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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 책삶+글쓰기 2013-01-3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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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고흥읍에서 고속버스를 내려 시골집으로 군내버스 타고 돌아가는 길에, 실비 천천히 흩뿌린다. 깜깜한 길을 구비구비 덜덜덜 달린다. 이제 읍내와 면소재지 사이 조그마한 마을 사이 지날 때쯤 되면 들판도 바다도 숲도 모두 까만빛 되면서 별빛 돋을까. 비가 오시니 별빛은 못 누리려나. 대입수험 마치고 읍내에서 놀다가 시골집 돌아가는 저녁 여덟 시 반 막버스 함께 탄 고등학교 3학년 가시내들이 시끌벅적 이야기꽃 피운다. 이 아이들은 대학교에 붙었으면 깜깜한 밤 고요한 별빛 어우러지는 고흥을 떠나 도시로 갈까. 도시로 가더라도 군내버스 아저씨하고 안부인사 나누며 호젓한 군내버스 터덜터덜 탈탈탈 달리던 시골길을 가슴속에서 길어올릴 수 있을까. 동백마을에서 내린다. 밤하늘 올려다본다. 콧노래 부르며 집으로 간다. 마당에서 아이 이름을 크게 부른다. 마루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니 비로소 아이들이 알아듣고 달려나온다. 아버지 집으로 왔어. 모두 잘 있었니?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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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그림 | 책 언저리 2013-01-3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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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그림

 


2001년 어느 날, 국어사전 만드는 출판사 일터. 내 일동무이자 오랜 고향동무가 그림책 하나를 보더니 “야, 여기 좀 봐. 자전거 이상하지 않니?” 하고 묻는다. “응? 뭐가?” “야, 자전거가 이렇게 생기면 안 굴러가잖아.” 그무렵 내 고향동무는 자전거 타기에 흠뻑 빠져 지냈다. “음, 그래? 그런가?” “잘 보라구. 체인이 이렇게 달리면 굴러갈 수 없어. 또 페달만 이렇게 붕 뜬 채 있으면, 어떻게 서겠니? 야, (그림책에 나오는) 얘가 삐삐냐?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게?”


나는 신문배달을 자전거를 타고 했는데,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을 똑똑히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다. 그저 그림이 예쁘장하네 하고만 생각했다. 나도 고향동무 못지않게 자전거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자주 타는데, 어떻게 나는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이 엉터리인 줄 못 깨달았을까. 자전거 그림 엉터리로 나온 그림책은 내가 그무렵 일하던 한솥밥 출판사이다. 출판사 이름과 자리는 다르지만, 한 출판사이다. 그래서 그림책 내놓은 출판사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 그 그림책 편집한 이한테 ‘자전거 그림’을 이야기한다. 이십 분쯤 이야기하는데, 그 그림이 뭐가 왜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한다. 나중에는 그 출판사 일터로 찾아가서 그림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야기를 하고, 마당에 선 자전거를 보라 하면서 알려주지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그림이 잘못되었어도 고칠 생각이 없다는 소리이다. 이리하여, 그 그림책은 열 해가 넘는 동안 ‘엉터리 자전거 그림’이 실린 채 아이들이 들여다본다.


그림책 작가는 왜 자전거를 엉터리로 그릴까? 너무 쉽고 마땅한 이야기인데, 그림책 작가 스스로 자전거를 안 타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더러 타더라도, 자전거를 그리면서 ‘자전거를 곰곰이 들여다보고 자전거 생김새를 마음속에 또렷이 아로새기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그림책 펴내는 출판사 편집자가 자전거를 안 탄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자전거 생김새를 마음에 담으며 ‘그림책에 깃든 자전거 그림’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책을 보는 아이와 어른 모두, 자전거를 잘 안 타니까, 자전거 그림이 잘못 나오거나 잘 나오거나 알아채지 못한다. 나무 그림이나 꽃 그림이 얼마나 나무답거나 꽃다운가를 깨닫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며 살피지도 못한다. 새 한 마리 벌레 한 마리 찬찬히 바라보면서 내 고운 삶벗이요 이웃인 줄 깨닫지 못한다.


한국 그림책 작가들 그림 그리는 솜씨는 무척 발돋움했다. 한국 그림책 편집자들 편집 솜씨는 매우 나아졌다. 그러나, 그림 하나에 담고 그림책 한 권에 싣는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매무새는 한참 멀구나 싶다. 예쁘장하게 그려서 그림책이 되지 않는걸. 그럴듯하게 그린대서 그림책이 그럴듯해지지는 않는걸.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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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요 (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 | 그림책 2013-01-3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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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

이오덕 글/김용철 그림
고인돌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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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요
― 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
이오덕 글,김용철 그림
고인돌 펴냄,2012.3.20./12000원

 


아이들은 참새를 바라보면 참새를 그립니다. 아이들은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를 그립니다. 아이들은 꽃을 바라보면 꽃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바라보면 할머니를 그립니다.


우리 집 여섯 살 큰아이가 그리는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림을 참 잘 그립니다. ‘잘 그린다’는 말은 그림솜씨가 빼어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스스로 그리고픈 대로 마음껏 그린다는 소리입니다. 여섯 살 아이답게 손가락에 힘을 주어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요, 어디에 자랑하려는 그림이 아닙니다.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린 그림입니다. 그리고 싶어 그리는 그림이요, 아이 스스로 마음을 쏟아 좋아하고픈 벗님을 옮기는 그림입니다.


나도 아이 곁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바라보는 여러 가지를 그립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며, 내가 아끼는 여러 가지를 천천히 그림으로 그립니다.


오래도록 바라보았으면 그림이 술술 나옵니다. 오래도록 마음에 담았으면 그림이 살살 나옵니다. 오래도록 좋아하고 즐겼으면 그림 그리는 손이 홀가분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에 연필을 쓰거나 볼펜을 쓰거나 크레파스를 쓰거나 붓을 쓰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와 나는 ‘그림을 즐겁게 그릴’ 뿐입니다. ‘그림 작품을 만들’거나 ‘대회에 내보낼 예술을 만들’지 않아요.


.. 참새들은 가난한 노점장수 ..


이오덕 님 시에 김용철 님이 그림을 붙인 《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고인돌,2012)를 봅니다. 그림책 빛깔이 무척 환하며 곱습니다. 노오란 빛살이 해님처럼 밝게 비춥니다. 이 그림책 들여다볼 어른과 아이는 두 눈 가득 어여쁜 무지개빛을 누리겠구나 싶습니다.


이오덕 님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싯말은 노래처럼 흐릅니다. 김용철 님이 담은 그림은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집니다. 우리 창작그림책이 어느덧 이만큼 발돋움했구나 싶어 놀랍니다. 빛깔이며 빛결이며 빛무늬이며, 아이와 어른 모두 즐거운 웃음꽃 피울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참새 모습이 참새답지 않구나 싶어요. 왜 아이들 흉내를 내며 그림을 그릴까요. 어른은 어른대로 그리면 돼요. 괜히 아이들이 참새 그리는 흉내를 내지 말아요. 게다가 참새 눈빛이 너무 흐리멍덩해요.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참새를 가만히 바라보셔요. 한 시간쯤, 두 시간쯤, 세 시간쯤, 참새 곁에서 마치 나무가 된 듯 조용히 서서 참새를 바라보셔요. 참새가 내 어깨에 내려앉아 째째째 노래할 때까지 빙그레 웃으면서 참새를 바라보셔요. 조그마한 몸집 조그마한 눈망울인 참새를 바라보셔요.


고 작은 눈망울이 얼마나 빛나는지 느껴 보셔요. 그리고 내 아이이든 이웃집 아이이든, 아이들 눈망울을 들여다보셔요. 어떤 빛이고 어떤 샘이며 어떤 이야기인지 느껴 보셔요. 그림책 《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를 가로지르는 빛느낌은 아주 포근하며 따사롭습니다. 그런데, 참새를 비롯해서, 이 그림책에 나오는 여러 목숨들 눈빛은 그닥 맑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나뭇잎이나 풀잎을 찬찬히 그리지 않는 그림은 안 반갑습니다. 시골집 돌울타리를 너무 쉽게 그리는 그림은 안 달갑습니다. 시골집 할아버지 할머니는 돌울타리를 아주 천천히 아주 온마음 들여 아주 오랜 나날 쌓아요. 시골집 돌울타리라고 해서 그저 동글동글 몽글몽글 그리지는 말아요. 시골집 돌울타리가 어떤 모양이고 무늬인지 손으로 만져 보고, 몸소 쌓아 봐요. 그러고서 시골집 돌울타리를 그려 주셔요.


그리고, 그림 그리는 분들은 꼭 자전거를 타기를 빌어요. 도시를 벗어날 적에 자전거를 타 보셔요. 도시부터 시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 보셔요. 도시에서 부는 바람과 시골에서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요. 시골마을 바람결에 묻어나는 들내음과 숲내음을 느껴요. 자, 이렇게 느낀다면 ‘자전거 생김새’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함부로 그리지 않겠지요. 한국 그림책 작가 가운데 ‘자전거를 자전거답게 그리는’ 분을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에서도 자전거 모습은 엉터리입니다. 아이들도 자전거를 이렇게 그리지는 않아요. 잘 살펴봐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그리는 자전거 그림이랑, 자전거를 안 타는 아이들이 그리는 자전거 그림을 잘 살펴봐요. 자전거가 어떻게 생겼고, 자전거가 구를 때에 어떤 모습인지 곰곰이 지켜봐요. 오늘날 그림책 작가치고 ‘자동차’를 못 그리는 분은 없어요. 왜 그러겠어요? 다들 자가용을 굴리거나 자동차를 쉽게 얻어 타고, 어디에서나 자동차를 만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참새를 이웃으로 마주한 다음 참새를 그려요. 들판과 멧골을 이웃으로 어깨동무한 다음 들판과 멧골을 그려요. 자전거를 타는 삶이 되면서 자전거를 그려요. 구름하고 동무하면서 구름을 그려요. 꽃과 풀과 나무랑 한식구처럼 지내면서 꽃과 풀과 나무를 그려요. 그러면, 그림솜씨가 이러하거나 저러하거나를 떠나, 사람들 가슴속에 따순 사랑을 심는 아름다운 그림책 하나 빚을 수 있어요.


하느님 마음이 되어 그림을 그려요. 이오덕 님은 하느님 마음이 되어 시를 썼어요. 이 시는 하느님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즐겁게 누려요. 우리 모두 하느님 마음이 되어 그림책 즐길 수 있기를 빌어요. 서로서로 하느님 마음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꿈을 길어올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그림책 읽는 시골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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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속삭이는 마음 | 책삶+글쓰기 2013-01-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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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속삭이는 마음

 

 

살아가는 밑힘이란 무엇일까 하고 문득 생각합니다.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지내는 시골집을 떠나 서울이라는 커다란 도시로 찾아와 볼일을 보다가 문득, 내가 살아가는 밑힘은 어디에서 샘솟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어마어마하다 싶은 사람들 쏟아지는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갈아탑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인천이나 부천에서 찾아왔을 텐데, 서울로 일하러 드나드는 사람은 참말 얼마나 많을까 하고 바라보다가, 아하 이 많은 사람들 가슴에는 어떤 밑힘이 있어 이렇게 복닥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충청북도 멧골자락에서 조그마한 배움터 일구는 할아버지를 뵙습니다. 인천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형을 만납니다. 인천 배다리 조그마한 가게에서 문화와 삶을 아끼려고 힘쓰는 여러 이웃하고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오늘 하루 살아가도록 이끄는 밑힘은 무엇일까요.


서울 지하상가를 걷다가 떡집을 보고는 떡 몇 점 장만합니다.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만,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먹어야 버스에서 안 시달린다고 생각하며, 이 떡을 시골집에서 아버지 기다릴 아이들 가져다주자고 다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뱃속 꼬르륵 소리가 잦아들고, 내 마음은 한결 푸근합니다. 그런데, 떡집에서 내가 돈을 치르려 할 즈음 갑자기 내 앞으로 끼어들어 새채기하려는 바쁜 사람이 하나 둘 셋, 모두 세 사람 있습니다. 1초조차 기다릴 수 없을까 싶고, 아마 이들 세 사람한테는 내가 안 보였겠구나 싶어요. 이분들은 책방에서 책을 살 적에도 ‘내 돈 먼저 받아요!’ 하면서 새치기를 할까요. 이분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적에도 ‘내 접수 먼저 받아요!’ 하면서 새치기를 할까요.


그런데, 나는 시골집 옆지기랑 아이들부터, 서울 신도림역이나 인천 골목동네나 충청북도 멧골자락이나 서울 지하상가 골골샅샅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모두 사랑할밖에 없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숨결 가슴속에 건사하는 이웃입니다. 따지고 보면, ‘살인마’ 소리 듣는 전두환 같은 사람도 내 이웃입니다. 슬프더라도 내 이웃입니다. 아니, 슬픈 이웃이겠지요.


아무래도 전두환 같은 사람은 틀림없이 ‘살인마’라 할 만하겠지요. 그래서 더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살인마 전두환이기 앞서, 육군 소장 전두환이기 앞서, 어린이 전두환은, 갓난쟁이 전두환은, 아직 어머니 몸속에서 발을 톡톡 차며 막 태어나려고 하는 조그마한 살덩이 전두환은, 어떤 숨결이었을까 생각을 기울입니다. 전두환이라고 하는 숨결 하나는 왜 사랑을 듬뿍 누리지 못했고, 왜 사랑을 가득 펼치지 못했으며, 왜 사랑을 따사로이 주고받지 못할까요.


사랑을 속삭이고 싶습니다. 사랑을 속삭일 때에 얼마나 즐거우며 힘이 솟는가 떠올립니다. 누군가 나를 아끼면서 내 귀에 대고 조곤조곤 사랑을 속삭일 때에 내 마음은 얼마나 날아오르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아끼며 이녁 귀에 대고 살몃살몃 사랑을 속삭일 때에 이녁 마음은 얼마나 달아오를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자라기를 빌어요. 사랑이 피어나기를 빌어요. 사랑으로 서로 어깨동무하기를 빌어요. 사랑을 담아 글을 쓰고, 사랑을 품으며 글을 읽는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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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장사 책읽기

 


  조치원역에서 기차를 내려 시외버스 타는 곳으로 간다. 조금 걷다 보니 머리핀과 머리끈과 여러 가지를 파는 손수레 하나 보인다. 스윽 지나쳐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뒤로 돌아가서 토끼 모양 머리핀 둘 고른다. 하나에 삼천 원씩 육천 원을 치른다. 작은 봉지에 담아 앞가방에 넣는다.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큰아이하고 작은아이한테 하나씩 주어야지.


  다시 걷는다. 길바닥에 손수레를 놓거나 보따리를 풀어 장사하는 이가 제법 있다. 따로 가게를 열어 꾸리지 못하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손님을 기다린다. 길장사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길을 걷는 길손. 길손은 두 다리로 천천히 걸으며 가게를 바라보고 손수레를 바라본다. 길손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길손은 바람내음을 맡는다. 길손은 비둘기 날갯짓 소리를 듣는다. 길손은 길가 나무 둘레에 이루어진 조그마한 풀섶에서 풀벌레가 노래할 적에 문득 쪼그려앉아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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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도림역, 당산역, 합정역 | 책삶+글쓰기 2013-01-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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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도림역, 당산역, 합정역

 


신도림역. 사람물결로 넘치는 곳에서 늘 갖은 기계소리 귀를 때리면, 이곳에서 스스로 어떤 생각을 길어올리거나 찬찬히 짓거나 나눌 수 있을까. 사람을 ‘물결’ 아닌 ‘사람’으로 느끼려면 어떤 눈빛이어야 할까. 사람한테 ‘치이’지 않고 사람을 ‘껴안으’려면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당산역. 손전화에서 내뿜는 전자파가 서로서로 감돈다. 전자파 가득한 지하철이 달린다. 서울 어디에서나 무선인터넷 쓸 만하리라. 서울은 ‘전자파 숲’일까. 전자파에 갇히기도 하지만, 전자파를 스스로 불러들인다. ‘나무 숲’이 드문드문 있어도 나무와 숲을 바라볼 겨를·마음·생각·눈길이 깃들기 어렵다. 어쩌면, 서울에는 풀이나 나무가 있을 까닭 없는지 모른다. 서울에는 시멘트·아스팔트·대리석·쇠붙이·플라스틱·석유·전기만 있으면 될는지 모른다. 어느새 지하철이 당산역 지나 한강을 가로지른다. 햇살이 지하철로 스며든다. 밝다. 그래, 사람은 해를 보고 해를 안고 해를 먹고 해를 나누는 목숨이로구나.


합정역. 나는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려고 서울 신촌에 간다. 나는 작은 출판사 작은 일꾼 만나 작은 이야기 나누려고 합정역에서 내려 걷는다. 높고 낮은 건물 사이사이 작은 출판사 작은 이름표 붙는다. 작고 예쁜 책 꿈꾼다.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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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일은 내가 사랑할 삶 (10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 | 어린이+푸름이+교육 2013-01-3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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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0대와 통하는 노동 인권 이야기

차남호 글/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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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3

 


내가 할 일은 내가 사랑할 삶
― 10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
차남호 글,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2013.1.14./13500원

 


도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시골로 옮겨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지내면서 흙을 일구는 차남호 님이 이 땅 푸름이를 생각하며 쓴 책인 《10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철수와영희,2013)를 읽습니다. 푸름이들한테 ‘노동자 되어 일하는 삶’을 들려주는 책이로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지만, 그저 도시에서만 살아가며 이 얘기를 들려주기보다, 스스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흙내음 맡으며 살아가는 사랑을 살포시 담아 이 얘기를 들려주니 한결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태어나 어딘가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간다고 할 적에, 도시살이도 한 갈래 길이요 시골살이도 한 갈래 길이거든요. 도시에서만 살아가며 ‘노동자 되어 일하는 삶’을 얘기할 적에는 모든 푸름이한테 ‘도시에서 살아가는 길’만 들려주어요.


.. ‘노동자는 어렵게 산다’는 편견에 갇혀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어요. 요컨대 ‘노동자로 살아도 괜찮을까’를 놓고 씨름하는 대신 ‘내 꿈을 이루려면 어떤 노동자가 될지’ 깊이 생각하는 게 현명한 태도라 하겠습니다 … 10대 아르바이트생한테도 당연히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아니, 어른보다 힘이 약하고 미숙하니까 더 특별히 보호해야죠 .. (12, 14쪽)


사람은 도시에서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 도시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시골이 없으면 도시는 무너집니다. 시골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어떠한 도시라도 쓰러지거나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에서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일구어 거두는 사람이 없다면, 어떤 도시도 하루조차 버티지 못합니다. 시골 흙일꾼이 있어 도시사람이 먹고삽니다. 시골에 숲이 있어 도시사람이 숨을 쉽니다. 시골에 냇물이 흐르고 들판이 푸르기에 도시사람이 따순 햇볕을 쬘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시골살이’를 안 가르칩니다. 오늘날 교과서는 아이들한테 ‘시골에서 흙일꾼 되기’를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칩니다. 오늘날 교사는 아이들 앞길을 이끌 적에 대학교로 보내거나 직업훈련소로 보내거나 공장으로 보내거나 하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지, 아이들이 ‘시골로 가서 살아가’도록 돕거나 이끌거나 북돋우지 않습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도 아이들을 시골로 보내지 않습니다. 시골에 있는 학교도 아이들을 시골에서 살아가도록 붙잡지 않습니다. 아마, 제도권교육 울타리에서는 모든 아이를 도시로 보내어 ‘노동자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게끔 이끌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도시에서 노동자가 되든 회사원이 되든 공무원이 되도록 이끌면서도, 막상 ‘일하는 사람’이 무엇이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슬기롭게 짚지 못해요.


사회를 말하거나 경제를 말하거나 정치를 말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일을 말하거나 놀이를 말하거나 삶을 말하는 사람은 너무 적어요. 돈을 말하거나 연봉을 말하거나 투자를 말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사랑을 말하거나 나눔을 말하거나 꿈을 말하는 사람은 매우 적어요.


.. 전쟁 포로의 노동은 차츰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포로의 공급원인 전쟁이 끊이지 않아요. 자연스레 전쟁의 지도자는 지위가 높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족 지도자로, 끝내는 왕으로 변신하죠. 왕은 이제 지배자로서 공동체를 통치하게 돼요. 왕과 그 신하들은 많은 가축과 전쟁 포로를 거느린 대토지 소유자이기도 하죠. 토지는 갈수록 늘어나고 그걸 경작하려면 더 많은 가축과 전쟁 포로가 필요합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전쟁 포로를 죽일 수도,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킬 수도 있어요. 전쟁 포로는 이제 노예가 되죠 .. (35쪽)


시골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날마다 조용한 하루를 누립니다. 자동차 거의 안 다니니까 한갓질 뿐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뛰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물이 맑아 몸을 환하게 적시는 물맛을 시원하게 즐깁니다. 바람이 상큼해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간질이는 풀잎과 나뭇잎 춤추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마당에 놓은 평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합니다. 가깝거나 먼 멧자락 바라보며 눈을 쉽니다. 구름이 흐르는 길을 바라보고, 하늘빛을 품에 안습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내 어릴 적, 나한테 풀을 가르친 어른은 없습니다.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더러 ‘이 풀은 맛이 참 좋아. 먹어 볼래?’ 하고 뜯어서 내민 어른이나 교사가 없습니다. ‘배가 아플 때에 이 풀을 먹으면 배앓이가 낫지.’ 하면서 풀 한 포기로 몸을 다스릴 수 있는 길을 일깨운 어른이나 교사가 없습니다. 도시에서도 골목마다 흐드러지는 풀꽃이 얼마나 싱그럽거나 어여쁜지 들여다보도록 이끈 어른이나 교사가 없습니다. 꽃이라면 꽃집에나 있는 줄 여기고, 들꽃과 메꽃과 바다꽃을 알아보도록 도와준 어른이나 교사가 없어요.


구름빛을 느끼면서 구름결을 살피도록 알려준 어른이나 교사가 없습니다. 구름빛과 구름결을 살피면 날씨를 읽을 수 있습니다. 늘 흐르는 바람내음을 맡으면 비가 언제쯤 찾아오는지, 또 날이 얼마나 가물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름을 읽거나 바람을 읽는 길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한 어른이나 교사는 아직 못 보았어요.


우리 어른들은 우리한테 무엇을 가르치나요. 어른이 된 나는 이 땅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나요. 우리 어른들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주나요. 어른이 된 나는 이 땅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면서, 사랑이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요즈음 들어 귀촌이나 귀농이라는 이름으로 시골살이를 찾아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납니다. 도시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다고 느껴 도시를 떠날 텐데, 왜 처음부터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아갈 수 없었을까 싶어 쓸쓸합니다. 왜 학교와 교과서와 언론과 책은, 온통 도시 이야기로만 가득해서, 이 땅 모든 아이들이 도시바라기가 되도록 할까요. 아이들 만화영화에는 왜 시골살이 이야기가 없을까요. 아이들 만화영화는 몽땅 도시살이 이야기만 다루어야 하나요. 도시에서 자동차를 타고, 도시에서 로봇이나 기계를 만지며, 도시에서 소꿉놀이 하는 이야기 아니면 만화영화를 만들 수 없을까요.


..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에서도 소외됩니다. 노동의 결실은 모두 자본가가 챙겨 가고, 노동자에게는 애초 노동력을 팔면서 계약했던 ‘쥐꼬리’만 한 임금만 지급될 뿐이죠. 그래서 자본가는 나날이 부를 쌓아 부자가 되는 반면, 노동자는 열심히 노력해도 살림살이가 늘 빠듯하기만 합니다 … 자본가는 노동자가 만든 물건을 자신이 소비하는 게 아니라 모두 시장에 내다 팝니다. 아니, 처음부터 팔기 위해 만들죠 … 노동자들이 착취에 시달리는 건 자본가들의 본성이 사악해서가 결코 아니에요. 자본가는 자신의 의지, 양심과 무관하게 자본의 생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죠. 비록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거꾸로 자본에 매인 존재가 자본가예요. 양심 때문에, 또는 인정에 끌린 나머지 자본의 명령을 뿌리친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자본주의의 약육강식 원리에 따라 도태되는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어요 .. (62, 63, 68쪽)


학교에서 역사나 문화를 가르치는 자리에서, 먼먼 옛날 사람들은 ‘수렵·채취’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몹시 힘들게 열매를 따서 먹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교사들 말을 들으며 무척 알쏭달쏭합니다. 먼먼 옛날 사람들은 겨울을 어떻게 났을까, 먼먼 옛날 사람들은 어떤 열매를 먹었을까, 먼먼 옛날 사람들은 몇 살까지 살았을까, 먼먼 옛날 사람들뿐 아니라, 풀을 먹는 짐승들은 삶을 어떻게 누렸을까 ……. 그런데, 내 궁금함을 풀어 주는 어른이나 교사는 없습니다. 어떤 책도 내 궁금함을 풀지 못합니다. 먼먼 옛날 사람들은 ‘고기 먹는 사람’이 아니라 ‘풀 먹는 사람’이었을 텐데, 들과 숲에서 ‘풀 먹는 짐승’이 오늘날로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았을 먼먼 옛날인데, 그때 그 옛사람 삶이 참말 힘들었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몸으로 깨닫고 배웁니다. 네 식구 먹을 풀은 다섯 평 밭으로 넉넉합니다. 네 식구 먹을 곡식은 쉰 평 논으로 넉넉합니다. 굳이 어디에 내다 팔 생각이 아니라면, 구태여 돈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다면, 다섯 평 밭이랑 쉰 평 논만 있으면 얼마든지 한 해 먹을거리가 남아요. 그러니까, 먼먼 옛날 사람들은, 이른바 ‘수렵·채취’로 살아갔어도 굶는 사람이 없었으리라 느껴요. 오히려 오늘날 사람보다 훨씬 튼튼했을 테고, 훨씬 홀가분했을 테며, 훨씬 기쁜 하루였겠지요.


풀을 뜯어서 먹느라 몸을 움직일 때를 빼놓고는 무엇을 했을까요. 먼먼 옛날 사람들은 풀을 뜯거나 열매를 따는 한때를 보낸 다음, 하루 나머지를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나 스스로 먼먼 옛날 사람이 되어 봅니다. 고속도로와 아파트와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과 공항과 야구장과 청와대와 갖은 공공기관 따위 하나도 없는 먼먼 옛날을 떠올립니다. 자동차 없고 오직 풀밭과 풀숲과 풀길만 있는 먼먼 옛날을 떠올립니다. 아하, 맛난 풀 싱그러이 자라는 들판에 드러누워 한손으로 풀을 뜯어 입에 넣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는군요. 추위가 찾아들면 따스한 터, 그러니까 남쪽으로 걸어가서 들판에서 어우러지고, 다시 새로운 봄이 찾아들면 북쪽으로 걸어와서 들판에서 어우러지는군요. 제비가 가을에 강남으로 갔다가 돌아오듯, 사람들도 북쪽과 남쪽을 마음껏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며 삶을 누렸군요.


풀짐승은 풀을 뜯어먹느라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풀을 뜯어먹지 않을 적에는 풀밭이나 숲에서 뒹굴며 놉니다. 실컷 놀고 난 다음에는 숲에서 들려주는 노래, 이를테면 바람이 풀잎 간질이는 소리나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노래,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를 얌전히 듣습니다. 총칼을 들며 지키는 군인이 없지만 평화입니다. 탱크도 잠수함도 없지만 평화입니다. 핵무기나 인공위성 하나 없지만 평화입니다.


.. 여성은 ‘유급 직장 노동-무급 가사 노동’ 구조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보다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합니다 … 여기에는 남성은 밖에서 일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성차별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전통이나 종교의 이름으로, 때로는 폭력으로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 왔습니다 … 우리나라 이주 노동자 문제의 핵심은 정부와 자본이 이들을 오직 노동력으로만 보는 데 있어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애써 외면하는 거예요 … 눈여겨볼 것은 헌법에는 분명 ‘국민의 권리’가 있는데, 유독 노동자에게만 노동 기본법을 따로 부여했다는 사실이에요 .. (88, 91, 149쪽)


먼먼 옛날 사람들은 사내와 가시내가 똑같이 일했겠지요. 아이 낳는 몫은 가시내만 맡을 수 있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젖을 물릴 때 빼고는 사내와 가시내가 나란히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폈겠지요.


먼먼 옛날 사람들은 어버이가 바로 교사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삶을 익히면서 아이들한테 어버이 꿈과 사랑을 물려줍니다. 어버이 스스로 온누리를 부대끼면서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 아이들한테도 날마다 새로운 꿈과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오늘날 모습으로 돌아와 생각합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일찌감치 보육원에 넣고 어린이집에 보냅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스스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어버이 자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어버이 스스로 교사인 줄 모르는 나머지, 집에서 아이들한테 삶을 물려주어야 하는 줄 못 느낍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이어받을 꿈이나 사랑을 보여주는 어른이 거의 안 보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녁 어버이 모습을 고스란히 따르겠지요. 오늘날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이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이녁 어버이가 했듯이 똑같이 보육원에 넣고 어린이집에 보내겠지요. 쳇바퀴처럼 돌고 돌면서,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아끼며 보살피는 손길을 못 느낄 테지요. 모든 교육과 보육은 학교가 맡도록 하고, 사회복지가 있어야 하는 줄로만 여길 테지요.


평등교육과 사회복지는 있어야 합니다. 다만, 사람들마다 여느 살림집에서 아이들과 나눌 참사랑 참꿈 참배움 참삶이 있어야 합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아이들이 참사랑 참꿈 참배움 참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학교에 다니더라도 슬기롭게 배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노동자’란 바로 내 어버이입니다. 나를 낳고 돌보는 어버이가 바로 노동자입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노동자 모습이란, 바로 내 어버이 모습입니다. 어버이인 오늘날 어른들 스스로 어떤 몸가짐이나 매무새인가에 따라, 아이들 앞날 모습이 달라져요.


.. 농경 사회에서는 비록 생산력은 낮았지만 생산의 목적이 소외된 돈벌이가 아니라, 여유롭게 누리는 것이었어요. 이때, 여유라는 것은 지금처럼 일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노동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었죠 … 이들 자본은 돈이 된다면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 따위는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 또한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 때문에 비슷한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근본적인 책임은 생태 파괴 사업체를 세우고 운영해 온 자본에게 있어요. 노동자 또한 단지 실행만 하는 부차적 위치였다 하더라도 책임을 면키 어려워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책임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노동자의 생계가 달려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생태 파괴를 지속할 순 없는 노릇이죠 .. (123, 140쪽)


일이란 즐겁습니다. 일이기에 즐겁습니다. 놀이는 신납니다. 놀이이기에 신납니다. 일은 삶입니다. 일하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습니다. 풀을 뜯고 열매를 따야 먹고삽니다. 놀이는 삶입니다. 놀지 않고서는 웃을 수 없습니다. 까르르 노래하고 펄쩍펄쩍 뛰고 달리고 해야 비로소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일은 삶이고 놀이는 삶입니다. 곧, 일과 놀이는 똑같은 삶입니다. 일이란 놀이와 같고, 놀이란 일과 같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는 먹고살 수 없다면, 놀이를 하지 않고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놀이를 하지 않고서는 웃을 수 없다면, 일을 하지 않고는 웃을 수 없습니다.


일과 같은 놀이요, 놀이와 같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삶이거든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거든요.


노동자란 일하는 사람이면서 놀이하는 사람입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할 만한 일일 때에, 즐겁게 노래하면서 누릴 만한 놀이입니다. 일터에서 즐겁게 웃으며 땀흘리기 어렵다면, 나한테 반갑거나 알맞다 싶은 일이 아닙니다. 일터에서 아이들하고 얼크러지면서 함께 놀 수 없다면, 이 일은 나한테 안 맞거나 안 어울린다고 하겠습니다.


.. 우리는 기아자동차가 노동에 종사해 온 실습생을 6년 동안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교육 과정을 돕거나 ‘우수 인력 발굴’을 위해 현장 실습을 유치한 게 아니란 얘기죠. 고분고분하면서도 임금은 싸게 먹히고, 게다가 법적 책임까지 거의 없는 노동력이 필요했던 거예요 .. (309쪽)


하루 여덟 시간을 일한다든지, 주 닷새를 일한다든지, 이런저런 틀이나 숫자는 덧없습니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하루 열여섯 시간도 일합니다. 즐겁게 놀이하는 사람은 한 주 내내 놉니다.


일을 어떤 틀로 따질 수 없습니다. 놀이를 어떤 규범이나 제도로 묶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돈을 벌려고 일하거나 놀지 않아요. 사람은 살아가려고 일하거나 놀아요. 삶을 누리는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그러면, 왜 노동권이나 노동법 같은 말이 태어날까요? 바로 사회가 제도권으로 구르기 때문이에요. 사회가 사람들을 톱니바퀴처럼 다루고 쳇바퀴 구르도록 내몰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하루 몇 시간 일하고 달삯 얼마 받을 부속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온 하루를 누리면서 어른과 아이가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을 북돋울 사람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 이 나라 시골마을마다 ‘공동체’라는 이름이 따로 없었어도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며 울력을 했어요. 아이나 어른 모두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했어요. 시골에 학교 하나 없어도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삶을 물려받고, 어른들은 스스로 아름답게 일하면서 삶을 물려주었어요.


양반이나 상놈이라고 하는 신분이 없을 때, 지주와 소작농이라 하는 계급이 없을 때, 사람들 누구나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 잔치마당을 이루었어요.


자, 생각해 봐요. 오늘날 이 나라 어디에 잔치마당이 있나요. 이 나라 어느 일터에 노래꽃이 피어나는가요. 이 나라 어느 일터에서 어른과 아이가 뒤섞여 까르르 웃으면서 일할 수 있나요. 어느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시계와 시간표에 따라 착착 움직여야 하는 기계와 같지 않나요. 공장 노동자이든 사무직 노동자이든 똑같은 옷차림에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몸짓에 똑같은 말투로 ‘주어진 일감’을 떠맡아야 하지 않나요. 이런 삶이 아름다울까요. 이런 삶이 즐거울까요. 이런 삶이 사랑스러울까요.


.. 우선,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을 존중해야 합니다 .. (262쪽)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어야, 나 스스로 내 일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할 수 있어야, 나 스스로 내가 한껏 즐길 놀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자란 무엇이고 인권이란 무엇이며 노동권은 또 무엇일까요. 왜 오늘날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억눌려야 하고,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못 누리는 한편, 비정규직이라든지 대졸실업자가 넘쳐야 할까요. 시골에는 젊은이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데, 왜 도시에는 일손 놓고 멍하니 있는 젊은이가 넘치고 넘쳐야 할까요. 시골에서 조금만 손을 놀려도 모든 사람이 밥 굶을 일이 없는데, 왜 도시에서는 어느 한쪽은 돈이 넘치고 어느 한쪽은 돈이 없어서 틈이 자꾸 벌어질까요.


삶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삶을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삶을 사랑하면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를 모두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풀내음을 맡아요. 바람소리를 들어요. 하늘빛을 헤아려요. 그리고, 눈을 살며시 감고 꿈을 꾸어요. 서로서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사람과 풀과 나무와 벌레와 짐승과 새와 물고기 모두 예쁘게 얼크러질 삶자락을 그려요.


내가 할 일이란, 내가 즐길 놀이이면서 내가 누릴 삶입니다.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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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는 사람들

 


  전남 고흥에서 충북 음성으로 오기까지 여덟 시간 십육 분. 이오덕학교에 들러 이정우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서 무극 버스역으로 와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한 시간 이십 분.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한 시간 반. 멀고 먼 길을 달리면서 몸이 고단하지만 책 네 권을 읽는다. 몸이 고단하다는 생각을 잊고자 책을 읽는다고 할까. 아니, 다른 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책에 파묻힌다고 할까. 열 시간 넘는 길을 버스와 기차와 버스와 또 버스에 버스와 마지막으로 전철을 타는 동안 손에 책을 쥐면서, 도시에서 샘솟는 온갖 자질구레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안 들을 수 있다. 또한, 내 생각을 스스로 가다듬을 수 있다.


  서울에서 2호선 전철을 타고 달리다가 신도림역에서 국철로 갈아탄다. 전철 칸에 오르니 새벽 일찍 집을 나서며 서울로 일하러 왔다가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가는 지친 사람들 모습이 한가득. 그래도 밤전철이 아닌 만큼 사람들 낯빛이 이럭저럭 맑다. 더구나, 종이책 손에 쥔 사람 꽤 많다.


  그렇겠지. 저녁 아홉 시 언저리에 신도림을 지나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달리는 이들은 회사를 마치자마자 다른 데에 안 들르고 맨 마음으로 집으로 갈 테니까, 이렇게 맑은 얼굴이 되고 손에도 종이책을 쥘 만하리라.


  시골에서 도시로 마실을 오며 짐보퉁이 잔뜩 꾸린 할머니와 할아버지 말고, 맑으며 웃는 얼굴을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는 모르나,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에 종이책 손에 쥔 사람들한테서 따순 기운이 흘러나온다. 좋다.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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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3-01-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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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어젯밤 자면서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인가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웃을 때에만 웃는 어버이는 아닌가 돌아본다. 아이들이 골을 부릴 때에 똑같이 골을 부리는 어버이는 아닌가 곱씹는다. 내 목소리는 아이들 목소리가 된다. 내가 웃는 목소리일 때에 아이들 또한 웃는 목소리가 된다. 내가 골을 부리는 목소리라면, 아이들도 자꾸자꾸 골을 부리는 목소리를 흉내내려 하겠지.


  왜 어버이가 아이한테 자장노래를 불러 주는가. 새근새근 예쁘게 재우고 싶은 마음에, 어버이 스스로 고운 목소리 되어, 고운 삶을 짓고 싶기 때문이리라. 나도 고운 삶을 짓고, 고운 생각을 북돋우며, 고운 사랑과 꿈과 이야기로 나아가야지.


  아이들아, 우리 가슴속에서 샘솟을 사랑을 생각하자. 옆지기야, 우리 마음속에서 피어날 믿음을 생각하자. 달빛을 떠올리고, 햇볕을 되새기자. 구름을 그리고, 무지개를 말하자. 4346.1.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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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라미 한 마리'는 누구인가 .. | 책 언저리 2013-01-30 06:50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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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 한 마리' 살리려고 발버둥을 치는 누군가 있다고

어느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떠들고 다닌다.

 

한숨부터 나오고,

한숨만 나오며,

한숨 아닌 다른 숨은 나오지조차 않는다.

 

그런데 '피라미 한 마리'는 누구인가.

 

이런 이야기를 들여다볼 값어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이런 이야기를 누가 왜 쓰고

누가 왜 읽어야 할까.

 

'피라미 한 마리'를 떠드는 사람은

그이 스스로 '피라미 한 마리'가 된다.

곧, '피라미 한 마리'라는 이름으로 투덜거리는 비아냥은

'알라딘 알바'라고 떠들었을 때하고 똑같이,

그이 스스로를 겨누는 화살이 될 뿐이다.

 

왜 그 사람은

스스로 '알바쟁이'가 되려 하고,

스스로 '피라미 한 마리'가 되려 할까.

 

책을 책답게 사랑하면서

사람들이 책을 아름다이 즐기는 길을

이야기하는 자리하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어떤 파멸과 자멸로 가는지를 모르는가.

 

도서정가제 이야기가 자꾸 아름답지 않게 흐르면서

비아냥과 까대기 같은 말만 나온다면,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궁금하다.

 

도서정가제 이야기를 슬기롭게 다루고 싶으면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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