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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떠나 시골에서 지내는 꿈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 만화책 2012-10-3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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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권경희 글/임동순 그림
일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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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떠나 시골에서 지내는 꿈
 [만화책 즐겨읽기 188] 임동순·권경희,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미디어 일다,2011)

 


  우리 네 식구가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무엇이 좋은가?’ 하고 누가 물을 적에는 ‘음, 생각해 보는 모두 다 좋아요.’ 하고 대꾸합니다. 왜 그런가 하고 말할 까닭 없이, 즐겁고 좋으며 사랑스럽기에 시골로 삶터를 옮겨서 지내거든요.


  그렇다고 도시에서 지낼 적에 ‘무엇이 나빴나?’ 하고 얘기하지는 않아요. 이 땅에는 좋고 나쁨은 따로 없으니까요. 받아들이기 나름이고 누리기 나름이니까요.


  다만, 나는 자동차 소리를 즐기지 않습니다. 전철이 하루 내내 오가며 내는 시끄러운 소리를 즐기지 않습니다. 길가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손전화 수다 떠는 소리를 즐기지 않습니다. 장사꾼 지나다니는 소리를 즐기지 않습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도시에서 살면서 무엇 하나 신나게 즐기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이웃이 많고, 가게가 많으며, 물건 하나 사기 손쉽다 할 테지만, 마음을 차분하거나 느긋하거나 한갓지게 보듬으면서 하루를 빛내기는 어려웠구나 싶어요.


  터전이 마땅하지 않으니 마음을 차분하게 보듬지 못할 수 있어요. 터전이 마땅하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못 보듬기도 해요. 터전이 알맞지 않아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리지 못할 수 있어요. 터전이 알맞은데에도 마음을 못 느긋하게 다스리곤 해요. 터전이 예쁘지 못한 나머지 마음이 한갓지지 못할 수 있어요. 터전은 예쁘나 마음은 좀처럼 못 한갓질 수 있어요.


  여러모로 살펴보면, 터전은 터전대로 가장 사랑스러운 곳으로 잡아서 지내야 하는데, 무엇보다 내 터전을 바라보는 내 눈길을 가꾸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내 눈길을 가꾸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즐거운 하루로 맞아들이지 못하겠구나 싶어요.


- 그래, 오랫동안 버려졌던 밭이니 개간하는데 힘들 거라고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 있었다. 무수한 돌과 무성한 잡초가 앞을 막더라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두 여자였다. 게다가 서른도 훨씬 넘은 두 여자는 벌레 같은 걸 보고 꺄악 소리 지르고 도망치는 소녀도 당근 아니었다 … 우리가 빌린 밭 백 평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고나 할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그 밭은 누군가가 계속 쓰레기를 버리고 묻고 태웠던 바로 그런 땅! (14∼16쪽)
- 농촌의 제초제 사용이 일반화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렇지만 농업진흥청의 관리감독 하에 비료, 농약, 제초제 사용이 관행이 되어 버린 지금, 이제 농사를 시작한 우리가 그런 것을 사용하지 마시라고 오랫동안 농사지어 오신 분들을 설득할 수도 없는 형편. (91쪽)


  도시에서 살아갈 적에 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어떻게 어울리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어디어디 놀러간다든지 맛집을 찾아간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인천에서 골목마실을 즐겼으니, 골목마실을 함께 해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것저것 해 보더라도 다닐 만한 데란 조용하거나 한갓지거나 풀이랑 나무랑 꽃이 있는 데예요. 골목마실을 하며 들여다보는 모습이란 꽃그릇이랑 골목나무랑 골목풀이에요. 골목나무에 깃드는 골목새를 바라보고, 골목꽃에 내려앉는 나비를 바라봐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무엇을 하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음, 딱히 무엇을 하지는 않습니다. 마룻바닥에 앉아 바깥을 하염없이 내다 보기도 하고, 마당 평상에 앉아 하늘바라기를 하기도 합니다. 마을 들판을 걷거나, 이웃마을 돌기둥을 구경하러 다녀오기도 합니다. 차를 얻어타고 바닷가를 다녀온다든지 읍내에 있는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 밑에서 다리쉼을 하기도 해요.


  더 좋은 무엇을 누린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바라는 무엇 하나를 누리는구나 싶어요. 더 나쁜 무엇하고는 등을 돌린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꿈꾸는 무엇 하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내 길을 걷는구나 싶어요.


  누군가는 도시에서 꿈을 찾겠지요. 누군가는 시골에서 사랑을 빚겠지요. 누군가는 도시에서 일거리를 얻겠지요. 누군가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홀가분하게 뛰어놀겠지요.


  마음껏 자라나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줄기를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기운차게 솟는 풀포기를 바라보다가 한 닢 두 닢 뜯어서 입에 넣고 맛을 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켭니다. 바람에 나부끼며 바람노래를 부르는 들풀을 고개 까딱까딱 하면서 지켜봅니다.


  햇살을 가득 내 가슴으로 안습니다. 들노래를 듬뿍 내 가슴으로 얼싸안습니다. 들꽃 한 송이 따서 아이 귀에 꽂고, 아이가 딴 들꽃송이가 어여뻐 사진 한 장 찍습니다.


- “와, 너무 맛있다!” “직접 캐신 거라 더 맛있으실 거예요.” “밥 한 그릇 더!” ……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날 결국 언니 한 분이 밤에 추위 때문에 잠을 못 이루어 탈이 나셨고. (44쪽)
- 아, 이게 이 동네 스타일인가 봐, 라고 적응해 갈 즈음, 우리 집을 향해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시던 할머니마저도 절친으로 돌변! “이거 보리콩인데 심어 봐! 그동안 자네들이 나한테 너무 잘해서 주는 겨!” (79쪽)


  작은아이가 바지에 쉬를 합니다. 바지를 갈아입힙니다. 또 바지를 버리는구나! 그래, 버리렴. 아버지가 신나게 빨아 주지. 복복 비벼 빨래합니다. 빨래는 후다닥 합니다. 물기를 쪼옥 짠 빨래를 마당에 널며 해님을 바라봅니다. 해님, 고맙습니다, 이 빨래도 보송보송 잘 말려 주셔요.


  밥을 합니다. 설거지를 합니다. 밥상을 차립니다. 두 시간 훌쩍 지납니다. 나는 밑반찬을 안 하고 끼니마다 반찬을 새로 하니, 밥하는 겨를을 꽤 많이 들입니다. 하루에 너덧 시간 넉넉히 밥차림에 품을 들입니다. 우리 시골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하루 대여섯 시간 남짓 밥차림에 품을 들여요. 머릿수가 많으니 그만큼 손이 가고, 남다른 밥 한두 가지 더 하자니 겨를도 많이 들어요.


  상다리가 휘어지지는 않으나 밥을 차려 다 함께 먹습니다. 차리기는 한참, 먹기는 후다닥, 이랄 만하지만 다 좋습니다. 먹자고 차린 밥이니까요. 풀내음 나는 먹을거리를 좋아할 수 있고, 풀내음 나는 먹을거리가 도시사람한테 안 익숙할 수 있지만, 우리 식구들 즐기는 풀내음 먹을거리를 기쁘게 밥상에 올립니다.


  바깥에서 사다 먹는 밥으로는 느낄 수 없는 맛과 멋과 웃음과 기쁨이 밥상에 오른다고 느낍니다. 바깥에서 밥을 사다 먹을 적에는 손님이랑 더 오래 얼굴 마주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느끼지만, 아이들이 많이 어려 이리 뛰고 저리 소리지르며 노니, 어쩌면 바깥에서 밥을 사다 먹을 때에는 아이구야 머리가 지끈지끈 귀는 화끈화끈 골이 띵하네 싶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어 별바라기를 합니다. 깜깜한 하늘에 보름달 휘영청 밝습니다. 에이 참, 모처럼 손님이 왔는데, 초승달이나 그믐달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새까매서 온통 까만 하늘 가득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느끼도록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새벽에 아이들 쉬를 봐주러 일어나서는 새벽별을 올려다봅니다. 보름달 넘어간 새벽에는 별이 와르르 쏟아집니다. 어쩜, 이 고운 밤별을 또 나 혼자만 누리나? 그래도 뭐, 누릴 사람이 잘 누리면 되지요.


- 그렇다! 도시처럼 답답하게 막힌 게 없이 이렇듯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여 있으니, 우리도 이웃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50쪽)
- 두 번째로 자주 듣는 질문은 부모님의 과격한 표현을 빌자면, ‘도대체 시골 구석에서 어찌 벌어 먹고 살려는 거냐?’ 뭐 그렇게 얼렁뚱땅 웃으며 대답하지만 글쎄, 그냥 우리는 벌어 먹지 않고 땅을 일구어 기른 것을 먹고 싶을 뿐이랄까? (54쪽)


  임동순 님 그림과 권경희 님 글이 어우러진 만화책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미디어 일다,2011)를 읽습니다. 한 분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일하다가 시골로 떠났고, 한 분은 시골에서 나고 자라다가 도시로 일하러 나왔는데 새삼스레 시골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초·중·고등학교는 모두 다니셨을 테니, 이렇게 학교를 다니며 시골살이를 얼마나 누렸을까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살아가는 고흥 시골마을을 돌아보면,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시골살이를 누린다고는 못 느껴요. 거의 다 시골 면내나 읍내에서 ‘도시 아이들과 똑같이’ 무언가 피시방이나 편의점이나 어떤 문화·편의시설에서 돈을 쓰고 하루를 보내고프다고 여길 뿐이지 싶어요. 시골에서 멧골을 오르거나 바다를 누비거나 들을 쏘다닌다고는 느끼지 못해요. 초등학교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시골 아이도 시골에서 무언자 숲을 누린다고는 느끼지 못해요.


  그러니까,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를 일군 두 분 가운데 한 분도 ‘고향은 시골이지만 삶터를 이루는 넋은 도시’에 있었다고 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직접 들으면 작물은 클 수밖에 없다. 왜냐? 거기엔 다음과 같은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밭고랑 사이를 걸어가다가 작물보다 크게 자란 풀을 보면 안 뽑고 지나갈 수가 없어!” (107쪽)
- “그래서 어떤 집을 원하나요?” “아, 네, 그러니까, 이 철없는 제 인간노예들이 원하는 집은 말이죠. 산밑에 아궁이 때고 텃밭 있고 조용하고, 기타 등등등등등등.” (138쪽)


  사랑은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마음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면서 자랍니다. 시골 논밭 풀과 나무도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마음을 너그러이 보듬을 때에 자랍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도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마음을 즐겁게 북돋울 때에 자랍니다.


  꽥꽥 소리를 지른대서 아름다이 자라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적힌 지식대로 이끈대서 훌륭하게 자라지 않습니다. 힘으로 우악스레 내리누른대서 멋지게 자라지 않습니다.


  오직 따순 손길로 아름다이 자랍니다. 오로지 넉넉한 마음길로 훌륭하게 자랍니다. 그예 보드라운 꿈길로 멋지게 자랍니다. 바로 내 마음속 사랑을 곱다시 키우며 아끼려고 시골살이를 꿈꾸면서 즐깁니다. (4345.10.31.물.ㅎㄲㅅㄱ)

 


―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임동순 그림,권경희 글,미디어 일다 펴냄,2011.10.25./1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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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곱게 빚는 손길 (헌책방 진주 형설서점) | 책숲마실 2012-10-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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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곱게 빚는 손길 (4345.8.17.)
― 경남 진주 〈즐겨찾기(형설서점)〉
055-748-4785 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번지

 


  2004년부터 경상남도 진주시 한켠에서 〈즐겨찾기〉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헌책방이 새 터로 옮깁니다. 새로운 터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름을 〈형설서점〉으로 고칩니다. 이리하여, 전라남도 순천과 여수에 이어 세 번째 ‘형설서점’이 됩니다.


  〈즐겨찾기〉라는 이름으로 헌책방 살림을 꾸리던 자리를 돌아보면, 고등학교 아이들이 숱하게 오가는 길목이면서, 헌책방 둘레에 높직한 아파트와 백화점이 새로 섰습니다. 진주도 퍽 크다 싶은 도시로구나 싶고, 여러모로 큰 건물과 아파트가 줄줄이 올라서는 도시로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진주를 비롯해 다른 크고작은 도시들을 보면, 새 건물이 높이 올라서고 새 아파트가 우람하게 들어서기는 하지만, 책방이 더 커진다든지 새로 생긴다든지 하지는 않습니다. 도시를 이루는 사람들은 부쩍 늘어나지만, ‘문화 시설’이라 할 만한 새책방이나 헌책방이 늘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도시사람이 누리는 문화란 무엇일까 궁금하곤 합니다. 극장이 문화일까요. 커다란 할인매장이 문화일까요. 커다란 자가용을 몰며 고속도로를 싱싱 달릴 때에 문화일까요. 옷가게 늘어서고, 밥집이나 찻집이나 술집이 거리를 이루어야 문화일까요.


  《이성천-국악사》(국민음악연구회,1976)가 보여 살며시 집어듭니다. ‘국악’을 다루는 책이니 한겨레 옛노래를 들려주는데, “상고 시대의 음악 형태는 문헌의 결핍으로 상세히 알 수 없으나, 다만 중국 사서에 전하는 것으로 추지할 뿐인데 …… 이 동이의 음악에는 매(昧)와 리(離) 등의 악곡과 지모두(持矛舞) 등 춤이 있어 제사에도 사용되었다. 또 가장 오래된 악무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 하소강 때에 우리 음악과 춤이 중국에 전하여 그들의 악무보다 훨씬 발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15∼16쪽).”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역사를 다룰 적에는 이처럼 ‘옛 한문책’을 살핍니다. 옛 한문책에 몇 마디 이야기가 남아야 비로소 역사로 다룹니다. 그런데 옛 한문책이든 오늘날 한글책이든 ‘한겨레 문화나 역사를 다룬다 하는 책’에서는 참말 한겨레가 즐거이 누리는 문화를 어느 만큼 어떻게 다룰까요. 궁궐에서 권력자와 지식인들 누리는 문화만 다룰는지요. 여느 시골에서 여느 사람들이 한결같이 누리는 문화를 나란히 다룰는지요. 이른바 ‘구비문학’이라 해서 시골마을마다 오랜 나날에 걸쳐 입과 입으로 이어진 문화가 있는데, 옛 한문책 가운데 구비문학을 알뜰히 담은 적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요.


  《안경린-국악감상》(국민음악연구회,1976)이라는 책이 함께 꽂혔기에 이 책도 살며시 집어듭니다. 안경린 님은 “속악이 감히 국악이 될 수 없다는 천대나, 정악만이 국악이라는 고집은 모두 합당하지 않은 것이며, 국악이란 실로 이 모든 것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랑스럽고 귀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정대한 음악만이 존재한다면 너무나 많은 수효의 서민이 가엾고, 반대로 통속한 음악만 존재한다면 오로지 천박하다는 비평을 면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13쪽).” 하고 적습니다. 1970년대까지도 ‘여느 시골마을 흙일꾼 노래’는 국악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시골마을 흙일꾼 노래 또한 ‘국악’이라고 깨닫는 이가 늘었을 텐데, 아직도 국악이라 하면 ‘궁중 노래’만 국악인 줄 생각하는 이가 퍽 많아요. 게다가, 《국악감상》을 쓴 분조차 시골마을 흙일꾼 노래를 ‘통속’이나 ‘천박’이라는 말마디로 살그머니 깎아내리고 맙니다.


  가만히 보면 ‘국(國-)’이라는 한자를 붙이는 것들마다 ‘여느 사람 삶자락’하고는 동떨어집니다. ‘국어’일 때조차 여느 사람들이 주고받던 살가운 말을 ‘속담’이라 일컫고, 여러 고장말을 ‘방언’이라 가리키는데, 속담도 방언도 국어사전에 제대로 실리지 못해요. ‘국사’에서 다루는 역사란 거의 왕권 발자취이지, 여느 사람들 삶자국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라를 이루는 사람이란 임금님이나 대통령뿐은 아니겠지요.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로 나라를 이루지 않겠지요.

 


  거창군립도서관에 있다가 버려진 책인 《에드워드 윔퍼/김영도·김창원 옮김-알프스 등반기》(평화출판사,1988)라는 책을 만납니다. 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버렸을까 싶어 안타깝지만, 우리 나라 도서관은 장서실을 늘리지 않아요. 건물을 한 번 지으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책은 날마다 꾸준히 나오니 도서관 또한 나날이 장서실을 늘려야 할 테지만, 막상 이 나라 도서관은 ‘책 둘 자리’를 늘려 새로 나오는 책들을 알뜰히 다루고 예전에 나온 책을 알차게 건사하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참말 한국에서는 헌책방이 없다면 아름다운 책들이 ‘대출 실적 0’이라는 엉터리 꼬리표가 붙은 채 버려지면서 그예 사라지겠구나 싶어요. 크고작은 도시에 헌책방이 있기에 도서관에서 꾸준히 버리는 책을 하나하나 소담스레 받아들여 새 임자한테 이어 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구나 싶어요.


.. 친구들은 이렇게 죽어갔다. 우리는 꼼짝 못하고 30분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안내인들은 겁에 질려 어린애같이 울며 와들와들 떨었다. 그들이 떠는 것을 보니 우리도 같은 꼴이 되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사모니, 샤모니가 뭐라고 할까?” 하며 페터 노인이 외쳤다. 크로가 떨어지다니 누가 믿겠는가 하는 뜻이었다. 페터의 아들은 “이젠 끝이야, 끝장이란 말이야.” 하며 울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페터의 아들더러 내가 있는 데까지 내려오라고 해도 그는 오금이 저려서 움직이지 못했다 … 나는 내려갈 준비를 끝내고 타우그발더 부자를 기다렸다. 그들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 사투리로 뭐라고 했는데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들이 프랑스말로 말했다. “손님!” “왜 그래?” “우리는 가난해요. 우리 손님은 죽었어요. 일당을 받지 못하게 됐으니 어떻게 해요.” “그만 해!” 나는 그의 입을 막았다. “한심하군. 내가 주면 되잖아. 그 손님이나 나나 마찬가지니까.” 그들은 다시 수군거렸다. “손님더러 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체르맛의 호텔 숙박부와 손님의 나라 신문에 우리가 돈을 받지 못했다고 써 주면 돼요.” “뭐라구, 그건 무슨 소리지?” “예, 내년에는 더 많은 손님이 체르맛에 오겠지요. 그때에 우리는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럴 때, 뭐라고 한단 말인가. 나는 잠자코 있었다 ..  (316∼319쪽)


  1800년대에 알프스 멧자락을 오르내린 이야기를 다룬 《알프스 등반기》는 1988년 번역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에 알려지는 책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올 수 있겠지요. 또는 다른 누군가 알프스를 오르내린 이야기를 다룬 책을 한국에서 펴낼 수 있을는지 모르지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삶을 담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날마다 누리는 삶을 담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책방이름을 바꾸며 새 자리로 옮기려 하는 〈즐겨찾기〉 헌책방 책시렁은 살짝 어수선합니다. 책을 묶고 싸고 날라야 하니까요. 이런저런 틈바구니에서 《Newton special issue 植物の世界》(敎育社,1988) 1권과 4권을 봅니다. 모두 네 권짜리 특별판으로 나온 책이라 하고, 이 가운데 두 권을 봅니다. 《Newton》이라는 과학잡지가 일본에서 나온 책이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1988∼1993년에 이 잡지를 틈틈이 사서 읽곤 했는데, 잡지이름이 알파벳으로 적혀서 서양책을 옮겨서 내는구나 하고 여겼는데, 일본잡지였을까요.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에는 간기를 찬찬히 훑지 않았고, 그무렵 간기를 훑었다 하더라도 옳게 헤아리지는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그무렵에는 잡지에 담긴 이야기를 읽느라 바쁘기만 했어요.


  《Newton special issue 植物の世界》를 차근차근 살핍니다. 책에 담은 그림이나 사진이 무척 정갈하고 빈틈없습니다. 식물살이를 한껏 보여주면서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나무를 사진으로 담고 풀과 꽃과 열매를 사진으로 밝힐 적에는 사진으로 어떻게 옮겨야 알맞는가를 잘 보여주는구나 싶습니다. 사진과 함께 그림을 퍽 많이 싣는데, 이토록 꼼꼼하게 나무를 그리고 풀과 꽃을 그리는 그림은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Newton special issue 植物の世界》에 실린 나무그림 가운데에는 ‘나무가 몇 살인가’를 알려주는 그림이 있어요. 햇수에 따라 나뭇가지가 어디까지 자라는가를 밝히고, 나무가 자라는 흐름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밝혀요.


  요즈음은 한국에서도 ‘한국사람이 그리고 엮은 나무도감’을 하나둘 내놓습니다. 한국에서 펴내는 나무도감도 무척 꼼꼼하게 그림을 그린다 할 만하고, 여러모로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판 나무도감은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며 돌보는 손길이나 매무새’가 일본판 나무도감을 못 따르는구나 싶어요.


  사진으로 더 잘 찍어야 더 훌륭하거나 알맞춤한 사진은 아닙니다. 그림으로 더 꼼꼼히 그려야 더 빼어나거나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나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무를 사진으로 담을 노릇이요, 나무와 나를 한몸으로 느끼면서 서로 한마음이 되는 그림을 빚을 노릇이에요.


  그나저나 어느 분이 이 책들을 장만해서 읽다가 헌책방으로 내놓아 주었을까요. 예전에 이 책들을 장만해서 읽은 분은 어떤 넋을 살찌우거나 어떤 얼을 빛냈을까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구나 싶은 책을 들추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을 손길’은 어떤 빛이며 무늬였을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 손길은 얼마나 곱게 빛날 만한가 곱씹어 봅니다. 나 스스로 오늘 내 하루를 어여삐 빛내도록 마음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4345.10.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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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 병원 안 가기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2-10-3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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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사람 병원 안 가기

 


  나는 도시에서 살 적에도 병원을 가지 않았다. 왜 안 갔느냐. 병원을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으니까. 나는 내 삶을 꾸릴 뿐이지, 이렇거나 저런대서 병원에 갈 일이란 없다고 받아들였다. 도시를 벗어나 외진 두멧자락 시골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병원을 가지 않는다. 왜 안 가느냐. 병원이란 내 삶자락 가까이 없기도 하고, 생각할 까닭이 없기도 하며, 하루하루 새롭게 맞아들이는 삶이 기쁘니까.


  병원을 드나드는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왜 병원을 드나들까. 병원을 드나들며 ‘아픔’이나 ‘슬픔’이나 ‘생채기’나 ‘멍’이 아물까. 병원을 드나들며 ‘무언가 되겠지’ 하는 생각뿐 아닐까.


  너무 모르는 사람들은 잘못 생각한다. 시골에는 병원이 없으니 ‘아플 때에 어떡하느냐’ 하고 걱정하는데, 시골에는 아플 일이 없고 아픈 사람이 없으니 병원이 있을 까닭이 없다. 숲과 멧자락과 냇물과 들이 있으니, 사람 아플 일이 없다. 먼 옛날 사람을 죽이던 돌림병이란 무엇인가. 모두 도시에서 비롯한 죽음이다. 모두 도시에서 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삶자락을 거칠게 짓밟거나 끔찍하게 억누르면서 생겨난 죽음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정쟁을 벌이면서 ‘시골 숲사람 삶’을 마구 어지럽혔다. 무거운 세금과 피말리는 소작료를 잔뜩 얹으니, 숲사람이던 시골사람 누구나 시름시름 앓다가 쓰러질밖에 없었다. 병원이 없어서 쓰러진 사람은 없다. 모진 미움과 끔찍한 전쟁이 사람 스스로 사람 죽이는 꼴이었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간다든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예 시골에서 살아간다든지, 시골에서 삶자리 마련해서 뿌리내리려는 사람은 ‘병원에 갈 마음’이 없다. 몸이 아프면 내 몸이 의사요 내 손이 약손이다. 몸이 아프도록 일할 까닭이 없다. 몸이 즐거울 만큼 일한다. 마음이 흐뭇하도록 삶을 일군다. 몸이 가볍고 마음이 곱다면, 어느 누구라도 아플 일이 없다. 몸이 가볍지 않고 마음이 곱지 않으니, 자꾸자꾸 몸이 처지거나 힘들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병원을 곁에 둘밖에 없다. 스스로 톱니바퀴 구실을 하느라 몸이 메마르고 지친다. 스스로 쳇바퀴 구르는 삶에 얽매이면서 마음이 허물어지거나 다친다. 도시사람 아픈 몸은 시골에서 여러 날 조용히 지내면 나을 수 있지만, 좀처럼 톱니바퀴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도시사람 아픈 마음은 시골에서 푹 쉬며 숲바람을 쐬고 들햇살을 쬐면 달랠 수 있는데, 참말 쳇바퀴 수렁에서 헤어나지 않는다.


  아픈 사람들아, 부디 병원 말고 시골로 오렴. 시골로 와서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맑은 바람과 밝은 햇살을 마시렴. 싱그러운 물과 고운 밥을 맞아들이렴. 약 아닌 사랑을 먹고, 처방전 아닌 믿음을 가슴속에 새기렴. (4345.10.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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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눈길 | 책삶+글쓰기 2012-10-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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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 눈길

 


  나는 내가 입을 옷을 입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하건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쳐다본대서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먹을 밥을 먹지, 다른 사람이 바라본대서 내가 못 먹는 밥을 먹을 수 없고, 내가 즐기는 밥을 안 먹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쳐다본대서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옆지기를 내동댕이치거나 걷어찰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이 쳐다보니까 논밭에서 김매기를 안 해도 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부엌에서 밥을 짓고 밥상을 행주로 닦으며 밥그릇과 수저를 놓습니다.


  누가 쳐다보건 말건 바람을 마십니다. 누가 들여다보건 말건 햇살을 쬡니다. 누가 마주보건 말건 가만히 들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누가 떠들건 말건 나는 나대로 가을녘 풀벌레 노랫소리 차참 이우는 결을 느낍니다. 겨울 앞둔 가을녘, 이제 풀벌레 노랫소리는 거의 잠들고 바람소리 가득한 사이사이 멧새 몇 마리 가늘게 밤노래를 불러 줍니다.


  다른 사람이 쳐다본대서 ‘내키지 않는 책’을 장만해서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많이 읽었대서 나도 ‘다른 사람이 많이 읽었다는 책’을 장만해서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했건 말건, 다른 사람이 깎아내렸건 말건, 나는 내가 읽을 책을 읽을 뿐입니다. 나는 내 길을 걷고, 내 삶을 사랑하며, 내 꿈을 돌보고, 내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나는 내 가슴속에서 환하게 영그는 빛줄기를 바라봅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곱게 피어나는 꽃송이를 마주합니다. 나는 내 넋과 얼이 즐거이 노래하는 춤사위를 기쁘게 지켜봅니다. (4345.10.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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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물맛 느끼는 책읽기 | 책삶+글쓰기 2012-10-3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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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 물맛 느끼는 책읽기

 


  나는 처음부터 막걸리 물맛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도시인 인천에서 살다가 시골인 충청북도 음성으로 깃들어 한 해를 살며 조금씩 물맛을 달리 느꼈고, 더 외진 시골인 전라남도 고흥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비로소 물맛을 느낍니다. 냇물과 수도물과 정수기물이 어떻게 다른가를 혀로도 알고 눈으로도 알며 마음과 몸으로도 압니다. 페트병에 담아서 파는 먹는샘물 맛 또한 냇물 맛하고 사뭇 다른 줄 몸으로 느낍니다. 제아무리 맑고 싱그러운 냇물이라 하더라도 페트병에 담은 채 여러 날 여러 달 지내고 나면 맑거나 싱그러운 기운이 송두리째 사라지는구나 하고 느껴요.


  사람이 마실 물은 ‘흐르는 물’입니다. 가둔 물을 플라스틱병에 가두어 놓고 마실 때에는 사람 몸뚱이 또한 ‘갇힌 몸’처럼 된다고 느낍니다. 정수기로 거른다거나 주전자로 끓인다거나 해서는 물맛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물 한 방울이 고운 목숨으로 나한테 스며들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맑게 숨쉬는 물을 마시면서 맑게 숨쉬는 넋으로 살아갈 나예요. 싱그러이 빛나는 물을 마시면서 싱그러이 빛나는 얼로 살아갈 나예요.


  시골 막걸리는 시골마을 냇물로 빚습니다. 도시 막걸리는 수도물이나 정수기물로 빚겠지요. 시골 막걸리는 시골마을 쌀로 빚습니다. 도시 막걸리는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데에서 사들인 쌀로 빚습니다. 오늘날 한국 시골에서 농약 안 쓰는 데는 아주 드물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는 훨씬 어마어마하게 농약을 칩니다. 농약을 쳐서 지은 쌀을 배로 실어 한국으로 올 적에는 또 어떤 농약이나 방부제를 뿌릴까요. 벌레 먹지 않도록 갖가지 농약과 방부제를 뿌리잖아요.


  이제 도시로 마실을 가서 도시사람 즐긴다는 막걸리 한 잔을 콸콸 부어 받을 적에는, ‘아, 이 막걸리 물빛과 물내음과 물맛 모두 사람 숨결을 살리기는 힘드네.’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꿉니다. 구정물이건 비눗물이건 내 몸을 살찌우는 고마우며 반가운 밥이로구나 하고 여기며 막걸리잔을 들이켭니다. 스스로 내 마음을 씻고 고운 물 한 방울 입에 털어넣습니다.


  도시에서 볼일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맨 먼저 시골집 냇물을 꿀꺽꿀꺽 들이켭니다. 크아, 좋구나. 나는 이 맛을 느끼고 이 내음을 맡으며 이 빛깔을 바라보면서 내 몸과 마음을 사랑해야지. 내가 사랑하며 살아갈 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지. 내가 아끼며 보살피고 북돋울 믿음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야지. 내가 즐기며 누리고 나눌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지. (4345.10.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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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는 아이들 | 책삶+글쓰기 2012-10-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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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서는 아이들

 


  우리 시골집에 놀러온 네 살 아이가 저보다 한 살 위인 우리 집 큰아이더러 꼬박꼬박 ‘언니’라 부르는 말을 들으며 깜짝 놀랍니다. 다섯 살 우리 집 큰아이는 ‘나이에 따라 달리 가리키는 부름말’을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나이가 한 살 더 많대서 언니’라느니 ‘나이가 한 살 더 적대서 동생’이라느니 하고 나눌 줄 모를 수 있어요. 큰아이더러 ‘너는 언니’라고 말해 주면, 큰아이는 으레 “나는 벼리야, 사름벼리.”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한테 ‘동생이야’ 하고 말해 줄 때에도 큰아이는 으레 “아니야 보라야, 산들보라.” 하고 말하곤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사람은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한테 형이나 오빠라 한다면, 어떻게 해서 형이나 오빠가 될까요. 나이가 더 있거나 계급이 더 있다는 틀거리란 무엇일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일찍부터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에 집어넣으면서 ‘아이들 스스로 나이에 따라 금긋기’를 하도록 몰아세울까요. 왜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줄을 서야 할까요. 모두들 삶을 사랑하고 아끼며 누릴 빛나는 숨결일 텐데요. (4345.10.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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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사랑·글꽃·삶빛 31] 어린이와 함께 생각을 북돋울 말 | 우리말 살려쓰기 2012-10-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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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함께 생각을 북돋울 말
[말사랑·글꽃·삶빛 31] 그림책은 어떻게 쓰는가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그림책을 읽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안 읽으며 아이들한테만 읽히는 그림책은 없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먼저 찬찬히 안 살피고 나서 아이들한테 쥐어 주는 그림책은 없습니다. 어느 그림책을 아이한테 내밀며 읽으라고 하더라도 어버이인 내가 먼저 그림책을 가만가만 읽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부터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아이들 눈높이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책입니다. 그림책은 지식인이나 지성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울타리를 세우지 않습니다. 한글을 깨친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읽고 쉽게 생각하며 쉽게 삶으로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를 담아서 그림책 하나 태어납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다가, 책에 적힌 글월을 죽죽 긋고는 아래나 위에 다른 말을 적어 넣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한글을 깨쳐 스스로 읽을 적에 썩 안 좋다 싶은 글월이라면 죽죽 긋고 새 말을 적어 넣습니다. 우리 집에 놀러온 다른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펼쳐 읽어 준다 할 적에 ‘책에 적힌 대로만 읽지 않기’를 바라며 죽죽 긋습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림과 글이 어울리기도 하며, 글이 퍽 많이 실리기도 합니다. 그림책이 어떤 모양새로 태어나더라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넣는 이들은 ‘말’을 나누려고 합니다. 생각을 말에 담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을 그리거나 쓰기 앞서, 이 그림책을 그리거나 쓰는 어른들은 여느 때에 스스로 생각하던 삶을 여느 때에 즐겁게 쓰던 말에 담아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그림책 《꽃섬》(웅진주니어,2012)을 읽다가 “도시는 빠르게 커지고 복잡해졌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같은 글월을 봅니다. 어른들이 흔히 쓰는 말투이니 어린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에도 이 같은 글월이 실릴 수 있겠지요. 그러면 ‘복잡(複雜)하다’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일이나 감정 따위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로 풀이합니다. 한국말 ‘얽히다’를 가리키는 한자말 ‘복잡하다’요, 다른 한국말로 나타내자면 ‘어수선하다’나 ‘어지럽다’입니다. ‘점점(漸漸)’이란 또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보면, “조금씩 더하거나 덜하여지는 모양”을 가리킨다 하는데, 국어사전 말풀이에 나오듯, 한국말은 ‘조금씩’입니다. 다른 한국말로 나타내자면 ‘차츰’이나 ‘자꾸’나 ‘꾸준히’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복잡하다’와 ‘점점’이라는 한자말도 쓰고, ‘어지럽다’와 ‘차츰’이라는 한국말도 씁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을 들을 때에 즐거울까 헤아려 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쓸 때에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그림책 《일 년은 열두 달》(시공주니어,2006)을 읽다가 “동장군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자작나무 가지에 움튼 새싹이 봄소식을 전해 줄 거야” 같은 글월을 봅니다. 아이들 앞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이라 말하는 어른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으레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 말합니다. ‘동장군(冬將軍)’도 이와 같은 흐름이에요. 아이들하고 나눌 그림책에 적어 넣을 낱말이라 한다면 ‘겨울장군’처럼 적을 수 있어요. “전(傳)해 줄거야” 같은 글월이라면 “알려주겠지”라든지 “들려줄 테지”처럼 손볼 수 있어요.


  한 가지를 더 살핍니다. ‘봄소식(-消息)’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한자말 ‘소식’ 뜻풀이를 찾아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사정을 알리는 말이나 글. ‘알림’으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소식’은 한국사람이 안 써야 알맞다 여기는 낱말입니다. 다만, 국어사전에서 ‘소식’ 같은 한자말을 찾아보는 어른은 거의 없어요.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한들 이러한 한자말을 씻거나 털려고 애쓰는 어른 또한 거의 없어요.


  곰곰이 생각할 일입니다. 한자말 ‘소식’을 씻거나 털려 한다면, 어떤 한국말을 쓸 때에 알맞으면서 즐거울까요.


  나는 아이들한테 ‘봄소식’ 같은 말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봄노래’라든지 ‘봄얘기’라든지 ‘봄바람’ 같은 말을 들려줍니다. 겨울장군이 차츰 물러나면 자작나무 가지에 움튼 새싹이 봄노래를 부르겠지요. 봄얘기를 속삭이겠지요.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봄꿈을 꾸겠지요.


  그림책 《엄마가 좋아》(한림출판사,1988)를 읽다가 “준비, 시작”이라는 글월을 보고 살며시 책을 덮습니다. 서너 살 어린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엄마가 좋아》인데, 일본사람이 쓴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일본말 “요이, 땅(ようい, どん)”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준비, 시작”으로 옮긴 셈이에요. 자, 생각해 봅니다. ‘준비(準備)’와 ‘시작(始作)’은 한국사람이 얼마나 쓸 만한 한자말일까요. 일본사람이 한자로 적은 낱말을 한국사람이 한글로 옮기면 그림책에든 소설책에든 쓸 만하다 여겨도 될는지요.


  우리 집 아이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을 때에 즐거운가 하고 헤아리기 앞서, 나 스스로 퍽 어린 나날 어떤 말을 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1970∼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나와 동무들은 “요이, 땅”을 비롯해서 “준비, 시작”과 “준비, 출발”과 “준비, 탕”까지 갖가지 말을 썼어요. 이런 말을 써야 한다거나 저런 말은 안 써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우리 둘레 어른 가운데 우리들이 즐겁게 쓸 만한 말투와 낱말을 알려주는 어른도 없었어요. 이때에 이런 여러 가지 ‘일본말’과 ‘일본 말투’와 ‘일본 말투를 껍데기만 한글로 옮겨 적은 말투’ 말고,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쓰던 말투도 몇 가지 썼습니다. 이를테면, “자, 가자”라든지 “하나, 둘, 셋”이라든지 “자, 하자” 같은 말을 아울러 썼어요.


  이제 그림책을 덮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생각을 북돋울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하나하나 짚어 봅니다. 더 깨끗하다 싶은 말이라든지, 더 아름답다 싶은 말이라든지, 따로 있을까 되새겨 봅니다. 말은 정갈하게 하더라도 삶이 정갈하지 못하거나 넋이 정갈하지 못하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삶과 넋을 어떤 말에 담아서 나타내는 셈일까 곱씹어 봅니다.


  그림책을 쓰는 어른들은 아주 마땅히 어린이 눈높이를 살펴야 알맞습니다.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한 낱말을 고르고 어린이한테 걸맞을 말투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알아듣기만 한다면 어떤 낱말과 말투라도 다 쓸 만하지는 않겠지요. 아이들이 알아들을 만한 낱말과 말투이면서, 어른 스스로 삶을 아끼고 생각을 살찌우는 낱말과 말투가 되어야겠지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사람이 러시아말을 흉내낼 까닭이 없어요. 네덜란드사람이 벨기에말을 따라할 까닭이 없어요. 베트남사람은 베트남말을 하면 돼요. 라오스사람은 라오스말을 해야지요. 중국사람은 중국말을 하고, 일본사람은 일본말을 하면 됩니다. 곧,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할 때에 가장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그림책을 쓰는 어른들은 ‘무늬만 한글인 한국말’이 아니라 ‘알맹이가 알차고 어여쁘며 튼튼한 한국말’을 스스로 슬기롭게 찾으면서 갈고닦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5.10.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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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만화책 | 책삶+글쓰기 2012-10-2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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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만화책

 


  어떤 만화책 1권과 2권을 읽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도무지 짚을 수 없다.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이 만화를 그리며 그이는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 미국에서 무슨무슨 상을 받기까지 했다는데, 무슨무슨 상은 어떤 만화에 주는지 알쏭달쏭하고, 상을 받았건 말건 이러한 만화책을 굳이 한국말로 옮겨 한국사람한테 읽히려 한 까닭은 무엇인지 또 아리송하다.


  그러나, 나 혼자 재미없다고 느끼거나 뜬금없다고 느낄는지 모르리라. 무슨무슨 상을 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느꼈을 테며, 한국말로 옮긴 출판사와 편집자와 번역자는 재미있게 읽었을 테지.


  저녁에 아이들과 〈아기공룡 둘리〉와 〈우주소년 아톰〉과 〈달려라 하니〉 만화영화를 하나씩 보면서 새삼스레 다시 생각한다. 꼭 어떤 틀이나 줄거리나 이야기가 있어야 재미난 만화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만화이든 시이든 그림이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살아가는 꿈이 있을 때에 읽을 만하리라 느낀다. 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랑이 있을 때에 즐겁게 맞아들일 만하리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밑까닭이 있다 하면, 바로 이 두 가지 대목이 아닐까. 꿈과 사랑. 나 스스로 꿈꾸지 않을 때에는 어떠한 글도 쓰지 못하고 어떠한 사진도 찍지 못한다. 나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지 않을 적에는 아무 글도 못 쓰고 아무 사진도 못 찍는다. 난 언제나 사랑스레 살아가며 글을 쓰는 사람이요, 늘 꿈꾸듯 살아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내 글과 사진에 사랑과 꿈을 담지 않는다면 굳이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꿈꾸면서, 내 반갑고 즐거운 동무와 이웃하고 예쁘게 나눌 글과 사진을 한결같이 씩씩하게 돌보고 싶다.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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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대통령 바라기 | 책삶+글쓰기 2012-10-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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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 대통령 바라기

 


  진보정당이 스스로 진보답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면서 대통령 후보만 잔뜩 내놓는 꼴이라는 소리를 어디에선가 듣는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통령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며 시장이나 군수도 하는 보수정당 사람들은 이제껏 한 번이라도 ‘보수정당다운 삶과 꿈과 사랑’을 펼치거나 나눈 적 있는가 곱씹어 본다. 아직 한 번조차 참다운 보수정당 정책이나 삶을 펼친 적이란 없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는대서 이런저런 정책을 지키거나 가꾸는 정치집단은 없지 싶다. 권력 앞에서 권력을 거머쥐려 할 뿐, 삶을 짓거나 가꾸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진보정당한테 바라는 꿈은 오직 하나, “즐겁게 살아가자”이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바랄 수 없다.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곳에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도시에서 공장 일꾼이나 회사 일꾼하고 어깨동무하는 ‘이웃’으로 지내도 아름답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으로 지내도 아름답다. 오늘날에는 몽땅 도시에서 살고 시골은 죽이는 꼬락서니요, 도시가 우락부락 커졌어도 시골을 짓누르며 시골을 쪽쪽 빨아먹는 꼴인데, 이런 바보스러운 얼거리를 바꾸거나 고치자면 오직 한 가지, 스스로 시골사람이 되는 길만 있다. 도시살이에 기대지 않고 흙을 누리면서 햇살과 바람과 풀을 사랑하면 모든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참 마땅한 노릇이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간다든지 단식농성을 한다든지 집회를 한다든지 해서는 어떠한 실타래도 풀지 못한다. 길은 하나이다. 공장을 떠나고 회사를 떠나면 된다. 내보내겠다 하면 기꺼이 나가 주면 된다. 다만, 모두 함께 나가야 한다. 모두 함께 나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고 시골로 가서 스스로 땅을 일구며 사랑해야 한다. 땅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으며 스스로 삶을 누리면, 재벌회사 삼성이건 엘지이건 에스케이이건 버티지 못한다.


  시골에서 오붓하고 즐겁게 흙을 일구며 손전화 안 쓰고 텔레비전 안 보며 자가용 안 몰아 보라. 시골에서 호젓하고 예쁘게 들을 누리고 풀과 나무를 사랑하며 숲을 돌보아 보라. 공장과 회사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청와대는 어떻게 될까. 준법투쟁을 할 일도 없다. 모두들 어깨띠도 머리띠도 내려놓으면서 시골로 가면 된다. 편의점 알바이건 할인매장 점원이건 모두 똑같다. 다 함께 그 고단한 일거리를 내려놓으면서 시골로 오라. 시골에는 삶자리와 일자리와 사랑자리와 꿈자리가 그득그득 있다. 열 평만 있어도 식구들 먹을거리는 넉넉히 나온다. 도시에서 전세와 월세로 골머리를 앓지 말고 시골로 와서 서로 ‘이웃’이 되어 ‘사람’다이 살아가면, 오늘날 모든 도시 말썽거리와 지구별 골칫거리는 사라진다.


  싸움은 싸움을 부른다. 평화는 평화를 부른다. 사랑은 사랑을 부른다. 미움은 미움을 부른다. 미움을 부르는 싸움을 하면서 어떠한 실타래도 풀지 못한다. 평화를 부르는 사랑을 할 적에 모든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아쉬움도 걱정도 내려놓고 시골로 오라. 전철도 버스도 멈추고 시골로 오라. 은행도 공장도 세우고 시골로 오라. 자, 이렇게 하면 어찌 될까. 사람들이 도시 쳇바퀴와 톱니바퀴 짓을 그만두고 시골로 오면 어찌 될까. 십만이나 백만이 모이는 집회를 한들 정치권력은 달라지지 않고 경제권력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십만이나 백만이 한꺼번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오면 어찌 될까. 하루아침에 도시가 달라진다. 하루아침에 재벌회사가 두 손 번쩍 들리라.


  쉽게 얘기해 본다면, 한가위와 설날을 떠올리면 되낟. 한가위와 설날 때처럼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 보라.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옴쭉달싹 못한다. 한가위와 설날에 도시사람이 몽땅 시골로 가더라도 시골은 붐비지 않을 뿐더러, 모든 도시사람을 먹여살리기까지 하고, 일거리도 많고 즐겁다. 자, 텅 빈 도시에서 삼성회사 우두머리가 무얼 하겠는가. 텅 빈 도시에서 대통령 혼자 무얼 하겠는가. 도시를 텅 비우면 그동안 바보짓을 하며 사람들을 억누르고 비정규직이니 알바생이니 무어니 하며 들볶던 그네들 권력자는 아무런 권력을 부리지 못한다. 위에서 시키기만 하던 바보스러운 우두머리 스스로 모든 톱니바퀴를 돌리거나 쳇바퀴질을 해야 한다. 긴 나날이 들지 않는다. 사흘쯤 도시를 텅 비운 채 시골에서 호젓하게 얼크러지면서 두레놀이를 하며 삶을 빛내자. 그러면 저들 권력자는 그네들 스스로 톱니바퀴와 쳇바퀴를 내동댕이칠밖에 없다. 사람들이 톱니바퀴로 다시 돌아갈 까닭이 없고, 사람들이 거듭 쳇바퀴질을 할 까닭이 없다. 돈버는 일을 한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할 일이 없다. 대통령이나 회사 우두머리나 정치꾼이 부질없고 덧없이 톱니바퀴질과 쳇바퀴질로 사람들을 억눌러도 사람들 스스로 ‘돈푼’에 얽매일 뿐 아니라 스스로 권력자 자리로 올라서고 싶다는 서글픈 밥그릇다툼을 벌이니, 자꾸자꾸 엉터리 정치·경제·교육·사회 틀거리가 단단해지기만 한다.


  이리하여, 나는 대통령뽑기에는 눈길을 안 둔다. 대통령을 누구로 뽑는들 달라질 일은 없으니까.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스레 바꿀 때에 온누리가 달라지고 이 나라가 달라지지, 대통령 한 사람 잘 뽑는대서 온누리가 안 바뀌고 이 나라가 안 바뀐다. 다만, 대통령을 굳이 뽑아야 한다면, 나로서는 ‘아줌마 대통령’을 뽑고 싶다. 아이를 낳아 사랑스레 돌보고 사랑스레 살아가며 사랑스레 살림을 꾸리는 아줌마가 대통령이 되어, 집살림처럼 나라살림 알뜰살뜰 여민다면 재미나리라 본다.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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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지는 시골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2-10-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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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 지는 시골

 


  보름달빛 하얗게 온 고을과 들판을 적신다. 달빛이 아주 환해 길과 집과 들이 훤하게 보인다. 밤하늘이 그리 깜깜하지 않다. 달빛을 받으며 훤히 열린다. 그러나, 이 달빛은 깊은 시골에서만 달빛이 될 뿐, 면내나 읍내로 나가더라도 전깃불빛한테 가로막힌다. 도시사람은 달빛이 있는 줄 느낄까. 도시사람은 별빛이 나란히 온 지구별을 감싸는 줄 생각할까. 달을 느끼지 않고 별을 바라보지 않으며 해가 뜨더라도 고작 하루가 되풀이되는 줄 여기기만 한다면, 삶을 누리는 보람은 어디에 있을까.


  보름달 지면서 하늘은 한결 까맣게 빛난다. 밤하늘이 까맣게 빛나면서 온갖 별이 반짝인다. 비로소 미리내를 볼 수 있고 아주 자그맣게 보이는 별을 만날 수 있다. 저 멀디먼 별 가운데에는 지구에서 보내는 빛을 받는 곳도 있겠지. 저 멀디먼 별나라에서는 지구빛을 어떤 빛으로 맞아들이거나 느낄까. 지구별 스스로 빚는 빛으로 느낄까, 지구별을 갉아먹는 전깃불빛 매캐한 공해덩어리 빛으로 느낄까.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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