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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만큼은 양보 못하지 | 생각 나누기 2020-10-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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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을 골라본다면 아무래도 커피가 1등이지 않을까 싶은 직장인 생활은 향기가 날까. 어린 시절부터 나의 입맛을 길들이기 시작했던 커피맛 나는 아이스크림은 달콤함으로 그런데 무언가 깊은 맛으로 온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텔레비전에 나오는 캔 커피 광고에 눈을 뜨고, 안성기 아저씨의 그 유명한 광고를 살펴본다. 어느새 나의 손에는 캔에 담긴 커피나 자판기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대학생으로 업그레이드 된 나는 카페에 앉아서 길거리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의 여유를 사랑했다. 물론, 옆에 누군가와 함께 하면 더욱 행복하겠지만 혼자서도 참 잘했던 시절이었으리라. 심지어 동아리 활동을 할 때에도 나를 보면 커피만 떠오른다고 했을 정도니 얼마나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을까 싶다.

 

  금식수련회라는 활동을 하러 갔던 어느 때에도 난 맛있는 식사는 다 참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뽀얀 수증기가 올라오는 보온 통을 바라보는 순간에 난 오로지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일념 하나에 갇혀버리고 말았었다. 온 종일 커피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중독인가라는 고민을 안겨주었던 그 시간이 그립다.

 

  어느새 졸업을 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나에게 삶의 활력소는 역시 티타임이었다. 어김없이 내 손에 들려있는 까만 액체.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보면 개운해지는 느낌적인 느낌을 좋아하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에서 제공하는 커피는 참 싫어하는 나. 꼭 내가 원하는 맛의 커피일 수 없으니까.

 

  현재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사장님은 과거 커피관련 유통업을 하셨기에 구비되어 있는 커피 머신의 수준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밖에서 사서 마신다. 원두는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지만 말이다. 예가체프하고는 나와 맞지 않는 친구인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나에게는 깊고 다크한 커피 어울린다. 까만 나의 피부톤과 어울려서 그런 것일까. 인생의 쓴맛을 일찍 알아버린 탓이라고 위로해본다.

 

  밥은 건너뛰더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는 늘 내 옆에 존재하고 있다. 생활의 필수품처럼 존재하게 된 기호식품, 커피. 이제는 커피가 없는 일상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 마치 만화영화 둘리에서 ‘맛있는 라면’을 노래하던 마이콜과 겹쳐지는 내 모습이랄까. 생김새도 행동도 라면에서 커피로 바뀌어있을 뿐이지 복사판 수준이다.

 

  고종 때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시작한 커피는 어느새 국민 아이템이 되어 있을 뿐이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도 필수 아이템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에 무인도로 여행을 가야만 한다면, 그 곳에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침낭과 책,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커피를 선택할 것이다. 마치 영원한 동반자와 같다고 할까.

 

  내가 살고 있는 우리집의 아내도 커피를 즐긴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컸다. 스스로 의견을 말하고 컵에 있는 물도 마실 수 있지만 아직 커피를 마시기엔 너무 이른 나이다. 좀 더 자라나서 어느 순간 커피를 찾게 될 나이가 된다면 좋은 공간과 좋은 향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 유명한 별다방만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는 곳을 데려가 주고 싶다. 행복은 언제나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기에 말이다.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인생커피가 되지 않을까. 각자의 커피를 찾아서 마시는 것이 인생일 것이기에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기에 아직 삶은 아름답다.

 

  커피만큼은 양보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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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곱씹어보는 순간들 | 생각 나누기 2020-09-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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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보아야 할 책과 주요 관심사의 책,
그리고 서평단 활동까지 이어지다보니
어떤 책은 3일 이내로 끝맺음한다.
어떤 책은 묵상하듯 1달간 본다.

그리고 우선순위에서 밀려 5달 걸린 책도
시작한지 1년 반이나 된 책도 있다.

아이러니하게 벽돌책은 금방 지나간다.
그래서 기억에서도 금방 지나가는걸까.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 가면서
읽은 후 남기는 기록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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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 - 사유와 성찰 | 생각 나누기 2020-09-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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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 - 사유와 성찰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에 따르는 목적을 위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어린아이조차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서 읽는다.

 

  읽는다는 것의 대상은 무엇인가. 대중 매체를 넘어서 현존하는 모든 매체들은 문자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움직이는 영상으로 중심축이 이동되어졌다. 종이 위에 인쇄된 글을 통해서 사업을 영위하던 신문사들이 대거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 곳은 사라져간다. 심지어 방송국조차도 TV화면 안에 이루어지던 사업의 행위들도 인터넷으로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에 의한, 빅 데이터의 분석에 의한 자료의 이해와 예측이 가능해지는 시대이기에 격차는 더욱 더 커다란 것으로 벌어지고 말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모습이 재화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성에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대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보다 더욱 뛰어나고 명철한 알고리즘을 소유하고 있는 인공신경망을 가진 슈퍼컴퓨터를 이겨낼 것인가. 심지어 음악조차도 작곡해내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읽는다. 살아가기 위해서 읽고 소통하기 위해서 읽는다. 자기 자신의 만족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자기만족을 위해서 읽는다.

 

  그리고 이 읽어냄을 멈추는 순간이 타자와의 단절, 즉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초연결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소통의 불가는 죽음보다 더한 극한의 상황일 테니 말이다.

 

  바로 이 상황에서 코로나는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 정보의 소외, 만남의 부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웃들을 돌아볼 수 없을까. 그리고 그들을 비대면의 방법을 통해서라도 도울 수는 없을까.

 

  보다 적절한 관심과 배려만이 이들을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기에 더욱 더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는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종교에 의하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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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러움 | 생각 나누기 2020-09-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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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혹이란 시간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요즘에 가만히 생각해본다. 과거를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과 얽매여서 사는 것은 얼마나 많은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일명, 꼰대와 도우미의 차이도 종이 한 장과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와 함께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여서 예스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올드함 혹은 엔틱하다는 단어들을 사용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한글로 된 '예스러움'라는 단어가 더 좋은 것 같다. 혹시 이런 모습을 보고서 옛날 사람이라고 놀린다면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그저 이 단어가 좋은걸 어떻게 하겠는가.

 

  필력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품격을 느끼게 만드는 작가, 김훈은 작품을 쓸 때에 아직도 연필로 쓰는 분이라고 한다. 이런 자세에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것을 설교자라는 자리에 있는 분들에 대입하여 본다면 어떤 모양이 나올까. 요즘에는 준비하기 위해서 모니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 자판을 누르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일 것이다. 그렇기에 활자 하나가 갖는 힘에서 다소 떨어져 나온 것은 아닐까.

 

  물론, 말씀을 읽고 그것을 묵상하여 내면에서부터 성찰하여 나온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쉐마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된다면 다를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아닌 톨레 레게라는 방식을 쓴다거나 성서 일과에 따라서 본문의 선택이 주어진다면 또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다시금 돌아와서 예스러움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이것을 환원해보면 결국에는 기본기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기초가 단단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 더 읽기 쉽고 뜻을 알기 쉬운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읽는 언어와 말하는 언어는 다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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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을 통해서 본 소중함 | 생각 나누기 2020-09-0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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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남들은 예전에 다 보았다는 책, 오두막을 이제야 읽어보았다. 굼뜬 것은 아닌데 삶이 팍팍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살아내려고 우선순위를 뒤로 밀어놓았던 것일까 궁금해진다. 결국 사람만이, 사랑만이 남을 텐데 말이다. 조금 더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를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읽으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더욱 더 사랑 넘치는 사람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이전까지의 나는 무언가 무덤덤한 남자였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면서부터 ‘시나브로’라는 단어가 어울리도록 변해버린 나를 보게 된다. 예전에는 그저 안타까움만을 느꼈던 아동관련 NGO단체들의 짤막한 TV광고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깊어진다. 그리곤 집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느 샌가 뜨거운 눈물이 흐르려고 하는 나를 보면서 벌써 갱년기인가 싶기도 하다. 아직 불혹의 나이도 아닌데 너무 앞서서 생각한 것 같다.

 

  물론, 남자라고 감수성과 감정이입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전통 한국 사회에서의 아버지상은 과묵하면서도 지치지 말아야 하는 존재라고 페르소나를 쓰도록 만들었다. 아빠들도 힘들고 지치는 사람인데 말이다. 단지, 겉으로 표현을 잘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한걸음씩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가장이기에 묵묵히 걸어간다.

 

  다시금 책을 펼치면 주인공 맥의 인생을 나와 겹쳐서 읽게 된다.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에서 나타났던 여러 가지 아픔과 분노, 절망, 고통, 그리고 회복으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맥이 등장한다. 스스로를 용납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순간이었을까.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이었음을 인정하기까지 굴곡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내 몸이 어떻게 되더라도 자녀만큼은 내 가족만큼은 지키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자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시나브로 행복을 빼앗아간다. 아니, 미래의 희망을 손 놓게 만드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만약에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내가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견뎌낼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가 되지 않을까.

 

  “익숙함에 속아 XX를 잃지 말자”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SNS상에서도 사용되었고, 메신저의 프로필에도 많이 볼 수 있었던 문장이다. 느지막이 나도 이 문장에다가 소중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서 말하고 싶다.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가 정작 이 한마디 못 하고 이별을 하게 된다면 너무 서러울 테니까 말이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붙는 상황은 벌어지면 안 된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그 때에 우리는 통상 해피엔딩이라고 하는 것을 만나게 된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그리곤 때가 되면 품을 떠나서 가정을 꾸릴 확률이 크다. 그날까지는 그저 건강하게만 지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든 잘 하면 좋겠지만(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재이기를 바라는 욕심 한 스푼), 굳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아이들은 오늘도 성장한다. 그리고 매일 꿈을 꾼다. 나는 매일 개인의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매일 기억한다. 메멘토 모리. 언젠가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고 도와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문장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고마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소설에서도 보여주는 것처럼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럽기에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꿈만 같은 이 시간이 인셉션의 시간처럼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루어지긴 어렵겠지만 말해보련다.

 

“그대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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