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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 베키 매스터먼 (박영인 옮김, 네버모어) | Book-외국 2018-03-2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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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저/박영인 역
네버모어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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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손에서 결혼 후 조용히 살아가던 전직 FBI 특수요원 브리짓 퀸.

어느 날, 자신이 훈련시켰던 후배 특수 요원을 마지막 희생자로 삼고 잠적해버린

66번 고속도로 살인마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FBI의 로라 콜먼은 용의자의 자백이 거짓인 것 같다며 브리짓 퀸에게 도움을 청한다.

과거와 더 이상 얽히기 싫어 콜먼의 부탁에 주저하는 브리짓 퀸.

하지만 자신을 노리던 성 범죄자를 우발적으로 죽인 브리짓 퀸은

뒤늦게 찾은 행복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하는 것을 직감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그동안 다양한 장르물의 개성 강한 주인공들을 만나봤지만

은퇴한 59세의 전직 여성 FBI요원이란 설정은 꽤나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브리짓 퀸은 성범죄에 관한 한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유능한 요원이었지만,

은퇴 뒤에 만나 결혼한 남편에겐 저작권 관련 업무를 했다며 자신의 과거를 감춥니다.

유능한 FBI요원일반인으로서의 평범한 삶사이의 괴리감이 컸던 탓이었고,

이미 한 남자로부터 ‘FBI에서의 과거때문에 큰 상처를 입은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행운처럼 찾아온 사랑하는 남자와 두 마리 퍼그와의 안온한 일상에 완벽하게 침잠한 채,

더는 어두운 세계와 엮이기를 거부하며 평범한 삶을 소망하던 브리짓이었지만,

FBI 시절 미제 사건으로 결론 났던 ‘66번 고속도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체포되자

그녀가 애써 눌러왔던 특수요원으로서의 DNA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때마침 명백한 살해의도를 가진 성범죄자의 습격까지 받게 되자

브리짓은 두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있다고 결론짓곤 남편 몰래 수사에 가담합니다.

 

작가는 꽤 많은 이야기를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 안에 풀어놓습니다.

매년 여름마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젊은 여성을 참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그 연쇄살인범의 마지막 희생자이자 자신이 아끼던 신참 FBI요원에 대한 브리짓의 자책감,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 신참 FBI요원의 아버지,

그리고 평범한 삶에 대한 소박한 소망과 타고난 FBI요원으로서의 본능이 충돌하는 이야기 등

아주 버라이어티한 코드들이 알맞은 양념들과 함께 잘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다만, 다루는 사건에 비해 긴박감이나 속도감은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초반만 해도 테스 게리첸의 의사 시리즈가 떠오를 만큼 꽤 거칠고 빠른 서사가 이어졌는데,

정작 메인 스토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좀 느슨해진다고 할까요?

이미 브리짓이 은퇴한 처지라 공식 수사에 개입할 수도 없거니와

연쇄살인범의 만행은 7년 전에 종지부를 찍은 상태라

브리짓의 수사는 대체로 탐문과 단서 추적 위주의 정적인 전개가 불가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리짓에게 주어진 미션이 단순한 범인 찾기이상으로 다채롭게 설정된 덕분에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임에도 마지막까지 단숨에 달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쫓는 자이면서 동시에 쫓기는 자이기도 한 브리지의 처지는

읽는 내내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부여해주는 매력적인 설정이었습니다.

 

다 읽은 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과연 브리짓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였는데,

그녀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면 더는 그녀의 활약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쉬울 것 같고,

반대로 작가가 브리짓 시리즈를 집필한다면 그녀가 그토록 소망했던 평범한 삶이

더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습관처럼 띠지, 뒷면, 날개 부분을 건너뛰고 본문부터 바로 읽는 편이라

혹시나 하고 뒤늦게 작가 이력이 소개된 부분을 보니 이미 두 편의 시리즈가 출간됐더군요.

그럼 브리짓은 평범한 삶요원으로서의 본능을 모두 손에 넣었다는 뜻일까요?

벌써부터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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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로버트 해리스 (조영학 옮김, RHK) | Book-외국 2018-03-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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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콘클라베

로버트 해리스 저/조영학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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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9,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 교황이 선종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 118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간다.

그들은 모두 성인들이다. 동시에 야망이 있는 남자들이다. 그리고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추기경은 모두 네 명.

각각의 경쟁자들은 저마다 지원 세력이 있고 강점과 약점 또한 갖추고 있다.

그리고 72시간이 지나면 그들 중 오직 한 명만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가 될 것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교황은 신성, 평화, 중립,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교황의 선출은 신탁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로버트 해리스가 콘클라베에서 그린 교황의 탄생 과정은

진보와 자유, 보수와 전통, 인종과 성별, 욕망과 권력, 표를 얻기 위한 이합집산 등

세속의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갈등과 차별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18명의 추기경들은 2/3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12일간 감금된 채 투표를 해야 되는데

애초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4명의 추기경 외에 군소후보들이 얻은 표는

투표가 거듭될 때마다 부동표처럼 이리저리 떠다닙니다.

유력후보들은 틈만 나면 표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섭외활동을 펼치고

심지어 다른 후보들의 약점이 보이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까지 합니다.

교황 선출 과정을 주관하는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단 단장은

본의 아니게 여러 후보들의 약점을 알게 되면서 고뇌에 빠진 탐정 역할까지 떠맡게 됩니다.

선종한 교황이 남긴 비밀문서들, 여러 후보들이 지은 세속의 죄 등이 그것인데

중립적인 선거관리자로서 무척이나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교황 선출 과정을 함부로 왜곡할 수는 없을 테니

로버트 해리스가 그린 콘클라베는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읽는 내내 꽤나 충격을 받았는데,

아마 뉴스나 인터넷에서 교황 관련 소식을 들으면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고,

바티칸 관료들역시 성스러운 교황의 측근들로만 받아들이진 못할 것 같습니다.

 

교황, 선거, 미스터리라는 세 개의 큰 축이 떠받치고 있는 작품이지만,

상대적으로 미스터리의 힘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대체로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반전 역시 소소한 규모로 설정돼있습니다.

다만, 거듭되는 선거로 인한 팽팽한 긴장감 덕분에 분량에 알맞은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고,

신성(神聖)과 세속의 충돌이 낳은 딜레마도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대목이었습니다.

특히, 누가 신의 선택을 받은 자가 될지, , 그는 진정 신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마지막까지 쉽게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고 만족스런 책읽기의 시간이 돼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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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피해자 – 천지무한 (최정숙 옮김, 한스미디어) | Book-외국 2018-03-2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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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저/최정숙 역
한스미디어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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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멍위는 뛰어난 설치예술가이자 시의원 경선에도 나간 적이 있을 만큼 유명인사다.

그는 6개월 전 세 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피해자들의 시체를 숨긴 장소를 실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형 판결 직후 자살한다.

하지만 자살 직전 시신들을 숨긴 곳에 대한 단서와 함께 네 번째 피해자의 존재를 암시한다.

한편 방송국 시사프로그램의 아나운서인 쉬하이인은 이 사건을 보도해 승진할 요량으로

팡멍위의 살인행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저우위제에게 접근하여 사건을 파헤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엽기적으로 시신을 훼손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은닉한 희대의 연쇄살인,

사형선고를 받은 범인이 자살한 탓에 은닉된 희생자 찾기에 몰두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수사,

그리고 부와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에 몰두하는 한 아나운서의 집착 등

꽤 다양한 코드가 범벅이 된 독특한 중화권 미스터리입니다.

특히 막판의 반전과 결말은 일반적인 미스터리 서사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묘한 여운을 얻게 됩니다.

 

외형적으로는 엽기적 연쇄살인과 옐로우 저널리즘의 폐해 또는 그에 대한 고발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그리 단순한 구도로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은닉됐던 희생자를 찾아낼수록 범인 팡멍위의 범행 동기는 점점 더 오리무중이 되고,

그가 언급한 네 번째 희생자는 이미 살해됐는지 또는 추종자나 공범에 의해 살해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언론과 대중을 놀리기 위해 설정한 페이크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 시청률에 목을 매고 경쟁자를 따돌려 공을 세우려는 아나운서 쉬하이인은

분명 옐로우 저널리즘의 상징처럼 그려지긴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무능한 경찰 대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명탐정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그녀에게 응원과 비난을 동시에 보내게 되는데,

특종에 목맨 야비한 기자와 진실을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이 한 몸에 섞인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한국에 소개된 첫 작품이라 작가의 성향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작품만 놓고 보면 배배 꼬는 걸 무척 좋아하는 작가란 생각이 먼저 들었고,

해설’,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곤 역시 괴짜라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하고, 다양한 소재를 잘 활용하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설계하는 능력도 있어서

한 번 팬이 되면 금세 애독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배배 꼬는 이야기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라면

쉽게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경우, 미스터리를 끌고 가는 필력은 분명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꼬아놓은 나머지 결과를 위한 작위적 설계라는 느낌을 받은 대목도 있어서

일단 다음에 출간될 작품 한 편쯤 더 읽어보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생각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아마 피맺힌 원수의 영광또는 4분면중 한 편이 될 것 같은데,

어느 작품이 됐든 빠른 시일 안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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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들 – 김중의 (황금가지) | Book-한국 2018-03-1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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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광인들

김중의 저
황금가지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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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는 십여 년 전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며 두고 온 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때문에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딸 주변만을 맴돌며 친근한 '아줌마'로만 접근한다.

언젠가는 자신이 친엄마임을 알리겠다고 생각하지만,

갑작스럽게 퍼지기 시작한 광인병에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고 딸의 생사마저 불분명해진다.

더군다나 딸을 구하러 가던 길에 난 교통사고로 발목 골절까지 입은 상황,

외국인노동자 자카리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딸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선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개인적으로 좀비 이야기를 일부러 찾아 읽는 취향은 아니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국내외 좀비 스토리를 접하면서 든 생각은

좀비에 관한 한 소재의 한계는 없는 것 같다, 였습니다.

워낙 좀비 자체가 극성이 강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라든가 좀비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 상황, 극복 또는 퇴치 방법 등

어떤 설정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광인들의 핵심 설정은 생존투쟁에 나선 모녀입니다.

아무래도 모녀가 주인공이다 보니

좀비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격한 액션이나 스릴 넘치는 장면들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생존을 위한 행동들이 공격적이기보다는 은신과 방어위주로 설정됐기 때문인데,

물론 나름 긴장감 넘치는 시퀀스들이 종종 보이긴 하지만

역동적인 좀비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280여 페이지의 분량에 알맞은 탄탄한 설정 때문에

재미있게, 부담없이 한 번에 쭉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심각한 상황에 맞지 않는 가벼운 문장들이었습니다.

주인공인 수하는 목숨을 내놓고 딸을 찾는 와중에도 계속 경박한 혼잣말들을 늘어놓고 있고,

상황을 묘사하는 직유와 은유 등 대부분의 비유들은 치기어린 면이 종종 보이곤 했습니다.

물론 모든 히어로나 히로인들이 무게 잡는 심각한 캐릭터가 돼야 하는 건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이라면 적어도 가볍거나 경박해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좀비 이야기에 애틋한 모녀 스토리를 섞은 시도는 매력적이었고,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인 만큼) 좀더 다듬어진 필력으로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한다면

주목받을 만한 한국 장르물 작가 리스트에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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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 S. L. 그레이 (배지은 옮김, 검은숲) | Book-외국 2018-03-1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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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파트먼트

S. L. 그레이 저/배지은 역
검은숲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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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와 스테프는 어린 딸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살며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무장한 강도들이 쳐들어와 그들의 삶을 박살내기 전까지.

아무런 피해도 없었지만 부부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들은 서로 집을 맞교환하는 숙박 공유 사이트를 이용해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게 되고,

파리의 매력적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프티 부부와 집을 교환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황량한 아파트와 위층에 사는 이상한 여자 한 명뿐.

악몽 같은 파리에서의 날들을 뒤로 하고 겨우 집으로 돌아오지만

마크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서서히 균열로 뒤덮이게 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굳이 비유하자면,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집이 뒤섞인

남아공 판 심리 서스펜스+도시 공포물이라고 할까요?

주인공 마크의 삶은 그야말로 한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불행의 집합체입니다.

7년 전 비극적인 사고로 잃은 7살 딸 조이에 대한 집착과 회한,

대학교수에서 칼리지로 밀려나면서 겪게 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

3인조 무장 강도의 난입으로 인해 얻은 치명적인 트라우마 등이 그것입니다.

딸의 죽음 뒤 이혼까지 한 그는 20년 이상 연하의 스테프와 재혼하여 딸 헤이든을 뒀지만,

그의 삶은 언제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강도사건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휴식을 얻기 위해

무리한 경제사정을 감내하면서 떠났던 아내 스테프와의 파리 여행은 치명상이 되고 맙니다.

사방에서 나타나는 죽은 딸의 환각, 현실 속 사람 같지 않은 정체불명의 여인,

죽은 고양이, 양동이에 가득 담긴 잘린 머리카락, 연이어 벌어지는 불운 등

마크와 스테프는 파리에 머무는 내내 악몽 같은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문제는 그 불길하고 음험한 기운들이 남아공의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하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흐트러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집의 구석구석,

7년 전 죽은 딸에 대한 집착에 폭주하면서 생생한 환각까지 경험하게 되는 마크,

그런 마크를 지켜보며 파국이 머지않았음을 깨닫곤 혼란에 빠지는 스테프...

 

분명 장르상 심리 서스펜스와 도시 공포 스릴러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샤이닝이나 괴담의 집과는 전혀 다른 식감(?)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구체적인 스토리보다는 불안에 잠식된 심리 묘사가 압도적으로 강한 서사랄까요?

그래서인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언급한 작품들보다 더 모호하게 느껴지고,

주인공들이 겪는 불가지한 현상들 역시 꽤 난해하게 읽힙니다.

당연히 페이지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넘어가는 반면 기분 나쁜 오싹함은 그만큼 배가됩니다.

마치 미동도 하지 않는 썩은 늪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뭔가를 가지고 돌아왔어.”라는 스테프의 대사를 인용한 홍보카피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대변하는 인상적인 구절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독자에 따라 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인데,

스티븐 킹이나 미쓰다 신조가 대중적인 스토리 속에 심리+공포 스릴러를 녹여 넣었다면,

아파트먼트는 유럽의 작가주의 공포영화처럼 심리 자체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오락적 요소는 다소 부족하다는 뜻인데,

그 부분은 이 작품의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주로 출퇴근길에 띄엄띄엄 읽고 말았지만,

아마 조용한 밤에 혼자 밀폐된 공간에서 읽었다면 좀더 제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파리의 악몽이나 남아공의 집으로 돌아온 뒤 주인공들이 마주한 불가지한 현상들이

마치 제 등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공포심도 더 생생했을 것 같구요.

스티븐 킹이나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읽을 때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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