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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 지켜보기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4-06-3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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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 지켜보기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뛰노는가를 지켜보듯이 새끼 고양이를 지켜본다. 새끼 고양이는 우리 식구들이 마당에 내려오지 않고 집안에 조용히 있을 적에 마당으로 살몃살몃 눈치를 보면서 나와서 뛰논다. 새벽 다섯 시 반부터 마당에서 삑삑 찍찍 소리가 나기에 후박나무에 멧새가 날아와서 후박알을 따먹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새끼 고양이가 마치 새소리처럼 삑삑 찍찍 소리를 내면서 이웃 밭으로 돌울타리를 타고 넘어가서 놀다가, 다시 돌울타리를 타고 우리 집 마당으로 넘어오며 논다. 이렇게 돌울타리를 넘다가는 대문 밑으로 살살 빠져나가고, 다시 대문 밑으로 살살 들어온다. 어미 고양이가 하는 모든 몸짓을 따라한다.

  까망하양 새끼 고양이가 두 마리이고, 누렁하양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이다. 세 마리가 얼크러지면서 노는 일은 드물고, 세 마리가 따로따로 논다. 어떻게 보면, 한 마리가 둘레를 살펴보는 동안 다른 고양이가 논다고까지 할 수 있다.

  마당에 작은아이 세발자전거가 덩그러니 있다. 세발자전거 때문에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는 눈길이 걸리기는 하지만, 새끼 고양이한테는 세발자전거가 궁금한 것일 수 있으리라.

  한참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는데 큰아이가 잠에서 깬다. 여섯 시 십팔 분. 큰아이는 어제 저녁 아홉 시 즈음 잠들었는데 퍽 일찍 일어났다. 큰아이도 아버지와 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조용히 새끼 고양이 놀이를 지켜보면서 하루를 연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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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통하다通 66 : 이 문을 통해 | 우리말 살려쓰기 2014-06-3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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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0) 통하다通 66 : 이 문을 통해


우리 가족을 포함해 안채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언제나 열려 있는 이 문을 통해 드나들어요

《고은명-후박나무 우리 집》(창비,2002) 55쪽


 이 문을 통해

→ 이 문으로

→ 이 문을 거쳐

→ 이 문을 지나

 …



  보기글에서는 “이 문을 거쳐서 드나들어요”를 뜻하는 낱말로 ‘通하다’를 넣었습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그러면, 처음부터 ‘거쳐서’를 넣으면 됩니다. ‘거쳐서’를 뜻하는 외마디 한자말을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느 문을 거쳐서 어디로 드나든다고 한다면, “어느 문으로” 어디를 드나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거치’기도 하고 ‘지나’기도 하며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드나듭니다. 4347.6.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식구까지 해서 안채에 사는 사람들도 거의 다, 언제나 열린 이 문으로 드나들어요


‘가족(家族)’은 일본 한자말이니 “우리 가족”은 “우리 식구”로 다듬고, ‘-을 포함(包含)해’는 “-까지 해서”나 “-을 비롯해서”로 다듬습니다.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다’나 ‘거의 모두’로 손보고, “열려 있는”은 “열린”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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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최종규) | 숲노래가 지은 책 2014-06-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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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방에 배본된 제 책으로는 21번째 책인 <책빛숲>이 나왔습니다. 지난 2013년 9월에 나온 <책빛마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새책방에 배본되지 않았습니다. 1인잡지 <우리말과 헌책방>은 11호까지 냈지만 7호까지만 새책방에 배본되었습니다. 1인잡지 일곱 권을 뺀다면 열다섯 번째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장만해서 기쁘게 읽으시고 널리 나누어 주셔서, 이 책이 오래도록 사랑받으면서 새로운 빛이 태어나도록 이끄는 밑힘이 되도록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마을 살리는 책빛, 도시 살리는 책숲



  책방은 책방이기에 책숲이다. 책은 책이기에 책빛이다. 책숲이 되는 책방 한 곳이 마을에 있어 마을이 빛난다. 책빛이 되는 책이 책방에 깃들 수 있기에 도시가 환하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커다란 책방이 있어서 도시가 빛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커다란 책방에서 더 많은 책을 살펴보거나 장만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도시가 빛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커다란 학교에서 더 많은 교재와 교과서로 학문을 익히더라도 도시가 빛나거나 나라가 빛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책은 더 많이 팔려야 책이 되지 않는다. 책방은 더 크거나 더 넓어야 책방이 되지 않는다. 책은 제대로 읽힐 수 있을 때에 책이다. 책방은 사람들한테 제대로 책숲이 될 수 있는 터전이어야 책방이다. 더 커다란 건물로 지어야 학교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넋으로 아름다운 꿈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 학교이다. 건물이 없어도 사랑과 꿈을 가르치면서 배운다. 건물이 작아도 사랑과 꿈을 나누면서 가꾼다.


  먼 옛날부터 아무런 책이 없었어도 사람들은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가르치면서 배웠다. 먼 옛날부터 아무런 교사도 학자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풀을 뜯어서 밥을 먹고 풀잎으로 바구니와 돗자리를 짰으며 풀잎(짚)으로 지붕을 얹었다. 그리고, 풀잎에서 실을 뽑아서 옷을 지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학교를 수십 년에 걸쳐 다니지만, 스스로 밥을 짓지 못하고 옷을 짓지 못하며 집을 짓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될 뿐이고,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손에 쥘 뿐이다.


  작은 헌책방 〈아벨서점〉이 있다. 작은 헌책방은 그야말로 작다. 이 작은 헌책방에도 책은 10만 권 20만 권 30만 권, 이럭저럭 갖춘다. 그런데, 이 작은 헌책방에 책이 몇 만 권, 또는 수십만 권쯤 있다고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이 작은 헌책방은 더 많은 사람들한테 더 많은 책을 팔 생각이 없다. 이 작은 헌책방은 한 사람이라도 가슴에 빛을 품기를 바란다. 책에 서린 빛을 사람들이 알아보고는, 책손 스스로 ‘빛나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시중 새책방에서 절판되어 사라진 책을 우리한테 잇는 징검다리인 헌책방이다. 도서관에서 안 갖추거나 도서관에서 대출실적이 없다면서 버린 책을 그러모아 새롭게 숨을 불어넣는 헌책방이다.


  작은 헌책방 〈아벨서점〉은 인천 배다리에 있다. 인천 배다리는 헌책방거리이다. 〈아벨서점〉을 비롯해서 여러 헌책방이 있다. 〈아벨서점〉 한 곳이 있어 배다리 헌책방거리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벨서점〉 한 곳이 없으면 배다리는 살아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다리에 있는 〈집현전〉과 〈대창서림〉과 〈한미서점〉과 〈삼성서림〉과 〈나비날다〉는 저마다 제 빛을 가꾸거나 보듬으면서 어깨동무를 한다. 더 돋보이는 책터가 아니고, 더 나은 책마당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는 책잔치이다.


  커다란 자리에서 으리으리한 연출을 할 때에 ‘국제도서전’을 이루기도 할 텐데, 따로 며칠쯤 날을 잡아서 벌여야 책잔치를 이루지 않는다. 작은 헌책방 한 곳에서 작은 헌책 하나를 찾아내어 손에 쥘 적에도 언제나 책잔치이다. 책을 손에 쥔 사람들 가슴에 두근두근 설레며 기쁜 마음이 샘솟을 때에 비로소 책잔치이다. 헌책방 〈아벨서점〉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또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책 하나 찾으려고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한테, 빛과 숨결과 노래와 꿈과 사랑을 들려주고 싶다. 함께 빛을 보고, 함께 숨을 쉬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꿈을 꾸며, 함께 사랑을 하고 싶다.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는 최종규는 2014년에 마흔 살이다. 최종규는 열여덟 살부터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드나들었다. 작은 헌책방 한 곳을 스물세 해째 단골이 되어 드나든다. 헌책방에서 만난 작은 책이 발판이 되어 국어사전을 만드는 밑힘을 얻는다. 헌책방에서 듣고 나눈 이야기를 씨앗으로 삼아 국어사전을 가꾸는 밑거름으로 쓴다.




  참으로 작은 헌책방에 무엇이 있기에 스물세 해를 단골로 드나들 수 있을까? 인천광역시는 2015년 ‘세계 책의 도시’로 뽑혔다고 하는데, 왜 인천은 ‘책도시’로 뽑힐 수 있었을까? 인천에는 책방이 몇 군데나 있으며, 인천에 있는 크고작은 새책방과 헌책방은 저마다 어떤 빛과 숨결이 있을까?


  마을 살리는 책빛이요, 도시 살리는 책숲이다. 마을 살리는 작은 책방이요, 도시 살리는 책방거리이다. 책은 돈으로 읽지 않는다. 책은 마음으로 읽는다. 책은 돈으로 만들지 못한다. 책은 사랑으로 만든다.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책·빛·숲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과 빛과 숲은 같은 말이다. 책과 빛과 숲은 서로 같으면서 서로 다르다. 책과 빛과 숲은 언제나 하나가 되어 흐른다. 책은 빛이 되고, 빛은 숲이 되며, 숲은 책이 된다. 책은 빛에서 태어나고, 빛은 숲에서 태어나며, 숲은 책에서 태어난다.


  작은 책방지기가 작은 책방을 일구며 살아온 작은 이야기를, 작은 책손이 작은 발걸음으로 찾아온 스물세 해 이야기를 《책빛숲》에 살포시 담았다.




..



글쓴이 소개

: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최종규(40)는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고, 전남 고흥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운영한다. 사진비평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썼고, 인천 골목동네 사진이야기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을 썼다. 한국말 슬기롭게 쓰는 길을 밝히고 싶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뿌리깊은 글쓰기》, 《사랑하는 글쓰기》, 《생각하는 글쓰기》 같은 책을 썼고, 청소년이 나아갈 길 밝히려는 뜻으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책 홀림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같은 책을 썼다. 헌책방 책삶을 북돋우려고 《책빛마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헌책방에서 보낸 1년》, 《모든 책은 헌책이다》 같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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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fe.naver.com/hbooks





..


글쓴이 최종규가 들려주는 이야기



ㄱ. 책방은 책방이기에 책숲이겠지요. 사람은 사람이기에 사람숲일 테지요.



ㄴ. 책방에서 책을 만납니다. 책방에서 책을 읽습니다. 책방에서 책을 삽니다. 책방에서는 물건을 사고팔지 않습니다. 책방에서는 싸구려 물건을 도맷값으로 함부로 넘기지 않습니다. 마음을 밝히거나 살찌우는 책 하나를 알뜰히 건사해서 알맞춤한 책손이 찾아오면 알맞다 싶은 값으로 팝니다.



ㄷ. 헌책방으로 찾아오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모두 교과서와 참고서밖에 볼 줄 모릅니다. 이 아이들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보는 데에도 벅찹니다. 교과서와 참고서에 둘러싸인 채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간대서, 이 아이들이‘책’을 손에 쥐려고 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삶을 일굴 줄 아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드뭅니다. 곧, 책으로 삶을 가꿀 줄 아는 중·고등학교 교사부터 드물겠지요. 책 하나로 삶길 열며, 책 하나에서 사랑길 헤아리는 어른이 매우 드물어요. 우리 아이들이 모두 책을 많이 읽거나 눈이 높아야 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아이들 스스로 이녁 삶을 들여다볼 줄 모른다면 바보가 되겠지요. 아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삶자락을 돌아볼 줄 모른다면 멍텅구리가 되겠지요. 나를 보지 못하니, 내 이웃을 보지 못해요. 나를 느끼지 못하니, 내 동무를 느끼지 못해요. 무엇보다 내 삶을 느껴야, 내 밥을 느끼고, 내 옷과 내 집과 내 마을을 느껴요.



ㄹ. 작은 사람이 작은 꿈으로 작은 책터를 보살핍니다. 작은 사람이 작은 책을 만지며 작은 사랑을 나눕니다. 천천히 이루는 꿈입니다. 하나씩 이루는 꿈입니다. 아름답습니다. 따사롭습니다. 책 문화는 바로 삶 문화입니다. 삶 문화는 곧 책 문화입니다.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이 문화요, 문화는 곧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이에요.




ㅁ. 우리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싼 물건’을 찾거나‘아주 드문 자료’를 캐낸다는 마음을 넘어서서‘내 마음 움직이는 이야기 하나’를 만나려는 매무새라면, 덧붙여‘지은이 삶을 고이 돌아보면서 내 삶 차곡차곡 일굴 슬기와 빛줄기’를 얻는 길동무나 스승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달라집니다. 헌책방은 앞으로도 목숨 줄 길이길이 이어 갈 책삶터, 책누림터, 책만남터, 책즐김터입니다.



ㅂ.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헌책은‘내가 이 책을 사서 읽기 바란다’해서 짠 하고 나타나지 않을 뿐더러, 어디에서“이 책 좀 보내 주셔요.”하고 바라지 못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책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미리 여럿 갖추어 놓으며 책손이 알아보고 사 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ㅅ. 골목동네 삶을 글이나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마땅히 골목동네 한 자락에 내 살림집이나 일방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골목동네 삶을 알아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아침부터 낮과 저녁과 밤과 새벽을 두루 골목동네에서 지내면서 봄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을 날씨와 흐름과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안아야‘골목동네 맛을 조금 보았다’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 아닌 구경꾼으로서는, 제아무리 뻔질나게 찾아든다 해서 골목동네를 알거나 읽을 수 없어요. 헌책방을 읽을 때에도 언제나 똑같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 찾아갔대서 인천 배다리를 안다 할 수 없습니다. 인천 배다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한 주에 몇 차례씩 드나들지 않는다면 주민등록으로는 배다리 사람일 테지만,‘ 헌책방거리 이웃’은 되지 못해요. 헌책방 일꾼 이름을 알거나 얼굴을 안다고 헌책방을 알 수 없을 뿐더러, 헌책방 헌책을 알 턱이 없습니다.



ㅇ. 나는 고향 인천을 떠나 전라도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버이를 따라 인천사람이 되었다가 음성 사람도 되었다가 이제는 고흥 사람이 됩니다. 우리한테 삶이란 무엇일까요.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살아가는‘아벨서점’책지기 한 분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책을 만질까요. 춘천을 떠나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는‘아벨서점’책지기 한 분은 또 어떤 넋으로 날마다 책을 보살필까요. 책에서 읽는 빛은 삶빛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빛이 책마다 깃듭니다. 책에서 누리는 빛은 사랑빛입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빛이 책마다 서립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빚은 고운 넋을 책방지기가 알뜰살뜰 보듬어 책시렁을 튼튼하게 짭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시렁이 아름다운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오래오래 되읽을 만한 사랑스러운 책을 찾거나 살핍니다. 오늘 하루 만난 책들을 한데 그러모아 가슴에 폭 안은 뒤 가방에 담습니다.



ㅈ. 읽고 삭히고 살아갑니다. 읽고 생각하고 사랑합니다. 읽고 어깨동무하고 웃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머리에 지식을 담고 싶기 때문이 아니에요. 책을 읽는 까닭은 착하게 살고, 즐겁게 살며, 아름답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다녀야 학교가 아니에요. 스스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졸업장을 따야 학교를 다닌 셈 아니에요. 부엌에서 부엌일 하고, 아이들과 복닥이며 아이 돌보았어도 학교를 다닌 셈입니다. 책방이 곧 학교입니다. 도서관도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시골 논밭도 학교가 되며, 공장이나 회사도 학교가 됩니다. 어디나 학교가 되지요.




ㅊ.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지 않아요. 삶을 제대로 사랑해야지요. 책을 더 가까이해야 하지 않아요. 삶을 아름답게 일구어야지요. 삶을 제대로 사랑할 때에 책을 제대로 사랑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일굴 때에 책을 아름답게 다룹니다. 삶을 제대로 모르면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삶을 알뜰살뜰 사랑하지 못하면서 책을 슬기롭게 사랑하지 못합니다.



ㅋ. 책을 더 읽었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책을 덜 읽었기에 안 훌륭하거나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그저‘책을 읽은’사람입니다.



ㅌ. 해와 바람뿐이 아닙니다. 빗물과 냇물이 없으면 지구별 모든 도시는 하루아침에 말라비틀어집니다. 흙과 풀과 나무가 없으면 지구별 모든 도시는 곧장 무너집니다. 풀벌레와 새와 물고기가 없으면 지구별은 어찌될까요?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핵발전소나 공장이나 골프장이 없대서 지구별이 무너지지 않아요. 손전화를 못 쓰거나 인터넷이 막히거나 학교가 문을 닫는대서 지구별이 흔들리지 않아요.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삶을 누립니다. 삶을 바라볼 때에 삶을 즐깁니다. 삶을 누리거나 즐길 때에 책을 손에 쥡니다. 책을 손에 쥐어 삶을 깨달을 수 있다면, 저마다 스스로 어떤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하루를 빛낼 때에 웃음꽃이 피어나는지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ㅍ. 똑같은 책 한 권이더라도 책방마다 매무새가 다릅니다. 똑같은 책 한 권이라 하더라도 책방지기마다 다르게 건사합니다. 한결 마음을 쏟는 책방이 있고, 대수롭지 않게 꽂는 책방이 있어요. 모두 아름다운 책입니다. 모두 아름다운 책방입니다. 갓 문을 연 책방도 아름답고, 마흔 해를 씩씩하게 살아온 책방도 아름답습니다. 헌책방 할머니도 아름답고, 헌책방 언니도 아름답지요. 헌책방 아저씨도, 헌책방 오빠도, 헌책방 아지매도, 헌책방 누나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ㅎ. 책에는 빛을 담습니다. 책에 담긴 빛은 숲내음이 납니다. 빛은 숲에서 곱게 퍼집니다. 빛이 곱게 퍼지는 숲에서‘책으로 태어날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숲은 나무를 품습니다. 숲이 품은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듭니다. 잘린 나무는 종이가 되는데, 종이가 되는 나무는 오래도록 숲에서 살아오며 누린 빛이 서립니다. 종이에 글과 그림과 사진을 앉힐 적에 숲내음이 고운 빛으로 퍼지고, 책 한 권 손에 쥔 사람들은 책과 빛과 숲을 함께 누립니다. 책·빛·숲, 이 세 가지는‘삶’을 나타내는 다 다른 낱말이자 다 같은 말마디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



헌책방 〈아벨서점〉 책지기 이야기



ㄱ. “내가 바로 신이에요. 신은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책을 보는 일은 바로 신을 찾는 일이죠.”



ㄴ. “사람들이 책을 귀하게 여길 줄 알도록 이끌며 쉴 수 있는 북카페, 쉼터 하나 만들고 싶어요. 책 하나에 깃든 깊은 얼을 깨닫도록 하고 싶어요.”



ㄷ. “헌책방 오래 하니 좋은 사진 보는 눈도 높아져.”



ㄹ. “새로운 책이 매일매일 나오잖아요. 우리가 책방 안 했으면, 이런 책 어떻게 봤겠어요? 매일매일 충만한 삶인 거예요.”



ㅁ. “책이라는 거는 길이에요.”



ㅂ. “사람은 있잖아요, 가슴이 있어야 해요.”



ㅅ. “…… 책방이라는 것도 사실 책방 자체가 책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 상황으로선, 뭐야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거잖아, 책방을. 배운 사람들 안 하잖아. 뭐가 안 배워져서 못 하냐 하면은 생각을 못 배워서 못 하는 거예요. 아세요? 그렇게 수없이 책들을 봤는데 멋은 배웠는지 모르지만 지식나부랭이들은 입으로 쫑알거리는지는 모르지만은 생명을 못 배웠기 때문에 헌책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이게 우리 사회의 폐단이고 우리가 끊임없이 뭐가 되는지 알아요? 음? 한쪽으로? 응? 미개한 지국으로 가고 있잖아요, 지금. 지식나부랭이 그렇게 많이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세상을 못 바꿀 수가 있어? 그렇지 않아요? 그건 아니라고…….”




ㅇ. “헌책방에서 일할 사람은, 책방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이면 돼.”



ㅈ. “손노동이 없는 사회가 사람의 사회이겠어? 귀신의 사회이겠지. 그래서, 애들도 몸소 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ㅊ. “우리는 카드도 안 해요. 정성껏 돈 가져와서 책 사 가기를 바라지. …… 책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라는 거야. 지식으로 만들지 말고. …… 헌책방이 나한테 학교가 된 거라. …… 이제는 책방들이 모여서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 책과 책방에 대한 예우…… 책방을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곳으로 보는 것은 아니고, 책은 역사가 담긴 것인데, 이런 생각을 잃어버리면 밀려날밖에 없는 것이고.”



ㅋ. “참고서로 책방이 움직이는 시대가 나타나서, 20∼30% 할인해서 파는 데가 있으며, 책방이 한꺼번에 30군데씩 사라지게 하는 폭력이 나타나면서, 이런 시대에 지식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건 책장사인지 무슨 장사인지……, 우린 그렇게까지 가지 말자……, 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양심을 살게 하고, 정까지 지키고, 정직하게 팔면, 동네마다 서점이 살아나지 않겠는가. 자기들도 죽겠으니까 그렇게 하겠지만.”



ㅌ. “책을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책은 바로 우리 가슴이에요. 책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요? 책은 바로 우리 가슴에 있어요.”


(최종규 . 2014)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최종규 저
숲속여우비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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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 원 책읽기 | 책삶+글쓰기 2014-06-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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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 원 책읽기


  내가 맞돈으로 번 돈이 얼마쯤인가 돌아본다. 1998년 1월부터 1999년 7월까지 신문배달을 하면서 다달이 십만 원짜리 적금을 부었으니, 이무렵 이백만 원쯤 모았지 싶다. 1999년 8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첫 해에는 다달이 육십이만 원 일삯을 받아 사십 만원을 적금으로 넣었으니, 한 해 동안 오백만 원 즈음 모았지 싶다. 2001년 1월부터는 다달이 백만 원을 받았고, 백만 원 받던 해에는 육십만 원을 적금으로 넣었으며, 일삯이 오를 적마다 적금도 늘려, 2003년에는 다달이 백팔십 만원 즈음 일삯을 받으면서 백이십만 원쯤 적금으로 넣었다.

  요즈음 도시에서는 전세를 사는 사람들한테 전세값으로 갑자기 오천만 원을 더 내라 하든지 일억 원을 더 내라 하든지, 이렇게 쉬 말한다고 한다. 곰곰이 돌아본다. 한 해 전세값으로 오천만 원을 더 내려면, 다달이 사백만 원쯤 모아야 하는 셈인가. 한 해 전세값으로 일억 원을 더 내려면, 다달이 팔백만 원쯤 모아야 하는 셈인가.

  도시에서 어떤 일을 하면 ‘한 해 전세값 오천만 원’에 이르는 ‘한 달 사백만 원 모으기’를 할 수 있을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돈을 얼마나 모아야 비로소 ‘느긋한 내 집’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 집 네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 시골집(97평)은 세 곱 바가지를 쓴 값이 ‘구백만 원’이었다. 지붕과 천장과 살림살이를 고치는 밑돈은 천오백만 원쯤 들어가지 싶다. 도시에서 집임자가 올리고 싶어하는 돈을 헤아린다면, 시골에서 ‘내 집’을 장만해서 살면 참 넉넉하리라 본다. 다만, 삶터를 시골로 옮기면 도시에서 누리던 일자리는 얻기 힘들겠지. 그러나, 더 생각해 보면, 삶터를 시골에 두면서, 여느 날에는 도시에서 ‘잠만 자는 작은 집’을 눅은 달삯방으로 얻어도 되리라 느낀다. 한 주에 닷새를 일한다면, 금요일에 일을 마치고 시외버스를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금·토·일을 누린 다음, 월요일 새벽에 시외버스를 달려 도시에서 일하러 나올 수 있겠지.

  주말에라도 시골에서 삶을 가꾸는 이웃이 늘면 여러모로 재미있으리라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주말에라도 시골에서 천천히 삶을 가꾸다 보면, 애써 도시에 머물지 않아도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을 만하다. 시골에서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는다면, 아주 부드럽게 도시를 떠날 수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즐겁게 지내면, 도시에 있는 집임자는 ‘한 해 전세값 오천만 원 껑충 올리기’나 ‘한 해 전세값 일억 원 훌쩍 올리기’ 같은 짓을 섣불리 못하겠지.

  집임자가 세입자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슬픈 굴레를 어떻게 바꿀까. 집임자가 돈바라기로만 흐르는 가녀린 수렁을 어떻게 고칠까. 세입자가 도시를 떠나면 된다. 집임자가 아무한테도 집을 내놓지 못해 집삯을 못 벌게 하면 된다. 참말 그렇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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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생물학적 1, 2, 3 | 우리말 살려쓰기 2014-06-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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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911) 생물학적 1 :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즉, 결코 각자의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이 시설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김성오 옮김-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물결,2003) 75쪽


 각자의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 저마다 어른으로 자라서

→ 저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 자기 나이를 먹어 가는 가운데

 …



  생물학이든 물리학이든 ‘-적’만 붙이면 ‘생물학적’도 되고 ‘물리학적’도 됩니다. ‘철학적’이나 ‘교육학적’이나 ‘문학적’도 되겠지요. 이처럼 ‘-적’은 한자로 이루어진 낱말 뒤에 아주 잘 들러붙습니다. 이런 쓰임새가 예부터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삶터에 이와 같이 두루 쓰인 때는 일제강점기부터이지 싶습니다. 이에 앞서는 우리 말글 어느 자리에도 ‘이런 적’이나 ‘저런 적’ 같은 말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적’을 붙이지 않고 생각과 뜻을 두루 펼쳤으며, ‘-적’이라는 씨끝은 아랑곳하지 않고 느낌과 마음을 골고루 나누었습니다.


  한국말이나 한겨레 말씨가 아닌 ‘-적’붙이인 터라, 귀로 듣거나 글에서 읽는 ‘-적’붙이 말투는 우리 삶이나 발자취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깊이 뿌리를 내려 하지만, 이 말투는 앞으로도 한겨레 말씨가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예부터 지식인이 지식을 자랑하면서 쓰던 말투요, 이제는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투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런 말투를 왜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 아무렇지 않게 쓸까요? 신문과 방송과 책을 지식인이 거머쥐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교과서를 지식으로 가르칠 뿐, 삶이나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입시교육을 할 뿐, 삶을 가르치거나 꿈이나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학교에서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르치지 않으며, 우리 둘레 어느 곳에서도 한국말을 아름답게 주고받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생물학적 이론을 이용해서

→ 생물학 이론으로

→ 생물학 이론을 펼쳐

 생물학적 산소요구량

→ 생물이 살며 마시는 산소

→ 생물이 마셔야 하는 산소

 전직 대통령의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 죽은 옛 대통령이 아닌

→ 죽은 옛 대통령 이야기가 아닌

 12쌍둥이 임신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 열두 쌍둥이는 누구도 갖기 어렵다

→ 우리 몸으로는 열두 쌍둥이를 도무지 밸 수 없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생물학적’은 없습니다. ‘생물학(生物學)’만 올림말입니다. 이 낱말은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와 달리 ‘철학적’이나 ‘문학적’ 같은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실립니다.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와 비슷한 말꼴로 “철학적인 사유를 거쳐서”라고 말할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적인 숙성을 거쳐서”라고 말할 분 또한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윤리학적인 반성을 거쳐서”라고 말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이 자라면서”나 “깊이 생각을 해서”나 “문학으로 곰삭혀서”나 “마음 깊이 뉘우쳐서”처럼 꾸밈없이 말을 하거나 쉽게 글을 쓰는 분들은 차츰 줄어듭니다. 지식인부터 지식을 자랑하듯이 글을 쓰고, 여느 사람은 지식자랑 말씨를 흉내냅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하고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지 못하며, 여느 어버이도 아이들과 고운 말을 좀처럼 못 나눕니다. 문학을 하건 철학을 하건 과학을 하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라고 해서 남다르지 않고, 조용히 글쓰기를 즐기는 숱한 사람들 또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람이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우리들은 스스로 한겨레 말투를 잊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글투를 내버립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 말이 뿌리내리도록 힘쓰지 못할 뿐 아니라, 가로막기까지 합니다. 몸뚱이는 커지고 지식은 늘며 돈은 가득가득 넘치지만, 커진 몸뚱이를 다루는 마음결이 밑바닥입니다. 지식을 가누는 넋이 모자랍니다. 돈을 간수하는 손길이 차디찹니다. 4340.6.22.쇠/4342.8.22.흙/4347.6.30.달.ㅎㄲㅅㄱ.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곧, 저마다 나이를 먹고 자라서도 도무지 이 시설을 떠날 수가 없는 셈이다


‘즉(卽)’은 ‘곧’이나 ‘그러니까’로 손보고, ‘결(決)코’는 ‘조금도’나 ‘도무지’로 손봅니다. “성장(成長)을 거치며”는 ‘자라며’나 ‘크며’로 다듬고,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는 “떠날 수가 없고 만다”나 “떠날 수가 없는 셈이다”나 “떠날 수가 없다”로 다듬어 줍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520) 생물학적 2 : 생물학적 아버지


물론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의 어머니에게 남편에 대해 물어도 확실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36쪽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저를 낳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짝꿍이 된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퍽 많은 아이들은 ‘어머니는 누구인지 알’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보기글입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에서는 이 대목을 더 뚜렷하게 말하려는 뜻에서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처럼 적었습니다.


 생물학으로 따지는 아버지

 생물학으로 나누는 아버지

 생물학에 따른 아버지


  그러니까, 생물학으로 보았을 때 남자와 여자로 나누니, “생물학으로 나누는 아버지”와 “생물학으로 나누는 어머니”가 있다는 소리로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나누는 말마디는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이와 같이 나누어야만 “네 참 아버지가 누구”이고 “너를 낳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가리거나 밝히는 말마디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태어나게 한 아버지

 씨를 준 아버지

 씨를 뿌린 아버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예부터 “씨를 준” 사람을 놓고 사내라 했으니, 이 자리에서도 “씨를 준 아버지”라 하면 알맞으리라 싶습니다. 또는 “씨를 뿌린 아버지”라 할 수 있습니다. “씨를 남긴 아버지”라 해도 됩니다. 이런저런 꾸밈말 하나 없이 ‘아버지’라고만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2.8.22.흙/4347.6.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마 저를 낳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 어머니한테 남편이 누구인지 물어도 뚜렷이 말을 못하는 때가 잦다


‘물론(勿論)’은 ‘뭐’나 ‘마땅한 소리이지만’이나 ‘아마’로 다듬고, “아이의 어머니에게”는 “아이 어머니한테”로 다듬습니다. “남편에 대(對)해 물어도”는 “남편이 누구인지를 물어도”나 “남편은 무얼 하는지 물어도”로 손질하고, “확실(確實)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境遇)”는 “뚜렷이 대답을 못하는 때”나 “제대로 말을 못하는 때”로 손질해 줍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84) 생물학적 3 : 생물학적인 형식


생물학적인 형식은 개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나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생물학적인 형식을 뛰어넘어 영혼의 교감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루리-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북극곰,2014) 117쪽


 생물학적인 형식

→ 생물학에 따른 형식

→ 생물학 틀로 보면

→ 겉으로 보면

→ 겉모습으로는

→ 몸뚱이를 보면

 …



  이쪽은 개이고 저쪽은 사람이며 그쪽은 나무라 한다면, 이는 겉으로 바라보면서 나누는 틀입니다. 또는 눈으로 살피면서 가르는 모습입니다. 굳이 “생물학적인 형식”과 같이 어렵게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한 마디로 ‘겉모습’이나 ‘생김새’로 쓰면 됩니다. 쉽게 쓰면서 쉽게 생각을 나눕니다. 쉽게 쓰는 글에서 고운 빛이 흐릅니다. 4347.6.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겉으로 보면 개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나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과 믿음은 겉모습을 뛰어넘어 넋으로 사귀도록 이끕니다


‘형식()’은 ‘틀’이나 ‘모습’으로 다듬습니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바로잡습니다. ‘진정(眞正)한’은 ‘참된’이나 ‘참다운’으로 손보고, “영혼(靈魂)의 교감(交感)을 가능(可能)하게 만듭니다”는 “넋으로 사귀도록 이끕니다”나 “마음으로 사귀도록 이끕니다”로 손봅니다. ‘우정(友情)’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믿음’으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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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는 마음 (책빛숲) .. | 숲노래가 지은 책 2014-06-3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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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


  새로운 책을 선보입니다. 책은 지난주에 나온 듯하지만, 아직 책방에 들어가지 않은 듯하고, 나한테도 오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오겠거니 하고 잔뜩 꿈꾸며 기다렸으나, 또 지난주에 받으면 곧바로 우체국으로 가져가서 하나하나 부치려 했으나, 한 주를 넘겨 새 월요일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꼭 올 테지요. 얼른 내 새로운 책을 받아쥐고 싶으며, 얼른 이 새로운 책을 내 아름다운 이웃과 고마운 분들한테 선물하고 싶습니다. 4347.6.30.달.ㅎㄲㅅㄱ

..

- 책이름 :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 펴낸곳 : 숲속여우비
- 글과 사진 : 최종규

..

달마다 1000권씩 팔아서 즐거이 읽힐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 주셔요 ^^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최종규 저
숲속여우비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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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지인知人 | 우리말 살려쓰기 2014-06-3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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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62) 지인 1


물론 몇몇 지인들이야 있었지만, 내가 옮기고자 한 지역은 아니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125호(2006.10.) 59쪽


 몇몇 지인들이야 있었지만

→ 몇몇 아는 사람들이야 있었지만

→ 몇몇 사람을 알았지만

→ 아는 사람이 몇몇 있었지만

 …



  한국말사전은 역사사전이 아닙니다. 인물사전도 아닙니다. 백과사전도 아닙니다. 백과사전은 백과사전다워야 하고 인물사전은 인물사전다워야 합니다. 역사사전 또한 역사사전다워야겠지요.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사전답게 올림말을 고르고 말풀이를 가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사전은 저마다 제구실을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 한국말사전처럼 제구실을 못하는 사전은 없다고 느낍니다. 정작 다루어야 할 낱말풀이와 보기글 쓰임새는 아무렇게나 달거나 돌림풀이(순환정의)가 되기 일쑤이고, 바탕 낱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갈피를 못 잡습니다.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낱은 업신여기고 한자말을 우러르는 데다가, 프랑스 역사학자와 영국 철학자 이름까지 실으니, 이 무슨 한국말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모두 여덟 가지 한자말 ‘지인’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쓰는 지인은 몇 가지가 될까요? ‘至人’이나 ‘至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런 말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요? 이런 말을 한국말사전에서 다루어야 할까요?


  “아는 사람”을 뜻하는 ‘知人’ 하나만큼은 한국말사전에 실을 수 있다고 할 분들이 있을 텐데, ‘知人’ 또한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사전에 이 낱말을 싣는다고 한다면 ‘외국말’로 실어야지 ‘한국말’로는 실을 수 없습니다.


 그 친척과 지인 관계까지도 (x)

 그 친척과 아는 사람까지도 (o)


  “아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한자말 ‘知人’을 받아들여서 쓰는 일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한국말은 ‘아는 이’나 ‘아는 사람’일 뿐입니다. 또는, ‘이웃’이나 ‘동무’입니다.


  덕이 높으면 덕이 높다고 할 일이고, 마음이 어질면 어질다고 할 일이며, 마음이 따뜻하다면 따뜻하다고 할 일입니다. 우리한테는 ‘지인(遲引)’도 ‘지연(遲延)’도 아닙니다. ‘늦어지다’나 ‘질질 끌다’나 ‘더디어지다’입니다.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사전 구실을 제대로 못하니, 올림말이 엉망이면서 사람들 말씀씀이마저 엉망이 됩니다. 4339.10.26.나무/4341.8.1.쇠/4347.6.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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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몇몇 사람을 알았지만, 내가 옮기고자 한 곳은 아니었다


‘지역(地域)’은 ‘곳’으로 고쳐씁니다. ‘물론(勿論)’은 ‘뭐’나 ‘그럭저럭’이나 ‘이래저래’나 ‘두말할 것 없이’로 손볼 만한 낱말인데, 글흐름으로 본다면 ‘아무튼’이나 ‘그래서’나 ‘그러니까’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지인(至人) : 더없이 덕(德)이 높은 사람

 지인(至仁) : 더없이 인자함

 지인(知人)

  (1) 아는 사람

   - 도현의 가족뿐 아니라 그 친척과 지인 관계까지도 세밀히 파악하고 

  (2)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아봄

 지인(知印) : [역사]고려 시대에, 중서문하성과 도평의사사에 속한 구실아치

 지인(指印) = 지장(指章)

 지인(智仁) : [역사] 통일 신라 시대의 중

 지인(智印) : [불교] 보살의 지혜(智慧)를 나타내는 표지인 인계(印契)를 통틀어 이르는 말

 지인(遲引) = 지연(遲延)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06) 지인 2


얼마 전 지인에게서 가정 폭력 문제가 있는 어느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루리-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북극곰,2014) 341쪽


 지인에게서

→ 아는 사람한테서

→ 어떤 사람한테서

→ 이웃한테서

→ 동무한테서

 …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일 테지요. 그러면 ‘이웃’은 누구일까요. 말 그대로 ‘이웃’일 테지요. 이웃 가운데 아주 가까운 사이를 ‘이웃사촌’이라고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웃이라 해서 모두 가깝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나와 가까운 곳에서 사는 사람을 이웃이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는 사람”이란 ‘이웃’입니다. 조금 더 가까이 “아는 사람”일 때에는 ‘알음알이’라고 합니다. 꽤 많이 가까운 “아는 사람”일 적에는 ‘몸알리’라고 해요. 허물이 하나도 없이 매우 가까운 사이인 “아는 사람”이라면 ‘너나들이’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얼마나 알까요. 그리고,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얼마나 아는가요. 4347.6.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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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앞서 이웃한테서 ‘식구한테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마 전(前)”은 “얼마 앞서”로 다듬습니다. “가정(家庭) 폭력(暴力)에 문제(問題)가 있는”은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식구를 때리는”이나 “식구한테 주먹다짐을 하는”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어느 가족(家族)에 관(關)한 이야기”는 “어느 식구 이야기”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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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를 더 많이 얻는 길 | 책삶+글쓰기 2014-06-30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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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를 더 많이 얻는 길



  무화과알을 더 많이 얻는 길을 석 달쯤 앞서 배웠다. 아니, 아마 더 일찌감치 배웠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배웠다’고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배웠다기보다는 ‘보았다’고 해야 옳지 싶다.


  무화과알을 더 많이 얻으려면 해마다 가지를 뭉텅뭉텅 자르면 된다. 능금알도 배알도 포도알도 이와 같다. 해마다 나뭇가지를 뭉텅뭉텅 잘라 주면 된다. 감알도 이와 같다. 감알을 더 많이 더 크게 얻고 싶다면, 가지를 뭉텅뭉텅 자르면 된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더 치고 자꾸 쳐야 열매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 열매를 더 많이 얻는 길은 오직 이 하나뿐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열매를 열 알 먹으면 배부른가, 배가 덜 부른가. 열매를 스무 알 먹으면 배부른가, 배가 덜 부른가. 열 알 거둔 열매 가운데 다섯 알을 이웃과 나눌 적하고, 여섯 알이나 일곱 알을 나눌 적하고, 어느 쪽이 배가 부를까. 꼭 스무 알이나 서른 알을 거두어서 열 알이나 스무 알쯤 이웃하고 나누어야 배가 부를까.


  해마다 가지를 끔찍하게 잘린 채 열매를 내놓아야 하는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 몇 해 못 살고 죽는다. 열매장사를 하는 이들은 으레 열 해쯤 이렇게 나무를 들볶다가 새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오늘날 열매장사는 나무 한 그루로 열 해 동안 엄청나게 열매를 뽑아내도록 들볶는단다.


  들볶인 나무가 내놓는 열매를 먹는 사람은 얼마나 즐거울 만할까 궁금하다. 들볶인 나무가 피처럼 내뱉은 열매를 먹는 사람은 얼마나 배부를 만할까 궁금하다. 들볶인 닭이 낳은 달걀은 우리한테 얼마나 맛있거나 즐거울까.


  나무 한 그루가 천 해쯤 살면서 나와 내 아이들과 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이 오래오래 두고두고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길을 헤아려 본다. 나로서는 ‘무화과를 더 많이 얻는 길’은 나뭇가지를 해마다 뭉텅뭉텅 자르는 짓이 아니다. 무화과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서 푸르게 고운 그늘을 베풀고, 싱그러운 잎사귀를 선보이면서, 곧잘 열매를 맺는 길이라고 느낀다. 천 해에 걸쳐 누릴 열매를 고작 열 해 동안 울궈내고 싶지는 않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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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꽃에 내려앉는 나비 | 책삶+글쓰기 2014-06-3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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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꽃에 내려앉는 나비



  달걀꽃에 나비가 내려앉습니다. 우리 집 풀숲이나 여느 들이나 빈터에서 하얗게 꽃잔치를 이루는 달걀꽃을 물끄러미 바라볼라치면, 언제나 나비가 이곳에서 춤을 춥니다. 오늘날 퍽 많은 사람들은 망초나 개망초라는 풀을 썩 안 좋아할는지 모르지만, 나비는 이를 가리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나비는 달걀꽃을 퍽 좋아합니다. 아니, 나비가 안 좋아하는 꽃이 있겠느냐만, 어느 나비이든 달걀꽃을 무척 좋아합니다.


  나비가 달걀꽃을 좋아하니 달걀꽃은 꽃가루받이를 한결 잘 할 수 있겠지요. 꽃가루받이를 한결 잘 할 수 있으면 씨앗도 더 널리 퍼뜨릴 테지요.


  요즈음 시골에서는 꽃가루받이를 나비나 벌이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하기 일쑤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나비나 벌을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벌레’로 여기지 않습니다. 나비 애벌레가 남새를 갉아먹는다고 하면서 ‘사람한테 도움이 안 되는 벌레’로 여깁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농약과 살충제를 써서 ‘남새 아닌 풀’을 죽이고 ‘남새이든 남새 아닌 풀이든 내려앉아 꽃가루를 빨아서 먹는 나비’를 죽입니다.


  달걀꽃을 바라봅니다. 예부터 나비는 사람들과 동무였습니다. 아직 애벌레일 적에는 온갖 풀을 조금씩 갉아먹으면서 살고, 다 큰 어른인 나비가 되면 꽃가루받이를 할 뿐 아니라, 우리 두 눈을 즐겁게 해 주기에 오랜 동무였습니다. 이제 현대문명 사회에서는 빈터와 풀밭이 사라집니다. 빈터와 풀밭이 사라지니, 애벌레가 갉아먹을 만한 여느 풀잎이 자취를 감추어요. 여느 풀잎이 자취를 감추니, 사람들이 심은 남새 잎사귀만 갉아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비가 살아남으려면 빈터와 풀밭이 있어야 합니다. 빈터와 풀밭이 있어야 아이들이 뛰놀 자리가 생깁니다. 아이들이 뛰놀아야 이 나라와 지구별이 싱그럽게 되살아납니다. 아이들이 뛰놀면서 이 나라와 지구별이 싱그럽게 되살아나야, 비로소 사랑이 싹터서 자랍니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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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없는 도서관은 때려부수자 | 책 언저리 2014-06-30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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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없는 도서관은 때려부수자



  어릴 적부터 곧잘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도서관에는 만화책이 없다.”이다. 왜 도서관에 만화책이 없지? 도서관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만화책을 안 두지?


  책을 무엇으로 보기에 이 따위로 하는가 하고 그동안 생각했다. ‘십진분류법’을 살펴본다는 생각은 여태 품지 않았다. 오늘 비로소 십진분류법을 살펴본다. 어디 보자, 만화책은 어디에 들어가야 할까? ‘예술’ 갈래에? ‘문학’ 갈래에? 또는 ‘총류’ 갈래에?


  십진분류법을 살펴보는 김에 ‘한국 십진분류법’뿐 아니라 ‘일본 십진분류법’을 살펴본다. 어라. 일본에서도 ‘만화’가 들어갈 자리가 없네?


  그렇구나. 도서관에서는 아예 만화책을 책으로 다루지 않는구나. 만화책을 아예 십진분류법 갈래에 안 넣었으니, 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둘 까닭이 없구나. 만화책은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으니, 얌전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딴 도서관 사서가 스스로 만화책을 장만해서 갖출 일이 없을 뿐더러, 도서관 책손이 만화책을 갖추어 달라고 말해도 만화책을 챙겨서 갖출 까닭조차 없구나.


  더 재미있는 대목이 있으니, 도서관 십진분류법에는 ‘어린이책’이 없다. 어린이책도 만화책과 똑같이 도서관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도서관에 참말 동화책도 동시집도 없었다. 요즈음은 ‘어린이책 도서관’을 새로 짓고 ‘어린이책 십진분류법’도 새로 만든 줄 아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도서관이라는 곳이 어른만 다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마땅히 어린이책을 갖추어야 하지만, 도서관 사서는 이러한 대목을 헤아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어른도 함께 읽’도록 이끌거나 알려주는 도서관 사서가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아니, 어린이책을 함께 읽지 않는 어른이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돌볼 수 있는가? 어린이책을 함께 읽지 않는 어른이 어떻게 교육정책이나 사회정책이나 문화정책 따위를 내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환경책’도 십진분류법에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은 언제나 엉뚱한 자리에 꽂혀야 한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도서관 십진분류법은 책을 알맞게 나누어 갈무리하는 얼거리가 아니다. 사람과 삶 사이에 높다랗게 세우는 울타리가 십진분류법이다. 십진분류법에 따라 책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삶에 따르고 사람에 따라 책을 살펴야 한다. 이야기에 따라 책을 가누고,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책을 갖추어 꽂아야 도서관이다.


  만화책 없는 도서관은 때려부수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린이책 없는 도서관도 함께 때려부수어야 한다고 느낀다. 만화책과 어린이책이 없는 곳은 도서관이 아니다. 책무덤일 뿐이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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