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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저/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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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새로운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도권 전세난이 심각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에 집 없는 서민들의 애간장이 끓는다. 정부는 맞춤형 공공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언했지만 널뛰듯 뛰어오르는 집값을 붙잡기에는 역부족 같다. 집 가진 사람들에게는 부동산 천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쓰디쓴 현실을 뉴스 너머로 접하며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는데 책 제목이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유토피아>

 

나는 우습게도 이 책의 저자인 '토머스 모어'를 개신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서로 육두문자까지 날리며 설전을 벌였다는 야사(野史)로 먼저 접했다. 15세기 중후반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인문학자 '토머스 모어'의 저작 <유토피아>는 당시 중세 유럽의 정치와 경제, 종교, 문화 등을 풍자와 해학으로 고발한 허구적 소설이다. 마치 이후 출간된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예고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본서가 풍자와 해학을 통해서 당시 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가감 없는 비판을 적절히 믹스시켜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모어는 본서에서 극중 화자인 '라파엘'이라는 탐험가를 만나 그를 통해 유토피아라는 섬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중세 영국과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종교의 일반적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한 유토피아 나라의 문물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별천지이며 결코 존재하기 어려운 그런 나라의 모습이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서는 모어가 라파엘 씨를 만나서 그와 대화하며 현재 영국과 유럽의 정치와 경제, 사회 시스템이 가진 부조리와 불합리함에 대해 고발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단편적인 예로 당시 소수의 귀족들은 대부분의 땅을 차지하고 소작농의 피땀으로 거둬들인 생산물을 가지고 놀고먹는 유한계급을 형성했다. 이후 양모 값이 폭등하자 귀족들은 농작물을 재배하던 농지를 전부 양을 키우는 목초지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인클로저 운동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소작농으로서 근근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던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대거 사회의 최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리는 비극이 발생한다. 이런 합법적 불의라고 불리는 역설적 단어가 판을 쳤던 시대가 다름 아닌 저자인 모어가 살던 중세 영국과 유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시스템의 붕괴로 부랑자와 거지가 되어버린 수많은 농민들은 이윽고 생사의 코너로 몰리게 되고 급기야는 절도범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다가 붙잡혀서 교수형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모어는 1권에서 이렇게 당시 영국과 유럽에서 자행되었던 사회적 불의에 대해 일갈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2부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토피아에 대해서 서술하기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얼토당토 할 만큼 파격적이다. 우선적으로 이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사유재산의 부정이다. 모든 국민들에게 있어서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은 없다. 공동생산 공동분배라는 경제 시스템이 이 나라를 이끄는 근간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만의 재산을 갖기 위해서 머리 터져라 싸울 필요도 없고 열심히 일해서 거둬들인 수확은 모든 국민이 동일하게 분배하고 사용하기에 어느 사회에서나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빈부의 격차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정치인들은 시민들 가운데서 선발되는데 정치인들의 기본적 인성이 너무나 고결하고 빼어나 국민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 결코 불의와 부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청렴결백함과 공의와 공정함으로 행한다.

 

 

1부와 2부의 내용을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서 현실 정치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공정함, 불의한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만든 모어의 문학적 탁월함이 엿보인다. 더불어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 집행관 대리라는 그의 직업적 이력이 돋보이는 저작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유토피아'라는 책의 제목이 가지는 어휘의 의미인데 헬라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름 자체가 가진 허구성이다. 사유재산 없이 공동분배를 행하며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관용과 사랑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나라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이 왜 이렇게 꼬였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나라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팩트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서 인간 이성에 대한 동경과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모어는 이러한 나라를 꿈꾼 것 같다. 넘쳐나는 부랑자와 거지, 극명하게 갈린 빈부의 격차, 허영심과 오만의 팽배, 극단적인 법의 집행과 국가 권력의 남용 등을 바라보며 이처럼 모든 불의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이 개혁되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모어 자신도 책의 말미에 자신의 바람과 이야기가 결코 현실 세계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음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기독교가 가진 성경적 가치를 어느 정도 녹여내려 한 흔적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결국은 유토피아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가장 근원적 이유는 인간 본성의 타락이라는 원죄의 문제로 귀결된다.

 

책의 내용 중 모어는 작중 화자인 라파엘 씨의 입을 빌려 왜 유토피아가 불가능한 지에 관한 가장 근본적 이유를 내비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 그중에서도 '과시욕'에 대한 것이다. 내가 얼마나 가졌는가를 따지는 소유욕의 문제보다 더 부각되는 것은 바로 남이 나보다 얼마나 덜 가졌느냐를 통한 비교우위로 인한 자기 자랑이라는 극도의 쾌감을 만끽하고자 하는 타락한 본성, 탐욕의 끝판왕 '과시욕', 남과의 무한 비교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그 마성의 본성적 쾌락은 바로 사유 재산이라는 연료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며 그렇기에 사유재산 부정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유토피아는 이름 그대로 결코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모어는 유토피아가 자신의 희망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자신의 바람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서두에서 꺼낸 가중되는 전세난과 더욱 심해지는 빈부의 격차, 점점 깊어지는 사회 계층 간의 골, 따뜻한 인정 대신 서로를 미워하고 불신하며 반목하는 사회 정서 등을 볼 때 나 또한 모어가 꿈꾼 유토피아와 같은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 찬 본서가 가진 의의는 플라톤의 <국가>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상향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며 이후 세대에게 있어서 바른 정치와 사회 구조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으로서의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가 지향하며 나아가야 할 행복은 중세 기독교적 가치가 가르쳤던 내세에서의 행복과 더불어 이 땅에서의 행복 또한 포함한다. 온전한 이상향, 완벽한 유토피아는 결코 이룰 수 없지만 500여 년 전 절대왕정 시대의 기로에서 최상의 공화국 형태를 꿈꾸며 인간애와 관용, 공정하고 공평한 바른 사회적 공익 실현을 독려한 본서의 가치는 21세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바른 지침이 되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귀하다! 그리고 상당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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