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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87. 기다리는 아이 | 숲집 놀이터 2016-02-2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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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87. 기다리는 아이



  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다 보면 늘 한 가지를 느낀다. 아이는 어버이를 기다린다. 아이는 어버이가 저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가를 기다린다. 아이는 어버이가 저한테 뭘 보여주려 하는가를 기다린다. 아이는 어버이가 저한테 무엇을 먹이거나 입히려 하는가를 기다리고, 아이는 어버이가 저한테 뭘 건네거나 선물하거나 나누어 주려 하는가를 기다린다. 이와 달리 어버이는 아이를 거의 못 기다리기 일쑤이다. 다만, 어릴 적에 ‘즐거이 기다리는 어버이’ 품에서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이라면, 이녁 아이를 살가이 지켜보면서 기다릴 테지. 어릴 적에 ‘기쁨으로 기다리는 어버이’ 손길을 잘 느끼거나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아이를 알뜰살뜰 바라보면서 기다리기는 어려우리라 본다. 그래서 아이하고 어떤 것을 하든 늘 ‘나는 얼마나 잘 기다리면서 웃을 줄 아는 어버이’인가를 새삼스레 돌아본다.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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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김이 . 타는곳 . 잔치 . 단추 | 숲노래 우리말꽃 2016-02-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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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김이


  똑똑한 사람을 두고 ‘똑똑이’라 해요. 뚱뚱한 사람을 두고 ‘뚱뚱이’라 해요. 멍청한 사람을 두고 ‘멍청이’라 해요. 눈이 애꾸인 사람을 두고 ‘애꾸눈이’라 해요. ‘고기잡이·앞잡이·칼잡이’나 ‘길잡이·글쓴이·엮은이’처럼 ‘-이’가 붙어서 어떤 사람을 나타내고요. 착한 사람이라면 어떤 이름이 될까요? ‘착한이’가 되지요. 고운 사람이라면 어떤 이름이 될까요? ‘고운이’가 되어요. 이러한 결을 살피면, ‘맑은이·멋진이(멋쟁이)·놀람이·사랑이·기쁜이(기쁨이)·슬픈이(슬픔이)·성난이·뿔난이’라든지 ‘배움이·가르침이·나눔이·돌봄이·도움이·지킴이·웃음이·눈물이’ 같은 이름을 아기자기하면서 재미나게 지을 만해요. 인터넷을 하다 보면 ‘즐겨찾기’를 할 수 있어요. 즐겁게 찾아가는 곳이기에 ‘즐겨찾기’예요. 그러니, 즐겁게 먹으면 ‘즐겨먹기’이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 ‘즐겨부르기’이며, 즐겁게 놀면 ‘즐겨놀기’입니다. ‘즐기기’라고만 해도 되지만, ‘즐겨하기·즐겨듣기·즐겨보기·즐겨읽기·즐겨가기’처럼 새롭게 쓸 수 있어요. 이렇게 온갖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라면 ‘즐김이’가 되고요. 즐김이에는 ‘만화즐김이·영화즐김이·노래즐김이·책즐김이·여행즐김이·낮잠즐김이’를 비롯해서 온갖 즐김이가 있어요.


+


타는곳


  자동차나 버스나 기차나 배나 비행기를 ‘탈’ 적에 어떻게 하나요? 그냥 ‘탈’ 테지요. ‘내릴’ 적에는 어떻게 하지요? 그대로 ‘내릴’ 테지요. 차를 타고 내릴 적에는 “타고 내리기”를 합니다. 그런데, “타는 곳”이나 “내리는 곳”은 같기 일쑤예요. “타는 곳”은 타는 자리이면서 내리는 자리가 되고, “내리는 곳”은 내리는 자리이면서 타는 곳이 되어요. 자그마한 도시나 시골은 한 곳에서 두 가지가 이루어져요. 예전에는 ‘승강장·승하차장’ 같은 한자말을 썼으나, 요새는 ‘타는곳’이라는 새로운 한국말을 씁니다. 전철이나 지하철에서는 모두 ‘타는곳’이라고 해요. 타는 자리하고 내리는 자리가 다르다면 ‘타는곳·내리는곳’을 따로 둘 만해요. 버스에는 ‘타는문·내리는문’이 따로 있기도 해요. 전철이나 지하철에서는 ‘갈아타는곳’이 있지요. ‘갈아타는곳’이라는 이름이 길면 ‘샛곳·샛목’이나 ‘이음곳·이음목’ 같은 이름을 쓸 수 있어요. ‘사이’를 ‘잇는다’는 뜻에서 ‘샛목·이음목’ 같은 말을 써요. 기차나 버스를 타는 곳은 ‘터’라는 말을 붙여서 ‘기차터·버스터’처럼 써도 재미있고, 택시를 타는 곳은 ‘택시터’라 해 볼 수 있어요. 기차터나 버스터를 보면, 기차가 드나드는 때를 기다리도록 ‘맞이방’이 있습니다. 마중하거나 배웅하면서, 또 기다리면서 ‘맞이방’에서 쉬지요.


+


잔치


  아기가 태어나면 어버이는 대단히 기쁩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딸인지 아들인지 구태여 가리지 않습니다. 아기는 새롭게 태어난 목숨으로서 기쁘며 반가운 사람이에요. 처음 세이레(석 주) 동안 아기를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보살핀 뒤에 햇볕을 쪼입니다. 온날(백 날)에 이르면 ‘온날잔치’라고 할 ‘백날잔치(백일잔치)’를 열어서 이웃한테 널리 절을 시키지요. 오롯이 온(100) 나날을 자랐기에 앞으로 씩씩하게 잘 크겠다는 뜻이면서, 아기를 낳아 돌보는 두 어버이를 기리는 뜻이에요. 아기가 처음으로 걸음을 뗄 즈음에 돌잔치(한살잔치)를 하지요. ‘한돌잔치’나 ‘첫돌잔치’ 뒤에는 ‘두돌잔치’이고, 이윽고 ‘석돌잔치’랑 ‘넉돌잔치’를 지나요. 해마다 무럭무럭 크는 아기이니 해마다 생일에 잔치를 베풀어 기쁨을 나눌 만합니다. 지난날에는 어른이 예순 살까지 사는 일이 드물었다고 해서 ‘예순잔치(환갑잔치)’를 열었어요. 또 ‘일흔잔치’나 ‘여든잔치’를 열지요. 마을에서는 ‘마을잔치’를 벌이고, 나라에서는 ‘나라잔치’를 벌여요. 새봄에 꽃이 흐드러지면 ‘벚꽃잔치’나 ‘유채잔치’나 ‘매화잔치’ 같은 ‘꽃잔치’를 열고, 봄가을에 흔히 여러 고장에서 ‘책잔치’를 열어요. 함께 기뻐하고 서로 즐겁게 살림을 북돋우려는 뜻에서 ‘잔치마당’을 즐깁니다.


+


단추


  단추로 잠그는 옷이 있고, 쭈르륵 올려서 잠그는 옷이 있어요. 예부터 한겨레가 입던 저고리나 두루마기에는 단추가 아니고 천을 엮어서 단단하게 뭉친 ‘고름(옷고름)’이 있어요. ‘고름·옷고름’은 단추하고 비슷한 구실을 해요. ‘단추’나 ‘고름’은 옷에서 살짝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도드라져 보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헤아리면서 “누르는 것”을 가리키는 곳에서도 ‘단추’라는 낱말을 쓰고, 따로 ‘누름단추’처럼 쓰기도 해요. 버스에서 내릴 적에 바로 이 단추(누름단추)를 눌러요. 그런데 영어에서는 ‘벨(bell)’하고 ‘버튼(button)’하고 ‘버저(buzzer)’가 있어요. 요새는 이런 영어를 그대로 쓰기도 하는데, 두 가지 모두 ‘단추’로 쓸 수 있고, ‘누름단추·누름쇠·알림단추’처럼 손질하거나 ‘딸랑단추·딩동단추(딩동댕단추)·삐단추(삐익단추)’처럼 소리를 살려서 재미나게 손질할 만해요. ‘부자·부저’처럼 쓰는 말은 일본 말투예요. 처음부터 ‘단추’로 알맞게 쓰면 한결 나았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니게 온갖 말이 뒤섞이고 말았어요. 어른들은 말을 말답게 다스리지 못했지만, 앞으로 어린이들이 말을 말답게 다스리면서 가꾸어서 새로운 말넋을 갈고닦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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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86] 한국말다운 한국말 | 시로 읽는 책 2016-02-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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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86] 한국말다운 한국말



  바람처럼 맑고 싱그럽게

  해님처럼 밝고 포근하게

  냇물처럼 달고 기운차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한국말을 배우고 쓰지만, 오늘날 사회를 살피면 한국말다운 한국말은 거의 자리를 못 잡습니다. 이를 잘 깨달아서 어른부터 슬기롭게 말을 가다듬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지만, 이를 조금도 깨달으려 하지 않으면서 아이한테 말다운 말을 못 물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만 생각한다고 해서 말을 잘 하지는 않습니다. 삶을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며 살림을 생각할 적에 비로소 싱그러우면서 포근하고 기운찬 말을, 가장 말다운 말이면서 생각다운 생각이 흐르는 말을 나눌 수 있습니다.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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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40. 수세미질 척척 (2016.2.16.) | 살림순이 2016-02-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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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40. 수세미질 척척 (2016.2.16.)



  살림순이도 수세미질을 하고 싶다. 그래, 너도 하고 싶으면 해야지. 네가 쥐고픈 수세미를 골라서 삭삭 문지르면 돼. 돌틈에 낀 물때를 벗겨야 하지. 물거품을 일으키면서 슥슥삭삭 노랫가락 같은 소리를 내면 되지. 찬찬히 해 보렴. 차근차근 네 손에 억센 기운을 담아 보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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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책읽기] 학교는 입이 크다 (박일환) | 한 줄 책읽기 2016-02-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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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입이 크다 (박일환) 한티재 펴냄, 2014.7.14. 8000원



  고흥에서는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 눈발이 아주 가늘게 날린다. 그래 봤자 하나도 안 쌓인다. 아마 다른 고장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질는지 모른다. 이 눈발에도 아이들은 눈놀이를 하고 싶어서 옷을 껴입고 마당에 선다. 나는 아침을 차리면서 하루를 열고, 오늘 맡은 즐거운 일이 무엇인가 하고 헤아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엌일을 하기 앞서 《학교는 입이 크다》를 읽는데, 이 청소년시를 쓴 박일환 님이 푸른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려는 손길이 애틋하네 하고 느낀다. 그래, 참으로 그렇다. 마음으로 서로 다가서면 마음으로 서로 사귄다. 마음이 아닌 채 서로 다가서면 서로 마음을 알 길이 없다. 뭔가를 앞세운다면 바로 그 뭔가가 앞에서 늘 걸릴 테지. 청소년문학이나 어린이문학이란, 또 어른문학이란 이처럼 ‘마음으로 쓰고 읽어서 나누는 이야기’가 될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본다. 말재주나 말솜씨나 말자랑이나 말장난이 아닌, ‘마음을 담아서 들려주는 노래’일 때에 비로소 문학이 되리라 본다.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한 줄 책읽기)



학교는 입이 크다

박일환 저
한티재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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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책읽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앤드류 포터) | 한 줄 책읽기 2016-02-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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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앤드류 포터) 마티 펴냄, 2016.2.15. 16000원



  ‘진정성’이라는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 없다. 다만 ‘진정(眞正)’이라는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 나오고, “거짓이 없이 참으로”를 뜻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진정성’이란 “참다움”을 가리킬 테고 “참결”이라고도 할 만하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이라는 책은 “참이라고 하지만 거짓말”인 여러 가지를 따지거나 밝히는 인문책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 어떤 거짓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나 이름이나 힘, 이 세 가지를 거머쥐려고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참이라도 되는 듯’이 일삼는 ‘거짓말’을 따지거나 밝히려 한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얻거나 거머쥐거나 가로채려고 하는 거짓말이니 그야말로 거짓말인 셈이리라. 그러면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할까? 말 그대로 돈을 얻든 이름을 얻든 힘을 얻든 할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다른 두 가지를 물을 만하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얻으려는 몸짓은 ‘다 나쁜’가?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조용히 수수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을 읽다 보면 138쪽에 ‘흙바닥 집’은 그냥 ‘가난(빈곤)’을 나타낼 뿐이라고 나무란다. 그러면 참말 흙집(흙바닥 집)은 가난한 집일 뿐일까? 이 지구별에서 흙집이나 돌집이나 나무집이 아닌 시멘트집은 몇 채쯤 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름·힘’을 거머쥐려는 뜻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무리나 지식인이나 정치나 경제나 사회운동을 나무라는 일은 나무랄 만하리라 본다. 그렇지만 곳곳에 드는 ‘보기’ 가운데 글쓴이가 외곬로 ‘넌 거짓말이잖아!’ 하고 헐뜯는 대목이 보인다. 왜 헐뜯어야 할까? 이런 책을 쓰는 앤드류 포터라는 분은 어떤 ‘참된 마음이나 넋’으로 ‘참이라는 허울을 쓴 거짓말’을 나무라거나 헐뜯을 수 있을까?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한 줄 책읽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앤드류 포터 저/노시내 역
마티 |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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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217. 나무 매달리기 (2016.2.27.) | 시골아이 2016-02-29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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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217. 나무 매달리기 (2016.2.27.)



  나무에 매달릴 수 있겠니? 응. 이제 나도 팔에 힘이 제법 붙었어. 그러면 나무에 매달려서 오를 수 있겠니? 한번 해 볼게. 아. 아직 어려워. 그렇구나. 그렇지만 머잖아 나무에 매달려서 오를 날을 맞이할 테니까. 나무는 네가 신나게 타고 오르기를 기다린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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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 엎드려 입을 대고 물을 먹었다 (은빛 물고기) | 숲책+사전/우리말 2016-02-2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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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은빛물고기

고형렬 저
최측의농간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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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32



개울에 엎드려 입을 대고 물을 먹었다

― 은빛 물고기

 고형렬 글

 최측의농간 펴냄, 2016.2.4. 14000원



  예부터 모든 마을에는 샘터나 우물터나 빨래터가 있습니다. 마을이니까요. 예전에는 한집에 따로 물꼭지가 있지 않았어요. 어느 집에서건 물동이를 마련했고, 물을 길어다 썼어요. 집안에서 물꼭지를 틀어서 물을 쓰는 일이란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물을 써야 할 적에는 동이를 이고 두레박이나 바가지를 썼어요.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이 서로 물을 나누어서 쓰던 때에는 어느 곳에서나 맑고 싱그러우면서 단 물이었다고 느낍니다. 나 혼자 쓰는 물이라 나도 너도 쓰는 물이기에 이 물을 더럽히거나 어지럽히는 사람이 없어요. 다 함께 쓰는 물이니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살림을 지었어요.



넓지 않은 마당을 품고 있는, 진흙과 나무로 지은 자그마한 너와집. 빨랫줄이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감나무 허리에 묶여 있다. 고향집에 들어가듯이 고 옹을 따라 문지방 안쪽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 문쪽에 앉는다. (20쪽)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기 사람들은 개울에 엎드려 입을 대고 물을 먹었다. 개울은 아래로 흘러내려가고 입에 닿은 물은 꿀꺽꿀꺽 목구멍을 넘어서 뱃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처럼 하천과 사람의 내장에 같은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물을 먹을 수가 없다. (27쪽)



  고형렬 시인이 쓴 《은빛 물고기》(최측의농간,2016)를 읽습니다. 이 책은 “은빛 물고기”를 다룹니다. “은빛 물고기”라는 이름으로 가리키는 ‘연어’를 좇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깊은 멧골짜기 냇물에서 깨어난 작은 물고기가 바다로 흘러간 뒤에 다시 깊은 멧골짜기 냇물로 찾아가서 알을 낳은 뒤에 빈 껍데기 같은 몸뚱이를 내려놓는 한살이를 찬찬히 짚습니다.


  그런데 고형렬 시인이 은빛 물고기를 만나려고 깊은 멧골짜기를 찾아갈 즈음 이 물고기는 좀처럼 그 깊은 멧골짜기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을사람이 냇물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던 때에는 은빛 물고기가 이 냇물로 찾아왔다지만, 마을사람 누구도 냇물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지 못하는 때에는 은빛 물고기가 이 냇물로 찾아오지 못한다고 해요.



이제 그들은 물속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물속에서 밤이 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은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강풍과 파도와 폭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68쪽)


먹이들이 떠다니는 북태평양의 수중 광경은 마치 눈 내리는 지상의 산속과 같다. 그것들이 해류를 따라 흐르고 연어들은 그들을 따라 흘러간다. (145쪽)



  물고기가 마시는 물이 바로 사람이 마시는 물입니다. 사람이 마시는 물이 언제나 물고기가 마시는 물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더 마실 수 없어서 목숨이 끊어진다면, 사람은 냇물을 더 마실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 놓고 마실 만한 냇물이 사라진다면, 냇물에서 물고기가 더 살 수 없습니다.


  깊은 멧골에서 졸졸 솟는 작은 물줄기는 내를 거치고 가람을 타면서 바다로 흐릅니다. 바닷물은 다시 뭍이나 하늘을 거쳐서 깊은 멧골로 돌아가서 샘물이나 냇물이 되지요. 똑같은 물이 이 지구별에서 흘러요. 똑같은 물을 사람이 마시고 물고기가 마셔요. 이 물줄기는 목숨줄기이면서 삶줄기입니다. 가느다른 물줄기는 삶줄기이면서 사랑줄기요 살림줄기입니다.


  그러니, 물 한 모금을 고이 여겨서 아낄 수 있을 때에 사람인 나는 내 목숨을 아끼고, 내 이웃인 물고기 목숨도 아낄 수 있습니다. 물 한 모금을 함부로 다루거나 더럽힌다면, 사람인 나는 내 목숨부터 함부로 다루거나 더럽히는 셈이요, 물고기까지 괴롭히듯이 다루거나 더럽히는 셈입니다.



모든 생명의 살과 생각은 마음의 열반과 함께 뒤섞여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의 반영이고, 마음의 작용은 몸의 작용이고, 그 작용은 만물 어떤 것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200쪽)



  고형렬 시인은 ‘자취가 끊어진 은빛 물고기’를 좇아서 곳곳을 누빕니다. 이 물고기를 따로 기르는 사람을 만나고, 예전에 이 물고기떼를 늘 마주하던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 은빛 물고기가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이러는 동안 암컷하고 수컷은 저마다 어떤 헤엄짓으로 만나는지를 살핍니다. 두 물고기가 짝짓기를 하는 마지막 몸짓을 살핍니다. 짝짓기를 마치면서 낳는 알을 살핍니다. 온몸을 뒤틀면서 숨을 내려놓고 빈 껍데기 몸뚱이를 물살에 맡기면서 이승을 떠나는 흐름을 살핍니다.



그 광경을 쳐다본다면 아마 그 빛이 움직이는 하늘이 거대한 하나의 공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공간의 하늘 속에 혹은 하늘벽에 찰나적으로 사라지고 나타나고 지워지는 빛의 신출귀몰은 인간 영혼에 하나의 강렬한 표상을 박아둘 것이다. (238쪽)



  사람은 한 번 짝짓기를 한 뒤에 목숨을 내려놓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물고기처럼 한 번 짝짓기를 한 뒤에 목숨을 내려놓는다면 아기가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못할 테지요. 물고기는 제 알이 물속에서 스스로 깨어나서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숨결을 불어넣은 뒤에 조용히 물길을 떠납니다. 사람은 제 숨결을 두 씨앗에 담아서 하나로 그러모은 뒤에 이 씨알에서 깨어날 새 목숨을 기다리면서 살림살이를 추스르고 보금자리를 가다듬습니다.


  물고기는 알에서 깨어난 뒤에 맞잡이한테 잡아먹히기도 하고, 거센 물살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난 뒤에 어버이한테서 온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하나씩 새롭게 배웁니다. 물고기는 모든 삶을 스스로 견디고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배우지요. 사람은 어버이한테서 말을 물려받고, 삶과 살림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요. 물고기는 제 어미한테서 ‘냇물과 바닷물에서 스스로 기운차게 살아남는 길’을 물려받습니다.



삼척으로 돌아온 모든 연어들이 한 번 쉬고 올라가던 그 못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최적의 자연의 늪을 불도저와 삽을 동원해서 메워 버리고 그 위에 테니스장을 설치했다. (284쪽)


사랑하는 길은 자연 속에 저들을 가만히 두는 일뿐이다. 저 물빛들을 사랑하다가 오히려 생명을 다칠 것이다. (363쪽)



  《은빛 물고기》를 읽으면서 우리 마을 샘터랑 빨래터를 헤아립니다. 열 몇 해 앞서까지 이 샘터에서 물을 긷고 이 빨래터에서 빨래를 했다는데, 이제 이 샘터나 빨래터는 흙일을 마친 연장을 씻는 노릇을 합니다. 가문 날에는 물을 뽑아내는 노릇을 합니다. 농약을 칠 적에는 농약에 물을 섞으려고 호스를 길게 이어서 빨래터에 꽂습니다.


  빨래를 하지 않는 빨래터에는 물이끼가 낍니다. 물을 긷지 않는 샘터에도 물이끼가 낍니다. 그렇지만 이 샘터와 빨래터에는 다슬기가 살아요. 다슬기는 깨끗한 물살에 깃들어 살몃살몃 춤을 추듯 기어다닙니다. 개똥벌레는 이 다슬기를 먹이로 삼아서 살지요.


  나는 아이들하고 한 달에 두세 차례씩 마을 어귀 빨래터하고 샘터를 치웁니다. 이때에 다슬기는 고스란히 살립니다. 봄에 깨어날 개똥벌레 애벌레가 이 다슬기를 먹고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빨래터 둘레에는 흙이 없으니 개똥벌레가 살 수 없지만, 빨래터를 치우는 동안 다슬기가 물살을 따라 흘러가서 이웃 논도랑으로 가면, 그곳에서 깨어날 개똥벌레가 다슬기를 만나겠지요.



백자가 알의 배꼽으로 들어가면 입을 완벽하게 닫아 거는 알들은 그때부터 생기를 머금고 단단해지며 팽창하는 듯하다가 멈춰서 수정알처럼 빛난다. 수정란들이 붙은 돌은 반석의 든든하고 포근한 요람이다. (370쪽)


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죽지 못한다. 생명들은 생명을 낳고 죽는다. 생명을 낳는 것들은 그 전 생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물과 같은 부드러운 꿈들이었다. (399쪽)



  마을사람이 개울에 엎드려 입을 대고 물을 먹던 나날, 은빛 물고기는 은빛 춤을 추면서 냇물을 거슬러 올랐습니다. 마을사람이 개울에 엎드릴 수 없는 오늘날, 은빛 물고기가 은빛 춤을 추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더욱이 지난 몇 해 사이에 이 나라 거의 모든 냇물은 시멘트더미로 탈바꿈했습니다. 커다란 물줄기뿐 아니라 시골마을 작은 물줄기에다가 골짜기 물줄기까지 시멘트더미를 품에 안아야 했습니다.


  시멘트더미가 물줄기와 냇바닥을 뒤덮은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은빛 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시멘트를 찬양하거나 노래하는 글은 나올 테고, 시멘트길을 따라 자전거나 자동차를 달리다가 ‘인증 사진’ 찍는 놀이는 할 수 있을 테지만, 이제 《은빛 물고기》 같은 이야기를 써 내려 갈 만한 시인은 나오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다람쥐 이야기를 누가 쓸 만할까요? 송사리 이야기를 누가 쓸 만할까요? 딱새나 제비 이야기를 누가 쓸 만할까요? 큰빗이끼벌레 이야기 말고 눈부신 모래밭을 밟으면서 반짝이는 물빛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누가 쓸 만할까요?


  모래밭도 맑은 냇물도 물고기도 숲도 나무도 들꽃도 사라지고 온통 시멘트더미와 커다란 시멘트집만 덩그러니 남은 온 나라 물줄기에서 어떤 이야기가 태어날 만할까요? 고형렬 시인이 쓴 《은빛 물고기》는 고운 손길을 받아서 새롭게 옷을 입고 우리 곁에 태어납니다. 살가운 이야기책은 언제라도 이렇게 다시 태어나는데, 살가운 우리 이웃은, 숲이웃은, 냇물이웃은, 바다이웃은, 언제쯤 우리 곁에 고운 눈망울과 숨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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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었어 | 시골 아버지 육아일기 2016-02-2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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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었어



  무엇을 심었니? 씨앗. 어떤 씨앗을 심었니? 예쁜 씨앗. 그래, 네 말대로 네가 심은 예쁜 씨앗이 이 땅에서 예쁘게 돋을 수 있기를 빌어. 그 씨앗에 깃든 네 꿈이 활짝 깨어나기를 빌어. 네 손길을 받은 흙은 싱그럽게 거듭날 테고, 네 눈길을 받은 씨앗은 아름답게 깨어날 테니.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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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에 봄까지꽃은 | 책삶+글쓰기 2016-02-2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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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에 봄까지꽃은



  포근한 볕을 받으며 봄까지꽃이 깨어난다. 찬바람이 불면서 봄까지꽃이 오들오들 떤다. 찬바람하고 봄볕을 나란히 먹으면서 깨어나는 봄까지꽃이기는 하되, 찬바람만 오래 이어지면 그만 봄까지꽃 여린 잎이 시들시들 누렇게 바뀐다. 이러다가 찬바람이 누그러지고, 아니 철바람이 달라지는 날부터 시든 잎은 고요히 떨어지고 새롭게 푸른 잎이 돋는다. 조금 더 기운을 내고 기다리렴. 봄볕하고 봄바람이 너희 코앞까지 왔단다.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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