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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 소설 2020-09-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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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열린책들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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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었다. "선은 선대로 쌓이고, 죄는 죄대로 쌓인다."

평생 나쁘게 살다가 죽기 전 착한 일 크게 했다고 쌓인 죄들이 사라지지 않으니 매일 착하게 살라는 말이다.


심판. 누구도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폭력과 혐오, 냉대로 가득 차지 않을 테니까.



하루에 담배를 세 갑씩 피우다 폐암 말기에 이른 아나톨 피숑은 그래도 살아보고자 수술대에 올랐지만 소생 가능성은 없는 상태. 더욱이 의료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수술은 엉망이 된다. 프랑스 의료계 현실은 잘 모르겠지만, 의사가 수술을 마치지도 않고 휴가를 떠나버리다니!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나라라고 하지만 충격적이다. 물론 아나톨이 죽음을 맞은 것은 의사 때문이 아니다.(그 이유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밝혀진다. 그 또한 약간 충격)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천국에 도착한 아나톨은 변호사 · 검사 · 판사를 차례로 만나면서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재판장에 선다. 살아서는 범죄를 심판하던 판사던 그가 죽어서는 피고석에 앉아 재판을 받다니. 삶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심판 결과에 따라 천국에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과연 어떤 재판이 펼쳐질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기존에 그가 써왔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우선 이 작품은 희곡이며, 정극도 아니다. 장르를 정의하자면 블랙코미디 정도? 심각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우선 아나톨의 죄목을 보자. 그의 첫 번째 죄는 천생배필인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하룻밤의 치기로 천생배필을 만나지 못하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또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자녀들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고,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았다. 거기에 크고 작은 신호위반과 노상방뇨, 욕설 등 거친 행동들이 모두 그의 죄로 추가된다. 그의 죄목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재능을 낭비한 죄다. 원래 그는 배우가 될 운명이었다. 국민배우가 될 재능과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판사가 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직업이 있었다고? 운명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나? 상상과는 너무 다른 재판 과정이 물음표가 계속 생기지만, 그의 재판이 끝나갈 때쯤, 그의 죄목들이 왜 죄가 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아나톨의 삶 자체가 그가 원하던 삶이었음에도 그는 다른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현재의 삶은 전생의 업이 쌓인 것이기에 현실을 부정하거나 개탄하기보다는 다음 생을 위해 오늘을 잘 살라고 하는데, 소설 『심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비슷하다.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좌충우돌 난장판 같은 재판이고, 어떤 교훈이나 조언도 없지만 충분히 이해했다. 오늘을 잘 살아야 후회도 없고 미래도 있음을.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왜냐면 이 삶은 내가 선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희곡이라,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면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연출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달라지겠지만, 화실히 재미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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