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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 도둑 -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 Book-외국 2014-08-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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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조도둑 The Swan Thieves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저/유소영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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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676페이지의 <>자를 보는 순간, 중후하고 묵직한 고전 한 권을 끝낸 듯한,

좀 이상한 비유지만, 큰 숙제를 무사히 마친 듯한 뿌듯함과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작가의 전작 히스토리언이 지적 미스터리라는 별칭을 얻은 바 있고,

백조도둑역시 예술 미스터리라는 소개글이나 많은 비밀을 내재한 것 같은 표지 덕분에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장르물이라기 보다는 조금은 고통스러운(?) 책읽기가 필요한,

, 복잡한 인간관계와 감정들, 거기에 곁들인 예술과 예술가의 세계가 큰 서사를 구축한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 ●

 

1999년 봄, 워싱턴의 정신과 의사 앤드루 말로우는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을 칼로 공격하려던

로버트 올리버라는 남성을 맡게 되지만, 첫날의 간단한 대화 외엔 전혀 입을 열지 않는 탓에

그가 왜 그 그림을 공격했는지, 그의 증상을 무엇이라 진단해야할 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올리버가 공격했던 그림은 19세기 회화 전시관에 걸렸던 질베르 토마의 작품 레다였는데,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와 스파르타 왕비 레다의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올리버는 그림을 공격한 것은 그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한 일이고,

그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생각하시오라는 대답만 할 뿐입니다.

정신과 의사지만 두 군데의 미대에도 합격했을 정도로 미술에 조예가 깊은 말로우는

올리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일반적인 진료 행위 이상으로 환자와 사건에 몰입합니다.

 

말로우는 올리버의 전처 케이트, 그의 새 연인 메리 버티슨을 만나면서

올리버의 특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과거와 마주합니다.

그는 광적인 미술가였고, 프랑스 인상파의 영향을 깊게 받았으며,

강단은 물론 화단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지닌 화가로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리는데 몰두해왔다는 점인데

그의 집착과 몰두는 식음은 물론 잠까지 전폐할 정도라 일상적인 생활 자체를 파괴시켰고,

누가 봐도 다른 여자에게 사랑과 영혼 모두를 바치는 불륜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기어이 가족의 해체는 물론 새 연인과의 이별까지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말로우는 올리버 스스로 사랑하는 여자라 칭했던 한 여인의 정체 파악에 전력합니다.

 

올리버가 그림을 공격할 당시 지녔던 프랑스어로 쓰인 1870년대 후반의 편지뭉치는

더 이상 진척이 없어 답답해하던 말로우에게 한 여인에 관한 큰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올리버의 과거 행적을 좇기 위해 그가 레다를 공격했던 미술관을 찾은 말로우는

그곳에서 우연히 한 여인의 정체를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동시에 레다라는 그림 자체가 올리버의 비밀을 여는 유일한 열쇠라는 점을 확신합니다.

여인과 그림의 흔적을 따라 멕시코와 프랑스까지 찾아간 말로우는

결국 레다에 얽힌 엄청난 비밀은 물론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과 최후,

그리고 올리버가 레다를 공격한 이유까지 알아냅니다.

 

● ● ●

 

워낙 방대한 이야기라 큰 틀만 정리했는데도 적잖은 분량의 줄거리가 됐습니다.

굳이 한 줄로 요약하자면 ‘1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과 미술에 관한 대서사랄까요?

모든 인물은 사랑과 미술로 인해 행복과 불행, 엇갈리며 상처를 주고받는 삶을 반복합니다.

사랑과 미술은 때론 비극으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때론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지배하는 기본 정서는 안타까움과 애틋함에 가깝습니다.

 

이야기는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는 구성을 택했는데,

정신과 의사 말로우, 올리버의 전처 케이트, 그의 새 연인 메리가 번갈아 이야기를 이끌고,

1870년대 후반, 베아트리스와 올리비에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삽화처럼 등장합니다.

말로우의 챕터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설명함으로써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면,

1870년대의 편지는 수십 년의 나이를 건너 뛴 두 남녀,

그것도 근친에 가까운 금단의 사랑을 담고 있어 호기심과 긴장감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반면 케이트와 메리의 챕터는 주로 올리버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그림을 그렸으며,

한 여인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들에게 남은 상처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중후하고 묵직한 고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누가?’, ‘?’라는 장르물적인 호기심을 능가하는,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인간에 대한 고찰이

한 치의 과장이나 작위 없이 작품 전체를 면면히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인 화자인 말로우의 시선을 통해 그 자신은 물론 여러 등장인물의 희노애락이 묘사되는데,

한 여인에 대한 집착과 그림에 대한 광기로 가득찬 나머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채 정신병원에 갇힌 로버트 올리버,

그를 사랑했지만 잊히지 않을 상처만 남은 채 그에게 등을 돌렸던 케이트와 메리,

그리고 100여 년 전 편지를 통해 사랑과 미술에 대해 논했던 베아트리스와 올리비에 등

평탄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야했던 여러 인물들의 사랑, 욕망, 배신, 절망 등

소박하거나 다분히 속세적인 개개인의 감정들을 작가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문장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때론 차분함과 깊이가 실제 고전의 그것에 맞먹을 정도라 지루함을 줄 때도 있지만,

그 진가는 대서사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곳곳에서 소개되고 있는 프랑스 인상파에 대한 묘사는 이 작품의 보너스이자

왜 이 작품이 예술 미스터리로 분류되는지를 입증해주는 대목입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독자로 하여금 수시로 검색창을 열어 당대의 화가나 작품들을

직접 찾아보게 만들 정도로 흥미롭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작품 속 주요 공간 중 한 곳인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해안마을 에트르타와

그곳에서 그려진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의 걸작들에 대한 설명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사실 미스터리나 장르물로서의 매력은

여인과 그림의 실체가 밝혀지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극대화되기 때문에,

그런 점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중반부까지의 고전적 서사가 견디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21세기에 출간된 예술과 미스터리를 겸비한 영국식 고전을 기대한다면,

또 너무 급하게 달리려 하지 말고, 천천히, 인물 하나, 문장 하나를 음미해가며 읽는다면,

훨씬 더 만족스러운 책읽기와 함께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인상파 소설의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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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다카기 아키미쓰 | Book-일본 2014-08-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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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계 재판

다카기 아키미쓰 저/김선영 역
검은숲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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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을 비롯 4권 정도 국내에 소개된 작가지만, 다카기 아키미쓰와는 첫 만남입니다.

제목도 뭔가 파격적인 것을 암시하는 것 같고, 부제가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라고 해서

굉장히 잔혹하거나, 예상외의 법조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난 소감은, 두 가지 예상 모두 빗나갔거나 모두 맞았을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잔혹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주인공의 삶은 파란만장 이상의,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잔혹한 인연과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증인들의 진술을 상세히 소개하는 장면 외에는 작품 전체가 법정 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예상외의 법조물이라는 기대가 전혀 엇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 ● ●

 

무라타 가즈히코는 두 건의 살인과 두 건의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되어 법정에 섭니다.

불륜관계에 있던 도조 야스코의 남편 도조 겐지를 살해, 유기한 혐의와

그로부터 한 달 후 연인인 도조 야스코마저 살해,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것입니다.

무라타는 도조 겐지의 사체유기는 인정하지만 나머지 세 건의 혐의는 모두 부인합니다.

그는 야스코의 부탁을 받아 그녀가 죽인 남편 겐지의 사체만 유기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스코마저 죽은 상황에서 그의 말은 신빙성을 얻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의 과거 행적을 조사한 경찰과 아마노 검사는 그의 주장을 조금도 믿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무라타는 극단의 공금을 유용했었고, 군대에서 3번이나 영창을 다녀왔으며,

친구에게 사기를 쳤던, 명백히 파렴치하고 음침한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최근의 무라타 역시 누구도 믿지 않는 어두운 캐릭터일 뿐입니다.

 

모든 정황이 무라타를 연쇄살인과 사체유기의 흉악범으로 지목하는 가운데

젊은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는 그와의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무죄를 확신했고,

그가 시인한 한 건의 사체유기 외의 나머지 사건들의 진실을 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검사 쪽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던 법정의 분위기를

증인들에 대한 심문과 예상치 못한 증거자료 제출을 통해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결국 햐쿠타니의 히든카드는 몇 차례의 반전을 이끌어낸 끝에 무라타의 무죄를 입증합니다.

동시에, 연쇄살인의 진범을 공개 지목하여 법정 안을 충격에 빠뜨립니다.

 

● ● ●

 

햐쿠타니의 끈질긴 탐문과 자료수집, 멋진 변론과 심문은 물론,

그의 슈퍼 와이프(?) 아키코의 탐정을 방불케 하는 자료조사 등은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는 히어로 변호사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일그러진 욕망과 끝없는 탐욕으로 범벅이 된 채 무라타의 삶에 끼어든 뒤

그를 흔들고, 괴롭히고 왜곡한 끝에 흉악범임에 틀림없어!’라고 단정하게 만든

주변 인물들 역시 적절하게 잘 배치되고 쉽고 사실감 있게 표현돼서

법조물을 읽을 때의 재미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악당들에 대한 분노의 게이지가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누명쓴 주인공에 대한 조바심과 안쓰러움이 요동치는 를 배가시킵니다.

 

하지만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다양한 법조물을 경험한 독자 입장에서

1961년에 집필된 이 작품의 개성이나 반전은 예상외의 법조물이라고 극찬하기엔

조금은 단선적이고 심플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랄까, 정직한 돌직구 같은 느낌?

또한, 일본인, 그것도 패전 전후를 살아온 세대가 아니면 공감하기 힘든 설정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이 설정이 재판의 기류를 크게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데다,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라는 부제의 숨은 뜻을 가리킬 정도로 중요한 설정이라는 점입니다.

(작품 초반에 얼핏 언급되긴 하지만, 그래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설명은 안하겠습니다)

조금은 형이상학적이거나 비과학적인 논리처럼 보이는 이 설정 덕분에

공감도는 갑자기 훅이 떨어지고, 그 지점부터는 쉽게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작가는 나름 그 설정에 대해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부연설명을 하고 있지만,

역시 외국 독자나 요즘 세대 독자들을 심정적으로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인 느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법정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법정 미스터리 물이지만,

이 작품의 성격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일그러진 삶을 부여받았고,

그로 인해 예정된 불행한 인생경로를 살아온 한 남자의 휴먼스토리에 더 가깝습니다.

그의 선의는 타인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왜곡당했고,

그가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랑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를 산산조각 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맞이한 위기는 평생 그를 외면하다가 딱 한번 찾아온 행운 덕분에 극복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누명을 벗은 승리의 기쁨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사건의 진상과 진범 찾기는 오히려 부차적인 서사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돌직구 같은 고전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 될 것이고,

이리저리 꼬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복잡한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조금은 양념이 덜 들어간 심심한 독후감을 남길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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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 존 카첸바크 | Book-외국 2014-08-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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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존 카첸바크 저/이원경 역
비채 | 200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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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던 페트럴 프랜시스는

23살이 된 1979년 이른 봄, 가족들에 의해 웨스턴 스테이트 정신병원에 갇힙니다’.

이름보다 별명이 통용되던 그곳에서 페트럴은 바닷새로 불리게 되고,

교회에 불을 질러 사상자를 내고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입원한 소방수 피터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밤, 짧은 금발의 간호사가 참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합니다.

훼손된 사체에서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발견한 여검사 루시 존스는

관료적인 원장 걸프틸리 박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체류하며

프랜시스와 피터를 조수로 삼아 환자 가운데 숨어있는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방대한 탐문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정신병자들로 가득한 병원에서의 생활은 세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갈 뿐입니다.

그 와중에 동일범에 의한 타살로 보이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지만

걸프틸리 박사는 정신병자의 단순 자살 또는 병사로 단정지으며 루시의 수사를 방해합니다.

더구나 상관으로부터 복귀 명령을 받게 되자 루시는 극단적인 계획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바닷새 프랜시스는 루시의 계획이 잘못된 것임을 직감하지만

소방수 피터까지 루시에게 동조하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운명의 밤을 맞이합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그들이 기다리던 연쇄살인범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루시와 프랜시스, 피터는 모든 것이 잘못됐음을, 또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음을 깨닫습니다.

 

● ● ●

 

줄거리만 보면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스릴 넘치는 연쇄살인범과의 대결인 듯 보이지만,

사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아주 조금의 위로와 희망 외에

마음에 남는 뒤끝의 대부분은 한없는 암울함과 지독한 중압감입니다.

이 병원은 사방에 위험이 도사린 곳이며, 불화와 분노와 광기가 뒤섞여 항상 부글거리는

가마솥이었다.’는 묘사대로 존 카첸바크가 그린 웨스턴 스테이트 정신병원의 낮과 밤은

끔찍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약에 취한 환자들의 눈에 비친 몽환적 분위기까지 잘 살아있어

마치 실제로 그곳에 갇혀있는 듯한 불편하고 불쾌한 기분을 생생히 느끼게 만듭니다.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세 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불행과 비극을 테마로 설정돼있습니다.

바닷새 프랜시스...

어린 시절부터 그의 귓가를 점령한 목소리들은 쉴 새 없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구성하는 모든 사소한 것들을 빼앗아갔으며,

결국에는 그를 정신병원이라는 곳까지 몰아세웁니다.

백발이 된 환자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떠올리는 프랜시스의 삶은 출구 없는 막장입니다.

소방수 피터...

유능한 방화조사관이었지만, 조카를 성추행한 신부를 증오하여 그의 교회에 불을 지른 피터는

의도하지 않았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방화 살인범이 된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정신이상을 입증하면 이 폐쇄된 정신병원에서 약에 취한 채 평생을 보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미래만 있을 뿐입니다.

여검사 루시 존스...

대학 1학년 때 성폭행 후 칼에 맞아 눈 위에서 턱에 이르는 길고 흉한 자상이 남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평범한 삶과 사랑을 잃은 채 성범죄를 전담하는 검사의 길을 걷게 됐고,

현재는 강간치사 후 기이한 형태로 사체를 훼손한 연쇄살인범을 쫓아 정신병원에 머뭅니다.

젊은 날 겪은 끔찍했던 사건이 자신을 성공한 여검사로 이끌었다고 자위하지만,

그날의 악몽은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늘 그녀를 지배할 것입니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에 기구한 이력을 지닌 3명의 주인공과 연쇄살인범을 배치한 작가는

연이은 살인사건과 집요한 탐문을 정신병원의 다양한 일상들과 함께 잘 버무려놓습니다.

천사라 명명된 연쇄살인범은 어디선가 이들을 지켜보며 끊임없이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고,

살인사건마저 자살이나 병사로 위장하려는 원장과 의사는 악의적인 탐욕을 감추지 않으며

밤낮으로 정신병원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집착합니다.

바깥세상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시작한 수사는 벽에 부딪히고 결국 미친 세상의 룰에 맞춘,

즉 가장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가장 가능성이 낮은 용의자를 찾기에 이릅니다.

일부러 환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혼란을 야기하여 연쇄살인범의 이상행동을 이끌어내거나,

주인공 스스로 미끼가 되고 함정을 파는 등 미친 세상에 걸맞는 전략을 짜내기에 골몰합니다.

 

장소, 사건, 인물 어느 하나 유쾌하거나 재미 위주로 설정된 것이 없지만,

그런 조합만이 자아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독특한 분위기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데,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암울한 정서가 워낙 강한데다,

캐릭터들의 심리묘사나 정신병원 환자들의 막장 같은 삶에 대한 묘사가

끈적끈적할 정도로 짙게 묘사되어 독자들의 시선을 강하게 끌다 보니,

정작 사건 자체나 진범을 쫓는 주인공들의 수사는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입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가운데 사건과 수사에 할애된 것은 잘해야 1/2 정도라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비슷한 두께지만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요 네스뵈 작품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곤혹스럽고 무거운 기분으로 임해야 하는 책읽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본문의 내용을 연쇄살인범과 맞닥뜨렸던 그날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

여전히 환청에서 자유롭지 못한 프랜시스가 자신의 아파트 벽지 위에

정신병원에서 보낸 악몽 같은 시간들을 연필로 기록한 내용으로 설정해놓았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프랜시스는 아직도불행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킴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20여 년 전에는 어찌어찌 살아남았지만, 현재의 프랜시스는 어떻게 마무리 될까?’라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까지 덤으로 떠안겨줍니다.

 

번역자는 인간의 심리를 한 올 한 올 파고들어가는 치밀한 관찰력

이 작품의 미덕 가운데 한가지로 꼽았는데, 분명 일리 있고 공감되는 이야기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이 치밀한 관찰력이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고전문학을 연상시키는 깊이 있는 문장과 다채롭고 화려한 비유는

존 카첸바크의 뛰어난 필력을 보여주는 명백한 근거지만

느슨한 만연체를 즐기지 않는 독자에게는 넘기 힘든 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존 카첸바크의 작품 가운데 지금은 절판됐지만 중고로 구입한 애널리스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분량도 비슷하고(646p), 꽤나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들 내용인 것 같습니다.

부담스럽고 넘기 힘든 산이지만, 같은 이유로 읽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걸 보면

존 카첸바크의 문장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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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엔젤 - 가사이 기요시 | Book-일본 2014-08-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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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바이바이, 엔젤

가사이 기요시 저/송태욱 역
현대문학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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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평론가의 소설 데뷔작이라는 정보 때문에 최근 작품으로 알고 읽었는데,

1974년에 집필된 작품인데다 탄생의 배경이 무척 독특하다는 점을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좌익학생운동 중 동지 12명을 집단 구타해 죽인 연합적군사건을 접한 작가 가사이 기요시는

1974년 파리로 건너가 혁명을 꿈꾸던 인간이 왜 학살을 저지르는가?’라는 문제를 추적하며

테러의 현상학이라는 책을 집필했고, 거의 동시에 바이바이 엔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목이 잘린 여인의 사체, 호텔방에서 폭사한 남자, 숲속의 여자 변사체 등

라루스 가문과 관련된 참혹한 연쇄살인의 범인을 쫓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탐정물이지만,

작가의 특이한 이력과 작품의 역사적, 철학적 배경 때문에

바이바이 엔젤은 조금은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어야 할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 ● ●

 

라루스 가문에 들이닥친 비극의 수사를 위해 모가르 경정과 바르베스 경감이 나섭니다.

그리고 사건에 연루된 마틸드, 앙투안의 친구이자 모가르 경정의 딸인 나디아 역시

탐정 못잖은 의욕과 호기심으로 사건에 뛰어듭니다.

한편 나디아는 리비에르 교수의 강의에서 알게 된 일본인 유학생 야부키 가케루에게

묘한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라루스 가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증거와 추론을 바탕으로 한 나디아의 정석 수사와는 다르게,

가케루는 현상학적 본질직관이라는 독특한 수사기법을 구사합니다.

목이 잘린 여인의 변사체 이후 새로운 희생자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나디아는 그동안의 추리를 바탕으로 자신 있게 진범을 지목하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가케루의 가차 없는 공격을 받으며 자신의 논리와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네 번째 희생자까지 등장한 다음에야 가케루는 나디아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힙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범행 동기와 진범이 드러남과 동시에 마지막 희생자가 등장합니다.

 

● ● ●

 

곳곳에서 고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지만

바이바이 엔젤을 다른 작품과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특징은

어딘가 4차원스러운 일본인 유학생이자 탐정 역할을 맡은 야부키 가케루의 캐릭터입니다.

 

작품에서 언급된 그에 대한 묘사를 간단하게 편집해보면,

음악, 미술, 철학, 종교, 역사 등에 걸쳐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

훈련된 심문자의 화술, 미행을 따돌리는 기술, 마술사를 능가하는 손놀림 등

어딘가 수상쩍은 기질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얼굴은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같은 인상을 가진 청년입니다.

매일 밤 권총을 관자놀이에 댄 채 명상에 잠기는 그는 현상학의 실천을 위해

극단적으로 단순한 생활과 하루 한 끼의 식사, 그리고 독서, 산책만으로 삶을 영위합니다.

자연히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고, 여자에 대한 관심도 없으며,

좀 과장해서 표현한 나디아의 독설에 따르면 타인이란 그저 성가시기만 한 존재라고 느끼고,

핵전쟁으로 단 한 사람만 살아남았을 때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는 인물입니다.

 

캐릭터만 놓고 보면 무척 흥미롭고 신선한 매력 덩어리 탐정이지만,

그의 철학적 스탠스이자 수사 기법인 현상학 때문에 읽는 내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습니다.

작가 나름대로 쉽고 친절하게 현상학에 대해 누차 설명하고 있지만,

대학 1학년 때 끝없는 두통을 감수하면서도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던 철학 개론처럼

현상학 관련 내용은 몇 번씩 되읽어가며 노력했음에도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았고,

그를 기반으로 한 가케루의 수사는 어딘가 신비주의 또는 예지자의 그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현상학은 난해하기만 한 기존 철학과 달리 진리는 생활세계 안에 있다고 주장하며

본질직관을 통해서만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예를 들면, ()의 정의를 모르는 어린아이도 그게 원이라는 걸 본질직관을 통해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사물을 인식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가케루는 탐정은 사건을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게 아니라 직관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전통적이고 교과서적인 나디아의 추리 방법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말하자면, 사건을 개별적인 요소로 분해한 다음 이론적인 재구성에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보면서 그 안에서 지렛대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역시 어렵지요...?^^

번역자 역시 가케루는 현상학을 이용하여 사건을 추리하고 철학적인 주장을 펴는데

여기에서 독자의 호불호가 갈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케루의 현상학적 추리 방식에 대해 모르는 척 넘어가더라도

연쇄살인을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다만, 후반부에서 드러난 범행 동기와 진범의 실체는 약간의 위화감을 자아냈습니다.

자세한 언급은 어렵지만, 사건과는 전혀 무관해 보였던 유럽의 정치적, 역사적 상황이

갑자기 범행 동기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면서 적잖은 분량에 걸쳐 상세히 묘사되는데,

제가 느낀 위화감의 실체는 가케루의 현상학적 추리를 타당하게 만들기 위해,

또 작가의 사상적-철학적 입장을 피력하기 위해 조금은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짜맞췄다

느낌이었습니다. 결론을 위해 과정을 작위적으로 설정했다는 느낌이랄까요?

추리소설이지만 범죄를 그린다기 보다는 사상을 그리기 위해 쓰였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는 번역자의 설명이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철학적인 문장들이 번거로운 분들은 좀 어려운 문장이 나온다 싶으면

과감하게 패스하고 사건 해결의 과정에만 집중하실 것을 권유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이자 미덕이 가케루와 현상학의 매력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읽으려다 보면 오히려 미스터리의 미덕까지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는 서머 아포칼립스’(1981)가 곧 출간된다는데

가케루의 현상학적 추리가 독자들의 흥미를 계속 이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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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 소사이어티 - 마이클 카프초 | Book-외국 2014-08-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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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독 소사이어티

마이클 카프초 저/박산호 역
시공사 | 2014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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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 소사이어티는 장르가 참 모호한 작품입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대체로 사회 분야로 구분해놓았는데 대분류와 소분류만 보면

사회과학-범죄문제 (알라딘), 사회/정치-사회사/사회문화 (예스24),

정치/사회-범죄문제 (교보), 사회과학그 밖의 사회문제 (인터파크) 등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집이면서 동시에 미스터리 스릴러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기록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픽션에 못잖은 캐릭터와 참혹한 사건들이 등장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미스터리 스릴러보다 더 재미있게 짜여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 필라델피아에서 출범한 비독 소사이어티는 미제 사건 전문 명탐정 드림팀입니다.

유능한 현장 경찰에서부터 FBI, 세관, 마약단속국 등 다양한 기관의 인재들이 모여

경찰로부터 공식적으로 요청 받은 미제 사건을 함께 수사하고, 해결하는 모임입니다.

비독 소사이어티라는 명칭은 1811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국립수사기관 쉬르테를 설립했으며,

아르센 뤼펭, 셜록 홈스, 오귀스트 뒤팽, ‘레미제라블의 장발장과 자베르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프랑수아 비독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는 악명 높은 살인자, 바람둥이, 사기꾼, 노상강도, 탈옥자였지만

결국엔 위대한 탐정이자 파리 최고의 경찰이 된 특이한 인물입니다.

경찰로서의 그의 가장 큰 미덕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는 친구였고,

가족을 위해 빵을 훔친 사람에겐 관대했다는 점입니다.

 

비독 소사이어티는 그런 미덕을 이어받아 미제 사건의 살인자들을 추적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고, 피해자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살인사건 3건 중 1건이 미제 사건으로 남지만 살인에 관한 한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활약은 짧게는 2년 전, 길게는 40여년이 지난 사건에까지 미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은 관할 경찰에 넘기고 자신들은 무대 뒤의 자리에 만족했는데,

언론은 자원 봉사로 일하는 일류 탐정들’,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카우보이들이라 불렀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은 적어도 이 작품이 커버하고 있는 2009년까지 계속 됩니다.

 

비독 소사이어티는 82세에 세상을 뜬 프랑수아 비독을 기리며 82명의 회원으로 구성됐고,

2009년까지 300건이 넘는 미제 사건 중 90%를 해결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지만,

이 작품은 모임을 주도한 3명의 명탐정과 그들이 해결한 10여 건의 사건에 초점을 맞춥니다.

화려한 현장 경력을 자랑하는 전직 FBI 수사관이자 모임의 창시자인 윌리엄 플라이셔,

매사를 의심하고 추론하는, 명석하지만 오만하기까지 한 프로파일러 리처드 월터,

낭만적인 바람둥이에 직감과 본능에 의존하는 법의학 예술가 프랭크 벤더가 그들인데,

특히 이성적인 리처드와 감성적인 프랭크의 콤비 플레이는 비독 소사이어티의 백미입니다.

 

교도소에서 강간범, 소아성애병자, 연쇄살인범 등을 상담하면서 프로파일러의 이력을 쌓았고,

현장 사진만으로도 범죄자의 성향을 정확하게 지목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리처드에 반해,

프랭크는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남들은 갖지 못한 3의 눈덕분에

영매에 가까운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여 난제로 꼽히던 미제 사건을 거뜬히 해결합니다.

프랭크는 20년 전의 사진만으로도 현재 그 인물의 생김새를 유추할 수 있고,

피부 하나 없는 두개골만으로도 당시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찰흙을 이용해서 연상된 이미지대로 희생자, 실종자 또는 범인의 반신상을 만드는데,

거짓말처럼 실제 인물과 흡사해서 유족들이나 지인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극과 극을 달리는 성향 때문에 리처드와 프랭크는 내내 티격태격 으르렁대지만,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서게 되면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이들이 다룬 사건은 하나같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범인은 어지간한 픽션 속의 연쇄살인범보다 더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디스트들이고,

희생자들의 끔찍한 최후는 충격적이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묘사됐습니다.

특히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집이라는 점을 새삼 연상해보면,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체감 충격은 훨씬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 범죄조직의 두목부터 자신의 가족이나 약혼자를 살해한 연쇄살인마,

소년, 소녀들을 성폭행하거나 살해한 신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희대의 사디스트들이 저지른 미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3명의 조촐한 점심 모임에서 출발하여 산 자의 동료이자 죽은 자의 영웅으로 진화한

비독 소사이어티와 그 멤버들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그런 조직의 탄생과 활동이 가능했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부러움까지 갖게 됩니다.

살인범에게 면죄부를 주는 공소시효, 지은 죄에 비해 턱없이 가볍게 부여되는 형량 등

우리나라의 사법 체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물론 경찰은 과로에, 경찰서는 재정난에, 피해자는 범죄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형법 시스템에 시달리는 형편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형 비독 소사이어티는 픽션에서나 가능한, 우리에겐 신기루같은 이야기입니다.

 

작품 후반부에 소개된 천재적인 프로파일러 리처드의 헬릭스 이론은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나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대목입니다.

헬릭스는 사디스트 유형을 단계적으로 나누고 각 단계의 특징을 설명한 그림이자 도표인데,

페티쉬나 관음증에서 시작된 범죄의 DNA가 접촉도착증과 상대를 구속하려는 증상을 거쳐

신체의 일부 등을 기념품으로 수집하는 가학적 살인자의 단계를 지나

시간(屍姦), 흡혈, 식인이라는 사디스트의 최종적인 경지까지 진화하는 과정을

8단계로 나눈 후 실제 범죄 사례를 들어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새삼 그동안 읽은 픽션 속의 연쇄살인범들이 어느 단계쯤 있었는지 떠오르기도 했고,

앞으로 만날 연쇄살인범들에 대해서도 나름 사전 지식을 갖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역자 후기에 보면 비독 소사이어티는 스릴러 소설의 쾌감,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인

미드의 흥미, 인간극장의 감동이 버무려진작품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한 가장 적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작품이 온라인 서점에서 사회분야로 분류된 탓에 많은 미스터리 스릴러 독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쓴 소리를 한 가지만 하자면...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당연하다는 듯 오타를 남발하고 있다 보니,

중반 정도까지 발견된 평균치 수준의 오타는 어떻게든 참아내고 읽었지만,

그 이후부터 점점 빈도도 높아지고, 납득하기 어려운 오타까지 등장한 탓에

내용보다 오타에 더 신경이 쓰이면서 책읽기가 무척 불편해졌습니다.

중반부터 체크한 것만 10개가 훌쩍 넘었는데,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 그때 포르하우스는 프랭크를 보지 않으려 했다. (포르하우어 또는 나우스, p230)

- 비해 중엔 잠을 별로 자지 않는 그는 (비행 중엔, p246)

- 똑똑하고 섹시하며 쾌할했고 (쾌활했고, p286)

- 스미스가 스콧 사건에 용의자라고 말했으며 (스콧 사건의, p291)

- 오랫동한 잊힌 매리 노의 비극에 (오랫동안, p366)

- 이 사건은 아마도 그간 한 도전 중에서 (그가 한, p436)

- 위리엄은 충동적으로 프랭크를 와락 잡아당겨서 안았다. (윌리엄은, p520)

 

별 다섯 개도 부족한 작품이지만 오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옥의 티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수많은 띄어쓰기 오류는 새삼 지적하기도 무안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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