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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35. ‘우수’상은 ‘덤’으로 준다 | 우리말 살려쓰기 2014-09-3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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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격월간잡지 2014년 9-10월호에 싣는 글입니다.


..


말넋 35. ‘우수’상은 ‘덤’으로 준다

― 살아가는 대로 쓰는 말



  ‘우수’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 한 마디만 들려주면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곰곰이 생각에 젖어 봅니다. 나는 이 낱말과 얽혀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꽤 어릴 적 일을 떠올립니다. 열 살 언저리나 더 어릴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저잣거리에 나들이를 가던 일을 그립니다. 그때 어머니는 저잣거리에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장만하면서 “‘우수’ 없어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할머니는 “우수? 우수 줘야지.” 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우수’요? 우수가 뭐예요?“ 하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러니까, ‘덤’. 덤 없어요?” 하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였는지 이웃 할아버지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어떤 할아버지한테 내 상장을 자랑하듯이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우수’ 상장을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상장을 받아서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우수상이라고? 더 얹어서 주는 상이 뭐가 좋다고 그러냐?” 하고 한마디 퉁을 놓았습니다. 이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아리송했습니다. 못 알아들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어머니한테서 들은 ‘우수’를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말하고 이어서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국말 ‘우수’나 ‘우수리’는 요즈음 아주 잊히거나 사라지거나 죽은 말이 됩니다. 이 자리에 한자말 ‘성과(成果)’과 ‘성과급(成果給)’이 또아리를 틉니다. 그리고, 이 한자말조차 밀어내고 영어 ‘인센티브(incentive)’가 밀려듭니다.


  지난 1991년에 《草家》(열화당 펴냄)라는 사진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책이름을 한자로만 적으니 아쉬운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 사진책은 낱말을 잘못 적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흔히 ‘초가집’처럼 잘못 말하거든요.


  ‘초가’는 ‘풀(草) + 집(家)’입니다. ‘풀집’을 일컬어 ‘초가’라는 한자말을 예전 지식인이 지은 셈입니다. 그러니, ‘초가집’이라 말하면 ‘풀집집’ 꼴이 됩니다. 아주 우스운 말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겨레는 예부터 ‘풀집’을 지었을까요? 풀(이엉)로 지붕을 얹었거든요. 풀로 담을 이었어요. 기둥은 나무로 세우지만, 기둥 사이를 막을 적에는 풀(짚)을 이겨 넣은 흙을 댔습니다. 집이 온통 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풀과 흙과 나무와 돌로 지은 집이 ‘한겨레 살림집’입니다. 풀을 여러모로 아주 많이 쓰기에 ‘나무집’이나 ‘돌집’이라고는 안 하고 ‘풀집’이라 했어요.


  지난날 우리 겨레는 옷을 지을 적에 풀에서 실을 얻었습니다. 모시풀이나 삼풀에서 실을 얻었어요. 모시옷은 모시풀에서 얻은 모시실로 지은 옷이요, 삼베옷은 삼풀에서 얻은 삼실로 지은 옷입니다.


  밥은 어떻게 먹었을까요? 밥도 풀밭에서 얻었지요. 온갖 나물이란 바로 풀입니다. 사람이 손수 심어 ‘남새’이고, 들과 숲에서 스스로 자란 풀을 뜯어서 먹으면 ‘나물’입니다. 이런 삶이었으니, 한겨레 살림집은 ‘풀집’일밖에 없습니다. 풀옷이고 풀밥이니까, 이 흐름에 맞게 ‘풀집’이에요.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어린이책 《비발디》(어린이작가정신,2014)를 읽다가 38쪽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식탁 앞에 앉았어요. 향긋한 차.”라는 대목을 봅니다. “아침밥”이라 안 하고 “아침 食事”로 적을 뿐 아니라, ‘밥상’이 아닌 ‘食卓’이라 적으니 아쉬우나, ‘향긋한’이라 적으니 반갑습니다.


  김혜영 님이 시골살이를 하면서 쓴 《암탉, 엄마가 되다》(낮은산,2012)라는 책을 읽다가 116쪽에서 “병아리가 어미닭과 첫 눈맞춤을 해요.”라는 대목을 보고, 196쪽에서 “낙엽이 지고, 첫눈이 내렸습니다”라는 대목을 봅니다.


  한국말사전에 ‘눈맞춤’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사람들이 곧잘 씁니다. 왜냐하면, 참말 서로 눈을 맞추면서 즐겁기 때문입니다. 눈을 찡긋 하면서 웃어요. 즐거운 눈맞춤입니다. 입을 맞추어 입맞춤이고, 마음을 맞추어 마음맞춤이며, 꿈을 맞추어 꿈맞춤입니다. 다만, “낙엽(落葉)이 지고”처럼 적으니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낙엽’은 “진 잎”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을 한자말로 ‘낙엽’이라고 해요. 다시 말하자면, “낙엽이 지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닥에 구르는 잎이 ‘낙엽’인걸요.


  “잎이 진다”고 할 적에, 곧 가을에 잎이 진다고 할 적에는 “가랑잎이 집”니다. 한국말 ‘가랑잎’은 나뭇가지에서 마른 잎이에요. 나뭇가지에서 잎이 마른 뒤 지니까 “가랑잎이 진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또는 “잎이 진다”라 하거나 “가을잎이 진다”고 해야지요.


  한국사람은 “낙엽이 지다”와 같은 말을 언제부터 썼는 지 궁금합니다. 아마, ‘낙엽(落葉)’이라는 한자말이 들어온 뒤부터 썼겠지요. 그러나, ‘낙엽’이라는 한자말은 한자를 쓰던 옛날 지식인이 아니고는 안 썼어요. 여느 한국사람은 아무도 모르던 낱말이요, 쓸 일이 없던 낱말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여느 한국사람, 그러니까 여느 시골사람은 ‘나뭇잎’이나 ‘잎’이나 ‘가랑잎’이라고만 했어요.


  일본사람 니시마키 가야코 님이 빚은 어린이책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시공주니어,2007)를 읽으면서 24쪽에서 “계란 프라이를 손으로 집어 먹고 있고”라는 대목을 보았습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계란(鷄卵) 프라이(fry)’ 같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아주 널리 쓰는 말입니다. 내 어머니는 내 어릴 적에 ‘우수’ 같은 말을 쓰실 줄 알면서도, 달걀을 부치거나 지질 적에 언제나 ‘계란 프라이’라 하셨고, 요즈음에도 똑같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계란 프라이’라 하지는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일본사람이 쓴 말이 한국에 잘못 들어와서 굳었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은 ‘달걀부침’이나 ‘달걀지짐’입니다. 우리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아름답게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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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까치발 안 해도 돼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4-09-3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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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까치발 안 해도 돼



  얼마 앞서까지 키가 안 닿아 까치발을 해도 마을 어귀 빨래터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없던 산들보라인데, 이제 제법 키가 자라 까치발을 하지 않고도 누나와 나란히 빨래터 울타리에 달라붙어서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다. 넘겨보기란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동안 볼 수 없던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건너편에 딱히 대단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누나하고 나란히 서니 기쁘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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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58. 2014.9.28. 가랑잎순이 | 꽃아이 2014-09-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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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58. 2014.9.28. 가랑잎순이



  후박나무에서 가랑잎이 진다. 후박나무는 언제나 푸른 잎사귀를 매달지만, 한 해를 살아낸 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언제나 푸른 잎사귀만 있는 듯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노랗게 물든 잎을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다. 마당에 떨어진 후박잎을 주워서 후박나무 둘레로 옮긴다. 나무한테는 나뭇잎이 가장 좋은 거름이다. 아이들이 옆에서 함께 가랑잎을 줍다가 큰아이가 문득 “나는 내가 가져야지.” 하고 말합니다. 노랗게 잘 물든 잎이 고우니 나무 둘레로 옮기기보다는 갖고 놀고 싶단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러렴. 그러면, 네가 갖고 싶은 잎사귀가 어떤 빛과 무늬인지 보여주라.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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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고등학교로 걸어가기 앞서 | 책삶+글쓰기 2014-09-3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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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고등학교로 걸어가기 앞서



  조금 뒤 낮 네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도화고등학교 책모임 푸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책읽기와 글쓰기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에 여러모로 설렌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일하며 살든 시골내음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도록 돕는 노릇을 잘하자고 생각한다.


  이제 슬슬 집을 나서야 한다. 걸어서 가면 사십 분쯤 걸릴까.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밥을 지었고, 밥상을 차린다. 아이들은 서로 아끼면서 잘 놀겠지. 자전거를 탈까 싶다가, 가까운 길이니 천천히 걸어서 오가면 생각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가을빛을 한결 깊이 마실 만하리라 본다. 천천히 들바람을 마시면서 걷자. 길에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짐승이 있으면 길섶으로 옮기고, 허수아비한테 인사하면서, 이웃마을 할매와 할배한테도 인사하면서, 즐겁게 걸어가자.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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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94. 우산과 마을 논길 (2014.9.23.) | 시골아이 2014-09-3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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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94. 우산과 마을 논길 (2014.9.23.)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가 온갖 소리를 잠재운다. 빗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빗소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가늘게 내리는 비조차 온누리를 촉촉하게 적시면서 보드랍게 노래를 나누어 준다. 이런 날 아이와 함께 우산을 쓰고, 때로는 우산이 없이 들마실을 하면 들숨을 쉬면서 들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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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어린이 설거지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4-09-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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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어린이 설거지



  일곱 살 사름벼리가 오늘 아침에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작은걸상을 개수대 앞에 받쳐서 올라간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물을 살살 틀어 졸졸 흐르게 한 뒤 천천히 꼼꼼히 수세미질을 한다. 일곱 살 사름벼리가 설거지를 마치기까지 무척 오래 걸린다. “벼리가 아버지 큰 잔도 설거지 했어요!” 하고 외친다. 큰 유리잔을 살핀다. 물때가 남지 않게 잘 헹구었다. 용하구나.


  나도 어릴 적에 곧잘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할 일이 많으면 “나와 봐. 엄마가 할게.” 하면서 부엌일을 거들지 말라 하셨다. 왜냐하면, 어린 내가 설거지를 하면 한참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 어린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설 때에는 ‘일하기’가 아닌 ‘놀이하기’이다. 물을 갖고 논다. 물을 수세미로 갖고 논다. 물을 수세미로 갖고 그릇을 곁들여 논다.


  놀면서 설거지를 익힌다. 놀면서 빨래를 익힌다. 놀면서 걸레질과 비질을 익힌다. 놀면서 밥하기와 도마질을 익힌다. 놀면서 호미질과 낫질을 익힌다. 놀면서 가위질과 풀바르기를 익히고, 놀면서 사랑과 꿈을 익힌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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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을 앞두고 (시월) | 동시집+시집 2014-09-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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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월

이중기 저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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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8



시월을 앞두고

― 시월

 이중기 글

 삶창 펴냄, 2014.6.30.



  더위가 한창이던 여름날에 시집 《시월》(삶창,2014)을 읽었습니다. 다 읽은 시집을 한참 책상맡에 두었습니다. 이동안 여름이 저물고 구월로 접어들다가 어느덧 시월을 코앞에 둡니다.


  오늘은 구월 삼십일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시월입니다. 달력으로 치면 그렇지요. 그런데, 구월이든 시월이든 들이나 숲은 그대로입니다. 바다와 하늘도 그대로입니다. 달력으로 볼 적에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더라도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하늘은 그대로입니다. 온누리는 숫자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지구별도 해도 달도 별도 숫자를 따지지 않습니다.



.. 날만 새면 공출 독촉이 채찍비로 퍼부었다 /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보릿단에서 / 꼬물꼬물 싹이 나와 질금 만드는 유월 장마에 / 숨긴 보리 꺼내 공출 안 하면 / 오막살이 몰수하겠다고 / 일가족 몰살하겠다며 콩 볶듯이 볶았다 ..  (하곡수집령)



  2014년 시월은 어떤 달일까요. 봄날 바닷속에 잠긴 애꿎은 아이들을 슬퍼하는 목소리가 아직 사그라들지 못하는 시월일까요. 지난날 슬프게 목아지가 잘리면서 죽은 이들 울음소리가 아직 잠들지 못하는 시월일까요.


  한가위가 이른 올해에는 양력으로 치는 달력 숫자가 시월로 넘어가도 가을걷이를 아직 안 합니다. 일찍 심은 논은 군데군데 벼를 베었으나, 퍽 넓은 들은 누런 빛깔로 천천히 물듭니다. 아직 들판은 싯누렇게 물결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밥을 먹고 시골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도시에서는 쌀을 사다가 밥을 먹고 시골에서는 볍씨를 심어서 가꾸어 거둔 뒤에 밥을 먹습니다. 어디에서나 밥을 먹습니다. 어디에서나 밥을 먹어 목숨을 잇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사람들이 쌀을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어딘가에는 시골이 있어야 하고, 논밭이 있어야 합니다. 도시가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시골은 제법 넓게 있어야 하며, 시골에서 논일과 밭일을 하는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 인민위원회 절대다수가 농사꾼들이니 / 농사꾼들이야 작게는 농민조합으로 한솥밥이요 / 크게는 인민위원회와 가마솥으로 한 식군데 / 농민조합은 무시하고 복종만 하라면 / 보소, 그 말에 어디 영이 설 수 있겠소 ..  (영천아라리 2)



  시골지기가 없으면 도시내기는 모두 굶어서 죽습니다. 시골지기가 땀흘리지 않으면,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예술도 과학도 모두 무너집니다.


  발전소가 없다 하더라도 사회는 무너지지 않아요. 시골이 없을 때에 사회가 무너집니다. 학교가 없더라도 교육은 무너지지 않아요. 시골이 없을 때에 교육이 무너집니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흔들거릴까요? 아닙니다. 군대는 없어도 됩니다. 시골이 없을 때에 나라가 흔들거리다가 무너져요.


  전쟁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나라를 못 지켜요. 군대가 아무리 커도 나라를 못 지켜요. 생각해 보셔요. 군인은 무엇을 먹을까요? 총알을 먹을까요? 폭탄을 먹을까요? 아닙니다. 모두 밥을 먹습니다. 이쪽 군인도 저쪽 군인도 모두 밥을 먹습니다. 제아무리 전쟁통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을 때에는 전쟁을 그칩니다. 밥을 먹어야 싸울 힘이 나지요.


  그러니까, 밥을 얻는 시골을 지켜야 나라를 지킵니다. 밥을 얻는 시골을 잘 건사해야 나라를 지킬 뿐 아니라, 사람을 지키고, 목숨을 지키며, 모든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과학과 예술 모두를 지킵니다.



.. 당신이 고등어 껍질로 밥 한 숟가락 싸 먹을 때마다 / 농사꾼 몇 사람이 죽어나간 줄은 아시오? /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소 / 다 내놓고 서울 아들네로 가시오 ..  (영천아라리 4)



  대통령은 없어도 됩니다. 의사와 판사는 없어도 됩니다. 교사와 교수는 없어도 됩니다. 시인과 소설가는 없어도 됩니다. 운전사와 기술자는 없어도 됩니다. 이런저런 일자리는 하나도 없어도 됩니다. 삽차와 비행기는 없어도 되고, 자동차와 기차는 없어도 됩니다. 시골이 없다면 모두 부질없습니다. 시골지기가 없으면 모두 덧없습니다.


  나라가 나아갈 길은 사람들 스스로 밥을 지을 들과 숲을 누리면서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는 삶입니다. 밥을 짓지 못하면 어떻게 살까요? 옷을 짓지 못하거나 집을 짓지 못하면 어떻게 사나요? 그런데,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지요? 인문책음 무엇을 말하지요? 교과서는 어떤 지식을 다루면서 시험문제를 내지요? 대학생이 된 젊은이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지요?



.. 농사꾼들은 논밭으로 가 읍내가 비워졌을 때, / 대구에서 자갈길 백 리 거침없이 / 미군전술부대가 개망나니 경찰을 데리고 와 / 마구 불 지르고 연행하면서 / 부족마을 테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사흘 만에 칠백오십 명을 끌고 가자 / 그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쳤지만 / 날 밝으면 체포와 총살은 이어졌다 / 연행이 귀찮으면 아예 심장에다 총알을 박아버리고 / “공산당은 인류의 적이다” / 이 구호로 이념 주입은 장엄하게 시작되었다 / 그리고 짐승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  (인종 청소기)



  시집 《시월》을 조용히 읽습니다. 경상도 영천에서 있던 지난 이야기를 찬찬히 그립니다. 영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시를 쓴 이중기 님은 영천땅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영천사람한테서 하나둘 들은 뒤 시로 다시 그립니다. 나는 《시월》을 읽으면서, 영천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도 엇비슷하게 일어났을 일을 가만히 그립니다. 이 땅 곳곳에서 아프고 슬프며 서러운 이야기가 생채기로 남은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하늘을 믿고 흙을 사랑하며 들과 숲과 흙을 보살핀 시골내기는 왜 목숨을 앗겨야 했을까요. 볏포기를 베고 짚신을 삼으며 지붕을 잇고 오순도순 살림을 꾸리던 시골지기는 왜 보릿고개를 넘기거나 배를 곯아야 했을까요.


  흙을 안 만진 땅임자는 왜 배가 불러야 했을까요. 흙을 밟지도 않는 임금이나 신하나 학자는 왜 밥 굶는 걱정조차 없이 살았을까요. 권력과 정치는 무엇이고, 학문과 이론은 무엇인가요. 역사는 무엇을 밝히고, 역사는 누가 누구한테 어떻게 가르치는가요. 땅이란 누구 것이며, 땅은 왜 있을까요.



.. 도망갔다 돌아온 지주들이 제일 먼저 한 짓은 / 경찰서 신축 성금 커다랗게 내놓고 / 못살아서 말 잘 들을 것 같은 몇몇을 불러 / 원하는 땅 힘에 맞게 소작을 준 뒤 / 소작 전부 돌려받는다고 통보해서 / 마을마다 집집마다 마른천둥을 퍼부었다 ..  (새벽 북소리)



  시월 문턱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썰렁하지만, 해가 높이 솟는 낮에는 덥습니다. 네 살 작은아이가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무화과 없어요?” “무화과 먹고 싶니?” “네.” 소쿠리를 하나 챙깁니다. 작은아이가 들도록 건넵니다. “자, 무화과 따러 가자.”


  우리 집 뒤꼍 무화과나무를 살핍니다. 오늘은 열 알을 땁니다. 모레에도 제법 딸 만합니다. 올가을에는 무화과를 실컷 누립니다. 우리 집 무화과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달콤하고 맛난 샛밥이 됩니다.


  무화과나무가 있으니 무화과를 얻습니다. 무화과 열매를 따다가 모과 열매를 한 알 줍습니다. 우리 집 뒤꼍 모과나무에서 스스로 툭 떨어진 모과는 되게 큽니다. 아이 머리통보다 살짝 작습니다. 큰아이가 두 손으로 들어도 묵직하고, 작은아이는 무겁다면서 못 듭니다.


  능금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능금을 얻고, 감나무를 건사하면서 아끼면 감을 얻습니다. 호박씨를 심어 호박을 얻고, 무씨를 심어 무를 얻어요. 우리는 흙에서 목숨을 얻고, 흙에서 밥을 누립니다. 우리는 흙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괴롭힘이나 따돌림이 없습니다. 흙은 부자한테도 가난뱅이한테도 골고루 밥을 베풉니다. 그러면, 정치나 교육이나 사회나 경제나 문화는 어떠한가요? 모든 사람한테 골고루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요?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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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불편’을 받아들이는 사람 | 책/사람과 함께 2014-09-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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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불편’을 받아들이는 사람



  요즈음 사람들은 학교를 오래 다니면서 학교에서 짓궂은 이론을 몸에 익히고 만다. 이른바 ‘토론’이라는 허울을 붙이는 버릇이다. 학교에서 벌이는 토론은 언제나 ‘찬성·반대’로 가른다. 둘로 가른다. 온누리 어떤 일도 둘로 가를 수 없으나, 늘 이쪽과 저쪽으로 가르고 만다.


  토론이라는 허울을 해 본 사람은 알 텐데, 찬성과 반대로 갈라서 말을 나누면 언제나 싸움이 되고, 실마리를 하나도 풀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토론으로 이루어진다고들 하는데, 토론이란 ‘둘로 편가르기를 하면서 실마리는 얻지 않고 싸움으로 내모는 짓’이기 때문에, 어느 모로 본다면 민주주의란 ‘사람이 임자’라고 내세우지만, 정작 사람이 사람 스스로 깎아내리는 짓이 되는구나 싶다.


  실마리를 풀려면 토론이나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실마리를 풀도록 슬기를 모아야 한다. 찬성과 반대로 가를 까닭이 없다. 어느 쪽이 되든 대수롭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무리를 어떻게 짓든 대수로울 일이 없다. 찬성으로 끝나서 좋거나 반대로 끝나서 나쁘지 않다. 찬성이 되기에 나쁘거나 반대가 되기에 좋지 않다. 어느 쪽으로 마무리를 짓든, 실마리를 풀어서 제대로 길을 여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기를 든다면, 밀양을 들 수 있을 텐데, 밀양 송전탑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갈라서 싸워 보았자 싸움만 될 뿐이다. 송전탑을 꼭 세워야 한다면, 밀양 시골마을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요즈음은 땅밑 깊이 구멍을 파면서 공사를 하는 솜씨가 있다고 한다. 바다밑에 길을 내려면 땅밑에서만 구멍을 길게 파야 할 테지. 그러니까, 발전소부터 도시까지 송전탑을 잇더라도, 멧자락과 마을 위로 지나가도록 할 노릇이 아니라, 땅밑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송전탑을 이어 주면 된다. 도시에서는 전봇대가 아닌 땅밑에 전깃줄을 파묻는다. 시골마을에 송전탑을 박지 말고, 땅밑으로 깊숙하게 지나가도록 하면 된다. 또는, 밀양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공사법을 찾아서 밀양사람이 받아들일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될는지 저렇게 하면 괜찮을는지 자꾸자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전력과 중앙정부는 밀양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한국전력과 중앙정부는 ‘송전탑 찬성’만 외치는 허수아비가 되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고속도로도 이와 같다. 아름다운 시골과 숲을 다치지 않도록 하자면, 땅밑으로 깊이 구멍을 파서 곧게 이어 주면 된다. 그런데 어떤 이는 달리 말할는지 모르리라. 이렇게 땅밑으로 깊이 구멍을 파서 이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그러면, 마을과 숲을 몽땅 망가뜨리는 짓을 해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크기’를 돈으로 따지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마을과 숲이 안 무너지게 하려고 싸우는 동안 들어가는 돈은 또 얼마인가?


  밀양에 송전탑을 안 짓기로 한다면, 도시에서 자가발전을 하는 틀을 세우면 된다. 자가발전은 돈이 매우 적게 든다. 재생에너지를 쓰도록 널리 퍼뜨리면 유지비도 거의 안 든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토론·논쟁’이 아니고 ‘찬성·반대’가 아니다. 오직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실마리’를 찾도록 ‘슬기’를 모아야 한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서 거짓스러운 민주 제도에 잘못 익숙하거나 길들기에 자꾸 찬성과 반대를 나누어 버릇하는데, 이런 버릇이 몸에 붙으면, 사람들은 그만 “진리가 불편하다!”와 같이 엉뚱한 말을 내뱉고 만다. 왜 진리가 불편한가? 진리란 또 무엇인가?


  한자말 ‘진리(眞理)’는 “참된 이치·참된 도리”를 뜻한다. ‘이치·도리’란 무엇인가 하면 “길”이다. “참된 길”을 한자말로 ‘진리’로 적어서 나타낸다. 한자말 ‘불편(不便)’은 “거북하다·괴롭다”를 뜻한다. 이리하여, ‘진리 불편’을 말하는 사람은 “참된 길이 거북하거나 괴롭다”고 밝히는 셈이다.


  참된 길은 거북하거나 괴로울까? 아니다. 참된 길은 거북하거나 괴로울 수 없다. 참되기 때문에 즐거우면서 기쁘며 반가운 길이다. 그렇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참된 길을 거북하거나 괴롭다고 여긴다. 왜 그러한가? 참이 무엇인지 모르고 길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참된 길조차 ‘찬성·반대’로 가르는 버릇이 생겨 ‘나한테 좋고·나한테 나쁘고’로 가르기 때문이다. 그 길이 옳고 바르다고 지식으로 알지만, 몸으로는 안 옳고 안 바른 쪽으로 가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참조차도 모르지만 옳음과 바름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옳고 바름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옳고 바른 길로 가야지, 그릇되거나 틀린 길로 갈 까닭이 없다. 저쪽이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도 낭떠러지로 그대로 나아가서 떨어지는 삶이 아름답거나 즐거울까? 낭떠러지가 아닌 길로 가야 아름답거나 즐겁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참된 길로 가야 한다. 참된 길을 가면서, 삶을 즐기고 가꾸며 북돋우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참된 길을 아주 씩씩하게 잘 나아가리라. 어떤 사람은 참된 길을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나아가리라. 빨리 간다고 더 낫지 않으며, 천천히 간다고 덜떨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나아가면 된다.


  곧, 우리는 참된 길로 가는 ‘실마리’를 스스로 ‘슬기’를 밝혀서 얻거나 찾아야 한다. 남이 하는 대로 꽁무니를 좇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몸과 마음에 알맞춤하도록 참된 길로 나아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살피면 된다.


  참된 길이 거북하거나 괴로운 까닭은, 스스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안 찾기 때문이다. 즐겁게 참된 길로 가는 삶을 찾아야 한다. 남이 찾아 주지 않는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써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학교교육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도록 이끌지 못한다.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시험성적 잘 받도록 하는 데에 익숙하지, 스스로 길을 찾아서 배우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이러다 보니, 참된 길을 앞에 두고도 옳거니 그르거니 찬성·반대 싸움을 벌이다가 지쳐서 그만 참된 길이고 뭐고 안 쳐다보고 만다.


  참된 길이 아름다운 까닭은 참된 길이 즐겁기 때문이다. 참된 길이 즐거운 까닭은 참된 길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참된 길이 사랑스러운 까닭은 참된 길로 걸어가는 동안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 때문이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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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04. 2014.9.23. 마룻바닥 책돌이 | 책 읽는 아이 2014-09-3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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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04. 2014.9.23. 마룻바닥 책돌이



  마룻바닥에 느긋하게 앉아서 느긋하게 한 쪽 두 쪽을 넘긴다. 아버지가 가까이 온 줄 느끼고는, “여기 봐 봐요. 자동차 있어요.” 하고 말하더니 “오잉? 이 자동차가 다 밟고 가네. 오잉?” 하면서 혼자읽기에 다시 빠져든다. 누나더러 언제나 ‘볕 잘 들어오는 밝은 데에서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줄 잘 아는 산들보라는, 스스로 창가에 앉는다. 마룻바닥 책돌이를 한참 바라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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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룻바닥이라는 곳 (사진책도서관 2014.9.23.) | 숲노래 도서관 2014-09-3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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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룻바닥이라는 곳 (사진책도서관 2014.9.2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어릴 적부터 마룻바닥이 여러모로 반갑고 시원하면서 즐겁다. 이름만 마루인 시멘트바닥이 아니라, 이름도 생김새도 나무로 짠 마룻바닥일 때에 어쩐지 마음을 차분히 쉬면서 신나게 뛰놀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가 살아갈 집도 이렇게 마룻바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살며 마룻바닥 있는 집에서 살림을 꾸리지 못했다. 서울에서 몇 해 머물던 때에는 적산가옥이던 나무집에서 세 해 즈음 지냈는데, 이때 빼고는 나무집에서 살지 못했다. 온 사회가 시멘트로 흐르니, 집도 길도 마을도 시골도 온통 시멘트로 뒤덮인다. 학교에서도 골마루가 사라지고 돌바닥이나 시멘트바닥만 있다.


  문을 닫은 오래된 학교에는 골마루가 남곤 한다. 우리 도서관은 문닫은 오래된 학교에 깃들었으니 골마루를 누린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우리 도서관 골마루에서 얼마나 기고 뒹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골마루를 실컷 누리도록 하려고 묵고 묵은 더께를 박박 문질러서 벗겨냈다.


  아이들은 마룻바닥에 펑퍼짐하게 앉아서 놀기를 즐긴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아무렇지 않게 마룻바닥에 앉는다. 아이들은 마당이든 길바닥이든 서슴지 않고 주저앉기도 한다. 다리가 아프면 앉고, 다리가 안 아파도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서 놀기를 즐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내 어릴 적을 돌이킨다. 그리고, 도서관이나 학교를 짓는다면 어떤 얼거리가 되어야 즐거울까 하고 생각한다. 바닥을 나무로 두고, 둘레를 나무로 짜며, 기둥도 나무일 때에, 도서관이나 학교는 아이들한테 가장 즐거우리라 느낀다. 아이들한테 즐거운 곳은 어른들한테도 즐겁겠지.


  마룻바닥이란 나뭇바닥이다. 나뭇바닥이란 나무내음이 퍼지는 바닥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살림을 꾸릴 집은 나무로 이룰 때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즐겁다. 나무는 숲에서 우거진다. 집을 나무로 짓고 도서관이나 학교도 나무로 짓는다면, 숲을 옮겨 집·도서관·학교를 짓는다는 뜻이 된다. 숲은 숲대로 가꾸고, 사람터는 사람터대로 숲내음이 감도는 곳으로 돌본다고 할까.


  아마 요즈음은 건축 설계나 도서관 설계를 서양에서 배운 이론만으로 따지지 싶다. 숲을 집과 도서관과 학교로 가지고 와서 누리는 한편, 집과 도서관과 학교 둘레가 아름다운 숲이 되도록 가꾸자고 생각하면서 설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오늘날 이론이나 학문으로만 바라보면 겉모습으로는 멀쩡하지만, 오래도록 마을에 뿌리내리면서 삶터를 일구는 자리가 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누릴 책터와 삶터와 이야기터라면, 언제나 푸르게 바람이 불고 푸르게 숨을 쉬는 터가 되어야겠지.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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