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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장면』: '기억한다'는 건 뭘까요? | 리뷰모음 2021-01-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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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겨울장면

김엄지 저
작가정신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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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은 무너지지 않는다. 

바닥이 가라앉는 일도 없다. 

R은 사라지지 못한다. 

R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어두움이 눈앞에 있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일주일은 반복을 암시하는 속임수다. 

동그라미 같은 인생이라고 검지로 허공에 원을 그리던 아내가 떠올랐다. 

아내의 손끝은 차갑고 가늘다. (본문 79쪽)

 

  시처럼, 극본처럼 읽히는 김엄지 소설가의 『겨울장면』. 소설 전체가 인생에 대한 암시다. 무심코 읽었을 때 아리송하지만, 대개 인생이 그런 식이라는 점에 있어서 오히려 명징한 소설이다. 감정은 최대로 절제되고, 눈앞의 장면을 보다 간결하게 그려낸 이야기다. 주인공 R은 추락사고 이후 기억하는 일에 상당한 지장이 생겼다. 생활은 모든 장면이 뒤섞여버려 마치 '망한 연극'처럼 흐른다. 흔히 '인생은 영화다, 드라마다'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 소설은 정말 연극을 보는 듯하다. 

 

그는 알지 못했다. 

얼음호수의 끝을. 

겨울의 시작과 끝을. 

제인해변에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다음 날 아침 제인호수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마음을. 그 누구의 것, 자기의 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마음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고. 

기억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모든 것이다. 

모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R은 생각했다. (본문 75쪽)

 

  인간의 기억은 생각만큼 확실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은데 서로의 기억이 맞다고 바득바득 우길 필요도 없다. 오히려 망각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란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때론 잘 기억하는 일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기억에 대해 말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기억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기억으로 오늘을 살고, 기억으로 미래를 가늠하기도 한다. 

 

  기억은 그다지 확실하지 않아도, 그 정도면 살기 적당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편이고, 어쨌든 기억은 인간이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소설가에게 있어서 기억은 불쏘시개가 되어줄 것 같고, 천사는 자신의 능력으로 추억을 만들어주고, 악마는 자신의 능력으로 트라우마를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의사는 기억력에 장애가 생긴 R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조언을 해주지만, R을 비롯하여 우리는 이미 각자의 현실을 아주 명확하게 직시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은 각자의 현실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문장은 영 재미가 없다. 그러니, 소설을 읽어야 한다. 김엄지 소설가의 소설은 대부분 따분하고 무의미한 인생을 말하면서도 흥미롭고, 신비롭지 않은가.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음은 김엄지 소설가의 능력일 것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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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시인 소리 듣기가 부끄러웠던 시인 | 리뷰모음 2021-01-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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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저
문학동네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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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느 지면을 통해 김연수 소설가가 백석 시인에 대한 소설을 집필 중이라며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가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니. 막상 소설이 출간 되었을 때 바로 읽지는 못했지만, 그 사이 팬심(fan心)이 사그라들 일은 없었기에 조금 늦게나마 찾아 읽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 확신은 못해도 추측은 해볼 수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 책을 나의 자산, 보물이라도 되는 마냥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김연수 소설가의 다른 책들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백석 시인의 본명은 백기행이다. 6.25 이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기행은 북쪽의 조선작가동맹에서 노어 번역 일을 하며 살아간다. 초창기의 북한 정권은 인간의 마음이 마치 로봇의 부품이라도 된다는 듯이 개조시키려 들었다. 보수주의와 나약한 소극성에서 탈피하여, 뜨거운 피로 새나라를 일구라고 끊임없이 선전했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기행을 비롯한 작가들에게는 부르주아 사상과 개인주의를 버리라고 강요했다. 

 

  작가들은 당과 수령을 찬양하고 인민들에게 건전한 사상을 심어줄 시만을 써내야 했다. 그러니, 기행은 마음대로 시를 쓸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시쓰기 대신 노어 번역을 택했다. 그러다가 공산당 집권 국가들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시인으로서, 또한 인간으로서의 자리가 위태로웠던 기행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되나 싶었다. 불행히도 그러한 변화의 바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안타까운 목숨들이 당과 수령에 반기를 들고 흑심을 품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숙청당했다. 봄은 오래도록 찾아오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 문학신문의 주필은 기행에게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일인칭 '나'로서 오체르크(실제로 있었던 일을 적은 문학)를 쓰라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 결과적으로 그건 가능했다. 마음이 시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연극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기행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오래도록 그는 찬양시를 써내지 못했고, 김연수 소설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시간이 많이 흐르고나서야 겨우 한편 써냈다고 한다. 백석 시인이 쓴 수령 찬양시를 읽었을 때 굉장히 씁쓸해져버렸다. 

 

  소설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원하는 만큼 마음껏 편지를 쓴 뒤, 기행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쓰고 나니 비로소 기행은 살 것 같았다. 기행은 편지를 쓴 페이지를 찢어 난로 속으로 던져 넣었다." (본문 205쪽) 이 문장을 읽고 나니 김연수 소설가의 『시절일기』에서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여기, 옮겨적는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도 읽지 않을 테니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써라. 대신에 날마다 쓰고, 적어도 이십 분은 계속 써라. 다 쓰고 나면 찢어버려도 좋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이지, 남기는 게 아니니까." (『시절일기』中)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기행이 편지를 마음껏 쓰고 난 뒤 난로 속으로 던져넣어버리는 행동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김연수 소설가가 꾸며낸 이야기이리란 짐작이 갔다. 그런 백석 시인의 움직임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다보니 어쩐지 김연수 소설가의 모습이 중첩되기도 했다. 김연수 소설가는 소설속에서 백석 시인이 잠시나마 자유롭게 문장을 쓰도록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는지 소설의 결말을 읽는 동안 눈물이 핑 돌았다. 참으로 담담하게 읽어내기가 어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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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거울 장면』 | 여러가지 2021-01-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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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 사이를 유영하는

R, 그리고 R, 그리고……… 우리, 수많은 R

 

중첩되는 장면들 속에서 어느 곳에도 발붙이지 못한 채

그저 부유하는 김엄지식 인간들의 세계

 

의식과 무의식,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포착됨을 거부하는 문체와 평면적이고 반복적인 서사로 특유의 작품 세계를 이어온 작가 김엄지. 김엄지의 신간 소설 겨울장면이 출간되었다. 욕망이나 사건, 내면의 사고思考가 결여된 인물들을 통해 더 이상 미래를 도모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평면적인 일상의 극단적인 반복을 내보인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삶에서의 변화, 미래로의 이동, 타인을 통한 낙관을 차단당한 산송장과도 같은 인간 존재를 그린 폭죽무덤까지, 김엄지는 2010문학과사회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출간되는 소설마다 본인의 스타일을 굳건히 해왔다.

 

이번 겨울장면은 기억을 잃었으나 어떤 기억을 잃었는지조차 모르는, 그저 그 상태로멈춰 있는 것이 최선‘R’이라는 인물을 통해 진행된다. 기억과 망각 사이 어느 한 곳에 발붙이지 못한 채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R’. 김엄지의 소설에서 유구히 존재해온, ‘그저 있는김엄지식의 인간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한 ‘R’을 통해 김엄지는 우리의 모습을 작품 위에 겹쳐놓는다.

 

겨울장면에는 김엄지 작가의 에세이 몇 하루가 수록되어 있다. 작품을 집필하며 일상에서 길어 올린 장면들을 작가 특유의 산문체로 써 내려간 것으로, 건조하고 단조로운 생활 사이사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작가의 예리한 현실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은이

 

김엄지

2010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돼지우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중편소설 폭죽무덤,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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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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