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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목성에게 고리는』 | 여러가지 2020-01-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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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에게 고리는

김은우 저
재승출판 | 2020년 01월


신청 기간 : 29 24:00

서평단 모집 인원 : 5

발표 :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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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냉소적인 관찰자의 시선이 돋보이는 단편들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페이퍼 맨』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은우의 첫 소설집이다. 당선작을 비롯하여 문예지에 발표했던 다섯 편의 작품과 틈틈이 써두었던 세 편의 작품을 모았다. ‘작가의 말’에서는 각 단편의 실마리가 되었던 문장, 흘려들었지만 마음에 남았던 말을 밝히고 있다. 작가의 관심 분야인 물리학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짧은 이야기들은 무심하고 담담한 문체로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채울 수 없는 존재의 허기였다.”

일곱 번째 단편 「목성에게 고리는」에 나오는 문장으로, 여덟 편의 단편을 하나로 묶는 문장이기도 하다. 채울 수 없는 존재의 허기 때문에 「페이퍼 맨」에서 ‘나’는 종이로 배 속을 채우고, 「오래된 별」에서 ‘박종근’은 자신의 죽음을 마지막 축제로 장식한다. 「고체의 논리학」에서 ‘이기석’은 쓸모없는 인간에 불과한 노인이지만 그래도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이발소 의자」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비밀이 담긴 의자에 끝없이 집착하고, 「터널과 로켓」에서 ‘나’는 어머니의 부정을 목격하고도 평소처럼 일상을 영위하지만 마음에 남은 잔상은 이후 이어지는 사건의 발단이 된다. 「모기 죽이기」는 모기떼의 공격으로 신경증에 걸린 ‘장’의 습관이 불러오는 참혹한 결말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물고기 함수」에서 ‘나’는 쌍둥이 형제를 잃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다가 자신은 이 세계에서 불완전한 종속변수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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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그리고 사랑의 화신 | 리뷰모음 2020-01-22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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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저/정혜용 역
은행나무 | 201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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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투바, 그녀는 실존인물이었다. 소설가 마리즈 콩데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역사학자들은 흑인노예의 삶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는 자세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마리즈 콩데는 공문서에 기록된 티투바와 그녀의 삶에 대한 짤막한 글을 가지고 한편의 찬란한 소설을 완성시켰다. 17세기 바베이도스의 해상을 떠돌던 배에서 어느 영국인이 아베나라는 여인을 겁탈했고 그녀는 딸인 티투바를 낳았다. 돈을 주고 아베나를 산 백인이 또다시 아베나를 겁탈하려 들자 기겁한 아베나는 백인에게 칼을 휘둘렀다. 


  어떤 재판과정도 없이 아베나는 처형 당했는데, 정작 백인은 칼에 맞아 상처만 입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 어린 티투바는 만 야야라는 노부인이 거둬들인다. 티투바는 만 야야를 따라서 무속인이 된다. 무속인이라는 단어보다는 마술사라는 단어가 더 적합할까.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고 불렀다. 그래, 뭐라 부르든 그녀는 티투바일 뿐이었다. 그녀는 존 인디언과 결혼하고 그가 노예로 일하는 백인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본격적인 고행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티투바는 보이지 않는 존재(유령, 죽은 자들)보다 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적어도 백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는 두려워 했지만 흑인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재나 엔디콧의 밑에서 살기 위해 그녀는 억지로 기독교인이 되어야 했다. 수재나 엔디콧의 집에 찾아든 백인여성들은 티투바를 비존재로 취급하면서도 열심히 그녀를 흉봤다. 수재나 엔디콧이 병을 얻어 죽고 나자 존 인디언과 티투바는 새뮤얼 패리스라는 목사에게 팔려 간다. 


  사실 수재나 엔디콧은 한때 흑인해방을 실천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티투바에게 자유를 줄 수도 있었지만 티투바를 저주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패리스 목사의 부인은 엄격한 기독교도 집안에서 지내며 자신이 여자임을 비통해하고, 남녀 간의 사랑을 추악한 행위로 여겼는데, 티투바는 여자의 몸은 아름답다 말하고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줬다. 패리스 마님과 그녀의 딸 벳시는 티투바를 좋아했고 티투바도 그들에게 헌신적으로 대했다. 


  한편, 흑인노예들 중에서 여인들은 자궁의 생산력을 없애는 방법을 쓰거나 갓낳은 핏덩이를 죽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끔찍한 삶을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티투바도 존 인디언의 아이를 가졌지만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소설의 93쪽에 보면 '잃어버린 아이를 위한 애가'라는 노래의 가사가 실려 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부분이었다. 강물 위로 월장석(Moonstone)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여인이 탄식을 내지르다 비통한 눈물을 흘린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월장석은 사랑의 메신저, 연인, 여성성을 상징하는 값싼 보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월장석이 티투바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을 상징하는 건가, 추측도 해봤다. 아마도 월장석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이를 뜻하면서도 거기에 투영된 티투바를 뜻하기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노랫말을 더 읽어보면 지나가던 사냥꾼이 강물에 떨어진 월장석을 건져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월장석을 건져올리지 못하고 물에 가라앉는다. 사냥꾼은 티투바가 고작 그런 일 때문에 운다고 말했다. 


  티투바는 새뮤얼 패리스를 따라 바베이도스에서 아메리카의 세일럼 마을에까지 이르게 된다. 흑인노예의 행로는 주인의 행로를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세일럼의 마을 사람들은 티투바를 포함한 검둥이를 사탄의 밀사라 여기고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거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으면 그들을 찾아갔다. 그런 짓을 대놓고 행하지는 못하고 뒤에서 대신할 사람을 구하면서도 앞에서는 위선을 떠는 게 그들이었다. 패리스 부인과 벳시는 티투바에게 다정한 사람들이었으나 흑인을 사탄의 밀사, 마녀로 몰고가는 세일럼의 분위기에 점차 물든다. 


  세일럼 마을의 아이들이 하나둘씩 발작 증세를 보였을 때 티투바는 감옥으로 끌려갔고, 법정에서 자신이 악마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을 괴롭혔다고 진술했다. 티투바와 존 인디언은 살아남기 위해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했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잘못이 없었고, 거짓 진술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었다. 어찌되었든 역사는 티투바를 후두를 실제로 행한 마녀로 몰아갔고, 존 인디언은 살아남기 위해서 티투바를 고발했다. 후에 티투바는 감옥에서 목숨만은 건져서 유대인이자 식민지의 시민이며, 갑부인 벤저민 코헨 다제베두라는 남자에게 팔려간다. 


  벤저민은 티투바를 사랑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벤저민의 아이들은 유대인과 검둥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집에 불을 질러서 모두 질식사하고 만다. 어째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혐오하는 대상을 만들어내고 괴롭히는 걸까. 배웠다 하는 사람, 신을 믿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벤저민은 티투바를 사랑했으나 자신이 그녀에게 자유를 주지 않아 벌을 받은 거라며 그녀를 바베이도스로 돌려보낸다. 티투바는 너무도 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어왔다. 


  그녀는 진즉 난폭한 삶에 반기를 들 수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증오어린 복수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삶에서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소설에 이런 문장이 실려있다. 삶을 위한 다른 흐름을, 다른 의미를, 또 다른 절박성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본문 218쪽) 그렇다. 삶에서 의미가 사라졌을 때의 대처법은 또다른 의미를, 또 다른 절박성을 찾아나서는 거였다. 삶에서 때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상상'이었다.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도 실려 있다. "살아 있잖아, 티투바! 그게 중요하지 않겠어?" 내가 발작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반드시, 그래, 반드시 삶의 풍미가 바뀌어야만 했다. (본문 220쪽) 삶의 풍미라니, 참으로 매력적인 단어다. 왠지 앞으로 이 단어를 어느 글에서든 또 써먹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단지 살아있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풍미가 있어야만 하다는 티투바의 발언은 강렬했다. 


  자, 아직 갈 길이 조금 더 남았다. 그녀는 바베이도스로 가는 배에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준 남자인 데오다투스를 도망노예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다시 만난다. 어딜 가나 사람들은 마녀(무속인, 치유자, 마술사 등)로서 티투바가 지닌 능력을 필요로 했고, 도망노예들의 수장인 크리스토퍼도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제껏 수많은 이들이 티투바를 곤경에 빠뜨렸지만 그녀는 언제나 복수보다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데 열성을 다했다. 티투바는 크리스토퍼와 연애하지만 그가 점점 자신을 무시하자 도망노예들이 모여사는 지역을 빠져나온다. 


  티투바는 당분간 혼자서 지냈다. 자신을 돕는 노예들이 있어 땅을 일구고 계속 아픈 사람들을 치료했다. 크리스토퍼의 아이를 밴 티투바는 이번에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고, 백인들에게 심하게 고문당한 이피게니라는 아이를 치료해준다. 그 아이는 나이가 들어 볼품없어진 티투바를 사랑했다. 그리고 바베이도스에 있는 백인들을 몰아낼 결심을 했다. 이 이후의 이야기를 리뷰에 옮겨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이런 결말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찌되었든 티투바는 사후에 흑인들의 전설이자 영적 지주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각국으로 퍼져나간 흑인들의 대우가 어떤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특히 흑인여성들의 대우가.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로는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여자들의 위치가 남자들보다 한참 하등하다고 하던데 사실여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사정과 고통보다 남의 사정과 고통을 잘 보듬어주기란 어려운 법이라지만. 이번에 마리즈 콩데의 소설을 읽으면서 흑인노예의 삶과 억압받는 여성의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다. 또한, 궁금증이 생겼으니 지속적인 관심 또한 기대해볼 수 있겠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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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써진 인생에 대한 명언 | 여러가지 2020-01-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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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sequence of moments all called now. 


  건조대에 널어뒀던 옷이 다 말라 바닥에 내려놓고 하나하나 접다보니 검정색 반팔티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영어가 써진 줄은 알았지만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 영어 문장을 읽어봤다. 인생은 지금이라 부르는 모든 순간들의 장면이다. 이게 맞나? 영어를 잘 못해서…, 이 문장을 공책에 써두고 계속 읽다가 'Life is'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Life is just a bowl of cherries. 


  인생은 그릇에 담긴 체리다. 직역하면 그렇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인생은 별 거 아니다, 인생은 즐겁다, 그런 뜻인가 보다. 그리고, 포스트를 작성하다가 불현듯이 떠올랐는데, 예전에 전경린 소설가의 『엄마의 집』이라는 책을 읽다가 'Life is'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꽤 오래 전 일이어서 100% 확신할 수 없다.) 인생은 시큼털털한 레몬과 같다. 나는 그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대충 이런 문장이었나? 글쎄…


  인생은 ( )이다, 라는 문장을 써두고 가로 안에 자신이 채워넣고 싶은 단어를 얼마든지 써넣어 볼 수 있겠다. 인생에 대한 무겁고 신랄한 문장보다 가볍고 기분 좋아지는 문장에 기대어 살고 싶지만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문장을 만든다면 차마 예스블로그에 올리기 민망한 글이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올리지 않기로. 'Life is'로 시작하는 문장 중에서 찰리 채플린의 말에 제일 공감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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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머루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 하고, 글을 쓰는 과정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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