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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담으로 파헤친 삶의 의미 -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 | 기본 카테고리 2008-05-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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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저/김창활 역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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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공룡들이 대문 밖을 활보하고, 철학개론이 대학 교양 필수 과목이었던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 과의 철학개론 강사는 형이상학이나 존재론의 난해한 추론보다는 소위 개똥철학에 더 능한 아줌마였는데(아, 물론 아줌마들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 아줌마는 하이데거를 버벅거리다가 ‘행복’에 대한 개똥철학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신공을 언제나와 같이 발휘해서 침까지 흘리며 열심히 노를 젓던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줬었다. 아마 대충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하며,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그 행복의 기준이란 걸 잘 들여다보면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행복을 미래형, 가정형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5kg를 빼면 행복해질 거야.”라든가 “월급이 40만원만 오르면 정말 행복할 텐데.” 또는 “내 집을 가지면 행복할 거야.”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5kg를 빼면 5kg가 더 빼고 싶어질 거고, 40만원 오른 월급으론 그다지 많은 것들을 할 수 없으리란 걸 곧 깨달을 것이며, 내 집을 갖게 되면 또다시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된다. 즉 “...한다면 행복할 것이다”는 식의 기준은 나 자신에겐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는 사실만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아줌마 강사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아줌마는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어때야 하는지 정확하게 말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 원론적이어서 기억에 남지 않았던 걸까. 그만큼 행복이란 어려운 문제인 걸까……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을 하룻밤 사이에 독파한 후 십 수 년 전의 이야기가 떠오른 걸 보면 어쨌든 그 아줌마의 개똥철학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나름대로 거창한 주제 때문에 이 책의 줄거리가 무슨 문제적 대작에나 어울리게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이 책은 그냥 연애소설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28살의 유복한 유부녀가 가난한 작가와 바람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한스 에리히 노삭은 이런 낡고 닳아빠진 이야기 거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심층으로 파고들면서 인간 실존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대단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얼핏 밥맛없는 유부녀처럼 보이는 마리안네는 내게는 반성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난 인물처럼 여겨진다. 반성능력이란 다른 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살아가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곳의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어떤 것인지 등등에 대해 병적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그 대답을 냉정할 정도로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즉 자신이 처한 상황에 걸맞게 찾아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해답은 그녀가 진심으로 원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행복하지 못하다. 아니, 불행하다 못해 그녀의 마음은 아예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 무덤 같은 결혼 생활에서 그녀를 되살려낸 것은 베르톨트의 운명 같은 한 마디였던 것이다.


마리안네가 운명으로 직시한 베르톨트의 직업은 작가다. 그런데 작가인 그에게 글을 쓴다는 건 산고(産苦)보다 몇 천 배, 몇 만 배 더한 고통을 줄뿐인 괴로운 작업이다. 그래도 작가라는 직업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에겐 글쓰기 이외의 그 어떤 재능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글쓰기란 바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글쓰기 작업에 무척이나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베르톨트는 자기 자신에게 몰입해있으므로 세속적인 가치관과는 동떨어진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반성 없이 떠벌여대는 나르시스트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언제나 너무나 진지하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고통의 산물에, 즉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더 나은 말, 더 유려한 문장을 추구한다. 그가 마리안네와 닿아 있는 지점이 바로 이런 면이다.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는 운명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사랑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마리안네는 부자 남편과 어린 아들을 버리고 베르톨트를 따라 집을 나왔다. 그렇지만 운명의 순간은 어김없이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후에 남는 것은 끝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사랑은 순간이 아니다. 사랑이 힘겨운 건 아무리 운명적인 것이라 해도 일상 속에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사에 병적일 정도로 자기 성찰적인 마리안네와 너무나 진지하기 때문에 현재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베르톨트. 과연 이 둘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 둘은 자기 성찰 능력이 다소는 부족한, 자신의 삶에 그다지 진지하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 꾸려나가는 것과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그들은 별 볼일 없지만 보다 일반적이고 착실하며 평탄한 일상을 지치지 않고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들일까. 아마도 그 답은 다음과 같은 베르톨트의 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행복을 꿈꾸고, 그것을 알고 있지만

       가질 수는 없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불행……


마리안네와 베르톨트가 짊어진 근원적인 고독감, 절망감은 너무나 닮아 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둘이 꾸려나갈 일상은 삐걱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예견된 불행을 쫓아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점차 균열되어 가는 일상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영혼이 남다른 그들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앞서 말한 그 행복의 미래형 기준에 매달린다. 그들은 마치 주문처럼 행복을 되뇐다. 11월이 되면 작품이 완성될 거야. 11월엔 돈이 들어와서 폭스바겐을 살 수 있어. 그러면 우리 둘이 자유롭게 떠날 거야.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진정 행복해질 거야…… 그러나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불행의 블랙홀이라는 것을. 인생의 진실은 베르톨트의 시와 같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바로 『늦어도 11월에는』이라는 이 소설의 제목이 함축하는 바인 것이다.


과연 11월에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졌는지의 여부는 여기에서 따질 일이 아닌 것 같다. 또한 운명적인 사랑의 허무함을 한탄한다거나 일상의 위대함을 찬양한다는 것 등도 걸맞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절망감을 토로한다거나 실존의 찬연함을 역설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의문이 들 뿐이다. 나의 평온한 일상과 존재를 완전히 파괴해버릴 만큼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는 건 과연 찬란한 행복일까, 아니면 참담한 불행일까. 행복이란 정말 난해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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