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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 사무엘 비외르크 (이은정 옮김, 황소자리) | Book-외국 2017-04-2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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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사무엘 비외르크 저/이은정 역
황소자리 | 2016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단서들을 통해 사건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특별한 직관력의 소유자인 여형사 미아 크뤼거는

쌍둥이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마약쟁이 남자를 과잉진압으로 죽인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거의 폐인이 된 채 외진 섬에 머물며 자살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경찰대생이던 미아를 특수수사팀으로 스카우트했던 베테랑 형사 홀거 뭉크는

연쇄 소녀살인사건이 벌어지자 섬으로 잠적했던 미아를 설득하여 특수수사팀에 복귀시킵니다.

기대했던 대로 미아는 누구도 포착하지 못했던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던 수사는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그 와중에 추가로 두 명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 ● ●

 

본문 중에 미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끔찍한 연쇄살인이라는 표현이 두어 번 등장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화제가 됐던 몇몇 북유럽 스릴러를 돌이켜 보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는 미국이나 멕시코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곳처럼 묘사되곤 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선입관을 갖기에 충분할만한 연쇄 소녀살인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애써 노르웨이에서 이런 사건은 무척 특별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비슷한 표현을 두어 번씩이나 동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무리 잔혹한 스릴러라도 좀처럼 다루지 않는 소재가 미성년자가 피해자가 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은근슬쩍 안전한 노르웨이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메인 사건은 6살 소녀들을 희생자로 삼은 참혹한 연쇄납치-살해로 설정했습니다.

그런 불편함 때문에 계속 읽기를 뒤로 미루다가,

어쩔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국내에 출간된 지 거의 1년이 다 돼서야 읽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라마-연극 작가라는 대중지향적인 이력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엘 비외르크는 (적어도 희생된 소녀들에 관한) 불편한 묘사들을 현명하게 자제했고,

이야기의 중심을 노르웨이 경찰 홀거 뭉크와 미아 크뤼거 콤비의 캐릭터 플레이에 맞춤으로써

기대 이상의 재미와 탄탄한 서사를 선보였습니다.

 

미아 크뤼거가 사건과 단서를 바라보는 방법은 여느 경찰들과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직감과 예감에 가까운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 과학수사는 별 존재감이 없습니다.

미아가 이미 특유의 직관력을 통해 많은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기 때문에

홀거 뭉크를 비롯한 수사팀 동료들은 소설같기만 한 그녀의 추리를 옹호하고 지지합니다.

미아는 사건현장을 반복해서 방문하거나 집요하게 탐문하는 대신

종이 위에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적으면서 행간에 숨은 진실을 찾아내곤 합니다.

단편적인 단서들을 이리저리 재배열하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몇 수를 내다보는 바둑 고수처럼 아무도 예상 못한 추리를 내놓는 것입니다.

 

반면, 54살의 베테랑 홀거 뭉크는 상관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타고난 반골기질도 있고,

은근한 카리스마로 오래 호흡을 맞춰온 수사팀 동료들을 장악하는 면모도 있지만,

대체로는 어딘가 느긋한 사람 좋은 중년아저씨처럼 보입니다.

연쇄 소녀살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대단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지만,

애초 뛰어난 직관력의 소유자인 미아를 수사팀으로 데려온 것도 그였고,

폐인처럼 살던 미아를 사건현장으로 복귀시켜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게 만든 것도 그입니다.

그리고 하이에나 같은 언론의 공격과 상부의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며

수사팀을 끝까지 지키는 것도 그의 역할입니다. 말하자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이라고 할까요?

 

사건 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뤄지는 대목은 미아와 뭉크의 가족사입니다.

미아가 쌍둥이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희망과 의지를 잃어버렸다면,

뭉크는 바람난 아내와의 이혼, 제멋대로 살다가 19살에 아이를 낳은 딸 등

콩가루가 된 가족의 비극을 모두 자기 탓이라 여기는 남자입니다.

어쩌면 그런 가족사를 지닌 두 사람이기에 6살 소녀들이 연이어 희생되는 사건을 접하면서

경찰 이상의 감정을 이입하게 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살짝이든 심하게든 어딘가 망가진 경찰 캐릭터에 비극적인 가족사까지 부여받은 주인공은

영미권이나 북유럽 스릴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투적인 설정이지만,

어쨌든 미아와 뭉크는 상투성 이상의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임은 분명합니다.

 

아쉬운 점을 몇 가지만 꼽자면...

초반에 그려진 미아의 캐릭터 쌍둥이 동생의 죽음의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섬에 숨어든 채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피폐한 삶 에 비해

그녀의 현장 복귀가 너무 쉽고 가볍게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사건현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지나치게 쌩쌩했고, 트라우마는 독자의 기억에서 금세 잊힙니다.

물론, 작가는 수시로 그녀의 상처를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곤 하는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아의 트라우마는 왠지 장식품같은 느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 연쇄 소녀살해사건과 맞먹는 비중으로 병행되는 종교집단의 스토리는

(메인 사건과 접점이 있긴 하지만) 과도한 분량과 지루한 전개로 맥이 빠지는 대목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보 설명을 맡은 단순 단역 소개에도 지나치게 상세한 묘사가 동원됐는데,

이 역시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스킵하듯 페이지를 넘겨버리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오타들이 무척 눈에 거슬렸습니다.

전문 교정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라도 프리뷰를 맡겼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상태로 작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이 제겐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목하라! 모던 크라임의 새로운 거장이 나타났다.”라는 화려한 홍보 카피보다

본몬 속의 오타 하나에 더 신경쓰는 것이 출판사의 본연의 자세 아닐까요?

 

작가 소개글을 보니 후속작 올빼미역시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작품이 미아-뭉크 콤비의 시리즈 작품이라면 더욱 반갑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국내에 출간된다면 관심을 갖고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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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잠든 숲 1,2 - 넬레 노이하우스 (박종대 옮김, 북로드) | Book-외국 2017-04-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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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우가 잠든 숲 1

넬레 노이하우스 저/박종대 역
북로드 | 2017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피아 산더-올리버 보덴슈타인 콤비의 타우누스 시리즈 8번째 작품입니다.

(정들었던 피아의 성키르히호프는 이젠 추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원제인 ‘Im Wald’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번 작품에서 1차적으로는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가리키지만,

좀더 중의적으로는, 수십 년의 비밀과 악연과 악몽을 간직한 상징적인 공간을 의미합니다.

 

여우가 잠든 숲은 올리버 보덴슈타인을 중심으로 두 갈래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우선, 올리버는 경찰을 그만두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휴직을 준비 중입니다.

그는 경찰로서의 사명감과 정의감, 의욕과 열정이 바닥을 드러낸 자신에게 실망했고,

이제 더는 참혹한 사건과 마주치기 싫어졌으며,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저녁을 먹고, 여행을 다니는 평온한 삶에 안주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직속상관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의 휴직을 거부하고 있고,

파트너인 피아는 올리버의 부재 자체를 상상해본 적도 없기에 계속 그의 휴직을 만류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경찰업무가 될 수도 있는 방화사건과 마주한 올리버는 그저 착잡할 뿐입니다.

 

또 한 가지, 올리버를 이야기 중심에 서있게 만든 것은 루퍼츠하인 일대의 연쇄살인사건인데,

올리버는 담당 경찰이자 사건의 직접적인 연관자이기도 한 곤혹스런 입장에 처합니다.

숲속 캠핑카에서 벌어진 방화 살인사건, 요양원과 성당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등

폐쇄적인 소도시 루퍼츠하인을 공포로 몰아넣은 일련의 사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올리버는 이 모든 참극이 42년 전, 한 소년의 실종사건에서 비롯됐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실종에는 자신을 비롯한 루퍼츠하인의 10대들이 연루됐음을 새삼 기억해냅니다.

 

그 당시 올리버는 소중했던 친구와 사랑하는 새끼 여우를 잃었고,

그것이 가혹하고 비열했던 루퍼츠하인 10대 패거리의 소행이라 짐작했지만,

사건은 유야무야 마무리됐고, 그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결국 연쇄살인범의 목적이 42년 전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올리버는

자신과 갖은 악연으로 점철된 루퍼츠하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수심이 깃든 수사에 나섭니다.

 

휴직까지 고민할 정도의 경찰로서의 무력감과 자신의 과거가 연루된 연쇄살인사건 사이에서

올리버는 내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분히 개인적 감정이 개입된 수사는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 중 상당 부분이 허상으로 드러날 때마다 올리버는 탄식을 흘립니다.

결국 피아에게 지휘권을 넘긴 후에야 올리버는 사건의 윤곽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고,

현재의 참극의 근원이 된 42년 전의 진실과 마주치게 됩니다.

 

사실,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초반에 소개되는 인물표나 관련 지도는 거의 안 보는 편인데,

1권에 나열된 방대한 등장인물 표를 보곤 꽤나 골치 아픈(?) 책읽기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42년 전인 1972, 10대였던 올리버와 주변 인물들, 또 그들의 부모-형제가 등장하고,

현재인 2014년에는 아직 생존해있는 그들은 물론 그들의 자식들까지 등장한 덕분에

(더구나 서로 간에 결혼 관계로 묶이면서 성()까지 혼란스럽게 바뀐 덕분에)

각 인물별 족보(?)를 메모라도 해놓지 않으면 서로의 관계를 헷갈릴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피아와 올리버는 모두가 용의자일 수도, 또 모두가 다음 희생자일 수도 있는

루퍼츠하인의 수많은 인물들을 탐문하면서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추악하거나 더럽거나 냉랭하거나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들을 감지합니다.

그들은 42년 전 소년의 실종에 관한 한 모두 공범처럼 보이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루퍼츠하인에서 유년기를 보냈지만 올리버는 그들에게는 철저히 이방인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올리버를 냉대하거나 증오합니다.

마치 폐쇄적인 소도시 루퍼츠하인 자체가 똘똘 뭉쳐 올리버에게 저항하는 듯 보입니다.

당연히 수사는 번번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고 희생자는 하루에 한명 꼴로 나타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무도 예상 못한 유력 용의자를 지목하지만,

예상대로(?)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등장하면서 진범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그리고, 만일 과거로 돌아가 짧디 짧은 단 한 순간만 바꿔놓는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루퍼츠하인에서의 수많은 참극들의 진상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모든 것은 악마적이기까지 했던 10대들의 잔학성과 추악할 뿐인 어른들의 욕망에서 비롯됐고,

마치 신이 짜놓은 듯한 거짓말 같은 우연이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결론은 타우누스 시리즈를 통해 비교적 익숙해진 서사이긴 하지만,

여우가 잠든 숲은 올리버 개인의 삶이 직접 투영됐기 때문인지

여느 작품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 앞에서 분노하고, 폭발하고, 오열하는 올리버를 보면서

어쩌면 넬레 노이하우스가 경찰을 그만두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의도적으로 너무 큰 짐을 안겨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독자들은 갖가지 감정을 느끼며 재미있는 책읽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요..

 

수많은 인물과 방대한 서사를 정교하게 구성한 넬레 노이하우스의 필력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5개의 별에서 그친 것은 막판의 비약때문이었습니다.

올리버와 피아가 마지막 난관에서 발휘한 힘은 증거나 단서나 논리적 추리가 아니라

갑자기 하나의 깨달음이 머릿속에서 전깃불처럼 번쩍 켜진덕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작 의심했어야 할 단서, 진작 캐물었어야 할 질문,

진작 고려했어야 할 인간관계를 다 놓친 후에야 갑작스런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차곡차곡 쌓인 재료들을 무기 삼아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이 아니라

일부러 진범을 외곽에 포진해놓았다가 느닷없이 무대 중심으로 끌어들인 느낌이랄까요?

차라리 쉽게 예상되더라도 좀더 그럴 듯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 진범이었다면

오히려 더 큰 여운을 남길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막판의 비약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사족으로 번역에 관해 잠깐만 언급하자면..

타우누스 시리즈를 전담 번역하셨던 김진아 님 대신 박종대 님이 이 작품을 번역하셨는데,

앞선 시리즈들과 큰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던 매끄러운 번역은 좋았지만,

간혹 넘사벽’, ‘역대급’, ‘?’, ‘빡쳐요’, ‘빠삭하셔’, ‘멘붕 상태

과도한 의역(?)이 눈에 띈 점은 아쉬웠습니다.

특히 올리버나 피아의 대사에서 이런 단어들이 발견될 때는 지나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원작에서도 그런 뉘앙스의 단어가 구사됐다면 모르겠지만,

어쩐지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의 품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의역이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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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들 - 에쿠니 가오리 (신유희 옮김, 소담출판사) | Book-일본 2017-04-1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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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벌거숭이들

에쿠니 가오리 저/신유희 역
소담출판사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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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전공을 읽었습니다.

2년 전, 마지막으로 읽은 그녀의 작품이 10대 소녀들의 성장통을 다룬 수박향기였는데,

그녀의 전공인 금지된 사랑과 어긋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것은

7~8년 전쯤의 장미 비파 레몬이 마지막 기억인 것 같습니다.

 

웨하스 의자’,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낙하하는 저녁’, ‘반짝반짝 빛나는

한때 그녀에게 심취하여 밑줄까지 그으며 읽었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그 무렵이 에쿠니 가오리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벌거숭이들여전히 에쿠니 가오리, 그녀 맞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만큼

차분하고 담담한 문장들 속에 실은 꽤나 격한 감정들을 잘 담아낸 수작이라,

아직도 그녀의 전성기가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벌거숭이들에는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크게 보면 30대의 모모와 히비키 두 여자를 중심으로 그 가족 또는 지인들이 등장하는데,

에쿠니 가오리는 그들을 통해 인물 수만큼이나 다양한 애증의 감정들을 풀어놓습니다.

 

당연히 결혼할 것으로 여겨지던 6년 사귄 남자와 헤어진 뒤 9년 연하남을 택한 36살의 모모,

그런 모모를 만나면서 동시에 모모의 절친인 유부녀 히비키를 마음에 품는 27살의 사바사키,

절친의 남자란 걸 알면서도 그의 접근에 낯선 설렘을 느끼는 네 아이의 엄마 히비키 등

세 명의 중심인물은 남녀의 관계, 즉 연애와 결혼 또는 구속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엄마와 연애를 경멸하며 프리라이터로서 독립적인 삶을 사는 모모의 언니 요우,

그런 딸 요우를 이해 못하며, 여자의 삶의 가치를 안락한 결혼에서 찾는 모모의 엄마 유키,

딸과 아내의 갈등을 알면서도 현명한(?) 중립적 태도로 가족을 지키는 모모의 아빠 에이스케,

황혼에 이르러 가정을 버린 채 진짜 인연 히비키의 엄마 카즈에 을 만난 야마구치,

그런 새 장인야마구치를 증오하면서도 정작 아내 히비키를 건성으로 대하는 하야토 등은

가족이기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갖가지 희로애락을 이야기합니다.

 

벌거숭이들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관계때문에 고민하고, 위로받고, 상처받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모모는 연애문제에서도 가족문제에서도 관계때문에 혼란을 겪습니다.

6년을 만난 이시와와 채 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하남 사바사키를 만났던 모모는

자신과 만나는 와중에 절친인 히비키에게 (심지어 숨기지도 않고) 들이대는 사바사키를 보며

그와 자신의 관계 남편감? 애인? 친구? 섹스 파트너? 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를 구속해야 하는 것인지, 자신이 그의 구속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히비키를 원망하고 질투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모르는 척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콩 샐러드를 뒤적이며 모모는 이시와를 생각했다.

오늘 저녁에 만날 사바사키도.

언제까지일까.

그리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기보다,

어째서 인간은 꼭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걸까.

 

가족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애를 거부하고 엄마를 증오하며 가족과 등 돌린 채 히피 같은 삶을 사는 언니 요우와 달리

모모는 진작부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가족의 일원으로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녀 역시 엄마의 집착에 반항하지만, 언니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원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치과의사가 되어 병원을 물려받는 효녀노릇도 그녀의 몫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성실한 남자와의 결혼에 안착하기를 바라는 엄마가 불편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화해와 용서와 이해와 포용의 의무가 부과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녀에게 관계란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자양분이 아니라 구속을 위한 명분인지도 모릅니다.

 

모모 외에 다른 모든 인물들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또 격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간결하고 순한 문장들을 통해

그들이 관계때문에 겪는 감정적 혼란들을 내밀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읽히지만 행간은 온통 치열하고 뜨거운 불덩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에쿠니 가오리의 진짜 매력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모모와 히비키는 물론 등장인물 모두 작품의 주제를 위해 기능적으로 역할 한다는 점,

, 지나칠 정도로 적절한 문제를 안고 있고, 지나칠 정도로 적절한 관계로 설정된 점은

(소설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읽는 내내 작위적인 느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전작들과는 달리 왠지 에쿠니 가오리가 정교한 설계도를 미리 그려 놓은 뒤

그에 맞춰 캐릭터와 사건들을 배치한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 막상 생각해보니...

제 주위에 무난하고 평화롭기만 한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전혀 떠오르지가 않는군요.

역시 누구나 다 소설에 어울릴 법한 그런 문제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요?

 

번역하신 신유희 님의 후기 중 일부를 인용하며 두서없는 서평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부분일 뿐이며

그래서 편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이 인간관계이지 싶다.

연애도 결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분이 전부인 양 기대어 사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 다른 부분에 절망하여 등을 돌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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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새겨진 소녀 - 안드레아스 그루버 (송경은 옮김, 북로드) | Book-외국 2017-04-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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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옥이 새겨진 소녀

안드레아스 그루버 저/송경은 역
북로드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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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나이더-자비네 시리즈 첫 편인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을 아직 읽지 못한 상태에서

두 번째 작품 지옥이 새겨진 소녀를 통해 안드레아스 그루버와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유럽 스릴러 가운데 남녀 콤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우가 몇몇 있는데,

슈나이더-자비네는 (제가 알기론) 경력과 나이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입니다.

한쪽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면 한쪽은 새내기의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신참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외적인 면만 아니라 성격에서도 극단적으로 대비됩니다.

슈나이더가 괴팍하고 거만한데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고집쟁이라면

자비네는 다정다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평범한 축에 속하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둘 사이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수사를 위해서라면 절차와 규정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돌직구 같은 경찰이란 점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독일 연방범죄수사국에 근무하는 슈나이더는

천재와 광인(狂人)을 오가는 천재적인 사건분석가이자 범죄심리학자입니다.

타고난 반골기질은 물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거만함으로 똘똘 뭉쳤지만

거의 완벽한 프로파일링 능력 덕분에 경찰 내에서 그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 때론 극단적인 방법 직접 재배하는 마리화나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 현장에 틀어박혀

범인의 행동과 사고를 유추한다든지 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해 불가한 일면도 있습니다.

살인자의 뇌에 들어가서 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슈나이더의 대사는

프로파일러로서의 그의 철학을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년 전, 참혹한 사건을 통해 슈나이더와 인연을 맺었던 뮌헨의 신참 여경 자비네는

연방범죄수사국 아카데미에서 사제 관계로 슈나이더와 재회합니다.

슈나이더는 여전히 불친절했고, 거만했지만,

자비네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아카데미 입학에 그가 적잖은 힘을 써줬음을 눈치 챕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슈나이더와 자비네가 맡은 독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들인데,

처음에는 범행 수법이나 패턴도 다르고 희생자 간의 연관성도 없어 보였지만,

두 사람의 집요한 수사 끝에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충격적인 진상이 드러나는 사건들입니다.

또 하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생한 연쇄 소녀유괴 살해사건으로,

희생된 소녀들의 등에서 단테의 신곡지옥 편을 묘사한 끔찍한 문신이 발견되면서

수사 관련자들을 패닉 상태에 빠지게 만든 사건입니다.

빈의 여검사 멜라니 디츠가 노회한 경찰 하우저와 함께 이 사건을 맡습니다.

두 사건은 한 챕터씩 번갈아 등장하는데,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두 사건은 후반부에 가서야 접점이 드러나게 되고,

독일의 슈나이더-자비네 콤비가 멜라니 디츠와 협력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게 됩니다.

 

사건의 잔혹함이라든가 심리극을 연상시키는 복잡다단한 묘사 등

유럽 스릴러 특유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슈나이더-자비네 콤비의 캐릭터입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도 없고, 또는 물과 불처럼 상극으로만 보이는 두 남녀 주인공이

날선 공방과 비아냥, 의외의 협조와 동지애 등을 주고받으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은

사건 자체보다 더 롤러코스터 같은 재미를 발산합니다.

슈나이더는 자신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듯 하면서도 실은 자신과 꼭 닮은 자비네에게

무자비한 스승이자 이 세상 최고의 멘토로서 다가섭니다.

자비네 역시 슈나이더의 모난 부분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의 몸속에도 슈나이더와 꼭 닮은 경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4.5개의 별에서 그친 것은

우선, 사건 해결 과정이 기대했던 것보다 구태의연하고 안이하게 설정된 탓이 제일 컸고,

결론을 위해 다소 억지스럽게 그려진 몇몇 인물들 간의 작위적인 관계라든가,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던 두 사건 사이의 접점 등이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슈나이더-자비네 콤비의 캐릭터만 놓고 보면 5개 이상의 별도 충분한 작품입니다.

물론 주연급 조연으로 소녀유괴 살해사건을 담당한 멜라니 디츠의 공도 컸습니다.

그녀가 앞으로도 슈나이더-자비네와 함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중요한 카메오로 한번쯤은 얼굴을 비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사건 자체보다 캐릭터의 힘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까요?

그 덕분에 이 시리즈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슈나이더-자비네 콤비가 어디까지 진화할지도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후속작을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의 첫 만남을 그린 시리즈 첫 편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부터 얼른 찾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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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구 : 나와 23인의 노예 2 - 오카다 신이치 (이승원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 Book-일본 2017-04-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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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예구 나와 23인의 노예 2

오카다 신이치 저
AK(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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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교정기를 닮은 SCM(Slave Control Method)을 착용한 사람끼리 게임을 벌여

이긴 사람은 주인이 되고, 진 사람은 그의 노예가 된다는 독특한 설정 덕분에

이 시리즈의 1편을 찾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말초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아서 때론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통제 가능한 인간 노예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근원적인 욕망을 집요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나름의 미덕도 갖춘 작품이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어찌하다 보니 2년 만에 2편을 읽게 됐는데,

무엇보다 SCM이라는 기발한 도구를 만들어낸 창조주의 실체와 목적이 궁금했고,

1편에서 주인과 노예로 갈라선 인물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이 (많기도 했지만)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고,

1편의 인물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병풍처럼 등장하기만 한데다,

1편을 읽지 않았거나, 읽었더라도 저처럼 꽤 공백이 긴 독자들로서는

그들의 캐릭터를 파악하거나 기억하기 쉽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곤혹스러웠습니다.

(제 경우, 1편의 각 에피소드를 정리한 메모를 옆에 두고 읽었는데도 혼란스럽더군요.)

 

이야기 역시 확장이라기보다는 연재를 위한 연장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하나의 큰 줄기 없이 개별적인 사건들만 나열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물들의 목표가 불분명하다 보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도 감소되고,

결국 누구와 누구의 싸움인지, 선과 악의 대결인지, 그저 판타지인지도 모호해집니다.

덧붙여, 1편의 프리퀄 격인 에피소드들이 간간이 소개되는데,

그 역시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서사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고전적 혹은 정통 서사에 익숙한 독자와 달리

굳이 큰 줄기의 스토리가 없더라도 개별 에피소드만 재미있다면 얼마든지 소비할 수 있는,

말하자면, 파편적인 서사에 익숙한 독자에겐 흥미롭게 읽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SCM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이라든가,

1편에서 절대적 주인으로 이름만 거론됐던 류오우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

또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두 여자 캐릭터의 활약을 예고한 후반부 등은

따로따로 떼어놓고만 보면 긴장감도 높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좀 읽어보려 했는데 인터넷 서점이나 장르물 카페에선 찾기 어려웠고,

블로그는 대부분 만화판에 대한 언급들이라 좀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이후에 나온 3편과 외전까지 읽게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아직 이 시리즈를 접하지 못한 분께 1편만큼은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폭력적인 묘사와 선정성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은 제외)

일본스러운기발한 상상력과 판타지의 조합을 맛볼 수 있는 정말 특이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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