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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스틸 - 린지 페이 (공보경 옮김, 문학수첩) ★★★☆ | Book-외국 2020-08-3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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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인 스틸

린지 페이 저/공보경 역
문학수첩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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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작품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출판사 홍보카피였습니다.

 

“‘제인 에어를 매혹적으로 변주한 로맨틱 서스펜스!”

순종과 헌신을 강요하는 빅토리아 시대, 매혹적인 여성 연쇄살인범이 나타났다!”

 

두 번째 카피는 더없이 저의 호기심을 이끈 반면, 첫 번째 카피는 꽤나 주저하게 만들었는데,

살짝 삐딱한데다 애매모호하고 불친절한 영국 고전문학의 냄새가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제목만 숱하게 들어봤을 뿐 읽은 적 없는) ‘제인 에어에 대한 오마주라는 점도 불길(?)했는데

그래선지 딱 100p까지만 읽고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접자는 생각으로 첫 장을 펼쳤습니다.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1837년부터 대략 15년 정도의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9살에 자신이 살던 저택에서 첫 살인을 시작한 이래 기숙학교를 거쳐 런던으로 도망친 뒤

쓰레기만도 못한 자들을 (고의적 또는 우발적으로) 살해하며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제인은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어릴 적 자신이 살았던 저택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제인은 오랫동안 (어머니의 유품을 통해) 그 저택의 상속자가 자신이라고 믿어왔던 탓에

느닷없이 나타난 저택의 새 주인에 대해 증오심과 살의마저 지니게 됐고,

저택 되찾기라는 목적을 갖고 신분을 위조하여 가정교사로 들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택의 새 주인 찰스 손필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초반에는 저택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제인의 밑바닥 삶이 그려지고,

이후로는 저택에 들어온 제인이 찰스 손필드 때문에 휘말리게 되는 미스터리가 전개됩니다.

자신이 물려받을 저택인데도 별채로 내몰린 채 숙모와 사촌의 눈치를 봐야했던 유년기,

반강제로 들어간 기숙학교에서 터무니없는 횡포와 억압을 겪어야 했던 청소년기,

그리고 런던의 뒷골목에서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야만 했던 20대 초반 등

제인의 성장과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입니다.

이 기간 중에 (홍보카피대로) 제인이 여러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도 맞고

자신의 살인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소시오패스적 기질을 보여준 것도 맞지만,

사실 제인은 일반적인 흉악한 연쇄살인범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자 잭 더 리퍼를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몸통은 제인과 저택의 주인 찰스 사이의 아슬아슬한 로맨스와 함께

과거 전쟁 상황 하의 인도에 머물던 찰스의 과거사와 그 속에 도사린 미스터리입니다.

당연히 미스터리의 해결사로 제인이 활약을 하게 되는데,

목숨을 건 위기와 사랑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애절한 갈등 등 숱한 고비를 넘긴 끝에

제인과 찰스는 그들만의 특별하고 애틋한 엔딩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 고전문학의 냄새가 진하게 밴 570여 페이지라는 분량에서 알 수 있듯이

린지 페이의 문장은 (위에서 정리한 줄거리처럼) 단순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살짝 삐딱한데다 애매모호하고 불친절한 느낌이 무척 강했는데,

제인의 성장기를 그린 대목까지는 이런 느낌이 그리 거북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제인이 저택에 들어가고 미스터리 서사가 시작된 뒤로는 좀 힘든 책읽기가 된 게 사실입니다.

특히 미스터리의 발단인 인도에서 찰스가 겪은 사건들은 복잡하고 모호하게 설명되는데다

누가 악당이고 누가 아군이고 누가 비밀을 가진 자인지조차 확실히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소 반골적이고 불친절한 영국식 장르물에 덜 우호적인 독자라면 추천하기 어렵겠지만,

반대로, 그 맛에 익숙하거나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린지 페이의 작품 중 뉴욕경찰국 출범 전후를 그린 고담의 신에 관심이 가긴 하지만,

일단 초반부만이라도 맛보기를 한 뒤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인지 판단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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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콜드 - 테스 게리첸 (박아람 옮김, RHK) | Book-외국 2020-08-2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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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이스 콜드

테스 게리첸 저/박아람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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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컨퍼런스 참석 차 와이오밍에 온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일행과 함께 계획에 없던 스키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눈보라로 인해 사고를 당한 그들은 사투 끝에 외부와 단절된 외진 마을에 도착한다.

똑같이 생긴 열두 채의 집만 덩그러니 있을 뿐 인적 하나 없는 그곳에서

죽은 동물들과 알 수 없는 핏자국들을 발견한 아일스 일행은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외부와 연락할 길이 없는 상태에서 기약 없는 고립의 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편 리졸리는 아일스의 갑작스러운 실종 소식을 접하곤 와이오밍으로 급히 달려가지만

그곳에서 들은 비극적인 소식에 사색이 되고 만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보스턴경찰서 강력반 형사 제인 리졸리와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콤비의 여덟 번째 작품이자

한국에 소개된 시리즈 마지막 작품입니다.

2013년에 이 작품이 출간됐으니 7년 동안 신작 소식이 없었던 셈인데,

미국에서는 이후 네 작품이 더, 즉 시리즈 열두 번째 작품까지 출간됐다고 합니다.

테스 게리첸의 팬 입장에선 너무 아쉬울 수밖에 없는데,

뒤늦게라도 남은 작품들이 한국에도 소개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작품의 주 무대는 두 사람의 홈그라운드인 보스턴이 아니라 와이오밍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살인사건 현장이 아니라 수상쩍기 짝이 없는 인적 없는 외진 마을과

그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험준한 한겨울의 산악 지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외진 마을의 정체는 프롤로그에서 바로 공개되는데,

그곳은 모음교라는 사이비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자급자족 마을이며,

신격화된 그곳의 리더는 주민들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13살 소녀까지 신부로 맞이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독재자입니다.

하지만 아일스 일행이 도착했을 때에는 인적이라곤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고,

방금 전까지 일상을 영위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만 기괴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조난자들의 사투사이비 종교의 폐해가 믹스된 작품입니다.

시리즈 초기의 의사 3부작을 비롯 역대급으로 끔찍한 사건들을 해결하던 두 콤비가

조난사이비 종교라는 다소 이색적인 이야기에 뛰어든 셈입니다.

앞부분이 조난당한 아일스 일행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서바이벌 스토리라면,

중반 이후는 아일스를 찾던 리졸리가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파헤치는 스릴러 스토리입니다.

 

매력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희대의 연쇄살인마와 마주했던 두 콤비의 이전 이야기에 비하면

다소 단선적이고 싱겁게 읽힌 것이 솔직한 느낌입니다.

물론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이다 보니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괜찮은 변화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와 강력반 형사 제인 리졸리의 진면목이 덜 보인 탓에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을 못 느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마지막 장을 얼마 안 남기고 예상치 못한 반전들을 배치시켰는데,

덕분에 상투적인 용두사미로 그치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됐습니다.

이 작품의 말미에 다음 작품을 위한 꽤 매력적인 떡밥이 투척돼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후속작이 나오지 않아 궁금증과 아쉬움만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10여 년 전, ‘외과의사를 시작으로 몇 년 동안 탐닉했던 시리즈라서 그런지

오랜만에 시리즈 전체를 다시 읽었는데도 그 감흥은 여전했습니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무슨 계기로든 이 시리즈의 남은 작품들이 출간됐으면 하는 건데,

요원한 일이란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 바람을 놓지 않고 있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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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가 - 하세 세이슈 (이기웅 옮김, 북홀릭) | Book-일본 2020-08-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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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장한가

하세 세이슈 저/이기웅 역
북홀릭 | 2013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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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진혼가에 이은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 3부작마지막 작품입니다.

일본 작가가 환락의 도시 신주쿠 가부키초를 무대로 쓴 작품들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중국()인들, 그것도 대부분 조폭들입니다.

돈과 권력을 위한 피비린내 진동하는 충돌이 주된 이야기이고,

거기에 비극적인 사랑, 용서받을 수 없는 배신, 늪과 같은 가부키초의 마력이 곁들여집니다.

 

어느 시리즈나 마찬가지겠지만, ‘불야성 3부작은 특히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시리즈입니다.

세 작품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류젠이(일본명 타카하시 켄이치)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야만

이 시리즈의 매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만인과 일본인의 혼혈, 일명 반반(半半)인 류젠이는 가부키초의 초라한 장물아비로 출발하여

이 작품에선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로 가부키초의 정보를 손에 쥔 인물로 진화합니다.

첫 작품인 불야성에서 가부키초의 항쟁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피를 뒤집어썼던 류젠이는

이어진 진혼가에선 적은 비중임에도 여전히 가부키초를 뒤흔드는 배후조종자로 변신했지만

장한가에서는 모든 정보를 장악한 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인과 폭력을 설계하는,

그야말로 진정한 어둠의 악귀로서 그 마력을 떨칩니다.

 

이 작품의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은 가짜 일본인리지, 일본명 타케 모토히로입니다.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온 그는

몇 겹이나 되는 변신과 위장 끝에 완벽한 일본인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직장을 구했지만,

거품의 붕괴와 함께 가부키초에서 마약을 다루는 조직의 말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느 날, 조직의 보스와 일본 야쿠자가 밀담 도중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타케의 삶은 엄청난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야쿠자와 일본 경찰로부터 암살범의 정체를 밝혀내라는 압박까지 받게 됩니다.

단서 하나 없는 타케가 선택한 것은 가부키초의 정보상 류켄이치(=류젠이)입니다.

그의 엄청난 정보력에 힘입어 타케는 조금씩 암살범의 정체에 다가가는가 싶지만,

그때마다 예상치 못한 살인극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진실에서 멀어져가기만 합니다.

그 와중에 중국에 남겨놓고 왔던 첫사랑 샤오원과 재회한 타케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회한과 함께 호스티스로 전락한 샤오원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절대 해서는 안 될 위험하고도 무모한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580여 페이지의 꽤 두툼한 분량이지만 사건 자체는 단선적입니다.

오히려 사건 못잖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장한가(長恨歌)’라는 제목 자체가 의미하듯

자신의 과거를 향한 타케의 길고도 깊은 회한에 대한 묘사입니다.

타케는 자신이 버리고 온 중국의 고향산천, 가족, 연인을 백지처럼 지운 채 살아왔지만,

첫사랑인 샤오원과 재회하면서 아무 의미 없던 가짜 일본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후회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어디로도 도망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무력감과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에너지원은 샤오원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열망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타케의 후회, 회한, 한탄, 열망이 지나치게 강조된 탓에

장한가는 전작들에 비해 다소 느슨하게, 또 다분히 작위적으로 읽힌 것도 사실입니다.

한두 번은 몰라도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 오히려 연민이 사라지기 마련인데

타케가 딱 그런 캐릭터라는 얘깁니다.

 

동시에, 마성의 정보력을 지닌 시리즈 주인공 류켄이치 역시 끝까지 모호함 속에 갇혀있는데,

그가 궁극적으로 노린 목표가 무엇인지, 왜 진작 그 목표를 쟁취하지 않은 건지,

자신과 닮은꼴인 타케에게 최종적으로 바랐던 것은 무엇인지,

, 모두에게 악귀 소리를 들어가며 그가 가부키초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불야성진혼가이후 몇 년이 흐른 뒤의 류켄이치의 존재감을 통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정리하면, 앞선 두 작품이 사건 속에 캐릭터들의 감정이 진하게 잘 녹아들었다면,

장한가는 쉽게 이입하기 힘든 감정들 때문에 사건조차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불야성1996년에, ‘진혼가1997년에 출간된 반면, ‘장한가2004년에 출간됐습니다.

또 하세 세이슈는 애초 시리즈가 아니라 불야성한 편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는데,

개인적으로 진혼가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은 반면,

장한가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그만큼 실망감도 적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7년의 공백 끝에 나온 시리즈 마지막 편의 부담감이 작가에게도 너무 컸던 탓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새겨진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라면

불야성진혼가만큼은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품절 상태라 중고로만 구할 수 있는데,

구하기 어려운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겨줄 작품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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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집의 살인 - 우타노 쇼고 (박재현 옮김, 폴라북스) | Book-일본 2020-08-2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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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긴 집의 살인

우타노 쇼고 저/박재현 역
폴라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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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집의 살인은 꽤 오랜 시간동안 먼지만 뒤집어쓴 채 책장에 갇혀있던 작품입니다.

우타노 쇼고라면 적잖이 읽기도 했고 신간 소식도 기다리는 편이니 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가끔 실망감만 느낀 작품을 만난 적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긴 집의 살인이 오래도록 책장을 못 벗어난 건 실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 때문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미지가 머리에 너무 깊이 박혀서 매번 알게 모르게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큰맘 먹고 펼친 첫 장에 실린 개정판 간행에 앞서라는 작가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긴 집의 살인은 나의 첫 소설이다. 그 이전에는 습작을 한 적도 플롯을 짜본 경험도 없다.”

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현재 내가 극복한 미숙함과 그 대신에 사라져버린 열정과 패기가 함께 담겨 있다.”

 

이 작품이 1988년에 출간된 그의 데뷔작이란 건 전혀 몰랐던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작품에 낮은 평점을 준 독자들 중에는 이 서문을 읽고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남긴 기대감이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적어도 별 1~2개 정도는 더 뺐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개인적으론 이 서문 덕분에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좀 짓궂게 표현하자면 한 수 접어주고첫 페이지부터 느긋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 락 밴드 메이플 리프의 멤버들이 연이어 기이한 형태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 있던 멤버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사실이 말이 안 된다는 점,

,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살해동기도, 방법도, 범행을 저지를 시간도 없는, 말 그대로 불가능한 살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력한 경찰 탓에 멤버 중 일부는 직접 나서서 추리를 벌이기도 하지만 별 소득은 없습니다.

결국 뒤늦게 밝혀진 사건의 진실은 동기부터 트릭까지 그야말로 기상천외 그 자체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마 이 작품을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듯 읽었다면

전 분명 “100% 시마다 소지의 작품이야!”라고 자신 있게 오답을 발표했을 것입니다.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 시리즈를 읽은 독자라면 제 오답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지만,

어쨌든 동원된 트릭부터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 캐릭터까지 너무도 닮은꼴이란 뜻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쯤에서 그치겠지만,

아무리 한 수 접고읽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우타노 쇼고의 고백대로 미숙함과 열정과 패기가 가득 찬 작품인 건 분명하단 생각입니다.

트릭은 무모함을 넘어 과도하게 복잡한 나머지 (변명처럼 여겨지는) 설명 없인 이해불가였고

명탐정의 캐릭터는 미타라이의 그것보다 더 괴짜에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였습니다.

덕분에 반전의 쾌감보다는 어떻게든 독자를 설득하려는 안쓰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졌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에는, 처음부터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던 책읽기여서 그런지

어떻게든 초심자의 열정과 패기로 해석하고 싶었던 마음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우타노 쇼고는 20년만의 개정판 출간을 앞두고 전부 수정하고 싶었던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은 솔직한 고백도 곁들였습니다.

포장지가 새로워졌기에 내용까지도 손봐주길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지만,

긴 집의 살인은 이런 작품이다. 앞으로도 손대지 않고 현재의 상태로 남겨두고 싶다.”

 

전 이 고백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숙함과 열정과 패기만 가득하더라도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작가의 이 서문이 없었더라면 꽤나 지독한 혹평만 남겼을지도 모를 일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긴 집의 살인덕분에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대가들의 미숙한 데뷔작을 만나보고 싶다는 악동 같은 욕심이 슬그머니 들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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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유물 - 테스 게리첸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 | Book-외국 2020-08-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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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악녀의 유물

테스 게리첸 저/박아람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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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경찰서 강력반 형사 제인 리졸리와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콤비의 일곱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메피스토 클럽에서 기존 시리즈들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소재,

, ‘악마주의 혹은 사탄을 앞세워 독자를 놀라게 만들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고고학미라라는, 스릴러치곤 다소 특이한 소재로 돌아왔습니다.

 

오래된 박물관에서 2천년 전 미라 형태로 꾸며진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뒤 이어 희생자를 남미 원시부족의 전통에 따라 가공한(?) ‘말린 얼굴 가죽까지 발견됩니다.

, 살해된 뒤 특수한 환경의 토탄습지에 잠긴 채 가죽만 남은 시신까지 드러나자

리졸리와 아일스는 범인이 고고학과 연관된 인물이라 추정합니다.

이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물관 직원 조세핀이 뭔가를 감추는 것 같은 와중에

오래 전 이집트와 북미에서 활동한 유물 탐사단에 진실을 향한 열쇠가 있는 것으로 보이자

리졸리는 미미한 단서밖에 남아있지 않은 과거 속 인물들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내장을 빼고 소금을 뿌렸다가 헝겊에 쌀까?

목을 베고 두개골에서 얼굴과 두피를 벗겨내 인형처럼 작은 머리를 만들까?

습지의 검은 물에 담가 가죽 같은 얼굴에 죽음의 고통이 영원히 기록되도록 만들까? (p312)

 

희생자를 갈가리 토막내거나 날카로운 흉기로 훼손하는 범인도 끔찍하지만

이처럼 보존소유의 욕망이 강한 범인은 처음 접한 것 같습니다.

희생자를 토막내고 훼손하여 간직하는 소시오패스는 가끔 본 적 있어도

마치 영혼 자체를 가둬놓으려는 듯한 기괴한 행각은 전대미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희생자들이 고대의 풍습에 따른 미라 또는 유물 형태로 발견되고,

사건의 진실은 짧게는 10여년 전, 길게는 20년도 넘는 과거 속에 있다 보니

여느 때보다 리졸리와 아일스의 행보는 느리고 답답하게 보입니다.

리졸리가 찾아간 인물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겨우 몇몇 단서를 손에 넣더라도 사건의 중심에 있는 조세핀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부검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시신들이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일스의 역할과 비중은 전작들에 비해 왜소한 편이고,

FBI가 끼어들 틈도 없으니 리졸리의 남편 게이브리얼 역시 단역처럼만 등장할 뿐입니다.

그보다는 오랜 과거 속 비밀을 꽁꽁 싸매고 있는 조세핀이 세컨드 주인공처럼 보이는데,

중반 이후 그녀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사실, 사건은 전대미문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다 읽고 복기해보면 큰 틀은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고 심플하게 보입니다.

물론 연쇄살인범들의 캐릭터나 범행수법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조금도 밀리지 않지만,

범행 목적이라든가 궁극의 목표물을 향한 범인의 전략은 다소 싱겁게 그려졌습니다.

작가도 이런 부분을 고려한 탓인지 전에 없이 막판 반전에 애를 쓴 느낌이었는데,

끝났다 싶으면 뒤집어지곤 하는 수차례의 반전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이 시리즈를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으로는

초기 의사 3부작이후 점차 하향세를 그렸다는 인상이 남아있었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오류라는 게 시리즈 첫 편부터 다시 읽어온 지금까지의 판단입니다.

초기 의사 3부작만큼은 아니더라도 리졸리와 아일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악마주의나 고고학까지 소재를 넓힌 작가의 스펙트럼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다음에 읽을 아이스콜드를 끝으로 한국에선 이 시리즈가 더는 출판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팬 입장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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