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예술을 반영한다. 16km에 걸쳐 있는 막고굴을 시작으로 필자의 답사는 계속된다. 예불굴과 승방굴로 나눠진 막고굴은 492개의 석굴 중 234개에 일련번호가 붙여져 있다. 필자는 짧은 시간에 불교의 성지를 둘러본 것이 성에 차지 않아 결국 겨울에 또 한 번의 발걸음을 막고굴로 옮기게 된다. 중간에 나오는 [왕사성의 비극]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다. 부모와 자식의 연(緣)은 참 기이하다.
두 번째 방문에서 드디어 제45굴을 보게 된다. 책에 실린 제45굴 보살상의 사진만 봐도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 규모와 섬세함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제61굴을 끝으로 막고굴 답사는 끝난다.
이제는 이 시리즈의 하이라이트인 돈황인데, 막상 이 부분을 읽으며 서양 제국주의의 무정함과 탐욕에 기분이 상했다. 이집트 문명의 유출에 대해서는 읽기도 하고 방문도 하여 확인해 보았지만 돈황의 유물 상당수가 서양 각 나라가 앞 다투듯 가져간 것을 읽으니 마음 한구석이 싸해졌다. 필자는 이를 ‘돈황문물 유산기(流散記)’라 칭했다. 심지어는 130파운드로 고문서 1만점을 가져가기도 했다. 이들을 돈황의 도보자(盜寶者)라 불렀다.
이에 비해 돈황의 보물들을 지키는 작업을 했던 이들을 소개하는데, 그들은 현대중국화의 거장 장대천과 가족까지 해체되며 40년 동안 돈황에 머물렀던 상서홍, 조선족 화가 한락연이 있다. 이들의 작품들은 돈황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들을 돈황의 수호자(守護者)라 지칭한다.
실크로드의 관문 편에 나오는 서하(西夏)의 벽화와 운명편을 읽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는 당시 3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한반도의 4배 넓이의 제법 큰 나라였고, 한때 강성하여 송나라에 조공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칭기스 칸의 침략으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서하인 후손의 DNA를 발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인간이 정말 잔인할 수 있다는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필자는 남아있는 문화유산 속에서 서하를 추억한다.
서역으로 열린 두 관문을 방문하며 필자의 돈황답사는 끝을 맺는다. 광활한 지역, 불교 유적의 집산지 돈황을 필자와 돌아보며 인간의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새겨보게 되었다. 아울러 가까운 미래에 돈황을 방문하는 나의 모습도 떠올려봤다. 참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