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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 시-어른시 2013-10-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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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바람이 불어 배추잎 푸르고
바람이 지나가면서 모과알 굵고
바람이 스쳐 씀바귀 봄가을에 자라
바람이 살살
후박잎 간질이며 어느새 가을
살그마니 겨울
시나브로 봄
동백꽃 흐드러지면서
멧새 노랫소리에
개구리 풀벌레 새로 깨어나
까르르 웃고 떠드는 고운 햇볕.

 


4346.10.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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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길이 가장 바르다 | 책삶+글쓰기 2013-10-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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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길이 가장 바르다

 


  두 다리로 걷는 길이 가장 바르다. 걷는 길이 가장 빠르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서로 같은 곳 바라볼 수 있다. 도란도란 나즈막히 속삭이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걷는 길에 아무것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걷는 동안 지구별을 더럽히거나 망가뜨리지 않는다. 걷는 길에서 글·그림·노래·춤이 새로 태어난다. 걷는 길에서 일하고 놀며 이야기 샘솟는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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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는 마음 | 책삶+글쓰기 2013-10-3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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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는 마음

 


  버스를 타면, 내내 덜덜 떨리고 바퀴와 엔진 소리 달달달 들어야 합니다. 귀가 멍하고 골이 띵합니다. 버스가 빨리 달리는 만큼 숲내음과 숲노래와 숲빛 모두 잊거나 잃어야 합니다. 시골집 떠나 면소재지나 읍내나 시내로 볼일 보러 나오면, 버스나 기차에서 내려 걷더라도, 골목까지 파고들어 싱싱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넘칩니다. 눈과 귀와 골이 모두 아파요.


  그런데 나는 이런 데에서 스물여덟 해를 보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 넉 해 반을 살았으나 다시 도시로 돌아와 세 해 반을 살았어요. 이러구러 스물아홉 해째 되던 어느 날 비로소 자동차 없는 시골마을 작은 집에서 풀노래와 풀바람과 풀내음과 풀빛을 만났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자동차 지나가거나 흐르는 소리하고 동떨어진 멧골집에서 새로운 빛과 소리와 냄새와 무늬를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목숨들인가 돌아봅니다. 우리 넋 살찌우고, 우리 얼 북돋우는 길을 저마다 어떻게 걸어가는가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는 우리 어른한테서 무엇을 보거나 물려받는가요. 앞으로 우리 어른과 아이는 어떤 꿈과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은가요.


  버스에서 내릴 때로구나 생각합니다. 버스는 그만 달리게 할 때로구나 싶습니다. 사랑할 삶을 사랑하고, 꿈꿀 길을 꿈꿀 때로구나 생각합니다. 어깨동무할 이웃을 사귀고, 손을 맞잡으며 삶 함께 일굴 옆지기를 아껴야 할 때로구나 싶습니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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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읽기 | 책 언저리 2013-10-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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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읽기

 


  책을 후다닥 읽어서 가슴에 무엇이 남을까. 길을 빨리 달려서 마음에 무엇이 깃들까. 밥을 허둥지둥 먹어서 몸이 얼마나 즐거울까. 여행을 서둘러 다녀서 가슴에 어떤 이야기 남을까.


  시험을 앞두고 온갖 교재와 참고서를 후다닥 읽거나 재빨리 외워야 할는지 모른다. 벼락치기라고도 하지만, 후다닥 살피고 후다닥 외워서 문제풀이 잘 한다 한들, 이렇게 해서 받는 조금 더 높은 점수는 내 삶을 얼마나 살찌울 만한가.


  책 한 권 더 읽으면 내 삶은 더 아름다울 수 있는가. 책 한 권 덜 읽으면 내 삶은 덜 아름다운가. 돈이 넉넉해 책 한 권 더 장만해서 갖출 수 있으면 내 서재나 책꽂이는 한결 더 아름답다 할 만한가. 돈이 모자라 책 한 권조차 장만하기 힘들면 내 서재나 책꽂이는 한결 허술하거나 모자르다 싶은가.


  버스나 기차를 타거나 내릴 적에 보면, 으레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슬그머니 내 앞이나 내 앞 다른 사람 사이로 끼어든다. 참말, 새치기이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느 때에는 가만히 지켜본다. 저 사람들은 새치기를 하는 만큼 목숨을 그만큼 재촉하는 터라, 슬프게도 스스로 빨리 죽고픈 마음이니까. 여느 때 아닌 아이들이 곁에 있고 아이들이 힘들어 할 적에는 새치기하는 사람을 부른다. 여보소, 이녁 뭐 하는 사람인가, 이렇게 아이들이 뒤에서 기다리며 지켜보는데 이녁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부른다. 이때에 부끄럽거나 창피하다고 느끼면 주춤 물러서며 맨 뒤로 간다. 이때에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모르거나 잊은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한다.


  새치기를 해서 한 발 먼저 타거나 내리면 무엇이 즐거울까. 벼락치기를 해서 점수 1점 더 올리면 무엇이 기쁠까. 남보다 더 이룬 열매란 무엇이 반가울까. 힘이 있으면 두레나 품앗이를 할 때에 즐겁다. 이름이 있으면 이름값으로 사랑을 나누면 기쁘다. 돈이 있으면 이웃한테 오순도순 베풀어 함께 쓰고 함께 누리며 함께 가지면서 아름답다.


  지식은 쌓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못하다. 쌓일 때에는 지식이요, 쌓이는 지식은 우리 삶에 이바지를 하지 못한다. 슬기는 쌓이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 쌓이지 않고 흐르는 슬기요, 흐르는 슬기는 우리 삶을 아름답게 북돋운다. 지식은 쌓여 학벌과 학문이 된다. 슬기는 흘러 사랑과 꿈이 된다. 지식을 쌓으니 인문책 태어나고, 슬기가 흐르니 이야기책 샘솟는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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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마른 옷가지 개기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3-10-3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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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마른 옷가지 개기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서천여고에 우리 말글 이야기를 들려주러 마실을 가는 새벽이다. 두 아이를 옆에 끼고 새근새근 재우다가 나 또한 스르르 곯아떨어지는데, 밤 세 시에 눈을 뜬다. 엊저녁에 미리 챙긴 짐을 살피고 글을 몇 가지 쓴다. 엊저녁에 씻어서 불린 쌀을 살핀다. 물갈이를 한다. 새벽 네 시에 머리를 감으며 빨래 몇 점 한다. 묵은 빨래가 없도록 한다. 내 머리를 말리는 천은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빨자고 생각하며 헹굼물에 담가 놓는다. 새로 빨래를 한 옷가지를 옷걸이에 꿰어 넌다. 잘 마른 옷가지를 걷는다. 아침 일곱 시 오 분에 첫 군내버스가 마을 앞으로 지나가니, 그때까지 집일 마무리지어야 한다. 새벽 여섯 시 사십 분부터 옷가지를 갠다. 아이들이 아직 달게 자니, 갠 옷가지를 옷장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여섯 시 오십팔 분에 큰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어제 아버지가 멀리 일하러 간다는 얘기를 듣더니 일찌감치 깨는구나. “아버지 어디 가요? 가게요?” “응, 잘 다녀올게.” 큰아이가 두 팔을 벌린다. 살포시 안는다. 가방을 하나둘 멘다. 앞가방 둘 등가방 하나를 멘다. 또 팔을 벌리는 큰아이를 안아 번쩍 든다. 이제 사진기를 목에 걸고 섬돌로 내려서려는데 작은아이가 부시시 일어난다. 작은아이도 누나 말씨를 흉내내며 아직 안 뜨이는 눈으로 “가게요?” 하고 묻는다. “응, 잘 다녀올게. 자 쉬 해. 벼리야, 동생 쉬 하도록 도와줘.” “알았어요. 자, 보라야, 쉬 하자, 쉬.” 손을 흔든다.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바지런히 달려 마을 어귀 버스 타는 곳으로 간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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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선물 (선물하는 글쓰기) | 책삶+글쓰기 2013-10-3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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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선물 (선물하는 글쓰기)

 


  나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가 하고 돌아본다. 첫째, 선물할 생각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둘째, 나눌 마음으로 가장 고운 빛과 꿈을 글이며 사진에 담는다. 셋째, 날마다 사랑스레 새 삶 누리고 싶으니 글과 사진 기쁘게 빚는다.


  이밖에 또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가 가만히 헤아린다. 넷째나 다섯째로 들 만한 다른 이야기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여섯째나 일곱째가 되든 여덟째나 아홉째가 되든, 언제나 첫째와 둘째와 셋째로 꼽는 마음에서 가지를 치지 싶다. 선물하는 마음, 살아가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이 내 글을 이루는 밑바탕이 된다고 느낀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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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만 원 편지쓰기 | 책삶+글쓰기 2013-10-3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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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만 원 편지쓰기

 


  옆지기가 올해에 석 달 남짓 미국에서 람타학교 공부를 했다. 이동안 미국에서 여러 사람들 도움을 받았다. 잠잘 곳을 얻고 이야기를 나누며 숲과 들을 누릴 수 있어다. 미국에 있는 배움벗들은 우리 아이들 모습을 무척 궁금해 한단다. 사진을 보여 달라 하는데, 미국에 갈 적에 아이들 사진 한 장 안 가져갔으니 보여줄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낱장으로 된 사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누린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엮은 작은 책을 보내기로 한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어 만든 엽서를 곁들인다. 이러구러 여섯 집에 편지를 부친다. 도화면 조그마한 우체국으로 가서 이엠에스로 부친다. 책꾸러미 여섯 통에 19만 원이 든다. 한 통에 만 원은 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한 통에 삼만 원이 훌쩍 넘는다. 우체국 일꾼은 나더러 ‘배보다 배꼽이 크겠는데요잉.’ 하고 말씀한다. 그런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생각해 본다. 책꾸러미 여섯 통에 우표값 19만 원이라면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배꼽이 크지는 않다. 그렇다고 배가 크지도 않다. 옆지기는 미국에서 석 달 남짓 머물며 아름다운 이웃을 만났고, 아름다운 이웃들과 즐거운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여섯 집에 보내는 책꾸러미 우표값으로 쓰는 19만 원은 비싸지 않다. 마침 우리 집 두 아이 ‘가정보육비’ 몫으로 십만 원씩 통장에 들어왔기에 20만 원을 찾아서 우표값을 치른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어머니를 미국에도 보내 주고, 고운 선물도 보내 주는 셈인가. 좋다. 4346.10.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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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되찾으며 누리는 웃음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 동시집+시집 2013-10-3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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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조향미 저
실천문학사 | 200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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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다리를 되찾으며 누리는 웃음
―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조향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6.7.31.

 


  맨발에 고무신으로 먼길 오랫동안 걸어다니면 저녁이나 밤에 다리통이 붓습니다. 그런데 양말에 운동신을 꿰고 먼길 걸어다녀도 저녁이나 밤에 다리통이 붓겠지요. 고무신은 물에 헹구어 말리면 곧 다시 신을 수 있습니다. 운동신은 빨래기계에 돌려도 하루를 지나야 다 마르고, 이틀쯤 말려야 비로소 다 마르기도 합니다.


  맨발에 고무신으로 걸어다니면 길바닥이 어떠한가 하고 곧바로 느낍니다. 아스팔트길은 어떤 바닥인가 하고 느끼고, 시멘트길은 어떤 바닥인가 하고 느끼며, 흙길은 어떤 바닥인가 하고 느낍니다. 다 다른 길바닥을 다 다른 삶자리로 헤아립니다. 세 가지 길 가운데 가장 낫기로는 흙길입니다. 흙길을 걸으면 발바닥도 무릎도 다리도 아프지 않습니다.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은 조금만 걸어도 딱딱한 길 기운이 발바닥과 무릎과 다리로 퍼집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맨발에 고무신이 될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도시사람도 스스로 맨발에 고무신 차림이 되어 걸어다니면, 시멘트길 하나씩 걷어낼 수 있어요. 도시사람부터 스스로 맨발에 고무신 차림이 되어 돌아다니면, 아무 데나 아스팔트 척척 까는 짓 그치게 할 수 있어요.


  시골사람조차 자동차를 장만하거나 짐차를 끌려 하기에 흙바닥 고샅길을 시멘트로 두껍게 덮습니다. 시골사람마저 기계를 늘 쓰니까 논둑을 시멘트로 덮고 논 어귀에까지 시멘트길 닦습니다. 이 나라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깔린 길만 늘어납니다.


.. 해 지고 어둠 내리면 / 식구들 저녁 밥상에 둘러앉을 만큼 / 사랑하는 이와 눈빛 맞출 만큼 / 그만큼의 빛이면 족하다 ..  (촛불)


  흙길에서는 고무신을 벗을 수 있습니다. 흙길은 맨 발바닥으로 밟을 때에 느낌이 살아납니다. 풀밭은 맨 발바닥이 한결 즐겁습니다. 발바닥 살살 간질이는 풀잎은 온몸을 가만히 다스려 줍니다. 풀내음이 발바닥으로 스밉니다. 풀빛이 발바닥을 거쳐 온몸 구석구석으로 깃듭니다. 풀바람이 불어 발바닥부터 포근하게 감쌉니다.


  도시에서는 맨발로 다니기 어렵습니다. 길바닥이 지저분할 뿐 아니라 깨진 병조각이 곳곳에 많으며, 쇳조각이나 못까지 길바닥에 있습니다. 도시사람은 아무 곳에나 침이나 가래를 뱉습니다. 그럴밖에 없습니다. 도시는 매캐한 바람이 불어, 사람들 목이 따갑고 막힙니다. 길을 가다가도 침을 퉤퉤 뱉고 끓어오르는 가래를 캑캑 내놓을밖에 없습니다.


  시골사람은 침이나 가래를 뱉을 일이 없다 할 만합니다. 시골에도 공장이 들어서거나 발전소가 서면, 바람과 물이 망가져서 자꾸 재채기가 나올 텐데, 공장이나 발전소 없는 시골에서 농약을 안 뿌리고 정갈하게 살림을 일구면, 늘 상큼하게 바람을 마시고 시원하게 물을 들이켭니다. 풀빛을 먹고 풀바람을 마시는 숨결입니다.


.. 나와 나무와 햇빛뿐이다 / 어린 동백 잎사귀는 햇빛에 반짝이고 / 목련나무는 가지 끝에 보품한 솜눈을 달았다 ..  (나와 나무와)


  나무도 맑은 바람이 반갑습니다. 나무라서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를 거르고 싶지 않습니다. 매캐한 배기가스한테 둘러싸인 나무는 숲에서 자라는 나무처럼 오래도록 우람하게 서지 못합니다. 도시 길가에 서는 나무는 몸뚱이가 새까맣습니다. 도시 길가에 서는 나무는 봄에 내놓는 새잎이 곧장 새까만 먼지로 뒤덮입니다.


  나무는 서운합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으니, 나무는 서운합니다. 나무는 서글픕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껴안거나 어루만지지 않으니, 나무는 서글픕니다. 나무는 쓸쓸합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타고 올라 먼바라기 놀이를 안 하니, 나무는 쓸쓸합니다. 더구나, 사람들만 나무타기를 안 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모든 새와 짐승을 쫓아내고 죽인 탓에, 나무에 깃들 새도 짐승도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시골에서는 찻길 넓힌다며 커다란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베어 죽입니다. 시골에서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지나가게 한다며 숲에서 자라던 우람한 나무를 쉽게 베어 없앱니다. 4대강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온 나라 나무들이 앓다가 죽습니다. 산림청에서는 솎아내기를 한다는 이름 내세워 온 나라 나무들을 마구 베어 죽입니다.


  예부터 우리 겨레는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았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나라는 나무를 손쉽게 베어 죽일 뿐 아니라, 손쉽게 돈으로 새로 장만해서 척척 꽂아 구경거리로 삼는 짓을 벌입니다. 이제 우리 겨레는 나무를 모르는 겨레가 됩니다. 우리 나라는 나무가 사랑스럽지 못한 나라가 됩니다.


.. 마른가지들 듬성듬성한 숲 / 짙은 그늘에 가려 / 늘 눅눅하게 젖어 있던 흙이 / 고슬고슬 햇볕을 쬐고 있다 / 볕살은 묻힌 뿌리까지 깊숙이 비춘다 / 빠뜻한 흙 속에서 / 뿌리도 꼼지락거리며 몸을 편다 ..  (겨울 숲)


  풀은 보드라운 손길을 기다립니다. 풀은 농약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풀은 맑은 바람과 빗물과 햇볕을 바랍니다. 풀은 예초기 모진 칼날을 바라지 않습니다.


  풀은 풀맛 아는 착한 사람 몸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풀은 풀내음 누리는 참된 사람 마음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풀은 풀노래 부르는 고운 사람과 한삶 누리고 싶습니다.


  풀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풀벌레는 언제나 풀빛입니다. 여름 내내 풀벌레는 푸른 빛깔입니다. 가을 되어 풀잎이 누렇게 시들면, 풀벌레 또한 시나브로 누런 몸빛으로 거듭납니다. 풀벌레는 한결같이 풀빛입니다. 풀벌레는 풀숲에 깃들어 풀집을 누리고 풀숨을 마시며 풀살이 잇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람들 누구나 풀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풀밥을 먹었고, 풀잔치 벌였어요. 풀에서 얻은 실로 천을 짜서 옷을 지었습니다. 풀에서 얻은 짚으로 바구니를 짜고 지붕을 얹으며 신을 삼았어요. 풀에서 얻은 짚은 새끼가 되어 짐을 묶는 끈이 됩니다. 집도 옷도 밥도 언제나 풀에서 얻었어요. 집과 옷과 밥은 노상 풀에서 태어났어요.


.. 나도 다시 걷기로 했다 / 다리는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밟으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주차장에서 현관까지 몇 걸음 그리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 막대처럼 우두커니 서 있으라고만 있는 것도 아니다 / 이제부터 내 다리를 되찾아 쓰기로 했다 ..  (다리를 되찾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는 숲이 있기에 종이를 쓸 수 있습니다. 풀이 없고 나무가 죽은 숲 아닌 숲이 늘어나면 종이를 쓸 수 없습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을 때에 즐겁고 아름답게 먹을 밥을 들에서 일굽니다. 풀이 없고 나무가 죽은 숲 아닌 숲만 늘어날 적에 즐겁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먹을거리만 공장에서 쏟아집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생각하는 자리에서 어떤 밥을 먹고 싶은가를 함께 생각해 봅니다.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가 헤아리는 자리에서 어떤 바람을 마시고 싶은가를 함께 헤아려 봅니다. 어떤 사람과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가 돌아보는 자리에서 어떤 물을 만지고 싶은가를 함께 돌아봅니다.


  도시만 끝없이 키울 수 없습니다. 도시가 커지더라도 도시 한복판에 풀숲과 나무밭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잔디밭을 밟을 수 없는 공원이라 하더라도 하나씩 둘씩 늘어야 합니다. 두 다리로 풀과 흙을 밟는 공원이라면 더없이 즐거운데, 두 다리로 흙땅과 풀땅 밟지 못하더라도 눈으로 보고 숨으로 쉬며 살갗으로 느낄 공원이 도시 크기만큼 늘어야 합니다.


.. 수능 끝난 다음날 / 학교 운동장에 커다란 트럭이 왔다 / 3학년 교실은 쓰레기장이다 / 아이들은 책을 질질 끌고 나온다 / 두엄더미 거름 삽으로 퍼내듯이 / 뒷간 그득 찬 똥 똥장군으로 퍼내듯이 / 아이들은 책을 푹푹 상자에 퍼다 버린다 ..  (책을 퍼다 버리다)


  조향미 님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실천문학사,2006)를 읽습니다. 나무는 늘 우리한테 팔을 벌립니다. 우리들은 나무가 팔을 벌리는 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서 빙그레 웃습니다. 우리들은 나무가 짓는 웃음을 거의 못 느낍니다. 나무는 늘 우리한테 푸른 숨결 베풉니다. 우리들은 나무가 베푼 숨을 마시면서도 정작 나무가 우리 둘레에서 어떻게 앓고 슬프며 고단한지 못 깨닫습니다.


  나무가 모조리 죽어야 나무를 다시 찾을까요. 나무가 몽땅 사라져야 나무를 다시 부를까요. 나무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고서야 비로소 나무를 다시 생각할까요.


.. 싱그럽게 물오르는 봄나무 같은 아이들은 / 정작 새싹을 보거나 꽃향기에 취할 시간도 없다 / 온종일 교실에 드리운 커튼을 걷을 줄도 모른다 / 줄지어 시험 치고 있는 아이들은 / 아등바등 밧줄에 매달린 것 같다 … 정신지체특수반 아이 미란이는 처음부터 / 그 밧줄을 잡지 않았다 밧줄이 있는 줄도 모른다 ..  (미란이의 시험 시간)


  다리를 되찾으며 누리는 웃음입니다. 팔을 되찾으며 느끼는 노래입니다. 마음을 되찾으며 즐기는 꽃입니다. 머리를 되찾으며 살찌우는 생각이고 책이며 이야기입니다. 가슴을 되찾으며 나누는 사랑입니다.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되찾으며 빛내는 삶입니다.


.. 때로 존재를 감추어라 오만한 주인에게 노예의 소중함을 각인시켜라 청소노동자들이여 파업을 해라 우리는 날파리 왱왱대는 쓰레기더미 옆에서 함부로 버린 것들의 보복을 받아봐야 한다 냄새나는 리어카를 끌고 다닌 당신들에게 감지덕지 인사하도록 한 일주일이라도 존재를 감추어라 운전노동자도 전기노동자도 전화노동자도 한 며칠 파업을 해라 늘 웃는 낯으로 고객을 끄는 판매노동자들도 몇 주일 문을 닫아봐라 무엇보다 농업노동자들이 이 한 철 일손을 놓아버려라 손만 뻗으면 쌀이고 옷이고 집이고 가져갈 수 있다고 믿는 소비자들 사람 없이 상품만 절로 거기 진열된 듯 생각하는 고객들에게 ..  (파업)


  아름다운 길을 함께 찾아요. 돈이 될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을 함께 찾아요. 즐거운 빛을 함께 바라봐요. 전쟁이나 권력이 아닌, 즐거운 빛을 함께 바라봐요. 착한 삶을 함께 일구어요. 겉치레나 껍데기가 아닌 착한 삶을 함께 일구어요.


  아름다운 길을 함께 걸어가며 시를 짓고 시를 읽습니다. 즐거운 빛을 함께 바라보며 시를 노래하고 시를 듣습니다. 착한 삶을 함께 일구면서 시를 읊고 시를 물려줍니다.


  시를 쓰며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조향미 님이 입시지옥 고등학교에서 교과서를 살포시 내려놓고는 삶책을 환하게 웃으며 펼칠 수 있기를 빕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대학교 입학원서도 모두 내려놓고는 사랑책을 밝게 웃으며 넘길 수 있기를 빕니다. 학교옷 모두 훌훌 벗어던지고 새파란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 하늘숨 아이들과 함께 마실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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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천여고 우리 말글 강의 .. | 수다 떨기 2013-10-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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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여고로

우리 말글 이야기마당 이끌러 간다.

 

즐겁게 이야기꽃 누릴 수 있기를 빈다.

집안일 잘 마쳤나?

잘 마치고 다녀올 수 있기를 빈다.

 

얼른 가자.

버스 놓치겠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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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나뭇잎과 글줄 (2013.10.27.) | 아버지 그림놀이 2013-10-30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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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나뭇잎과 글줄 (2013.10.27.)


  로봇을 그리는 큰아이 곁에 엎드려서 풀잎을 그리고 꽃잎을 그린다. 흰종이에 부러 흰꽃을 그려 본다. 흰종이에 그린 흰꽃을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테지. 오늘은 좀 다르게 그리고 싶어,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말고 시골길 한참 거닐며 만난 가을날 붉나무를 그린다. 붉나무 잎이 모두 다른 붉은 빛깔이기에 가지도 잎도 다른 빛으로 그려 본다. 제비꽃을 그리는데 풀잎을 잘못 그렸다. 다음에 다시 잘 그리자고 생각하며 커다랗게 나뭇잎 테두리를 그린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그릴까 하다가, 글로 줄을 이어 본다. 글줄이랄까 글띠랄까. 빙글빙글 돌며 글을 하나씩 쓴다. 큰아이가 한글 즐겁게 익혀 나중에 하나씩 읽어 보기를 바라며 글띠를 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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