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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생활기록부 | 버뮤다 NO! 리뷰다 2021-11-2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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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령생활기록부

나혁진 저
몽실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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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허영풍, 나이 35세로 무직이다. 오늘도 한방을 노리며 걸었던 도박판에서 100만원을 허공에 날린 영풍은 홧김에 재떨이를 벽에 집어 던지고 집을 나서게 된다. 거하게 단골 바에서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칼에 찔리게 된다.

 

방금 전까지 내가 기대 앉아 있었던 그것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아직도 꿈속에 있나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다시 쳐다봤지만 틀림없었다. 끔찍한 고통으로 잔득 일그러진 얼굴에 두 눈을 부릅뜬 내가 앉아 있었다. -p.16-

 

그렇다. 영풍은 죽어서 유령이 된 것이다. 내가 죽다니……. 거기에 유령이 되다니! 한순간에 산자에서 죽은 자가 된 그는 자신이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체 운반용 자루에 실려 가는 자신의 시신을 보고 작별인사를 한 영풍을 본인이 살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입으로 가봤자 할 일이 없던 영풍은 결국 또 다른 유령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할아버지는 유령이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죽으면 유령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아파트 앞 벤치에서 초등학교 3학년 박철우라는 어린이를 만나게 되고 갈 곳이 없던 영풍은 철우네집에서 잠시 머물게 된다. 철우의 죽음에 의문이 생긴 영풍은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한 끝에 철우의 죽음 뒤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게 되면서 유령이 된 사람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승에 무슨 미련이나 한이 남아서 유령이 되는 게 아니었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느냐, 없는냐가 열쇠였던 거야. 난 내 죽음에서 도대체 무엇을 납득하지 못했기에 이런 신세일까.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연쇄살인마에게 운수 사납게 걸려든 것뿐인데. -p77-

 

원한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해 납득을 하지 못할 경우에만 유령이 된다니. 원한을 품은 유령은 초능력이라도 생겨야 죽어서라도 원수에게 복수를 할 텐데, 허영풍처럼 죽어서도 아무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면 천년만년 유령으로 사는 것도 끔찍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비리나 잘못을 알아도 상대방에게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영풍은 유령이 된 이후에 생전에 자신과 관련이 있었던 인물들을 찾아가게 되고 증거수집과 자신의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고 사건 이면의 진실들을 알게 된다. 살아생전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예전 지인들과 새로 만나게 된 유령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영풍은 죽어서는 그나마 쓸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살다보니 어느덧 죽은지 20년이 훌쩍 지나게 되고 결국은 엄마의 죽음까지 보게 된다. 과연 영풍은 자신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유령생활기록부에는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숨을 쉬면서 살아 있었지만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영풍은 유령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영풍의 옛 지인들도 숨은 쉬고 있으나 죽은 것과 다를바 없은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영풍은 유령이 되고나서 영화나 소설에서 본 것처럼 대단한 초능력이라도 얻게 될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지 못한다. 물건조차 만질 수 없는, 이승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한 명의 유령일 뿐이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저마다의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가 있다. 생기부에는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독서이력, 체험학습, 교우들과의 관계 등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담임교사가 기록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 생기부만 보면 본인이 초중고생활을 충실히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생기부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나름 객관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생기부는 나를 평가하기 위한 용도(고등이나 대학입시)로 사용되기 때문에 나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기엔 다소 부족하다.

 

이에 반해 허영풍이 써내려간 유령생활기록부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직접 기록한 생기부이기 때문에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나의 본모습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학창시절의 생기부가 엉망일지라도 그건 학창시절 이후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죽어서 유령생기부를 쓸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생존생활기록부(생생부)’를 써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인간이라는 종이 등장한 이래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생존이었다.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해도 생명유지를 위한 생존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인간답게 나답게 사는 생존이 중요한 시대이다. 단지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되 유령 같은 삶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작은 일들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나다운 생존을 이어갈 수 있기를.

 

 


#유령생활기록부

#나혁진

#몽실북스

#케이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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