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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나는 냄새 | 기본 카테고리 2021-06-0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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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부르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풀피냄새라고 한다. 여름에 비가 한바탕 오고 나면 여기저기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내버려 두면 정글을 이루기 때문에, 풀을 아주 바짝 깎아버린다. 이때 나는 풀 냄새가 있다. 도시에서 산림욕을 하게 해주는 그 냄새. 잡초가 제초기에 잘려나가서 나는 냄새. 나는 풀피냄새라고 한다.

추워서 얼어버린 여름에 비해 여름은 움직이는 자연 냄새가 난다. 쉽게 썩어버리는 음식 냄새. 음식물 쓰레기통은 매일 갖다 버려야 하고, 하루라도 게으름이 이겨버리면 집안은 초파리 왕국이 되어버린다. 이거 빼고는 나쁜 냄새는 없다. 나쁜 냄새에 비해 여름의 냄새는 좋은 냄새가 더 많다. 비고 오고 서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습한 날씨지만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풀피냄새가 있으니까. 그리고 시골 냄새가 있으니까. 서울에 살았기에 외갓집에 내려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했다. 지금은 2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어릴 때는 10시간이 걸렸다. 길이 막히는 날이면 16시간도 걸렸다. 아빠가 굉장히 화를 냈고 짜증을 내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일 년에 1번. 여름 방학에 외갓집에 내려갔다. 심지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생신도 여름이었다. 여름휴가와 생신잔치를 한꺼번에 해결!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꿀타이밍이 있을까.

이렇게 깡시골이 있을까 싶은 곳을 태어날 때부터 다녔던 나는 모든 친구들의 외갓집은 이런 곳인 줄 알았다. 화장실을 가려면 집을 나와 뒤로 돌아 나무문을 열고 밑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곳에 앉아 볼일을 보는 줄 알았다. 어릴 때는 큰 일을 볼 때 재래식 화장실에 가기 싫어서 외갓집에 있는 3일 동안 변비에 시달렸다. 다행히 어렸기에 작은 일은 수돗가에서 해결했다. 그 깊고 진한 똥냄새는 자연냄새 중에 최악이었지만 재밌는 추억이었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지는 않지만 집 뒤를 돌아가면서 구경했던 구식 농기구, 흙담, 뭐가 있는지 궁금한 장독대 같은 것들은 좋았으니까. 흙담을 썼던 외갓집은 벽을 사이에 두고 너머에는 소가 살고 있었다. 소와 한 지붕이라니! 거기에도 소똥냄 새가 났다. 희한하게 집 안에 있으면 괜찮은데, 문을 열고 나오면 소똥 냄새가 스멀스멀 났다. 여름에 이렇게 똥냄새만 난 건 아니었다.

바다에서 가까이 있는 곳이라, 냉장고는 온갖 비릿한 것으로 가득했다. 김이 기본 반찬으로 올라간 것도, 생전 처음 보는 해조류를 먹은 것도, 그리고 한 상에 게 찌개와 생선구이, 생선찜이 모두 올라간 것도 다 이 때문이었으리라. 도시에서도 게는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서울에서는 게를 못 먹는 것처럼 갈 때마다 게를 주셨다. 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찜을 하기도 하고,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집에서도 흔하게 게 찌개를 먹는다. 재료 수급은 외갓집 냉동실. 풀피냄새 다음으로 나에게 여름은 비릿한 냄새다. 수산시장에서 맡는 냄새가 아니라 온갖 양념이 섞인 비릿한 냄새. 냄새만으로 군침이 도는 냄새. 내가 게를 먹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빤히 쳐다보시곤, 게를 안 먹기라도 하면 '그이 먹어 그이'라면서 손수 찌개에서 건져주셨다. 나이가 들수록 게는 맛있지만 귀찮은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어 잘 먹진 않았지만, 아직도 게를 보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밥을 한참 전에 먹었는데도 몸에서 집에서 비릿한 냄새는 계속 남아있었다. 이게 비린내가 아니라 외갓집 냄새가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가 시골에 대해 묘사하라고 하면 나는 똥냄새와 비릿한 냄새를 말할 거다. 단지 들어주는 사람이 이게 나쁜 게 아니라고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여름에 생각나는 외갓집. 여름에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에 돌아가셨다. 땅에 묻히던 그날엔 눈보라가 쳤다. 가족들에게 여름 말고 겨울에 또 내려오라는 뜻이 아니셨을까. 여름에 민소매를 입고 마루에서 포도를 드시면 할아버지, 손가락 두 마디 만한 작은 매미 허리에 실을 감아 건네주신 할아버지, 아프셨지만 주꾸미 축제라며 오토바이를 끌고 저만치 먼저 가 계셨던 할아버지. 곧 할아버지의 생신이 다가오네요. 코로나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골의 여름 냄새를 맡지 못하겠지만요. 그래도 여름마다 할아버지가 떠오를 거 같아요. 그이 먹어 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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