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caesim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dilettanta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caesim
caesim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3월 스타지수 : 별21
작가 블로그
전체보기
가끔 쓰는 일기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23 / 0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최근 댓글
내용이 없습니다.
새로운 글
오늘 1 | 전체 1521
2019-09-10 개설

전체보기
고양이와 나 | 가끔 쓰는 일기 2020-01-03 22:07
http://blog.yes24.com/document/1196089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언젠가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물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한 적도 있다. 아마도 가장 외로웠던 시기에. 혼자 미국에서 살고 있을 때 나는 몇 번이나 유기동물 보호 센터를 찾아갔었다. 그러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 매번 발목을 잡았고, 그 고민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2년 마다 좁은 원룸으로 이사를 다녔고, 출장과 해외 여행이 무척 잦은 편이었다. 직장이 바쁠 때는 집에서 잠만 자는 판국이었는데 감히 동물을 데려올 수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면 한 마리 키우지.' 주변 사람들은 쉽게 말했지만 내게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 바랐으면서도 선뜻 들이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동물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다. 삶을 연명하는 고양이가 아니라 행복한 고양이로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운명의 고양이'를 기다린다고 말해왔다. 정말 인연이 닿는다면 내게 와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내 운명의 고양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을 종종 해보곤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코는 분홍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음을 줬던 고양이들이 모두 분홍색 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첫번째 고양이를 만난 건 막 공연기획사를 때려쳤을 때다. 마침 아는 배우 오빠 한 명이 유럽 여행을 간다면서 그 기간 중 고양이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퇴사도 했겠다, 못 맡아줄 이유가 없어서 룸메이트의 허락을 받고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배가 하얗고 코는 분홍색인 치즈 태비였다. (주인은 아비시니안이라고 믿고 있었다.) 고양이치고 둔해서 점프가 어설펐고, 식빵 냄새를 좋아해서 식탁 위에 빵 봉지를 올려놓으면 물어뜯어 풀어헤쳐놓기 일쑤였다.

그 애에 대해 잊을 수 없는 순간이 하나 있다. 낮이었고, 나는 선잠을 자고 있었다. 도중에 고양이가 조심스레 내 몸 위로 올라와누웠다. 그렇게 서로 마주본 채로 편안히 숨을 쉬다가, 잠시 후 잠에 빠진 고양이는 스르르 미끄러져 내 팔 사이로 들어왔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양이였고 잠시간의 탁묘일 뿐이지만 내 자식 같았다.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낸 후에도 생각이 많이 나서 종종 잘 지내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고양이가 갑자기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 뒤 그대로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주인은 온 동네를 헤매며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일 이후 7년이 지났다. 시간이 흘러 고양이 주인과도 연락이 끊겼지만 아직도 그 애가 종종 생각난다. 사람과 붙어 자는 걸 좋아하던 애교많은 고양이는 다시 새 주인을 만났을까? 혹시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생각을 하다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울적해진다.


4년 전, 회사에서 팀을 새로 꾸려 근무지를 옮겼다. 막 사무실 인테리어를 마친 새 건물에 입주했을 때,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만든 건 건물 뒤 정원에 웅크리고 있던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 삼형제였다. 새 환경에 적응하면서 당연히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병이 나거나 다쳐서 오면 팀원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병원 치료를 해주곤 했다. 끝끝내 사람 손을 타지 않던 첫째, 막내와 다르게 둘째는 사람을 좋아했다. 정원에만 나가면 신발 끝에 코를 비비며 뒹굴곤 했다.

무척 추운 겨울이었다. 혼자 1층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둘째가 나타났다. 멀리서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게 가까이 다가와 애처롭게 울기 시작했다. 내 다리에 몸을 꼭 붙이며 따라다니거나, 걸음을 옮길라치면 가지 못하게 신발 위에 배를 깔고 누워버렸다. 그날 따라 묘한 행동을 반복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자신을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소리가 아닐까?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너무 많은 고민을 했다. 수 년 내 조만간 다시 해외로 거주지를 옮길 가능성이 발목을 붙잡았다. 연민과 충동과 향후 십수년간 짊어질 책임감 사이에서 무척 갈등했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데려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출근한 날부터 둘째가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봄, 그 건물을 떠나 본사로 철수할 때까지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성묘가 되었으니까 구역을 떠난 건지도 모른다. 애교가 많으니 다른 사람에게 예쁨받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외 다른 사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주변에 가면 혹시 몰라 골목 골목을 돌아본다. 다시 그 애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그 고양이가 마지막 날 울면서 내 신발에 코를 비빌 때, 자신을 데려가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린 나에게 상처받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다음에는 늦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했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고 생각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어긋나기도 하고, 자력으로는 도무지 붙잡을 수 없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2년 전, 동생이 아주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정을 거기에 다 쏟아부었다. 게다가 앞으로 십수년은 거주지를 옮겨가며 바쁘게 살테니 무리해서 가족을 더 만들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인연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모양이다.

인연이 있던 두 고양이는 모두 약속한 것처럼 치즈 태비에 코가 분홍색이었다. 그런데 세번째 고양이는 처음 봤을 때 코가 분홍색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눈부터 코, 입주변까지 새까만 딱지가 크게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가끔씩 발작하듯 팔다리를 떨었다. 반쯤 뜨인 눈은 하얗게 부은 결막이 덮여있었고 나를 보다가도 눈알이 휙휙 돌아갔다.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심각한 얼굴로 보고 있자, 고양이가 아파보여서 그런지 입양처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을 보탠다. 고양이는 아주 귀여운 새끼 때를 막 지났다. 임시 화장실에는 대소변이 가득했다. 고양이는 거기에 힘없이 머리를 걸치고 누워있었다.

이 다음엔 늦지 않기로 했는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제가 데려갈게요.' 덜컥 그렇게 말하고 그 길로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자기 화장실에 웅크리고 누워있던 고양이에게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하던 중 온 몸에 물린 자국이 있는 걸 발견했다. 의사 선생님은 개에게 물린 상처같다고 했다. 집에 데려온 뒤에 한참 숨어있던 녀석은 TV에서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처음으로 기어나와 '앙, 앙'하고 짖었다. 누군가를 찾듯이, 꼭 개가 짖듯이.


그 애는 우리집에 온 첫날부터 내게 꼭 붙어 잤다. 씻기지 못해 여전히 악취가 났지만 떼어낼 수가 없었다. 고양이가 잠들자 홀로 또 생각이 많아졌다. 내게는 2주 후 긴 해외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필 이런 때에 데리고 오다니... 휴가 때는 동생에게 잠시 맡긴다 쳐도, 수 년 내 다시 해외 생활을 할 계획도 있는데 그때에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마를 살짝 만져주자 고양이는 배를 드러내며 힘차게 골골거렸다. 전신에 피딱지를 매단 채로, 결막염 때문에 눈도 뜨지 못하면서. 또 다시 한숨이 나왔다. 반려동물을 들인다면 이왕이면 건강한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은 것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택지가 많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고양이를 본 순간부터 내 선택지는 이 애 하나였고, 오직 문제는 이 다음에 일어날 일들이었다. 어떤 병이 있거나, 내 상황이 어떻게 되거나... 생각해보니 나는 어떻게든 이 애와 같이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 세번째 고양이는 나와 함께 살고 있다. 다행히 큰 병은 없었고, 잔병은 깨끗이 치료받았다. 눈과 코의 딱지가 떨어지고 살이 오르자 동그랗고 예쁜 얼굴도 드러났다. 형광빛이 돌 정도로 선명한 분홍색의 코는 잘 때는 연분홍색이 된다.

그 분홍색 코를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혹시 이전에 스쳐지나갔던 두 번의 인연이 다시 내게 와준 건 아닌지...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상상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된다.

최근엔 내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올해 예정되어 있던 연수를 취소하는 대신,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늘려보기로 했다. 나중에 또 선택에 기로에 설지도 모르겠지만... 반려동물을 해외로 데리고 가서 사는 건 힘들고 번거롭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야옹아,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지?'

가끔씩 다짐하듯이 고양이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여전히 고양이처럼 우는 법을 모르는 내 고양이는 짖듯이 '앙, 앙' 하고 대답을 한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7        
1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