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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으셨어요~예란님~ 감사합니다.. 
이벤트 진행하시느라 넘 고생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이런 이벤트 주관하시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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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by 신동준 | 2013년(122) 2013-12-3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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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신동준 저
인간사랑 | 2013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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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에서는, 조선조 역대 군왕 가운데 난세의 시기에 재위한 인물을 선정해 그들의 리더십을 집중 분석하였다. G2 시대의 혼란스런 모습은, 조선조 역사에 등장한 왕조교체기의 혼란스런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동양 전래의 역사에 비춰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왕조교체기에 해당하는 21세기는 G2 시대이며, 저자는 이를 난세로 판단하여 3번의 G2 시대를 현명하게 이끈 기준을 판단으로 삼아 명군(明君), 용군(庸君), 암군(暗君)으로 분류했다. 미ㆍ중이 격돌하는 현재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한반도 통일이 달성될 가능성이 커지기도 했거니와, 최고통치자를 비롯해 경제전쟁에서 기업 CEO들의 현명한 대응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21세기 동북아시대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국이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1세기 전의 상황을 방불케 한다. 

 

   

■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명군 

 

  •  태조 : 위화도 회군의 결단으로 새 왕조의 창업주가 된 점에서 명군으로 뽑힌 태조 이성계는 급진개혁파인 정도전과의 합작품으로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왕명을 거부한 비주체적인 사대주의 행보로 폄하하고 있으나 고려 말의 상황은 개혁을 절실히 필요로 했고, 시대적 흐름을 읽은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위업을 이뤘다. 다만, 개국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명분을 내걸고 몸을 숨긴 고려의 유신들을 조정에 참여시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태종 : 원명 교체기에 놀라운 결단력과 지혜를 발휘해 조선조 건국의 기틀을 닦은 태종 이방원을 사실상의 창업주로 칭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조선조 개창 당시 최고의 개국공신은 말할 것도 없이 정도전이나, 이방원의 공 역시 이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 왕권에 대한 도전은 용납하지 않았으나 재상 등에 대한 탄핵은 적극 수용하고, 성향이 다른 인사들을 동시에 재상에 임명해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어 세력화를 억제했다. 이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새 왕조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  세종 : 역사상 인류가 찾아낸 문자 가운데 최고의 문자로 평가되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은, 문무 두가지 측면에서 조선조 5백년을 통틀어 최고의 성세를 구가했다. 패도로 일관한 부왕 태종과 달리 패도와 왕도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최고의 통치술을 발휘했고, 천성으로 타고난 총명과 호학(好學)에서 비롯된 '수불석권(手不釋卷)'의 자세와 중국의 문물에 사로잡히지 않은 강한 주체의식, 애민사상에 입각한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민족문화유산의 위대한 업적으로써 조선조 최고의 명군으로 꼽힌다.
  •  세조 : 전광석화 같은 반격으로 신권 세력의 발호를 제압하고 완권을 튼튼히 함으로써 5백년 사직의 기초를 튼튼히 한 세조(수양대군)은, 제2의 창업주에 해당한다. 세조는 조선왕조 운영의 기본 틀이 된 '경국대전' 편찬을 비롯하여 역대 군주를 통틀어 부국강병책을 가장 강력히 펼친 군왕이다. 문종의 죽음과 함께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하면서 불안정한 정세에서 막강한 신권을 제압하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과 같은 권신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조선조는 이내 신하의 나라로 전락했을 공산이 컸다.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 역시 사림 세력의 왜곡된 시각을 그대로 채용한 것으로써,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보위를 물려준 것으로 재해석해야 옳다.
  •  광해군 : 국가 패망의 위기에서 취해진 일종의 편법으로 부왕인 선조에 의해 왕세자가 된 광해군은, 조선조가 맞닥뜨린 두 번째 G2 시대인 명청 교체기 때에 놀라운 외교수완을 발휘해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안녕케 하는 보국안민을 꽤했다. 차서자라는 이유로, 명나라로부터 세자 책봉을 거부당하고 명나라 사신마다 막대한 양의 은자를 수탈해 가는 관행까지 생겨 보위 계승의 정통성에 큰 상처를 입었던 광해군은, 연산군과 더불어 조선 5백년을 통틀어 신하들에게 쫓겨난 군왕이었다. 왕권강화를 위해 대규모 궁궐 건축 사업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반정의 빌미가 되었고 몰락을 알리는 전조가 되었다.

 

 

■ 성군?! 재평가가 필요한 용군

 

  • 성종 : 세조가 가차없이 철폐시킨 집현전의 후신인 홍문관을 개설한 성종은, 후대 성리학자들로부터 명군이라는 칭송을 얻었지만 그들의 관점일 뿐이므로 재평가가 절실하다. 언론권을 장악한 신진 사림세력이 재상권의 주요 구성원인 훈구대신을 압도하고 명실상부한 신권세력의 주축이 된 것은 상대적으로 왕권 취약을 들 수 있다. 조선이 패망한 가장 큰 원인은 왕권국가에서 신권국가로 나아간 데 있다. 그 계기가 바로 사림세력의 효시인 김종직의 중앙정계 진출이며 그를 총애하여 도학군주를 염원했던 성종의 리더십은 결코 높이 평가할 수 없다.  
  • 중종 : 연산군은 미치광이 폭군이 아니었고, 한낱 일신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위해 자신들을 총애한 주군을 내친 배은망덕한 소인배들에 의해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연산군을 폭군으로 매도하는데 결정적인 배경이 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근본 원인을 왕권에 대한 신권의 도전에서 찾을 수 있다. 중종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사림세력의 우두머리인 조광조를 끌어들여 공신세력을 제거한 뒤 다시 이들 사림세력을 제거하는 '기묘사화'와 직결된다. 재위 8년 동안 자신을 보좌할 측근 한 사람 만들지 못했고, 시종일관 우유부단함을 면치 못했던 중종은, 시세도 파악하지 못할 뿐더러 신권 세력에게 휘둘린 용군에 불과하다.
  • 숙종 : 재위 46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환국을 단행한 숙종의 기형적인 통치는, 신권 세력 같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해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각 붕당 세력들은 언제 유혈 숙청의 대상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비롯해 경종까지, 처자식을 왕권 보호의 도구로 이용한 점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들 모두가 환국정치의 희생양이었다. 환국정치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군약신강을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노론 세력에 의해 보위에 오른 영조가 자식까지 뒤주 속에 가둬 죽인 것이 그 증거다.
  • 영조 : 탕평은, 당파의 구분없이 모든 사람을 고루 등용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자 함에 있다. 영조에게 탕평은 노론을 제압하기 위한 명분일 뿐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영조의 탕평은 완벽한 탕평이 아닌 외척과 연결된 '완론탕평'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영조의 탕평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음은, 척족 세력이 함부로 날뛰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탕평정치는 정조가 죽은 후 19세기 세도정치로 변질되어 정치적 혼란기를 맞이하였다.
  • 정조 : 정조는 경서와 사서를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 걸쳐 최고의 인문학적 소양과 학문적 수준을 과시한 것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도학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취지에서 '군주도통론'을 주장하고 이를 왕권강화의 상징으로 삼고자 했으나, 이러한 학문적 결실은 현실정치에서는 착각이었다. 실제로 그는 군주도통론으로 인해 신권세력의 반발을 자초했고, 학문적 권위로 신권세력을 제압코자 했던 '군사론' 역시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노론 벽파를 포함한 신하들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결단력도 부족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하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정조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할 수 없다.

 

 

■ 나라를 위기와 혼란에 빠트린 최악의 왕

  • 선조 : 선조는 보위에 오르자마자 최고의 사림이 되기 위해, 내관의 수를 줄이고 본업인 제왕학 연마를 뒤로 한 채 문을 닫고 늘 책만 읽었다. 사림세력이 선조의 행보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이며, 중앙 정계를 사림이 독점한 연유다. 조선조의 패망은, 주변국의 변동상황을 외면한 채 성리학자인 퇴계와 율곡을 전면에 앞세워 권력투쟁을 일삼은 후기 유학자들의 책임이다. 왜란을 미연에 방지했거나 그로 인한 폐해를 극소화할 수도 있었지만,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일본을 곁에 두고도 현실과 동떨어진 명분주의에 빠져 오로지 성리학만을 추구했다. 문제는, 왜란을 패배로 인정하지 않는 조선이 전혀 반성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데 있었다. 현재까지도 선조의 처세를 ‘목릉지치’라 하며 명군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신이 범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결여한 처사다. 결과는, 3백 년 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 인조인조정권이 정묘호란 당시에 맺었던 '형제지맹'의 약속을 어느 정도 이행키만 했어도 병자호란은 능히 막을 수 있었으나, 척화파들은 형제지맹 파기를 요구하면서 부모의 나라인 명을 대신해 청과 결전을 치를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청의 요청을 거부하며 명의 군사에게 식량지원을 해놓고선 대비책도 없이 전쟁을 자처했다. 군주는 물론 나라와 백성조차 안중에도 없는 성리학에 함몰된 조선조 사대부들의 정신상태를 짐작케 한다. 숙부인 군주 광해군을 내쫓고 아들인 소현세자와 며느리에 손자들까지 잇달아 죽인 어리석고 비정한 군주의 시호가 인조인 것은, 그와 함게 반정을 도모한 서인들이 권력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조의 '친명사대'는 이후 조선의 군신으로 하여금 '소중화'를 내걸고 자폐의 길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선조 역대 군왕 가운데 최악의 군주로 꼽을 만하다. 반정의 주역인 인조는 왜란을 초래한 선조와 함께 암군의 전형이다. 땅에 떨어진 군위(君威)를 완전히 박살낸 장본인은 인조였다. 명분도 없이 광해군을 보위에서 끌어내고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해 대명 사대외교를 명분으로 내걸었다가 두 차례의 호란을 자초했다. 소현세자를 제거함으로써 정조 때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정통성 문제까지 촉발시키는 우를 범했다. 이에 인조를 조선왕조 사상 최악의 군주로 임명한다.
  • 고종 : 고종 44년의 재위기간 중 시기별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가지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적잖은 논란이 된다. 자주독립을 겨냥한 일련의 개혁정치였던 '광무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그 성과에 비춰볼 때 나름 평가할 가치가 있다. 고종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광무개혁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열강의 이권침입은 더욱 극성을 부렸고, 개혁 자체도 열강에 의존하였으며, 가장 큰 문제점은 군도의 요체인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었다. 고종의 광무개혁이 오랫동안 주목 받지 못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그러나 사상 최초로 동서의 패권국이 서로 맞붙는 G2 시대의 난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나라를 패망의 위기로 몰아간 것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대원군이 제거한 망국적인 세도정치를 부활시킨 점은 최대 실책에 해당하며, 이것이 조선 패망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원래 '조祖'는 창업주에 버금하는 대공을 세운 군왕에게만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창업주인 태조 이성계와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국세를 떨친 세조를 제외한다면,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모두 '조'보다는 '종'의 묘호가 적합하다. 영조와 정조는 나름 업적도 있어 넘어갈 수 있다지만 선조와 인조의 경우는 완전히 어긋난 결과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왜란과 호란을 초래해 나라를 패망 위기로 몰아간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영조 때 붕괴됐던 4색 당파가 선조 때 다시 형성되는 빌미를 제공했고, 그의 묘호가 선종에서 선조로 승격된 것은 명분주의에 함몰된 조선조의 사대부들이 만들어낸 역사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선조의 치세는 한마디로 붕당정치로 요약된다. 그의 치세에 들어와 사림세력들이 거대한 붕당을 형성해 왕권을 위협하는 막강한 신권세력으로 부상했다. 후기에 들어와 군약신강의 신권국가로 치달은 이유다. 선조 때 시작된 붕당정치, 조선이 신권 우위를 기초로 한 성리학의 왕도를 유일한 통치 이념으로 삼은 데 있다. 당시 선조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신권세력을 제압한 가운데 위엄을 보였어도 임진왜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왕조 5백년을 돌아보면, 나라를 다스리던 사대부 지식인들이 나라의 안녕과 민생은 아랑곳없이 오직 정적만 제거하는데 열중한 당쟁의 후과였다. 현재의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위기는 역대 정부가 합작으로 빚어낸 실정의 결과물에 다름아니다. 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듯 반란이 성공하면 새 왕조의 창업주가 되고, 실패하면 만고의 역적이 된다. 암군들은 거시적 차원의 통치에 어두워서 주변 정세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상대의 의도를 읽었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넓은 관점에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했다. 왕권강화에 목을 매면서도 결국 신국의 통치 속으로 들어간 조선의 왕들.. 자고로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전체적인 밑그림 먼저 그릴 줄 아는 배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선조'처럼 사소한 일에 집착하게 되면 대의를 그르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만 허비했을 뿐, 보다 더 시급한 우선적 과제에 열중하지 않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조차 간과하는 실수를 범했다. 

 

 조선조 사대부들에 의해 성군의 칭송을 받은 성종과 중종, 숙종, 정조 등은 엄밀한 재평가를 요했다. 성종은, 모후인 인수대비에게 휘둘려 국가를 문란케 만들고 사람을 중용해 붕당정치의 길을 열어 '신하의 나라'로 변질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사대부들이 일으킨 최초의 반정으로 얼떨결에 보위에 오른 중종은 대책도 없이 기회주의로 일관하다가 기묘사화의 유혈참사를 빚었다. 이는 군왕을 압박하며 극단적인 명분론을 펼친 조광조가 명신으로 떠받들어지는 빌미가 됐다. 숙종은, 처자식까지 당쟁의 희생양으로 삼아 유혈당쟁을 자초한 장본인이다. 21세기 현재 세종과 더불어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경우는 신하들과 재치를 다투는 식으로 나라를 다스린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모두 군도가 아닌 신도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결코 명군으로 평할 수 없으며, 평범한 군주를 뜻하는 용군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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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18차 나눔 릴레이 이벤트를 통해

처음처럼님으로부터

[로지 프로젝트]와 [펀치]가 도착되었습니다.

처음처럼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많은 책들, 일일이 봉투에 담고 포장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지요?

 

욕심은 넘치고 그만큼 읽어야 할 책들도 넘쳐서..

언제쯤 서평으로 옮기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생전에, 반드시 일독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넙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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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190000번째 HIT이벤트에 손님이 당첨되었습니다.
(당첨일시 : 2013-12-30 08:39)
당연히 이웃님께만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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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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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일시 : 2013-12-29 04:54)
이웃님께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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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지] 2014년 1분기 다)조 리뷰어 모집 (문학/청소년) | 생존전략 2013-12-2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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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클럽

안녕하세요, 리뷰어클럽 리벼c입니다.

먼저, 2013년 4분기가 진행되는 3개월 동안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주신 리벼님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짝짝)

 

이미 새롭게 변화된 리뷰어클럽에 대해 다들 파악하셨을텐데요~!

잘 모르시겠거나 이 공지를 먼저 보신 분 아래 링크에서 한번 더 꼼꼼히, 디테일하게 숙지 부탁드려요^^

http://blog.yes24.com/document/7145077

 

12월을 마지막으로 2013년도 리뷰어클럽은 막을 내리고, 해가 바뀌는 다음달부터 2014년 1분기 리뷰어클럽이 새롭게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 공지글에서는 앞으로 3개월간, 함께 하실

문학/청소년

분야의 리뷰어를 모집합니다.

 

아래 양식을 살짝 복사하셔서 이 공지글의 댓글로 붙여주세요*^^*

 

- 아 래 -

 

1. 전체공지 스크랩 주소 :

2. 신청 분야의 가장 자신있는 나의 리뷰 주소 :

3. 2지망 :

4. 신청각오 :

 

자, 감이 잘 안오시나요? 디테일한 리벼c가 직접 예시를 통해 설명 드립니다!

 

댓글을 다신 공지글의 분야가 자연스럽게 1지망으로 선택됩니다.

그런데 특정 분야에 신청자들이 유독 많이 몰릴 경우, 선정 과정에서 제외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요..? 그럴 때는 여러 분야에 중복 댓글을 다는 수고 없이 2지망으로 선택하신 분야의 리뷰어로 선정되실 수 있도록 참고하겠습니다.

 

* 선정 Tip)

1)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전체 공지글을 내 블로그에 스크랩하시고 그 주소를 꼭 달아주세요!

블로그 이웃들에게 널리 홍보하면 좋은 일이 있습니다 ^-^

주의!! 지금 보고 계시는 이 글이 아닙니다.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2014년 1분기 모집 전체 글 공지를

스크랩 하셔야 합니다.

▶ (공지글 확인!)

2) 신청 분야와 관련하여 '가장' 자랑하고 싶은 나의 리뷰 주소 링크를 기입해 주세요!

3) 여러분의 결연한(!) 각오를 보여주세요^^ 앞으로의 리뷰어 활동에 대한 기대, 임하고자 하는 각오, 포부 등등 다양하게 적어 주시면 됩니다~

 

* 꼭 읽어주세요!)

1) 각 분야별 리뷰어는 리뷰어클럽의 사정에 따라 20명 미만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

2) 1분기 리뷰어 신청 기간은 12월 23일부터 1월 6일까지입니다. 많이 많이 참여해 주세요^^

3) 정기 리뷰 도서는 2주에 한 번씩 배송될 예정입니다. 도서가 2회 배송되었음에도 리뷰를 미처 작성

지 못하실 경우, 해당 분야에서 자동으로 제외됨을 알려 드립니다.

4) 리뷰 기한은 도서 배송일을 기준으로 "2주 후 금요일"까지 리뷰를 작성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1월 2일도서를 받으셨다면 그 날을 기점으로 2주 후 금요일인 1월 17일까지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5) 만약 도서 배송이 늦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정기도서 리뷰 공지 밑에 댓글로 남겨 주시거나 방명록으로 꼭 알려 주세요! 리벼c가 확인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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