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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이방인』 | 2022-02-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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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클럽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저/이정서 역
새움 | 2022년 02월

 

신청 기간 : 3월 7일 까지

모집 인원 : 5명

발표 :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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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카뮈를 배반한 『이방인』의 기존 번역들


44세의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문학상(1957년)을 안긴 소설 『이방인』. 그동안 세계 각국의 언어로 숱하게 번역된 이 전설적 소설에 또 하나의 번역본이 필요할까? 필요할 뿐 아니라, 기존의 한글 번역들이 『이방인』의 위대한 가치를 뭉개고 있는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게 번역가 이정서 씨의 판단이다. 『이방인』을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카뮈는 두 문장으로 요약한 자신만의 역설적이고 독창적인 사유를 작품 구석구석, 캐릭터 하나하나에까지 심고 끝까지 몰고 나갔다. 지극히 민감하고 간결한 문체에 담긴 카뮈의 의도는 우리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돼 왔던 것인가? 독자들은 과연 카뮈의 『이방인』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이방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다. 뫼르소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소설 전반을 휘어잡는다. 그렇다면 뫼르소는 어떤 인물일까? 어떤 거짓말도 거부하는, 사회와 법정이 요구하는 ‘뉘우침’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그래서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마는 뫼르소의 캐릭터는 우리 독자들에게 제대로 이해가 된 걸까? 전혀 새롭기 때문에 낯선, 그러나 카뮈의 사유와 문체를 정교하게 살린 또 하나의 『이방인』 번역이 나와야 했던 이유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은 오역과 왜곡의 근본원인이 최대한 원문 그대로를 직역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는 인식하에, 구두점 하나까지 살리는 정확하고 바른 번역을 통해 원전의 표면적인 의미를 물론 감추어진 맥락과 저자의 의도까지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리즈이다. 이상으로만 취급되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온 직역을 통해 명저의 가치와 내용을 정확히 드러내고, 독자들은 원어민의 독서에 뒤지지 않는 고전 독서의 즐거움을 직업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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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길고, 정신도 없는 찬양글 | 2022-02-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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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강명순 역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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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한 번만 읽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예감했다. 나는 앞으로 쭉-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이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될 거라고. 짜릿함을 느낄 정도의 만족감을 주는 소설책이 많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소수의 책들 중 한 권이다. 어쩌면 내게는 몇 번이나 다시 찾게 되는 성지 혹은 사원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리뷰 초입의 이 글을 읽으면 책 홍보글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이 책은 너무 유명해서 굳이 어설픈 내 리뷰로 홍보를 할 필요도 없다. 

 

  누구보다 예리하게 냄새를 맡고, 그것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정확하게 기억 해내며, 재구성하는데 초월적인 능력을 타고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이 소설책의 주인공이다. 그는 외모가 상당히 초라한데, 그보다 더 형편 없는 건 그의 내면이다. 쥐스킨트가 자신의 글로 묘사한 이 괴물은 자신의 내면에 아무것도 없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면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그는 또한 몸에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인물이다. 그르누이가 평생을 역겨워하고 피하려 했던 사람들은 그들만의 냄새를 가지고 있었고, 내면에 단순한 감정들을 지니고 있었다. 

 

  쥐스킨트의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 도중에 읽기를 멈추면 작가가 인간이란 존재들을 너무 악평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끝까지 다 읽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어쨌건 그들이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와 단순한 감정들(사랑, 연민, 존경심 따위의)이 그들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더욱이 삶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해주니까 말이다. 내면에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인간다운 냄새조차 없는 이는 결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천재이긴 했지만 행복한 천재는 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끔찍하면서도 아주 슬픈 이야기이다. 

 

  이 책을 예전에 읽었을 땐 책 속에서 '프랑스 혁명'이나 '시대의 변화' 같은 이야기가 나와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천재성과 그의 살인 행위 등이 너무 충격적이면서도 흥미진진 했기 때문에,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 관심이 덜 갔었다. 헌데, 다시 읽어보니 그런 부분이 눈에 띄었다. 향수 제조인인 주세페 발디니는 시대가 변해서 장인이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할 수 없고, 돈을 벌고 더 많은 명성을 누리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능력을 쌓아야 하는, 요즘 말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시대 풍조(개혁의 바람)가 못마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흐름은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거기에 발을 맞추지 않으면 인간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르누이가 도제로서 주세페 발디니 옆에서 묵묵히 일했던 건 그를 존경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에게서 향수 제조법을 배우고, 그가 어디로 가든 그를 의심받지 않게 만들어 줄 도제 증명서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주세페 발디니에게서 도제 증명서를 얻어내고 지체없이 그라스라는 도시로 떠난다. 물론, 소설을 읽은 이들은 알겠지만 그는 바로 그라스로 가지 않는다. 독자는 그르누이와 함께 그곳으로 당도하기 전에 많은 장소와 이야기를 맞이해야 한다. 그 일에 지루함은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르누이는 도시에서 시골, 아니 그보다 더 외진 곳으로 떠난다. 왜냐하면 파리에서 떠나 외진 지역으로 갈수록 인간의 냄새로부터 멀어져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바로 그라스에 당도할 수 없었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벗어나 '플롱 뒤 캉탈'이라는 산으로 들어간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행동을 묘사하는 장면을 읽다 보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다른 소설인 『좀머 씨 이야기』 속 '좀머 씨'가 떠오른다. 그르누이나 좀머 씨나 지독한 외톨이이면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싶어한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작가 프로필에 쓰여져 있다. 

 

  그르누이는 산 속에서 이끼와 산짐승을 먹으며 7년 여의 시간을 보낸다. 플롱 뒤 캉탈에서의 생활은 짐승보다 더 나을 게 없었지만 그르누이는 자신이 만든 내면 속, 향기의 왕국에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누렸고, 그래서 그곳에서의 생활이 결코 힘겹지 않았을 것이다. 향기의 왕국에 처박혀 살았던 그르누이는 문득 어느 날 '밀실 공포증'을 느낀다. 나는 이 부분에서 특히 놀랐다. 아무리 내면 속의 향기의 왕국에 처박혀 있어도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공포로 인해서 그르누이는 플롱 뒤 캉탈을 떠나야 함을 깨닫게 된다. 또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이 몹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놀라웠다. 

 

  그라스에 당도하기 전에도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어지는지 모른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굳이 지루한 내 글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의 내면이 실은 단순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그것들이 얼키고 설키다보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복잡해져버린 내면 세계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단순한 것들로 자신을 드러내게 되고, 그것들은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자신을 보기 좋게 치장하거나, 몸에 좋은 향수를 뿌리는 일로도 얼마든지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차라리 그런 것들이 누군가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크나큰 장점을 지닌다. 

 

  향수는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데, 이 책을 읽지 않고 본다면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2시간 정도의 영상으로 소설 속의 모든 이야기, 메시지를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생략되고, 어떤 것들만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 나는 언제나 영화보단 소설을 더 좋아한다. 실은 영화도, 소설도 나에겐 어려운 영역이지만 언제나 소설에게서 친절함과 친근감을 더 느끼고, 영화는 뭐랄까, 나에겐 너무 먼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건 왜 그럴까?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결론은 소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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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죽음에 묻다 | 2022-02-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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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이 살았던 날들

델핀 오르빌뢰르 저/김두리 역
북하우스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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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핀 오르빌뢰르는 이런 사람이다. "오르빌뢰르는 이스라엘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기자로 활동한 후에, 뉴욕에서 랍비가 되는 과정을 밟았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유대 사상에 관한 진보적인 계간지 「테누아Tenou'a」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책과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랍비이자 '쇼아' 생존자의 손녀이면서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델핀 오르빌뢰르…"(「옮긴이의 말」中) 랍비라는 신분은 어렸을 적에 『탈무드』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대충 알고 있었는데,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스승 정도로 기억하고 있고, 쇼아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봤는데,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러니까, 델핀 오르빌뢰르는 유대인이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면 『당신이 살았던 날들』만 읽고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델핀 오르빌뢰르의 진보적인 유대주의는 그녀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우리가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일치하면서도 다른 것이다. 그녀는 틀에박힌 유대주의를 거부하고 더 나은 유대주의를 개척하려는 랍비 같았다. 어쩌면 그녀의 삶 또한 안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세력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는 원하지 않았으나 우리에게 친숙해진 단어인 '팬데믹'(세계적인 유행병)을 들면서 그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대의학과 의료시설이 죽음을 우리가 사는 집으로부터 먼 곳으로 가도록 유인했는데, 팬데믹이 도래하면서 죽음이 우리가 사는 집의 대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고.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은 그러나 우리의 삶 속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알 수가 없는데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51~81 페이지에 걸쳐서 저자가 서술하고 있는 '유령의 소환'은 한 마디로 유령, 죽은 이들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유대 전승에서 '디부크'라고 불린다는 유령은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소환되어 현대인의 이야기에 우뚝 자리한다. 저자는 디부크 중, 에덴의 낙원에서 하느님에게 경고를 받은 태초의 인간을 소환한다. 에덴의 낙원에서 하느님이 태초의 인간에게 네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는 죽는다고 경고하신다. 이때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인간은 본연의 순진함을 잃으며, 영원히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어 죽음의 공포에 떤다고 한다. 

 

  델핀 오르빌뢰르도 어린 시절에 최초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 눈을 떴던 경험을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녀가 소개한 이야기는 양심의 문제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직결되어 있어, 에덴 동산에서 태초의 인간이 겪었던 일과 잘 들어맞았다. 나는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최초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이었다. TV로 만화를 보다가 문득 머릿속에서 무덤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언젠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거기에 묻히고 나는 세상에 외롭게 남겨지리란 생각이 들면서 무서웠고 울음이 났다. 어린 나이에 나에게 찾아온 죽음의 이미지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영원한 생이별을 예감하게끔 만들었다. 아, 그건 공포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선악과를 따먹고 공포에 떨었던 델핀 오르빌뢰르는 커서 랍비가 되었다. 랍비는 유대교의 율법을 가르쳐주거나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스승이다. 그리고 그녀는 장례 집전자로서 수많은 죽음을 애도하고, 죽음에서 얻은 깨달음을 독자에게 전한다.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을 리뷰에 옮긴다. "나는 항상 애도자들에게 당부한다. 그들이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그로 인한 고통 외에도 생경한 현상을 경험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그 현상이란 말의 공허함과 말하는 사람들의 서투름이다." (본문 135쪽)

 

  "자식의 죽음은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방문할 수 없는 땅으로 추방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당신은 모든 이민자들처럼 새로운 언어를 발견해야 하고, 그 언어로 더듬더듬 말하게 된다. 당신이 알던 어떤 말로도 이제부터 당신이 살아야 할 경험을 입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본문 136-137쪽)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은 말을 오용한단다. 그들은 최대한 말을 고르고 골라서 조심스레 입 밖으로 내뱉지만 어떤 말도 죽음과 가깝지는 않다. 소설가들 또한 이야기라는 형식을 빌려 최대한 고르고 고른 말로 애도의 글을 쓴다. 어떤 말로도 죽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해도. 무너질 성城일 줄 알면서도 쓴다. 

 

  이제 죽음을 두려워 한 모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는 종교가 없고 종교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아서 모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모세의 기적은 하도 유명한 이야기라 대강 알고 있지만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 아무래도 기적을 행한 인물이니까 보통 사람이 아니고, 영웅이나 특별한 사제가 아닐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죽음을 두려워 했다니? 하느님은 모세가 약속의 땅에 닿기도 전에 생명과 죽음 중에서 하나를 택하게 하셨다고 한다. 모세는 당연히 죽음에 반발했다.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를 읽은 이들은 모세가 극심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을 택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는 죽으면서 민족 전체를 구원했다고 한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모세에게서 우리는 영웅적인 면모보다 인간다운 면모를 본다. 저자는 아무래도 모세의 그 인간다운 모습에 이끌린 듯했다. 그녀는 구약성서에서 유대인들의 역사에 이교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그런 점에 이끌린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많은 견해들 중에서 어떤 부분은 상당히 위험하게 들리는 것들도 있었다. 그녀는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유대인이면서도, 이 사람이 정말 유대인이 맞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유대인이다. 그녀는 유대교가 일정한 틀에 박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 두 눈 뜨고 보지 못한다. 그녀는 하느님에게 늘 질문한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단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모세처럼 돌아서 미래를 본다는 조건하에서 가능하다. 미래는 우리 앞이 아니라 우리 뒤에, 우리가 막 오른 산의 흙 위에 새겨진 우리 발자국에 있다. 그 흔적 속에서, 우리를 뒤따른 사람들과 우리 뒤에 살아남을 사람들이 우리가 아직 거기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읽을 것이다." (본문 221-222쪽) 이 문장을 읽고서 처음에 머리가 멍했다. 미래는 우리 앞이 아니라 우리 뒤에 있다는 부분이 무척 신선했다. 과거, 그러니까 죽음이 미래를 만든다는 뜻이기도 할까. 죽음 자체를 우리가 알 길은 없을지 몰라도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무언가 색다른 길을 모색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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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머루
느리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독서 생활을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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