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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 의 전체보기
후줄근 | 책삶+글쓰기 2012-08-3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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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줄근

 


  자전거를 손질하려고 읍내까지 타고 나간다. 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나간다. 한낮이 되면 무덥기도 할 테고, 자전거집 일꾼이 밥 먹느라 자리를 비울 수 있으니 바지런히 밥을 지어 아이들 먹이고 신나게 자전거를 달린다.


  팔월 삼십일일 막바지 시골길은 그리 덥지 않다. 비봉산 기슭을 타고 오르는 첫 고갯길은 수월하게 넘는다. 아이 둘을 태우고 이 고갯길을 이렇게 수월하게 넘기도 하네, 하고 생각했지만, 포두면을 지나고 읍내와 가까운 호형마을 고갯길에서는 그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도 그럴 까닭이 포두면을 지나 호형마을 고갯길에 이르기까지 3.5킬로미터가 오르막인 고갯길이다. 높이가 수백 수천 미터가 아니라 하더라도 고갯길을 넘기란 만만하지 않을 만하다. 그래도 오늘은 무척 잘 달렸다. 뭐랄까. 내가 달릴 만큼만 느긋하게 달리자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읍내 자전거집에서 자전거를 손질한다. 뒷바퀴 튜브는 새것으로 갈아서 끼운다. 여러모로 손질을 하고 기름을 바르니 자전거가 잘 구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리힘이 풀린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 참말 다리힘이 풀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아무 생각을 않고 자전거 발판을 구르기로 한다. 훅훅 숨을 고른다. 많은 사람들은 차분하게 앉아 숨고르기를 하는데, 나는 자전거 발판을 구르면서 숨을 고른다.


  달린다, 달린다, 하늘을 본다, 숲을 본다, 땅을 본다, 논과 밭을 본다, 뒷거울로 아이들을 본다, 또 달린다, 달린다.


  이리하여 집에까지 닿는다. 집에 닿아 대문을 열려고 하는데 힘이 없다. 소리를 내어 옆지기를 부를까 싶다가도 고단해서 낮잠을 잘는지 모르니 겨우 무릎을 버티어 문을 연다. 후박나무 그늘에 자전거를 댄다. 옆지기는 안 잔다. 아이들 내려서 씻기는 몫을 옆지기한테 맡긴다. 온몸에서 후끈후끈 뜨거운 김이 난다. 후줄근한 몸을 눕히고 쉬어야겠다. (4345.8.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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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깨문 복숭아 (열애) | 동시집+시집 2012-08-3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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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열애

신달자 저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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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깨문 복숭아
[시를 노래하는 시 29] 신달자, 《열애》

 


- 책이름 : 열애
- 글 : 신달자
- 펴낸곳 : 민음사 (2007.10.12.)
- 책값 : 7000원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복숭아를 깨물어 먹습니다. 맛나게 깨물어 먹습니다. 두 아이는 능금도 깨물어 먹습니다. 어금니까지 곱게 난 큰아이는 복숭아도 능금도 혼자서 척척 잘 깨물어 먹습니다. 어금니가 아직 돋지 않은 작은아이는 앞니로 깨물 수는 있으나 제대로 씹지 못합니다. 어버이가 오물오물 씹어서 숟가락에 받은 다음 건네야 먹을 수 있습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밥을 먹습니다.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을 쥡니다. 큰아이는 제 밥그릇에 담긴 밥을 푸고, 제 국그릇에 담긴 국을 뜹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입으로 씹은 밥을 먹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숟가락에 국을 뜨거나 국그릇을 들고 입에 대 주어야 국을 마실 수 있습니다. 돌을 지나면서 물잔을 혼자 들고 마실 수는 있는데, 스스로 알맞게 맞추지는 못해 물을 왈칵 쏟곤 합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 하는 양을 바라보며 저도 혼자 숟가락을 들고는 밥을 푸고 싶습니다. 작은아이는 스스로 국을 뜨고 싶습니다. 숟가락을 들어 이리저리 휘젓습니다. 밥상은 이내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지르면서 숟가락질을 익히고 젓가락질을 익히는걸요. 두 아이 나란히 온 방에 온갖 것을 늘어놓으면서 놀고, 이렇게 놀면서 크는걸요.


.. 나 알몸으로 누워 산을 받아들이면 / 산 하나 품어 나오리 ..  (저 산의 녹음)


  아이들이 복숭아를 잘 먹고, 옆지기와 나도 복숭아를 잘 먹으니, 우리 집 어느 한켠에 복숭아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복숭아를 먹으며 씨앗이 나올 적에 심어야지 생각하는데, 으레 잊고는 그냥 버립니다. 나물비빔을 좋아하면 텃밭에 온갖 푸성귀가 자라도록 해서 즐겁게 뜯어서 먹으면 됩니다. 옥수수를 좋아하면 밭 가장자리에 옥수수를 줄줄이 심으면 됩니다. 고구마를 좋아하면 조금 너른 땅뙈기를 마련해서 고구마줄기를 하나씩 묻으면 돼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심습니다. 목련도 심고 장미도 심으며 동백도 심습니다. 양파를 잘 먹으면 양파를 심습니다. 마늘을 좋아하면 마늘을 심어요. 양파나 마늘이 돈이 될 만하니 심는다 하면 쓸쓸합니다. 돈을 벌어 어떤 즐겁고 좋은 일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할 때에는, 돈만 벌어서는 부질없으리라 느껴요. 즐겁게 돈을 벌고 즐겁게 돈을 쓰며 삶을 즐겁게 누릴 때에 아름다운 하루가 된다고 느껴요.


  두 아이 노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지켜봅니다. 두 아이는 끝없이 놉니다. 쉬지 않고 놉니다. 등판이 땀으로 젖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흐릅니다. 콧잔등에 땀이 맺힙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놀이에 빠지니 좋고, 놀이에 흠뻑 빠져 즐거우며, 놀이에 온통 사로잡히니 재미나는구나 싶어요.


.. 아무 미련 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는 모습 편안하다 ..  (코스모스 영가靈歌)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싫어할 만한 일을 굳이 하지 않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좋아할 만한 일을 합니다. 달갑지 않은 일을 즐거이 하려는 아이는 없습니다. 못마땅하거나 안 내키니는 일을 애써 하려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가장 즐거우며 재미나고 신나는 일을 합니다. 아이라면 마땅히 스스로 가장 좋아하며 사랑하고 멋진 일을 해요.


  그런데, 어른도 아이와 마찬가지예요. 스스로 가장 즐겁다 여길 일을 할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가장 재미나다 여길 일을 해야 재미나요. 스스로 가장 좋아한다고 여기는 일을 해야 좋겠지요.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마음이 될 일을 할 때에 사랑을 나눌 수 있어요.


  좋아하지 않는데 돈을 벌 수 있어 한다면 얼마나 고될까요. 사랑하지 않으나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찾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북돋우는 일을 누립니다.


.. 그 똘똘하고 뿌듯한 하늘이 다섯 살이 되는 새해에도 나는 그저 /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세뱃돈 줄게 고추 좀 보자 / 강아지가 물고 갔음 어째 좀 보자 한 번만 보자 보채는 나에게 / 이놈 눈 딱 부라리고 날 쳐다보며 하는 말 / 할머니는 변태야! ..  (변태)


  아직 쉬를 옳게 가리지 못하는 작은아이는 곧잘 이불에 쉬를 눕니다. 이불은 쉬로 젖으니 틈틈이 햇볕에 말리고, 퍽 자주 빨래합니다. 이불 빨래를 손으로 하기도 하지만, 빨래기계를 장만한 뒤로는 빨래기계한테 맡깁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제금난 지 열일곱 해인데, 빨래기계는 제금난 지 열일곱 해째에 비로소 장만했습니다. 올봄까지 이불도 기저귀도 모두 손수 빨래했어요.


  이불을 꾹꾹 발로 밟으며 빨 적에, 기저귀와 숱한 옷가지를 손으로 복복 비비며 빨 때에, 가만히 생각에 젖습니다. 이 옷을 입고 이 이불을 뒤집어쓰는 살붙이는 하루를 즐겁게 누렸을까. 정갈히 빨아서 예쁘게 갠 옷을 입을 살붙이는 새 하루를 새로운 넋으로 맞이할까.


  새로운 날은 참말 새롭습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오늘과 같은 하루도 없습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즐겁게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궂은 일이 잦았건 기쁜 일이 넘쳤건, 하루는 하루대로 반갑다고 여깁니다.


.. 아파트 일 층인 내 방 창에는 / 녹음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 사월부터 연둣빛 땡땡이 무늬가 어른거리더니 / 서너 달 지나며 창은 짙푸린 비단으로 출렁거렸다 ..  (바라본다는 것)


  이제 유월과 칠월에 이은 여름철 팔월이 저뭅니다. 꼭 달력 날짜 때문은 아니나, 팔월 막바지, 이른바 늦여름에 이르면 밤날씨가 살짝 서늘합니다. 팔월 삼십일 밤, 곧 팔월 삼십일일로 넘어서는 밤에는 집안 온도가 26도로 내려옵니다. 오월이 끝나고 유월로 접어들 적부터 본 적 없는 온도입니다. 구월 어귀에 비로소 후끈후끈 무더운 밤이 사라집니다. 바야흐로 가을일까요.


  들판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벼는 누렇게 익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휘젓고 지나갔어도 씩씩하게 서며 누렇게 익습니다.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몰 때면 으레 곳곳에서 메뚜기를 봅니다. 아, 메뚜기로구나.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곳 시골마을은 지난해까지 풀약을 꽤 많이 쳤다는데, 올해부터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며 이제껏 치던 풀약을 꽤 많이 줄였다고 해요. 그러나 풀약을 아예 안 치지는 않습니다. 치기는 치되 좀 적게 칠 뿐입니다.


  풀약을 아예 안 친다면 메뚜기를 더 많이 만나겠지요. 풀약이 없는 논이랑 밭이라면 사마귀와 여치와 풀무치와 방아깨비 모두 마음껏 노닐겠지요.


  개구리가 살아가니 뱀도 살아갑니다. 뱀이 살아가니 소쩍새도 살아갑니다. 들쥐가 살고 까마귀가 삽니다. 숱한 멧새와 들새가 살아갑니다. 멧비둘기와 참새는 아직 덜 여문 나락 알을 먹고 싶어 자꾸 들판으로 내려앉습니다. 모두들 제 밥을 찾습니다. 저마다 제 삶을 누립니다.


.. 강의실은 구 층에 있었다 / 지하 삼 층 차고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 한순간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일이 / 나에겐 예삿일이다 / 높은 곳을 죽 올라가는 그 재미로 / 계단을 잊은 지 오래다 ..  (버들잎 강의)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하던 나이였을 적을 곧잘 되새기곤 합니다. 내 어릴 적 내 어버이는 방학 때면 나와 형을 데리고 시골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내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였기에 아버지는 여름과 겨울에 긴 방학을 맞습니다. 방학철이면 으레 시골집에서 열흘이든 스무 날이든 묵습니다. 시골집에서는 시골 할머니가 차리는 밥을 먹습니다. 시골집에서는 시골 이웃을 만나 시골살이를 누립니다.


  이때 나는 메추리가 알을 낳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고, 메추리알이 왜 메추리알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시골집 사촌형을 따라 메추리집을 털 적에 어미 메추리가 빽빽 울면서 우리 머리에 똥을 지르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도시에서 먹는 메추리알은 플라스틱 꾸러미에 촘촘히 놓이는 알인데, 이 메추리알이란 메추리가 낳는 제 새끼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했어요. 다른 목숨을 내가 먹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닭우리에서 닭이 낳은 알을 꺼낼 적에도 달걀이란 목숨이지 그냥 먹을거리가 아니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갓 낳은 말랑말랑하며 따스한 목숨을 먹으면서 내가 오늘 하루 또 신나게 뛰놀 기운을 얻는다고 느꼈어요.


  바람소리를 떠올립니다. 시골마을은 온통 바람소리입니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떠올립니다. 시골마을은 온통 풀벌레 노랫소리입니다. 그래, 이때 메뚜기가 보이면 곧장 잡아서 병에 모으거나 밟아서 죽이라 했어요. 메뚜기가 벼를 다 갉아먹는다 했으니까요. 애꿎은 메뚜기는 도시 아이 하나 잘못 만나 애꿎게 숨을 잃습니다. 방아깨비와 사마귀를 나란히 한손에 잡아 애꿎게 싸움을 붙입니다. 방아깨비가 파르르 떨고 사마귀가 먹이를 잡으려고 안달하는 기운이 손가락을 거쳐 마음속 깊은 데까지 쩌렁쩌렁 울립니다. 내가 무얼 보자고 이런 짓을 하나.


  방아깨비를 잡아 손가락 사이에 끼면, 그야말로 방아를 찧습니다. 한참 방아를 찧다가 똥을 지립니다. 똥을 지리면 그제서야 놓아 주는데, 똥까지 지린 방아깨비는 기운을 잃어 풀숲에서 거의 꼼짝하지 못합니다. 방아 찧는 모습을 구경한다며 넋을 잃은 어린 나는, 방아깨비가 똥을 지려 놓아 준 다음,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풀숲에서 천천히 숨을 잃는 모습을 보며 또 생각합니다. 내가 무얼 알자고 이런 짓을 하나.


.. 나는 문득 /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얀 밥을 짓고 싶어 ..  (우리들의 집)


  길을 가다가 뒤집어진 벌레를 보면 그냥 지나치려 하다가도 우뚝 멈춥니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벌레가 이 손가락을 붙잡고 일어서도록 합니다. 물에 빠진 무당벌레를 건져 풀숲으로 옮깁니다. 거미줄에 갓 걸린 나비나 잠자리를 보면 거미줄을 스윽 끊습니다. 거미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거미줄을 새로 치겠지요. 그래도 거미야 미안하구나. 너한테 걸맞는 다른 먹이를 기다리렴.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엊그제 우리 집 시멘트블록담 한쪽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시멘트블록이 고샅길에 흩어졌기에 한쪽으로 치우는데, 시멘트블록 안쪽 구멍에 개미집이 있더군요. 수만에 이르는 개미는 집을 잃었다며 아우성입니다. 네 녀석들이 이 속에서 또아리를 트느라 시멘트담이 허술해졌을까.


  빨래대를 받치려고 마당에 놓은 큰돌을 옮길 적에도 개미집을 봅니다. 그저 큰돌 밑일 뿐인데, 이곳을 저희 집으로 삼는 개미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흙땅 돌밑에 집을 지어야지, 시멘트바닥 돌밑에 어설피 집을 꾸리면 어떡하니.


..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쓸어내리는 것을 / 자위행위라고 말합니다만 / 나의 손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 내 손이 내 몸의 성감대를 찾아가는 것을 / 내 손이 내 몸의 흐느끼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 야릇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  (손)


  옆을 돌아보면 모두 내 이웃입니다. 둘레를 살펴보면 모두 내 동무입니다. 이웃집도 이웃집이요, 풀과 나무와 꽃도 이웃입니다. 무화과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모두 이웃입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모과나무 모두 동무입니다.


  맑게 갠 파란 빛깔 하늘을 흐르는 티없이 하얀 구름도 내 이웃입니다.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도 내 동무입니다. 우렁차게 우는 매미와 숱한 풀벌레도 내 이웃입니다. 조잘조잘 지저귀는 들새와 멧새 모두 내 이웃입니다.


  저마다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저마다 좋은 밥을 생각합니다. 저마다 좋은 하루를 빚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 날을 마주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새 이야기를 꾸립니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오늘은 어떤 밥을 차릴까. 오늘은 아이들이랑 무얼 하면서 놀까. 복숭아는 다 먹었는데 어떤 열매를 장만해 볼까. 산들산들 부는 아침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 나는 너에게 지금도 내가 아는 귀여운 / 여자의 이름을 달아 주고 싶은데 / 사랑을 축하하며 / 예쁜 꽃다발을 가슴에 안겨 주고 싶은데 / 세상의 정보를 가장 먼저 주우려고 / 컵라면을 손에 든 채 / 너는 밤새 컴퓨터 화면만 뜨겁게 마주하고 있다 ..  (딸의 하이힐을 수선하며)


  신달자 님 시집 《열애》(민음사,2007)를 읽습니다. 한자말로 된 책이름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열애’가 뭘까?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국어사전에는 두 가지 한자말이 나옵니다. 먼저, ‘悅愛’가 있고, 말뜻은 “기쁜 마음으로 사랑함”입니다. 다음으로, ‘熱愛’가 있으며, 말뜻은 “열렬히 사랑함”입니다. ‘열렬(熱烈)’은 또 뭔가 싶어 국어사전을 새삼스레 뒤적이니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이나 태도가 매우 맹렬하다”라 합니다. 그러면 ‘맹렬(猛烈)’은 또 뭐람? 다시 국어사전을 뒤적여 “기세가 몹시 사납고 세차다”라는 말뜻을 얻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열애’란 “기쁜 사랑”이나 “뜨거운 사랑” 둘 가운데 하나가 되겠군요.


  아무튼, 나는 둘 다 좋습니다. 사랑은 기뻐서 좋습니다. 사랑은 뜨거워서 좋습니다. 나는 둘 모두 좋습니다. 기쁘게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뜨겁게 불을 피워 둘레를 따사로이 살찌울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나는 내가 받는 사랑으로 따스한 나날입니다. 나는 내가 주는 사랑으로 따스한 나날입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따스하고, 사랑을 주면서 따스합니다. 따스한 사랑을 느끼기에 싯말이 태어납니다. 따스한 사랑을 나누기에 시노래를 짓습니다.


  사랑이 있어 시를 씁니다. 사랑을 느껴 책을 읽습니다. 사랑을 꿈꾸어 삶을 짓습니다. 사랑을 노래해 밥을 나눕니다. 사랑을 어깨동무하며 지구별이 따사롭습니다. (4345.8.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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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아이들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2-08-3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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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아이들

 


  아이들이 옥수수를 먹는다. 두 아이가 나란히 씻고 나서 새 옷을 입지는 않고, 알몸으로 옥수수를 먹는다. 마지막 무더위를 누릴 늦여름, 읍내 마실을 하며 장만한 옥수수가 있고, 전남 고흥하고는 아득하게 먼 강원도 양양에서 보내 온 옥수수가 있다. 아이들은 옥수수를 잘 먹는다. 한 소쿠리 있어도 둘이서 다 먹을 낌새이다. 한 아이가 입에 물면 다른 아이가 입에 물고, 한 아이가 입에서 내리면 다른 아이가 입에서 내린다. 서로서로 마주보면서 옥수수를 먹는다. 서로 나란히 앉아 옥수수를 먹는다. 요것들이 섬돌 시멘트 바닥에도 알몸으로 퍼질러 앉아 옥수수를 먹는다. (4345.8.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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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탈 이음자전거 (자전거쪽지 2012.8.15.) | 시골자전거 삶노래 2012-08-3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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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8.15.
 : 앞으로 큰아이 탈 이음자전거

 


- 이음자전거를 얻다. 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이제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 모두 태우기에는 좁구나 싶어, 큰아이는 따로 이음자전거를 마련해서 태우면 좋으리라 생각해, 여러모로 알아보려는데, 고마운 이웃이 이음자전거를 우리한테 물려주시기로 했다. 골판종이 상자로 곱게 싸서 화물로 우리 집에 온다. 상자를 하나하나 뗀다. 큰아이는 이음자전거 손잡이에 달린 ‘무당벌레 딸랑이’를 만지고 싶다. “무당벌레가 있네. 날개가 하나 없네.” 하고 말하며 딸랑딸랑 한다. 작은아이는 곁에서 누나가 무얼 하는가를 멀뚱멀뚱 바라본다. 작은아이도 큰아이처럼 딸랑놀이를 하고프지 않을까.

 

- 이음자전거를 자전거와 수레 사이에 붙여 본다. 큰아이가 타기에는 아직 높다. 옆지기더러 한 번 앉으라 하는데, 어른이 타기에는 낮다. 옆지기가 이음자전거에 탈 수 있으면 네 식구 나란히 마실을 다닐 텐데 싶지만, 옆지기는 옆지기 자전거를 타면 되지. 앞으로 큰아이가 이음자전거에 타고 작은아이 혼자 수레에 앉으면, 면이나 읍으로 마실을 다닐 때에 짐을 싣기 한결 수월하리라 생각한다. 이윽고 큰아이는 제 자전거를 따로 받아 홀로 씩씩하게 달릴 수 있겠지. 언제쯤 이렇게 될는지 모르지만, 머잖아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튼튼한 어른이 되리라 생각한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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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넣고 싶은 큰아이 (자전거쪽지 2012.8.14.) | 시골자전거 삶노래 2012-08-31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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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8.14.
 : 바람 넣고 싶은 큰아이

 


- 우체국에 가려는데 자전거 앞바퀴에 바람이 빠졌다. 왜 빠졌을까? 아무튼 바람을 넣어야 자전거가 굴러가니까 바람넣개를 꺼낸다. 꼭지를 바퀴하고 잇는다. 이때 큰아이가 바람을 넣어 보겠다고 말한다. 그래? 그럼 넣어 보겠니? 처음에는 몇 차례 낑낑대며 바람을 넣지만, 이내 힘이 모자라 더는 바람넣개를 밀지 못한다. 곁에서 작은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누나 하는 양을 지켜본다. 아이가 바람넣개로 씨름하는 동안 나는 이것저것 챙긴다. 가까운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작은아이 바지하고 기저귀를 챙기고, 아이들 마실 물을 챙긴다. 큰아이가 더는 못하겠다고 할 무렵 바람넣개를 물려받는다. 쉭쉭 바람을 채운다. “나는 아직 못해. 아버지는 할 수 있어.” 그러나 너도 머잖아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수 있단다.

 

- 우체국으로 간다. 두 아이는 우체국 계단 언저리를 타며 논다. 새로운 놀거리를 만났구나. 나는 편지와 소포를 부친다. 아이들은 계단 언저리에서 마냥 즐겁게 논다. 놀 때까지 마음껏 놀아라.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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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밤 누리는 마음 | 책삶+글쓰기 2012-08-3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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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밤 누리는 마음

 


  밤이 하얗습니다. 티끌 하나 없이 하얀 밤입니다. 두 차례 거센 비바람이 지나간 시골마을 밤하늘은 몹시 하얗습니다. 이제 보름이 두 차례 지나면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를 코앞에 둔 보름달은 매우 밝습니다. 저녁에 불을 모두 끄고 잠자리에 들려 해도 방으로 환한 달빛이 스며듭니다.


  아직 잠잘 생각이 없는 큰아이를 업습니다. 몸앓이를 하느라 지친 몸이지만, 큰아이를 업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마을을 한 바퀴 휘 돕니다. 구름 거의 없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군데군데 남은 구름은 달빛을 받으며 눈부신 보배처럼 빛납니다. 나즈막한 멧봉우리 위로도 커다란 별이 보이고 하늘 꼭대기로도 커다란 별이 보입니다. 동그란 달은 들판을 골고루 비춥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만 할 뿐 드러눕지 않은 벼가 달빛을 찬찬히 받습니다. 큰아이와 함께 들판 한켠에서 밤벌레 노랫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은 낮에 햇볕을 받으면서도 자라지만, 밤에 달볕을 받으면서도 자라겠구나 싶어요. 낮에는 휘잉휘잉 바람소리를 들으면서도 크고, 밤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면서도 크겠지요.


  다 다른 벌레들 다 다른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같은 귀뚜라미라 하더라도 다른 노랫소리입니다. 같은 방울벌레인들 다른 노랫소리입니다. 하얗고 고요한 밤을 가슴에 담뿍 안고는 집으로 들어옵니다. 큰아이 쉬를 누이고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 큰아이는 이내 새근새근 잠듭니다. (4345.8.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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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살피는 손길 | 책삶+글쓰기 2012-08-3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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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찬히 살피는 손길

 


  어느 책 하나 판이 끊겨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져도 서운하지 않아요. 애틋하게 여겨 찬찬히 살피며 읽을 손길은 헌책방으로 찾아가서 따사롭게 품에 안을 테니까요. 마음으로 쓰다듬어 마음에 담는 책이에요. 마음을 열기에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있어요. 마음이 있기에 가슴에 사랑 심으며 이야기를 아로새길 수 있어요. (4345.8.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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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싶은 이야기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 사진책 2012-08-3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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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박노해 글/사진
느린걸음 | 200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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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고 싶은 이야기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37] 박노해,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2005)

 


- 책이름 :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 사진·글 : 박노해
- 펴낸곳 : 느린걸음 (2005.11.7.)
- 책값 : 9800원

 


  (1) 아체에서 사람을 읽는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느끼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내 사랑을 들려주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네 사랑을 듣고 싶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한 장에는 내 사랑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사진 두 장에는 네 사랑이 나란히 담깁니다. 사진을 찍는 내 손길을 타고 내 마음이 흐릅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이녁 눈길을 타고 이녁 마음이 흐릅니다. 사진기는 서로를 잇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사진기에서 나온 사진 한 장은 서로 꿈꾸는 삶을 보여줍니다. 사진기로 빚은 사진 두 장은 우리들이 누리고 싶은 아름다운 꿈누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그래도 쓰나미 재앙으로 계엄치하의 아체 땅에 외국인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오래된 고통을 들여다봐 주는 것이 위안이고 힘이라고, 아무 힘 없는 나를 반겨 주는 것이었다 … 그는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구호금이나 착복하며 뒷짐지고 웃고만 있다.” 정말이지 정부가 움직인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막을 쳐 주는 것도 식량을 공급하는 것도 세계의 구호단체들이었다. 그나마 그런 구호의 손길도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성한 집단 난민촌에만 집중되고 있었다 … 난민촌은 바닷가 자기 집터와 생계 터전에서 한두 시간씩 멀찍이 떨어진 곳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차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곳에서 그들이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난민들은 수동적으로 주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다 보니, 배급 이권 다툼에나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  (34, 48∼49, 68쪽)


  나는 한국에서 살아갑니다. 나한테는 한국사람이라는 이름표가 붙습니다. 한국에는 주민등록증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1975년 12월 7일이라는 숫자를 앞에 박아 ‘751207’로 여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습니다. 이곳 한국에서 살아가자면 나는 내 어버이나 내 아이들 이름을 잊더라도 내 주민등록번호 숫자는 외워야 합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일거리를 얻자면 나는 내 동무 이름을 모르거나 내 이웃 이름은 잊더라도 내 주민등록번호 숫자는 아로새겨야 합니다.


  주민등록번호가 박힌 주민등록증에는 내 앞얼굴 사진이 실립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에 담는 사진은 ‘웃어’도 ‘울어’도 ‘찡그려’도 안 됩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살짝 삐딱하게 있어도 안 됩니다. 주민등록증 사진은 뒤쪽을 까맣게 하거나 파랗게 합니다. 집에서 찍은 사진은 주민등록증에 못 넣습니다. 맑거나 밝거나 곱구나 싶은 옷을 입어도 주민등록증에 못 넣습니다. 사내는 서양 정장을 걸쳐야 합니다. 가시내는 깔끔한 정장이나 정장 비슷한 차림새여야 합니다.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무언가 다른(?) 사람으로 여깁니다. 수염을 안 깎거나 머리를 기른 채 사진을 찍는 사내 또한 어딘가 다른(?) 사람으로 살핍니다. 그러니까, 주민등록증에 담는 사진은 온통 ‘범죄자로 여기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이름은 ‘증명’사진이지만, ‘앞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보여주는(증명)’ 사진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주민등록증을 가리켜 ‘신분증’이라 가리킵니다. 내 신분을 가리키는 쪽종이라고 합니다. 여느 때에 주민등록증을 꺼낼 일이란 없습니다. 어쩌다 주민등록증을 꺼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작은 쪽종이가 어떻게 ‘나를 말하’거나 ‘나를 보여주’는 그림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내 마음 어느 구석이 이 작은 쪽종이에 담겼을까 궁금합니다. 내 생각이나 내 꿈이나 내 삶이나 내 사랑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이 작은 쪽종이에 깃들었을까 궁금해요.


.. 아체 고아들 입장에서 보면 식민 본국의 수도에 와 있는 것이었다. 아체에서는 아체어를 썼는데 이곳에서는 인도네시아어를 쓴다. 언어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겪는 아이들도 있었다 … 뚜띠 총장은 내게 성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꾸만 기숙사 시설을 증축해야 한다는 등의 언질을 주었다. 그럴 만한 돈도 없지만 시설에 투자해 봐야 고아원 것이지 아이들 것은 아니다 … 그들(이름난 구호단체 자원봉사자)은 정치에 무관하다고 하지만 ‘쓰나미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아체에서 사실상 ‘무관심의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  (53, 60, 72쪽)


  나는 내 신분을 모릅니다. 내 신분이 거룩한지 초라한지 모릅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라고 느낄 뿐, 내가 어떤 나인지 모릅니다. 나를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나란,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를 사랑하려는 나요, 옆지기와 아이들과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려는 나입니다. 해와 흙과 달과 바람을 좋아하려는 나요, 지구별 동무랑 곱게 손잡으려는 나입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아체라는 곳에도 신분증이 있을까요. 인도네시아와 아체를 가르는 신분증이 있을까요.


  제주사람이 쓰는 제주말을 ‘뭍사람’은 쉬 알아듣지 못합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소리와 결과 느낌에 따라 어떤 뜻인가 읽을 수 있으나, 오늘날 여느 제도권교육을 받으며 ‘표준말’에 길드는 사람은 제주말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곧, 제주말과 전라말이 다르고, 제주말과 서울말이 다르며, 제주말과 강원말이 달라요. 삶도 제주살이와 경기살이가 다르다 할 만하고, 제주살이와 경상살이가 다르다 할 만해요.


  그렇다면,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 자치 나라’를 세우겠다고 한다면, 뭍사람은 어떻게 여길까요. 말도 삶도 다르니까 흐뭇하게 받아들여 자치정부를 세우라 할까요. 제주도에서 푸는 물을 사들일 때에는 세금을 더 내고, 제주도로 관광하러 갈 때에는 출입국 수수료를 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려 할까요.


.. 그(울렐르 마을 젊은이)는 말했다. “우리더러 거지가 되라는 말입니까? 우리가 여기를 떠나 버리면 그건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겁니다. 우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겁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절대 안 해 줍니다.” … “우리가 키울 겁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냅니까?” … 압도적인 무력과 외교력을 가진 인도네시아는 아체를 결코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동티모르처럼 독립을 허락하기에는 아체에 자원이 너무 많다 … 정말이지 아체는 계엄군과 무장 경찰이 훨씬 더 많다. 여자와 아이들보다 더 많고, 밥집과 찻집보다 더 많고, 학생과 선생보다 더 많고, 나무와 꽃보다 더 많고, 깜빙과 짐승보다 더 많다 … 이렇게 불의한 전쟁은 인도네시아의 돈만 낭비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땀과 전문가의 창의성과 아이들의 미래마저 탕진한 것이다 ..  (77, 78, 93, 175, 208쪽)


  아체는 인도네시아에 깃들 수 있습니다. 아체는 ‘아체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에 서든 아체사람 스스로 생각하며 걸어갈 길입니다. 아체에 인도네시아 군대나 경찰이 머물러야 하지 않습니다. 아체 교육과 문화와 사회와 복지와 경제에 인도네시아 중앙정부가 남 내놔라 배 내놔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잔뜩 이끌고 아체를 식민지처럼 주무릅니다. 아체사람을 노예로 부리며 석유를 캐거나 광석을 캐거나 논밭을 일구도록 시키면서 모든 권리를 빼앗습니다. 중앙정부한테 한마디를 하면 총알 하나로 목숨을 빼앗습니다.


  새삼스레 한국을 돌아봅니다. 한국에서 중앙정부한테 한마디를 한대서 총알 하나로 목숨을 빼앗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명예훼손이라느니 공무집행방해라느니 해서 무시무시한 벌금을 물리곤 하지만, 목숨을 쉬 빼앗지는 않습니다. 다만, 군사독재자가 우두머리 자리에 있을 때에는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처럼 함부로 꺾었어요. 이제 한국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에서 벗어난 지 스무 해 즈음 되었어요. 그런데,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중앙정부한테 외치는 목소리가 스며든다고는 느끼기 어려워요. 아니, 중앙정부 아닌 지방정부한테 외치는 목소리조차 스며든다고는 느끼기 힘들어요. 신분이 높거나 계급이 높거나 돈이 많거나 이름이 알려졌거나 어떤 권력 한 가지라도 손에 쥐어야 중앙정부한테 목소리를 낼 만해요. 중앙정부가 세운 제도권 틀에서 벗어나려 하면 거의 모든 권리를 빼앗겨요. 주민등록을 안 한다든지, 주민등록증에 손그림을 안 찍는다든지, 제도권학교에 안 다닌다든지, 공공기관이나 회사에 일자리를 얻지 않는다든지, 주민세나 보험세를 안 낸다든지 하면, 머잖아 ‘사람이지만 사람 아닌 것’으로 다루어집니다.


.. (한국 마산·창원 지역 이주노동자였던) 그는 “한국에서 많이 맞고 억울하고 분했는데, 여기까지 찾아준 당신을 봐서 다 용서할게요.”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  (173쪽)


  내 삶은 주민등록증 같은 쪽종이 하나에 담지 못합니다. 내 이야기는 고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장 같은 쪽종이 하나에 담지 못합니다. 내 사랑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숫자에 담지 못합니다. 내 꿈은 내 은행계좌에 찍힌 숫자에 담지 못합니다.


  내 삶은 오직 내 마음에 담습니다. 내 이야기는 내 마음을 살찌우며 쓰는 글에 담습니다. 내 사랑은 내 마음에 실어 내 몸으로 이 땅에 심습니다. 내 꿈은 내 마음에 실어 내 손가락을 놀릴 때에 사진 한 장에 가만히 심습니다.

 


  (2) 시인이 찍은 사진


  시를 쓰는 박노해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2005)를 읽습니다. 박노해 님은 시인으로서 여러 시집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박노해 님은 시인이면서 노동자였습니다. 노동자로 살아가며 시를 쓰던 사람입니다. 돈을 버는 길은 노동자였으며, 마음을 밝히는 길은 시인이었어요.


  이제 박노해 님은 노동자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따로 어떤 이름표를 붙일 만한 일자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예 ‘사람’으로 살아가요. 사람으로서 스스로 가장 하고픈 일을 해요. 사람답게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해요.


.. 사진 속의 공포 어린 얼굴 표정들을 보자 15년 전 나 자신의 악몽이 그대로 되살아 왔다.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 24일간의 고문 끝에 감옥에 입감되면서 나는 수번이 적힌 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내 사진도 이렇게 살벌할 것이다 ..  (82쪽)


  시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한국을 떠나 이라크로 버마로 아체로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만난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합니다. 사람들 만난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하기 앞서 사진으로 하나둘 아로새깁니다.


  박노해 님이 좋은 사진기를 쓰는지 값진 사진기를 쓰는지 모릅니다. 박노해 님이 시를 쓸 때에 좋은 연필이나 값진 만년필을 쓰는지 모르는 만큼, 어떤 사진기를 쓰는지 알 길이란 없겠지요. 어떤 연필을 쓰는지 궁금하지 않을 뿐더러, 어떤 사진기를 다루는지 궁금할 일이 없겠지요.


  왜냐하면, 어떤 시를 쓰는지를 대수롭게 바라볼 노릇이니까요. 왜냐하면, 어떤 사진을 찍는지를 대수롭게 헤아릴 노릇이니까요.


..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의 후폭풍이라는 것을 나는 이라크에서 경험했다 … 그래도 아체의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밤벌레 소리는 야생의 적막감을 더한다 … 아체 아이들은 울지 않고 이제 스스로 웃음꽃을 피운다 …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삶은 스스로 강인하게, 스스로 지혜롭게 흘러간다 ..  (114, 117, 122쪽)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기에, 아체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리내를 느낍니다. 아체에서도 밤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한국에서도 밤하늘 바라보며 시를 썼겠지요. 한국에서도 밤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감옥에서 시를 썼겠지요.


  아체 아이들뿐 아니라 아체 어른들 누구나 스스로 웃음꽃을 피웁니다. 스스로 웃음꽃 피우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박노해 님도 스스로 피울 한 가지란 눈물꽃 아닌 웃음꽃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박노해 님이 스스로 쓸 글이란 울음꽃 같은 글이 아니라 웃음꽃 같은 글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곧, 박노해 님이 손에 사진기를 쥐고 사람들을 만날 때에 담을 사진이란, 환한 웃음꽃이 되고 맑은 웃음꽃이 되며 빛나는 웃음꽃이 될 사진이에요.


  해님 같은 사진입니다. 달님 같은 사진입니다. 꽃님 같은 사진입니다. 눈님 같은 사진입니다. 흙님 같은 사진입니다. 물님 같은 사진입니다.


  박노해 님은 무얼 사랑할까요. 미루나무를 사랑할까요. 갯벌을 사랑할까요. 꼬막을 사랑할까요. 석류를 사랑할까요. 고구마를 사랑할까요. 나락을 사랑할까요. 어떤 사랑을 헤아리면서 아체사람 이야기를 사진으로 그러모으고 싶을까요.


.. 절박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짓는 성벽보다 오래 가는 아름다움이 어디 있으며, 절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린 원시 벽화보다 아름다운 그림, 간절한 마음으로 골판지 위에 쓴 ‘군고구마 잇슴니다’ 같은 글씨처럼 아름다운 서예가 어디 있겠는가 ..  (126쪽)


  시쟁이 한 사람이 사진쟁이로 살아갑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이 시쟁이로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그림쟁이 한 사람이 시쟁이로 살아가거나 사진쟁이로도 살아간다면 어떤 무늬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노래쟁이 한 사람이나 춤쟁이 한 사람이 시쟁이나 사진쟁이로 살아간다면 어떤 빛깔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이리 구르고 저리 달립니다. 이리 어지르고 저리 뒹굽니다. 그러나, 어른 눈길로 볼 때에 ‘어지르기’이지, 아이 삶으로는 ‘놀기’예요. 놀며 이것저것 만지다가 다른 놀거리를 느껴 자리를 옮기느라 ‘안 치울’ 뿐이에요. 다른 데에서 이것저것 만지며 놀다가 또 이리로 와서 ‘안 치우고 둔 놀거리’를 마음껏 누려요.


  아이들하고 한마음이 되는 사람은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골목동네 이웃하고 한마음이 되는 사람은 골목동네 이웃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한마음이 될 때에 찍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섣부른 구경꾼은 사진을 찍지 못해요. 섣부른 구경꾼은 ‘기록’을 남기거나 ‘증명’을 할 뿐이에요. 어설픈 예술꾼은 ‘예술’을 하거나 ‘문화’를 빚는다 하겠지요. 곧, 사진을 찍으려면 구경꾼도 예술꾼도 되어서는 안 돼요. 구경이나 예술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구경을 누리려면 구경을 하면 되고, 예술을 즐기려면 예술을 하면 돼요. 구경을 하면서 ‘구경’에 ‘사진’이라는 껍데기를 씌우면 거짓이 되고 말아요. 예술을 하면서 ‘예술’에 ‘사진’이라는 옷을 입히면 이때에도 거짓이 되고 말아요.


  공무원이 행정을 맡을 때에도 ‘일’이고, 회사 사장이 서류에 이름을 적을 때에도 ‘일’이에요. 어느 일이 올바르고 어느 일은 일 같지 않다고 나눌 수 없어요. 그런데, 사진쟁이로 살아가며 사람을 마주하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행정 처리하’듯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서류에 이름만 적고 끝내는 회사 사장처럼 사진을 찍을 수도 없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두 다리로 이 땅에 우뚝 서서 맑게 웃는 사람이에요.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가방에 웃음보따리 짊어지고는 이곳저곳 신나게 마실하는 사람이에요.


  박노해 님 가방에는 ‘구호 성금’이 들었다지요. 그런데 참말 구호 성금일까요? 박노해 님은 구호 성금이라는 ‘돈’이 아니라, 이 자그마한 물건으로 피워낼 ‘웃음꽃’을 생각하며 가방을 꾹꾹 눌러 챙기지 않았을까요? 웃음보따리를 가방에 꾹꾹 눌러 채운 다음, 사진기 몇 대를 가붓하게 챙겨 지구별 이웃을 사귀려고 나들이를 떠나지 않을까요?


.. 록스마웨의 모습은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수동카메라는 아예 꺼낼 수도 없었다. 달리는 차 속에서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몇 장 찍다가 긴급출동한 무장 군인들에게 곧바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  (183쪽)


  록스마웨 모습은 박노해 님 시로도 내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어요. 꼭 어떤 ‘그림으로 보여지는’ 사진을 찍어서 베풀지 않아도 좋아요. 박노해 님 눈이 사진을 찍었어요. 박노해 님 마음이 사진을 찍었어요. 눈으로 찍은 사진을 글 한 줄에 차곡차곡 갈무리합니다.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책 한 권에 알뜰살뜰 여밉니다.


  사진 100장을 찍어서 책에 실어야 아체살이를 잘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사진 1000장이나 1만 장이나 10만 장이 되어야 비로소 아체살이를 낱낱이 보여주지는 않아요. 사진 한 장으로도 넉넉해요. 사진 열 장으로도 즐거워요.


  부디 사랑을 길어올려 주셔요. 부디 사랑을 담은 웃음꽃을 터뜨려 서로서로 예쁘게 어깨동무해 주셔요.


  아체는 너무 오랫동안 울었다지요. 어쩌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울는지 몰라요. 그런데, 어떤 사람 눈에는 울음이 보이지만, 어떤 사람 눈에는 ‘마음으로 기운을 북돋우며 웃는 해님 같은 꽃봉오리’가 보일 수 있어요. (4345.8.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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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 책삶+글쓰기 2012-08-3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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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새 태풍이 찾아든다는 깊은 밤에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깬다. 아이들이 새벽 일찍 부산스레 조잘거리는 소리에 나도 함께 일어난다. 나는 훨씬 이른 새벽에 홀로 조용히 일어나 글을 쓰다가 잠들었기에, 동이 트는 이른 새벽에 아이들이 부산스레 떠드는 소리를 귓결로 듣다가, 두 아이를 차근차근 달래며 노래를 부른다. 이원수 님이 빚은 시에 백창우 님이 가락을 붙인 노래를 잇달아 부른다. 이윽고 아이들과 어버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왜 고졸 학력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일까. 왜 사람들은 책에 이녁 ‘대학 졸업 사항’을 밝혀 적을까.


  책을 써서 내놓는 사람이 적을 발자국이라면 이녁이 사랑하거나 생각하거나 꿈꾸는 이야기일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책을 써서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사람이 밝힐 발자취라면 이녁이 살아가며 품은 뜻이나 보람이나 넋일 때에 즐거우리라 느낀다.


  따지고 보면, 어느 대학교를 마쳤다 하는 이야기만큼 어느 고등학교나 어느 중학교를 마쳤다 하는 이야기는 부질없다. 학교를 다닌 사람만 책을 쓸 수 있는가. 학교 다녀서 받은 졸업장이 글을 쓰는 밑거름이나 도움이가 되었을까. 어떤 마음이 되어 글을 쓰고, 어떤 꿈을 찾아 그림을 그리며, 어떤 사랑을 나누려 사진을 찍는가 하는 이야기를 책날개에 곱게 적바림한다면 참 기쁘겠다고 느낀다. 생각을 빛내며 글을 빛내고, 꿈을 밝히며 그림을 밝힌다. 이야기를 사랑하며 사진을 사랑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삶을 읽고, 책을 쓰는 사람은 삶을 쓴다. 책과 사람과 삶이 서로 고운 빛살로 얼크러지는 무지개가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 (4345.8.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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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책읽기 | 책삶+글쓰기 2012-08-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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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와 책읽기

 


  이제 전기가 없으면 글을 못 쓰고, 책을 엮지 못하며, 편지를 띄울 길 또한 없는 한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전기를 중앙정부가 거머쥐고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 마을마다 조그맣게 전기를 일구어 쓰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는다. 도시면 도시, 시골이면 시골, 저마다 쓰임새에 맞추어 햇살과 흙과 푸나무와 어깨동무할 좋은 전기를 빚어 쓰게끔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 중앙정부는 전기를 비롯해, 사람들 먹을거리도 마을마다 스스로 일구어 먹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는다. 나라밖에서 값싸게 사다 먹도록 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서로 값다툼을 하도록 내몬다. 도시면 도시, 시골이면 시골, 스스로 먹을거리를 일구어 먹는 틀거리를 마련할 생각이 조금도 안 보인다.


  전기는 돈으로 만든다. 전기를 돈으로 만든 다음 돈벌이로 삼는다. 사람들 누구나 전기 씀씀이에서 헤어나지 못할 얼거리로 짠 뒤, 중앙정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도록 내몬다. 가만히 보면, 학교에 들어가고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다니는 얼거리도 중앙정부 틀거리인 셈이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틀에서 홀가분하지 않다.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되는 듯 여기고 만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생각하지 못하면서, 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일자리를 못 얻는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밥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책을 엮어 이야기를 빚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마을학교를 열 수 있어야 하고, 마을학교에 앞서 집학교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마을마다 스스로 배움터를 일구고, 집집마다 스스로 배움마당을 마련할 때에 가장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마을에서는 마을전기를 쓰고 마을살림을 꾸리며 마을배움터를 누릴 때에 참으로 사랑스럽겠지.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나 공항에 기대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할까. 교통수단 아닌 삶을 찾아야지 싶다. 기계문명 아닌 마음을 살려야지 싶다. (4345.8.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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