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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어서 쌓은 책 | 책숲마실 2013-03-3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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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어서 쌓은 책

 


  헌책방 일꾼이 책을 묶어서 쌓는다. 짝을 잃으면 안 되는 책일 때에 으레 묶고, 짝맞추기 할 책은 아니되 한 갈래로 묶을 만한 책을 묶어서 쌓는다. 그냥 쌓으면 책들은 어느새 섞인다. 한 사람이 만지고 두 사람이 만지면서, 그만 헌책방 일꾼으로서는 당신 책이 어디에 있는지 잃고 만다. 도서관 일꾼조차 사람들이 아무 데나 놓는 바람에 책을 한동안 잃어버린다고 하는데, 헌책방 일꾼도 이와 같다. 책손 가운데 이녁이 살펴본 책을 처음 꽂힌 자리에 고스란히 꽂는 얌전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으레 아무 데나 척척 얹거나 꽂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책방에서도 책을 아무 데나 꽂기 일쑤이다. 이 사람이 살피다가 아무렇게나 꽂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와서 책을 살필 때에는 정작 못 찾곤 한다. 새책방 장부나 목록에는 틀림없이 그 책이 있으나, 끝내 못 찾아서 다시 주문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도서관이나 새책방이나 헌책방에서 책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가를 가르친 적 없다고 느낀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에는 아예 도서관이 없었고, 고등학교에서는 겨우 조그마한 도서관이 하나 생겼지만, 열린 곳이 아니라 닫힌 곳이었다. 우리 스스로 책을 곱게 만져서 곱게 건사하는 길을 가르친 학교가 없었다.


  요즈음은 아이들한테 책읽기를 옳게 가르치려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한테 그림책 읽히면서 책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가르치려나. 책장을 넘길 때에는 어떻게 넘기고, 책을 펼쳐 읽을 때에는 어떻게 책을 다루어야 하며, ‘내 책’ 아닌 ‘여럿이 함께 보는 책’은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려나. ‘내 책’일 때에도, ‘내 책’을 얼마나 알뜰히 보듬으며 오래도록 즐겨읽도록 북돋울 때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가르치려나.


  책이 다치지 않게 책장 넘기는 매무새를 가르치는 교사는 몇이나 있을까. 책방마실을 할 적에 몸가짐을 어떻게 하고, 목소리나 손전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교사는 몇이나 될까.


  헌책방 책탑이 어수선하다는 말을 사람들이 참 쉽게 한다. 그런데, 왜 헌책방 책탑이 가지런하지 못하거나 어수선할까. 헌책방 일꾼이 게으른 탓일까. 헌책방 일꾼이 바보스럽기 때문일까. 헌책방 찾아오는 책손은 얼마나 바지런하거나 아름다울까.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책을 사랑한다고 밝히는 사람들은 ‘책 다루는 손길이나 손끝’이 얼마나 정갈하거나 고울까.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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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박원순 님 | 책 언저리 2013-03-3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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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박원순 님

 


  부산 보수동에서 헌책방 책살림 일구는 〈우리글방〉 사장님이 순천과 인천을 거쳐 서울에 있는 헌책방을 다녀 보려고 하신다고 하기에, 인천과 서울에 있는 헌책방으로 모시고 다닌다. 이러는 동안 나도 책방마실 새롭게 하면서, 한결 즐겁게 헌책방 사진을 찍는다. 서울 독립문 영천시장 한켠에 자리한 〈골목책방〉에 들렀을 때에, 큰길에 있는 조그마한 나무간판을 새삼스레 바라보다가 〈골목책방〉 아주머니한테 여쭌다. “박원순 님이 서울시장 되신 뒤에도 오셨나요?” “음, 한 번 오셨지. 독립문에서 삼일절 행사 할 때에는 못 오시고, 그 뒤에 언젠가 한 번 오셨지. 수행원 오륙십 명 이끌고 오셔서 ‘여전하시네요.’ 하고 말씀하시더라고.” “그 뒤로도 오셨나요?” “아니. 그때 한 번 오시고, 안 오셨어.”


  집으로 돌아와서 문득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살펴본다.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님이 독립문 헌책방 〈골목책방〉 나들이를 깜짝스레 한 일이 몇몇 블로그에 나오고 신문글 하나 나온다. 몇 월 몇 일인지 또렷하게는 모르겠으나 신문글은 2011년 11월 3일에 나왔으니, 아마 2011년 11월 2일에 〈골목책방〉 나들이를 수행원한테 말을 않고 갑작스레 했으리라 본다. 그런데, 수행원 수십 사람에다가, 박원순 님 보려고 몰려든 숱한 사람물결을 헤치면서 책을 구경하지는 못했으리라. 그저 헌책방 일꾼들한테 안부인사 한 마디 여쭙고 겨우 지나갔으리라. 서울시장 되기 앞서까지는, 또 참여연대나 아름다운재단 일을 하기 앞서까지는, 여느 변호사로서 일하는 삶을 꾸릴 적에는, 이녁은 〈골목책방〉을 비롯해 여러 헌책방에 단골로 드나들었겠지. 그러나, 여러 가지 바쁜 일을 하고 이런저런 모임을 꾸리다가 정치와 행정을 맡는 자리에 들어선 만큼, 한 해에 한 차례 또는 한 달에 한 차례 한 시간이나마 짬을 내어 헌책방마실을 즐기기란 몹시 어려운 나날이 되었으리라 느낀다. 관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삶을 되새기면서 글을 쓰려 하지 않고서야 ‘헌책방 단골’로 돌아가기는 힘들겠다고 느낀다.


  나한테는 아무런 직책도 지위도 계급도 신분도 없다. 나는 어느 모임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어느 집단에도 깃들지 않는다. 다만, 시골마을에서 옆지기하고 두 아이하고 살아간다. 아직 퍽 어린 아이들 돌보느라 바깥마실 나오기 빠듯하지만, 틈틈이 바깥마실 다닐 수 있고, 내 곁에는 나를 지킬(?) 수행원이나 경호원 하나 없으니 아주 홀가분하면서 조용히 헌책방마실을 즐기고, 헌책방 일꾼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주고받다가는, 헌책방 아름다운 책시렁을 기쁘게 사진 몇 장으로 아로새긴다.


  서울시장 되어 서울시를 아름답게 돌보는 일도 무척 뜻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일에 보람을 느끼며 힘차게 한길 걸으면 멋스럽고 훌륭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나한테 서울시장이건 고흥군수이건, 또 무슨무슨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나 어느 모임 대표 같은 자리를 맡기려 한다면, 나는 두말 않고 손사래치거나 몰래 내빼리라 본다. 어쩌면 나는 서울시장이 된다 해도 서울시 예쁜 헌책방 찾아다니며 책을 즐길는지 모르는데, 그만큼 내 하루를 내가 바라지 않는 정치나 행정에 빼앗겨야 한다. 모임 대표가 되는 일도 이와 같다. 아무리 자그마한 모임이라 하더라도 그저 즐겁게 함께하면 기쁠 뿐, 더도 덜도 바랄 것 없다.


  하루에 책 한 권 읽을 겨를이 없다면, 하루에 몇 시간 아이들과 복닥이며 노래하고 조잘조잘 떠들거나 그림놀이를 할 틈이 없다면, 하루에 여러 시간 하늘바라기·꽃바라기·나무바라기·풀바라기 할 말미 내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이러한 삶은 내 삶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 헌책방 나들이 즐기는 웃음꽃을 그 어느 것에 내주랴. 누군가 돈 억수로 갖다 안긴들 무슨 감투를 선물한다 한들, 나는 골골샅샅 살가운 헌책방들 마실 다니는 재미를 아무한테도 내주고 싶지 않다.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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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네 손에 있어 | 책삶+글쓰기 2013-03-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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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네 손에 있어

 


  꽃은 들판에도 있고 멧골에도 있지. 그리고 내 손에도 있고 네 손에도 있어. 네가 손에 쥔 꽃이 어여쁘다면, 네 눈이 이 꽃을 어여쁘게 바라보기 때문이고, 네 손길이 이 꽃을 어여쁘게 느끼기 때문이야. 네 마음속에 꽃이 어여쁘게 피어나니, 네 둘레 꽃들을 어여쁘게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고, 즐거우면서 맛나게 먹을 수 있단다. 마음밭 꽃씨 씩씩하게 뿌리내려 어여쁜 꽃송이로 태어나고, 어여쁜 씨앗 맺어 언제나 맑게 피어나도록 북돋아 주렴.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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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뜯기 1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3-03-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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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뜯기 1

 


  아버지가 들풀을 바라보다가 “아, 맛있겠다!” 하고 말하면서 한 줄기 뜯어서 입에 넣는다. 냠냠 씹으며, “음, 맛있네!” 하고 말하니, 여섯 살 큰아이가 곁으로 다가와 “나도 뜯을래!” 한다. “그래, 뜯어 보렴. 자, 더 앞으로 와서 뜯어.” 아이가 작은 손으로 작은 풀을 뜯는다. “오잉, 꽃은 안 뜯기고 풀만 뜯겼잖아.” “그럼 꽃 달린 풀 또 뜯으면 되지.” 꽃 달린 들풀 뜯어서 입에 넣는다. 작은아이한테는 아버지가 뜯어서 입에 넣어 준다. 모두들 들풀을 뜯어서 냠냠 먹는다. “맛있니?” “음, 맛있어.”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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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걷는 삶 (유치원 일기) | 어린이+푸름이+교육 2013-03-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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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치원 일기

하이타니 겐지로 저/햇살과나무꾼 역
양철북 | 201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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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함께 걷는 삶
 [사랑하는 배움책 8] 하이타니 겐지로, 《유치원 일기》(양철북,2010)

 


- 책이름 : 유치원 일기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양철북 (2010.12.30.)
- 책값 : 1만 원

 


  아이들이 자랍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프고, 아이들은 먹고 싶은 대로 먹고픕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나 놀이라면 무엇일까요. 곁에서 어른들이 하는 일이나 놀이를 아이들도 똑같이 하고 싶을까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이나 놀이를 새로 찾을까요.


  학교도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없던 지난날을 헤아립니다.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무슨 꿈을 꾸면서 자랐을까요. 지난날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일을 배우고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자랐을까요. 지난날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서 서운했을까요. 지난날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도 아름다운 삶과 따사로운 사랑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으며 씩씩하게 뛰놀며 자랐을까요.


  학교가 막 생기면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요. 일제강점기에 생긴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쳤는가요. 해방 뒤 이 나라 학교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쳤나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곳이 되는가요.


.. 당연한 일이지만, 능력주의와 주입식 교육이 판을 치는 일본의 교육 현실에서 우리는 성가신 존재였다. 물론 아무리 성가신 존재로 여겨져도,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왔다 … 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건물은 대개 아이들을 얕잡아본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을 온통 분홍색으로 칠하고 벽에는 스누피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플라스틱제 놀이기구를 설치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정신이 의심스럽다. 창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유치원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어른들이 멋대로 생각한 디자인을 들이밀 것이 아니라,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 재료를 다루거나 표현하는 것은 아이들이어야 한다 ..  (10, 21쪽)


  이웃들은 우리 아이들 볼 적마다 ‘학교 갈 때 안 되었니?’ 하고 묻습니다. 큰아이는 이태 뒤에 초등학교 들어갈 만한 나이가 되고, 두 아이는 모두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이건 다닐 만한 나이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엇비슷하게 어떤 시설에 보낼 수 있고, 학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시설이나 학교에서 시험이나 공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구지게 뛰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에 보내는 일은 하나도 안 내킵니다. 아이들은 시간표로 착착 짜서 몇 분 가르치고 몇 분 쉬고, 하는 틀로는 하나도 제대로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은 일곱 살이고 여덟 살이고 아홉 살이고 실컷 뛰놀아야지, 책상 앞에서 이런 지식 저런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시설이나 학교에 갈 수 있어야, 아이들한테 새로운 길이 열릴까 생각해 봅니다. 시설이나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어떤 길을 열어 줄까요.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길? 대학교에 들어가서 취업 준비 하도록 재촉하는 길? 시설이나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쳐 주나요? 시설이나 학교에서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꿈과 노래를 누리도록 이끌어 주나요? 시설이나 학교는 아이들이 숲과 들과 멧골과 바다를 얼마나 실컷 누비도록 북돋아 주나요?


  요즈음 시설이나 학교는 지난날처럼 주먹다짐이나 몽둥이질을 섣불리 안 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즈음 보육교사나 학교교사는 지날날처럼 아이들한테 막말이나 거친 말을 함부로 읊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 슬기롭게 다스리는 교사는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어요. 아이들 앞에서 바르며 고운 넋으로 바르며 고운 말 들려주면서, 교사 스스로 바르며 고운 삶 일구려는 분이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교사라는 자리는 교사자격증을 땄대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태양의아이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자기 눈높이를 맞추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높은 곳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다 …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 전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 우리 스스로 창조력이 풍부해야 하며, 아이들과 함께 변화해 가야 한다 … 아이들은 진지하게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말을 획득한다. 그리고 말을 획득함으로서 더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  (38, 39, 110, 192쪽)


  어떤 어버이도 ‘어버이 자격증’을 따고서 혼인을 한 다음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다만, 어버이 자격증이 따로 없다 하더라도, 어른 된 두 사람은 ‘어버이로 지내는 길’을 그닥 깊이 헤아리지 않고 아이를 낳곤 해요. ‘어버이 길’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살피지 않기 일쑤예요.


  그런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오늘날 여느 어른’들한테 ‘어버이 길’을 안 가르쳐 주었을 수 있어요. 갓 스물을 넘거나 서른 넘은 사람들한테 ‘오늘날 어버이’들은 어떤 삶길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주나요. 오늘날 쉰 예순 나이를 누리는 분들은 이녁 아이들한테 어떤 어른 되는 길을 밝히는가요. 학교에서 교사 자리 맡는 분들은 숱한 아이들한테 어떤 사람 되는 길을 열어 주는가요.


  때 되면 밥 차리고, 때 되면 씻기고, 때 되면 옷 갈아입히고, 때 되면 빨래하고, 때 되면 쓸고닦고, 때 되면 예방주사 맞히고, 때 되면 놀이공원 가고, 때 되면 장난감 사 주고, 때 되면 바깥밥 사먹고, …… 이런저런 모습이 ‘어버이 길’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버이 길이라 한다면, 이 땅에서 사람답게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이라고 느껴요.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한껏 맞아들이면서 스스로 새 이야기 빚고 새 살림 일굴 때에 비로소 어버이 길을 연다고 느껴요.


..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아이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시인이다 … 아이들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다 ..  (104, 132, 163쪽)


  아이들이 스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가르치지 않은 가락과 노랫말을 스스로 지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곁에서 들은 노랫가락과 노랫말 되새기며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가 부른 노래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흐르던 노래를 떠올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조잘조잘 떠듭니다. 스스로 터져나오는 소리대로 조잘조잘 떠들고, 둘레 어른이나 또래 아이들 조잘조잘 주고받던 말소리 곱씹으면서 새삼스레 조잘조잘 떠듭니다.


  바람소리 듣고 자란 아이들은 바람소리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알아차립니다. 자동차 붕붕 소리 듣고 자란 아이들은 자동차 소리 느끼고 자동차 이름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들판에서 풀 뜯고 꽃이랑 노래하던 아이들은 풀빛과 꽃빛을 가슴속으로 아로새깁니다. 높다란 아파트와 건물 비죽비죽 솟은 데에서 거님길 바깥으로는 못 다니도록 꽥 소리지르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들은 봄빛과 여름빛과 가을빛과 겨울빛 하나도 모르는 채 나이를 먹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저마다 무엇을 보면서 자랄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저마다 무엇을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릴까요. 이 나라 도시 아이들은 날마다 무엇을 느끼며 클까요. 이 나라 시골 아이들은 나날이 무엇을 마주하며 생각밭 키울까요.


.. 자연의 것을 자연 그대로 먹을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음식 만드는 일에는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 동물과 함께 생활할 기회가 거의 없는 요즘 아이들은 동물이라는 존재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덮어놓고 무서워했다 … 장애아 교육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행이다 … 기요코와 아이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이 아이들을 격리시키거나 외톨이로 만드는 것은 큰 죄이며, 인간 전체로 봤을 때도 큰 손실이라고 ..  (25, 67, 123, 130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유치원 일기》(양철북,2010)를 읽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님은 일본에서 ‘새로운 유치원’을 엽니다. 당신이 쓴 책을 널리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밑바탕 삼아, ‘틀에 박힌 채 지식 쑤셔넣고 아이들을 톱니바퀴에 가두는 유치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실컷 놀며 스스로 생각을 일구는 유치원’이 되기를 바라면서 유치원을 엽니다.


  유치원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닙니다. 유치원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삶터요 배움터이자 만남터이고 쉼터입니다. 삶터인 유치원이기에 유치원 교사는, 또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어떤 자격증보다도 마음속에 품는 사랑이나 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나 꿈은 없이 자격증만 있다면 ‘새로운 유치원’에서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자격증이야 언제라도 딸 수 있는걸요. 자격증이야 없어도 되는걸요. 곁에서 여러 해 궂은 일 도맡으며 어깨너머로 구경하거나 지켜보면서 일손 하나둘 거들면서 천천히 익힐 수 있고, 둘레에서 오래도록 크고작은 일 함께하면서 어깨동무와 두레와 품앗이가 무엇인가를 깨달으며 찬찬히 배울 수 있어요. 굳이 시험을 치러 점수를 살펴야 따는 자격증이란 뜻이 없어요. 곧, 가르치는 어른도 자격증이나 시험점수 따야 하지 않고, 배우는 아이도 자격증이나 시험점수 따야 하지 않아요. 가르치는 어른부터 스스로 삶을 생각하고 사랑을 나누면 즐겁지요. 배우는 아이도 스스로 삶을 깨닫고 사랑을 물려받으면 기뻐요.


..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려면 어른이 먼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한다 … 아이들에게서 뭔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놀라거나 감동했다는 것은 벌써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감동에서 시작해서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다 … 원래 모든 아이들은 상냥하다. 아이들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때는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때뿐이다 ..  (57, 82, 152쪽)


  교사들 누구나 교사일기 쓰기를 바랍니다. 아이들한테만 일기쓰기 시키지 말고, 교사부터 스스로 교사일기를 써서, 이웃 교사랑 학부모한테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 일기를 교사들만 살피면서 동글뱅이 그려 주거나 맞춤법 바로잡지 말고, 교사일기를 이웃 교사하고 학부모한테 보여주어 ‘교사로 지내며 아이들과 마주하는 웃음과 눈물과 기쁨과 슬픔’을 서로서로 아리땁게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곧, 대통령은 대통령일기를 써서 사람들한테 날마다 보여주어야지요. 국회의원도 국회의원일기 쓰고, 시장은 시장일기를, 군수는 군수일기를 써야지요. 의사도 변호사도 판사도 간호사도 모두 일기를 쓸 노릇입니다. 회사 대표도, 회사 일꾼도, 저마다 하루일 돌아보면서 이녁 삶을 일기로 쓸 노릇입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어버이도 일기를 쓸 노릇입니다. 이 나라 푸름이도, 젊은이도, 모두모두 이녁 삶 밝히는 일기를 찬찬히 적바림하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며 알알이 보듬는 길을 생각할 노릇이에요.


  이때에 비로소 새 길 열 수 있겠지요. 이렇게 마음을 트고 서로 만날 수 있을 때에, 거짓이 스러지고 참삶을 열면서 빙그레 웃겠지요. 서로 마음속에 꿍꿍이 아닌 꿈을 품고, 마음밭에 미움 아닌 사랑 심을 때에, 다 함께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마을 가꾸겠지요.


..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더욱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성장하는 생명체만큼 아름답지 않다 … 뭔가를 창조했을 때만이 인간은 성장한다 … 아이들이 위대한 창조자라는 사실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바로 코앞에 훌륭한 본보기가 있는데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154, 180, 200쪽)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걷는 삶입니다. 아이 낳은 어버이라 하든, 아이 안 낳는 어버이라 하든, 또는 짝을 안 맺고 혼자 살아가는 어른이라 하든, 모두들 곁에는 늘 아이들이 있어서 함께 걷는 삶이에요. 내가 마신 다음 내뱉는 숨을 숲에서 나무가 마시고, 이 숨이 다시 푸르게 흘러나오면 이웃 아이들이 마셔요. 내가 쓰고 내놓는 물을 숲과 바다와 들과 갯벌이 걸러서 하늘로 올려보내 구름을 이루면, 이 구름은 온누리를 촉촉히 적시면서 이웃 아이들 마시는 물이 돼요.


  모든 삶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바람과 물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햇살은 어느 곳이든 골고루 비춥니다. 사람들 생각과 마음도 따로따로라 하지만, 처음과 끝은 늘 하나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인데, 삶이 나아가는 길은 모두 한 갈래로 같아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르치며 배우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학교’라는 이름을 쓰든 안 쓰든 배움터이면서 삶터가 됩니다. 사랑을 가르치지 못하고 배울 수 없으면서 이름은 ‘학교’라 한다면, 이곳에서는 삶도 문학도 문화도 사랑도,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갑갑한 쇠울타리 감옥이 됩니다.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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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글쓰기 | 책삶+글쓰기 2013-03-3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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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글쓰기

 


  아이와 함께 그린 빛깔 고운 그림을 셈틀 곁에 붙인다. 두 아이는 벽에 죽죽 금을 그으며 놀았다. 온통 새까맣게 된 벽에 그림을 붙이면서, 새까만 그림 아닌 빛깔 고운 그림을 늘 쳐다본다. 아이들 그림에는 아이들 마음에 드러난다. 내가 함께 그린 그림에는 내 마음이 드러난다. 기쁨도 슬픔도 웃음도 눈물도, 이 그림 하나에 고스란히 밴다. 나는 아이 마음에서 무엇이 드러나기를 바랄까. 나는 내 마음속에서 무엇이 샘솟아 아이들 그림에 살포시 드리우기를 바랄까.


  지난밤 빗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자고, 나는 문득 일어나 자리에 앉아서 빗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비인 만큼 섬돌에 놓은 신이 젖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마루문 열고 밖을 내다본다. 작은아이 타는 세발자전거가 비를 맞는다. 아차, 세발자전거는 처마 밑으로 옮기지 않았네. 그냥 둘까, 옮길까.


  자다가 빗소리 듣는 사람이 있을 테고, 잠들지 않고 깬 채 있어도 빗소리 못 듣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제비 노랫소리와 다른 들새 노랫소리를 하나하나 나누어 듣는다. 그렇지만, 제비인지 참새인지 박새인지 직박구리인지 멧비둘기인지 노랑할미새인지 하나도 못 헤아리는 사람이 많다. 돌이켜보면, 내 어릴 적 충남 당진에 있던 어머니네 어머니 댁에 마실을 갈 적에, 내 외삼촌이요 이모인 형과 누나 들은 새소리 낱낱이 알았고, 빗소리이며 바람소리이며 풀잎 흔들리는 소리이며 찬찬히 알았다. 메추라기 둥지를 찾아서 메추리알 꺼내기도 했고, 나무 타고 올라가 새알 구경을 하기도 했다.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어도 새소리를 차츰차츰 알아차릴 수 있는 까닭이라면, 어릴 적부터 내 외삼촌과 이모 들처럼 새소리를 알아차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빛을 품으면 시나브로 빛이 흘러나온다. 마음속에 햇살을 품으면 천천히 따스한 햇살 새어나온다. 마음속에 구름을 품으면 어느새 몽실몽실 피어나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잔뜩 찌푸린 채 빗물 떨구기도 하겠지.


  빛을 품는 사람은 빛을 이야기한다. 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을 글로 쓴다. 빛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빛을 물려준다.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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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즐기는 사람들 (헌책방 공씨책방) | 책숲마실 2013-03-31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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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즐기는 사람들 (4346.3.5.)
― 서울 신촌 〈공씨책방〉 / 02) 336-3058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112-12

 


  책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책방마실을 합니다. 책을 썩 좋아하지 않으나, 이런 책을 훑어 지식을 쌓거나, 저런 책을 살펴 정보를 얻되, 조금 더 싼값으로 책이라는 물건 갖추려고 책방마실을 할 수도 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책방을 찾아갑니다. 이제 동네마다 작은 책방 거의 사라지고, 퍽 멀리 나들이를 가야 커다란 책방 하나 만날 수 있습니다. 애써 책방마실 않더라도, 집이나 일터에서 셈틀을 켜고 목록 죽 살피며 책을 장만할 수 있습니다. 찻삯이나 다리품 안 팔고도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오늘날이에요.


  그런데, 셈틀을 켜고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할 적에도 다리품 못지않게 품을 들여야 합니다. 목록만으로는 모든 책을 다 살피기 어려우며, 바라는 책을 샅샅이 살피자면 퍽 오래도록 셈틀 화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곧잘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하기는 하지만, 막상 누리책방에서 이런저런 책을 살피다 보면, 제법 품과 겨를을 많이 잡아먹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리품 팔아 책방마실을 할 때에만 품과 겨를이 들지 않아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들은 품과 겨를을 들입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몸소 책방마실을 할 적이랑, 셈틀 켜고 누리책방 목록 뒤적일 적이랑 어떻게 다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책방마실을 하자면 아이들 데리고 먼길 나서야 합니다. 고흥에서 순천까지 오가더라도 시외버스 삯이랑 군내버스 삯을 더해 이만 원 가까이 듭니다. 시외버스 타고 오가느라 세 시간 즈음 버스에서 보냅니다. 버스에서 아이들 복닥거리는 몸짓 받아 주자면 기운이 쪽 빠져요. 그러나, 아이들은 책방 골마루를 마음껏 휘젓고 다닙니다. 골마루를 달리고 책방 바닥에서 뒹굴다가도, 책을 집어 펼치기도 하고, 어쨌든 아이들로서는 책방은 늘 새로운 놀이터입니다.


  집에서 셈틀 켜서 누리책방 목록 뒤적이면, 아이들은 심심합니다. 저희끼리 놀기도 하지만, 어머니나 아버지가 셈틀 앞에 붙어서 재미없는 것만 주루룩 넘기니 참말 따분합니다. 나도 셈틀 화면 들여다보며 목록만 살피면 눈이 아프고 손목과 허리가 아픕니다. 찻삯 안 들고 다리품 안 들인다지만, 아이들과 재미나게 노는 삶하고는 너무 동떨어집니다.


  누군가 이쁘장하게 찍은 사진 들여다보아도 봄꽃내음 누릴 수 있어요. 누군가 이쁘장하게 찍은 사진을 책으로 묶으면, 이 책을 넘길 때에도 봄꽃무늬 헤아릴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아이들과 밭자락이나 이웃마을 나들이 다니면서 두 눈으로 봄꽃 바라보고 두 손으로 봄꽃 만지며 코와 살결로 봄꽃내음 맡고 싶습니다. 아이들한테도 몸소 겪고 누리는 삶이 한결 아름다우며 즐겁습니다.


  서울로 사진강의를 하려고 하루 일찍 나들이를 한 길에 신촌에 있는 헌책방 〈공씨책방〉으로 찾아갑니다. 가까운 순천으로 나들이를 한다면 아이 한둘 데리고 올 만하지만, 서울까지 함께 데려오기는 벅찹니다. 버스로 대여섯 시간 남짓 움직이면 어른도 아이도 참 힘들거든요.


  혼자서 느긋하게 책방으로 들어갑니다. 혼자이기에 목에 사진기 하나 걸고 어깨에 사진기 하나 건 채 찬찬히 책시렁 돌아보면서 책을 읽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몇 장 찍고서 책에 파묻힙니다. 문득 고개 들면서 ‘아차, 책은 오늘 장만해서 집으로 가져가서 읽을 수 있지만, 사진은 오늘 아니면 못 찍잖아?’ 하고 깨닫습니다. 먼 마실 나온 길인 만큼, 책방에서 책읽기를 하지 말고, 책방에서는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자고 생각합니다.


  《신경림 엮음-조태일 시선집, 나는 노래가 되었다》(창비,2004)를 고릅니다. 나는 조태일 님 시집과 산문책 알뜰살뜰 장만해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굳이 시선집까지 장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시선집도 한 권 장만해서, 내가 그동안 장만한 조태일 님 책 곁에 나란히 꽂아도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신경림 시인이 고른 조태일 님 시는 어떠할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2009년에 《조태일 전집》이 네 권 12만 원으로 나왔어요. 조태일 님을 아끼고 기리는 뜻에서 크고 단단하게 엮느라 네 권 값이 12만 원이 될 만할 수 있겠구나 싶지만, 조금은 가볍게 엮어, 아직 조태일 님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한결 넓게 알릴 수 있도록 했으면 어떠했으랴 싶습니다. ‘간직하는’ 책이 아닌 ‘읽는’ 책으로 엮는 전집은 한국에서는 아직 나오기 힘들까요.


  《김별아-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이룸,2001)라는 산문책 하나 구경합니다.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니, 어떤 삶을 하루하루 누리기에 이런 말을 하고, 또 이런 말을 책이름으로까지 붙이는지 궁금합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톨스토이 님 이야기를 그러께에 읽었기에, 새삼스레 눈에 뜨이는 책이름인 터라, 첫머리부터 차근차근 읽습니다. 김별아 님 옆지기 이야기가 글 사이사이 나타납니다. 김별아 님 옆지기는 이녁 이야기를 이렇게 쓰는 줄 알까요. 두 분은 어떤 삶과 사랑을 나누면서 살림을 꾸릴까요.

 

 

 


.. 남편이 좀 마음에 걸리지만 그에겐 내가 아니라 마누라가 필요할 게다. 사실은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차고앉아 할 수 있는 지위요 역할이다 ..  (28쪽)


  김별아 님은 아이를 낳았을까요. 김별아 님이 아이를 낳았다면 집일과 집살림을 비롯해 아이키우기는 어떻게 할까요. 김별아 님 옆지기는 집일과 집살림과 아이키우기를 어떻게 바라보며, 얼마나 살갑고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삶을 누리려나요. 김별아 님 옆지기가 ‘옆지기 아닌 마누라’를 바란다는 말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마누라’는 낮춤말도 아니고, 집일만 하는 가시내를 가리키는 말도 아닙니다. ‘마누라’는 ‘마님’과 같은 말밑에서 나온 낱말이에요. 곧, ‘마누라’는 높이는 낱말입니다. 이와 달리 ‘아내’는 일본말을 번역해서 쓰는 낱말로, ‘안에 있는 사람’, 그러니까 ‘집 안쪽에만 있으면서 집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어쨌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면 참 좋을 테고, 집일이란 가시내만 맡을 몫이 아니요, 사람된 누구나 삶을 일구면서 하는 일인 줄 깨달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렇게 안 되었’으니까, 김별아 님으로서는 이런 글을 쓸밖에 없겠지요.


  참말 우리 사회 사내들은 왜 스스로 어리석은 길을 가려 할까요. 우리네 사내들은 왜 집일 맡고 집살림 꾸리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까요. 아이를 돌보는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는 삶이란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산문책 《문정희-눈물》(집현전,1997)을 고릅니다. 문정희 님은, “가을에는 시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싯구를 떠올리게 된다.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하게 된다. 가을에는 굳이 신이 계시는 신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을이 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신이 가까이 느껴지니까, 바로 온 세상이 신전이 되니까(25쪽).” 하고 말합니다. 그래요. 가을에는 시인도 시인이 되고, 시인 아닌 사람도 시인이 됩니다. 봄을 맞이할 적에도 시인은 시인이요 시인 아닌 사람 또한 시인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이와 같아요. 모두 시인입니다. 흙일꾼도 시인이고, 할머니도 시인입니다. 어린이도 시인이고 푸름이도 시인입니다. 저마다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인입니다. 누구라도 즐겁게 이야기꽃 피우는 시인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도 시인이지요. 아이를 맡아 가르치는 교사도 시인이에요. 나물 뜯는 아주머니도 시인입니다. 쟁기질 하는 아저씨도 시인이며, 택시를 몰고 버스를 모는 일꾼도 시인이에요. 시인 아닌 사람이 없어요.


  《보라르/박재삼 옮김-세잔》(신구문화사,1977)이라 하는 작은 책을 봅니다. 그림쟁이 세잔 님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제는 더 나오지 못하는 신구문고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즈음에도 문고판이라는 이름 붙어 자그마한 책 더러 나오기도 하지만, 신구문고나 정음문고나 을유문고처럼, 참말 자그맣고 가벼우며 값싼데다가 알찬 손바닥책은 다시 못 나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요즈음에도 이렇게 자그맣고 가벼우며 값싼데다가 알찬 손바닥책이 꾸준하게 나와요. 글꼴이 작아도 사람들이 즐겁게 읽어요.


  “세잔은 시인뿐만 아니라 음악가도 되려고 하였다(13쪽).”와 같은 글월을 읽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림을 사랑하고 시와 노래 또한 사랑하기에 두고두고 사람들한테서 사랑받는 그림쟁이 삶을 누렸군요. 그림을 그리듯 시를 썼을 테고, 시를 쓰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 테지요. 그림을 그리듯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듯 그림을 그렸겠지요.


.. 아버지는 완고하게 아들의 재상경을 허락하지 않고 곧 자기네 은행에 넣고 말았다. “알겠지, 포올. 그림 같은 걸 뭣에 쓰겠니? 이미 하느님께서 자연을 훌륭하게 만들어 주신 거야. 그걸 인간이 그려 본다 한들 어떻게 그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 될 리가 있겠니? 그림 그리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야. 못쓸 일이야!” 아버지에 대하여는 언제나 복종하는 버릇이 있는 세잔은 이번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장부에 흥미를 가지려고 하였다. 그는 그에게 부과된 일의 단조함을 느끼지 않도록 장부 끝에 또다시 시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때의 낙서가 현재 오직 하나 남아 있다 ..  (23쪽)


  내 고등학교 적 떠올립니다. 수업을 받다가도 교과서 귀퉁이에 으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끄적였습니다. 화가 되려고 그린 그림은 아니요, 작가 되려고 끄적인 글은 아닙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시멘트교실에 붙들려 시험지식 머릿속에 집어넣는 일로 머리가 터지겠구나 싶어, 내 머리를 지키고 내 마음을 살리고 싶어, 저절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요. 죽은 넋 아닌 산 넋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되새기려고 교과서에 이런 그림 저런 글을 남겼어요.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 치를 적에도 똑같았어요. 시험종이 다 풀고 난 다음 빈자리에 온갖 그림과 글을 채웁니다.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으로 시달릴 적에도 이렇게 했지요.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가을부터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곧잘 빼먹으면서 헌책방으로 조용히 내빼어, 헌책방 한쪽에 옹크리고 앉아 너덧 시간씩 홀로 책을 읽을 때에는 책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글을 끄적이지 않았어요. 그예 책에 사로잡혀 시간과 배고픔 잊으며 책을 읽었어요.


  《김해경-회색빛 이별》(상아,1988)은 시집입니다. 1980년대 끝무렵과 1990년대 첫무렵에 한창 퍼진 싯말이 깃듭니다. 나도 이맘때에 이런 시집 찾아 읽으면서 멍하니 있곤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참말 그무렵 학교에서는 어떠한 꿈이나 사랑을 찾을 수 없었어요. 《회색빛 이별》 같은 시집이든, 이무렵 널리 팔리거나 읽힌 《홀로서기》 같은 시집이든, 참말 교과서와 시험지옥에서 벗어나 내 생각을 홀가분하게 내려놓도록 조금 도와주었다고 느껴요. 다만, 이 시집들은 삶을 또렷이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 시집들은 삶을 스스로 헤치거나 일구도록 북돋우지 않아요. 사회 얼거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내 보금자리와 마을과 숲을 어떻게 건사하면서 꿈이랑 사랑을 길어올리는가 하는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 거리에 나서면 / 모든 것을 느낄 수가 있다. / 살아 있다는 것 / 살아 가고 있다는 것 / 그러나 / 보이지 않는 허탈함에 / 짓눌려야 했을 때 / 발길에 채이는 낙엽만큼이나 / 서러워해야 했다 ..  (회색빛 이별·26)


  책을 얼추 다 살폈다 싶어 책값을 셈할 무렵, 사진책 《오형근-unfinished portrait》(한미사진미술관,2010)를 봅니다. 오늘날 ‘현대사진’과 ‘한국사진’ 모습을 잘 살필 수 있는 사진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나는 현대사진도 한국사진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읽는 책은 잘 팔리거나 널리 읽히는 책이 아니요, 내가 찍는 사진은 잘 나가거나 널리 알려지는 사진이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길동무 되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이야기 길어올리는 사진을 살피며 찍습니다.


  그나저나, 오형근 님 같은 분들이 찍는 만듦사진을 ‘현대사진’이라 일컫는다면, 앞으로 2020년대나 2030년대, 또는 2050년대쯤 누군가 찍을 사진은 무슨 사진이라고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사진비평에서 ‘근대사진’이나 ‘현대사진’과 같은 갈래짓기는 무슨 뜻이나 보람이 있을까 궁금해요. ‘오늘을 대표하는 한국사진’이라는 이름도 무슨 뜻이나 보람이 있을는지 알쏭달쏭합니다.


  그러나, 다시금 돌아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빈틈없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톱니바퀴에 스스로 꿰맞춥니다. 도시문명, 물질문명, 돈벌이, 자격증, 영어, 겉치레,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손전화, 유행, 서울, 서울에서도 강남, 자가용, 자가용 가운데에서도 까만 자가용 또는 커다란 자가용, 이밖에 또 무엇이 있으려나요. 한국이라는 나라를 밝히거나 말할 만한 이름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백두산이나 한라산이나 금강산이나 지리산이 한국을 말한다 할 만할까요. 아름다운 숲이나 바다나 들이 한국을 보여준다 할 만할까요. 아마, 아니겠지요. 그러면, 포항제철 같은 공장?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아니면 높다란 아파트와 건물? 청와대? 국회의사당? 무엇으로 한국을 이웃나라한테 말하거나 보여줄 만할까요? 천연기념물? 국보? 종묘 사직? 광화문? 인사동? 경주? 제주도?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이웃나라한테 알려지나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모로 살피면, 한국 사회 한국 모습은 ‘만듦사진으로 보여질밖에 없는’지 몰라요. 90% 훨씬 넘는 사람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자리, 아니 일자리라기보다 돈벌 자리를 얻어서 지내요. 게다가 이제는 절반 훨씬 넘는 사람이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골목집이나 시골집서 살아가는 사람은 절반 밑일 뿐더러, 시골집서 살아가는 사람은 10% 아닌 5%나 3%도 안 될 테고, 어쩌면 1%조차 안 될 수 있어요. 나는 시골집서 두 아이와 옆지기하고 살아가지만, 이런 우리 식구 모습은 ‘한국을 대표하거나 한국을 보여줄 만한’ 모습이라고 하기 어려운 오늘날이에요.


  요즈막에 ‘책을 즐기는 사람’치고 나처럼 헌책방으로 애써 나들이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누리책방에서는 책을 되도록 덜 사고, 두 다리로 움직여 손으로 책을 만진 다음 책을 사려 애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대형체인점 헌책매장 아닌 전국 골골샅샅 씩씩하게 꾸리는 헌책방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다 다른 책을 만나려고 힘쓰는 사람은 앞으로 언제까지 몇 사람쯤 남을까요.


  책방이 문닫는 까닭은 책방으로 찾아가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이 힘들다 한다면, 사람들 스스로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으로 덜 찾아가거나 안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에 여느 사람들이 바라는 책이 적거나 없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느 사람’이라고 하는 분들은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에서 ‘어떤 책’을 바랄까요. 동네마다 다른 빛깔에 맞추어 책시렁 건사하는 동네책방 무늬와 헌책방 결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책을 느긋하게 누리는 분은 오늘날 어느 만큼 있을까요.


  누군가 나한테 묻습니다.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이 자꾸 문닫고 사라지니 서운하거나 슬프지 않느냐고.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안 서운하고 하나도 안 슬픕니다. 나는 이 나라 곳곳에 있는 동네책방이랑 헌책방을 하나하나 찾아다니거든요. 서운하거나 슬플 사람이라면 ‘동네책방 있던 동네에 살아가는 분’하고 ‘헌책방 있던 마을에서 살던 분’입니다. 동네사람이 동네책방을 지킬 노릇이고, 마을사람이 마을헌책방 돌볼 노릇이에요. 동네문화는 동네사람이 일굽니다. 마을역사는 마을사람이 갈고닦습니다. 학자나 전문가가 일구어 주는 문화란 없고, 교수나 정치꾼이 지켜 주는 역사란 없어요.


  서울 신촌에 깃든 헌책방 〈공씨책방〉은 신촌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랑, 신촌 둘레에 있는 일터나 학교를 다니는 사람하고, 서울사람 스스로 돌보거나 지키거나 아끼거나 즐기면서 누릴 책터입니다. 이들이 이 아름다운 헌책방 한 곳 곱게 건사하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가장 슬프고 서운할 사람은 바로 이분들이에요. 이 마을 사람들 문화와 역사와 삶은 바로 이 마을 사람들 스스로 보듬듯, 이 마을 헌책방도 이 마을에서 슬기롭고 아름다이 보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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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익히기] 가운데 : 바쁘신 가운데 | 우리말 살려쓰기 2013-03-3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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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50) 가운데 3 : 바쁘신 가운데

 

바쁘신 가운데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시다 이라/김윤수 옮김-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2013) 243쪽

 

  ‘감사(感謝)합니다’는 ‘고맙습니다’로 바로잡습니다. 한국말은 ‘고맙습니다’이지만, 한국말을 알뜰히 쓰는 분이 자꾸 줄어들어요.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바이바이’ 같은 말을 쓰는데, 즐거움이나 재미나 귀여움 삼아 이런 말을 쓴다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알맞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은 말을 함부로 길들이는 셈이 됩니다. 아이들한테 사탕 한 알 쥐어 주면서 “‘감사합니다’ 그래야지.” 하고 말하는 분들을 보면, 좋은 뜻은 알겠지만, 사탕 함부로 주니 안 달갑고, 말투 또한 슬기롭지 않으니 안 반갑습니다. 차라리 “‘잘 먹겠습니다’ 그래야지.” 하고 말하면, 그나마 말투는 받아들일 만한데요.

 

 바쁘신 가운데
→ 바쁘신 데에도
→ 바쁜 틈에도
→ 바쁜 짬을 내어
 …

 

  행사나 잔치가 있는 자리에 가면, 사회를 맡은 분들이 으레 “바쁘신 가운데”라느니 “바쁘신 와중(渦中)”이라느니 하고 말합니다. 워낙 굳은 말버릇이니 이렇게 말한달 수 있지만, 제아무리 굳거나 뿌리박은 말투라 하더라도, 올바르지 않거나 알맞지 않으면, 하나하나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법도 법이라 하지만, 나쁜 법은 ‘나쁜 법’이지 ‘법’이 아닙니다. 잘못 뿌리박힌 말투는 ‘그대로 써도 될 우리 말투’가 아니라, 알맞게 바로잡을 ‘잘못 뿌리박힌 말투’예요.


  이 보기글 같은 자리라면, “바쁜 일정(日程)에도”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와중’도 한자말이고 ‘일정’도 한자말이지만, ‘와중’은 “(1) 흐르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2)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가운데”를 뜻해요. 이 뜻을 헤아리자면 ‘와중’을 넣는 말투도 알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헤아리면, 한자말 ‘와중’을 “-하는 가운데”로 풀이한 말마디가 알맞지 않다 할 수 있어요. 잘못 풀이한 말마디라 할 만합니다. ‘와중’을 애써 ‘가운데’로 풀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잘못 풀이할 바에는 그냥 한자말 ‘와중’을 쓰는 쪽이 낫다고 해야지 싶어요. 4346.3.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바쁘신 데에도 와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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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익히기] 가장 1, 2, 3 - 가장 큰 집들 중 | 우리말 살려쓰기 2013-03-3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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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83) 가장 1 : 가장 큰 집들 가운데 하나

 

샤샬은 마을에서 가장 큰 집들 중 하나에 산다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행운아》(눈빛,2004) 96쪽

 

  ‘중(中)’은 ‘가운데’로 손질해 줍니다. 한자 ‘中’은 한글로 적는다 해서 한국말이 되지 않아요.


  “가장 큰 집”은 하나입니다. 둘일 수 없습니다. ‘가장’은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더”를 뜻하거든요. 오직 한 가지를 맨 앞이나 위에 내세울 때에 쓰는 ‘가장’인 만큼 이 보기글처럼 쓸 수 없어요. 그러니 “가장 큰 집에 산다”처럼 적거나 “무척 큰 집들 가운데 하나에 산다”처럼 적어야 올발라요. ‘가장’하고 뜻이 같은 한자말 ‘제일(第一)’ 말풀이를 살피면 “여럿 가운데서 첫째가는 것”이라고 나와요. 한국말 ‘가장’ 아닌 한자말 ‘제일’을 넣는다 하더라도 “제일 큰 집들 중 하나”처럼 적으면 알맞지 않아요. ‘가장’이든 ‘제일’이든 오직 하나만 가리킵니다.

 

 가장 큰 집들 중 하나에 산다
→ 가장 큰 집에 산다
→ 아주 큰 집들 가운데 하나에 산다
→ 더없이 큰 집에 산다
 …

 

  보기글에서는 샤살이라 하는 사람이 사는 집이 무척 크다는 뜻에서 이와 같이 적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아주 크다”라든지 “무척 크다”라 적으면 돼요. 그나저나 “가장 무엇무엇한 것 가운데 하나”라는 말투를 왜 쓸까요. ‘무척’이나 ‘아주’나 ‘퍽’을 넣어야 알맞을 자리에 왜 ‘가장’이라는 낱말을 넣을까요.


  이 말투는 영어에서 비롯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교재를 보면 “가장 무엇무엇한 것 가운데 하나”라는 번역 말투를 찾아볼 수 있어요. 영어를 가르치면서 번역을 얄궂게 하는 바람에 어느새 퍼진 말투 가운데 하나로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영어를 가르치는 자리에서는 으레 영어만 헤아리지 한국말은 거의 헤아리지 않아요. 영어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는 생각해도, 영어를 한국말로 옮길 적에 알맞고 바르며 슬기롭게 나타내도록 가르칠 생각은 안 하기 일쑤예요.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분을 비롯해, 영어 교재 엮거나 쓰는 분들 모두 한국말 깊고 넓게 살피면서 배우기를 빌어요. 4338.1.3.달/4346.3.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샤샬은 마을에서 아주 큰 집에 산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87) 가장 2 : 가장 중요한 생태계의 하나

 

습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생태계의 하나입니다
《강병국-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보고서 : 우포늪》(지성사,2003) 139쪽

 

  “지구상(-上)에 존재(存在)하는”은 “지구에 있는”으로 풀면 됩니다. “생태계의 하나입니다”는 “생태계 가운데 하나입니다”로 고치면 되고요. ‘습지(濕地)’ 같은 낱말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즐겨쓰는데, ‘늪’이라 적을 수 있어요. 한국말 ‘늪’을 알맞게 쓰며 학문밭 넓힐 수 있습니다. 우포‘늪’을 다루면서 정작 ‘늪’이라 말하지 않고 ‘습지’라고만 가리키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서글픕니다.

 

 가장 중요한 생태계의 하나입니다
→ 아주 중요한 생태계 가운데 하나입니다
→ 아주 중요한 생태계입니다
→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생태계입니다
 …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말을 배웁니다. 학교에 가서 배우든 집에서 배우든 말을 배웁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든 식구나 이웃이 가르치든 ‘어른이나 어버이가 아는 말’과 ‘어른이나 어버이가 쓰는 말’을 아이들한테 가르칩니다. 그래서 어른이나 어버이가 말과 글을 알맞게 잘 쓰면 아이들은 알맞고 바른 말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어른이나 어버이가 말과 글을 알맞게 못 쓰거나 엉뚱하게 잘못 쓰면, 아이들은 알맞지 못하거나 엉뚱한 말을 배우겠지요.


  요즈음 아이들은 영어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며 온갖 것을 참 많이 배웁니다. 이 가운데 영어와 한자를 살펴보면, 아이들이 배우는 영어 말법이나 한자 뜻풀이는 예나 이제나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스무 해 앞선 때 말법하고 요새 말법이 다르지 않겠지요. 1950년대 영어 말법과 2000년대 영어 말법은 똑같을 테고, 1900년대 영어 쓰임새와 2000년대 영어 쓰임새가 똑같겠지요.


  그러나,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1950년대와 1900년대와 2000년대가 너무 다릅니다. 아니,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이 달라져야 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한국사람다운 말투를 버리거나 잊습니다. 한겨레다운 말법과 말틀을 쉬 내팽개칩니다. 아니, 처음부터 살피지 않고,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물려주지 못해요. 얄궂은 낱말과 말투와 말법을 자꾸 만듭니다. 올바르지 않은 낱말과 말투와 말법을 무턱대고 씁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망가뜨려요. 한국땅 어른과 어버이는 한국말을 제대로 갈고닦지 않아요.


  외려, ‘얄궂게 쓰는 말’조차 새로운 흐름에 맞는 낱말이거나 말투이거나 말법인 듯 받아들입니다. 아이들한테 ‘얄궂게 쓰는 말’을 물려주고 말아요.


  말이란 흐르기 마련이라 나날이 조금씩 바뀝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쓰는 이 나라 말만 ‘얄궂은’ 쪽으로 뒤틀리거나 비틀리거나 엉망이 되어야 할까요. 왜 한국말이 한국말다움을 지키지 못하고 영어를 닮거나 한문 틀에 매여야 하거나 일본 말투에 찌들어야 할까요.


  아이들이 깨끗하고 싱그러운 마음을 품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슬기롭고 맑은 넋을 건사하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우리 어른들은 말부터 깨끗하고 싱그러우며 슬기롭고 맑은 한편 착하고 아름답게 추슬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른들부터 똑바로 말하고 생각해야지 싶어요. 어른들부터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야지 싶어요. 맑은 넋에서 맑은 말 태어나고, 맑은 말에서 맑은 삶 이루어집니다. 4340.1.24.물/4346.3.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늪은 지구에서 아주 중요한 생태계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938) 가장 3 : 가장 위대한 사람들

 

그는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였어요
《브뤼노 몽생종/임희근 옮김-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 168쪽

 

  ‘위대(偉大)한’은 ‘훌륭한’이나 ‘빼어난’이나 ‘뛰어난’으로 다듬고, ‘중(中)’은 ‘가운데’로 다듬어 줍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
→ 아주 훌륭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
→ 무척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 하나
→ 몹시 빼어난 사람들 가운데 하나
 …

 

  보기글처럼 ‘가장’을 쓰면, 훌륭한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아주 빼어나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여럿 가운데 한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 한다면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어요”처럼 적어야 해요. 이러한 뜻이 아니라 한다면, “아주 훌륭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처럼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또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어요”라든지 “무척 뛰어난 사람이었어요”처럼 단출하게 다듬습니다. 굳이 “아주 (무엇무엇한) (무엇) 가운데 하나” 꼴로 적지 않아도 됩니다. 4346.3.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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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 | 시-동시 2013-03-3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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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

 


여름날 찾아온
드센 비바람에
시멘트벽돌 울타리
와르르 무너졌다.
이날
우리 집 뒷밭 뽕나무
우드득 소리 내며
넘어졌다.
삽자루 들고
비와 바람 맞으며
흙 떠서
허옇게 드러난 뿌리에
뿌리고 또 뿌렸다.

 

부디 살아 다오
부디 기운 내라

 

가을 지나고
겨울 지나며
뽕나무는
새 가지를 낸다.
넘어진 자리에 맞추어
가지들은 하늘로 뻗고
굵직한 뿌리는
더 깊이 땅속으로 내려간다.

 

아름답다 예쁘다 좋다
노래 저절로 나온다
곱다 씩씩하다 튼튼하다
노래 즐겁게 부른다

 

올여름에도
오디잔치 벌이겠구나.

 


4346.2.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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