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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프 도쿄》 도시 전설 들려주는 자칭 흡혈귀와의 인터뷰 | 책리뷰 2021-10-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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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피타프 도쿄

온다리쿠 저/권영주 역
비채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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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동명의 희곡을 집필하고 있는 K가 자칭 드라큘라라고 말하는 신비의 인물 요시야와 함께 도쿄를 거닐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요시아는 도시 괴담, 도시 전설 등 비밀을 가르쳐 준다며 K를 이끈다. 도쿄의 묘비명(에피타프 epitaph)을 찾기 위해 둘 은 이곳저곳을 떠돈다.

 

'피스'는 두 주인공의 일상을 그렸으며, K가 쓰고 있는 여성 킬러와 클럽 이야기는 '에피타프 도쿄', 요시야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드로잉'은 세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섞이고 스며드는 장르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따라서 한 권의 소설집처럼 단행본으로 묶여 있지만 옴니버스 영화를 보고 있는 듯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마치 과월 호 잡지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라떼는 말이야", "그땐 그랬지"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딱히 소설이라는 장르 하나에 국한하기 보다 때로는 논픽션, 희곡, 에세이, 메모, 인터뷰 등 크로스오버 장르가 온다 리쿠를 사랑하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piece는 무색, drawing는 파란, 희곡은 보라, 메모는 분홍 등 장르 구분과 디자인적 아름다움도 살렸다. 실험적이 유연한 사고로 마니아층을 이루고 있는 그가 픽션과 논픽션, 판타지와 다큐멘터리, 어제와 내일을 합하게 다룬다.

 

인상적인 것은 도쿄 올림픽이 결정되는 순간 이스탄불 올림픽이었으면 어땠을까란 상상을 하는 대목이었다. 왜 하필 터키지 싶지만,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감이 좋고, 이슬람 국가 최초로 올림픽이 열리는데 그게 동양과 서양의 다리 역할을 했던 도시라면 큰 상징성을 갖지 않겠냐는 거다. 그게 21세기 정신에 걸 맞는 올림픽 선정이라는 말이다. 결국 일본은 올림픽을 1년 미루고 올해 개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소설 속에서나마 가정해 보는 이스탄불 올림픽을 상상해 봤다.

 

도쿄를 소재로 하기에 소설 속에는 도쿄와 관련된 영화도 소개된다. 자신을 흡혈귀라 말하는 남자와 대화를 하고,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도시 전설의 성격도 갖는다. 활기차 보이는 도시 사람들의 내면에 가득한 공허함, 그리고 가면 뒤에 진짜 표정을 봐왔다는 K의 말은 도시 사람에게 큰 자극이 된다.

 

읽으며 읽을수록 함께 밤 마실 가거나 도쿄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다. 하지만 친밀해졌다기보다는 붕 떠서 도시를 내려다 본 형태다. 소설이 좋았다면 봉준호, 레오스 카락스, 미셸 공드리가 각각 연출한 옴니버스 삼부작 <도교!>를 추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낯선 도시의 불통을 경험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좋겠다. 그래서 찾았나 모르겠다. 과연 도쿄에 어울리는 묘비명은 무엇이었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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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 사랑》 사랑의 모양은 다양하다 | 나의 리뷰 2021-10-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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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일까.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게 사랑일까. 사랑의 모양은 다양하고 알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할머니를 직접 세상에 나가 알아보라고 말한다. 오래 살았던 할머니도 선뜻 말해줄 수 없는 것. 사랑은 직접 느껴보는 거다.


 

소년은 답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길에서 만난 어부, 연극배우, 고양이, 목수, 농부, 병사, 병사, 마부, 시인 등 사람들은 각자 다른 답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소년에게 사랑의 정의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온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말이다.

돌아온 부쩍 소년의 키는 자라 있었다. 할머니는 떠날 때 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나이 들어 소년은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답을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물었고, 소년은 그제서야 답을 알 수 있었다.


 

책은 2017년 칼데콧 수상작 《홀라홀라 추추추》 등으로 유명한 카슨 엘리스의 신작이다. 미국에서는 12월 말 출간 예정이지만 한국이 전 세계 최초로 10월 20일 출간한다. 짧은 그림책이지만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사랑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질문과 사유를 제공하는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책이다. 스토리텔링 작가 맥 바넷과 일러스트레이터 카슨 엘리스의 콜라보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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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변론》 자연에도 권리가 있다 | 책리뷰 2021-10-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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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구를 위한 변론

강금실 저
김영사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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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선물로 받은 지리산 공기캔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누가 물을 용기에 담아 파냐고 했던 게 이제는 당연해진 오늘. 몇 년이 지나면 공기도 캔에 담겨 사 마셔야 할지 모른다. 나와 먼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내 일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벼랑 끝에 다다라있다. 이제 기후 변화는 공포가 되어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왔다.

 

오늘도 친환경, 아니 필(必) 환경 생활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일회용품을 줄이기로 다짐한 지 몇 년째 장바구니와 텀블러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 배달 음식은 단 한 번도 시켜 먹지 않았다. 외출할 때마다 짐은 늘어나고 부주의로 담긴 내용물이 흘러나와 난감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외부 음식을 포장해야 한다면 미리 포장 용기를 준비해 다녔다. 누구는 유난 떤다고 비아냥거렸고, 누구는 너 하나 그런다고 달리지는 게 있냐고 말했다.

 

"지구적 지질 시간에서 지구와 상호 작용하는 이 새로운 공동체는 ‘지구 공동체’라 불릴 것이다. ‘생태대’는 지구 공동체의 또 다른 뜻이다. 여기에서 발전한 개념이 자연과의 조화이며 자연의 권리다. 새로운 지구 공동체는 진화의 서사인 우주론과 거기에 터 잡은 지구-인간의 관계를 공동체 정신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지구법학의 철학을 형성한다. " P133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탄소중립법(기후대응법)제정을 웊앞에 두고 있다. 책은 문명 전환의 원인과 배경,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환경을 소재로 책을 쓴 사람의 이력이 궁금할 것이다. 최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이다.

 

지난 10년간 공부한 사유적 생태학 세계관과 지구 거버넌스를 제시한 책이다. 정치, 사람과 지구라는 공동체 세계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지금 상황을 이야기한다. 자연에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그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팔을 걷어붙이고 지구를 위해 변론에 나섰다. 그동안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전반부에 있다. 환경 관련 소재의 책을 읽어 봤다면 앞부분 보다 후반부의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올해 개봉한 영화 <그레타 툰베리>를 봤다면 심도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또한 영화 <듄>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스파이스라는 지금으로 따지면 석유 같은 물질을 놓고 행성과 가문 간의 전쟁이 발발하는데, 지구에서 벌어지는 석유 전쟁과 생태학적 접근까지 담겨 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니 훨씬 우리 행성 지구의 입장이 궁금해졌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변론이 인상적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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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여성이 원하는 것들 | 책리뷰 2021-10-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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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욕구들

캐럴라인 냅 저/정지인 역
북하우스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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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체중계에 올라간다. 몇 년 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철저하게는 아니지만 몇 몸무게를 관리하고 전날 먹는 음식과 운동을 생각한다. 전날 저녁 과식했다면 다음날 체중계의 숫자는 불어 나 있다. 예정된 절차처럼 죄책감이 몰려온다. 더 걷고 요가도 충실히 한다. 먹는 양을 의식적으로 줄인다. 그러면 숫자는 줄어들어 있다.

외모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연예인의 후덕해진 모습만으로도 관리 소홀을 탓하며 비난하는 사례는 흔하다. 그저 좀 먹고 싶었을 뿐이고, 더 게으르고 싶었을 뿐이지만 용납되지 않는다. 화면에 비치는 V라인 얼굴과 마른 몸은 내가 갖지 못한 환상이고 이를 비춰주는 연예인은 환상이다.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아플 때도 있다. 이는 일상에도 이어져있다. "너 좀 살찐 거 같다?"라는 말은 공공연한 안부 인사기도 하다. 그 말은 같은 유독 여성에게 듣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어 외모를 관리하고 채근하는 차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는 자기 몸을 사회의 규정에 맞추지 않고 주체적으로 들여다보는 페미니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미디어에서 아름답다고 규정하는 외모에서 벗어나 스스로 예쁨다는 것을 알아가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용기라 볼 수 있다.

"현대 소비문화에서 여성은 욕망의 주체-스스로 대상을 욕망하도록 부추김 당하는 사람-인 동시에 욕망의 주요 대상이며, 관능적이로 날씬하고 육체적으로 완벽한, 대대적으로 유포되는 이미지의 핵심 판매 도구라는 기묘한 임장에 처한다. " P41


이는 비단 식이장애뿐만이 아니다. 음식중독,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성욕, 야망, 채워지지 않는 쇼핑 중독 등. 풍족한 세상에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개인의 문제(낮은 자존감)라기 보다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다. 비만인이 많은 미국인의 허리둘레가 자제력을 잃는 그들의 책임일 수도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식품(가공식품, 인스턴트)를 쉽고 더 많이 소비하게 유도하는 문제점, 가난할수록 싼 패스트푸드를 구하고, 의료, 운동시설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저체중으로 태어나 유모의 묽게 탄 분유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최초의 포만을 누리지 못한 허기일지 모르지만 이후 다양한 갈등과 두려움이 커져 굶기로 이어진 듯하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이후 '굶으면 어떻게 될까? 낮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커피만 마신다면?'이란 호기심을 실험에 옮겨왔고, 이는 자제력이 만든 약간의 희열과 섞여 긍정적으로 작용한 듯싶다.

이로써 세상을 향한 불안함과 자아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어른 여성은 '굶기'를 통해 충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가 아프고 배가 아팠다. 옆으로 누우면 갈비뼈가 옆구리를 찔러 냈고, 생리도 끊겼다. 쪼그라들고 변화되는 몸을 보며 이룰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책은 2002년 41세에 요절한 '캐럴라인 냅'의 자전적이고 인문학적인 에세이다. 24세 때 체중 41kg를 맴돌며 거식증을 진단받았다. 식욕은 불안한 단어였고 이는 알코올 의존으로까지 이어져 삶을 지배했다. 이후 폐암 진단을 받아 투병했으며 책은 이후 세상에 나왔다. 캐럴라인은 암 진단받기 2개월 전 책을 탈고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인지했던 걸까.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이번만은 달랐던 것 같다. 마치 출산의 고통처럼 책을 집필했고 여성들은 이 책을 읽으며 한 뼘 더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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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수록 단편- 영화원작소설 | 책리뷰 2021-10-0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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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문학동네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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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중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원작 소설이다. 국내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7개를 묶어 표제작 《여자 없는 남자들》로 2014년 출간되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그가 존경하는 작가 헤밍웨이의 노골적인 오마주라고 해도 좋다. 하루키는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에 영감받아 재해석한 소설이다.

 

 

 

그중 첫 번째 단편으로 등장하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마흔일곱의 배우 가후쿠가 녹내장으로 운전이 어려워 드라이버를 구하는 내용이다. 하루키 문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상실'이 주제다. 가후쿠는 아내와 낳은 지 사흘 된 딸을 먼저 보낸 중년 남성이다. 배우지만 딱히 인기가 있다기 보다, 연극 무대에서 길고 가늘 게 지낸다. 주연급보다 낯익은 조연으로 친숙한 배우다. 연기는 능수능란했고 큰 추문 없이 아내와 20년을 살았다.

 

 

 

그는 여성 운전자에 대한 두 가지 선입견이 있었다. 난폭한 쪽과 신중한 쪽 두 부류로 나뉜다고 단정했는데 여성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 전속 운전사 구인에 카센터 사장이 젊은 여성을 추천해 줬을 때 마뜩잖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능수능란한 배우답게 빙긋 웃으며 연기했다. 사장은 운전 실력 하나는 보장한다는 알 수 없는 말로 추천했다. 빨리 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가릴 수가 없었다. 운전사를 빨리 구해야 했다.

 

 

 

그렇게 스물네 살의 미사키를 소개받았다. 딱히 미인이라 할 수는 없고 퉁명스럽지만 운전 하나는 똑 부러지게 했다.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도교 시대는 척척 차를 몰랐다. 십 년째 몰아온 노란색 사브를 마치 본인 차인 듯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요새 연극 무대에 올리고 있는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다. 메이지 시대 일본으로 각색했다. 미사키는 때때로 가후쿠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가후쿠는 미사키가 운전하기 시작하자 죽은 아내 생각이 커졌다. 대가와 거의 없던 둘은 갑자기 미사키가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친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스물아홉에 만나 자궁암으로 죽을 때까지 이십 년 아내를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다른 여성과 잠자리할 기회가 여럿 있었지만 가후쿠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최소 네 명의 남성과 정기적인 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본인 입으로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촬영이 끝나는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듯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했다. 다면 아내의 외도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묻지 못했고 아내는 함구했다. 이도 그럴 것이 어디까지나 가후쿠의 추측이기 때문에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막히는 도로 위에서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아내의 내연남 중 한 사람과 친구가 된 일화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괴로운 것은 인생의 반을 함께 했지만 진정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 사람도 네 남성 중의 한 사람이라는 추측일 뿐이지 확인을 한 것은 아니다. 가후쿠는 그 남자(다카쓰키)를 만나 아내 이야기를 하며 술친구가 되어 갔다. 사십 대 초반의 미남 배우였지만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뭔가를 캐내려거나 복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호감이 있었고, 아내를 이해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하는 게 가깝겠다.

 

하지만 가끔 그의 손을 보며 아내를 쓰다듬었을 것을 상상하기는 했다. 같은 배우지만 자기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취중진담이라고, 진솔함을 엿봤고 둘 다 한 여성을 잊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 후 가후쿠가 연락을 끊자 그쪽도 연락을 끊어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아내의 네 남자 중 한 사람과 만나 보았지만 여전히 아내의 의중은 오리무중이다.

 

하루키의 모호한 무경계성이란 특징이 재현되는 단편이다.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두 사람은 전혀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르지만 대화를 통해 공통점을 찾아간다. 가후쿠는 아내와 (살아있다면 스물네 살이 되었을) 딸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알코올 중독이었던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고 고아가 된 미사키는 여덟 살 때 집 나간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나이가 그와 같았다. 둘은 고용인과 피고용인, 남성과 여성, 혹은 유사 부녀관계를 형성하며 모호한 관계를 쌓아간다.

 

 

"생각하기 싫은 것까지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도 떠오르고. 하지만 나는 연기를 했어. 말하자면 그게 내 직업이니까." P37

 

마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업적 소신을 갖춘 가후쿠의 숙달된 연기일 수 있다는 설정도 든다. 아내의 외도를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 연기한 것처럼, 외도 상대를 만나서도 적당히 연기를 했다. 역시 그는 프로였다.

 

비밀을 알고도 모른 채 타인을 연기하는 카후쿠는 무대를 떠나 집에서도 있는 힘껏 연기했다. 관객 없는 연기를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다카쓰키는 가후쿠와의 대화에서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지 묻는다. 깊이 사랑한다고 해도 속내를 읽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후회가 밀려온다. 죽기 전에 아내에게 물어볼 걸 그랬다.

 

어쩌면 미사키와의 대화도 연기의 일부일지 모르며 미묘하게 위치가 바뀔지 몰라도 배우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는 일과 일상을 on/off로 자유롭게 이용할 줄 안다고 자부한다. 무대가 지나고 다시 원래 인격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알았기에 다 안다고 자부했던 타인이 전혀 모르는 사람 같은 낯섦. 그 내면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허무주의와 외로움, 상실, 어둠이 꾹꾹 담겨 있다.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 맴도는류의 전형적인 하루키 스타일이 담겼다.

 

오랜만에 하루키 소설을 읽으니 그의 소설에 탐독했던 20대가 그리워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활자를 읽어갔던 때. 나이가 든 30대에 다시 읽어보면 그때와 다른 감흥이 찾아올 것 같다. 하루빨리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풍성한 이야기 살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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