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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YMCA : 일본 성남클럽, 베쓰볼 클럽 한일전의 열기 -YMCA야구단 | 전체보기 2016-06-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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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YMCA 야구단 : 블루레이


| 2013년 12월

작품     디자인/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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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이대호, 김현수 등 지금은 야구 본 고장인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도 한국 선수가 맹활약할 정도로 우리 야구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급이다. 

미국 선교사에 의해 야구가 도입될 때만 해도 이렇게 우리 선수들이 미국 본토에 진출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텐데..축구와 달리 야구는 룰도 복잡한데 그 룰을 제대로 이해했으려나 글로브나 배트, 포수 마스크 보호대 등 장비도 필요했을텐데..그 시대에 그걸 어떻게 구했을까. 아니 선수들이나 제대로 모을 수 있었으려나.

 

'YMCA야구단'이 바로 이 초창기 야구단을 담고 있는데, 단순히 오합지졸 같았던 YMCA 야구단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은 아니다. 을사조약 체결 무렵이라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국내 최강의 YMCA 베쓰볼 팀과 일본군 성남 클럽과의 대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비장하거나 진지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닌 가벼운 코믹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호창(송강호 분)은 갑작스레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은 선비이다.  하루하루 축구를 하면서 거의 무위도식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YMCA에서 야구하는 모습에 호기심과 흥미를 갖게 된 차에 야구단에 참여하고 있는 민정림(김혜수 분)에게 호감을 느껴, 야구단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호창의 죽마고우이자 친일파 아들 류광태(황정민 분)와 아직도 신분의식을 버리지 못한 젊은 양반, 한때 머슴살이했던 성한(이대연 분), 정림의 연인이었던 일본 유학생  오대현 (김주혁)등으로 구성된 YMCA야구단이 결성된다. 조선 최초의 야구단. 호창은 타고난 센스로 최고의 타자로 인정받게 되고, 대현은 투수로 맹활약하는 등 그들은 연전연승을 거두며 조선 최고의 팀으로 부상하고, 황성시민의 뜨거운 응원을 받게 되는데..

 

'YMCA야구단'은 다양한 신분의 선수들로 구성됐다. 전통적 선비, 일본 유학생, 친일파 아들, 머슴 출신 등..그리고 시대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개화학문에 밀려 점차 힘을 잃어가는 전통적 학문을 배운 호창, 호창은 큰아들을 대신해 자신에게 기대하는 아버지 몰래 야구단에 참여한 것이었다.

아직도 신분의식이 강한 양반은 자신의 집에서 머슴살이했던 성한을 대놓고 무시한다. 양반 체면에 머슴과 함께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을 들끓는다. 비분강개한 정림의 아버지는 자결하고  YMCA야구단이 연습했던 곳은 일본군이 주둔하게 되고, YMCA야구단과 일본군 성남 클럽이 맞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전통 학문과 신학문, 서구문물, 신분제가 폐지된 지 십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양반, 친일파 아들...등 봉건제도와 신문명과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야욕, 서구문물의 도입 등 당시 혼란스러웠던 조선의 사정이 이 야구단 속에 응축돼 있었다.

봉건적 제도와 문명의 자리에, 막 도입되기 시작하는 근대문명이 들어오는 가운데, 일제는 조선에 대한 침략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친일파가 저격당한 사건에 선수가 연루되면서 YMCA 야구단은 해산이 되고 만다. 그 친일파는 광태 아버지였고, 그를 공격한 이는 대현이었다. 대현은 정림과 함께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게 되고, 야구단은 더이상 경기를 할 수 없게된 상황이 된 것이었다. 

낙담하게 된 호창도 낙향해 아버지 곁에서 서당일을 돕게 되는데..

 

이 당시 조선에는 축구와 야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었던 조선에, 노동이 아닌 스포츠를 즐기게 된 것이나, 경기를 응원하는 것도  일찍이 조선에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자 근대성의 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일 베쓰볼 경기가 열리게 된다. 황성 YMCA 야구단 대 일본 성남 클럽간. 그야말로 장안의 관심이 이 대결에 몰리게 되고, 호창과 대현, 정림이 과연 이 경기에 등장할 것인지..

지금도 한일전은 그야말로 열전이 벌어지는데 일제의 압박에 시달리던 조선으로서 이 경기가 단순히 베쓰볼 대결만은 아니었다. 국가 대항전도 아니고 외면적으로는 클럽 대결이었음에도 YMCA 팀을 응원하기 위해 관람석은 그야말로 만원을 이룬다. 조선인들은 일본에 대한 저항을 야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일본군 클럽팀과 대결을 하기 위해 다시 모인 선수단들 야구를 통해 선수단은 갈등을 해결하게 된다. 호창 부는 아들이 조선 최고의 타자라고 자랑하게 되고 호창부는 전통에 기울어져있던 사고의 틀을 깨고, 서구문물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된다. 일본군과 경기를 하면서 양반도 머슴출신 성한을 인정하게 되는데..

 

작품의 흐름상 이야기의 초점은 한일 야구 대결에 맞춰져 있지만, 한일전보다는 'YMCA야구단'은 봉건성을 털어내고, 새로운 문물에 대해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에, 외세에 압력에 시달리는 조선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야구를 통해 봉건적인 낡은 틀이 깨지고, 변화하는 세상과 조선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대놓고 일본을 야유하고 조선팀을 응원하며 민족감정을 발산할 수 있었던 그 대결은, 일본에 억눌려있었던 조선인들에게는 잠시였긴 하지만 축제의 자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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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근대여성,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을 외치다-신여성, 개념과 역사 (작성중) | 전체보기 2016-06-2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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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여성, 개념과 역사

김경일 저
푸른역사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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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때 교양과목 중에 여성학을 선택해서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 강의는  한국 여성에 관련한 내용은 없었고, 서구여인들이 펼쳤던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성취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기억이 난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여성사하면 서구여성사에 경도됐고, 상대적으로 우리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해선 소홀하게 대했다. 신여성하면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던 여성이라고 여기는 등 이해가  일천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신여성, 개념과 역사'는 조선말과 식민지 치하에서 여성으로서 문제를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신여성에 대한 개념과 실체에 대해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는 조선말 혹은 일제치하에서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여성들을 전부 신여성이라고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근대 여성 사이에서도 세대와 이념에 따라 또 노선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근대여성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무렵으로  근대 교육을 받고 근대 지식과 교양을 지닌 새로운 유형의 여성들이었다. 이들을 '신'여성이라고 일컫게 된 것은 '구(舊)'여성 즉 봉건적이고 전통적이었던 여성과는 다른 사고와 의식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근대여성들 중 1870년대에 태어나1890년대 이후 사회 영역에 진출한 일군의 여성들을  1세대 근대 여성으로 일컫는다면,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로 이행하면서,이들에 이어 새로운 여성 집단이 출현했는데, 이들은 2세대 근대여성으로 불린다.

 

이들 대부분은 1890년대에 태어나 1920년대에 식민지 공공영역에서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은 여성들이 나타나면서 이념에 따라 민족주의, 자유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범주가 분류된다.

그런데 1930년대 이르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을 망라해서 다양한 성향과 활동을 보인 근대여성집단이 출현하고, 이들은 3세대 근대여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제 목소리를 낸 여성집단이라고 근대여성, 혹은 신여성으로  인식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대를 구분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탄생연대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세대에 따라 주목할만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근대 여성 내부의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1890년대를 근대여성이 출현한 시기라고 거론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시기이후 여성들이 가부장 남성 지배와 전제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평등을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여성 스스로 자각과 계몽을 위한 집단 활동에 나섬으로써, 그이식이나 활동에서 근대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여성 1세대와 2세대를 구분짓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성주의의 의식과 이념 그리고 실천에 있다. 주장했던 여성주의의 쟁점의 내용에서 공유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차이 또한 있었던 것이다. 그 공유와 차이를 가리고 구분하는 것이 세대 구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는 것이다.

1세대 근대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교육기회의 요구, 경제 독립, 직업과 사회활동의 필요 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전통시대 여인과 달랐지만, 1920년대 2세대 근대여성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1920년대 근대여성들은 자유연애와 여성 해방을 공론화하면서 1세대와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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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근대가 만났을 때, 그 신풍속도-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 전체보기 2016-06-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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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김태환,이미현,차선일 등저
채륜서 | 2014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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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다닐 때, 크리스마스 즈음에 산타 할아버지가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어슴프레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유치원에는 트리가 장식됐고, 하얀 수염에 빨간 산타복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의 등장은 어린 내눈에는 신나고 재미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거리에는 반짝이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며, 사방에서 캐롤송이 흘러나왔고, 크리스마스 이브때면 기독교 신자가 아닌데도, 친구나 연인들에게는 축제처럼 즐기는 날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가 조선에 소개된 것은  조선 말인데, 어느새 그 어느 명절보다도 전국민이 즐기는 날이 됐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뿐 아니라 조선말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근대 문물과 서구문화는 조선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때로는 전통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선망이 되기도 하고,욕망을 자극하면서 차츰 자리를 잡아갔고, 새로운 문화와 풍속도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에서는 근대 서구 문화와 문물이 조선의 일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자리잡으며 새로운 문화가 될 수 있었는지, 10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우리 생활 속에서 누구나 겪고 보게 되는 일상 속 문화가 됐기에 그럴 것이다.

 

일제 시대에 들어와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킨 것을 언급하자면, 서구식 의복과 서구식 화장술의 도입이 아닐까 싶다. 이 시기에는 바지통이 좁아지고 넓어지는 변화나, 흰옷 위주이던 것에서 벗어나 색과 무늬에서도 유행을 반영했고, 모자나 신발 등 패션관련 광고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패션으로 치장한 멋쟁이들이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박가분같은  화장품도 날개 돋힌 듯 팔렸는데, 이런 백분의 인기는 은은하게 자연스럽게 처리했던 전통적인 화장법에서 서구적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보이게 색조화장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상해보자면, 양장에 하이힐, 핸드백에 색조 화장을 한 여성에 모자에 와이셔츠에 넥타이, 양복을 빼입은 남자가 주는 시각적 효과가 엄청났을 것이고, 이들의 모습은 전통적인 미의식을 뒤흔들어 놓았다.서구적 기준에 걸맞게 아름답고 멋있어 지고 싶다는 조선인의 욕망이 한껏 고양됐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을 선호하는 층의 반감을 자아내기도 하고, 화장품에 중금속이 포함돼 있어서 사용자들이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지만,봉건 사회에서는 드러내놓고 추구하지 못했고, 억압해야 했던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고삐가 풀렸다. 조선을 지배했던 봉건적 가치에 균열이 일고, 근대적 서구적 욕망과 가치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근대 문물은 조선인들의 다방변에 스며들어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린이들의 놀이에 대한 의미나 장난감이 등장하면서 어른들은 그것들이 어린이들의 교육과 인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창경원의 벚꽃놀이는 그야말로 장안의 명소가 되고 상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는가 하면 어린이날이 제정되고, 어린이를 미래의 주역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돼 갔던 것이다. '어린이'란 명칭이 만들어진 것만해도 장유유서 질서가 공고했던 봉건사회에서는 무시됐던 연소자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나도 어렸을 때  벚꽃놀이 갔던 추억이 있다. 지금이야 윤중로 등 벚꽃 명소가 여러군데지만 저 당시엔 벚꽃놀이하면 창경원(지금은 창경궁)이었을 것이다. 벚꽃 놀이가 시작되는 날부터 창경궁은 상춘객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일제시대에 조선의 관혼상제 문화도 조금씩 변화해갔는데, 그 중에서도 신식 결혼식은 빠르게 보급됐다.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던 전통 결혼식은 신부에게는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면사포에 드레스로 대변되는 신식 결혼은 특히 신부에게 낭만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던 모양이다. 더욱이 신식 결혼은 근대 교육의 보급과 함께 빠르게 보급돼갔고, 신혼여행도 등장하면서 결혼 풍속도에 일대 변화가 일었다.

 

이렇게 쭉 변화된 일상들을 살펴보다보니, 조선이 한 폭의 그림이라면 동양화에서 서양화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적인 삶의 뿌리가 일제 시대때 도입됐던 근대문물, 문화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문화가 뿌리 내리기까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고,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은과 납같은 중금속이 함유됐던 화장품을 사용해서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른 사고가 발생했고, 일종의 증권거래소였던 미두 시장은 한탕을 노리는 투기장화 돼, 파산자가 속출했다. 매독과 같은 성병이 만연하기도 했고, 또 소비와 결합되면서 상업성이 강조되는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벚꽃 놀이는 벚꽃이 일본 국화 사쿠라라는 점에서, 일제 문화의 잔재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 문화가 우리 일상의 삶이 된 것은 조선사회를 지배했던 유교적 가치관과 봉건사회가 약화되고, 한편으로는 조선인들이 그동안 억눌러져 있던 욕망을 더 이상 억압하지 않고 발산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근대 교육이 보급되면서 조선인들의 감각과 가치가 조선의 그것과 달라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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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된 음식 | My Story 2016-06-2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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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트에 갔다가 고추장 불고기가 떨이길래, 사왔습니다. 원래 이렇게 양념이 다 된 반찬거리는 사먹지 않는데, 가격이 착하길래, 맛이 어떤지 궁금해서 한번 구입한건데,,아, 왜 이렇게 단건지. 제 입맛에는 안 맞았습니다.

예전에는 반찬거리가 짜게 조리된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엔 간은 짜지 않은 대신에 단 음식이 많아진 듯 합니다. 나트륨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니요.

 

그런데, 어제 메밀면도 샀는데, 사면서 뒤에 영양성분을 보니, 나트륨이 정말 많이 함유돼 있어서 깜놀했습니다. 면이 당뇨에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메밀은 밀가루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본건데, 100g 기준으로 영양가의 57%가 나트륨이라니..탄수화물은 23%이구요. 그렇다고 메밀 국수에서 짠맛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아마 반죽 단계에서 소금이 들어가는 게 그 정도인가 봅니다.

엄마가 메밀 국수를 좋아하시고, 여름이라 먹을만할 것 같아서 사려고 한건데, 성분이 이러니 살까 말까 한참 망설이게 되더군요.

 

전에는 이런 성분표를 보지 않았는데, 요즘엔 엄마 지병도 있고, 또 먹을거리와 건강이 직결된다는 걸 실감해서 이렇게 성분표를 보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전같으면 그냥 사왔을 면도 당분과 나트륨을 따지게 되고 장고를 하게 되네요.

고추장 불고기야 집에서 해먹으면 되지만, 메밀국수는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도 없고, 어쩌나 하다 결국 한봉지를 사왔는데요, 장국도 사구요.

요즘 조리된 상태로 혹은 집에서 끓이기만 하면 되게 양념 다 된 상품들이 정말 많더군요. 그런데 조리상의 필요나 맛을 위해서 이렇게 달고, 알게 모르게 나트륨이 많이 들어가고, 또 이런저런 첨가물이 들어가고..매식 많이 하고 인스턴트나 이렇게 조리된 음식사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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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도둑 | My Story 2016-06-2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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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입원하신지 열흘 쯤 지나니..날이 더워 그런지 이번 주부터는 조금씩 피곤함이 느껴지네요.

평소엔 올빼미 체질인데, 요즘은 열두시만 조금 넘으면 그냥 골아 떨어져요.

아침 식전, 저녁 식전에 하루 두번씩 병원에 가서 엄마 약 챙겨드리고,

반찬 한두가지  해갖고 가는데요, 가면 한시간 정도 있다 오거든요.

오래 있는 것도 아닌데, 갔다와서 밥 먹고, 설거지하고, 장보고,

이것저것 처리할 거 처리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 시간,

책도 진도 못 나가고 있고,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하루가 금방 지나갑니다.

 

오늘은 장마를 앞두고 3층 옥상 빗물 받이 홈통에 이상이 생겨서 수리하시는 분

불러 손을 좀 봤는데요..나 참. 어이없는 일이 있었네요.

 

집안 말고 골목으로 나있는 벽에 붙어있는 빗물받이 홈통을 누가 빼간 거.

평소에도 보긴 봤지만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수리하시는 분이 이거 누가 훔쳐갔네요.

하시는 거에요.

그제사 다시 보니 3층 건물 중 1층 반 정도 길이 그러니까  대락 3미터 정도 길이의 물받이

통이 없는 겁니다. 홈통이 없다는 건 알긴 알았는데, 그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개념이 없어서 전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지나쳤던 거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거..저희 집하고 옆집하고 일조권 때문에 약간 틈이 있는데,

그 쪽  저희집  벽에 붙어있는 빗물받이 홈통 역시 비슷한 길이만큼 없어졌다는 거.

거기는 저희 집 안이라..담을 넘어 들어와서 잘라 간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그러다 저나 엄마하고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무섭고 놀랐을지, 깜깜한 밤에 담 넘어 온 걸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 홈통이 동이라 고물상 가져가면 몇만원을 받을 수 있다나봐요. 그래서 훔쳐간 거라고.

수리 하시는 아저씨 말에 따르면 저희집 몇집 윗 집에서도 홈통을 누가 잘라갔다던데..

아저씨 말씀이 싼걸로 하라고, 전에 걸로 하면 또 누가 절취해간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싼걸로 알아봐달라고 부탁드렸는데,이게 말로만 듣던 생계형 도둑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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