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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사람 - 누쿠이 도쿠로 | Book-일본 2013-07-2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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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저/김은모 역
엘릭시르 | 2013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웬만해선 책 후반부에 실린 옮긴이의 글이나 해설을 꼼꼼히 읽는 편이 아니지만,

미소 짓는 사람은 도저히 해설을 읽지 않을 수가 없는 책이었고,

결국엔 세 번이나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정독하고 말았습니다.

 

김용언 프레시안 기자의 해설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쿠이 도쿠로는... 범죄를 저지른 자와 희생된 자 모두의 심리를 아우르며...

독자를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 작가였다.

미소 짓는 사람은 아마 그중에서도 최대의 절망감을 안겨 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느낀 얼떨떨함이 최대의 절망감과 같은 부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책은 범인 찾기진실 폭로’, ‘정의는 살아있다등의

일반적인 미스터리의 엔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이나 철학의 범주에 더 가까운 독후감을 던져줍니다.

 

● ● ●

 

니토 도시미는 아내와 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됩니다.

범행 동기에 대한 그의 답변은 전국을 들끓게 만듭니다.

책이 늘어나 집이 비좁아지는 바람에...

아내와 딸이 사라지면 그만큼 집에 공간이 생기므로 책을 둘 수 있을 거라고...”

 

소설가인 는 니토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어 그에 관한 르포를 쓰고자 결심합니다.

그의 주변 인물을 탐문하며 끔찍한 처자(妻子) 살인마 니토의 흔적들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니토에 관한 한 험담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너 좋고, 능력 있고, 다정다감한 말 그대로 완벽남이라는 평가뿐입니다.

 

그 무렵, 니토가 아내와 딸을 죽인 곳과 가까운 호수에서 백골이 된 사체가 발견되고,

신원 확인 결과 니토와 함께 근무해던 은행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다시 한 번 매스컴은 니토의 혐의에 무게를 두며 광분하고,

는 다시금 힘을 얻어 니토의 이야기를 더 깊이 파들어가게 됩니다.

 

니토의 대학 시절, 고교 시절, 중학교 시절을 차례로 탐문하던 의 추적은

결국 니토의 유년 시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는 니토의 실체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 ● ●

 

줄거리만 정리해놓으면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니토의 실체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그 뒤의 이야기들은

절대로 그 공식을 따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니토의 실체에 대한 탐문의 결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작 누쿠이 도쿠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탐문 그 자체입니다.

주인공 는 마지막에 겪게 되는 반전을 통해 그 점을 깨닫게 됩니다.

탐문을 통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지만, 역으로 많은 사실들이 가려지기도 한다는 것을...

좀 뜨악하긴 하지만,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하려다 보니 이렇게 밖에 정리가 안되네요.

 

솔직히 좀 난해하지만 다들 명작이라고 칭하는, 그런 종류의 책을 읽은 느낌입니다.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고, 조금은 ... 그런 거였군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게 되기도 하고...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누쿠이 도쿠로 작품 중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릴 것이 분명하지만,

저의 경우, 누쿠이 도쿠로의 기존 작품들에 관한 호감 때문인지,

조금은 자의적인 호평을 내리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해설까지 정독한 후의 느낌은,

그동안 미스터리 독자로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 주인공의 입을 빌어 작가들이

단정 짓듯 정의(定義) 내린 범죄의 동기, 범죄자의 삶의 이력과 치명적인 트라우마,

연쇄살인마나 사이코패스의 패턴 등이 얼마나 쉽고 안이하게 설정되어 왔는지,

또 독자로서 그런 정의들에 대해 아무런 이의 없이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왔는지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미소 짓는 사람은 누쿠이 도쿠로가 자신을 비롯한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또는 그들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훌륭한 명탐정이나 슈퍼히어로 형사들에게 던지는

질문또는 반문일 수도 있습니다.

 

책 자체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보니, 길지 않은 서평조차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포일러냐 아니냐의 경계도 모호하고, 소감 자체도 모호하니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팬이라면 저처럼 어느 정도 열린 마음으로 그의 진의를 이해하고

이 책의 미덕을 가감없이 받아들이려 애쓰겠지만(?),

평소 그의 어둡고 무거운 문체와 엔딩에 비호감이었던 분들이라면

김용언 기자의 표현처럼 최대의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미스터리 독자라면 혹시 안티 누쿠이진영에 있더라도

한번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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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블론드 데드 - 안드레아스 프란츠 | Book-외국 2013-07-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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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 블론드 데드

안드레아스 프란츠 저/서지희 역
예문 | 2013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미완성 유작(신데렐라 카니발)이 먼저 출간되고,

뒤이어 데뷔작이 출간된 특이한 경우입니다.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한 영 블론드 데드1996년 작입니다.

휴대폰과 인터넷, 정밀한 과학수사가 제대로 기능하기 직전의 시기이다 보니,

대체로 아날로그적인 경찰 수사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 ● ●

 

제목대로 금발머리를 가진 10대 소녀들이 연쇄살인의 피해자로 설정되어 있고,

그 범행수법은 거의 파괴와 해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잔혹합니다.

사체는 길거리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집안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부잣집 금발머리부터 빈민촌 금발머리까지 계층도 다양합니다.

 

이 끔찍한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주인공은

율리아 뒤랑과 수사반장 베르거 등 프랑크푸르트 경찰청 형사들입니다.

수사는 탐문 이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지지만,

사체는 연이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수사팀은 거의 패닉에 이릅니다.

율리아 뒤랑은 나름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지만,

증거는 찾을 수 없고, 우연히 얻은 정보를 통한 심증만 가득합니다.

 

결국 피해자 주변을 반복해서 탐문하던 중,

결정적인 정보를 포착하게 되고, 율리아 뒤랑은 진범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전형적 사이코패스인 범인의 트라우마를 파악하게 됩니다.

 

● ● ●

 

오랜만에 매력적인 여형사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율리아 뒤랑이라는 이름 자체가 지닌 포스도 그렇지만,

헤비 스모커이면서 맥주를 즐겨 마시는 터프한 이미지와 함께,

돌싱만이 가진 묘한 매력, 거침없는 언변과 정의감 등

주인공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고르게 부여받았으며,

넬레 노이하우스의 피아 키르히호프 만큼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여형사입니다.

이 책의 대부분의 미덕은 율리아 뒤랑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새로운 독일 미스터리 시리즈를 만나게 돼서 반가웠고,

출퇴근길에 주로 읽었음에도 이틀 만에 마지막 장에 이를 만큼 페이지도 잘 넘어갔습니다.

아직까지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작품이 국내에는 두 권밖에 출간이 되지 않았지만,

나머지 시리즈들도 빠른 시간 안에 만나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들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데뷔작의 한계라고 할까요?

읽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그런 느낌을 가지곤 했는데,

줄거리를 정리하다 보니 이야기 자체가 무척 심플한 구조라는 점,

그리고, 꽤 많은 인물들과 조연급 사건들이 등장했음에도 정작 그들의 역할은

줄거리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미약했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심플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등장 캐릭터 중 수사팀을 보면,

베르거 반장은 오프닝을 장식하면서도, 정작 사건 수사에서는 별 볼일이 없습니다.

심각한 가정문제를 지닌 슐츠 형사 역시 본 사건과는 따로국밥처럼 역할합니다.

율리아 뒤랑이 혐오하는 페터 쿨머는 등장 초반 깐족거리는 얄미운 캐릭터였다가,

어느 순간 아무런 동기도 없이 진지한 자세로 수사에 임하며 율리아 뒤랑을 도와줍니다.

말하자면 수사팀 어느 누구도 병풍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지 못합니다.

 

피해자 가족, 또는 탐문의 대상이 된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성적(性的)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고,

형태만 다를 뿐 위태위태한 가족 불화를 겪고 있으며,

심리 상담을 받아야할 만큼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정상적인인격을 가진 인물을 찾아보기 힘든,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들입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없어도 될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존재감이 부족하거나, 도식적이거나, 작위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율리아 뒤랑 외에 딱히 기억나는 캐릭터가 없었습니다.

 

수사 과정만 놓고 보면,

사건의 발생 탐문 미궁 우연한 정보 범인 특정 엔딩이라는 공식이

너무나 단선적이고,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특히 주인공의 철저한 추리와 계산, 고된 노력의 댓가보다는

예상치 못한 제보나 우연히 취득한 정보에 의해 수사가 진전되는 점은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내내 아쉬움이 남았던 대목입니다.

 

정리하자면,

10대 금발머리 소녀를 상대로 한 참혹한 연쇄살인이라는 소재에 비해,

캐릭터는 율리아 뒤랑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의존했고,

이야기는 너무 정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후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드는 웰-메이드 여형사 율리아 뒤랑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으로 인해 많은 별을 주기가 어려웠습니다.

 

책 말미에 보니 출판사에서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이후 출간 계획을 밝혀놓았습니다.

독일 미스터리만의 독특함을 좋아하는 덕분에 새로운 시리즈의 출간 계획은 무척 반갑지만,

이후의 시리즈에서는 ‘550만부의 전설적 판매량의 진가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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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랑 - 다니자키 준이치로 | Book-일본 2013-07-2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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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친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김석희 역
시공사 | 2013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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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좀 오래된(?) 작가라는 정도의 정보만 갖고 책을 펼쳤다가,

1886년에 태어났다는 사실과, 이 작품이 1920년대 중반에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 소설에 해당하는 이 작품이 왜 거의 90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세계문학의 숲이라는 부제와 함께 새롭게 번역, 출간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네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일본인 최초로 미국예술원 명예회원으로 선출됐을 정도로 걸출하다고 소개되어 있네요.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상징이라는 홍보 문구 덕분에 책을 쥐게 됐지만,

집필된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이야기 자체는 요즘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올드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금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

 

결혼이라는 제도에 반감을 갖고 있던 가와이 조지는

클럽의 여급으로 일하던 15살 나오미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훌륭한 여자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클럽에서 빼낸 후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때 가와이 조지의 나이는 28살이었습니다.

 

한 소녀를 친구로 삼아 (중략)

그녀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중략) 산다는 것은

정식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과는 다른

각별한 재미가 있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본문 p 14)

 

가와이는 나오미에게 음악과 영어를 배우게 하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갖게 해줍니다.

나오미의 고집 때문에 수모를 겪어가면서도 서양여자에게 댄스를 배우고,

저축이 바닥나고 월급이 빠듯해져도 극에 달한 나오미의 사치를 다 받아주고,

또래 남자친구들을 거침없이 집으로 불러들이는 미묘한 상황도 애써 참아냅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점점 가와이는 나오미의 노예가 되어갔고,

결국엔 몸과 마음을 모두 지배당하는, 마조히즘에 가까운 늪에 빠집니다.

 

● ● ●

 

가와이 조지의 1인칭 서술로 이뤄진 8년의 기록은

파괴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을 누리는 팜므 파탈로서의 나오미의 성장기이자,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잃어가는 가와이 조지의 몰락기입니다.

원제인 痴人에서 痴人은 바보 또는 미치광이라고 해석되는데,

가와이 조지는 두 가지 해석이 동시에 가능한 캐릭터입니다.

 

그는 서양식 욕조에서 나오미의 몸을 닦아주며 차츰 성장해가는 그녀의 육체에 빠져듭니다.

특히 그녀의 발은 가와이 조지에게는 페티시즘의 대상으로 등장하는데,

그를 바보 또는 미치광이로 만드는 나오미의 육체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노골적인 성적 묘사는 거의 한 줄도 등장하지 않지만,

나오미의 몸 곳곳을 바라보는 가와이의 눈빛은

탐미주의 거장의 작품답게 집요하지만 천천히, 농밀하지만 은근하게 묘사됩니다.

 

그는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나오미의 언행에 무조건적으로 헌신합니다.

애기라고 불러주면 파파라고 대답하던 천진난만한 10대 소녀가

때론 길거리 여자처럼 상스러운 말과 천박한 행세를 할 때도,

때론 안하무인 여주인처럼 가와이 자신을 깔아뭉갤 때도,

때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남자에게 몸을 내맡길 때도,

가와이는 채 1시간도 지속되지 못할 순간적인 분노만을 느낄 뿐,

결국엔 그녀에게 헌신하고, 굴복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바보이자 미치광이 가와이 조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1920년대 도쿄의 서양문물은 두 캐릭터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데,

가와이가 나오미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음악과 영어,

나오미가 빠져들었던 댄스홀의 세계,

퇴폐적인 프리섹스와 물질만능주의를 대변하는 나오미의 가치관,

한 여자를 육체적으로 공유하는데 동의한 그 시대 엘리트들의 문란함,

그리고, 그 안에서 홀로 나오미를 훌륭한 여자로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덜 떨어져 보이는 가와이 조지의 ‘1920년대식 사고(思考)’ 등을 통해

문화적 충돌이 몰고 온 사회적 혼란과 개인의 왜곡된 욕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창녀에 가까운 나오미의 패륜을 수차례 목격하고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버릴 수 없어 번번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 가와이 조지는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민폐 캐릭터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또한 가와이의 품을 벗어나기 시작한 나오미의 행적과 그를 쫓는 가와이의 초조함이

더 이상 이야기를 진전시키지 못한 채 유사한 에피소드 속에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돈 결과

좀더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상황까지 몰고 가지 못한 것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연재됐던 1920년대에는 가와이 조지의 관능적 욕망과 마조히즘에 대한 묘사가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겠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요즘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리메이크가 가능한 영상물이나, 재해석이 가능한 음악과 달리

문학은 작가 스스로 손대지 않는 이상 그 오리지널리티가 그대로 이어지는 장르인 만큼,

1920년대의 작품을 접할 생각이라면 어느 정도의 올드함은 감수해야 되겠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사랑은 감수해야 할 올드함이 조금은 많아 보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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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와 몬스터 - 가이도 다케루 | Book-일본 2013-07-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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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니와 몬스터

가이도 다케루 저/권일영 역
비채 | 201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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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을 읽고 별 한 개짜리 서평을 쓰려니 여러 가지로 아쉽고 속상합니다.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에 푹 빠져 메디컬 엔터테인먼트의 진수를 맛봐온 독자 입장에서

나니와 몬스터는 무척 당혹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동안 전작들을 통해 권력과 이익 중심으로 꾸려진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개별 사건들의 해결과 함께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온 것에 반해,

이번 작품에서 가이도 다케루는 거의 폭주하다시피 일방적이고 혁명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억지스러워지거나 비현실적인 양태를 띄게 되고,

각 챕터 간의 연결고리는 허술하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줍니다.

결국, 읽는 내내 내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거지?’라는 자문을 여러 번 하게 됐습니다.

 

아래에는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

 

인구 800만의 거대 도시 나니와를 배경으로 세 챕터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첫 챕터인 캐멀은 신종 인플루엔자에 관한 매스컴 및 후생노동성의 과잉 대처와

첫 환자가 발생한 나니와에 거주하는 소시민들의 억울한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니와는 모든 인적, 물적 교류가 봉쇄당함과 동시에 전국의 매스컴의 타깃이 됩니다.

골든위크임에도 관광객은 급감하고, 경제적으로 치명타를 맞게 됩니다.

실제 캐멀의 위력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강경책을 주장하는 중앙 정부(후생노동성)

매스컴의 호들갑은 거대한 음모론을 연상시킬 정도였고,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진행됩니다.

 

두 번째 챕터인 가마이타치는 그로부터 1년 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도쿄 지검 특수부의 에이스 가마가타 마사시가 나니와 특수부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곳에서 나니와의 지사인 무라사메 고키와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되고,

정체불명의 히코네라는 인물의 조언에 따라 중앙 부처인 후생노동성을 정면공격합니다.

가스미가세키로 불리는 도쿄 중앙 관청가는 나니와의 불온한 공격으로 패닉에 빠지고,

자신들만의 비밀회의체인 불상사 뒷수습 회의를 통해 나니와에 대한 반격을 결정합니다.

 

마지막 챕터인 드래건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정체불명의 히코네와 무라사메 지사가

자신들만의 정치적 이상향을 논의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이상향을 완성시키기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소위 의익(醫翼)주의를 내세웁니다.

말하자면 국민이 웃을 수 있기 위한 선결 과제는 완벽한 의료 시스템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는 사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중앙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이상적 의료 시스템을 나니와에 뿌리내림으로써

전혀 새로운 의미의 독립을 이뤄낸다는 것입니다.

무라사메 지사는 중앙 정부와의 협의 없이 나니와에 대한 봉쇄를 풀겠다고 발표하고,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의 발발과 확산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폭로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 ● ●

 

두 번째 챕터 중반부까지만 해도,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을 이용한 중앙 정부의 음모에 대해

특수부 에이스 가마가타가 평범한 나니와의 소시민들과 함께 저항하는,

말 그대로 메디컬 엔터테인먼트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발흥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진료를 펼치는 기쿠마 父子 의사,

선글래스를 낀 멋진 슈퍼 히어로 검사 가마가타의 연합은

다구치-시라토리를 능가할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작들의 메인 공간이었던 도조 대학을 벗어나 일본 전체를 무대로 하고 있고,

관련된 인물들도 정계의 거물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무라사메 지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느닷없는 정치적 이상향에 대한 논의, 현실감을 전혀 가질 수 없는 일본 3분할론...

그런데 거기에 의료입국이라는 선결과제를 억지로 끼워 넣음으로써

이야기는 말 그대로 산으로가버렸습니다.

 

첫 챕터의 주인공 기쿠마 父子 의사는 두 번째 챕터부터 거의 완벽하게 사라져버리고,

두 번째 챕터의 주인공 가타가마 검사는 세 번째 챕터에서 꼬리를 내려버립니다.

정체불명의 히코네는 여러 현과 부의 지사들을 만으로 좌지우지하고 있고,

느닷없이 튀어나와 세 번째 챕터의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역할을 할 것처럼 포진됐던 조연들 역시

챕터가 바뀔 때마다 그 존재감이 허약해지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메디컬로 시작해서 허황된 정치 드라마로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이도 다케루의 무리수에 대해 의문점과 동시에 아쉬움이 크게 들었습니다.

전작들의 주인공 다구치-시라토리를 통해 제기해온 현장 의료의 문제점은

한국과는 조금은 다른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니와 몬스터에서 가이도 다케루는 한발 더 나아가,

의료만이 사법을 통제할 수 있고, 의료만이 제대로 된 입국(立國)의 기반이라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자신의 주장을 날것 그대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주장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의료를 신격화시킨 작가의 의도도 이해할 수가 없고,

굳이 첫 챕터와 두 번째 챕터에서 주연급 캐릭터들을 만든 이유도,

장황하게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해 서술한 이유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가이도 다케루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세 번째 챕터에 다 실려있으니까요...

 

인물들은 등장만 화려했다가 용두사미식으로 사라지고,

챕터마다 하는 이야기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전개되고,

엔딩은 그토록 장황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마무리됩니다.

가이도 다케루가 혹시 뒷이야기를 다룬 2, 3권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황당한 1권이라면 더는 읽고 싶은 생각이 없어집니다.

 

정리하자면, ‘나니와 몬스터는 가이도 다케루의 지극히 개인적인 성명서로 보입니다.

, ‘후생노동성으로 대표되는 중앙 관료체제에 대한 증오심’,

의료입국의 당위성’, ‘사법에 대한 의료의 우위

현직 의료인으로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과 주장들을

치기어린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의익주의자이자 의료 신격화를 주장하던 정체불명의 히코네라는 인물은

그저 가이도 다케루의 분신또는 아바타에 다름 아니었을 뿐입니다.

그의 팬으로서, 많이 실망스럽고, 그만큼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습니다.

 

추신

내용 중에 시라토리가 잠깐잠깐 등장하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 반가웠습니다.

다음엔 다구치-시라토리 콤비의 활약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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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즈 하이 - 요코야마 히데오 | Book-일본 2013-07-1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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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저/박정임 역
북폴리오 | 2013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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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말 그대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읽고 싶은 목록에 여러 권의 책을 올려놓고도

정작 올해 들어서야 종신검시관얼굴()’로 첫 테이프를 끊었지만,

‘64’, ‘클라이머즈 하이로 이어지는 연이은 대작을 통해

그동안 과소평가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 되었습니다.

 

이미 2005년에 1,2권으로 발간된 적이 있지만,

카페나 블로그, 인터넷 서점에서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신기한 일입니다.

‘64’의 영향 때문에 새삼 새 번역본이 나왔다고 하기에는 왠지 오비이락 같고,

그의 책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발간된 것을 보면,

올해가 한국에서 요코야마 히데오를 제대로 조명하기 시작한 첫해라는 느낌이 듭니다.

 

‘64’에 못지않게 워낙 방대한 서사를 지닌 내용이라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보자면...

 

● ● ●

 

군마 현의 지방지 긴타칸토의 기자 유키 가즈마사가 주인공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는데,

1985년 군마 현 산악지대에 추락한 일본항공 사고를 둘러싼

킨타칸토의 긴박한 1주일 간의 취재 전쟁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유키 가즈마사가 57세의 나이에 쓰이타테이와라는 험준한 암벽등반에 도전하는 이야기입니다.

 

520명의 사상자를 낸 세계 최대 항공사고는 긴타칸토라는 지방지를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고도의 긴장상태로 몰아갑니다.

총괄데스크를 맡게 된 유키는 부서 간 이기주의, 개인 간의 이해의 충돌,

사내의 정치적 대립구조 등 전쟁터에 다름 아닌 편집국 속에서

특종과 언론의 사명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진두지휘합니다.

 

사고 뉴스를 한 줄이라도 더 싣기 위해 광고를 전격 삭제해버리기도 하고,

최신 뉴스를 싣기 위해 윤전기를 멈추거나 배급트럭의 키를 훔치기도 하고,

유족들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독자의 투고를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게재하기도 하고,

후배 기자의 특종을 위해 국장 이하 데스크들과 멱살잡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전쟁 같은 1주일이 흐르는 동안

총괄데스크 유키 가즈마사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채

긴타칸토의 경영진과 정면대결을 펼칩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오늘,

유키는 자신의 인생에 큰 궤적을 남겨놓았던 친구의 아들과 함께

수백 명의 산악인의 목숨을 앗아갔던 쓰이타테이와 암벽등반에 나섭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라,

유키 가즈마사 일생의 화두 - 내려가기 위해 올라간다 를 실천하기 위한 일종의 고행입니다.

더불어, 30년이 넘는 기자로서의 삶을 정리하는 참회이기도 합니다.

 

● ● ●

 

굳이 이 책에 대한 한마디 평을 한다면, “‘64’의 신문사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범인 찾기미스터리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긴장감과 속도감이 있습니다.

유키를 둘러싼 수많은 군상들은 너무나 리얼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입니다.

비록 작은 규모의 지방신문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부서 간의 격렬한 대결과 특종을 위한 기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희대의 연쇄살인마와 그를 쫓는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더 강력한 페이지터너입니다.

그리고, 요코야마 히데오의 가장 큰 매력인 휴머니즘은 마지막 방점처럼 빛납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눈물까지 쏙 빼놓는 진하고 묵직한 감동이 유키를 통해 수시로 전해져옵니다.

 

유키의 이야기는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킨 영웅담도 아니고,

눈물을 짜내기 위한 작위적인 휴먼스토리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애정, 잔머리보다는 열정을 앞세우는 순수함,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올곧음 등이 유키가 끌고 가는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전쟁터 같은 편집국의 이야기 속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방대한 서사 중에 유키 가즈마사의 개인사 역시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관련된 불행한 가족사, 그리고 현재도 진행형인 불행한 가족관계,

산에 대한 사랑과 조직에서의 미션 사이에서 고민하던 안자이 교이치로와의 우정과 회한,

수년 전, 자신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린 후배 기자에 대한 죄책감 등

평범한 개인 유키 가즈마사의 어깨를 짓누르는 주변 요소들 덕분에

단순히 반항적인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책 전체에서 살아 숨쉬는 듯 전해집니다.

 

실은 책을 읽다가 서평에 쓰기 위해 몇 개의 문장을 적어놓았었는데,

막상 서평을 쓰다 보니 굳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이더라도,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달린 후에야

그 맛과 깊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취향의 차이 때문에 웬만해선 책을 강추하는 경우가 잘 없는 편인데,

클라이머즈 하이는 올 여름 must-read 리스트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키 가즈마사의 전쟁 같은 1주일을 통해 ‘64’ 이상의 진수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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