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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신나게 웃었던 에세이 | 여러가지 2019-06-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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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란 에세이집이 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에 수월하지 않다. 다만, 여기 수록된 에세이 중에 표제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시니컬하면서도 웃긴 독특한 글로 읽는 내내 작가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이렇게 웃긴 글을 쓴 작가가 46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글 실력으로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작가였으나, 평생을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한다. 


  소개하고자 하는 에세이는 7NC 크루즈 여행의 모든 것을 그야말로 해부한 글인데, 저자는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배와 크루즈 여행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각주가 많은 에세이는 처음 읽어보았다. 각주를 달고 거기에다 각주를 또다는 식으로 글을 써서 맥시멀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에세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지나칠 정도로 세세한 이 에세이가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다. 말이나 행동을 웃기게 하는 사람보다 글을 웃기게 쓸 줄 아는 사람에게 호감이 더 가는데, 내게 있어서 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커트 보니것이 그런 작가들에 속한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저/김명남 편역
바다출판사 | 2018년 04월



  기분이 울적할 때는 온갖 종류의 홍반, 각질, 아직 멜라닌증으로 발전하지 않은 병변, 검버섯, 습진, 사마귀, 뾰루지, 올챙이배, 넓적다리 셀룰라이트, 정맥류, 콜라겐과 실리콘 이식물, 나쁜 살빛, 아직 실시되지 않은 모발 이식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즉 벌거벗다시피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벌거벗다시피 한 모습을 보았다. 사춘기 이래 최고로 우울했고, 문제가 그들인지 나인지 고민하느라 미드 공책 세 권을 거의 다 채웠다. (본문 23쪽)


  샤워기도 목적을 대대적으로 초과 달성한다. 물을 뜨거움 단계로 맞추면 두피가 박피될 만큼 뜨겁지만, 사전에 설정해둔 대로 샤워꼭지를 한 번만 조작하면 섭씨 37도의 완벽한 온수를 얻을 수 있다. 내 집에도 이런 수압의 샤워기가 꼭 있어야 한다. 샤워기 헤드에서 쏟아지는 물은 당신을 샤워 부스의 반대쪽 벽으로 무력하게 밀어붙이고, 37도의 온수에서 샤워기 헤드를 마사지 설정으로 바꾸면 눈알이 스르르 올라가면서 자칫 괄약근이 풀릴 지경이 된다. (본문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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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페스트』 | 리뷰모음 2019-06-2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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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민음사 |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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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인 오랑시에서 페스트가 발생했다. 시작은 쥐들의 떼죽음이었고, 다음으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나갔다. 의사 '리외'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보건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에 감염된 환자들을 격리하고 치료했다. 오랑시에서 페스트가 급격하게 확산되어 시가 폐쇄 되었을 때 사람들 중에는 평소에 무관심했던 가족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거나, 걱정을 하기도 하고, 지난 날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페스트는 시민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으며,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나 때로는 살게도 했다. 페스트는 인생 그 자체였다. 속수무책이었으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절망과 희망을 품게 했으며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페스트라는 인생에서 배운 교훈을 잊을 것이 분명했다. 그 점에 대해서 리외는 이렇게 적었다.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본문 400쪽)


  소설의 서술자는 『페스트』를 읽은 독자라면 알고 있듯이 리외인데,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으면 그 점을 알 수 없다. 어찌되었든 리외는 소설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장 타루'가 보건대를 결성하여 페스트와 싸우고, 리외가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니며,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함이 마땅하고, 거기에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낼 필요가 없다고 밝혔는데 그 부분이 유독 깊은 감명을 주었다. 리외는 신을 섬기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며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의사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 인물이었는데, 거기에다가 영웅이라는 왕관을 씌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포기하지 말고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 그 점은 리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삶의 태도였다. 


  알베르 카뮈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고, 『페스트』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무척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니 이런저런 감상을 길게 쏟아내야 마땅하겠지만 차라리 이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말을 아끼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소설은 그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서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방식의 독서법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있다면 감명 깊었던 문장을 공책에 적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마음속에 새기는 일이다. 노트에 적었던 문장 중에 몇 가지를 리뷰에 옮긴다.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본문 54쪽)


  페스트가 더욱 성해져서 일주일에 사망 환자 수가 평균 오백 명에 달하고 있는 병원에서 보낸 그날들이 정말로 추상적이었을까? 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추상과 대결해야 한다. (본문 120쪽)


  세계의 악은 거의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다. (본문 176-177쪽)


  '항상 나보다 더 부자유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무렵에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요약하는 표현이었다. (본문 223쪽)


  리외는 늙어 버린 그 사내가 울면서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도 그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는 이 세계는 죽은 세계와 다를 바 없으며, 사람에게는 언제고 반드시 감옥이니 일이니 용기니 하는 것들에 지친 나머지 한 인간의 얼굴과 애정 어린 황홀한 가슴을 요구하는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 340쪽)


  한편,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님을, 적어도 사랑이라는 것이 자신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와 그는 언제나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고는 어머니는-혹은 그는-일생 동안 자기네들의 애정을 그 이상으로는 드러내 보이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본문 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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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 요조는 '최애캐'가 아니라 '최가캐'입니다. | 여러가지 2019-06-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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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저/김춘미 역
민음사 | 2004년 05월



  『 인간 실격』의 주인공인 '오바 요조'는 소설 속 최애 캐릭터가 아니라 최고로 가여워서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다. 사실 이런 인물을 좋아하기는 누구라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자의식 과잉에다가 긍정적인 삶의 자세 따위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고, 몸과 마음이 너무도 허약하고 나약하다. 외모는 '미남자'라고 하나, 하는 행동이 그렇지가 않다. 이 남자는 열심히 살지 않는 건지, 열심히 살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음이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모양이다. 술과 담배와 여자에 빠져서 살고 그러다 자살시도를 수차례 한다. 나중에는 마약에도 손을 댄다. 세상살이에 조금도 적응하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추락하기만 하는 남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처음 읽었을 때 뭐 이따위 소설이 다 있나 싶어서 속상했다. 못 쓴 소설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주인공의 삶이 너무 비참하고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빠져들어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까지 찾아보게 됐다. 영화도 나름 볼만했다. 하지만 우울할 때 보면 더 우울해지는 영화이므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퇴폐주의 문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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