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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이 분 참 재밌는 양반이네 | 리뷰모음 2021-05-2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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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리커버 에디션)

빌 브라이슨 저/권상미 역
21세기북스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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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을 땐 눈시울이 촉촉해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비테 안경에 벌집처럼 틀어 올린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엽서들이 정말 근사하네요." 그녀가 말했다. "난 여러 주에 가보고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만큼 '이쁜' 덴 없었어요." 정말로 '이쁜'이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가련한 이 여인은 최면 말기였다. (본문 16-17쪽)

미스터 빌 브라이슨이 태어난 미합중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일어났던 일화다. 사실과 가깝든 아니든 좋은 걸 보려고 하는 눈과 착각이 때로는 세상 살이를 덜 각박하게끔 만드니, 아주머니가 걸린 최면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은 듯하다. 사실과 가깝든 아니든 자기 고향에 대하여 어떤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갈텐데 빌 브라이슨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문체로 기억을 소환해서 그런지 재미있는 곳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따분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2. 아버지는 몇 시간이고 버너를 이렇게 저렇게 켰다가 바람을 막아보려 애쓰면서 그와 동시에 대개 만성정신질환자를 연상시키는 낮은 목소리의 신경질적인 말투로 버너를 불러댔다. 그러는 동안 형과 누나와 나는 제발 에어컨이 나오고 식탁보가 깔려 있고 깨끗한 물에 얼음을 띄워주는 곳으로 가자고 아버지한테 애걸했다. …(중간생략)… 하지만 아버지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대공황의 아들이었고 돈이 나갈 것 같으면 방금 멀리서 사냥개 소리를 들은 탈옥수 같은 표정을 지었다. (본문 20쪽)

스탠드 코미디를 육성으로 듣는 게 아니라 꼭 글로 읽는 듯한 느낌의 여행기랄까? 예전에 유튜브에서 딱 한 번 흑인남성이 타조에게 좇긴 일화를 관객들 앞에서 생생하게 재연하는 스탠드 코미디를 본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개그 프로그램들을 볼 때보다 훨씬 유쾌하고 재밌었다. 정말이지, 웃긴 글, 만세다!

 

  그리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 제일 재미있는 여행기를 담은 에세이집인 줄 알았는데,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도 못지 않게 웃기다. 

 

3. 안타깝게도 그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는 방법이 되었다. 이들에게 휴가란 잠시 잠깐도 불편에 노출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여행의 욕구에 사로잡히면 당신은 13톤짜리 철제 궁전에 덥석 올라타고 악천후에서 완벽하게 밀폐되어 시골길을 예닐곱 시간씩 달리다가 아무 야영장에나 도착한 다음, 곧바로 캠핑장의 수도와 전원 플러그에 연결해서 에어컨이나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없는 순간을 잠시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본문 133쪽)

레저 차량(RV) 이용자들 이야기다. 한국도 캠핑, 차박 열풍이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캠핑용품만 전문적으로 파는 창고형 매장에 가본 적 있는데, 이런 걸 죄다 사들이면 오히려 더 짐만 되고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돈 낭비가 아닐까 여겨지는 물품들도 상당했다. 어렸을 때 시골의 냇가에서 1박2일이나 2박3일 정도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먹고 마시면서 불편한 점들도 있었지만 즐거웠고, 바로 그 불편함으로 인하여 여행은 색달랐다. 휴가지에서까지 물건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4. 또한 백인들이 가난하게 사는 걸 보는 기분도 이상했다. 미국에서 백인이면서 가난하기란 진짜 힘든 일이다. 물론 여기서 가난이란 미국인의 가난이며 백인들의 가난이니 다른 곳의 가난과는 다르다. 터스키지의 가난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본문 145쪽)

여행기에는 코믹한 글만 있지 않고 이런 신랄한 글도 곳곳에 있다. 가난도 상대적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 가난은 비싼 옷을 사지 못하고, 주말에 마음껏 여행을 다니지 못하며, 외식도 어쩌다 한 번 할 수 있는 정도겠지만,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가난은 오늘 한 끼도 못 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다시 절망에 빠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얼마나 가난한, 혹은 얼마나 가난하지 않은 사람인가?

 

5.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매년 학교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만 해도 런던 전체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보다 더 많다. 이렇다 보니 미국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폭력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별로 놀랍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본문 171쪽)

뉴스에서 내전이 끊이질 않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런 모습을 보면 내전이 일상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살아갈까 궁금해진다. 죽음을 각오하고 하루를 시작해야만 할까? 그 사람들에게 아침에 창문가로, 혹은 얼굴 위로 비추는 햇빛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한국에서 태어났음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6. 그런데 남부 뉴햄프셔가 가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면 그건 완전히 잘못된 얘기다. 쇼핑몰, 주유소, 모텔 등 현대적이지만 너저분한 상업지구가 있을 뿐이었다. 때때로 버거킹이나 텍사코 주유소 사이에 하얀 교회나 뉴잉글랜드에서 전형적인 엇갈린 벽널 구조로 된 여관이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추함을 줄이는 게 아니라 차에 탄 채로 햄버거를 살 수 있고 값싼 휘발유를 사기 위해서는 무엇이 희생되어야 했는지를 상기시킴으로써 추함을 더 강화할 뿐이었다. (본문 210쪽)

원래 있던 것을 몰아내고 거기에 더 좋은 것을 들이는 일이 항상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경우가 결코 적지 않음을 경험하는 때가 있다. 집 근처에 oo산이 있는데 환경 개선 사업이랍시고 멀쩡한 산의 일부를 깎아서 붉은 흙이 드러나게 하고, 그 앞에 진짜 폭포나 인공 폭포도 아닌 폭포수가 흐르는 영상이 나오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나중에라도 진짜 폭포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터널을 만들려는 목적도 아니면서 산은 왜 깎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빌 브라이슨이 말한 것은 더욱 심각한 이야기라는 점을 안다. 내가 말하고자 한 점은 몰아내기의 폐해가 실생활에서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책의 저자도 미대륙 개척자들이 원래 살던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그들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몰아내었음을 사실적으로 썼다. 원래 있던 것을 낡고 후진 것으로 치부하고 더 좋다고 여겨지는 것을 세우고 들이는 일이 몰아내기의 특징이다.

 

7. 나가는 길에 소리가 요란한 슬롯머신 한 대가 관심을 끌었다. 어떤 여자가 방금 600달러를 딴 것이다. 기계는 90초 동안 계속, 은색 폭포수처럼 동전들을 내뱉었다. 돈이 다 나오자,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전 더미를 흘끗 보더니 다시 돈을 기계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안쓰러웠다. 저 많은 동전을 다 잃으려면 밤을 새워야 할 텐데. (본문 324쪽)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에 가진 돈을 전부 잃기 위해서 간다. 그곳은 철저하게 인간의 탐욕으로 굴러가는 곳이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강원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곳에는 곳곳에 버려진 차가 많은데 먼지가 뽀얗게 앉은 창문에 죽지 말라고 손가락으로 누군가가 글을 써놓기도 했다고. 그게 사실일까? 

 

8. 미국은 너무나 넓어서, 온갖 재해가 발생해도 나라의 광대함 때문에 엄청난 참화가 흡수되고 가려진다. …(중간생략)… 캘리포니아에서 보는 플로리다의 재해는 영국에서 느끼는 이탈리아의 재해쯤 될까. 그러니까 잠시 스쳐 지나가는 병적인 관심으로 잠시 눈길이 머물다 말 뿐, 동정심이나 염려를 자아내기에는 너무나 동떨어진 곳의 이야기인 것이다. (본문 344쪽)

맞다. 미국은 大陸! 미국의 땅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빌 브라이슨의 이야기는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중요한 이야기다. 왜냐면 그는 그 어마어마한 땅을 어머니의 차를 빌려서 직접 여행하고 다녔으니까. 254쪽에 보면 미국의 오대호를 합친 크기가 영국과 맞먹는다는 글도 있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1980년대 미국에서는 지도에서 웬만한 마을은 잘 표시되어 있지도 않았다고. 

 

  반면 한국은 땅덩이가 좁아서 사건 하나가 터지면 상당수의 국민이 알게 되고 심각성을 몸소 느낀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에 전국민이 기름을 걷어내는 자원봉사를 하려고 많이 다녀갔던 기억이 난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면 그만큼 많이 다녀가기도 어려웠을 듯하다. 한국은 출발 지점에서 목표 지점까지 아무리 멀어도 하루만에 다 갈 수 있다. 그렇지 않나?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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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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