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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단상 | 서평 2019-01-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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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저
21세기북스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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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 약 7~8년전 쯤 TV에서 방영된 <싸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낯선 분야인 법의학과 법의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였는데 당시 그 생경한 분야를 다룬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 한회도 거르지 않고 빠짐없이 챙겨 봤던 기억이 있다. 범죄와 연루된 시체를 부검하여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 법의학자들의 활약이 꽤나 멋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래도 망자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마지막 메시지를 자신의 몸에 남기고 간다는 일념하에 비명횡사한 죽은 자의 몸을 부검하며 "제가 당신의 마지막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법의학자의 모습에서 비장함과 숭고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래서 이번에 만나게 된 본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이며 현직 법의학자로 있는 저자가 다년간 수 많은 시체를 부검하며 겪은 법의학에 관한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들려주기에 나의 독서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법의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소개와 저자가 어떻게 법의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의 법의학 역사가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고, 곧이어서 20년간 현장에서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한 죽음의 의문들을 파헤친 법의학자의 살아있는 경험들을 고스란히 수록하고 있기에 독자로 하여금 책 속에 몰입하게 끔 만든다. 그러나 본서는 미국 범죄 드라마 와 같은 단지 흥미만을 전달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 아님을 2부와 3부의 내용을 통해 발견한다. 원래 본서는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국내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인 서울대의 교양 수업 강의를 엄선하여 엮은 것이기에 재미+인문학적 교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선사해준다.

 

2부에서 저자는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명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며 생명 시작의 기준 등에 대해 언급하고, 죽음의 과학적 이해를 통해 뇌사나 심정지와 같은 죽음의 시점에 대한 논란, 안락사, 존엄사와 같은 연명의료와 생명 윤리, 자살과 같은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으로 그 파급이 전해지는 사회적 죽음 등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를 통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듣게 되는 잘 죽는 웰다잉(well-dying)과 관련된 내용들을 통해 인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그러나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필치로 전달하고 있다.

 

작은 책 한권에 죽음이라는 누구나 터부시하는 주제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담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저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죽음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 접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은 정해진 사실인데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너무나 두려워하고, 입밖에 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금기시하고는 한다. 요즘 새롭게 건축되는 곳은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만 해도 오죽하면 아파트나 건물 엘리베이터에 4층 대신 F층 이라고 써놓는 경우가 있었겠는가? 이런 사소한 것 하나만 봐도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마냥 타자화하고 싶은 내면에 숨겨진 의식을 감출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본서의 저자가 대놓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수면 밖으로 끌어올려 공개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것도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은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본 죽음은 독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더욱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기에 충분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은 생명연장을 위한 연명의료에 관한 저자의 고찰이었다. 말기암 환자나 더 이상의 의학적 처치가 무의미한 중환자들에 대한 연명의료거부에 대한 내용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죽음을 인간답게 준비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의미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나 또한 동의한다. 우리 사회는 평생토록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했던 사람에게 삶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왜 그 기회를 빼앗아가는가? 라고 반문하는 저자의 외침에 온전히 동의하게 된다. 죽음을 직감하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때 의미없는 연명의료적 처치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짓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웰다잉 아닐까?

 

나는 잘 먹고 잘 사는 것 하나에만 집중하는 웰빙의 그 동물적 허망함에 비하면 사람답게 잘 죽는 웰다잉 속에서 더 깊은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삶이야말로 삶의 참된 가치와 소중함을 잊지 않는 지름길이다. 잘 죽기를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선행 조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저자는 본서의 마지막에 2045년, 죽지 않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바람일 뿐,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성경에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라고 하지 않는가? 불사를 위해 몸부림쳤던 중국의 진시황제도 죽었고, 그 많은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도 결국에는 죽었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다가 인생이라는 연극의 무대에서 아름답게 퇴장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나의 죽음이 타인의 손에 원치않게 조정되어지고 조율되어지는 일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다양한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도하며 달려온 평범한 법의학자의 목소리로 들려지는 본서의 내용 하나하나에 독자들은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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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철학 | 서평 2019-01-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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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덕경

노자 저/소준섭 역
현대지성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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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들로부터 신년 모임의 의미로 아주 근사한 뷔페 레스토랑에 초대받아 참석하게 된 시간이 있었다. 1인당 식대가 보통 서민들이 왠만하면 쉽게 갈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값비싼 음식점이었는데 입장하고 나서 테이블에 진열되어 있는 음식들을 둘러보는 순간 역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기가막힌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굶주려 한껏 예민하게 고양된 손님들의 미각과 시각, 청각은 눈앞에 펼쳐진 온갖 산해진미들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현란한 몸짓을 통한 유혹의 손길 앞에 점점 더 격앙되어져 간다. 일반적인 뷔페 레스토랑과는 음식의 종류와 격이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무렵 어느새 내 손에는 접시 가득 갖가지 다양한 음식들이 차츰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이후의 상황은 더 이상 묘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와 일행들은 식욕이라는 본능에 충실하며 미친듯이 마구마구 음식을 쓸어담는 오직 단 하나의 임무에 묵묵히 충실할 뿐이었다. 그러나 항상 배불리 먹고 나서 그 포만감에 한동안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부른 배를 두드리지만 이내 몰려오는 이 알 수 없는 허탈함과 마치 굶주린 짐승이 식욕의 본능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친 듯한 존재의 저급함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러는 와중 너무나 유명한 <도덕경>을 통해 고전의 숲에서 '노자'를 만난다. 도덕경은 기원전 약 580년경 춘추전국시대 가운데 진나라에서 태어난 노자에 의해 쓰여진 동양 사상의 최고봉을 이루는 고전이다. 도가 학파의 창시자로서 그의 저서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의 총 81편으로 구성되어 노자의 정치, 동양철학, 병법, 양생의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보통 흔히들 공자의 <논어>, <주역>과 더불어 동양 사상에서 최고로 여기는 위대한 저작으로 손꼽는다.

 

도덕경을 통해 노자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바로 무위(無爲)와 자연(自然)이다. 중고교시절 도덕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잘 경청한 독자라면 아마 노자와 도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자가 인의예지를 숭앙했다면 노자는 무위, 자연을 주창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흔히들 노자의 도교가 강조하는 무위와 자연의 개념을 살짝 오해하여 노자의 주장이 마치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시적인 삶을 살아갈 때 인간 세상 속에는 평화와 행복이 깃들 수 있다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은 그의 저서 도덕경을 꼼꼼히 정독하게 될 때 지금껏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었던 노자에 대한 오해와 도교에 대한 혐의를 말끔히 씻어줄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와 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손놓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을 어렵고 힘들게하며 비참하게 만드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모든 관습과 제도, 법령, 욕망, 철학적 사유 체계에 대한 적극적이고 가감없는 비판이며 대안인 것이다. 인간 세상의 불행은 무엇인가 자꾸 사람들에게 인과 예라는 미명하에 멍에와 굴레를 씌우는 강제성 가운데서 잉태된다. 유한한 유무형의 자원에 대해 인간들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얻을 때만이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자원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과 얻지 못한 명예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갈망이 불러 온 것은 인위적인 제도이며 관습이고, 철학이다.그렇기에 노자는 무위정치를 주장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겸양과 청정 등 인간이 자연스러움의 도를 추구할 때 그것은 윤리적인 덕으로 흐르게 될 것이며 결국 이상 정치의 현실에 다다른다는 그만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설파한다.

 

중국인들은 공적 사회 속에서는 유교의 가르침을 숭앙하고,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도교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한다. 그만큼 유교적 가르침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추구해야 할 인의예지의 정신이 명확하다는 것이며 도교적 가르침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수양에 있어서 더 확고한 사유체계라는 점이다. 공자의 <논어>도 읽어보았고, 노자의 <도덕경>도 접해보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귀중한 가르침 속에서 그래도 개인적인 성향상 내게는 노자의 도교적 가르침이 더 마음 속 깊이 와닿는다. 어찌보면 욕심과 탐욕을 비우고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따르는 삶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노자의 가르침은 일견 현실도피라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결국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미있는 개조야말로 전체 인간사회의 참된 변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어찌보면 공자보다는 노자가 더 탁월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탐욕과 욕심을 버리는 것, 자연의 순리에 겸손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을 배우며 본 서평의 서두에 밝힌 나의 일화가 떠오른다. 식욕으로 대변되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미친듯이 음식을 쓸어 담았던 내 자신의 짐승같은 모습이 노자의 가르침 속에 오버랩되어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경험을 한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검약하고 간소한 음식, 치부를 가릴 수 있는 정도의 깨끗하고 단정 소박한 의복, 더위와 추위를 피하며 일신을 평안히 누이며 쉴 수 있을 정도의 화려하지 않은 거처로 만족할 수 있는 자족함의 정신, 명예와 지위를 갈구하지 않는 진실된 겸손함이야 말로 하나로도 더 빼앗고 움켜쥐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치는 사치와 탐욕으로 점철된 아수라장같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가슴깊이 새겨보아야 할 귀중한 덕목이며 가르침이다.

 

어느 하나 흘려들을 수 없는 노자 선생의 가르침들이 마치 진주와 보석을 알알히 꿰어 놓은 것처럼 즐비한 가운데 특별히 내게 깊은 깨달음으로 마음의 심연을 울린 가르침 몇구절을 아래에 소개하며 마친다.

 

그런데 이 '무위'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에 순응하게 하고 사물의 객관 규율을 준수하도록 돕는다. p27

 

부귀와 교만은 스스로 재앙을 취하는 것이다.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p46

 

 

 

진흙을 빚어서 그릇이 만들어진다. 그릇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릇의 쓰임새가 있게 된다.(중략) 그러므로 '유有'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무無'는 쓰임새가 있게 한다. p52

 

총애와 사람들의 인정, 존중...기실 이러한 것들은 단지 내가 살아가는 데 부가적으로 붙은 것일 뿐이다. (중략) 총애와 모욕 모두 결국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모쪼록 살아가면서 외부 요인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그것은 삶의 주인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본말전도(本末顚倒)되어 노예로 예속되는 길일뿐이다. 만일 우리가 총애든, 인정이든, 모욕이든, 그러한 외부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게 된다면, 그러한 부차적 요인들에 전혀 개의할 필요가 없이 진실로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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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 서평 2019-01-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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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이듦의 신학

폴 스티븐스 저/박일귀 역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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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마지막 날 교회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했다. 자정이 다 되어가고, 드디어 2019년을 맞이하는 마지막 10초의 카운트다운을 함께 소리내어 연호한 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며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나에게도 몇몇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건네기에 얼떨결에 함께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예년과 달리 나는 이 순간이 뭐가 그렇게 기쁘고 좋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이 한살 더 먹은건데 그게 그렇게 축하할만한 일인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차피 인간은 모태에서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들이다. 요람을 즐김과 동시에 무덤을 향해 가는 인간의 실존적 모순을 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대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움켜쥔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예전 여타 선진국들의 진입시기보다 훨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노인문제는 단지 우리집에 노인이 없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가 되었다. 답보 상태의 출산율은 향후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할 사회 경제인구의 감소를 의미하기에 국가 존립 자체의 위기설까지 나올정도로 노인 인구의 증가는 그야말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사회문제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말에 만나게 된 본서 <나이듦의 신학>은 평생을 목회자와 신학자로 살았던 저자 폴 스티븐스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신학적 성찰을 통해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간 저작이다. 소명, 영성, 유산이라는 세 가지 핵심주제를 나이듦과 연관시켜서 설명하는 본서의 내용이 의외로 흥미롭다. 나이가 들고 노년에 접어들게 될 때 이 사회는 은퇴라는 이름표를 노인들의 앞가슴에 강력하게 부착시켜준다. 더 이상 사회로부터 무가치함과 불필요함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이러한 모습은 은퇴라는 딱지 앞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이며 아픔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듦의 결과로 수반되는 은퇴라는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를 밀어내고 한가지 혁신적인 성경의 가치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키워드인 '소명' 이다.

 

은퇴는 소명을 통해 끊임없이 행하여야 할 노동으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은퇴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소명에 기인한 노동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내 이웃을 섬기는 노동이야말로 우리를 은퇴라는 레드카드를 받고 피치 밖으로 퇴장시키려는 유무형의 요소들 앞에서 여전히 정력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는 현역 선수로서의 삶을 유지토록 돕는다.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젊은 청년 존 칼빈에게 함께 종교개혁의 과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배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의 이 제안에 존 칼빈은 단지 자신은 조용히 쉬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종교개혁 동참을 거절한다. 그러한 칼빈에게 파렐은 "하나님의 종에게 죽음 외에는 쉼이 없다. 정녕 너가 그렇게 쉬고 싶다면 나는 너의 그 휴식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를 바란다" 라는 독설을 퍼부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 칼빈은 파렐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펑펑 울며 종교개혁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고, 인류 역사를 뒤바꾸어 놓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과업을 이룬다. 그렇다. 소명은 은퇴를 무색케한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외에는 쉼이 없고, 은퇴란 없다.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룩한 부르심, 즉 소명만이 있을 뿐이다.

 

2장을 통해 독자는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삶의 오랜 경험과 경륜으로 인해 고집이 세지고, 욕심이 많아지며 자기 주장이 강해짐과 동시에 완고함으로서 변화되기 어렵고, 젊은이들에게 잔소리에 가까운 말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조그만 일에도 역정을 내는 등의 소위 이 책에서 말하는 노년의 악덕스러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반면에 독자는 책을 통해 노년의 미덕 또한 분명 존재함을 보게된다. 겸손과 절제, 인내의 덕목을 통해 노인들은 미숙한 젊은이들의 언행을 너그러움과 관대함으로 참아줄 수 있으며 어른으로서의 진정한 권위들을 세워간다.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며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들어줄 수 있는 귀의 예민성이 발달하게 되는 것은 노년 세대가 가질 수 있는 미덕 중의 가장 큰 덕목이다. 삶의 갖은 풍파를 다 겪은 인생의 선배들로서 믿음, 소망, 사랑의 미덕이 그의 삶 속에서 마치 끓이면 끓일수록 우러져 나오는 진국과 같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은 나이듦의 가치를 드높인다.

 

본서를 통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내용은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관한 저자의 깊은 통찰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자가 여행이 끝날 무렵 짐을 늘리는 것만큼 터무니 없는 일이 또 있는가?" p45

 

"청교도들은 나이가 드는 것에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많이 부여한다. 그들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삶의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인생의 권리를 포기하는 준비를 하도록 격려한다." p202

 

인생에 대한 자신의 소유와 권리를 점차 포기해가는 것. 눈에 보이는 재산의 사이즈를 줄여가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과 욕심, 인생을 향한 기대와 같은 우리를 이 땅의 것에 소망을 품고, 미련갖도록 만드는 모든 유무형의 가치와 권리를 과감하게 포기해가는 삶의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덮으며 존경하는 멘토 목사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신은 지금의 노년을 바라보는 이 시간을 20대 풋풋한 젊음의 시간과 맞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결코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노년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백발의 면류관이 지닌 깊은 삶의 경륜과 지혜는 젊은이들은 결코 깨달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기에 본인은 지금의 나이듦을 사랑한다는 말씀이었다. 새해가 되고 나도 나이를 한살 먹으며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동의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이제 사회로부터 밀려나서 뒷방 늙은이 신세로의 전락이 아닌 소명의 성취와 완성이라는 더 큰 가치로의 전향을 의미한다. 또한 믿음과 소망, 사랑이라는 경건의 진작, 노인들만이 가진 그 헤아릴 수 없는 경륜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게 유산으로 전수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본서를 통해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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