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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박재현 옮김, 반니) | Book-일본 2015-02-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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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저/박재현 역
반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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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노리즈키 린타로는 킹을 찾아라한 권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녹스머신은 앞서 읽은 작품과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간극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SF물을 멀리 하는 편은 아니지만,

과학이 서사의 중심에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가까이 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녹스머신은 말 그대로 Scientific Fiction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체감 독서시간은 꽤 길었던 것 같습니다.

 

평행이론과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표제작 녹스머신과 후속편 격인 논리 증발

양자 역학 같은 먼 나라의 개념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해서 정말 많이 난감했지만,

그래도 바탕에 깔린 메인 스토리나 정서 자체가 공감 가능하게 펼쳐진 덕분에

재미와 호기심을 갖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탈출을 테마로 한 바벨의 감옥은 기본적으로 일본어의 특징을 기반으로 한

특이한 서술 미스터리(?)라 그런지 다 읽고도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분의 친절한 서평을 보니 , 그런 거였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피해, 왜 탈출하려는지 결국엔 이해불가의 영역에 남아버렸습니다.

 

그나마 편하게 읽힌 들러리 클럽의 음모은 너무나 유명한 고전 탐정들의 조수들이 등장하여

클럽의 공공의 적 애거서 크리스티와의 한판을 놓고 논리와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인데

기획의 신선함에 비해 마무리가 아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인터넷 카페에서 이 작품의 서평단을 모집한 적이 있는데,

대략의 소개글을 보곤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응모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기회가 돼서 책을 구해 읽어보곤 응모 안 하기를 정말 잘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신인도 아니고, SF물로서의 미덕 또한 분명 있긴 있는데

그것을 이해 못한 독자가 어설픈 서평을 올리는 건 출판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작품이 일본의 주간문춘 미스터리’, ‘본격미스터리’,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등에서

나름 권위 있는 기록을 세운 것을 봐도 그렇고,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 평균 4개 이상의 별을 받은 결과를 봐도 그렇고,

분명 환호하고 깊이 빠져들 독자층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지만,

학창 시절 내내 과학 수업이 든 날이면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받던 저 같은 독자에겐

작품의 진가를 발견하기도 전에 답답함과 자기연민이 먼저 찾아올 것 같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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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 조 힐 (박현주 옮김, 비채) | Book-외국 2015-02-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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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조힐 저/박현주 역
비채 | 201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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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원작 삼아 영화(제목 혼스’)로 만든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은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폭로이자 마음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오랜 사랑과 갈등, 증오와 분노, 그리고 파국에 이르는 여정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소감입니다.

여기에 어느 날 갑자기 뿔이 튀어나오면서 악마가 된 남자라는 판타지를 설정함으로써

작가 조 힐은 다양한 코드들 사랑, 증오, 살인, 복수, 그리고 실존하는 악마 이 뒤섞인

독특하고도 거대한 서사를 완성시킵니다.

 

● ● ●

 

연인이었던 메린이 살해당한지 꼭 1년이 되는 날,

이그나티우스 마틴 페리시(이하 이그)는 머리에 작은 뿔이 자란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내 뿔이 가진 초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과거사를 꿰뚫어보게 되는 사이코메트리로서의 능력은 물론,

타인으로 하여금 감추고 싶은 속내를 모두 털어놓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까지 갖게 됩니다.

그 능력을 통해 이그는 메린의 죽음의 진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한때 메린을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받기도 했던 이그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살해당하기 직전 메린이 겪었던 모든 일은 물론 진범의 정체까지 파악합니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악마의 삶을 택한 이그는 복수를 위해 그만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 ● ●

 

뿔 달린 초인적 악마라는 설정을 걷어낸다면

이 작품은 연인을 살해한 진범을 찾는 한 남자의 목숨을 건 복수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할리우드의 복수극을 연상시키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아버지(스티븐 킹)에게 물려받은 우수한 유전자를 나름의 방식대로 확장, 변형시킨 조 힐은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독특한 설정을 가미함으로써

훨씬 더 중층적인, 사랑과 악마, 신화와 스릴러를 겸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어나간 덕분에

첫 페이지부터 관자놀이에 뿔이 난 남자가 등장하자마자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조 힐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이그의 캐릭터를 다져나갔고,

다분히 풍자적인 재미를 동반한 뿔의 위력에 관한 설명과 함께

1년 전에 벌어진 참혹한 살인사건의 진상, 15년 전에 시작된 사랑과 우정에 관한 묘사를

꼭 필요한 만큼씩 독자에게 전달하면서 첫 페이지의 당혹스러움을 지워나갔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커져가는 악마적 능력보다도

이그 본인의 선택, 즉 신에 대한 저주와 악마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진화 과정입니다.

메린에 대한 사랑과 함께 이그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인 악마성에 관한 그의 설명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을 법한 공감 가는 내용들입니다.

 

신은 아주 멀쩡히 살아있지만 구원을 줄 위치에 있지 않아.

범죄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저주받을 처지지.

보호를 제공하기 전에 충성의 맹세와 숭배를 요구하는 것은 깡패들이나 할 거래지.

반면 악마는 절대로 무관심하지 않아.

악마는 항상 죄악을 지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을 도우러 이 자리에 있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상징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징부터

언뜻 봐서는 금세 눈치 채기 힘든 꽤 의미가 깊은 상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품이나 의상, 물과 불, 색과 빛이 등장하는데

이런 점들을 눈여겨보면서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공들여 세운 서사의 무게와 깊이를

좀더 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메린을 살해한 범인은 초반에 공개되고,

적잖은 분량을 통해 이그와 메린, 주변 인물들의 인연과 악연을 설명하다 보니

독자에 따라서는 500페이지가 살짝 넘는 분량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시간과 공간을 교차시키고,

사건과 상황을 알맞게 배분한 조 힐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저력 덕분에

휴일 하루면 충분히 마지막까지 달리며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로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책에서 표현된 다양한 상징들이 얼마나 관객에게 어필했을지 궁금해집니다.

보통 한 매체를 통해 본 작품은 다른 매체로는 잘 안 보게 되는데,

의 비주얼이 구현된 결과가 궁금한 나머지 영화로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왠지 올드한 느낌이 나는 제목이라 언뜻 손이 안 갔던 ‘20세기 고스트

조 힐의 작품이란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매력적인 중단편이 실렸다는 서평들을 보니 기회가 되는 대로 얼른 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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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 Book-외국 2015-02-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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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약속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저/차경아 역
문예출판사 | 201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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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중편 약속과 단편 사고등 두 편의 작품이 실린 소설집입니다.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지만 대략 1950년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 작품에 딸린 부제가 무척이나 시니컬한 뉘앙스를 담고 있는 점입니다.

표제작인 약속'추리소설에 부치는 진혼곡'이라는 부제를,

단편 사고아직도 가능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두 부제 모두 기존의 경향들에 대한 명백한 도전 또는 비꼼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약속의 경우 전직 경찰국장이 명망 있는 추리 소설가를 향해

선생의 강연은 졸렬하기 짝이 없더군요.”라며 일갈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시종 추리소설의 비현실성과 동화적인 허구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화자인 경찰국장을 통해 풀어놓은 작가의 추리소설에 부치는 진혼곡을 편집해서 소개하면,

 

유감스러운 것은 추리소설 안에서 엉뚱한 사기극이 연출된다는 점입니다.

무릇 사건이란 수학 공식처럼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순전히 직업상 운이나 우연이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흔하지요.

그런데 소설 속에서는 이 우연이라는 것이 아무 역할도 못하지요.

당신네들은 사건 진행을 논리적으로 설정하지요.

여기엔 범죄자, 저기엔 희생자, 이곳엔 공모자, 저곳엔 부당이득자,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수사관은 어느 틈엔가 범죄자를 체포하게 되고, 정의는 승리를 도와주는 겁니다.

그렇게 세워진 세계는 아마도 완전한 세계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거짓 세계입니다.

 

그렇다고 약속이 내내 전직 경찰국장의 추리소설 비판론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알맹이 내용은 그가 추리 소설가에게 들려준 9년 전 사건에 관한 회고담입니다.

당시 완벽한 스펙을 지닌 경감 마태는 장밋빛 미래를 포기하고 소녀 연쇄살인범을 쫓지만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하면) 자신이 쳐놓은 그물에 얽혀 허우적거리다가 참담하게 실패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의 진상은 우연의 도움을 받아 엉뚱한 곳에서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실제 범죄와 맞닥뜨리는 경찰 입장에선 미스터리나 스릴러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주인공들이 야속하거나 원망스러울 때가 있겠죠.

9년 전 사건을 소재로 추리 소설가가 픽션을 썼다면 완벽한 스펙의 경감 마태는

조직과 동료로부터 무시당하고, 홀로 산전수전을 다 겪고,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하지만

끝내, 화려한 언변과 멋진 액션으로 소녀를 구해낸 후 악마 같은 범인을 잡았을 것입니다.

(갑자기 신주쿠 상어의 사메지마가 생각나네요^^)

 

결국 전직 경찰국장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같은 추리소설에 대한 비판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장르소설이나 미드 수사물에 중독된 나머지

어딜 가든 해리 보슈나 긴다이치 코스케 같은 완벽한 인물이 실재할 것이라 믿고 있는

독자나 시청자에 대한 현업 경찰의 진심 어린 불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약속은 단순히 픽션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도식적인 주장을 넘어

기존 추리소설의 인습을 깨고 미묘한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추리소설이기도 합니다.

완벽하고 깔끔한 주인공 대신 잔인한 우연에 조롱당하며 파멸해가는주인공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건 이면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가 하면,

진부하지만 안 그러면 개운치 않은 뒤끝만 남게 되는 뻔한 권선징악의 공식 대신

인생의 아이러니라든가 씁쓸한 운명의 장난을 지켜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단편인 사고재판 놀이를 소재삼아 인생의 급반전을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퇴직한 판사, 검사, 변호사가 별장 숙박객을 피고인으로 세워놓고

술과 저녁식사를 동반한 하룻밤의 유쾌한 재판 놀이를 벌이는데,

재판이 진행될수록 주객이 전도되는가 하면,

재미삼아 즐기던 놀이가 한순간 서늘한 현실처럼 급변하기도 하고,

무의식 속에 잠겨있던 피고인의 추악한 죄상이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드러나다가

결국엔 아무도 예상 못한 비극적인 엔딩에 이르게 됩니다.

 

다분히 연극적인 느낌으로 구성된 캐릭터나 스토리라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작가는 신이나 운명 같이 거창하고 형이상학적인 존재보다

사소한 사고 하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인간의 나약함이나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곁들이고 있습니다.

 

집필된 시기로 보나 다루고 있는 이야기로 보나 고전문학의 올드함이 역력한 작품들이지만

약속은 장르물 애호가들에게는 오히려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단순히 주인공의 실패담이나 심각한 경찰현실론을 주장하는 작품이 아니라

미스터리를 뒤집은 미스터리라는 찾아보기 힘든 주제를 잘 다루고 있으며,

연민과 동정심 등 마음 한쪽이 먹먹해지는 듯한 색다른 여운을 맛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통쾌하고 속 시원한 해피엔딩을 장르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독자들에겐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분량도 300페이지 내외로 한나절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고,

스위스 출신 독일어권 작가로는 적잖은 명성을 날린 작가의 작품인 만큼

한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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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 요코제키 다이 (이수미 옮김, 살림) | Book-일본 2015-02-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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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재회

요코제키 다이 저/이수미 역
살림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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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이나 톰 프랭클린의 미시시피 미시시피처럼

10대 시절 이후 오랫동안 봉인해온 비밀이 어느 날 갑자기 해제되면서

과거의 아픈 상처현재의 사건이 교차되듯 전개되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낄 수 있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8수 끝에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은 요코제키 다이의 재회

중고 신인의 작품이긴 해도 그런 맥락에서 짧은 소개글만으로도 무척 기대가 됐던 작품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상의 만족스러운 책읽기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 ● ●

 

냉정한 리더 게스케, 철부지 나오토, 개구쟁이 준이치, 말괄량이 마키코는

초등학생 시절이던 23년 전, 똘똘 뭉쳐 다니던 4총사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을 찾아온 예기치 않은 사고와 불행 탓에

그들은 각자 모양새가 다른 공포와 트라우마를 끌어안게 됐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기 위해 기약 없는 타임캡슐 안에 그날의 흔적들을 담고 봉인했지만,

결국 4총사는 차례로 마을을 떠나면서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게스케와 마키코는 이후 다시 만나 결혼에 골인했지만 지금은 이혼한 상태입니다.

준이치는 경찰이 되어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나오토는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개망나니 이복형 히데유키 때문에 골치가 아픈 상태입니다.

 

운명은 4총사를 23년 만에 다시 재회하게 만드는데,

그 계기는 나오토의 이복형 히데유키가 피살된 사건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사건의 열쇠가 23년 전 4총사가 겪은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날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수사의 향방은 결국 봉인됐던 4총사의 23년 전 기억을 무자비하게 열어젖힙니다.

 

● ● ●

 

사실 이 작품은 인터넷 소개글처럼

굉장한 트릭이 숨어 있지도 않고, 유혈이 낭자하는 사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독자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4총사의 과거와 현재에 던져진 두 가지 물음 때문입니다.

 

“23년 전,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지금,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과 동시에

3인칭 시점이긴 하지만, 4명의 인물이 번갈아 화자 역할을 맡게끔 구성돼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에 던져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마치 양파 껍질 벗겨지듯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두 개의 시제, 네 개의 시선 등 복잡한 서술 속에서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들이 천천히 한 곳을 향해 모여들다가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4총사는 완성된 큰 그림을 보는 순간 충격에 빠집니다.

같은 그림이었지만 4총사는 제각각 다른 형테와 색깔로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겪은 불행이었지만, 각자의 마음속엔 전혀 다른 트라우마가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4총사를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은 내내 착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그들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운명이란 것이 그들에게 조금만 덜 가혹했더라면, 이라는

부질없는 회한이 4총사 못잖게 독자의 마음에 피어오릅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과거와 현재에 던져진 두 가지 물음에 대한 해답이 드러난 후에도

결코 착잡함과 부질없는 회한은 가시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상해줄 수 없는 그들의 지난 시간들, 기억들, 상처들이 안쓰럽고 애틋할 뿐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적절한 수의 인물과 에피소드를 배치한 덕분에

빠른 독자들은 한나절이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웬만하면 수상작을 결정한 심사 위원, 즉 기성 작가들의 과찬을 잘 믿지 않는 편인데,

재회에 관한 한은 히가시노 게이고, 덴도 아라타, 온다 리쿠의 칭찬 릴레이가

결코 과장되거나 작위적인 홍보용 멘트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란포 상 결선에 올랐던 작가의 이력으로 볼 때

조만간 새로운 작품의 출간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미스터리 작가와의 기분 좋은 만남이 반갑게 느껴진 책읽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퍼즐을 모으고 끼워 맞추는 역할은 가나가와 현경에서 파견된 특별한 형사 나라가 맡았는데,

팀플레이 대신 독립군노릇을 허락받을 정도로 뛰어난 추리를 자랑하는 캐릭터입니다.

그 역시 마지막 반전에서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데,

작가 요코제키 다이가 수상작가의 입지를 넘어 두드러진 활약을 하게 될 날이 온다면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도 있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이 작품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요코제키 다이의 나라 시리즈를 기대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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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그래닛 -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박산호 옮김, RHK) | Book-외국 2015-02-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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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콜드 그래닛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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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Cold Granite’차가운 화강암이란 뜻인데,

이 작품의 주 무대인 스코틀랜드의 3번째 도시 애버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름이 채 안 되는 사건 기간 내내 겨울비와 눈이 쉴 새 없이 퍼붓는 것으로 설정돼있어

서늘한 회색 돌덩어리 화강암으로 가득 찬 애버딘의 풍경을 더욱 차갑게만듭니다.

광풍과 눈비가 몰아치는 북해와 마주한 애버딘을 배경으로 한

형사 로건 맥레이 시리즈의 첫 편의 제목으론 더없이 잘 어울리는 두 단어의 조합입니다.

 

● ● ●

 

연쇄강간살인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사경을 헤맬 정도로 중상을 입었던 로건 맥레이는

1년 만에 현장에 복귀하면서 부활한 성경 속의 인물 라자루스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하지만 부활한 로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연쇄 소아성애 살인사건입니다.

젤리와 캔디를 끼고 사는 인치 경위의 지휘 하에 과격한 여순경 왓슨과 팀을 이룬 로건은

강둑, 쓰레기장, 동물의 사체더미 등에서 연이어 발견되는 어린 희생자에 충격을 받습니다.

더구나 본의 아니게 항구에서 발견된 변사체 사건까지 떠맡은 로건은

겨울비와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사체 훼손 상태나 발견된 지역 등 어디에도 공통점은 보이지 않고,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에도 연이어 어린 소년, 소녀가 실종되는가 하면,

유력한 용의자라 확신했던 자들은 부족한 단서로 인해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나갑니다.

 

● ● ●

 

2005년에 출간됐지만 읽다보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의 작품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잭 더 리퍼가 날뛰고 셜록 홈즈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느낌이랄까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휴대폰 등 21세기의 소품과 몇몇 현대적 설정을 제외시키면

그 무렵에 출간된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로건 맥레이의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캐릭터와 수사 방법에 있습니다.

그는 부활한 영웅 라자루스로 불리지만 실은 책임감이 뛰어나다는 장점 외엔

물리적인 힘이나 사건을 추리하는 지능에 있어서는 오히려 평범한 쪽에 가깝습니다.

수사 방법 역시 안락의자 탐정이나 천재적인 추리와는 거리가 먼,

반복적인 탐문과 단서 찾기에 몰두하는 전통적인 경찰의 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무자비한 폭력과 뛰어난 지능을 겸비한 슈퍼맨 주인공들에 비하면

로건의 캐릭터는 가끔은 답답해 보일 정도로 아날로그적이고 우직해 보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8편까지 시리즈가 출간되게 한 그만의 매력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작품 전반에 흐르는 어딘가 배배 꼬인 듯한 독특한 영국식 유머는

참혹한 소아성애 살인사건의 와중에서도 독자들에게 쉬어가는 여유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주인공 3인방 로건 형사,인치 경위,왓슨 순경 의 캐릭터를 유쾌하고 개성있게 만듭니다.

마치 영드 화이트 채플의 한 편을 보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 외에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조연이 등장하는데

하이에나 같은 신문기자 밀러와 1년 전까지 로건의 연인이었던 검시관 이소벨입니다.

로건과 악연으로 만난 밀러는 번번이 기사를 통해 경찰을 엿 먹이곤 하지만

결국엔 상생(?)의 길을 모색하면서 로건에게 짭짤한 정보를 전해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다만, 로건과 밀러가 밀월 관계로 발전하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설득력이 부족하여

쉽게 공감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로건의 전 연인이었던 검시관 이소벨은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였는데,

로건을 향한 끊임없는 그녀의 싸늘한 적의와 독설이 처음엔 호기심을 자아냈지만,

그들이 왜 헤어졌고, 왜 그런 관계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고,

두 사람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없이 늘 똑같은 모습으로 이소벨이 독설만 날리다 보니

나중에는 그녀의 등장 자체가 짜증만 유발하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읽는 도중에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또는 곁가지가 너무 많은 느낌을 받았는데,

결국엔 그 모든 설정이 작가의 의도라는 것이 밝혀지긴 하지만,

메인 스토리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파생 사건들에게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 바람에

굳이 600페이지라는 분량이 필요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다잉 라이트가 출간됐는데,

타고난 재능 대신 매사에 열심인 영웅 로건 맥레이의 활약은 물론

임시 상관이었던 인치 경위, 로맨스가 닿을까 말까 했던 왓슨 순경과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지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분량도 500페이지로 많이 슬림해져서 곁가지 없는 알찬 이야기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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