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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그 뿌리가 되는 이야기 속으로... | 서평 2019-08-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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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북유럽 신화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저/서미석 역
현대지성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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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특히 여름이면 TV를 통해 항상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 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구미호, 처녀귀신, 덕대골 등등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면서도 그 끊을 수 없는 호기심에 실눈을 뜨고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보통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각 지방의 전설과 민담을 드라마로 각색하여 만든 연속 사극물이었는데 그 인기가 상당히 높아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이었다. 오랜시간 입에서 입으로 또는 문헌으로 전해져 내려온 전설과 민담이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전설과 민담이 가지는 그 신화적 요소 때문이다. 꼬리가 아홉개 달린 여우 귀신, 밤마다 나타나서 새롭게 부임한 고을 원님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한(恨)을 품고 죽은 처녀 귀신, 내 다리 내놓으라고 외치며 쫓아오는 산 송장까지 현실과는 동떨어지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운 신화적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전설과 민담, 신화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근 십여년 사이에 전 세계의 영화팬들을 열광시킨 한편의 시리즈물 영화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누구나 알고 있는 어벤져스 시리즈이다. 미국의 마블 코믹스에서 탄생시킨 애니메이션이 영화로 제작되어 매년 시리즈물로 개봉되면서 전 세계 영화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 영화 시리즈는 캡틴 아메리카, 헐크, 아이언맨, 블랙위도우, 스파이더맨, 호크아이,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팬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 셀 수 없이 많은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여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악과 싸워서 평화를 지킨다는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그리는 액션 블록버스터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블 세계관이라 불리는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인공 히어로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와 배경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의 시간과 공간적 배경 속에 중첩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부터 정주행해서 관람하지 않은 관객은 도대체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즉 하나의 시공간적 배경 속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 다발적으로 지구와 우주, 신들의 천상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히어로들이 등장하여 씨줄과 날줄 형식으로 한편의 이야기들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마블 세계관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신들의 천상계 속에서 등장하는 히어로 중 한명인 토르와 오딘, 로키와 같은 신들의 원형적인 이야기는 다름아닌 북유럽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책 <북유럽 신화>이다. 마블 어벤져스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의 대다수는 아마 영화 '토르'의 배경이 북유럽 신화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같은 소위 말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주변, 넓게는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너무나 유명한 바이킹족의 후손들이다. 이 바이킹족을 통해 오랜 세월 그들의 정신과 사상의 기원이며 원류가 된 신화적 스토리는 또 다른 유럽의 신화인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필적할 만한 탄탄한 설화적 구성을 갖는다. 그 안에서 북유럽 바이킹의 후예는 조상들의 얼과 용맹스런 기개를 배웠고, 삶의 지혜와 교훈을 전수받는다. 책을 펼쳐들고 독자는 우선 서론부에서 북유럽의 시공간적 배경, 그들의 우주관, 신들에 관한 이야기같은 사전 지식을 통해 북유럽 신화가 말하는 전체적이고 개괄적인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북유럽 신화는 그들의 신화적 배경을 4개의 수평면적인 공간으로 나눈다. 신들이 거주하는 아스가르드, 인간들의 세상인 미드가르드, 거인들의 세상인 요툰하임 그리고 죽은자의 세상인 니플하임이 그곳이다. 이 안에서 신들과 거인들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등의 마치 인간사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일상을 동일하게 선보인다. 천지창조와 최초의 신과 인간, 거인들이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한가지 어렴풋이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유럽의 지배적 종교로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책의 내용 속에서 알게 모르게 희미한 광채로서 비춰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억측이며 끼워맞추기식 해석일 수 있기에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천국에 비견될 신들의 세상 아스가르드, 온 세상을 지탱하는 나무 이그드라실, 최초의 남녀 인간, 신 중의 최고 신 오딘과 그의 아들 토르, 사탄과 같은 존재인 비열한 신 루키, 지옥에 비견될만한 죽은 자의 세상 니플하임과 부활을 기다리는 죽은 전사들인 에인헤르자르 그리고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과 비견되는 라그나로크까지 기독교적 세계관과 너무나 비슷하게 싱크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내내 더욱 더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독자는 단지 본서가 가지는 그 신화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재미적 요소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전해내려오는 무형의 공통적인 가치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전설과 민담, 신화가 말하는 선과 악의 대립이며 선은 필연적으로 악과 싸워 이긴다는 권선징악적 요소이며 교훈이다. 또한 다양한 신들은 어떤 때에는 믿고 협력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배신과 반목을 거듭하며 뺏고 빼앗기며 속고 속이는 인간사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 추잡스럽고 탐욕스러운 애증의 행위들을 가감없이 시전한다. 더불어 배우자가 있음에도 다른 신들 또는 거인들과 통정을 통해 사생아를 낳음으로서 얼키고 설켜버린 가족관계는 신화가 가지는 그 도덕적 한계없음의 끝을 보여줌으로서 실제 인간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그 복잡 미묘한 관계와 사회적 규범의 무력함을 풍자하기도 한다.

 

신화와 전설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들끓었던 시대에는 원한에 사무친 원귀들이 구천을 떠돌며 자신을 해한 권력자들에게 원수를 갚는다거나 아니면 지극한 효심으로 늙은 부모를 공양한 효부들이 많던 시대에는 효심 가득한 이들에게 하늘이 감동하여 천혜의 선물을 내려준다는 전설과 민담이 전해내려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강력한 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그보다 못한 인간들을 비롯해서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인족들과 끊임없이 대립하고 싸워나간다는 설화적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녹아져 정형화 된 북유럽 신화 또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은 바이킹족이 중남부 유럽을 점령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민족적 정기와 정체성, 약탈 민족의 기개와 용기 등을 신화 속에서 찾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벤져스, 그중에서도 토르 시리즈를 통해 접한 마블 세계관의 원형이 되는 본서를 읽으며 이 후 등장하게 될 마블 시리즈의 개봉작들이 더욱 더 궁금해진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항상 느꼈던 점 한가지는 어벤져스 시리즈의 전체적인 세계관을 구상하고 얼개를 구성한 마블의 기획력에 다시금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공간이 다양하게 중첩된 세계관의 설정 자체는 천재적이며 얼핏보면 결코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다양한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을 하나의 완벽한 플롯으로 끌고가는 마블의 뒷심 가득한 저력, 거기에 덧붙여서 전 세계 영화팬들의 팬심을 사로잡는 그들의 판타스틱한 마케팅력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디즈니 사단만이 가지는 브랜드 파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모르긴 몰라도 마블의 세계관을 구성한 기획자는 분명 역사와 인문학 분야의 해박한 전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토르 3 : 라그나로크>에 이어 토르 4편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마치 학생이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예습을 하듯이 마블의 팬이라면 토르 4편을 기다리며 먼저 본서 <북유럽 신화>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더 흥미롭게 마블 시리즈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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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사 | 서평 2019-08-1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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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의 역사

나이절 워버턴 저/정미화 역
소소의책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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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태동하고 수 많은 인간들이 사회 속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감으로서 인류는 단 하루도 평안함이 없는 애욕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는 마치 결코 끝날 것만 같지 않은 영겁의 연속이다. 이러한 탐욕과 혼돈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짐승군상' 들을 만나게 된다. 최근 불거진 한일 양국 갈등의 회오리 바람을 타고 마치 노이즈 마케팅과 같은 천박함을 통해 자신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버린 짐승의 민낯을 본다. 학자적 노력과 숙고의 결과로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가 진정 깊이 생각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렇듯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단 하나의 명확한 기준은 바로 그 주체가 생각하는 존재이냐 아니냐의 한끝 차이다. 인류의 역사는 생각하는 자들과 생각하지 않는 자들로 대변되어졌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생각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지배받아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각은 이렇게 중요하다. 생각하는 주체로서 내가 누구이고 나를 둘러싼 이 세계는 무엇이며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떠한 존재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생각의 끝을 부여잡지 않는다면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먹고 싸는 것에 있어 별반 다름이 없다. 영국의 대중철학자 '나이절 워버턴'의 <철학의 역사>는 이러한 생각의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철학에 대한 지적 담론이다.

 

철학의 문외한인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철학은 뭔가 머나먼 이국의 언어라는 이질적 정서로 다가온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녀야 했던 우리의 부모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순간 삐긋하면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기에 미친듯이 내달리는 이 동물의 왕국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철학이 말하는 주제는 정서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서평의 서두에서도 잠간 언급했듯이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주체로서 생각을 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이었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사고의 의미를 다룬 철학은 어찌보면 그 먹고 사는 문제와 약육강식으로 점철된 이 야만의 세상 속에서 선행되었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이되는 가치이다.

 

본서 <철학의 역사>는 이렇게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서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을 총 40개의 chapter로 나누어서 시대순으로 나열하여 기술한 말 그대로 철학의 역사를 다룬 저작이다. 저자는 고대 서양철학의 3인방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고대와 중세의 가교와 같았던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보에티우스, 안셀무스, 아퀴나스, 마키아벨리 같은 중세철학자들과 학창시절 도덕 시간에 익히 들어왔던 중세와 근대의 가교와 같았던 데카르트, 스피노자, 파스칼, 루소, 로크, 볼테르 그리고 칸트, 헤겔, 벤담, 밀, 쇼펜하우어, 다윈, 키에르케고르, 니체, 막스,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을 비롯한 수 많은 근대철학자들, 더불어 20세기의 사르트르, 아렌트, 쿤, 롤스, 싱어에 이르는 현대철학자까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철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본서가 가지는 특징은 그동안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철학 관련 책은 어렵다는 인식을 한방에 불식시켜주는 평이한 내용 전개이다. 시대 순으로 독자들이 꼭 알고 숙지할 필요가 있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선별했고, 그들의 주장과 사상을 철학의 문외한인 독자들이 알기 쉽고 이해하기 편하도록 최대한 독자의 입장에서 상세하지만 난해하지 않도록 풀어 쓴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임과 동시에 어려운 철학적 용어들을 최대한 배제하였고, 가능한 일상의 언어로 풀어 쓰고자 애쓴 저자의 노력이 군데군데 엿보이기에 본서가 가지는 그 친절함에 흐믓한 미소를 짓게 된다.

 

소크라테스 이후 그의 제자 플라톤은 현상을 넘어 그 이면의 실재의 본질을 찾기 위한 철학적 사유를 진행했다. 그에게는 눈에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고, 현상 너머 초월적 존재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과는 사상과 견해가 달랐다. 그는 인간 이성을 중요시 했으며 인간의 행복에 대해 자신의 스승들보다는 좀 더 객관적이었고, 실재적이었다. 이후 당대 최고의 지성인 스토아 학파는 인간 감정보다는 인간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강인한 철학적 사조로서 두각을 드러냈고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위대한 인물은 그들과 달리 신 존재에 대한 그의 강한 믿음을 천재적 지성의 능력을 바탕으로 서양사상사의 큰 수문을 열어젖히는 기염을 토한다. 중세 암흑기를 거쳐 다시 인간 이성의 탁월함을 강조하게 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발흥과 16세기 초 종교개혁, 17~18세기 합리론과 경험론, 관념론, 공리주의까지 인간 이성과 지성에 기반한 철학적 사유가 꽃을 피우게 된다.

 

이후 19세기 실존주의와 실용주의등을 통해서 인간 실존과 무의식의 문제 등을 발견하기 시작했는데 17세기 이후 근현대 철학의 큰 주류는 중세시대 신(神) 중심 철학, 기독교 신앙 중심의 사상과 결별 후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19세기 '종의 기원' 이라는 혁명적 이론의 등장을 거치며 과학기술과 인간 이성, 지성의 무한 신뢰라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대 조류를 형성하게 된다. 이제 인류의 사고안에는 신의 도움은 필요없고, 인간 이성과 지성의 탁월한 능력만으로도 유토피아적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제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인류적 재앙을 통해 인간 이성과 지성의 총아였던 과학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살상무기들이 같은 인간을 그처럼 잔인하게 살해하는 도구들로 쓰여지는 장면을 눈 앞에서 목도한 인간들의 정신과 사고는 한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인류의 정신세계는 그야말로 정신적 공항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인류는 다시 한번 인간 실존의 문제를 직시하게 되며 포스트모더니즘과 자유와 인간 가치 실현의 정의적 문제들로 이어지는 20세기 시대 정신의 흐름으로 연결되었고, 그 흐름은 이제 21세기 최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대한 내용이 자꾸 나의 눈길을 책장 속에 멈추게 만든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작을 통해서도 알려진 제 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 친위대 중령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통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주장한 아렌트의 경험이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다. 너무나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남성이 600만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주범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그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에게조차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독일 패전후 신분을 숨기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생활하다가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의 끈질긴 추적 끝에 붙잡혀 예루살렘 법정에 선 그가 계속 되뇌였던 말은 "나는 오로지 상관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죄가 없다"라는 마치 앵무새와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악의 축으로서의 전체주의 국가가 한 사람의 사고기능과 영혼을 완전히 앗아감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거나 반추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는 믿기 힘든 사실에 대한 보고를 통해 결코 괴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괴물로 전락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사고할 때만이 짐승과 구별된다. 어디가서 얼마짜리 음식을 먹고, 얼마나 크고 넓은 아파트에서 살고, 얼마짜리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가의 여부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고의 끈을 놓치 않고 자신이 누구이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내가 지금 하는 이 행위가 나와 타인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 지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각의 퍼즐들을 맞추어갈 수 있을 정도의 사고의 능력과 가치를 일상에서 실행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과 사고를 독려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며 본서의 저자는 그러한 철학의 역사를 한 눈에 기술했다.

 

생각하지 않을 때 인간은 짐승이 된다. 사고와 사유를 멈출 때 인간은 괴물이 된다. 너무나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았던 아이히만이 600만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생명의 숨통을 멎게한 괴물이 되었듯이 이 책을 읽는 우리 또한 생각하지 않을 때 동일한 짐승과 괴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렇기에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명제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직접 당하지 않았기에 샤머니즘적 사고체계 운운하며 망발을 책이랍시고 엮어 낸 생각하지 않는 짐승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아침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끝자락에 우리를 생각의 역사 속으로 초대하여 그 심오한 지적 향연 속에서 위대한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본서 <철학의 역사>를 만나게 될 때 더위에 지친 독자들의 지성은 한없이 고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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