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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를 철학으로... | 서평 2021-03-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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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저/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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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캐릭터로 유명한 짐 캐리가 주연한 '트루먼쇼'와 명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식스 센스'라는 영화의 공통점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관객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소름 끼치는 반전의 요소를 갖췄다는 점이죠. 이렇듯 좋은 이야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설득력 있는 전개를 위해서 '플롯'이라는 극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을 탑재합니다. 그런데 이 플롯은 이미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시학'이라는 이름의 철학과 학문으로 연구되었습니다. 소피스트들에 의해 '테크네'로서의 실용적인 지식이 유포되었던 당시 상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합리적인 원칙 없이 실용성만을 강조했던 테크네의 본질과 원리를 규명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비극'을 연구하며 시학을 탄생시키게 되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시학은 비극, 희극, 서사시, 서정시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본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은 총 26장으로 구성됩니다. 원래는 총 2권으로 1권에서는 비극과 서사시, 2권에서는 희극을 다루었는데 현재는 1권만 전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반부에서는 시 일반의 내용을 다루고 본론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지막 3부에서는 서사시에 대해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모방하는 일에 있어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는 인간이 선한 인격과 미덕을 고양하는 데 있어서 바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죠. 그런데 이러한 바른 감정의 표출은 당시 유행했던 비극이라는 공연 도구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소피스트들에 의해서 실용적인 기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당당한 철학과 학문의 분야로 승격시킨 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분야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었다는 반증입니다. 대중 예술인 비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감으로써 그들에게 바른 감정의 표출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이로 인한 건강한 감정과 판단은 사람들의 고매한 인격과 미덕, 선한 인품을 보장한다고 여겼던 것이죠.

 

비극은 양념을 친 온갖 언어를 곳곳에 배치해, 낭송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통해, 훌륭하고 위대한 하나의 완결된 사건을 모방하여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써 그 감정의 정화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p26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6가지 특성을 말하는데 그중에서 비극의 몸통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는 플롯을 위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죠. 쉽게 말해서 플롯은 행위나 사건을 구성하는 뼈대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정황과 사건들이 서로 인과관계 속에서 필연성과 개연성을 갖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극의 상황을 치달리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반전과 인지, 수난의 요소가 포함됩니다.

 


 

서두에서 영화 트루먼쇼와 식스 센스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번에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영화 한 편이 책의 내용과 계속 오버랩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이었습니다. 본서에서 말하는 탄탄한 플롯과 역대급 반전, 인지, 수난의 모든 요소가 이처럼 잘 녹아져 있는 영화가 드물죠. 우선 "가장 훌륭한 비극은 플롯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어야 하고,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나 사건이 있어야 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염두에 둘 때 영화 기생충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듯합니다. 사실 유머 코드를 영화 곳곳에 적절히 배치한 봉준호 감독의 센스와 탁월한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비극이라기보다는 희비극에 가깝게 만들었죠. 하지만 플롯은 러닝타임 내내 마치 외줄타기를 보는 듯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애간장을 졸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숨겨져 왔던 지하방의 진실이 밝혀진 영화의 중간과 마지막 장면에서는 반전과 인지의 요소를 매우 휼륭하게 투여함으로써 다시 한번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영화의 묘미를 선보입니다. 더불어 수난의 장치 또한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훌륭한 비극이 갖추고 있어야 할 반전, 인지, 수난의 기법을 진득하게 녹여낸 작품이 아닐 수 없죠.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잘 사용할 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만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 줄 수 없으며 천재의 징표다. 은유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유사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은유하는 기생충은 다른 개체에 기생하며 영양분을 빨아먹는 존재죠. 봉준호 감독은 부잣집에 들러붙은 한 가족과 이미 오랜 시간 그 집의 지하방에서 존재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생충으로 은유했죠. 이러한 모습을 볼 때 봉준호 감독은 이미 천재성을 지닌 연출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하긴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보다는 불가능하지만 개연성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믿을 수 없는 일로 플롯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합니다. 사실 영화 기생충은 이 조건에 딱 들어맞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인데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을 지녔다는 말이죠.

 

서평에 웬 영화 이야기?

240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전해져오는 탁월한 철학자의 메시지가 최근 우리의 일상에서 만난 너무나 훌륭한 영화 한 편에 녹록히 녹아져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주저리 늘어놓아봤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보면 기실 우리네 인생 자체가 비극이요 희극이며 삶의 발자취가 새겨진 서사시가 아닐까요? 어린 시절 '왕년에 내가", "라떼는 말이야"를 호기스럽게 외치셨던 동네 어른들의 막걸리 입담 속 이야기들이 어쩌면 어설프지만 반전과 인지, 수난의 요소를 두루 갖춘 훌륭한 인생극의 표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수사학>과 더불어 단순한 유흥거리로서 전락할 수 있었던 비극, 희극, 서사시를 일종의 철학 체계와 학문으로서 승화시킨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 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저작이었습니다. 더불어 매일 아침 눈 뜨면 맞닥뜨려야 하는 우리의 일상이 비극임과 동시에 희극이라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볼 때 한편의 비극을 관람하며 그 안에서 불러일으켜진 공포와 연민을 통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라는 인지적 메커니즘은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을 통해 오늘도 살아내야 하고 버텨내야만 하는 타자가 아닌 본인의 굴곡진 반전과 인지, 수난의 희비극적 일상의 터전 속에서 철학자가 건네는 진정한 행복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야 이 작은 책은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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