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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길재단 이끄는 이길여 경원대 총장 (펌글) | My Favorites 2010-03-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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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세상의 중심] 가천길재단 이끄는 이길여 경원대 총장
깡촌서 태어나 가진것 없이 시작 한국서 가장 큰 성공 거둔 여성
"여자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죠"

`가진 것 없이 시작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한국 여성.`

이길여 경원대 총장을 두고 언론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다.

지난 23일 경기도 성남시 경원대 총장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이제는 그의 상징이 된 둥근 헤어스타일과 금테 안경, 단정한 검은색 투피스 정장에 물방울 무늬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언뜻 보면 도도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당당함에는 군살이 없었다. 미소는 부드러웠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친근했다.

◆ 어머니에게서 받은 자신감

= 그는 전북 옥구 `깡촌`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언제나 자신만만한 소녀였다. 시골 마을에서 전깃불이 들어오는 곳은 멀리 떨어진 방앗간뿐이었다. 책을 읽기 위해 방앗간을 찾았다. 한줄 한줄 머릿속에 쟁여 넣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시커먼 밤을, 그래도 지금보다는 밝았던 별빛에 의지하면서 돌아오던 길.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 돌이켜 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아마 그날 공부한 것을 다시 한번 외면서 걸었던 듯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난 꼭 서울대 의대에 가서 의사 될 거야."

소녀에게는 늘 자신감이 충만했다. 뭐든 못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거침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머니였어요. 어머니가 내게 그 생각을 불어넣어 주셨죠. 시골 여자가 공부는 해서 뭐 하냐고들 했습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비록 당신은 집안에서 `딸 낳은 죄인`이었지만 내게는 뭐든지 다 주셨어요.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온 것은 먼저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교수들에게 입버릇처럼 "여러분들이 최고이기 때문에 경원대 교수로 온 것이다. 절대로 기죽지 말고 자신감 갖고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학생들에게도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가 될 것"이라며 두 손을 꼭 잡는다.

◆ 내 인생 유일의 로맨스

=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여의사가 될 겁니다. 다시 태어나도 결혼은 안 할 것이고 지금과 같은 길을 걸을 겁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총장은 "의사라서 행복했고 여자라서 즐겁다"고 했다. 여의사이기 때문에 의사로서 그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여성이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불평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내는 것이 능력입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뭘 못 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히려 여자라서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여성이기에 환자를 더 세밀하고 섬세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그렇게 못하지요. 그래서 여자라서 행복합니다."

단호한 여성론이다. 하지만 그도 한 남성을 바라보며 설레던 감정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선진 의료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메리 이매큘러트 병원, 퀸스종합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하던 유학 시절.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한국 남자가 꽃을 들고 그를 찾았다. 자수성가한 교포 사업가였다. 이성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는 타국에서 말벗으로 지낼 수 있는 한국 사람이라는 데 더 끌렸다. 그는 화사한 원피스에 브로치를 달고 그와 데이트를 즐겼다. 몇 번인가 만남이 이어지면서 그 남자는 조심스럽게 청혼을 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청혼을 거절한 그날 밤 그는 밤새도록 울었다.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조국에 있는 가난하고 ,못 배우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 부채의식 그리고 행운

=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했다. 인천의 작은 산부인과병원 의사로 출발해 6개의 종합병원과 뇌ㆍ암ㆍ당뇨 분야 첨단연구소, 2개의 4년제 종합대학, 각종 문화재단, 언론사까지…. 남에게 지기 싫어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았던 그가 `행운`을 얘기했다.

그의 사업 확장은 저돌적이다. 병원을 확장해 나갈 때 5년을 승부 내는 기간으로 삼았다. 5년간 적자를 감당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투자했다. 여기저기에 `길병원`이 생겨나면서 `병원재벌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의료 취약지인 양평이나 철원에 병원을 세운 것에서 보듯이 그는 수지타산만을 따지지는 않았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원칙은 `봉사`였다. 이 때문에 그는 `성공한 사업가 혹은 경영인`이란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6ㆍ25전쟁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의사,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내 또래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겠다며 전장에 나갔습니다. 총도 없이, 아무 것도 없이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나갔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지요. 난 여자라서 군대에 가지도 않았고, 시골에 있다 보니 피란 가는 고통도 없었습니다. 나 혼자만 이렇게 공부하는 게 옳은 일인지 끊임없이 자문했지요. 난 빚이 있어요. 그 젊은이들 덕분에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4년여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 길을 서둘렀던 것도 그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도 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며 주위에서 많이 잡았어요. 미국 생활에 젖어들면서 몸도 점점 편안해졌지요. 그럴 때마다 `혹시 내가 조국을 배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배웠다는 사실, 남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무거운 부채의식은 그를 망설임 없이 귀국길 비행기에 오르게 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부채의식`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해야겠지요. 이뤄낸 모든 것이 자기 혼자 열심히 해서 얻어진 게 아니라는 것, 모든 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에게서 다 받은 것이죠."

소유한 것은 없었지만 꿈꾸었던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이 말하는 `행운`이었다.

■ 전통 명문사학 연고대, 우리가 뛰어넘을 것
8월 가천의과학대 - 경원대 통합추진위 구성

= 2000년 이길여 총장 부임 후 경원대는 그야말로 눈부신 변화를 겪고 있다.

`경원,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눈에 확 들어오는 캠퍼스는 부화를 위해 쪼개지기 시작하는 독수리의 알처럼 곳곳이 역동적이다. 오는 5월 대학 정문에 들어설 비전타워는 이미 그 웅장한 자태를 서서히 드러내면서 주위를 압도했다.

시설뿐만이 아니다. 학생들도 달라지고 있다. 이 총장은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의 평균 성적은 수능 2.49등급으로 백분율로 83.06점이다. 전년도와 비교해 3.18점 올랐다. 수도권 대학의 평균 상승 점수가 잘해야 1년에 0.8~0.9점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기적에 가까운 점수"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특히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에 올인하고 있다. 작년부터 일정 수준 이상 영어 실력을 갖춰야 졸업할 수 있는 `영어졸업인증제`를 도입한 데 이어 전교생을 대상으로 매일 4회씩 무료 토익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성적 우수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리버사이드분교 등 제휴 해외대학 연수와 영어몰입 캠프 참가 등 혜택을 준다. 지난해 입학한 학생들은 한 해 사이에 토익 평균 성적이 무려 120점이나 올랐다.

이 총장은 "전교생이 재학 중 장학금으로 한 번 이상씩 외국 체험을 하도록 할 것"이라며 "조만간 10대 사학 목표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전통의 명문 사학이라는 연세대나 고려대를 뛰어넘는 대학도 가능할까. 이 총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는 "연ㆍ고대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했다.

"교육 투자는 상당히 오래 걸리는 만큼 지금 당장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은 100%입니다. `우리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벽은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나는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게 언제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시대에 안 올지도 모르지요. 다만 국내 1등, 글로벌 차원의 경쟁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터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 터를 만드는 작업이 바로 현재 자매대학 관계인 경원대와 가천의과학대학의 통합이다.

이 총장은 "지금도 통합 작업은 물밑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2학기, 그러니까 8월 정도면 정식으로 대학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라며 "통합추진위가 두 학교 학생, 교수, 동문회 의견을 모두 듣고 결정해 최종적으로 대학 통합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두 대학 통합은 구성원 모두가 더 좋아지는 모델을 만드는 원칙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얼마 전에 대학 4학년 학생이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두 대학이 통합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대단히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을 걱정시키는 통합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만족하고 다 좋아하는 대학 통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이미 경원대-경원전문대 통합을 경험한 만큼 경원대-가천의과학대 통합은 보다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이 총장은 보고 있다. 그는 "통합추진위 출범 후 1년 안에 통합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며 "10년 후 국내 대학 판도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해 보라"고 했다.

■ She is..

△1932년 전북 옥구 출생 △1957년 서울대 의과대 졸업 △1958년 인천 자성의원(이길여 산부인과 전신) 개원 △1968년 미국 퀸스종합병원 레지던트 수료 △1977년 일본 니혼대 의학박사 △1978년 의료법인 길병원 설립 △1998년 가천의과대 개교ㆍ경원대 인수(현 총장) △1999년 경인일보 회장 △2002년 가천길재단 회장(현재) △200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09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최용성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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