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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492 히비키 4 | 만화책 2019-06-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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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히비키 ~소설가가 되는 방법~ 4

야나모토 미츠하 글그림/김아미 역
소미미디어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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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492


《히비키 4》

 야나모토 미츠하루

 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6.29.



“그딴 것보다 지금 네 소설 얘기를 하고 있잖아. 나도 직접 소설을 쓰면서 0에서부터 1을 만들고, 그걸 작품이란 형태로 완성시켜내는 게 마냥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힘들다는 걸 알았어. 그건 타나카도 마찬가지잖아. 그런 고통을 겪어가면서, 왜 굳이 재미없는 작품을 만드는 거지?” (94∼95쪽)


“당신 눈엔 내가 남들한테 말을 걸 용기가 없어서 혼자서 책이나 읽는 것처럼 보여?” “아니.” “혼자서 책 읽는 게 잘못이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주위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의 학교도 즐거워. 주위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반 아이들을 친구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같이 놀아도…….” “꼭 찰싹 붙어다녀야 해?” (112∼113쪽)



《히비키 4》(야나모토 미츠하루/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을 보면, 고등학생이면서 소설가란 자리에 서는 히비키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린다. 소설읽기에서 소설쓰기로 넘어선 히비키는 ‘스스로 재미있다고 여길 만한 소설을 쓰는 일에 온힘을 들이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밝힌다. 애써서 소설을 쓰려 했다면 그럭저럭 마무리지을 일이 아니라, 제대로 마무리지을 일이라고 밝힌다. 히비키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교사 한 사람은 히비키가 ‘또래하고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기 바라지만, 히비키로서는 ‘굳이 찰싹 붙어다녀야 할 까닭이 없다’고 잘라말한다. 왜 어른(교사) 눈에 모든 다른 아이가 똑같은 몸짓이어야 하느냐고 따진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노릇이다. 왜 쓰는가? 무엇을 쓰는가? 왜 읽는가? 무엇을 읽는가? 나보다 잘난 이를 시샘하는 눈이 될 까닭이 있을까? 잘나고 못났다는 틀은 누가 세울까? 구태여 그런 틀을 따지면서 스스로 재미난 삶하고 등질 까닭이 있을까? 이 여러 가지를 가만히 헤아리면 길은 하나이다.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길을 가면 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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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204 | 만화책 2019-06-3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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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서커스의 딸 올가 2

야마모토 룬룬 글그림
대원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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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의 딸 올가 2

 야마모토 룬룬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5.31.



  처음 해낸 때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처음 눈을 뜬 날, 처음 목소리를 낸 날, 처음 일어선 날, 처음 걷던 날, 처음 달리기를 한 날, 처음 자전거에 올라 바람을 가른 날, 이런 첫날을 얼마나 떠올릴 수 있을까요. 종이에 처음 그림을 빚은 날, 글씨에 생각을 담아 이야기를 지은 날, 이리하여 처음 책을 하나 선보인 날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설레거나 두려울 만하던 첫날일 테지만, 이 모든 고빗사위를 껑충 뛰어넘는 ‘첫날 다음’은 이제부터 탄탄한 큰길입니다. 《서커스의 딸 올가》는 두걸음째에 드디어 해내려고 마음을 먹고 다부지게 일어서는 올가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울고 넘어지고 섭섭하고 아픈 모든 앙금을 털어낼 수야 없겠으나, 이 앙금에 머물 수 없다고 여기면서 다짐을 해요. 어버이 품에서 사랑받지 못한 채 어린 날부터 떠돌이로 지내야 하는 나날이라는 수렁을 잊고, ‘스스로 해내어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빛나자’고 하는 걸음을 내딛지요. 이 첫걸음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벌립니다. 눈부시거든요. 그리고 눈부신 첫걸음을 디딘 올가는 다시금 눈부신 두걸음 석걸음 넉걸음으로 차근차근 나아가려 합니다. ㅅㄴㄹ



“문자를 익히면 책을 읽을 수 있거든. 책을 읽게 되면 세계가 넓어져. 자신이 풍요로워지는 거야.” “그런데 그게 서커스에 도움이 돼?” “올가. 난 서커스는 예술이라고 생각해.” (104쪽)


“스타 앞에선 귀족도 부르주아도 노동자도 농민도 상관없이 누구라도 평등해질 수 있는 그런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최고로 즐겁지.” (198쪽)


“하지만 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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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2019 2.3. 책방 심다 | 책숲마실 2019-06-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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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에서 살다 (2019.2.3.)

― 전남 순천 〈책방 심다〉 / 061-741-4792

전남 순천시 역전2길 10

 https://www.instagram.com/simdabooks

 https://www.facebook.com/thesimda



  혼자서 순천마실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한테 슬쩍 묻기도 합니다. “순천으로 책집마실 같이 가겠니?” 아이들은 가만히 생각하면서 말한다. “으음, 오늘은 안 갈래요. 아버지 혼자 다녀오셔요.”라든지 “음음, 그래요. 같이 가요.” 하고.


  두 아이하고 함께 순천마실을 합니다. 먼저 이모저모 들를 곳에 들릅니다. 고흥에 없는 살림거리를 장만하고서 도시락을 먹고, 느긋하게 걸어서 〈책방 심다〉로 찾아갑니다. 낙안읍성 곁으로 옮긴 〈형설서점〉을 가면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데, 새터로 가는 길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형설서점〉 새터는 폐교에 깃들었기에 골마루도 길고 운동장도 있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하루를 즐길 수 있어요.


  〈책방 심다〉도 새로 자리잡은 곳은 이모저모 재미있습니다. 2층이 있고, 계단이 있지요.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알뜰한 전시장도 있어요. 죽 둘러보다가 다리가 아프면 책상맡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책집 한켠에 있는 책걸상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책걸상을 놓는 만큼 책꽂이를 덜어야 하지만, 책꽂이를 덜고서 책걸상을 놓기에 책집이 한결 빛나는구나 싶어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지난날에는 어느 책집이고 굳이 책걸상을 안 놓았습니다. 걸상 하나 없는 책집이 아주 많았어요. 지난날에는 책집에 왜 걸상을 안 놓았을까요? ‘책집에 와서 책을 안 사고, 그냥 읽고 가는 사람’을 줄이려고 걸상을 안 놓았지요.


  그러나 책을 즐기는 사람은 걸상이 없어도 꿋꿋합니다. 선 채로 한나절을 책읽기를 즐길 수 있어요. 책손이란 대단합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손에 쥐면, 한나절을 꼼짝않고 한곳에 서더라도 다리가 아픈 줄을 몰라요. 아름다운 이야기에 푹 잠기면서 오늘 이곳에 있는 몸을 까맣게 잊습니다. 배고픈 줄도 잊어요.


  《한 달 책방》(김정현, 심다, 2018)은 책집지기로 ‘한 달’을 살아낸 분이 단출하게 적어낸 이야기입니다. ‘고작 한 달을 살고서?’라 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한 달’을 살아낸 이야기이니, 이렇게 단출하게 묶을 만합니다. 책집지기 한 달 이야기는 한 달을 살아낸 만큼 값있으면서 뜻있어요.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곽재구, 문학동네, 2019)를 고릅니다. 순천을 사랑해 마지않는 목소리를 시집 구석구석에서 느낍니다. 곽재구 님은 순천 텃사람이 아니라지만, 꼭 텃사람이어야 순천사랑을 그려내지 않아요. 사랑할 사람이 그려내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순천 할머니, 남해의봄날, 2019)를 집어듭니다. 순천 할머니 이야기를 통영에 있는 출판사에서 펴냈어요. 재미난 흐름입니다. 두 고장이 책 하나로 만났어요. 할머니는 전라도하고 경상도를 책으로 이었어요. 이러면서 생각합니다. 순천에 듬직한 출판사가 새롭게 서서 순천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살뜰히 담아낼 수 있어도 좋겠다고.


  《토요일의 기차》(제르마노 쥘로·알베르틴/이주희 옮김, 문학동네, 2013)를 작은아이가 고릅니다. 기차가 흐르는 그림책을 오래오래 들여다봅니다. 네가 푹 빠지는 그림책이라면 장만해야지, 하고서 같이 값을 치릅니다. 기차는 토요일에도 달리고, 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달립니다. 어디로든, 꿈을 그리면서, 기쁘게 노래하면서 하늘을 훨훨 날듯이 달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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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노래] 어버이 2013-2019 | 책 언저리 2019-06-3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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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노래] 어버이


2013.8.5. 선물받은 시집을 앞짐에 챙겨서 두 아이를 데리고 순천으로 나들이를 간다. 시외버스에서건 어디에서건 살짝 틈을 내어 읽으려 한다. 그러나 바깥일을 보고 두 아이를 건사하느라 첫날은 한 쪽조차 못 펼치고, 이튿날 아침에 겨우 몇 쪽 펼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는 작은아이를 무릎에 앉혀 재우면서 나도 곯아떨어지느라 바빠 더는 못 읽는다. 그나마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면서 ‘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앞짐에 시집을 넣고 나들이를 나왔네.’ 하고 깨닫는다. 아이가 하나만 있던 때에도 나들이를 다니면서 책을 읽기란 무척 힘들었다. 아이를 돌보거나 살피는 데에 힘을 쏟을 뿐이었다. 아이를 둘 데리고 다니며 1분이나 10초쯤 책을 손에 쥐어 펼치기란, 여섯 살 세 살 어린 아이들이니 아직 바랄 수 없는 노릇이려나 싶다. 작은아이가 일고여덟 살쯤은 되어야 나들이 다니는 길에도 슬쩍 책 한 자락 꺼내어 몇 분쯤 누릴 수 있을까.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가 드물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며 짐에 책을 챙기는 아버지라면 훨씬 드물겠지.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 가운데 짐에 책을 한 자락 챙기는 분은 몇 사람쯤 있을까. 아이들 건사하기에도 바쁠 텐데 책을 짐에 넣어 구태여 무겁게 들고 다니려 한다고 해야 할까. 덧없거나 배부른 몸짓이 될까.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뛰고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살가운 책읽기가 되니, 어버이로서는 애써 종이책에 매이기보다 ‘아이책’ 또는 ‘삶책’을 한껏 누리자 여기면 될까.


2014.2.1. 아이들은 어버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찬찬히 지켜본다. 그러고는 스스로 가만히 따라하곤 한다. 아이들이 쓰는 말이란 모두 어버이가 쓰는 말이요, 여기에 둘레 어른들이 쓰는 말을 곁들인다. 아이들이 누리는 놀이란 어버이가 누리는 놀이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란 모두 어버이가 늘 먹는 밥이다. 네 살 작은아이가 그림책에 볼펜으로 금을 죽죽 그린다. 그림도 그린다. 무엇을 하는가 하고 지켜보니, 아버지가 책을 읽으며 하는 몸짓을 고스란히 흉내낸다. 아버지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으면 밑줄을 긋는다. 때로는 빈자리에 이런 생각 저런 느낌을 적어 넣는다. 아직 글을 모르고 읽거나 쓰지 못하는 작은아이인 만큼, 글씨 흉내를 꼬물꼬물 그림으로 보여준다. 큰아이는 두 살 적에 이런 금긋기와 그림그리기를 했다. 큰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 했으니 두 살 적부터 아버지 흉내를 냈고, 작은아이는 누나가 언제나 잘 챙기거나 도와주기 때문에, 두어 해쯤 늦는다고 여길 만하다. 작은아이가 볼펜을 쥐고 ‘아버지가 안 보는 데’에서 몰래 책에 금을 긋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비록 책을 다 어저립히듯이 금을 긋고 그림을 그려서 “아이고, 보라야, 그림책을 하나 새로 사야겠구나.” 하고 말했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맨 처음’으로 금도 긋고 글(그림)도 그린 책은 오래오래 건사하며 애틋하게 되돌아볼 만하리라 느낀다


2015.10.21. 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책으로는 언제나 책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지만, 사람은 책을 길동무로 삼기는 하더라도, 삶은 책 바깥에서 이룬다. 아름다운 책을 읽더라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책을 손에 쥐는 동안 흐른다. 책을 내려놓으면 삶은 책하고 다르다. 책에서 얻은 이야기가 삶에서도 흐르리라 여길 수 없다. 삶에서 누리는 이야기를 책에서도 함께 누리자고 여길 적에 비로소 책을 즐거이 맞이할 만하다고 느낀다. 책처럼 짓는 삶이 아니라, 삶을 짓듯이 책을 한 권씩 만나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된다. 그러니까 인성교육이든 무슨무슨 교육이든 책으로는 할 수 없다. 가르침이나 배움은 오직 삶으로 할 수 있다. 직업교육이든 지식교육이든 학교에서는 할 수 없다. 오직 마을이랑 집에서 삶으로 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학교는 삶터 구실을 하나도 못 하면서 오직 시험공부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나? 언제쯤 이 수렁에서 헤어나오려나?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는 학교라 한다면, 학교에서 인성교육이나 다른 여러 가지 교육을 할 만하다. 그러나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을하고는 동떨어진 채 ‘출퇴근하는 공무원’만 있는 학교라 한다면, 이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다운 마음결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성교육’이라면, 모름지기 삶자리에서, 그러니까 어버이랑 아이가 이웃하고 동무를 아끼는 하루를 누려야지 싶다. 숲·나무·풀·꽃이며 온갖 벌레·새·뭇짐승에다가 바람·해·별·달·구름 모두를 헤아릴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따순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착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을 키우거나 가꾸거나 살찌울 만하리라 느낀다. 별 한 톨 못 보는 아이들이 무슨 착한 마음이 되겠는가? 바람 한 줄기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이 무슨 고운 마음을 가르치겠는가? 가을에 가을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노래를 함께 부를 적에 비로소 삶이요 교육이며 사랑이 된다.


2018.8.10. 흔들리는 버스나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열일곱 살부터 이런 책읽기를 했다. 열일곱 살이던 해에 어버이가 집을 옮기는 바람에 그때부터 고등학교를 두 다리 아닌 버스로 다녀야 했고, 버스로 한 시간 즈음 다녀야 하는 길에 언제나 한 손에 책을 쥐고서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책을 거쳐서 읽으려 했다. 흔들리는 곳에서 책을 어떻게 읽을까? 흔들림에 맞추어 몸을 똑같이 흔들기에 얼마든지 읽는다. 흔들리는 곳에서 몸이 안 흔들리도록 하려면 책이며 눈이 다 흔들려서 글씨가 눈에 안 들어온다. 그러나 버스나 전철이 흔들리는 결하고 몸을 똑같이 맞추어 움직이면(흔들면), 눈은 책을 또렷이 바라보고 아무 흔들림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을 적에는 오직 책만 바라본다. 다른 것을 바라볼 까닭이 없다. 창밖을 본다거나 버스·전철을 탄 다른 손님을 볼 까닭이 없다. 사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난 터라, 내 또래는 버스를 타면 으레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난 여학생’을 흘깃거리던데, 나는 그런 흘깃질에 마음이 없었다. 거꾸로 내 또래 가운데 책읽기에 마음이 있던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아마 또래들 눈으로는, 내가 참 어이없거나 바보스러웠으리라. 책읽기를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1000쪽에 이르는 책도 몇 분이나 몇 초 만에 읽어낼 수 있다. 1000쪽이건 2000쪽이건 이러한 책에 깃든 참거짓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무슨 심령술사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숲에 깃들어 숲을 늘 마주하면서 숲을 읽으려 한다면, 숲을 척 보아도 숲이 아픈지 튼튼한지 바로 알아챈다. 나는 책으로 내 마음읽기를 어릴 적부터 했기에, 어느 책을 보든 이 책을 쓴 분이 ‘무엇을 바라보고 바라며 책을 냈는가’를 마음으로 읽는다. 이를테면, 돈을 바라보았는지, 이름값을 바라보았는지, 교수 자리를 바라보았는지, 티없는 넋으로 이웃한테 앎을 나누려 했는지, 즐겁게 배움길을 걸으며 깨달은 슬기를 벗한테 알려주고 싶은지, 어설피 짚은 헛다리가 헛다리인 줄 모르고 자랑을 늘어놓으려 하는지 …… 들이 책 겉종이만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더라. 그런데 퍽 오랫동안 놓친 대목이 있다. 책을 보며 책을 읽어낼 줄 아는 눈이라면, 사람을 보며 사람을 읽어낼 줄 아는 눈으로도 옮아 가야 아름답겠지? 이 눈으로 살림과 삶과 사랑을 읽고 알아내며 즐겁게 꽃피우는 눈으로도 옮겨 가야 기쁘겠지? 그러니까, 나는 책으로 마음을 읽는 눈을 키우기는 했어도, 그 다음 길을 어떻게 간다든지 새로 지필 만하다는 대목을 못 느끼거나 생각을 않은 채 살았더라. 열일곱부터 걸어온 이 길이 어느 고비를 맞이한 요즈음 아주 짤막한 말 한 마디가 벼락처럼 가슴으로 스민다. “더 할 수 있습니다”라는 한 마디. 이 말을 들려준 분은 나더러 책을 앞으로 어떻게 읽으라거나, 여러 마음닦기나 몸닦기를 어떻게 다스리라고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 한 마디 “더 할 수 있습니다”를 들려주었을 뿐. 나는 이 한 마디를 듣고 먼저 물속에서 내 몸을 새롭게 맞추어 보았습니다. 눈을 뜨고 골짝물에 잠겨 숨을 일곱걸음 내뱉아 보았다. 세걸음 내뱉기까지는 어렵잖이 되는데, 네걸음을 내뱉으려니 문득 숨이 막히네. 이때에 “더 할 수 있습니다”를 떠올리며 몸에 그렸고, 그 뒤 거침없이 물속에서 숨을 내뱉을 수 있더라. 냇바닥에 착 가라앉아서 달라붙은 몸 둘레로 온갖 물고기가 맴돌면서 ‘반가워, 잘 왔어. 우리 같이 놀자.’ 하고 속삭여 주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몸에는 끝이 없다. 우리 몸은 이 몸뚱이에 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우리가 마음으로 끝이 있다는 생각을 씨앗 한 톨로 심으면 몸은 이대로 따라간다. 우리가 마음으로 끝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씨앗 한 톨로 심으면 몸은 또 이대로 따라간다. 무엇을 먹어야 튼튼해지지 않겠지. 무엇을 안 먹어야 튼튼해지지 않을 테고. 먹든 말든, 마음이 기쁨인지 두려움인지 살필 줄 알아야지 싶다. 하든 안 하든, 하다가 그치든 끝까지 해보려 하든, 제대로 바라보아야지 싶다. 우리는 어디를 보는 책읽기를 할까?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마음읽기를 할까?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꿈읽기를 할까? 길은 늘 우리 마음에 있고, 길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스스로 머리를 어떻게 틔워서 가슴을 어떻게 여는가에 달린 노릇이지 싶다.


2019.6.28. 어버이는 두 가지 말을 아이한테 들려주는 사람. 첫째, “가! 신나게 가! 마음껏 가! 하고픈 대로 가!” 둘째, “그만! 멈춰! 다툼은 그만! 다툼은 멈춰! 미움은 그만! 미움은 멈춰! 시샘은 그만! 시샘은 멈춰! 히죽질은 그만! 히죽질은 멈춰! 괴롭힘질은 그만! 괴롭힘질은 멈춰!” 어버이는 아이가 스스로 나아갈 길을 신바람을 내며 가도록 북돋우다가도, 아이가 스스로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려 할 적에 멈춰세우고는 이다음 걸음을 스스로 어떻게 하라고 짚어 주는 곁사람이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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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노래] 마음 1994-2019 | 책 언저리 2019-06-3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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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노래] 마음 199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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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우리말 책읽기 사전>이란 책을 써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런 책이 태어나자면, 2019년 올해 7월에 텀블벅으로 <우리말 글쓰기 사전>부터 씩씩하게 태어나야겠지.


https://tumblbug.com/writing0603


이 텀블벅에 즐겁게 힘을 실어 주셔요.

<우리말 책읽기 사전>이란 책을 낸다면 실을 '마음'이란 꼭지에 담을 글자락을 그럭저럭 추스른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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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책노래. 마음


1994.6.5.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고 느낀다. 우리 마음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가를 읽으면서 책을 만난다고 느낀다. 우리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읽는 동안 책을 알아차린다고 느낀다. 여느 때에 늘 숲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 숲을 다루는 책을 한눈에 알아보더라. 언제나 시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서관에서든 학교에서든 시를 노래하는 책을 시나브로 알아내고. 구름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서울을 벗어나 너른 들녘을 마주하더라도 구름을 알아보지 못해. 들꽃을 마음에 심지 않으면 골목에서나 숲에서나 들꽃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꽃집 옆에 서더라도 꽃내음을 못 맡아. 마음 가는 곳을 읽는다. 마음으로 읽기에 줄거리 아닌 글쓴이 넋과 얼을 책에서 헤아린다. 마음으로 읽으니까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아닌 책을, 말 그대로 책을 읽는다. 인기도서나 비인기도서를 읽을 까닭이 없다. 인문책이나 처세책을 읽을 까닭도 없다. 그저 책을 읽는다. 오롯이 책을 만난다. 마음이 사랑스레 피어나도록 책을 읽는다. 


1998.12.21.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다르다. 아무리 훌륭하다는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짓궂거나 얄궂은 마음이라면 읽지 않는만 못할 수조차 있다. 성경을 읽어야 착해지지 않더라. 착하게 살면서 성경을 읽어야지. 동화책을 읽어야 맑은 마음 되지 않아. 맑은 마음으로 살면서 동화책을 읽어야지. 시집을 읽어야 문학을 알거나 소설책을 읽어야 문학을 누리지 않더군. 삶이 언제나 시처럼 흐르면서 시집을 읽고, 삶을 늘 소설처럼 이야기샘 솟도록 가꾸면서 소설책을 읽어야 아름답더라. 눈으로도 읽지만, 눈과 함께 마음으로 읽는 책. 눈으로도 꽃을 바라보고 나무를 헤아리지만, 눈과 함께 마음으로 바라보는 꽃이요 마음으로 헤아리는 나무. 밥 한 그릇을 혀와 입으로 먹지만, 혀와 입과 함께 마음으로 먹는다. 밥을 지은 사람 마음을 느끼고, 밥으로 차리기까지 흙을 보살핀 흙지기 손길을 나란히 누린다.


1999.12.18.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펼치기 앞서 마음을 펼쳐야지 싶다.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 가만히 헤아리면서, 마음자락을 책 앞에 펼쳐야지 싶다. 맑고 싱그러운 숨을 들이마시고 싶다면, 먼저 몸에 깃든 바람을 바깥으로 내보내야겠지. 핏톨에 얹혀 온몸 구석구석 돌고 난 바람을 살그마니 바깥으로 내보낸 뒤에라야 맑고 싱그러운 숨이 몸으로 보드랍게 스며들어 새 기운이 솟을 수 있도록 북돋운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꼬옥 안자면 두 팔을 벌려야 한다. 두 팔을 벌려야 안지, 두 팔을 안 벌려서는 아이를 안지 못해. 콩씨를 심어야 콩을 거두고, 팥씨를 심어야 팥을 거두어. 숲에 깃들어야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고, 흙을 일구어야 맛난 밥을 얻어. 마음을 열 적에 책이 가슴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열고 책을 손에 쥐어 한 쪽 두 쪽 넘길 적에 비로소 이야기 한 자락 가슴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겉훑기로 그쳐.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책을 손에 쥐면 지식이나 정보는 얻더라도 꿈과 사랑은 누리지 못해. 마음을 열어 책을 읽으면, 지식이나 정보는 잘 모른다 하더라도 꿈과 사랑을 따사로이 누려. 꿈과 사랑을 따사로이 누리는 사람은, 책으로 지식이나 정보를 못 얻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삶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찾아내.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잖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밥을 짓잖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지은 밥을 먹고 기운을 내어 흙을 일구고 나무와 풀을 돌보잖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지은 밥을 먹고 기운을 내어 흙을 일구고 나무와 풀을 돌보던 손길로 곁님과 아이를 곱게 안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누리잖아. 책은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있는데.


2003.11.18. 모든 책은 마음으로 들어온다.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은 책은 삶으로 들어오지 못한 책. 마음으로 들어온 책일 적에 사랑씨앗 한 톨 두 톨 드리우면서 우리 마음밭에서 사랑나무가 자란다. 사랑나무가 자랄 적에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사랑말 되고, 우리 손으로 쓰는 글은 사랑글 되며, 우리 목청으로 부르는 노래는 사랑노래가 된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 하나 곱게 건사할 수 있다면, 밥을 지으며 사랑밥을 나누지. 집을 돌보며 사랑집을 가꾸지. 옷을 기우며 사랑옷을 입어. 일은 사랑일 되고, 놀이는 사랑놀이 될 테지. 마실은 사랑마실이 될 테며, 이야기는 언제나 사랑이야기 되겠지. 책을 마음으로 담지 않는다면, 마음밭에 사랑씨앗을 못 뿌린다. 사랑씨앗을 못 뿌렸으니 마음밭에서 사랑나무가 자랄 수 없고, 다른 나무도 자랄 수 없네.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스스로 마음밭에 씨앗을 뿌리고 싶기 때문 아닐까. 책은 길이 아니다. 책은 스스로 삶길을 열도록 북돋우는 길동무 아닐까. 책을 읽으며 마음밭에 스스로 뿌릴 씨앗이 무엇인가 하고 알아차린다. 책을 읽는 사이 삶길을 어떻게 다스릴 적에 아름다운가 하고 깨닫는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하면 그 책이 누구 손으로 돌아가든 아름답게 읽힐 수 있으리라. 곧, 내가 읽은 책은 이 삶을 살찌우는 밑거름이 되고, 내가 읽은 책으로 오늘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면, 이 삶에서 흐르는 오늘 빛이 둘레로 찬찬히 퍼져 이웃들이 저마다 이녁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도록 돕기도 하리라. 내가 읽은 아름다운 책을 이웃한테 건네주어도 좋다. 헌책집이라는 곳이 있으니, 내가 읽은 책을 가만히 내놓으면, 누가 이 헌책집으로 찾아와서 내가 내놓은 책을 기쁘게 장만하겠지. 또는,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아름다운 빛으로 오늘 삶길을 가꿀 수 있으면, 이 삶빛은 언제라도 둘레에 환하게 드리울 테니, 이웃과 동무는 우리 빛을 나누어 받으면서 즐겁게 삶읽기를 누릴 수 있겠지. 마음으로 들어온 책은 마음에서 빛나 따사로운 바람이 된다.


2008.11.23. 우리가 먹는 밥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밥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물과 바람을 마시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 생각을 이룬다.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읽는 것이 우리 앎을 이룬다. 어떤 것을 읽느냐에 따라 우리 앎이 달라진다. 그러면, 마음과 사랑과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마음을 어떻게 가꾸고, 사랑은 어떻게 나누며, 꿈은 어떻게 키울 때에, 우리 스스로 기쁘면서 아름다울 수 있을까. ㅈㅈㄷ신문을 읽는 사람은 두 갈래 길로 간다.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대로 멍하니 좇는 길을 간다. 다른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거짓을 알아채면서 ㅈㅈㄷ을 꾸짖거나 손가락질하는 길을 간다. 둘 모두 ㅈㅈㄷ 언저리에서 헤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ㅈㅈㄷ을 끊으면 된다. 들풀을 보거나 들꽃을 보는 사람은 들풀과 들꽃을 차츰차츰 익힌다. 어느 풀을 뜯어서 먹으면 몸에 도움이 되는가를 스스로 시나브로 깨닫고, 어느 꽃을 어느 철에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지 찬찬히 알아챈다. 도감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살핀다고 해서 들풀이나 들꽃을 알아채거나 배우지 못한다. 육아책을 만 권쯤 읽기에 아이를 잘 돌보거나 키우지 않는다. 육아책은 한 권만 읽어도 되지만, 한 권조차 안 읽어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키울 아이는 우리 아이인 터라, 우리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고 살가이 보듬으면서 따스히 보살필 수 있으면 된다. 인문책을 읽는 사람은 인문책 지식을 머리에 담는다. 베스트셀러를 읽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줄거리를 머리에 담는다. 교과서와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교과서와 문제집 정보를 머리에 담는다. 스스로 찾거나 보거나 읽는 대로 마음을 이룬다. 어느 책을 찾거나 보거나 읽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 이러한 모습이 되기에 훌륭하지 않고, 저러한 모습이 되기에 볼썽사납지 않다. 그저 그뿐이요, 그저 그이 스스로 나아가는 삶일 뿐이다. 넋이 무엇인지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넋을 바라볼 수 있다. 하루가 걸릴 수 있고 한 해가 걸릴 수 있으며 백 해나 즈믄 해가 걸릴 수 있다.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바라보면서 꾸준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침내 제대로 알아채면서 깨닫는다.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도 못 깨닫는다. 누구는 야구나 축구를 잘 알 테지만, 누구는 야구나 축구라는 이름조차 모른다. 바라보는 사람은 차근차근 알면서 깨달을 테지만, 안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조금도 알 수 없다. 마음을 이루는 책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먼저 내가 어떠한 길을 걷는 삶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삶길을 생각하면서 이 삶길에 걸맞구나 싶은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말글을 다루는 사람은 말글을 다룬 책과 온갖 사전을 곁에 두면서 말글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릴 수 있다. 역사를 다루는 사람은 역사를 다룬 책과 온갖 자료를 옆에 놓으면서 역사를 누구보다 깊이 돌아볼 수 있다. 보고 다시 보며 또 보니, 잘 알고 깊이 알며 넓게 알 수밖에 없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는다. 좋거나 나쁜 책은 없다. 그저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을 뿐이다. 어느 책을 고를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면서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값싼 책을 살 수도 있고 비싼 책을 살 수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우리 삶을 씩씩하게 걷는 길에 맞는 책’인지 제대로 살펴서 품에 안아야 한다.


2010.1.2.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서 고른다. 스스로 찾아서 고른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겨를을 내고,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곳에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엎드려서, 스스로 가장 즐거운 눈빛을 밝혀 ‘이야기’를 누린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이 아닌 책읽기가 있다. 이를테면, 서평도서라든지 홍보도서가 되면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즐겁지도 않더라. 추천도서와 명작도서라면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즐겁지도 않더라. 독후감 숙제나 논술훈련이라면 아름다울 수도 사랑스러울 수도 즐거울 수도 없더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신문이나 영화 같은 매체는 우리한테 자꾸 ‘유행’이나 ‘사건 사고’ 같은 데에 얽매이도록 할 뿐 아니라, 생각을 안 하고 빨려들도록 이끌지 싶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깊이 쓰면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저 휩쓸리거나 휘말리고 만다. 그렇지만, 아무리 책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서 찾고 고르고 읽고 삭이고 누리고 나누지 않는다면, 멍하니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몸짓하고 똑같겠지. 마음을 기울이기에 아름다운 책읽기가 된다. 마음을 쏟을 적에 사랑스러운 책읽기가 된다. 마음을 들이면서 삶을 지으니 즐거운 책읽기가 된다. 책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읽어서 누리는 사람은, 종이책이 아닌 나무와 풀과 새와 구름과 해와 바람과 흙을 읽으면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을 맛본다.


2013.11.1. 바쁜 일이 있을 적에는 한 줄만 차근차근 읽어도 된다. 굳이 긴 글이나 여러 글을 다 읽지 않아도 되지. 바쁜 일이 있으면 바쁜 일에 마음이 사로잡히기 마련이라, 책이나 글을 제대로 살피기 어렵다. 책이나 글은 바쁜 몸으로는 못 읽기 때문. 바쁜 사람은 노래를 제대로 못 듣는다. 바쁜 사람은 사랑을 제대로 못 한다. 바쁜 사람은 밥맛을 제대로 못 느낀다. 바쁜 사람은 하늘빛과 햇빛과 웃음빛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한다. 안 바쁠 때에, 아니 느긋할 때에, 느긋하면서 아늑하고 따사로울 적에 비로소 책을 읽는다. 느긋하면서 아늑하고 따사로울 적에 찬찬히 노래를 듣고 사랑을 하며 밥맛을 느낀다. 느긋한 삶에서 느긋한 말이 샘솟아. 아늑한 삶에서 아늑한 말이 흘러. 따사로운 삶에서 따사로운 말이 고운 빛으로 거듭나.


2015.2.26. 배울 마음이 없는 사람은 배울 수 없다. 참으로 그렇다. 배울 마음이 있는 사람은 배울 수 있다. 참말로 이와 같다. 눈을 뜨고 싶다면 눈을 뜰 수 있다. 눈을 감고 싶다면 눈을 감을 수 있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모든 일을 한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서 내 길을 걷는다. 남이 나를 가르치지 못한다. 내가 나를 가르친다. 왜냐하면, 아무리 남들이 내 앞에서 멋진 강의와 강연을 베풀어도 ‘스스로 들어서 배울 마음’을 끌어내야 비로소 배우기 때문. 그러니까, 나를 가르치는 사람은 언제나 나일 뿐. 숱한 스승이나 멋진 길잡이나 훌륭한 이슬떨이는 우리 곁에서 이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일 뿐. 이들이 우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가르치려고 이들, 스승이나 길잡이나 이슬떨이를 불러서 함께 이 길을 걷는다. 남이 나를 살리지 못한다. 내가 나를 살린다. 왜냐하면, 아무리 내 머리에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어도, 내 마음이 움직여서 내 몸이 숨을 쉬도록 말을 걸지 않으면, 나는 숨을 못 쉬고 죽는다. 내가 살려면 내가 기운을 내어 숨을 쉬고 밥을 먹어야 한다. 배우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배운다. 살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살아난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책을 읽는다. 돈을 벌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돈을 번다. 삶을 지으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삶을 짓는다.


2017.10.4. 나이를 한 살 더 먹기에 더 슬기롭지 않더군. 돈을 더 많이 벌기에 더 너그럽지 않더라. 글을 더 많이 썼기에 더 빼어나지 않네. 말을 더 잘 하기에 더 착하지는 않고. 책을 더 많이 읽었기에 더 아름답지는 않지. 땅을 더 거느리기에 더 넉넉하지 않을 뿐더러, 밥을 더 많이 먹었기에 더 배부르지 않아.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늘 달라지는 살림. 읽는다는 마음이란, 우리 스스로 아직 모자라거나 어리숙한 줄 깨닫고 이를 채우거나 가다듬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즐겁게 새로 지을 길을 갈고닦거나 가꾸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한테는 책 하나조차 없어도 된다. 참답고 고우며 착하게 읽으려는 마음이 있을 적에는 우리 스스로 책이 되고 우리 스스로 책을 지으며 우리 이웃이 빚는 숱한 삶책을 받아들일 수 있다.


2018.12.12. 나는 “모든 아이는 열 살 무렵까지 신나게 뛰놀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 한동안 생각했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7년에 열 살이다. 얼마 앞서 곁님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곁님이 한 마디를 하네. “아이들이 스무 살까지 신나게 뛰놀아도 되지 않을까요?” 곁님이 문득 들려준 말을 듣고 10초쯤 생각했다. 더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더군. 참말로 모든 아이는 열 살 무렵까지 신나게 뛰놀고, 스무 살에 이르도록 재미나게 뛰놀면 좋겠네. 나중에 서른 살 적까지 사랑스레 뛰놀면 더욱 좋구나 싶고. 놀 줄 아는 마음이란 어떻게 누구하고 놀 적에 어떻게 즐거운가를 알 수 있는 삶이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 마음은 고이 흐르고 흘러서 어떻게 누구하고 일할 적에 어떻게 즐거운가를 알아차리는 살림으로 거듭나지 싶다. 잘 놀며 자란 아이가 잘 일하며 살림짓는 어른이 되지 싶다. 슬기롭고 사랑스레 놀며 자란 아이가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살림을 지어 새롭게 아이를 낳거나 돌보는 어버이가 되지 싶다. 그래서 신나게 뛰놀며 자란 아이는 책을 읽어도 참으로 아름답고 알차며 사랑스레 읽는 멋스러운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지 싶다. 


2019.6.29. “저기 노래가 흐르나?” “저기 차가 지나갔나?” “저기 누가 있나?” “저기 덥나?” “저기 춥나?” 내가 나를 지켜보면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가려고 한다면, 우리 마음은 우리 몸이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빛나게 튼튼한 결을 잇도록 이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기울일 줄 알면, 오직 우리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즐겁게 지낸다. 이때에는 시끄러움·수선스러움·더위·추위·남눈 모두 튕겨낸다. 책읽기도 좋고 글쓰기도 좋고 밭일도 좋고 집안일도 좋고 수다질도 좋다. 무엇이든 좋으니 생각해 보자. 우리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서 이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를 하면 이 일이나 놀이를 빼고 다른 것은 하나도 우리 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나는 수다꽃잔치에서는 추위도 더위도 ‘하루가 저무는 줄’도 잊는다. 멋진 삶이자 마음이 아닌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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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6.25. 까마귀책 | 오늘 읽기 2019-06-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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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6.25.


까마귀책

 마츠바라 하지메 글/김봄 옮김, ㅁㅅㄴ, 2018.1.30.



까마귀는 처음부터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까마귀 한 마리가 슬쩍 내려앉아서 먹이를 찾더니, 어느새 우리 집 나무에 찾아들어 열매를 쪼았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흐르면서 우리 집 손님이 되는 까마귀가 늘어난다. 올해에는 이 나무 저 나무에 여러 까마귀가 하루 내내 찾아온다. 코앞에서 까마귀를 지켜보다가 《까마귀책》을 떠올린다. 그래, 지난 수원마실을 하며 〈마그앤그래〉에서 장만한 “까마귀책”을 펴자!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소리를 듣는 까마귀 이야기를 글로 읽으니 새삼스럽다. 이렇구나 저렇구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즐겁게 읽는다. 까마귀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썩 많지 않다지만, 까마귀를 아끼는 사람도 제법 있으니 이렇게 “까마귀책”이 태어나겠지. 곰곰이 생각하면 ‘까마귀사랑’이란 말이 있듯이 한겨레는 까마귀를 곁에 두면서 살폈지 싶다. 까치는 새로운(또는 낯선) 사람이 찾아든다고 알리는 새요, 까마귀는 어버이하고 아이가 서로 아끼는 살림을 알리는 새로 여긴 살림이라고 할까. 오늘 이곳 우리 집에서는 “어떤 우리 집 책”을 쓸 만할까?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무엇을 보고 배우면서 이야기를 누릴까? 나는 아이들 곁에서 어떤 몸짓하고 손길로 사랑을 짓는 하루일까? ㅅㄴㄹ



까마귀책

마츠바라 하지메 저/김봄 역
ㅁㅅㄴ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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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9.6.27.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 오늘 읽기 2019-06-2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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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6.27.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최경순 글, 문학의전당, 2017.2.20.



마을 어르신들이 면소재지로 가서 모둠밥을 먹기로 한다. 작은아이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는 고기를 구워먹지 않는다. 어쩌다가 삶은고기나 찜고기를 먹을 뿐이다. 아마 어릴 적부터 느꼈지 싶은데, 나는 구운고기가 맛있은 적이 없다. 딱히 맛으로 뭘 먹은 적은 없되, 풀잔치라면 반가이 누린다. 구름이 걷히는 하늘을 본 작은아이는 바다를 노래한다. 그러면 바다에 가자. 바람을 타고 엄청나게 밀려드는 물결을 맞으며 놀고서 시집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를 해바라기하면서 읽는다. 해바라기를 하면 어떤 책이든 따뜻하게 감긴다. 바람을 쐬면 어느 글이든 상큼하게 스민다. 빗소리를 들으면 어느 이야기이든 녹아든다. 맨발로 풀밭에 서면 어느 삶이든 새롭게 보인다. 오늘은 어느 생각으로 아침을 맞이하면서 이 낮에 이르렀을까. 저 물결은 그저 일렁일렁하기만 해도 아이들이 웃음꽃으로 이끈다. 입에서 터져나오는 말 한 마디로도 다같이 노래할 수 있는 길은 어디일까. 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한 자락으로도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닷가 바위에 드러눕는다. 울퉁불퉁한 결에 맞추어 누우니 재미지다. 가만히 바위하고 하나가 되니, 바위가 두웅실두웅실 춤을 춘다. ㅅㄴㄹ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최경순 저
문학의전당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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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2019.1.16. 골목책방 서성이다 | 책숲마실 2019-06-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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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곳은 이곳이다

― 전남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전남 순천시 향교길 39

 061.751.1237.

 https://www.instagram.com/walking_with_book/



  〈골목책방 서성이다〉를 두걸음째 찾아가면서 생각합니다. 이곳은 이곳입니다.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다른 곳을 이어서’ 하는 곳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이곳에서 이 나름대로 새롭게 길을 가려는 곳’이라고 여겨야지 싶어요.


  그렇지만 두걸음째로 딛는 마을책집에서 문득문득 ‘예전에 이곳에서 책집을 하던 분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문득문득 드는 이런 생각을 내려놓고서 책을 보기로 합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오늘책’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담기로 합니다.


  저는 어느 책집에 가든 ‘내가 읽을 책’을 살펴서 고릅니다. 제가 고르는 책이 어린이책이든 그림책이든 ‘아이한테만 읽히려고 고르는 책’은 없습니다. 아이에 앞서 제가 먼저 찬찬히 읽을 책이고, 저부터 가만히 누리고 나서야 아이한테 건넬 수 있는 어린이책이요 그림책입니다.


  《지렁이가 세균 아저씨를 꿀꺽 삼키면》(에릭 바튀/박나리 옮김, 책속물고기, 2016)을 고릅니다. 에릭 바튀 님이 빚은 다른 그림책을 즐겁게 읽은 터라, 이런 그림책이 있었구나 하고 반기면서 고릅니다. 다만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히자면 덧말을 요모조모 붙여서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세균’이란 ‘나쁜 것’이 아니거든요. 또 ‘좋고 나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몸하고 마음을 가꾸는 길에서 ‘무엇’을 살펴서 몸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지을 만한가를 같이 이야기해야겠다고 여깁니다.


  《타인을 안다는 착각》(요로 다케시·나코시 야스후미/지비원 옮김, 휴, 2018)을 집어듭니다. 책이름이 줄거리를 모조리 밝힙니다. 참말로 우리는 ‘내가 너를 안다는 엉뚱한 생각’이 되곤 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알까요? 네가 나를 어떻게 아는가요?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서로 모르니 쳐다봅니다. 서로 모르니 말을 섞습니다. 서로 모르니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서로 모르니 만납니다. 서로 모르니 함께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꾸립니다.


  자, 생각해 봐요. 우리가 서로 안다면 구태여 말을 할 까닭이 없어요. 서로 아는데 뭐 하러 책을 쓰고 엮어서 읽을까요? 서로 안다면 한 집에 같이 살지 않아도 사랑이 어떻게 피어나서 흐르는가를 참말로 잘 알 테니,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딴짓을 할 까닭도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모르는 줄 알면서 살아야지 싶어요. 저는 이 마을책집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마을책집으로 찾아가서 한나절을 누리면서 아직 제가 모르는 책을 살펴서 아직 모르는 길을 헤아립니다. 저는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라,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바깥마실도 하고 집안일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기보다, 어버이로서 모르는 것투성이인 삶을 어떻게 다스릴 적에 사랑이 되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까만 아이》(세바스티엥 조아니에·다니엘라 티에니/김주열 옮김, 산하, 2014)를 고릅니다. 이 책은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이내 다 읽습니다. 겉보기로는 까만 아이인데, 속으로 보면 어떤 빛일까요? 겉보기로 하얀 아이라면, 파란 아이나 푸른 아이라면, 이 아이들은 속눈으로 어떤 빛을 느낄 만할까요?


  책손한테 책집은 낯선 곳입니다. 책집지기로서 책손도 낯선 사람입니다. 책손은 어떤 책을 오늘 만날는지 까맣게 모르는 채 책집마실을 합니다. 책집지기는 어떤 책손이 어떤 책을 만나려고 이곳까지 그렇게 품하고 돈하고 하루를 들여서 찾아오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알지 못하는 책손하고 이어진 끈을 알아보고 싶어서 책집 한켠을 쓸고닦으면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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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91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동시집+시집 2019-06-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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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저
실천문학사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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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1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실천문학사

 2014.7.3.



  쏟아지던 비가 그치기 무섭게 구름으로 가득하던 하늘이 조금씩 열리더군요. 비를 흠뻑 쏟은 구름은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빼꼼 비추어 주고, 이렇게 빼꼼빼꼼 고개를 내미는 파란하늘을 알아차린 작은아이가 “오늘은 바다 가기 좋은 날이겠네요?” 하고 묻습니다. 어버이는 비가 그치며 땅바닥이 보송보송 마르는 결을 살피면서 ‘며칠 미룬 빨래를 드디어 할 만하네’ 하고 여기고, 작은아이는 똑같은 결을 바라보면서 ‘이런 날은 바다놀이 하면 딱 좋네’ 하고 여깁니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에 여러 사람 눈길이 나옵니다. 누구는 이런 눈길로 바라보고, 누구는 저런 눈길로 바라봅니다. 이 눈길이라서 옳지 않고, 저 눈길이라서 싫지 않습니다. 요 눈길이라서 반갑지 않고, 조 눈길이라서 성가시지 않아요. 다 다른 눈길이기에 다 다른 삶길을 걸어가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꽃처럼 피웁니다.  시쓴님은 “술자리에 시인 벗 하나쯤” 낄 수 있으면, 귀퉁이에 끼면 좋겠네 하고 여기는데, 술자리에 시인만 모였다면 ‘시를 안 쓰는 벗’을 귀퉁이에, 아니 한복판에 앉히고서 도란도란 수다잔치를 할 만하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볕이 눈부신 어제는 작은아이 말마따나 바다마실을 하며 실컷 물결놀이에 모래놀이를 했고, 하루 지난 오늘 비로소 빨래잔치를 벌였습니다. ㅅㄴㄹ



굶어도 좋고 밟혀도 좋고 손가락질받아도 좋다 / 빗길을 걸어가서 보고 싶은 사람 만나게 해주고 / 눈길을 걸어가서 사랑을 만질 수 있게 해준다면 (맹도견/18쪽)


― 술자리에 시인 친구 하나는 있어야 구색이 맞지 / 요즘 더러 듣는 이야기 (구색/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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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90 정말 (이정록) | 동시집+시집 2019-06-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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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말

이정록 저
창비 | 201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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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0


《정말》

 이정록

 창비

 2010.3.25.



  비가 오니 비를 맞으며 걷습니다. 어린이로 살 적부터 어버이로 사는 오늘에 이르도록, 비를 맞으면서 싫은 일이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볕이 쨍쨍 내리쬐니 불볕을 실컷 맞습니다. 어린이로 놀 적부터 어버이로 일하는 요즈막이 되도록, 불볕이건 땡볕이건 꺼린 일이 없습니다. 둘레에서는 그러지요. ‘이쪽으로 와서 비를 그으라’거나 ‘그늘로 와서 해를 가리라’고요. 그렇지만 비맞이도 볕맞이도 즐기고, 바람맞이도 밤맞이도 아침맞이도 즐깁니다. 모두 ‘맞이’합니다. 《정말》을 펴면, 시쓴님이 걸어가는 길에 맞이한 삶이 이런 이야기하고 저런 줄거리로 흐릅니다. 어머니한테서 들은 삶노래가 시로 태어나고, 이웃하고 나눈 하루가 시로 거듭납니다. 가만히 보면, 늙건 젊건 어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삶노래’입니다. 따로 ‘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구성진 가락입니다. 구성질 뿐일까요? 멋들어지지요. 멋들어지기만 할까요? 곱지요. 곱다뿐인가요? 사랑스럽지요. 우리 곁에 숱한 삶노래가 어머니 입에서 아버지 손에서 할머니 다리에서 할아버지 눈빛에서 흐릅니다. 이 삶노래를 넌지시 받아서 글로 옮길 줄 안다면, 누구나 시님이 되고 노래님이 되겠지요. 글쓰기 강의나 수업을 받지 않아도 시님이 됩니다. 아니,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 모든 사람이 노래님입니다. ㅅㄴㄹ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야 할 시인 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16쪽)


시골 엄니를 위해 누님은 에어컨과 스카이 라이프를 달아드리고 아우는 텔레비전과 청소기를 사드렸는데, 맏아들인 나는 병아리 눈곱만큼 나오는 전기료와 벙어리 전화세 내드리는 게 전부다 (하늘접시/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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