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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5. 이은소 『학교로 간 스파이』 : 새움 | 원숭이의 서재 2020-09-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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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학교로 간 스파이

이은소 저
새움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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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5. 이은소 『학교로 스파이』 : 새움


소학교에서 그가 배운 남한의 움막촌에 사는 사람들, 다리 밑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 껌을 파는 아이들, 학비가 없어 학교를 가는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배를 곯는 아이들. 해주는 점심으로 옥수수 개를 먹으면서도 통일이 되면 남한 아이들에게 옥수수를 나누어 주리라 다짐했다. 감정 거세 훈련을 받기 전이었던 림해주는 아직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낄 있었다. 열네 살에 5과에 선발되어 조선소년단에 입단하여 깃발 앞에서 선서를 하고 붉은 넥타이를 둘렀던 림해주가 모든 훈련을 마치고 남한 땅에 발을 디뎠을 그곳은 적어도 그가 알고 있던 남한이 아니었다. “인도에는 사람도 많고, 인도 가장자리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고층 건물이 빡빡이 있다. 밝고 환하다. 눈이 부신다. 밤이, 밤이 아니다.” 이것이 그가 처음 서울을 마주하고서 느낀 감정이다.


그토록 바라던 임무에 실패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림해주에게 다른 임무가 떨어진다. ‘임해주라는 새로운 이름,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신분. 임무에 실패한 남파공작원 림해주는 그렇게 임해주라는 인물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이끄는 선생님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언젠가 훈련을 받으며 자신이 먹던 옥수수 개를 나누어 주고픈 연민은 아련한 감정으로 자리 잡았을 , 해주에게 2 학생들을 상대하는 일은 지난 어떤 훈련보다 혹독한 일이 되어버린 오래다. 훈련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언어들이 난무했고 배고플 알았던 그들은 남아도는 음식을 어쩔 몰랐다. 북한에서는 없어서 먹을 음식들이 남한에서는 동물에게도 먹이지 않고 버려져 갔다. 꺼지지 않는 불빛은 하루를 쓰고도 도시는 어두울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없을 만큼 이기적이다. 땅에 도덕, 윤리, 예의, 질서, 규칙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인 것만 같다. 특히 스승을 존경할 모르는 학생들을 마주하는 해주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다.


해주의 임무는 남한의 아이들이 북화 되는 것이다. 해주의 가르침으로 인해 남한의 아이들이 스스로 북을 향해 가는 . 그것이 해주의 새로운 임무다. 그러나 질풍노도의 시기 2 지나는 남한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어쩐지 북에서의 혹독한 훈련보다 힘들다. 과연 해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있을까.


언젠가부터 2병이란 말이 일상적 단어가 되어있다. 병맛에 더해 허세 찌든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기를 지나온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단어는 정말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맞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그들을 이해하고 동화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은소 작가는 2병과 남파공작원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적절히 버무려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이 느껴지는 소설 『학교로 스파이』를 선보였다. 독특한 조합은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아낸다. 주인공 임해주(정천) 학교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 남한에 대한 오해는 점차 이해로 변모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 신념이 흔들리고 이윽고 그는 민주주의의 특성에 눈을 뜬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간다.


이은소 작가의 『학교로 스파이』를 읽고서 나는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라는 작품을 떠올렸다. 조금은 불규칙해 보이는 선들은 한걸음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패턴이 된다. 다시 가까이 다가가면 제각각인 선들은 하나의 객체로서 자유롭다. 겉으로는 도덕도 윤리도, 예의, 질서, 규칙 같은 것들도 없어 보이던 남한의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색을 내고, 다른 소리를 내지만, 막상 한걸음 가까워지거나 조금 멀어지며 함께한 그들에게선 나름의 질서가 있다. 그리고 남한의 질서를 느끼며 오해가 이해로 변모하는 순간 이미 해주는 정천이 아닌 온전한 해주로서 작용한다. 해주와 석주가 아이들을 지도하며 그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생긴다. 그것은 비단 해주와 석주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학생들과의 끈끈함은 감정을 잃은 해주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소설은 3자의 입장이 되어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임해주를 통해 이미 잊고 지낸 분단의 현실과 민족애에 대해 깊은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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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3. 더글라스 케네디 『오후의 이자벨』 : 밝은세상 | 원숭이의 서재 2020-09-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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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저/조동섭 역
밝은세상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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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3. 더글라스 케네디 『오후의 이자벨』 : 밝은세상


때로 소설은 우리 삶의 귀감이 된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인생이든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끝이 있는 이야기. 그래서 나의 역사,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아무리 덧없거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생이라도, 모든 인생은 소설이다. 샘이 사하라사막의 모래폭풍처럼 걷잡을 없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오후의 이자벨』은 시작된다.


스물한 살의 샘은 자유와 낭만의 도시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하버드 로스쿨 입학까지 남은 얼마간의 시간을 샘은 파리에 남기고 싶다.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다. 파리에서의 샘은 매일이 주말의 오후 같다. 그에겐 정해진 일정도, 처리할 과제도, 다가올 시험도 없다. 암스테르담에서 밤기차에서 내렸다. 프린세그란츠에 있는 커피숍에서 합법적인 대마초를 피운 곧장 기차에 오른 샘은 머리가 멍하다. 지하철 입구에 있는 작은 빵집에서 크루아상과 커피로 허기를 채우고 3프랑에 카멜을 갑을 산다. 하루치 담배다. 파리의 골목을 헤집고 예약도 없이 영화를 보고 남은 여행비에 맞춰 식사를 한다. 그러나 공기마저 따사로운 그곳의 풍경도 그의 허전한 마음을 달랠 없다. 그가 마주한 파리의 1월은 온통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호텔의 옆방에 머물던 폴은 시내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샘을 초대한다. 다행히 샘에겐 정해진 일정도, 처리할 과제도, 다가올 시험도 없다. 샘이 출판기념회에 가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출판기념회를 즐기던 샘은 검정 원피스에 검정 스타킹, 검정 부츠를 신은 연상의 여인 이자벨에게 이끌린다. 훗날 샘은이자벨 전에 나는 섹스를 전혀 몰랐다. 이자벨 전에 나는 자유를 전혀 몰랐다. 이자벨 전에 나는 파리를, 섹스와 자유가 영원한 가지 주제인 도시를, 전혀 몰랐다. 이자벨 전에 나는 인생을 전혀 몰랐다.’라며 그녀를 회상한다. 파리에서의 샘은 언제나 이방인이었고, 그것은 출판기념회에서도 특별히 다를 없었다. 회장을 서성이던 샘에게 다가온 이자벨은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친절하게 샘을 대한다.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샘은 이자벨에게 받은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한다. 오후 5, 베르나르 팔리시 9번지. 숫자 5 9 사이엔 사랑의 시간과 공간이 존재했다. 기혼녀인 이자벨은 샘과의 사랑에 규칙을 정했다. 오후 5, 그리고 정해진 장소 베르나르 팔리시 9번지. 사랑엔 국경도 없지만, 결혼엔 반드시 제약이 따른다.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듯, 샘은 파리에서의 아련한 기억들을 마음에 묻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성공한 변호사로, 레베카의 남편으로, 이던의 아빠로 살아가던 샘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지난 이력과는 다르게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 병을 앓던 이던이 청력을 상실하며 아내 레베카는 알코올에 빠진다. 파국으로 이어진 짧은 결혼 생활과 양육권 다툼으로 샘은 다시금 미국에 안녕을 고하고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지울 없지만 잊을 있다. 파리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앞에 이자벨이 나타난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오후의 이자벨』은 이전 『빅 픽처』와는 상당히 결이 다른 소설이다. 불륜이라는 소재는 매우 자극적이지만 정작 완독을 시점에 과연 작가가 던진 물음이 불륜의 당위성이나, 사랑의 본성에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보수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불륜은 인간이 저지를 있는 3 죄악으로 보는 사람이라 당연히 불륜의 당위성 따위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조금 다른 의미로 소설을 해석하자면, 미국인인 샘과 프랑스인인 연상의 여인 이자벨은 문화적 상징이며 동시에 대비되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사고방식은 그대로 삶의 방식이 되어 인생의 결을 결정한다. 샘은 미래를 살아가고, 이자벨은 현재를 살아간다. 내일을 사는 사람과 오늘을 사는 사람의 차이는 해야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 고뇌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레베카와의 결혼 생활에 막을 내린 샘이 결국 내일에서 오늘로,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여정은 온통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파리로 무대를 옮긴다. 소설에서 샘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고통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 사이 어디쯤엔가 있는 마음상태일 거야.”

오후 5, 베르나르 팔리시 9번지. 사랑이 만들어지는 시간과 공간. 『오후의 이자벨』을 읽으며 생각한다. 미래를 것인지, 현재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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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1. 최재붕 『체인지 나인』 : 쌤앤파커스 | 원숭이의 서재 2020-09-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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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CHANGE 9 (체인지 나인)

최재붕 저
쌤앤파커스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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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1. 최재붕 『체인지 나인』 : 쌤앤파커스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더 높은 ‘생존 확률’의 방향으로 인류가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2020년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예견되지 않은 바이러스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사스, 메르스에 비해 생존율이 높지만 반대로 감염률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한 이 바이러스는 오히려 확진자가 쉽게 죽지 않는다는(때문에 확진자로부터 더 많은 확산이 우려되는) 사실에 인류가 앓고 있는 현 상황을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 인류를 강타한 최악의 바이러스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페스트는 인류에게 엄청난 비극이었다. 중세 유럽을 휩쓸며 창궐한 페스트는 인구의 25%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반면 페스트는 인류 최악의 바이러스임과 동시에 중세 암흑기를 끝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교황과 면죄부는 페스트 앞에 무너졌고 이에 깨달음을 얻는 인류는 신에 의존하던 지난 문명을 과감히 버렸다. 페스트 이후로 열린 새로운 문명은 인본주의에 근간을 둔 ‘르네상스 시대’다. 이는 페스트가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적 질병이며 동시에 문명의 교체를 불러온 살아있는 역사이자 거대한 현상임을 증명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인류의 생활 방식은 콘택트에서 언택트로 변화하고 있다. 대면하고 소통하는 방식에서 비대면, 비접촉 상태로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의 변화를 인류는 몸소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인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문명 교체로 혁명적 변화의 시기를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문화는 단지 디지털 플랫폼 생활에 익숙한 ‘포노 사피엔스’ 세대와 기성세대의 벽을 조금 더 빨리, 강제적으로 무너뜨릴 뿐 이미 예견된 바 있다. 생각해보라 지난 20년간 세계 부의 순위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온라인이 점령한 부의 순위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미리 보여준 지표에 불과하다. 즉 사회 시스템 전반으로 지나친 변화를 경계하며, 규제를 통한 속도 조절로 연착륙을 시도했으나 코로나19의 창궐이 기성세대의 방식을 더 빠르게 무너뜨렸을 뿐 변화된 것은 없다.

코로나19 창궐 이전 나는 회사의 중심 키워드를 climate에 맞췄다. 그리고 코로나19 창궐 이후 나는 그것을 environment로 변경하였다. 물론 두 단어는 거의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climate(기후)는 environment(환경)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만성적 악성 기후가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칠만한 바이러스를 만나니 그것은 큰 의미에서 환경 문제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환경 문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문명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물론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고 자리 잡는 경우에도 정확히 말하자면 대면 업종으로 불리는 오프라인 업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오프라인 소비의 형태는 분명히 변화할 것이다. 제조, 생산 방식의 변화는 없더라도 유통, 판매, 서비스의 방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익숙한 포노 사피엔스 세대에 속하지 못한 기성세대는 코로나19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포노 사피엔스 세대로 흡수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장을 보던 부모님이 코로나19 이후로 스마트폰을 곁에 둔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데이터는 명백하게 포노 사피엔스가 새로운 인류 문명의 표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시대 산업 혁명의 본질은 바로 포노 사피엔스가 새로운 인류의 표준이 되는 현상이다. 인류의 표준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표준에 맞추어 생각을 바꾸고 애프터 코로나라는 혁명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일이다. 베스트셀러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문명 공학자 최재붕 교수는 두 번째 책 『체인지 나인 : 포노 사피엔스 코드』를 통해 코로나19로 변화된 문화와 현상을 분석하고 새롭게 시작될 문명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홉 가지 코드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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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 재스퍼 트윗 『그 환자』 : 시월이일 | 원숭이의 서재 2020-09-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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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 환자

재스퍼 드윗 저/서은원 역
시월이일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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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 재스퍼 트윗 『그 환자』 : 시월이일

박사학위를 앞두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조슬린과 함께 하기 위해 약혼자 파커는 코네티컷의 오래된 주립 정신병원에 지원한다. 앞날이 촉망된 엘리트 정신과 의사 파커에게 코네티컷 주립 정신병원은 모든 부분에서 열악한 곳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곳은 파커에게 놀이공원과도 같이 설레는 곳임에 틀림없다. 노후된 시설은 물론 정부로부터 나오는 적은 지원금, 부족한 인력은 그의 열정을 불태우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음침한 병동의 스산함과는 다르게 평범한 환자들과의 면담으로 시간을 보내던 파커는 실명도,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복도 끝 방의 환자 조와 마주하게 된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그가 여섯 살 무렵 입원하여 무려 3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수용되었음에도 아무도 그의 병을 진단하지 못했고 병원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진단과 처방만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파커의 관심은 끝 방 환자 ‘조’를 향했다. 진료기록보관소에 남은 그의 오래전 기록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어쩐지 파커는 그 기록들이 전부가 아닐 것만 같았고, 또한 진실도 아닐 것만 같았다. 그간 조를 치료하던 의사나 간호사들은 죽거나 병들었다. 당연히 병원을 떠나야 했고, 개중엔 환자로 병원에 다시 수용된 이도 있었다. 조와 관련된 사람들은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우여곡절 끝에 조의 전담의가 된 파커는 치료의 시작부터 충격적인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 조의 말에 따르면 병원장의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은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병원장실로 발걸음을 옮긴 파커는 새로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동양 호러는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인과응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선과 악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또한 구전 효과를 통한 현실감의 증대로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예를 들어 망태 할아범이 잡아간 옆집 아이나, 술 받으러 나간 아버지가 도깨비에 홀려 혼을 잃었다거나, 억지 울음에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구전 동양 호러는 마치 옆집과 앞집에, 또는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구전한다는 점에서 ‘실제와 실재’의 현실감을 동반한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무대 장치를 활용하기 때문에 현장감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서양 호러는 짐승형 괴물(몬스터), 인간형 괴물(좀비), 또는 살인마 등의 살육 현장을 자극적으로 표현하며 때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의 무차별 살육을 통해 불특정 피해자를 만들어 공포감을 조성한다. 물론 엑소시즘을 떠올리면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지만 이 역시 종교적 배경이 우선된다. 중요한 사실은 동양 호러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살육에서 보이는 피는 현실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는 점이며 따라서 동양의 ‘벌’은 서양의 ‘피’와 같은 장치로 활용된다.

그런데 재스퍼 트윗의 『그 환자』는 서양 호러임에도 동양 호러의 장점을 취했다. 소설의 시작에 <프롤로그>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기 등장하는 이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 좋겠지만 나도 의사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형편이라 아무리 특이한 경우라 해도 환자의 비밀을 누설하고 다니는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순 없다.”라는 문장을 배치함으로써 마치 동양의 구전 효과와 같이 이 이야기가 ‘실제와 실재’하는 것처럼 시작을 한다. 또한 정신병원이라는 제한적 공간에 더해 의사와 환자 간의 대화는 피가 난무하는 좀비물이나 몬스터물보다 더 깊은 심리적 공포를 선사하며 오래된 자료, 감춰진 비밀,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그리고 의문의 초자연 현상을 정신병과 결합하여 망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은 다양한 호러 패턴을 제시한다. 작가가 필명으로 글을 쓰고 본명과 신원을 감춘 점과 “본 원고는 전문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웹포럼이었다가 2012년 오프라인 형태로 전환되면서 폐쇄된 MDconfessions.com에 ‘나는 어쩌다 의학을 포기할 뻔했는가’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라는 문구는 소설의 구성에 맞물려 현실감은 물론 극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20세기 폭스사 할리우드 영화화 확정에 전 세계 20여 개국 판권 계약을 했다니 재미는 보장이고 딱히 취향을 타지도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푹푹 찌는 더위에 태풍까지 온다니 호러 장르에 자신이 있다면 『그 환자』에 도전을 해보는 것도 여름밤에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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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5. 우혜림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 한겨레출판 | 원숭이의 서재 2020-09-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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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우혜림 저
한겨레출판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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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5. 우혜림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 한겨레출판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머신의 전원을 켜는 일이다. 진한 커피 한 잔과 밤새 참았던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나면 여지없이 하루가 시작된다. 2019년 12월 중순 즈음인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상륙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커피와 담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지난 반년간 변화가 생겼다면 매일매일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검색하며 잠을 깬다는 것이다. 2002년 발생한 사스는 9개월 만에 종식되었고, 2015년 발생한 메르스도 8개월 만에 종식되었는데 어쩐지 이놈에 코로나19는 이제 종식이 되려나 하는 희망을 품을 즈음에 더 기승이다. 성격이 예민한 편에 속하는 나에게 - 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 아침은 대단히 중요하다. 시작이 망가지면 하루가 망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내가 맞는 아침은 매일이 슬프다. 세상에 좋은 소식을 누군가가 말끔히 비워버린 것만 같다. 

책을 다 읽고 보도자료에 실린 저자의 정보를 보았다. 우혜림. 홍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2010년 원더걸스에 합류했다. 이후에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을 집필했다. TV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라 가수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얼굴은 구분하지 못한다. 원더걸스라는 걸그룹 역시 이름을 모를 리 없지만 우혜림이라는 이름도 얼굴도 낯설다. 책을 모두 읽고서도 만약 이런 시기가 아니라면 이 책을 내가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즐기는 에세이는 상당히 묵직한 편인데다 워낙 ‘위로’를 주제로 쓴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삭막하게 변해버린 ‘지금’을 중화시키는 작은 노력 정도로 해두겠다.

인류가 죽고 사는 문제 앞에 어떤 이들은 대체 얼마나 득을 보기에 질서를 망가트리고 거짓을 일삼으며 방종하는지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보거나 뉴스를 검색해보면 종종 폭력적인 사람마저 눈에 띄고, 개인의 이기주의가 도를 넘어 집단 이기주의가 되어간다.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위로’ 받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의 짐이 무거울 뿐이다. 타인의 방종을 보며 내가 폭력적이 되는 것이 싫어, 말하자면 선한 영향을 받기 위해 오래간만에 아름다운 언어를 마주한 것이다. 일종의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본디 가요라는 것도 시에 가락을 붙인 것이니 그것도 언어가 아닌가. 대중가요를 직업으로 삼던 어떤 이가 이제는 통번역도 하고 글도 쓴다니 그러한 감성은 어떤가 궁금했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는 형식이라는 것이 없다. 어떤 글은 짧은 메모와 같고, 어떤 글은 시처럼 읽힌다. 또 어떤 글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산문 같다. 그러니 정해진 형식이라는 것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그가 쓴 모든 글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쓰였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하루에 꼭 한 번쯤 미소 지으며 잠시간 한숨이라도 돌릴 수 있게, 딱 그만큼의 아름다운 언어로 쓰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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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5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