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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한 작은 미술관 | 기본 카테고리 2020-09-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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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전준엽 저
중앙북스(books)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나만을 위한 작은 미술관으로 떠나는 여행.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유난히 기다림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 책을 받기까지가 유독 그랬던 것 같다.

비 오는 오후에 울리는 알람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리던 날, 드디어 책이 도착했다.

인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강한 잉크냄새가 먼저 날아와 알려온다.

새 책에서 나는 종이와 잉크가 뒤섞여 뿜어대는 특유의 냄새가 한동안 가지 못한 서점을 떠올리게 한다.

서점에 가면 자연스레 맡게되는... 새 책에서 풍겨 나오는 그 향기를 참 좋아한다.

그 향기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편안해진 마음 사이로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신기한 구경에 나설 준비를 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타나는 머리말에서부터 저자의 글솜씨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때 글을 써서 생계를 꾸렸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글이 유려하다.

그 덕분에 읽는 재미가 훨씬 배가된다.

이 책은 주간 경제지<이코노미스트>에 연재했던 글들을 바탕으로, 화가의 입장에서 '왜 이렇게 그렸을까?' 하고 접근해 본 것이라고 한다.

책 안에 담긴 그림 대부분이 우리에게 친숙한 유명한 작품들이라서 약간 고민은 되지만, 그중에서 파트별로 마음을 끌었던 작품 위주로 간단히 정리해보려 한다.



CHAPTER  #1. 절대적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있다

-  인류가 창조한 가장 빼어난 미소



처음으로 볼 작품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우리에겐 친숙한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이 작품은 56억 7,000만 년 후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이 윤회의 마지막 단계인 도솔천에서, 다시 태어날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인류가 창조한 조각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다고까지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생각'이라는 추상적 주제가 인체로 나타난 것으로,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는 듯한 형상으로 걸림이나 막힘이 없는 맑은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일본에도 영향을 주게 되고, 거의 똑같은 모습인 (목조반가사유상)으로도 제작된다.

이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주제가 다시 미술사에 등장하는 시기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 만들어진 지 12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19세기 프랑스 조각가 로댕에 의해서이다.  

로댕의 작품에 비해 시대적으로도 앞서고, 빼어난 조각 작품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우리에겐  주로 불교적 유물로 알려진 이유가 서구 추종적인 미술교육 때문이라고 하니...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더불어 우리의 그림을 '동양화'로 부르는 것 또한 일제 강점기 때 시행된 우리문화말살정책의 잔재라고 하니, 옛 선조들이 부르던 방식에 맞춰서 재료에 따라 '수묵' '채색' 혹은 그림의 주제에 따라 '산수' '영모' '화훼' 등으로 고쳐 부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CHAPTER #2. 그림은 이야기, 뒷면이 말을 걸어온다

- 인생을 얘기하는 정물



이 그림은 빌렘 헤다(1594~1680)의 작품으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네덜란드는 유럽의 문화예술에서 변방에 속했으나 국제 무역 활동으로 축적한 부를 통해 돈 많은 신흥 중간계급이 탄생하게 된다.

이들 신흥계급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한눈에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장식용 그림을 선호했는데 이런 취향을 반영한 것이 정물화다.

정물을 뜻하는 영어 'Still Life'가 네덜란드어에서 나왔다고 하니 당시의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정물화는 당당히 미술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부르는데... 바니타스는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로 구약성서의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 헛되다"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후 바니타스 정물화의 은유 방식은 서양 회화의 중요한 표현법으로 자리 잡게 된다.

고급 식기에 남아 있는 음식 찌꺼기나 금방 깨질 것처럼 보이는 유리잔, 그리고 식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나이프와 식기의 불안한 구성 등에서 그러한 면을 볼 수 있다. 




CHAPTER #3. 화가여, 당신은 참 그림처럼

- 시간의 여러 얼굴



이 그림은 18세기 로마에서 활동했던 폼페오 바토니(1708~1787)의 작품으로, 시간에 의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젊음과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우화적으로 그려냈다.

시간을 다룬 작품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고 하는데... 과연 미술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서양미술에서 시간은 주로 등에 날개가 있고, 낫과 모래시계를 쥐고 있는 꼬부랑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모습이 된 이유는 시간을 신격화했던 그리스·로마의 전설과 신선의 모습으로 장수의 신을 표현했던 중국 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서도 시간은 고약한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벗어진 흰머리와 천사의 상징인 날개, 그리고  모래시계를 들고 있다. 노인임에도 근육질의 건장한 사내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시간이 지닌 영원불변의 막강한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노년을 상징하는 추한 몰골의 노파가 시간 영감의 명령에 따라 젊은 여인의 얼굴을 할퀴려 하고 있다.

여기서 젊은 여인과 노파는 한사람으로, 젊음을 잃고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들어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CHAPTER #4. 연인은 가고, 사랑의 화석이 된 그림

카미유의 예술을 훔쳤는가



뛰어난 미모와 천재적 재능을 지닌 조각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로댕의 조수, 모델, 연인으로 더 알려져 있는 카미유 클로델(1864~1943).

로댕의 그늘에 묻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그녀의 탁월한 작품성은, 1984년 파리 로댕 미술관의 회고전을 계기로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한다.

이후 1988년 브뤼노 뉘탱 감독의 영화 <카미유 클로델>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되고, 이후 평전과 전기 등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인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다.

 <해럴드 트리뷴> 지는 로댕이 카미유로부터 작품 아이디어를 훔쳤을 것이라는 가능성까지 제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두 사람의 작품을 보면 유사성이 강하다. 그러나 개중에는 어느 쪽이 먼저 만들어졌는지 판단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카미유는 모델로서 로댕에게 영감을 주었고, 조수로서 <지옥의 문> 등의 제작을 도왔으나 그와 결별한 이후 로댕에게 독살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 속에 살았다." (<해럴드 트리뷴>)  - P.162


로댕을 사랑한 댓가는 가혹했고, 카미유는 30여 년을 넘게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유서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고 한다.

"악마 같은 로댕의 머릿속에는 내가 자신을 뛰어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다나이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이드는 무지한 살인을 저지른 대가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형벌에 시달리는 인물인데... 앞으로 쏟아진 머리와 등을 보인 채 웅크린 포즈가 끝 모를 절망에 빠진 인간을 나타낸다.

<라 팡세> '깊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로댕이 카미유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던 시절 만들어진 작품이다. 카미유의 초상 조각으로, 명상에 빠진 스물한 살 여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 있다.

  * * <다나이드>와 <라 팡세>는  로댕이 카미유를 모델로 해서 만든 것으로, 걸작으로  뽑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로댕 초상> 

카미유가 로댕을 모델로 남긴 작품으로 '격렬한 고뇌로 가득 찬 로댕 흉상'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결별의 과정 중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로댕에 대한 애증이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터치로 잘 나타나 있다. 




CHAPTER  #5. 천재거나 문제거나, 그림 한 점의 혁명

- 영원한 문제작



이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시녀들>이란 작품이다.

작가들이 서양 미술사상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는 이 작품은, 

'발표된 지 360여 년이 지났는데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작품', 

'작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아직도 모티프를 제공하는 작품'이라는 수식어를 놓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미술관에서 보기 전부터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봐온 터라 꽤 익숙했다.

그러나 대부분 원제목에서 벗어난 다른 제목으로 이 그림을 사용해서인지 나중에 미술관에서 원제목을 보고는 의아해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 작품은 (스페인 펠리페 4세)의 총애를 받았던 벨라스케스가 왕의 여름 휴양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을 기발한 발상으로 제작해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 속 장소는 마드리드 알카사르 궁전 안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이고, 벨라스케스가 캔버스 앞에서, 화면 중앙의 다섯 살짜리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것이 과연 공주의 초상화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공주의 초상이 주제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공주가 모델을 서고 있다가 작가의 화실을 방문한 왕과 왕비를 보고 인사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하는데... 그러기엔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위치가 이상하다.

벨라스케스가 서 있는 위치는 맨 앞의 캔버스에서 조금 물러나 있고, 그 사이에 공주와 시녀들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캔버스 바로 앞에 모델을 두고 그린다는 것인데... 이건 구성상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쪽 주장은 작가가 그림 속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것은 왕  부처의 초상화라는 해석이다. 

이건 일리가 있어 보이는데... 그림 뒤쪽의 거울 영상을 통해 왕과 왕비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환영이 완성된다. 

즉, 그림 속에서 벨라스케스가 왕 부처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모델은 그림 앞쪽 바깥 부분에 서 있고, 그 뒤에서 우리가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서양회화의 영원한 본질인 환영주의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어서 지금도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CHAPTER  #6. 그림,  들리고 스미고 떨리다

- 공포는 이렇게 그린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라는 작품이다.

뭉크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미술'에, 영혼이라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영혼을 해부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이 문제에 집착했던 그는, 영혼에 다가서는 문을 죽음으로 보고 죽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징후를 질병, 고통, 광기, 불안 같은 것에서 찾으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뭉크는 어릴 때부터 죽음과 병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더욱이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 누나, 아버지, 남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봐야만 했기에... 

이런 영혼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죽음은 뭉크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주요 모티프가 된다. 


이 작품은, 가족의 연이은 죽음으로 정신분열증의 두려움에 떨었던 서른 살 되던 해의 작품으로, 실제 겪었던 자신의 환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두 친구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더니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슬픔의 숨결이 느껴졌다. 가슴 아래로 찢어질 듯한 고통.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담벼락에 기댔다. 피로가 온몸을 엄습해왔다. 바닷가 위에 떠 있는 구름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에 떨면서 가슴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벌벌 떨고 서 있었다. 바로 그때 공기를 가르는 거대하고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P.271




CHAPTER  #7. 시와 낭만이 너울대는 우리 그림

소리까지 들리는 그림



조선 후기 풍속화가 긍재 김득신(1754~1822)의 걸작 <파적도> 라는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만 같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 영조 시대 풍속화가를 이끌었던 김득신은 풍속을 포함한 배경 연출뿐만 아니라 뛰어난 현장감을 표현하는 것이 장기였다고 한다. 

한낮의 조용한 시골 농가 안마당에서 난데없이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소란을 담은 이 그림은,

'고요함을 깨는 그림'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단순한 풍속화를 넘어 극적인 역동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담긴 그림이다.

돌발적인 상황을 빌려 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연출한 작가의 솜씨는 전통 미술에서도 그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정적인 느낌의 우리나라 그림들속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아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다.



꽤 오랜만에 열정을 불태워가며 책을 읽었다. 

그림 한장 한장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기도 하고, 책에서 언급된 작가나 그림도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읽다보니 다른 책에 비해 완독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만큼 푹 빠져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왠지 나만을 위해 준비된 개인 도슨트 같은 느낌마저 든다.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조차도 그리워지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미술관으로 잠시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입구를 가진, 나만을 위한 미술관으로.^^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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