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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자 - 가노 료이치 (한희선 옮김, 황금가지) | Book-일본 2015-03-3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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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환상의 여자

가노 료이치 저/한희선 역
황금가지 | 2015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일본 미스터리 작품으로는 꽤나 방대한 분량(688페이지)의 작품입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몇 년 전에 읽은 가노 료이치의 제물의 야회656페이지더군요.

기억의 오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제물의 야회는 그리 길다는 느낌을 못 받았던 것 같은데

환상의 여자는 다루고 있는 사건의 규모 때문인지 조금은 분량의 부담을 느꼈습니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윌리엄 아이리시의 작품이 황금가지에서 다시 나왔나 오해했습니다.

물론 오해는 금세 풀렸지만, 초반에 여주인공 고바야시 료코가 사라지는 대목을 읽다보니

왠지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환상의 여자역시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 ●

 

5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옛 연인 고바야시 료코가 다음날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되자

변호사 스모토 세이지는 모든 일을 중지시키고 그녀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친인척을 찾기 위해 그녀의 고향까지 찾아갔던 스모토는 뜻밖의 상황에 처하면서,

그가 알고 있던 료코는 진짜 료코인가?”라는 당혹스러운 자문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녀가 살해된 현장을 조사하다가 괴한의 습격을 받는가 하면,

그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폭력단이 연루된 사실까지 알게 됩니다.

 

흥신소장 기요노, 호스티스 사요코와 함께 갖은 위험을 무릅쓴 스모토의 조사는

결국 10여 년 전 그녀의 고향에서 벌어졌던 두 건의 살인사건까지 닿게 되고,

거기에서 스모토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야차처럼 날뛰었던 악당들의 실체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쉽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스모토 일행은 오히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단지 그녀를 위해서라는 명분 하나만으로 집요하게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스모토가 손에 쥔 진실은 참담하고 가슴 아픈 료코의 과거사일 뿐입니다.

 

● ● ●

 

크게 보면 심플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작가는 캐면 캘수록 끝없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 줄기처럼

고바야시 료코의 과거에 연루된 인물과 사건을 복잡다단하게 설정함으로써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시점인가부터는 인물과 지역, 사건 등을 메모하면서 읽게 됐는데,

30여 년 동안 세토 내해에서부터 오사카, 나고야, 도쿄를 전전했던 료코의 삶을

촘촘하고 빈틈없이 구성한 작가의 필력에 여러 번 놀라곤 했습니다.

 

사건에만 집중했다면 아마 4~500페이지 내외에서 마무리 될 수 있었겠지만,

작가는 스모토와 료코 두 남녀의 고통스런 가족사와 심리 묘사에 적잖은 분량을 할애함으로써

단순한 사건해결 미스터리를 넘어 묵직한 한 편의 비극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스모토 세이지의 인생은 한시도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오직(汚職)으로 공무원에서 퇴출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정의란 그저 비즈니스라는 원칙으로 살아온 삐딱이 같은 변호사로서의 삶,

권력형 로펌의 수장을 장인으로 뒀지만, 불륜으로 인해 파탄에 이른 결혼 생활 등...

그런 스모토 앞에 나타난 작은 스낵바의 종업원 료코는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내보일 수 있었고, 언제든 위로받을 수 있는 안락한 도피처였으며,

죄책감이나 수치심 없이 몸을 섞을 수 있는 파트너였습니다.

 

료코의 가족사와 과거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하지 않겠지만,

정말 기구하다라는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스모토에게 있어 료코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해방구 같은 존재였다면

료코에게 있어 스모토는 과거를 영원히 봉인시켜줄 마지막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를 스모토의 곁에서 떼어낸 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캐릭터는 단단하고, 서사는 빈틈없으며, 사건은 반전을 거듭하며 진실을 토해냅니다.

장점과 미덕이 많은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역시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는 작품입니다.

크게 두 가지만 얘기하자면, 하나는 분량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미스터리의 해법입니다.

다 읽고 돌아보면 그리 많은 분량을 할애할 이유가 없었던 에피소드가 꽤 생각나는데,

그런 부분들을 정리했다면 500페이지 내외에서 충분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사건의 규모나 밝혀지는 진실의 깊이로 봐도 688페이지는 좀 과하게 넘쳤다는 생각입니다.

 

미스터리의 해법을 언급한 이유는,

후반에 이르러 독자들이 따라잡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스모토의 추리가 폭주하기 때문입니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한 줄의 진술을 통해 진상을 알 것 같다.”는 모습이 종종 나오는데

충분한 단서나 개연성이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대한 진실을 설명하는 스모토의 추리는

몇 번을 되읽어도 왜 저런 결론에 도달했나?”를 이해하기 힘들 만큼 홀로 앞서갑니다.

특히 결정적인 반전에 관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런 폭주 추리

엔딩에서 만끽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상당 부분 감소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줄거리는 잊어도 엔딩만큼은 기억나게 만드는 작품들이 다수 있는데,

환상의 여자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더 슬림했으면, 좀더 친절한 엔딩이었으면, 하는 두 가지 아쉬움 외에는

제물의 야회이후 대체로 만족스러운 가노 료이치와의 만남이었습니다.

한국에는 이 두 편밖에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다양한 작풍의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세계를 넓히고 있다.”는 소개글이 있긴 하지만,

그의 주 무기인 하드보일드 풍의 작품이 좀더 많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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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스 웨이브 - 릭 얀시 (권도희 옮김, RHK) | Book-외국 2015-03-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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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프스 웨이브 THE FIFTH WAVE

릭 얀시 저/권도희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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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달 만에 전자기 충격파(EMP), 쓰나미, 전염병 등 세 차례의 파동으로

인류의 99%를 말살시킨 외계인은 우주모함을 띄어놓은 채 네 번째 파동을 일으킵니다.

외계인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은 16세 소녀 캐시는 납치된 남동생 샘을 찾기 위해

아버지가 남겨준 M16 소총으로 무장한 채 기약 없는 싸움을 벌입니다.

캐시는 위기의 순간 자신을 구해준 또래 소년 에번 워커에게 의지하며

남동생 샘을 끌고 간 자들의 근거지를 향해 위험천만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섯 번째 파동의 정체를 목격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 ● ●

 

출판사 소개대로라면 할리우드에서도 그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지만,

처음 만나는 것은 물론 이름도 낯선 릭 얀시입니다.

SF, 그것도 외계인의 지구침공이라는 소재는 아무래도 영화에 적합해 보이는데,

가장 큰 이유는 미지의 외계인의 모습과 침공 장면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는

특수효과 및 스펙터클한 영상이 주는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피프스 웨이브는 기존의 유사한 소재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외계인의 우주모함은 등장하지만, 정작 외계인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전 세계를 정전시킨 첫 파동부터 쓰나미, 전염병 등 네 차례의 파동(wave)을 통해

인류의 99%를 제거한 외부인들이 다섯 번째 파동으로 남은 인류를 말살하려고 하는데,

정작 이 끔찍한 파동을 일으킨 주인공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목격된 적이 없습니다.

누가 적인지도 구분할 수 없고,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한 치도 예상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공포는 살아남은 인류를 더욱 참혹하게 만듭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인류 전멸의 위기 속에서 이 험난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것은

이제 겨우 16살이 된 소녀와 소년, 그리고 그 또래의 10대들이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7살이 된 전사(戰士)도 등장하는데,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할 분들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어지간한 어른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SF물보다 더 긴장감 넘치고,

생존과 구원을 위한 불가피한 폭력과 액션 역시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충분히 독합니다.

 

이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외계인이 안 보이는 지구침공과 10대들의 생존전쟁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또 큰 고비를 넘긴 주인공들이 곧 출간될 후속편에서는 어떤 위기를 마주하게 될지,

그래서 인류의 99%가 사라진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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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 타이트 - 할런 코벤 (하현길 옮김, 비채) | Book-외국 2015-03-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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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홀드타이트

할런 코벤 저/하현길 역
비채 | 201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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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 때 구판인 아들의 방으로 이 작품을 읽고 서평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할런 코벤과는 용서할 수 없는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꽤 근사했던 첫 만남 덕분에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제법 실망을 느낀 편이었고,

고백하자면, 당시에는 별 3개와 함께 조금은 혹평에 가까운 서평을 남겼었습니다.

 

한편에선 여성에 대한 잔혹한 연쇄 납치폭행치사가 벌어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진 10대 소년의 행방을 찾는 부부의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두 이야기는 중후반부에 가서 어렵게 접점을 찾게 되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숨겨진 비밀의 폭로에 도달하게 됩니다.

 

당시의 혹평은 상관없어 보이던 두 사건이 교집합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 메인 사건인 소년의 실종 계기와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한 탓이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 블로그에 남아있었습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그 서평을 삭제했기 때문이고,

삭제한 이유는 홀드 타이트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두 번째 읽은 뒤 그 서평을 찾아보니

제가 직접 썼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홀드 타이트를 읽기 전에는 어차피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2년 전과는 반대로 큰 기대 없이(?^^)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그때는 발견 못한 이 작품만의 미덕, 할런 코벤의 필력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이 숙명처럼 주고받아야 했던 애정과 증오심,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강요하거나 강요받아야 했던 불편한 관계에 대한 역설,

, 다른 가족의 불행과 내 가족의 불행의 무게를 재보는 어쩔 수 없는 이기심 등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하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홀드 타이트는 과장 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궤도를 달리는 듯한 연쇄살인사건 역시

뿌리를 찾아가보면 가족이라는 이름의 불편한 과거사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이 연쇄살인사건의 뿌리를 억지로 주제의식에 맞춰 해석할 필요는 없고,

작품 전체의 재미와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병행 서사로만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어쨌든 할런 코벤은 두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수렴시키면서

10대 소년의 실종 외에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한 서사를 잘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2년 전의 혹평의 이유를 새삼 추정하자면,

아마도 결과에만 너무 집착했던 속전속결 식 책읽기 탓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무엇이고, 10대 소년은 왜 사라졌으며,

두 사건은 어디서, 어떤 모양새로 만날 것인가, 라는 지엽적인 부분에만 신경 쓴 나머지,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큰 서사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도 홀드 타이트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다면,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제겐 별 3개 수준의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그 다음에 읽은 이나 영원히 사라지다역시 비슷한 독후감을 느꼈고,

찬사보다는 비판에 가까운 서평을 남긴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사한 오류를 저질렀기를 기대하며(?)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연이어 세 작품에 대해 비판적인 서평을 남겼던 걸 보면,

분명 할런 코벤의 작품과 저의 코드가 좋은 궁합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읽었을 때 상반된 느낌을 얻는 일이

장르물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낯설지만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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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1,2 - 스콧 터로 (한정아 옮김, 황금가지) | Book-외국 2015-03-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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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죄추정 1

스콧 터로 저/한정아 역
황금가지 | 200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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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쯤 스콧 터로의 이노센트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소개글을 보니 앞서 출간된 무죄추정20년 뒤 이야기라는 설명이 있어서

무죄추정부터 순서대로 읽어야겠네, 해놓곤 2년이나 지난 이제 와서야 읽게 됐습니다.

 

한때 법정 스릴러에 푹 빠졌던 취향 탓도 있지만,

분권된 660여 페이지를 읽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정도로 페이지는 거침없이 넘어갔고,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존 그리샴의 걸출한 작품들을 연상시킬 만큼

정교한 짜임새, 적절한 선정성과 폭력성,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긴장감 등

완성도 높은 법정물의 미덕을 골고루 갖춘 작품이었습니다.

 

● ● ●

 

킨들 군()의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그 재능을 인정받은 검사 러스티는

매력적인 여검사 캐롤린의 피살 사건을 수사하던 중 오히려 용의자로 몰리고 맙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 때문에 결국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러스티는

한때 자신과 대결을 벌였던 변호사 스턴의 도움을 받아 무고함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검찰 내에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러스티와 라이벌 관계였던 검사 니코와 몰토는

물증, 정황 증거, 목격자 등을 총동원하여 러스티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유부남인 에이스 검사의 불륜녀 살해라는 타이틀 덕분에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지만

공판은 검사나 변호사는 물론 배심원들도 전혀 예상 못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여검사 캐롤린의 죽음에 관한 진짜 비밀이 차츰 그 진상을 드러냅니다.

 

● ● ●

 

스콧 터로의 문장들은 거침없이 흐르는 커다란 강물처럼 느껴집니다.

사건의 배경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소()에서는 묵직하고 도도하게 흐르다가,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법정, 즉 여울에 이르면 그야말로 잔혹한 전쟁터를 연상시킵니다.

속도의 완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독자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물론

억지로 주제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표현과 묘사를 통해 설득력을 확보합니다.

특히, 적당히 비틀고, 적당히 웃기고, 적절하게 비유를 끌어내면서

불필요한 사족 없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대단한 필력을 곳곳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는 번역 덕분이었습니다.

 

무죄추정의 재미를 배가시켜준 것은 거미줄처럼 얽힌 등장인물 간의 관계입니다.

우선, 배신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킨들 군의 정치판에 대한 묘사는

사건 못잖게 독하고 리얼하게 이뤄져 있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정치적 갈등이 용서할 수 없는 혐오감으로 진화하는가 하면

추악한 욕망과 이긴 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로 똘똘 뭉친 악당들의 악의는

진실 같은 건 개나 주라는 식의 비정하고 살벌한 면모를 거듭 강조합니다.

그런 믿을 놈 하나 없는 개판의 한가운데 던져진 러스티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의심과 충돌, 타협과 화해 등 끔찍한 정치적 결정을 강요받게 됩니다.

 

정치판보다 더 적나라한 묘사가 넘쳐나는 곳은

살해된 캐롤린과 주인공 러스티의 짧지만 불꽃같았던 불륜일지(?)

그로 인해 해체 직전에 이른 러스티 부부의 갈등 장면입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캐롤린을 향한 러스티의 금지됐지만 정열적이었던 감정은

10대의 그것에 버금갈 정도로 과격하고 통제 불능한 상태로 묘사되고,

불륜이 폭로된 후 러스티가 아내 바바라와 갈등을 겪은 환란의 시기는

마치 직접 그 상황에 놓인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표현됩니다.

살인범으로 몰린 에이스 검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법정물이지만,

중년 부부의 권태와 일탈에 대한 욕망, 그로 인한 치명적인 위기에 관해서도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 덕분에 불륜 소설의 한 챕터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법정물의 교과서 같은 미덕과 불륜 소설의 끈적끈적한 매력이 합쳐진 듯한 무죄추정

진범을 찾고 누명을 벗는 본래의 임무 외에 사랑, 증오, 배신, 탐욕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노골적이면서 깊이 있는 묘사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작가가 쓰면서 자가발전한 게 아닌가 의심되는 감정묘사의 과잉이나

재판과정이나 불륜관계 설명에 있어 거듭된 동어반복이 옥의 티처럼 느껴지지만,

큰 그림으로 볼 때 작품 전체의 미덕을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후속작 이노센트무죄추정’ 20년 후의 이야기라면

주인공 러스티가 거의 60세가 다 된 시점이란 뜻인데,

과연 그가 어떤 모습으로 첫 페이지에 등장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더불어 품절된 사형판결 1,2’가 러스티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아니지만

역시 킨들 군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 작품이라고 하니

중고로라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잘 짜인 법정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 읽어도 매력적인 장르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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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련 - 미셸 뷔시 (최성웅 옮김, 달콤한책) | Book-외국 2015-03-1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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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검은 수련

미셸 뷔시 저/최성웅 역
달콤한책 |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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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큼 몽환적인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30여 년간 수련연작을 그리며 칩거했던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를 무대로

세 여인의 사랑, 운명, 절망, 그리고 그녀들을 둘러싼 광기와 집착을 그려낸 검은 수련

프롤로그부터 독자에게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단서들을 던지면서 시작됩니다.

 

한 마을에 세 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

첫 번째는 심술쟁이, 두 번째는 거짓말쟁이, 세 번째는 이기주의자.

세 명은 완전히 달랐지만 남몰래 같은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건 이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아름다운 지베르니를.

그러나 규칙은 잔혹했다.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 다른 둘은 죽어야 했다.

 

● ● ●

 

천재적인 그림 재능을 가진 11살의 파네트 모렐은

미술 콩쿠르에 입선함으로써 지베르니를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36살의 나이에도 상대를 압도하는 매력을 지닌 여교사 스테파니 뒤팽은

단 한 번 찾아온 불같은 사랑을 통해 감옥이나 다름없는 지베르니를 떠나고 싶어 합니다.

80대에 접어든 는 지베르니 마을 일대를 완벽하게 관찰할 수 있는 방앗간의 5층 망루에서 지베르니를 떠나려는 두 여인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들의 불행한 운명을 예감합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어딘가 생명감을 잃은 듯한 지베르니에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베르농 경찰서의 로랑스 서장과 보좌관 실비오가 수사에 뛰어듭니다.

바람둥이이자 모네의 그림을 손에 넣으려 혈안이 됐던 피살자 주변을 조사하는 한편,

현장에서 발견된 11살 아이의 생일 축하 엽서를 단서 삼아 수사를 진행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유력한 용의자마저 풀어줘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 ● ●

 

국내에 먼저 소개된 미셸 뷔시의 그림자 소녀가 치밀한 구성과 리얼한 서사를 내세웠다면

검은 수련은 미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바탕에 깐 채

사랑과 욕망, 광기와 집착 등 인간 본연의 감정을 상징적이고 몽환적으로 접근한 작품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가 혼재된 탓인지

책을 읽는 내내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살인사건의 진상을 찾는 경찰 콤비 로랑스와 실비오의 수사에 몰두하다가도

어느 지점에 이르면 사건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지베르니를 벗어나려는 세 여인의 욕망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지베르니에 대한 묘사에 빠져있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감옥처럼 답답하고, 껍데기만 남은 듯한 지베르니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연상시키는 두 경찰 콤비의 대화에 빙긋 웃으며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세 여인의 내면 묘사를 위해 동원된 상징으로 가득 찬 시구(詩句)를 보고 있으면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몇 번씩 되읽으며 그 의미를 여러 번 곱씹게 됩니다.

 

독자에 따라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서술들이 어렵거나 불편하게 읽힐 수도 있는데,

검은 수련을 통해 미셸 뷔시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은

자칫 전형적인 난해함으로 중무장한 프랑스 작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프랑스에서도 먼저 출간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소녀의 대중적 성공 이후 재조명되면서

평단의 호평과 다양한 수상 이력을 쌓은 것을 보면

검은 수련이 결코 편하고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검은 수련의 진가는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이 서서히 한곳으로 모여드는 중반부터

긴장감과 속도감을 높이면서 빛나기 시작하는데,

살인사건의 진상과 지베르니를 벗어나려는 세 여인의 진실이 드러나는 엔딩에 이르면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과 충격이 연이어 폭발하면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리고 독자는 미셸 뷔시가 왜 이토록 복잡 미묘한 서술예술적 서사를 고집했는지,

앞서 동원된 수많은 상징과 표현들이 왜 필요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검은 수련은 그 안의 미스터리와 트릭, 비밀과 거짓말이 너무 촘촘하고 불안정한(?) 탓에,

자칫 한 줄 소개만으로도 대형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상세한 줄거리나 캐릭터 소개보다는

애매모호한 인상 비평에 가까운 서평 밖에 쓸 수 없었는데,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가능하면 소개글이나 서평을 접하지 말고

백지 상태에서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혹시 검은 수련이 어렵게 느껴졌더라도 미셸 뷔시를 포기하지 말고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그의 그림자 소녀만큼은 꼭 한번 만나볼 것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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