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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죽을 듯이 아파도 죽지 말고 | 리뷰모음 2019-09-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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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저
문학동네 | 201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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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란, 무지한 상태의 다른 말이죠. 행복하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같아. (본문 17쪽)


  사랑은 언제나 사랑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생에 시비를 겁니다. 삶을 위협해요. 특히 여자들이란 사랑을 가지고 한몫 보려고 합니다. 팔자라도 바꾸려고 들죠. 사랑한다면서 왜 저렇게 하지 않죠?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줘요. 이런 걸 사줘요. 왜 전화하지 않았죠?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요? 난 당신 여자예요. 이제 어쩔거죠? 함께 살고 싶어요……. (본문 97쪽)


  어차피 옳은 인생의 모델 따윈 있을 리 없었다. 자기에게 맞는 생이 있을 뿐이었다. (본문 147쪽)


  "내게서 별달리 기대하지 말아요. 남자와 여자 사이란 어찌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오. 하긴 삶 자체의 근본적인 결함이기도 하지만." (본문 166쪽)


  강하다는 건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거야. (본문 282쪽)


  문학동네에서 어떤 기준으로 한국문학전집에 올릴 책을 정하는지 궁금하다. 아직 읽지 않은 경우라면 시간이 날 때마다 한 권씩 찾아서 읽는데, 읽기에 다소 어려운 글들은 있어도 못 썼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하기야 그렇기 때문에 한국문학전집에 오르지 않았을까. 전경린 소설가의 작품은 평소에 그다지 즐겨읽지는 않았으나, 예전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었기에 오래간만에 그녀의 글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라는 장편소설인데, 영화로 만들어진 적도 있단다. 


  소설을 읽어보면 영화가 19세 이상 관람 등급일 거란 예상이 가는데, 그렇지 않고 15세 이상 관람 등급이라면 과연 이 소설을 영화로써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싶다. 검색창에 해당 영화를 검색해보니 '청소년 관람불가'란 단어가 뜨고, 미흔 역에는 김윤진 님이 규 역에는 이종원 님이 출연하셨다는 정보도 뜬다. 평소에 책이나 좋아하지 영화고, 드라마고 잘 보지도 않아서 영화가 어떨지 모르겠다. 책이 좋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가 겁이 난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저녁밥을 먹다가 책 내용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정말 괴로웠던 일들은 그 일이 일어났을 당시에, 혹은 그 후에도 한참 나를 괴롭게 만들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고통이 상당량 희석 된다는 사실이었다. 인체에 치명적인 염산이나 락스를 많은 양의 물에 희석하면 위험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처럼. 과거의 아픔을 다시 떠올리면 기분이 무척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때처럼 죽을 만큼 힘겹지 않기에, 평소의 생활패턴대로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미흔은 유부녀의 입장에서 남편인 효경 몰래 규와 사랑을 나눈다. 사랑의 시작은 규가 느닷없이 미흔에게 게임을 하나 하자면서 둘의 만남을 제안한 것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어버리고 만다. 규도 미흔처럼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는 남자였는데, 그는 사랑 따위는 믿지 않고 그저 가볍게 살려고 마음 먹은 남자였다. 그런데, 미흔과 만나다보니 그런 자신의 인생 철학이 지켜지지 않았다. 정말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으니까. 미흔과 규는 말 그대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 하지 않고 욕망을 채우려 했기 때문에 벌을 받듯이 깨져버렸다. 어찌나 와장창 깨졌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만약 미흔이었다면, 혹은 내가 만약 규였다면, 효경이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 세상에서 증발해버린 이는 없었고 어떻게든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런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누군가가 일찍 죽지 않고, 인생에 대해 배우다가 계속 배우다가 먼 훗날 죽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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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 거듭 다시 태어나기 | 리뷰모음 2019-09-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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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활 2

레프 톨스토이 저/박형규 역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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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흘류도프는 최악의 경우 카튜샤가 시베리아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된다면 자신도 따라가기 위해서 재산들을 하나하나 처분하기 시작한다. 카튜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는 하나, 어쨌든 네흘류도프는 이제껏 자기가 너무 많은 것들을 쓸모도 없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카튜샤는 네흘류도프에게 버림받고 나서 십 년의 세월 동안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어졌다. 뒤늦게나마 자신에게 용서를 빌고 결혼까지 하겠다는 네흘류도프에게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증오심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부유한 도시 사람들이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누리는 걸 두고 그들의 세계를 비꼬기 위해 '단정한, 깨끗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치스러운, 향락적인, 허례허식'이라는 단어보다 더 효과적이다. 네흘류도프는 존경심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억울한 죄수들의 석방을 도와주십사 부탁하는 일에 넌덜머리를 내지만 불쌍한 이들을 돕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한편, 마슬로바(캬튜샤) 사건은 원로원들의 사건 심리를 거쳐 원판결을 파기할 것이냐, 상소를 기각할 것이냐를 논하다가 결국 상소가 기각되어 이에 네흘류도프는 분노한다. 그들은 카튜샤가 애초에 죄가 없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네 입장에 유리한 대로만(혹은 자신의 직업적 신념에 따라) 사건을 판단한다. 네흘류도프가 카튜샤의 누명을 벗겨주고, 그녀와 할 수 있다면 결혼까지 하고, 농부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고, 억울한 죄수들을 돕는 일 등은 현실에서 그렇게 이루기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부딪혀야 했던만큼 수도 없이 자기 자신과도 부딪혀야 했다. 2권의 157쪽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누군가가 도덕적 완성이나 타인에게 봉사하기를 생활 신조로 삼고 착실히 살아간다면, 그것을 자기 만족이나 위선적인 허영심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이 분명 있다는 글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타인에게 노출되어 살아가야 하는 이상 '선한 사람'도 대중의 평가로 판단내려 지고, '악한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대중의 평가로 낙인이 찍히는 셈이다. 


  소설에서 네흘류도프가 지주 계급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사회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누는 상대는 누님의 남편인데, 두 사람의 대화문을 읽을 때 덩달아 숨이 가빠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굽힐 줄 몰랐고, 설득력 있는 말로 자기 주장을 펼쳤기 때문에 한 사람 편을 들기도 쉽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무조건 네흘류도프의 입장만 찬성하고 나설 수 없었던 내가 잘못된 건지, 그럴 수도 있는 건지 리뷰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잘 모르겠다. 


  소설의 제목인 '부활'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네흘류도프라는 한 인물이 동물적 존재(본인이 원하는 대로 사는, 타락한)에서 정신적 존재(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행하는, 이타적인)로 거듭나는 과정을 서술한 이야기가 바로 톨스토이의 소설인 '부활'이다. 이야기를 읽다가 조금 의외였던 건 카튜샤가 네흘류도프와 결혼하게 되거나, 결혼하지 않더라도 네흘류도프가 그녀를 끝까지 책임질 거라 여겼는데, 정치범인 시몬손이 카튜샤를 사랑하게 되면서 소설에 반전이 생긴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게 봐주면 그런 사람이 되고, 나쁘게 본다면 또한 그런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카튜샤는 시몬손으로 인해서 자신이 소중한 사람임을, 매력적인 사람임을 깨닫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좋은 변화임이 분명한데, 네흘류도프는 마음이 복잡했다. 카튜샤를 속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음에도 그녀에게 제대로 보상을 하고 싶고, 또한 그녀와 결혼까지 하고 싶은 생각을 늦게까지 떨쳐버릴 수 없었던 거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참으로 훌륭하다고 느낀 점이 그런 부분 때문이었다. 


  사람의 속마음은 끊임없이 변한다. 아무리 확고한 신념도 자주 흔들리고 시류에 영향을 받으며, 자기 자신과도 부딪히게 마련이다. 만약 네흘류도프의 마음이 대쪽같이 올곧기만 했다면 소설의 매력이 상당히 떨어졌을 게 분명하다.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으나 소설은 다행히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카튜샤는 그녀 나름대로 네흘류도프는 그 나름대로 좋은 일이 생겼거나,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임을 예감했다. 네흘류도프는 소설의 저자인 톨스토이처럼 러시아 정교를 비판하고 원시기독교에 깊은 감명을 느끼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겠다고 다짐한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무교인 사람이든 레프 톨스토이의 이 소설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나 또한 무교이지만 우리 중에 죄 짓지 않은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성서의 한 부분은 참으로 좋아한다고 해야할까, 공감이 간다고 해야할까. '부활'에도 무신론자인 한 미치광이 노인이 등장한다. 재밌는 사실은 그 노인이 미치광이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현자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정상인이 미치광이처럼 보일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미치광이가 정상인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는 조용히 있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본문 220-221쪽)


  더욱이 마슬로바는 시몬손이 자기를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우월한 정신적인 특질을 갖춘 여자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자기에게 어떤 특질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시몬손의 생각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뛰어난 특질들을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키려 애썼다. 이것은 그녀가 훌륭한 여자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본문 253쪽)


  악한 인간들이 다른 악한 인간들을 바로잡으려 하고 그것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본문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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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 톨스토이의 자전적 소설 | 리뷰모음 2019-09-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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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활 1

레프 톨스토이 저/박형규 역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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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미신의 하나는 인간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선인이라든가 악인, 현인, 어리석은 사람, 근면한 사람, 게으른 사람 등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그렇게 단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본문 341쪽)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작 가문의 아들이었던 톨스토이처럼 소설의 주인공인 네흘류도프 또한 공작이고, 톨스토이와 네흘류도프 모두 한때 방탕한 혹은 부정한 생활을 했으나 훗날 개인의 토지소유를 반대하고, 새로운 농업경영을 모색하며, 농민들을 돕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 톨스토이는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부활』뿐만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도 수많은 독자에게 읽힌 작품이다.


  네흘류도프 공작과 그의 고모댁에서 일하던 하녀인 카튜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네흘류도프가 카튜사를 배반하고 떠나면서 안타깝게 끝나버렸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 당한 여인인 카튜사는 그날 이후로 선(善)과 신(信)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창녀로 살아가게 된다. 톨스토이가 소설에서도 썼듯이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로 인해서 얻는 고통 중에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한 것은 그들이 더이상 신과 선을 믿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네흘류도프 공작과 카튜샤는 훗날 법정에서 재회한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매춘부로 살아가던 카튜샤는 어떤 사건에 휘말려서 살인, 절도의 누명을 뒤집어 쓰고 재판을 받는다. 네흘류도프 공작은 그녀의 공판 날 배심원으로 출석하여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얼굴을 알아보고 지난 날의 과오를 떠올린다. 군인으로 지내는동안 에고이즘을 키울대로 키운 네흘류도프는 자신이 한때 여자를 버렸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까봐 불안해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마음 속에서는 반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그 일이 훗날 자신을 어떤 길로 들어서게 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소설에서 배심원들은 하찮은 방식으로 피고인의 유죄, 무죄를 판단하고 든다. 재판장은 분명 배심원장이 낸 답신서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서도 그저 재판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에 황급한 판결을 내린다. 아무 죄도 없는 카튜샤는 배심원과 재판장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이기적인 사람들, 무능력한 사람들,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희생양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가 처한 부당한 현실을 목격하고 나서부터 육체적 존재(자신의 욕구대로만 살아가려는 동물적 존재)에서 벗어나 정신적 존재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이때 주인공은 허위를 깨뜨리고 진실을 추구하자, 이제껏 잘못한 여인들에게 용서를 구하자는 마음을 먹는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 이름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차례 카튜샤가 있는 교도소에 면회를 가는데, 너무 많은 죄수들이 이유도 없이 고통을 받거나, 과중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에 따라 정신적인 구토감을 느꼈다. 그는 모든 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네흘류도프가 법정에서 카튜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반성과 후회를 발판 삼아 그릇된 일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카튜샤를 감옥에서 꺼내주는 일 외에도 다른 징역수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자신의 소유지를 농민들에게 빌려주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토지경영법을 바꾸려 한다. 네흘류도프의 행보를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지만, 육체적인 존재에서 정신적인 존재로 살아가려고 마음을 굳힌 사람이 그 정도 일도 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되는 셈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의 행동은 대단해보인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도우면서 사는 것. 그게 현실에서 말처럼 쉬운 일인가. 소설의 문장에서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챙기면서 살기도 바쁜데. 물론, 그는 실천을 행동으로 옮기는 와중에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이기도 한다. 모든 일이 마음 먹은 대로 착착 진행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건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 틀림 없다. 그의 고민이 담긴 문장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갑자기 모든 일을 포기해버리고 말면 어쩌나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다행히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적어도 1권에서만큼은)



  몇십만의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본문 9쪽)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자니,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눈물이었다. 선한 눈물이란 몇 년 동안 그의 속에 잠들어 있던 정신적 존재가 눈뜬 것을 기뻐하는 눈물이었고, 악한 눈물이란 자기 자신과 자기의 미덕에 대해 감동하는 눈물이었다. (본문 183쪽)


  누구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의 온갖 요소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어 어느 경우 그중의 하나가 돌출하면 똑같은 한 사람이라고 해도 평소의 그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본문 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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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머루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 하고, 글을 쓰는 과정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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