든 사람이 다 테러범처럼 보인다. 태극기를 흔드는 중년 여성은 바지 주머니가 수상해 보이고, 노인들의 지팡이는 전부 무기처럼 보인다. 가방을 들거나 맨 사람들도 전부 위험인물이다. 키가 크거나 체격이 좋은 남자들이 눈에 띄면 그가 서 있는 방향으로 발도할 준비를 한다. 
 

스위스에서는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건네던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내 살기에 반응해 울음을 터트린다. 가끔 천부적으로 감각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다. 대통령이 아이를 안아 들고 달래는 통에 나는 더 긴장한다. 대통령이 아이를 엄마 품으로 인계할 때, 나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에게 무술을 가르치면 대성할 거라고 말해주려다가 그만둔다. 그런 일로 통역관을 부르는 것도 우습고, 무엇보다 무술로 대성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세상이다. 어떤 재능이 있든 수학과 언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게 제일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선생이 보기에는 위험한 상황이 있었습니까? 

차 실장이 물었다. 

-제 범위 안에서는 살의를 가진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부하들 말로는 선생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어서 뒤도 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혀서 앞만 보고 걸었다고. 테러범들도 선생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죠. 

차 실장이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수상해 보였지만, 칼을 꺼낸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테러 위험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메타 세라믹으로 만든 단검을 훔친 것은 테러 조직이 아니라 어딘가의 초밥 요리사일지도 모른다. 단지 더 맛있는 초밥을 만들기 위해 신물질로 만든 칼이 필요했을지도. 

-테러 계획이 없었든, 선생 덕에 억제 되었든 결과는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차 실장은 묵례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대통령의 오후 일정 동안 실내에서 근접 경호를 맡도록 배려해줬다. 그냥 따라만 다니면 교황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지팡이를 반납했다. 교황청과 총리 관저에서 지팡이가 필요한 일은 없을 테니까. 

교황은 백인이라는 것과 외국말을 한다는 점만 빼면, 아내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옷만 조금 더 화려했다. 그래도 나는 교황에게 죽은 아내를 위한 축도를 부탁했다. 교황은 짧게 기도를 한 후에 아내가 신의 곁에서 평온하게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어딘지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다. 

교황은 기약 없는 방한 약속을 했고,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기약 없는 초청 약속을 했다. 한국 신문에 무슨 대단한 말이 오간 것처럼 기사가 난 것을 봤는데, 현장에서 내가 느낀 것은 ‘언제 시간 나면 한 번 더 보자’하는 식의 빈말이었다. 

남은 것은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뿐이었다. 회담이 끝나면 바로 귀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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