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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와 시집 (헌책방 순천-형설서점) | 책숲마실 2014-02-2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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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와 시집 (4347.1.2.)
― 전남 순천 〈형설서점〉
061-741-0228 전남 순천시 저전동 230-2번지
061-723-1069 전남 순천시 연향동 1465-4번지

 


  서울시청에서 ‘공문서 언어순화’를 하겠다면서 한글문화연대에 일을 맡겼습니다. 공문서에 공무원 스스로 제대로 못 느끼고 쓴 영어와 일본 한자말을 털어내 주기를 바라면서 공문서 천 건을 맡겼습니다. 나는 서울 아닌 전남 고흥에서 살지만, 공문서 천 건 가운데 오백 건을 살펴서 손질해 주는 일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2013년 12월부터 2월까지 하는 일이고, 한 달에 한 차례 서울에서 모임을 합니다. 1월 모임은 1월 3일입니다. 이날 모임에 맞추어 서울마실을 해야 하는데, 모임을 하는 때가 낮 두 시라 고흥에서 첫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더라도 맞출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하루 먼저 고흥 바깥으로 나가서 묵은 뒤 서울로 가기로 합니다. 아이들한테 낮밥을 차려 먹인 뒤 길을 나섭니다. 고흥읍으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에 닿습니다. 모처럼 순천으로 나온 김에 〈형설서점〉을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닌 서울로 가는 길에 가방이 무거울 테지만, 밤에 여관에서 지낼 때에 읽을 책을 사는 셈이니 나쁘지 않습니다. 순천에서 장만한 책을 짊어지고 서울로 가서는, 서울에 있는 다른 책방에서 책을 새롭게 한 가득 장만해서 시골집으로 택배를 부치면 될 테지요.


  마실길인 만큼 가벼운 책을 고를까 생각하면서 시집을 먼저 살핍니다. 예전에 읽었지만 깨끗한 판으로 보이기에 《고정희-아름다운 사람 하나》(들꽃세상,1990)를 새삼스레 집습니다. 아름다운 빛을 아름다운 글로 빚은 노래이니, 숲길을 헤쳐 시멘트밭 서울로 가는 길에 읽기에 좋겠지요.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뿐인 서울에서 푸른 숨결을 떠올리기에 걸맞을 만한 책이리라 느낍니다.


.. 당신 가슴에 내 목을 묻을 때 나는 천국의 해바라기 꽃밭을 지나가네 꿈속에서 그리던 곤륜산과 만나듯 그 넓고 부드러운 불살에 기대어 나는 황금빛 따뜻한 꽃구름을 올라가네 맨 발의 가벼움으로 아흔 아홉번째 구름계단에 올라가 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는 일은 가슴 투닥거리네 ..  (당신 가슴에 내 목을 묻을 때)


  동시를 쓰는 동인이 모여서 낸 비매품 시집인 《동심의시 동인회-동심의 시 (9)》(1990)을 봅니다. 그다지 눈에 뜨일 만한 작품은 안 보인다 싶지만, “책 속에는 없다 / 논이 떠내려가라 우는 개구리 소리. // 책 속에는 없다. / 한밤중 오줌이 마려워 방문을 열면 / 맙소사! 대문 앞에 와 있는 도깨비불(책 속에 없는/이준관)”처럼 흐르는 동시는 즐겁습니다. 책에 없는 이야기를 그리는군요. 그런데 요즈음 도시 아이들한테 도깨비불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요즈음 도시 아이들은 ‘괴물’은 알아도 ‘도깨비’나 ‘도깨비불’은 모를 텐데요.


  시집 《안준철-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답게,1994)를 집어듭니다. 교사로서 쓸 수 있는 시가 흐릅니다. 생각해 보니, 시를 쓰는 분 가운데 교사가 퍽 많습니다. 시를 쓰는 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시를 알뜰살뜰 잘 가르칠까요? 아무래도 여느 교사하고는 사뭇 다르겠지요.

 


  《김정환-순금의 기억》(창작과비평사,1996)과 《김정환-황색예수·1》(실천문학사,1983)를 고릅니다. 김정환 님 시집 《순금의 기억》은 내 마음에 와닿는 시가 잘 안 보입니다. 김정환 님이 시를 머리로만 쓰지는 않으셨을 테지만, 어쩐지 ‘가슴으로 쓴 시’나 ‘두 다리로 쓴 시’나 ‘두 팔로 쓴 시’나 ‘꿈으로 쓴 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황색예수·1》에서는 “우울한 날이시면 / 나무들을 보셔요, 눈 내린 아침. / 나무들은 잘 하고 있어요 / 나뭇가지의 짐은 하얗고 푹신하고 축 늘어지고 / 저렇게 환하게 서 있을 수가 있어요 글쎄 / 멋져요. 나뭇가지가 있는 아침은 춥고 / 화사하셔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아침은 / 온 산, 온 경치가 새하얀 이 아침에 온통(눈, 나뭇가지, 너, 나 그리고 고통)”과 같은 작품이 눈길을 끕니다. 아무래도 나무를 바라보며 쓴 시는 이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숲을 바라보거나 바다를 바라보거나 꽃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쓰는 시는 내 마음으로도 살포시 감겨듭니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이런 마음이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시골사람이기에 시골내음이 살짝 묻어나는 시가 한결 마음에 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은-나의 저녁》(한국문학사,1988)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고은 님이 스스로 어깨에 얹힌 짐을 가만히 내려놓고 썼구나 하고 느낍니다. 수수하게 쓸 때에 수수하면서 곱게 빛나는 시요, 투박하게 노래할 적에 투박하면서 예쁘게 맑은 시가 된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 못난 사람들이야 정으로 삽니다 / 아무렴 덕보다 정입니다 / 덕은 결국 지배입니다 / 그러나 정은 한없는 이웃입니다 / 당신과 나 사이 / 어떤 지배도 뜻 없는데 / 나는 당신한테 가고 / 당신은 나에게 오고 있읍니다 ..  (정든 날)

 


  《문희자-동회 가는 길》(민음사,1989)을 집어들어 찬찬히 살핍니다. 아이들을 보살피던 나날을 그리며 쓴 시가 좋습니다. 참말 그래요. 문학이나 예술을 해야 하는 시보다, 이렇게 여느 삶자리에서 태어나는 시가 반갑습니다.


  굳이 꾸며야 할 까닭이 없는 시입니다. 구태여 기교를 부리거나 솜씨를 부려야 하는 시가 아닙니다. 삶이 그대로 시입니다. 사랑이 그대로 노래입니다.


.. 자고 나면 / 늘 새 날이 있어 / 지칠 줄 몰랐다 / 시간에 맞추어 / 도시락 여섯 개 싸기 / 늘 바빴다 / 점심 저녁 / 같은 밥 같은 반찬 / 먹이지 않으려 / 혼자 애썼다 / 아이들 / 차례로 졸업한 / 뒤 / 도시락 하나 싸기 / 더욱 어려웠다 / 올해만 참으면 / 된다지만 / 자고 나면 / 늘 새 날이 있어 / 지쳐 버리고 만다 ..  (도시락 싸기)


  《곽재구-전장포 아리랑》(민음사,1985)이라는 시집을 손에 쥡니다. ‘풀’을 노래한 시가 맨 먼저 내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도 시를 이렇게 읽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내 어릴 적에도 시를 이렇게 즐겼나 하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 보도블럭 새로 / 풀들이 // 1cm의 / 사랑도 추억도 / 개똥철학도 없는 / 노오란 풀들이 / 언 땅을 뚫고 / 벽돌과 자갈과 / 절망과 분노를 뚫고 / 솟구친 새까만 풀들이 ..  (풀)

 


  시를 쓰는 이들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풀을 바라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과 춤을 추는 이들도, 공을 차는 운동선수와 얼음을 지치는 운동선수도 풀을 바라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대통령도 공무원도, 의사도 박사도, 교사와 교수도 모두 풀을 바라보면 어떠할까 싶어요.


  하루에 한 시간쯤 풀과 만나도록 하면 지구별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 시간쯤 밭을 일구도록 하면 이 나라와 이웃 모든 나라 삶이 어떻게 거듭날까 궁금합니다.


  졸업사진책 두 권을 구경합니다. 《광주제일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4회》(1981)와 《함평손불국민학교 56회》(1986)를 보는데. 전남 함평에 있다는 손불국민학교는 1986년 이무렵 두 학급입니다. 요즈음은 몇 학급일까요? 1980년대에 두 학급짜리 작은 학교였으면, 요즈음에는 한 학급도 가까스로 버티는 학교로 있지 않을까요?


  고흥에 있는 초등학교를 보면 읍내 초등학교가 아니라면 학년마다 한 학급을 꾸리기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한 학교에 고작 열한 아이나 열두 아이만 있는 학교도 제법 있습니다.


  손불국민학교 아이들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시골스럽게 생긴 얼굴이요 옷차림입니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게 투박한 얼굴일까요. 요즈막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 얼굴도 이렇게 사랑스럽도록 투박한 얼굴이 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누런종이로 만든 아주 얇은 논문 《김용숙-이조 후기 내인생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를 들여다봅니다. 요새는 논문을 시커먼 껍데기를 두껍게 붙여서 만들곤 하는데, 지난날처럼 얇은 종이에 이렇게 양장 없이 만들어도 되리라 생각해요.

 


  전남 중·고등학교 교지인 《푸른숲》(1968) 9호를 봅니다. 차례 자리에 〈중앙서림〉(광주 충장로3가)과 〈대양서림〉(광주 계림동 383-13) 광고가 있습니다. 두 책방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있을까요. 두 책방은 오늘날에도 충장로와 계림동 그 자리에서 씩씩하고 튼튼하게 책살림을 꾸릴까요.


  비매품 동인지인 《순천문학 12》(1988)을 봅니다. 시와 수필로 엮은 동인지인 《순천문학》인데 김수자 님 수필이 눈에 뜨입니다. 《순천문학》 12호를 내놓을 무렵 김수자 님이 ‘순천을 넘어’서 ‘서울까지 이름을 알린’ 듯합니다. 김수자 수필로 특집 자리를 꾸밉니다.


  산문책 《유혜자-어머니의 산울림》(교음사,1985)을 집습니다. 도시에서 지내면서 시골로 찾아가던 어릴 적 이야기를 적은 글을 봅니다. 참말 나는 ‘시골 이야기’가 깃든 책을 알아채는구나 싶습니다. 시골 이야기가 흐르는 책이 나를 부르는구나 싶습니다.


.. 도회지에서의 늦잠 버릇이 방학 때 외가에 가면 저절로 고쳐지곤 했다. 창호지 밖에서 부우옇게 번져 오던 빛은 눈길을 따갑게 하지 않으면서 눈을 뜨게 했고, 사랑방의 할아버지 기침소리와 마당 저쪽에서 들려오던 삭삭 비질하는 소리는 머리맡에서 울리던 자명종 소리보다 가볍게 내 몸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  (16쪽)


  시골집에서는 창호종이 바른 문으로 스치는 새벽빛을 느끼며 일어납니다. 깜깜한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창호종이 바른 문으로 스며듭니다. 창호종이문으로는 햇빛과 달빛뿐 아니라 새와 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도 젖어듭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고스란히 느끼도록 하는 창호종이문입니다.


  도시에서는 모든 소리를 다 막아 주는 두꺼운 ‘샤시문’이 달립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 소리가 너무 시끄러우니, 모든 소리를 다 막아 주어야 하는 샤시문을 달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잠을 못 잘 테니까요.


  도시에서는 자동차 소리에 새와 벌레 노랫소리가 모두 잡아먹힙니다. 도시에서는 온갖 기계 소리와 손전화 소리가 뒤엉켜 귀가 아픕니다. 소리가 소리답지 못하고, 소리를 소리로 즐기기 어렵습니다. 소리가 없는 도시라면, 노래가 없는 도시인 셈일까요. 노래가 없는 도시라면, 사랑이 없는 도시라고 할 만할까요.


  《수잔 쉐퍼 맥콜리/박경옥-라브리의 가정교육》(라브리,1989)이라는 책을 봅니다. 라브리는 종교 공동체입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읽히는 책이지 싶은데, 여러모로 배우거나 생각할 대목이 있으리라 여겨 찬찬히 살펴봅니다.


.. 아이들이 ‘선정 도서’들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옛날이야기나 우화, 신화들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아이들은 고대의 영웅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제발 ‘그들의 수준’으로 낮추어서 질이 낮은 이야기를 고르지 마십시오 … 어떤 아이들은 독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 비결은 모두 다 같이 즐기는 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감동적으로 소리내어 읽습니다 ..  (177, 178쪽)


  추천도서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추천도서만 읽히려 한다면, 책읽기가 아주 좁아지고 맙니다. 처음에는 추천도서를 읽더라도, 차츰차츰 ‘스스로 마음으로 찾아서 읽는 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느낍니다. 남이 추천해 주는 책이 아닌, 스스로 나한테 추천해 주는 책을 찾아야지 싶어요. 내 마음에 따라 읽을 책이지, 평론가나 기자 입맛에 따라 읽을 책이 아닙니다. 남들이 많이 읽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읽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느껴야 합니다.


  무엇보다 종이책만 책이 아닌 줄 알아차려야 해요. 밭일도 책읽기요, 아이돌보기도 책읽기입니다. 육아서를 수백 권 읽는 일도 틀림없이 책읽기일 테지만, 육아서 한 권 모르면서 아이를 사랑스레 돌보는 삶 또한 아름다운 책읽기로 가꾸는 빛이라고 느낍니다.


  교사로 일하는 어른이 ‘교육법’을 다루는 책을 많이 읽어야 잘 가르치지 않아요. 아이들 눈빛과 마음빛을 찬찬히 읽을 줄 알 때에 잘 가르칩니다. 책만 읽을 노릇이 아니라, 마음과 사랑과 삶을 읽을 노릇입니다. 책에서만 배울 노릇이 아니라, 마음과 사랑과 삶에서 배울 노릇입니다.


  지구별은 커다랗게 책이기도 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종이를 얻은 뒤 책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나무읽기’를 하면서 책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책입니다. 어디에서나 삶이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사랑이 태어나고, 사랑에서 꿈이 자랍니다. 꿈이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책 하나로 이루어집니다.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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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14] 어울림 | 시로 읽는 책 2014-02-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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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14] 어울림

 


  풀은 흙 품에 안겨 푸르다
  숲은 바람 사이로 빛난다
  사람들은 꿈꾸면서 사랑한다

 


  서로 어우러지는 삶일 적에 저절로 웃음과 노래가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내 땅이 있으면 하루 네 시간쯤 논밭에서 지내면서 즐겁습니다. 네 시간쯤 숲에 깃들어 나무를 주으면서 숲바람을 마시고, 네 시간쯤 천천히 밥을 지어 천천히 먹으면서 기쁩니다. 네 시간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는 여덟 시간쯤 느긋하게 잠들면서 하루가 싱그럽겠지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삶이 된다면, 여덟 시간을 자고 여덟 시간을 돈벌이를 하더라도, 남은 여덟 시간을 사랑스레 누리지 못하지 싶습니다.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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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글 하나로 살아나는 책읽기 | 책 언저리 2014-02-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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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글 하나로 살아나는 책읽기

 


  2013년 11월에 나온 사진책이 있다. 이 사진책을 책상맡에 한참 둔 끝에 2014년 1월에 느낌글을 썼고, 2014년 3월에 나오는 사진잡지에 사진비평으로 느낌글을 실었다. 십일월과 십이월, 여기에 일월과 이월까지 더한 넉 달이 있기에 느낌글이 태어난 셈이다.


  어느 책은 책방에서 장만한 그날 곧장 다 읽어내어 느낌글까지 새삼스레 쓰곤 한다. 어느 책은 장만한 지 여러 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느낌글을 쓰곤 한다. 어느 책은 처음 장만한 뒤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난 뒤 드디어 마음으로 읽혀 느낌길을 쓰곤 한다.


  모든 책은 읽는 때가 있다. 모든 글은 쓰는 때가 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내 책상맡에 놓은 책이 마음으로 스며들 때를 조용히 기다린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 책상맡에서 쓰고픈 글이 샘솟을 때를 천천히 기다린다.


  배고플 때에 밥을 차려서 먹듯이, 마음이 바랄 적에 책을 읽는다. 배고플 때를 헤아려 흙을 일구어 씨앗을 심어 돌보듯이, 마음이 따사롭게 부풀 수 있게끔 아름다운 책을 미리 장만해서 집안에 둔다. 책읽기는 밥먹기와 같다면, 책을 장만하는 일은 씨앗심기와 같다. 책읽기는 삶읽기와 같다면, 책을 장만하는 일은 삶을 아름답게 북돋우려는 손길과 같다. 그리고, 책읽기와 삶읽기는 ‘책을 즐겁게 읽고 난 느낌’을 글로 갈무리하면서 새롭게 살아난다. 느낌글을 쓰면서 책 하나를 새삼스레 헤아리고, 느낌글을 마무리짓고 나서 오늘까지 가꾼 내 삶을 새롭게 깨닫는다.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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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비 오는 날 집 보기) | 그림책 2014-02-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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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 오는 날 집 보기

이와사키 치히로 글/그림
프로메테우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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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9

 


하루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 비 오는 날 집 보기
 이와사키 치히로 글·그림
 프로메테우스 출판사 펴냄, 2002.10.10.

 


  아침 일찍 곁님이 집을 나섭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픈 곁님은 이녁 몸과 마음에 깃든 아픈 뿌리를 스스로 찾아서 달래려고 애씁니다. 쉬운 일일는지 어려운 일일는지 모릅니다. 다만, 곁님한테 아픔이 찾아들었으면 아픔이 찾아든 까닭이 있을 테지요. 내가 아픈 사람하고 같이 살아간다면, 나도 아픈 사람하고 같이 살아가는 까닭이 있을 테지요. 우리 집 두 아이가 아픈 이를 어머니로 두었으면, 아이들로서도 아픈 이를 어머니로 둔 까닭이 있을 테지요.


  아이들이 깊이 잠든 이른아침에 집을 나섭니다. 곁님은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첫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갑니다. 읍내에서는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 테고, 순천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구례로 갈 테며, 구례에서 이웃을 만나 함께 공부할 곳으로 갈 테지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아침에 집을 비운 줄 느즈막하게 알아차립니다. 어머니 없이 지낸 나날이 제법 길기도 해서, 어머니가 또 ‘공부하러’ 나간 줄 깨닫습니다. 두 아이는 마당에서 뛰놀면서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두 송이 핀 동백꽃을 바라봅니다. 몽오리 단단하고 발그스름하게 맺힌 후박나무 밑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그림놀이도 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붓에 물감을 묻혀 “어머니 사랑해 좋아해” 하고 파란 빛깔로 글씨를 적습니다.


.. 엄마가 어디까지 갔는지 보고 올래 ..  (2쪽)


  거의 모든 사람들 귀에는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노래’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 귀에는 풀벌레와 개구리와 맹꽁이가 우는 소리가 ‘노래’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 귀에는 물결소리도 ‘노래’요, 바람소리도 ‘노래’입니다.


  그러면, 자동차나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도 노래가 될까요? 비행기 날아가거나 손전화 울리는 소리도 노래가 될까요?


  어떤 사람은 손전화 울리는 소리를 ‘대중노래’로 바꾸곤 하는데, 이렇게 바꾸면 손전화 울리는 소리는 언제나 노래라고 할 만할까요?


.. 빗방울도 노래를 하고 있네. 참 엄마가 손가락 빨면 안 된댔지 ..  (10쪽)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책 《비 오는 날 집 보기》(프로메테우스 출판사,2002)를 읽습니다. 어머니가 바깥일을 보러 집을 비우는 동안 아이 혼자 집을 보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제 아이는 제법 컸기에 혼자서 집을 봅니다. 웬만하면 어머니와 함께 마실을 갈 법한데, 처음으로 혼자서 집보기로 한 듯합니다. 아이로서는 어머니와 따라 마실을 가는 일도 즐겁지만, 두근두근 설레면서 혼자서 집보기를 하는 일도 즐겁습니다. 처음 겪는 새롭고 재미난 놀이요 삶입니다.


.. 유리창에 내 소원을 써 보았어 ..  (21쪽)


  언제나 아이와 함께 마실을 다니거나 저잣거리에 가셨을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이만 혼자 집에 두고 나서는 길’이 얼마나 설렜을까요. 아이가 집에서 혼자 잘 있는지 얼마나 두근거리면서 궁금할까요. 어머니도 웬만하면 아이와 함께 마실을 가고 싶었겠지요. 어머니도 아이와 함께 마실을 갈 적에 훨씬 즐거웁겠지요.


  그러나, 어머니도 아이도 자라야 합니다. 어머니도 아이도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 품에서 벗어나 씩씩하게 두 다리로 섭니다. 어버이도 아이를 살그마니 놓아 주면서 씩씩하게 두 팔로 기지개를 켭니다.


  새끼 제비는 날갯짓을 익혀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합니다. 어미 제비는 다 큰 새끼 제비한테까지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습니다. 어미 제비라면 훨씬 쉽고 빠르게 먹이를 잡을 테지만, 아이가 크기를 바라니, 눈물을 삼키면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니, 아이 혼자서 집보기를 시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뛰놀기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저희끼리 마당에서 스스로 놀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서 놀기를 바라면서 살그마니 지켜봅니다.


  유리창에 꿈을 손가락으로 적어 봅니다. 마음밭에 사랑을 가만히 씨앗 한 톨로 심습니다. 하얀 종이에 우리 이야기를 그림으로 곱게 그립니다. 가슴속에 부푼 이야기를 그득그득 담습니다. 하루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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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몇 번의 여름 | 우리말 살려쓰기 2014-02-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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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8) -의 : 몇 번의 여름

 

프로그는 대가족을 거느리고 개골개골 요란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몇 번의 여름을 났다. 봄에는 몇 백 마리나 되는 올챙이 새끼들을 낳았고
《캐롤린 베일리/김영욱 옮김-미스 히코리》(한림출판사,2013) 131쪽

 

 몇 번의 여름을 났다
→ 몇 번 여름을 났다
→ 여름을 몇 번 났다
→ 몇 번이나 여름을 났다
 …


  이 보기글을 잘 살피면 “몇 백 마리나 되는 올챙이 새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의’를 넣지 않았어요. “몇 백 마리의 올챙이 새끼”라 하지 않았습니다. 개구리 식구들이 여름을 난다고 할 적에도 이처럼 쓰면 됩니다. “몇 번의 여름”이 아니라 “몇 번이나 여름을 났다”라든지 “몇 번이나 되는 여름을 났다”처럼 쓸 수 있어요. 글차례를 바꾸어 “여름을 몇 번 났다”나 “여름을 몇 번이나 났다”처럼 써도 잘 어울립니다. 토씨 ‘-의’만 덜어 “몇 번 여름을 났다”처럼 써도 됩니다. 4347.2.2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프로그는 큰식구를 거느리고 개골개골 큰소리로 노래하며 몇 번이나 여름을 났다. 봄에는 몇 백 마리나 되는 올챙이 새끼들을 낳았고

 

‘대가족(大家族)’은 식구가 많다는 뜻일 테지요. 일본 한자말 ‘가족’을 ‘식구’로 고쳐쓰면서 ‘큰식구’로 다듬습니다. 그런데 개구리 울음소리를 ‘요란(搖亂)스럽다’고 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소리가 시끌시끌하다면 “개골개골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며”로 손보고, 개구리가 개구리답게 노래를 한다면 “개골개골 시끌시끌”이나 “개골개골 큰소리로 노래하며”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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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12. 2012.6.23. 큰베개에 엎드려 | 책 읽는 아이 2014-02-28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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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12. 2012.6.23. 큰베개에 엎드려

 


  큰베개에 엎드려 놀면 재미있다. 아이도 재미있지만 어른도 재미있다. 어른은 큰베개에 눕거나 엎드려도 팔다리가 밖으로 삐져나온다. 그러나 아이는 온몸을 맡겨도 큰베개를 넉넉히 올라탈 수 있다. 자는 방을 쓸고닦으려고 이불과 베개를 옆방으로 옮겼더니, 큰아이는 베개를 올라타면서 책을 펼친다. 그래, 너는 이렇게 놀아야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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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쌓기 놀이 1 - 쌓으면 재미있지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4-02-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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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쌓기 놀이 1 - 쌓으면 재미있지

 


  숟가락과 젓가락과 연필을 써서 쌓기놀이를 하는 사름벼리. 요 녀석, 허허허. 요렇게 쌓기놀이를 하는 재미는 어디에서 누구한테서 배웠니.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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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에서 찍는 사진입니까 (밝은 그늘) | 사진책 2014-02-28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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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 4세계와의 조우

손승현 저
지오북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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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3월호가 나왔다. 어제 낮에 우리 집에 왔다. 정기구독자한테는 어제 왔으니, 이제 책방에도 배본이 되었을까. <포토닷> 이번 호에 실은 사진비평을 올린다. 사진책 <밝은 그늘>은 인터넷책방에도 여느 새책방에도 없기에 손승현 님 다른 책에 이 글을 붙인다. 이 사진책을 장만하고 싶은 분은 https://www.facebook.com/aprilsnowpress '사월의눈' 출판사 누리집으로 들어가서 여쭈면 된다.

 

..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44

 


어느 자리에서 찍는 사진입니까
― 밝은 그늘
 손승현 사진
 사월의눈 펴냄, 2013.10.31.

 


  여러 사람이 어느 곳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들이나 골짜기나 바다나 숲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여러 사람은 나들이를 간 곳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고는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만 담을 수 없겠다고 여겨, 서로서로 사진기를 가방에서 꺼냅니다. 저마다 찰칵찰칵 찍습니다. 이때에,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낀 여러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이들이 찍은 사진 가운데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모델을 앞에 두고 사진작가 여럿이 둘러싸고는 사진을 찍습니다. 이때에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나 운동선수가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모인 신문기자가 대통령이나 운동선수를 둘러싸고는 사진을 찍습니다. 이때에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뜻밖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으나,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면,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똑같은 아이 하나를 둘러싸고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진을 찍을 적에도 노상 다른 사진이 태어나고, 이웃이나 친척이나 동무가 찾아와서 사진을 찍을 적에도 늘 다른 사진이 태어납니다.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면서 찍는 사진은 늘 다른 사진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스럽네 하고 느끼면서 찍는 사진은 언제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드러납니다.

 


.. 몽골의 경제성장률이 17%, 작년이 12%, 올해도 15%인데 90% 이상이 모두 광산개발과 관련된 지표다. 몽골에 갈 때마다 울란바타르 풍경이 급속도로 바뀐다. 그 안에서 유목민의 삶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곳마다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도시에 사람들이 몰린다. 몽골의 인구가 300만 정도다. 그런데 울란바타르 주민의 비율이 22% 정도였다가 지금은 40%가 넘어간다 … 유목마을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들 중 중학생 되는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돈 많이 벌고 싶어요.”라고 한다. “도시 가서 택시 운전기사 아니면 광산 갈 거예요.”라고. 답이 딱 두 개다 ..  (70∼71쪽)


  이와 달리, 아주 똑같구나 싶은 사진이 태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찍은 사진이 아닌데, 참 똑같구나 싶은 사진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이때에는 ‘표절’이나 ‘도용’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두 사람이나 여러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았는데, 왜 참으로 똑같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까요? 이때에는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을 마음속에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찍으려는 사진이나 사랑스러움을 나타내려는 사진이 아니라, 어떤 욕심이나 꿍꿍이를 품었기 때문에 ‘표절’이나 ‘도용’이라 할 만한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림을 그린 고호 님은 밀레라는 분이 그린 그림을 수없이 따라서 그렸어요. 그런데, 고호 님이 그린 ‘밀레 그림’은 표절이나 도용이 아닙니다. 밀레라는 분이 그린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을 기쁘게 맞아들여 사랑스럽게 붓질을 했기에, 고호 님이 그린 ‘밀레 그림’은 새로운 그림이 됩니다.


  똑같은 자리에서 해돋이나 해넘이를 찍는다 하더라도, 어느 사진은 ‘누군가 찍은 사진을 흉내낸 듯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어느 사진은 ‘이야,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흐르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은 기법이나 표현법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마음으로 드러납니다. 어느 자리에서 찍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제주섬 오름에서 사진을 찍은 김영갑 님을 떠올려 보셔요. 김영갑 님은 으레 똑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자리는 똑같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달랐어요. 김영갑 님은 이녁이 찍은 사진을 선보이면서 ‘똑같은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밝혔어요. 같은 자리에 서도 언제나 다른 사진이 태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름다움을 바라보거나 느끼면서, 내 이웃한테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고 싶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사랑스러움을 깨닫거나 누리면서, 내 이웃한테 사랑스러움을 베풀고 싶어 사진을 찍는 사람은 늘 따사롭습니다.


  꼭 어느 곳에 가야 멋진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느 나라로 찾아가야 훌륭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꼭 인도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네팔이나 부탄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나라를 애써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외딴 두멧시골까지 가야 다큐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몸매 잘 빠진 모델을 찾아야 패션사진이 빛나지 않아요. 사진을 찍으려면,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나누려면, 스스로 마음을 살찌워야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고 싶으면, 스스로 마음을 사랑과 꿈과 빛으로 채워야 합니다.


.. 몽골의 밤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은하수를 보면 경이롭다 못해 한동안 멍해지곤 했다. 여기서 평화로움의 정적을 깨는 단 하나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다 … 내가 마을에 가서 “사진을 찍어 드립니다.”라고 했더니 나이드신 분들은 목욕을 하고 나왔다. 이를 닦고 와야 한다면서 가시는 분도 계시고. 응시 방식의 문제는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점에 있는 것 같다. 사진을 평생 몇 번밖에 안 찍어 본 분들이다. 사진을 뽑아 드리니 가장 중요한 물건들을 놓아 두는 가족사진 옆에 놓더라. 액자에 넣어서 ..  (74, 76쪽)


  손승현 님이 몽골에서 만난 ‘지구별 이웃’과 얼크러진 삶을 들려주는 사진책 《밝은 그늘》(사월의눈,2013)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손승현 님은 몽골 시골자락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슴이 부풉니다. 그렇지만 몽골 시골자락을 벗어나 울란바타르라는 도시로 가면 가슴이 오그라듭니다.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미리내를 올려다보면서 손승현 님 스스로 미리내 마음이 되어, 미리내처럼 빛나는 이야기를 미리내와 같이 밝은 사진으로 갈무리합니다. 돈과 경제개발이 춤추는 도시 한복판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진으로 갈무리합니다.


  몽골 시내 한켠에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작은 ‘지구별 이웃’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시내 한켠에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작은 ‘지구별 이웃’이 있어요. 부산 시내에도, 대구 시내에도, 인천 시내에도, 어디에나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이 있습니다.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을 바라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을 사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작고 예쁜 지구별 이웃이 주눅들도록 하는 사회 얼거리 때문에 마음이 아픈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 마음앓이를 가슴으로 삭히면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사진책 《밝은 그늘》에 나오는 아파트와 선글라스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몽골 사회는 몽골 바깥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까요. 몽골 정치인과 기자와 작가는 몽골을 어떤 빛으로 그리고 싶을까요. 한편, 오늘날 한국 사회는 한국 바깥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까요. 한국 정치인과 기자와 작가는 한국을 어떤 빛으로 그리고 싶을까요. 한국에서 사진가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빛과 그늘로 한국을 살며시 밝힐 만할까요.


.. 뉴욕에 있을 때 전세계에서 온 사진들을 보며 작가가 사는 지리적 환경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음을 느꼈다. 예술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관계를 맺고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 몽골에 가서 본 것은 그들이 냉소적이고 비극적인 일들을 너무 많이 당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희망을 이 사람들을 통해서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그런 것을 보는 따뜻한 마음의 스파이가 되려고 했다 ..  (84, 86쪽)


  겨울이 지나면서 봄이 찾아옵니다. 봄이 흐르면 여름이 찾아옵니다. 여름이 무르익다가 가을이 찾아옵니다. 가을이 저물면서 겨울이 찾아옵니다. 봄이 되어 들판에 푸른 빛이 살아나면 비로소 딸기풀에 하얗게 꽃망울 맺습니다. 딸기꽃이 지는 늦봄부터 딸기알이 빨갛게 익습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여름 문턱에 딸기맛을 보았는데, 이제는 누구나 철없이 딸기알을 사다가 먹습니다. 맨땅에서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머금으면서 풀벌레와 멧새와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고 자란 들딸기나 멧딸기를 먹으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비닐집에 갇힌 채 기계소리를 듣고 난로 열기와 석유내음을 마신 철없는 딸기를 대형마트뿐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에서조차 손쉽게 사다가 먹는 오늘날 한국 사회입니다.

 


  딸기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 딸기를 찍을까 궁금합니다. 딸기와 얽힌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딸기가 마신 바람이나, 딸기가 받은 햇살이나, 딸기가 머금은 빗물이나, 딸기가 들은 맹꽁이 노래나, 딸기가 지켜본 제비춤을 ‘딸기를 찍은 사진’에 살포시 담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능금밭에 섰대서 능금을 사진으로 잘 찍지 않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섰기에 바닷가와 모래밭을 사진으로 잘 찍지 않습니다. 몽골에 간대서 누구나 《밝은 그늘》과 같은 사진책을 빚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어 서로 사귀는 이웃으로 지내면, 몽골에서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콜롬비아에서도 동티모르에서도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언제나 밝은 빛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보입니다. 마음을 열어 서로 사랑하는 동무로 지내면, 늘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흐드러진 무지개 그늘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물합니다. 마음이 움직여 삶이 되고, 마음을 사랑해 사진이 됩니다. 마음이 자라며 꿈이 되고, 마음을 보살펴 사진이 되어요. 4347.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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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는 법 | 책삶+글쓰기 2014-02-28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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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는 법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도시에서는 이맛살을 찌푸릴 일이 으레 있기 때문이다. 짓궂달까, 뻔뻔하달까, 얄궂달까, 어처구니없달까, 그런 사람을 이곳이나 저곳에서 부딪히곤 했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불러들인 셈일까. 내 마음에 티끌이 있어, 다른 티끌이 있는 사람을 끌어당긴 셈일까.


  도시에서라면 한 해 동안 치를 달삯이지만, 시골에서는 ‘도시에서 들이던 한 해치 달삯’으로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시골에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돈이 남는’ 셈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보다, 너무 많은 사람한테 치이지 않을 수 있어 홀가분하다. 시골집에서만 머물면 가장 즐겁다. 아이들과 함께 놀고 먹고 자고 일하고 쉬고 꿈꾸고 사랑하면 더없이 아름답다.


  가끔 시골에서도 여러 사람을 만난다. 스치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시골에서도 아주 드물게 뻔뻔하달까, 짓궂달까, 씁쓸하달까, 안쓰럽달까 싶은 사람을 보곤 한다. 저이는 어쩜 저렇게 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으랴 싶기도 하다. 곁님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문득 깨닫는데, 저이는 저렇게 뻔뻔하달까 짓궂달까 씁쓸하달까 안쓰럽게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 이제까지 살아왔다. 저이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그 모습 그대로이기에 이제까지 살림을 꾸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법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꿈으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꿍꿍이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뻔뻔함으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씩씩함으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야무짐으로 살아간다. 그뿐일 테지. 나는 오늘까지 무엇으로 살아왔을까. 나는 앞으로 무엇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남을 말하기 앞서 내 모습을 돌아보자. 그이들은 바로 나한테 내 삶은 어떤 빛인가 돌아보라고 일깨우려는 뜻으로 나타났는지 모른다.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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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48. 시골스럽게 그림잔치 (2014.2.26.) | 시골아이 2014-02-28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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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48. 시골스럽게 그림잔치 (2014.2.26.)

 


  시골에서는 시골내음을 맡으면서 논다. 시골에서는 시골빛을 그림으로 담는다. 시골에서는 시골살이를 글로 쓴다. 시골에서 살아가니 저절로 시골사람이 된다. 시골아이는 시골집에서 시골놀이를 누린다. 멀리 나가야 하지 않는다. 자가용을 달려야 하지 않는다. 두 다리를 믿고 씩씩하게 걷는다. 두 다리에 기대어 튼튼하게 달린다. 볕이 한결 잘 드는 곳에서는 벌써 동백나무가 꽃잔치를 이루지만, 우리 집은 꼭 두 송이만 터진다. 천천히 봉오리를 벌리는 동백나무 곁에서 그림놀이를 한다. 그림 하나를 그릴 뿐일 수 있지만, 즐거운 그림잔치이다. 작은 새들이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서 재재거리면서 두 아이를 지켜본다. 까마귀와 까치가 하늘을 휘휘 날면서 두 아이를 바라본다. 나도 아이들 곁에 서서 그림잔치를 함께 누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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